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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1.04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2)
  3. 2013.01.04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1)
  4. 2013.01.0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5)
  5. 2013.01.0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4)
  6. 2013.01.0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3)
  7. 2013.01.0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2)
  8. 2013.01.0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1)
  9. 2012.12.17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5)
  10. 2012.12.17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4)
  11. 2012.12.05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3)
  12. 2012.12.04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2) 2
  13. 2012.11.29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1)
  14. 2012.11.07 투명한 북극곰의 털 5
  15. 2012.11.02 수학 불안증과 고통의 상관 관계 6
  16. 2012.11.02 하나의 개체 그리고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17. 2012.11.02 사랑은 떠나가도 허피스는 남는다
  18. 2012.11.02 수면 주기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19. 2012.11.01 유전자 변형 작물(Genetically modified crops)에 관한 단상(斷想)
  20. 2012.10.17 고대 로마 시대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
  21. 2012.10.15 [추가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과 관련된 추가 자료
  22. 2012.10.14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
  23. 2012.10.11 생물학자 그리고 수학. 그 넘사벽에 관하여. 2
  24. 2012.10.11 [서평]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를 읽고
  25. 2012.10.11 작은 과학 그리고 큰 과학
  26. 2012.10.03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
  27. 2012.09.24 유전자 변형 작물이 정말로 암을 유발하는가? ― 세랄리니 박사 연구팀의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
  28. 2012.09.18 라마르크를 위한 변론 ― 페이 플램의 기고문 요약
  29. 2012.09.18 다세포의 출현, 실험적으로 재현하다 2
  30. 2012.09.16 황금 거위, 과학, 경제성 그리고 한국의 과학 1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1)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2)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4)


4.3. 호미닌 화석기록


DNA 서열 차이는 침팬지와 사람 혈통이 5백만 년에서 6백만 년 전 사이에 분기했음을 시사한다 [2장 참조]. 침팬지 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 호미닌 화석은 6백만 년에서 7백만 년 사이의 중신세 후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호미닌”이란 용어는 침팬지의 자매군인 호미니드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여왔다.] 호미닌 화석기록은 뇌 크기의 척도인 뇌용량 같은 많은 형질이 일반적으로 거의 단일 지향적 추세로 진화했다는 뚜렷한 증거를 제공한다 [그림 4.12].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오늘날 인류가 해부적 측면에서 유인원을 닮은 조상에서 시작해 많은 중간 단계를 거쳐 진화해왔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류 진화에 관한 폭넓은 범위가 멋들어지게 기록되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별개의 호미닌 종과 속이 있는지에 관해서 의견 차이가 있는데 [Wood and Collard 1999], 부분적으로는 화석 표본이 너무 적고 시공간적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떨어져 있어서 종 사이의 변이와 비교했을 때 종 내의 변이를 특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양한 호미닌 사이의 차이는 정량적[즉, 정도의 차이]이고 때때로 다소 경미하므로, 가장 초기의 특정 개체군이 나중 개체군에 대해 조상인지 또는 실제 조상 혈통의 방계친족(collateral relatives, 傍系親族)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화의 전반적인 양식이 분명할지라도 호미닌 분류군 사이의 특정 계통관계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호미닌 화석기록에 관한 유용한 요약은 Ciochon and Fleagle 1993Strait et al. 1997에서 찾을 수 있다; 더불어 Begun 2004도 참조].


* 침팬지 화석은 치아뿐이지만 2005년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림 4.12 호미닌 화석으로 추정한 몸무게[그림 (A)]와 뇌 부피[그림 (B)]. 몸 크기는 지난 2백만 년 동안 매우 많이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뇌 부피는 꾸준한 그리고 상당이 점진적인 증가를 나타냈었다. 화살표는 현대인의 평균치를 가리킨다. [After Jones et al. 1992.]



모든 초기 호미닌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초기의 호미닌 화석으로 서아프리카 차드(Chad)에서 발굴된 두개골이 근래에 연구됐다 [Brunet et al. 2002].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로 명명된 이 호미닌 화석은 6백만 년에서 7백만 년 전 사이 중신세 후기에서 비롯했다고 여겨진다. 작은 뇌와 같은 많은 측면 때문에 차덴시스는 가장 원시적인 호미닌으로 알려졌지만, 또한 훨씬 더 후대의 호미닌을 닮은 작은 송곳니와 다소 평평한 얼굴 같은 파생형질을 가졌다. 이들은 거의 확실히 [두 발로 걷는] 이족보행을 했다.


차덴시스보다 좀 더 후기에 살았던 호미닌으로는 케냔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Kenyanthropus platyops)라고 명명된 3백5십만 년 된 두개골과 더불어 두개골 파편, 턱뼈, 이빨 그리고 다리뼈와 팔뼈로 대표되는 약 6백만 년 전의 오로린 투게넨시스(Orrorin tugenensis), 5백2십만 년에서 5백8십만 년 전 사이의 아디피테쿠스 카다바(Ardipithecus kadabba), 약 4백4십만 년 전의 아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4백2십만 년에서 3백9십만 년 전 사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Australopithecus anamensis) 같은 최근에 밝혀진 몇몇 형태가 있다. 가장 광범위하고 유용한 정보가 담긴 초기 화석으로는 약 3백5십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가 있었다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사진을 참조하라].


이들에게서 “원시적” 또는 조상형질이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러한 형태가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플라티오프스는 좀 덜하지만] 이들은 얼굴 아래쪽이 눈보다 더 돌출해 있고, 상대적으로 큰 송곳니에, 다리보다 상대적으로 긴 팔, [약 400cc 용량의] 작은 뇌, 그리고 [이들이 나무에 기어 올라갔음을 시사하는] 손가락과 발가락의 굽은 뼈를 가졌다. 하지만 골반과 뒷다리의 구조는 아나멘시스와 아파렌시스가 이족보행을 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사실, “화석화된” 발자국이 탄자니아(Tanzania)의 아파렌시스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화산재로 형성된 암석 위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4.13 화석기록에 나타난 명명된 호미닌 분류군의 대체적인 존재 시기. 시간 범위는 연대 측정된 화석의 시간 범위 또는 소수 표본으로 알려진 분류군의 추정 시기의 범위를 가리킨다. [After Wood 2002.]



선신세(Pliocene epoch, 鮮新世) 후기와 홍적세(Pleistocene epoch, 洪積世) 초기에 살았던 아파렌시스 이후에 출현한 호미닌 종의 수와 이들 사이의 계통관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림 4.13]. 이 분야의 권위자 대부분은 호미닌 종이 당시 매우 다양했다는 데 동의한다.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같은 “강인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원인 혈통으로 알려진 세 종의 명명된 호미닌은 커다란 어금니와 작은 어금니 그리고 강력한 씹기에 적합한 여러 형질을 가졌는데, 이들은 아마도 덩이줄기나 단단한 식물을 먹었으리라 추측된다. 강인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원인은 석기(石器)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기가 2백6십만~2백30만 년 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날 인류의 계보에 아무 기여도 못한 채 멸종했다. 좀 더 날렵한 형태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는 일반적으로 아파렌시스에서 유래했다고 생각되었지만, [약 450cc 정도의] 더 큰 뇌용량을 가지는데 이것은 이들 아프리카누스가 아파렌시스보다 더 큰 뇌를 가졌음을 뜻한다 [그림 4.14B4.14C]. 아프리카누스의 파생형질 가운데 일부는 강인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원인과 닮았으므로, 이들 호미닌은 현대 인류의 직접적 계보 선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4.14 침팬지와 일부 호미닌 화석 두개골의 전면과 측면을 재구성한 그림. (A) 침팬지인 Pan troglodyte. 커다란 송곳니, 낮은 이마, 돌출된 얼굴, 그리고 [눈 위의 뼈가 융기한 부분인] 눈두덩에 주목하라. (B)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침팬지와 같은 형질이 일부 뚜렷하게 나타난다. (C)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더 작은 송곳니와 높은 이마를 가졌다. (D) 호모 하빌리스. 이전 형태보다 얼굴 돌출이 줄었고 두개골이 더 둥글어졌다. (E) 호모 에렉투스. 훨씬 더 수직으로 된 얼굴과 둥근 이마에 주목하라. (F)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 두개골 뒤쪽이 호모 에렉투스보다 더 둥글고 뇌용량이 더 커졌다. [A, B after Jones et al. 1992; C~F after Howell 1978.]



사람속(genus Homo)으로 흔히 지정되는 가장 초기의 화석은 [선신세 후기와 홍적세 초기에 해당하는] 1백9십만 년에서 1백5십만 년 전 사이의 호미닌 화석이다. 원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라고 불린 호미닌은 몇몇 연구자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르가스터(Homo ergaster),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같이 둘 또는 심지어 세 종으로 지정할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넓은 의미에서] 호모 하빌리스는 재발견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의 전형(典型)이지만 [그림 4.14D],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으로 지정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Wood and Collard 1999]. 가장 오래된 표본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와 매우 비슷하며, 좀 더 최근 것이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초기 형태와 가깝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교했을 때 호모 하빌리스는 [610cc에서 거의 800cc에 달하는] 더 큰 뇌용량, 더 평평한 얼굴, 더 짧아진 치열(齒列) 등에서 오늘날 인류와 거의 상당히 닮았다. 팔다리에는 나무타기 능력이 있었으리라 추측되는 유인원과 비슷한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다리와 발 구조는 이들의 이족보행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원인보다는 사람에 거의 가까움을 가리킨다. 호모 하빌리스는 [올두완 기술(Olduwan technology)로 언급되는] 석기와 연관되어 있으며 잘린 흔적이 있는 동물 뼈와 호미닌 활동의 다른 징후와도 관련되어 있다 [Potts 1988].


1백6십만 년에서 약 20만 년 전 사이의 후기 호미닌 화석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불린다. 연구자 대부분은 하빌리스, 에렉투스 그리고 사피엔스가 단일 진화 혈통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측면에서 홍적세 중기 이후의 에렉투스는 두개골, 후두개(喉頭蓋)의 해부 구조,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에서 확실히 오늘날 인류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진다. 두개골은 둥글고, 얼굴은 초기 형태보다 덜 돌출했으며, 이빨은 더 작고, 뇌용량은 더욱 커져서 평균 1,000cc에 달하며, 이러한 형질은 시간이 흐르면서 명백히 증가하고 있다 [그림 4.14E]. 적어도 1백만 년 전에 [아마도 1백7십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기에]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퍼져, 중국과 자바(Java)를 향해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이 활동하던 전 영역에 걸쳐서 에렉투스는 호모 하빌리스의 올두완 도구보다 더욱 다양하고 정교한 아슐리안 문화(Acheulian culture)라 불리는 석기와 관련되어 있다. 불의 사용은 50만 년 전에 널리 퍼졌다.


호모 에렉투스는 40만 년에서 30만 년 전 사이에 시작된 일반적으로 “고대 호모 사피엔스” 라 불렸던 형태로 분류된다. 사피엔스의 역사 동안 평균 뇌용량은 20만 년 전의 1,175cc에서 오늘날 평균인 1,400cc로 증가했다. 홍적세 중기의 “고대 사피엔스”는 홍적세 후기에 출현한 “해부학적인 현대 사피엔스”와 상대적으로 일부 측면에서만 차이가 있다. 고대 호모 사피엔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개체군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으로, 일부 학자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라는 별개의 종으로 구분한다. 네안데르탈인은 밀도가 큰 뼈, 두꺼운 두개골, 그리고 돌출된 눈썹을 가졌다 [그림 4.14F]. 하지만 구부정한 짐승이라는 오늘날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확실히 똑바로 서서 걸었고, 현대 인류의 뇌만큼 크거나 또는 [최대 1,500cc에 달하는] 더 큰 뇌를 가졌으며, [무스테리안 문화(Mousterian culture)라 불리는] 다양한 석기를 포괄하는 매우 정교한 문화를 가졌고, 아마도 죽은 자를 위한 의례적인 매장을 치렀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의 유물은 약 12만 년에서 30만 년 전에 걸쳐 널리 나타난다.


해부학적으로 오늘날 인류와 사실상 구분할 수 없는 “현대 사피엔스”(modern sapiens)는 다른 곳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약 17만 년 전에 최초로 출현했다. 오늘날 인류의 활동 지역은 역사를 통틀어 시기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중동 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과 겹치지만, 약 4만 년 전 “현대 사피엔스”는 유럽에서 갑자기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 6장에서 살피겠지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종교배(interbreeding, 異種交配) 없이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한] 고대 사피엔스를 대체했다는 증거, 즉 이들 두 혈통이 별개의 생물학적 종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 1만2천 년 전 또는 그보다 더 이른 시기쯤에는 오늘날 인류는 동북아시아에서 베링육교(Bering Land Bridge)를 거쳐 북아메리카 북서부로 퍼져 나갔으며, 빠르게 아메리카 전역으로 이동했다.


*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Denisovan) 같은 호미닌 유전체 분석 연구로 이들 고대 인류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이종교배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상부 구석기” 문화(Upper Paleolithic culture, 上部舊石器文化)는 약 4만 년 전에 출현했다. 유럽에서 연속적으로 출현한 몇몇 문화 “스타일” 가운데 가장 초기 형태인 오리냐크 문화(Aurignacian culture)는 무스테리안 문화보다 더욱 다양하고 정교한 석기가 특징이다. 더욱이, 이 문화는 단순히 실용적인 것 그 이상이었는데, 예술, 자기 장식(self-adornment), 그리고 신화적∙종교적 믿음이 3만 5천 년 전 이후부터 점점 뚜렷해졌다. 엄청나게 증가한 인구밀도(人口密度)의 원인이자 인간 활동으로 지구를 변모케 한 농업은 약 1만 1천 년부터 있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만일 있다면] 이러한 문화적 진보가 이성, 상상력 그리고 의식 능력에서 일어난 유전적 변화와 연관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것이 뇌 크기의 증가나 다른 해부학적 변화와 함께하지는 않는다.


호미닌 진화를 통틀어 서로 다른 호미닌 형질은 [“모자이크” 진화로서] 서로 다른 속도로 진화했다. 평균적으로 뇌 크기는 [또는 뇌용량은] 일정한 속도는 아니지만 호미닌 역사를 통틀어 증가했으며, 아파렌시스, 아프리카누스, 에렉투스, 사피엔스를 거치면서 이빨, 얼굴, 골반, 손 그리고 다리와 같은 많은 다른 형질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 명명된 형태 사이의 분류학적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는 사실은 호미닌 형질의 모자이크 진화와 점진적 진화를 증명한다. 많은 쟁점이 아직 미해결 상태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확실히 기록되어 있다. 바로, 오늘날 인류는 유인원과 유사한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


왜 이런 변화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제공하는 이점은 무엇인지는 많은 추정이 필요하지만, 증거는 매우 적다 [Lovejoy 1981; Fedigan 1986]. 현재 존재하는 증거는 간접적이며, 다른 영장류, 오늘날의 문화 그리고 해부학과 유물을 연구해서 얻은 추론으로 대부분 이루어졌다.


직립자세와 이족보행은 인간의 조건으로 향하는 첫째로 중대한 기록된 변화이다. 이에 대한 그럴듯한 가설은 이족보행이 손을 자유롭게 해서 음식을 사회적 단위, 특히 개체의 배우자와 자손에게 음식을 건넬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음식 공유는 모처가족(matrilocal family, 母處家族)와 “우정” 등을 포함한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진 침팬지에서도 나타난다. 침팬지 또한 견과류를 깰 때 사용하는 돌과 나무 망치와 흰개미 둥지에서 개미를 낚는데 사용하는 잔가지 같은 다양한 단순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 더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더 큰 지성과 뇌 크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윈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는 양육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다른 집단 구성원과의 협력적 연락을 형성하고, 사회적 교환에서 사기꾼을 가려내고, 집단 내 또는 집단 사이에서 자원에 대해 경쟁하는 것과 같은 사회 작용이 지능, 학습 그리고 의사소통에 선택적 이점을 부여했고, 따라서 더 높은 지능과 더 큰 뇌를 선택하게 했음을 강조했다.


4.4 계통과 화석기록


현존하는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를 추론할 때 우리는 특정 분류군이 다른 것보다 가장 최근 공통조상을 공유한다고 결론 내린다. 만일 그러한 진술이 옳다면 계통분석으로 추론한 분류군 기원의 상대적 시기와 화석기록에 나타난 이들 분류군의 상대적 출현 시기 사이에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화석기록의 불완전함 때문에 이러한 일치가 불완전하다고 예상할 수 있는데, 먼 과거에 기원한 어떤 분류군이 단지 최근 퇴적층에서만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혈통이 초기에 분지해 떨어져 나갔지만, 먼 훗날까지도 이들 사이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형질을 획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단궁류 분기군은 다른 파충류에서 분기하고 나서 훨씬 이후까지도 포유류의 특징적 형질을 획득하지 않았다.



그림 4.15 돌좀목(order Archaeognatha)의 현존하는 좀벌레. 현존하는 곤충 목 가운데 좀벌레는 조상 절지동물류의 걷는 다리에서 파생한 배마디의 배쪽 면에 나 있는 흔적 다리 같은 가장 원시적인 특징을 가진다. [After CSIRO 1991.]



그럼에도, 계통 분지 순서와 화석기록에서 이들 분류군이 출현하는 순서는 전체적으로 매우 일치한다. 단지 현생종을 계통분석함으로써 우리는 포유류의 서로 다른 목의 공통조상, 포유류와 “파충류”의 공통조상, 이들 분류군과 양서류의 공통조상, 그리고 모든 사지동물류와 [육기아강(subclass Sarcopterygii, 肉鰭亞綱)의 구성원인] 육기어류의 공통조상이 순서대로 더 오래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들 분류군이 화석기록에 출현하는 순서는 계통과 잘 들어맞는다. 이러한 놀라운 일치의 예가 바로 조상 곤충의 기본 “신체 설계”를 대표한다고 오랫동안 간주된 날개 없는 곤충인 돌좀목(order Archaeognatha)의 구성원인 좀벌레(bristletail)다 [그림 4.15]. 최근에 화석 좀벌레가 데본기 초기 퇴적층에서 발견됐다. 이것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 곤충으로 좀벌레는 다른 곤충 목보다 계통적으로 훨씬 기본형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계통관계는 멸종한 종에서 얻은 정보로 종종 명료해질 수 있다 [Donoghue et al. 1989]. 일부 형질은 많이 변형되어 있어서 진화적 변형을 추적하거나 심지어 상동을 결정하기조차도 어렵다. 화석은 중요한 잃어버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몇몇 연구자는 포유류와 조류가 자매 분류군이라고 가정했지만, 포유류를 닮은 파충류와 공룡을 닮은 조류의 화석기록으로 이러한 가정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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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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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화석기록


어떤 지역에서는 화석기록의 일부 단편으로 자세한 진화 역사를 알 수 있으며, 딱딱한 껍질을 가진 풍부한 플랑크톤성 원생생물(原生生物) 같은 생물군 일부는 예외적으로 좋은 화석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화석기록은 대체로 매우 불완전하다 [Jablonski et al. 1986]. 결과적으로 많은 종과 상위 분류군의 기원은 [화석으로] 잘 기록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그러한 기원을 발견할 가능성도 매우 낮아서 유익한 기록을 얻기 위해서는 어쨌든 운이 좋아야 한다.


그러한 기록이 드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연약하거나, 단단한 부분이 없거나, 부패가 빨리 일어나는 습한 삼림 같은 환경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좀처럼 화석화되기 어려운 종이 많이 있다. 둘째, 퇴적층은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아주 가끔 형성되므로 전형적으로 이 퇴적층에는 그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서식했던 종 가운데 일부만 포함된다. 셋째, 화석이 발견되려면 화석을 포함한 퇴적물은 먼저 바위로 굳어져야 하며, 이 바위는 침식, 변성 또는 섭입을 겪지 않고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야 하며, 나중에 노출되어 고생물학자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진화적 변화가 해당 시기에 형성된 지층이 있는 일부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그 지역 이외 어딘가에서 새로운 특성을 진화시킨 어떤 종이 그 지역으로 이주하고 난 다음, 완전히 형성된 그 지역의 화석기록에 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 2만 5천 개의 연구된 화석 종은 과거에 살았던 종의 1%도 대표하지 못한다. (1) 많은 지질학적 시기가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단지 소수의 퇴적층으로만 대표되고, (2) 많은 혈통이 매우 긴 시기에 걸쳐 존재했을지라도 단지 매우 폭넓게 구분된 [지질학적] 시간 간격에서만 대표될 뿐이며, (3) 멸종한 거대하고 눈에 잘 띄는 멸종한 생명체의 종(種)만 단지 하나 또는 소수 표본으로 알려지고, (4) 새로운 화석 분류군이 꾸준한 속도로 발견되는 이유를 근거로 우리는 화석기록이 매우 불완전함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많은 생명체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우리가 화석기록에 묻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 두 가지는, 첫째, 그것이 변형된 유래라는 진화적 변화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가, 둘째, 다윈이 제안한 것처럼 진화는 점진적인가이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예에서 나타나듯이 명백히 “그렇다”이다. 그러나 화석기록이 점진적 변화에 대한 많은 예를 제시한다고 해도, 우리는 어떤 특성이 광범위한 불연속적 변화로 진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2.1 종 내에서의 진화적 변화



그림 4.3 여덟 혈통의 삼엽충류에서 늑골의 평균 개수 변화. 불규칙적이지만 대체적으로 점진적인 변화가 대부분 혈통에서 보인다. [After Sheldon 1987.]



상세하고 연속적인 퇴적층 기록은 단지 짧은 지질학적 시간 범위 동안만 있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 기록 가운데 일부는 하나의 진화하고 있는 혈통, 즉 단일 종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역사를 보존해왔다. 그러한 많은 경우에서 형질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Levinton 2001]. 예를 들어,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period)의 삼엽충류 여덟 혈통은 외골격의 등 뒷부분에 있는 늑골 수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림 4.3; Sheldon 1987].



그림 4.4 Gasterosteus doryssus라는 큰가시고기 화석에서 나타나는 형질의 평균치 변화. 다섯 가지 형질 가운데 등지느러미줄(dorsal fin ray) 수[그림에서 (A)]를 포함한 세 가지 형질에서 독립적이며 점진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척주(dorsal spine, 脊柱)의 개수[그림에서 (B)]는 갑작스러운 값의 변화를 나타내는 두 형질 가운데 하나다. 값은 11만 년의 기간을 5천 년 간격으로 나눠 표시이다. [After Bell et al. 1985; photo courtesy of M. Bell.]



마이클 벨(Michael Bell)과 그의 동료는 11만 년 동안 해마다 쌓인 층에서 발견된 큰가시고기의 일종인 Gasterosteus doryssus의 중신세(Miocene epoch, 中新世) 화석을 매우 상세히 연구했다 [Bell et al. 1985]. 그들은 평균 5천 년 단위로 나눈 층에서 표본을 채취했다. 그들이 연구한 형질 가운데 세 가지가 대체로 독립적이며 점진적으로 변했다 [그림 4.4A]. 이들 형질 가운데 두 가지가 또한 어느 한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 개체군의 멸종, 그리고 명백히 다른 종인 서로 다른 형질을 가진 새로운 개체군의 유입으로 발생했다 [그림 4.4B]. 표본 사이의 5천 년 간격은 정상적인 인간 기준으로는 긴 시간이지만, 지질시대 기준으로는 몹시 세밀한 척도다.


4.2.2 상위 분류군의 기원


이 절에서는 지질시대의 오랜 기간 동안 나타난 상위 분류군의 기원과 같은 몇 가지 대진화적 변화 사례가 소개된다. 이러한 예는 2장에서 소개한 상동, 기능에 따른 구조의 변화, 모자이크 진화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설명한다. 게다가, 이러한 예시는 화석기록이 대진화를 기록할 수 없다는 반진화론자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예로 그 주장을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림 4.5 화석은 진화가설을 확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A) 호박 안에서 화석화된 Sphecomyrma freyi는 오늘날 개미와 개미의 기원이라고 생각되는 말벌 사이의 틈을 잇는 백악기 중기의 개미다. (B) 스페코미르마(Sphecomyrma)의 형질과 일치하는 이전에 가정된 개미 조상의 형질. [A courtesy of E. O. Wilson; B after Wilson et al. 1967.] *


* [용어설명] extrusible sting, 사출 가능한 침; metapleural gland, 후늑막분비선(後肋膜分泌腺); double tibial spurs, 이중 경골돌기(二重硬骨突起); tarsal claws toothed, 톱니 모양의 발톱; tripartite trunk, 세 분절의 몸통.



일부 사례를 보면 시간에 따른 일련의 분류군에서 많은 형질의 변화가 있었음이 나타난다. 다른 사례에서는 오직 하나 또는 소수의 핵심적인 중간형태만 존재한다. 그러한 경우라도 조상형질상태와 파생형질상태에 대한 계통적 이해를 근거로 몇몇 중요한 형질은 예측 가능하므로, 심지어 화석이 발견되기 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중간화석을 분류군의 기원에서 전이단계로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윌슨(E. O. Wilson), 카펜터(F. M. Carpenter), 브라운(W. L. Brown) 등은 현존하는 개미의 원시 종(種) 및 이들과 계통적으로 연관된 말벌 과(科)를 비교한 것에 기초하여 개미의 조상이 어떤 형질을 가졌어야 했는지를 가정했다. 그들의 가설이 발표된 후 몇 년 뒤에 이전에 알려진 화석 개미보다도 더 오래된 백악기의 개미가 호박 안에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화석 개미의 모든 형질은 예측된 형질과 맞아떨어졌다 [그림 4.5].


양서류의 기원. 육기아강(subclass Sarcopterygii, 肉鰭亞綱) 또는 총기어류(lob-finned fishes, 總鰭漁類)는 약 4억 8백만 년 전인 데본기(Devonian period) 초기에 출현했다. 여기에는 리피디스티아(Rhipidistia) 같은 멸종한 생물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일부 생명체인 폐어와 실러캔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림 4.6A~C]. 리피디스티아류는 몇 개의 큰 뼈로 골격을 이루는 두툼한 쌍지느러미뿐만 아니라 꼬리지느러미를 가졌다 [그림 4.6A]. 두개(頭蓋)는 두 개의 움직일 수 있는 단위로 구성되며 측선관(側線管)을 가진 진피골(眞皮骨)로 둘러싸였다 [그림 4.6C]. 몇몇 두개골 뼈와 아래턱을 이루는 몇 개의 뼈에서 솟아난 이빨은 독특한 내부 구조를 가졌다. 리피디스티아류는 아가미와 폐를 모두 가졌다.



그림 4.6 (A~C) 사지동물류의 기원인 총기어류 [또는 리피디스티아류] 분류군의 구성원인 유스테노프테론(Eusthenopteron). (A) 골격과 재구성된 윤곽. (B) 배지느러미(pelvic fin)와 골반대(pelvic girdle, 骨盤帶)의 골격. (C) 두개골 배면도. 점선은 측선계(側線系)와 연관된 관(canal, 管)이다. (D~F) 데본기 미치양서류(labyrinthodont amphibians, 迷齒兩棲類)인 익티오스테가(Ichthyostega). [그림 (E)에서] 이 양서류의 다리와 골반대가 잘 발달하였더라도, [그림 (F)에 나와 있는] 두개골 특징과 같은 많은 형질이 리피디스티아류와 매우 비슷하다. 익티오스테가의 주둥이가 상대적으로 더 길며, [그림 (C)에서 “o”로 표기한 뼈처럼] 리피디스티아의 덮개뼈(opercular bone 또는 operculum) 대부분이 이 양서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두 동물의 두개골은 매우 비슷하다. 비교를 위해 표시된 뼈는 다음과 같다: j, 광대뼈; l, 눈물뼈; o, 덮개뼈; p, 마루뼈; pm, 앞위턱뼈; po, 후안와뼈(後眼窩-); pp, 뒷마루뼈; prf, 앞이마뼈; qj, 방협골(方頰骨); sq, 측두린(squamosal, 側頭鱗); st, 위관자뼈; t, 판상골(tabular 또는 osspleniale, 板狀骨). [A, B after Andrews and Westoll 1970; C after Moy-Thomas and Miles 1971; D after Jarvik 1955; E after Coates and Clack 1990; F after Jarvik 1980.] *


* [용어설명] radial, 방사골(放射骨); pelvic girdle, 골반대(骨盤帶); pectoral girdle, 흉대(胸帶); intermedium, 중간골(中間骨); fibula, 종아리뼈; femur, 넓적다리뼈; tibia, 정강이뼈; fibulare, 비부골(腓附骨).



데본기 후기 무렵의 그린란드(Greenland)에서 출현한 최초의 거의 완벽한 양서류는 [예를 들어, 그림 4.6D~F의 익티오스테가(Ichthyostega) 같은] 익티오스테가류다. 거의 모든 면에서 이 동물은 꼬리지느러미, 두개, 진피성 두개골의 뼈와 측선관(側線管), 이빨의 구조와 분포 등에서 리피디스티아류와 같은 형질을 가졌다. 주요 차이점은 이들 양서류가 더 큰 흉대와 골반대를 가졌으며 [그림 4.6A4.6E 비교], 충분히 발달한 사지동물의 팔다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익티오스테가류의 몸쪽 사지뼈는 리피디스티아류와 직접적으로 상동이며 형태가 비슷하지만 [그림 4.6A4.6E를 비교], 거의 완벽한 손발가락을 가졌다. 익티오스테가류는 수상생활을 했으며, 다섯 개 이하의 손발가락을 가진 거의 모든 후기 사지 척추동물류와는 달리 다양하고 더 많은 손발가락을 가졌다 [Clack 2000a]. 익티오스테가류와 후기 양서류를 연결하며 땅 위를 걷는 데 더 적응한 다섯 발가락의 발을 가진 육상 생명체가 익티오스테가류가 발견된 퇴적층보다 약 1천3백만 년 더 늦은 퇴적층에서 발견되었다 [Clack 2000b]. 익티오스테가류는 [양서강(class Amphibia, 兩棲綱)과 사지동물상강(superclass Tetrapoda, 四肢動物上綱) 또는 네 다리를 가진 포유동물 같은] 주요 상위 분류군의 기원에 관한 매우 좋은 예를 제공한다. 리피디스티아류에서 익티오스테가류로의 전환은 [두개골과 이빨보다 더 빨리 진화한 팔다리 같은] 모자이크 진화와 [이 동물의 다리가 총기어류와 후기 양서류의 중간형태라는 점에서] 개별 형질의 점진적 변화로 두드러진다.


조류의 기원. 오늘날에는 조류의 기원을 연구한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조류가 공룡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얼마 전에도 [최근까지 조류강에 놓였던] 조류는 깃털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놀라운 많은 화석 때문에 조류와 공룡 사이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Chiappe and Dyke 2002; Xu et al. 2003].



그림 4.7 깃털 달린 공룡에서 조류로. (A) 약 1억 4천 년 전 백악기 초기에 살았던 깃털 달린 공룡인 Microraptor gui. 이 표본은 공룡 조상에서 조류로의 진화에 관한 우리의 지식 확장에 최근 지대한 도움이 된 중국의 화석 동물상에서 발굴했다. 앞다리와 뒷다리 뒤쪽의 긴 깃털에 주목하라. (B) 날개 깃털과 양쪽의 깃털 달린 긴 꼬리를 가진 조류의 초기 예로 잘 보존된 시조새 표본인 Archaeopteryx lithographica. 이 화석은 독일에서 발굴되었다. [A from X. Xu et al. 2003; B photo © Tom Stack/Painet, Inc.]



그림 4.8 (A) 아케오프테릭스, (B) [비둘기 같은] 현대 조류, (C) 수각류 공룡인 데이노니쿠스(Deinonychus)의 골격 특징. 아케오프테릭스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의 새는 (1) 융합된 뼈로 이루어진 확장된 두개(頭蓋), (2) 손의 손가락이 융합해서 세 손가락으로 감소, (3) 골반뼈와 척추뼈가 단일 구조로 융합, (4) 꼬리 척추뼈가 감소하고 몇몇은 융합함, (5) 매우 확장된 용골형 가슴뼈(keeled sternum, 龍骨型-), 그리고 (6) 흉곽(胸廓)을 튼튼하게 지지하는 수평돌기(水平突起)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수각류 공룡은 아케오프테릭스와 많은 형질을 공유하는데, 아마도 다리 구조가 이 그림에서는 가장 분명할 것이다. [A, B after Colbert 1980; C after Ostrom 1976.]



그림 4.9 아케오프테릭스와 후기 조류 사이의 가설관계 그리고 [연속적으로 파생된 분기군의 숫자와 이름으로 표시된] 파생형질 일부의 기원을 나타낸 수각류 공룡 일부 분류군의 계통. (1) 수각아목의 속이 텅 빈 긴 뼈, 세 발가락 손, 위로 올라간 첫 번째 발가락; (2) 네오테타누래(Neotetanurae)의 초승달 모양 손목뼈; (3) 실루로사우리아(Coelurosauria)의 확장된 가슴뼈; (4) 실루로사우루스류인 시노사우로프테릭스(Sinosauropteryx)의 작은 외피 깃털 [열린 원으로 표시]; (5) 일부 마니랍토라(Maniraptora)에서 나타나는 날개형 깃털; (6) 4날개를 가진 Microraptor gui와 같은 드로매오사우루스류(dromaeosaurs)를 포함한 파라베스(Paraves)의 발에 있는 낫 모양의 발톱; (7) 아케오프테릭스와 같은 조류의 마주 잡을 수 있는 [첫 번째] 뒷발가락; (8) 더욱 “발전된” 조류인 오르니투래(Ornithurae)의 융합된 척추가 있는 짧은 꼬리. (9) “진정한” 조류인 유오르니테스(Euornithes)의 가슴 용골(breast keel)과 이빨 및 발톱의 최종 소실. 두꺼운 선은 화석기록이 풍부함을 뜻한다. [After Sereno 1999; Chiappe and Dyke 2002; Prum 2003.]



역대 가장 유명한 비소실 고리(non-missing link) 가운데 하나로 최초로 발견된 중간형태는 시조새로 알려진 아케오프테릭스(Archaeopteryx)로 독일의 상부 쥐라기 층(Upper Jurassic strata)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4.7B]. 아케오프테릭스는 비행에 적합한 오늘날 조류 골격의 많은 변형 가운데 단지 일부만을 가졌다 [그림 4.8A4.8B]. 대신, 이 동물은 비행이 가능한 깃털을 가진 소형 수각류 공룡을 매우 많이 닮았다 [그림 4.8C].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화석에는 몸이 작은 깃털로 뒤덮인 수각류 공룡인 시노사우로프테릭스(Sinosauropteryx), 손과 꼬리에 길고 [비행을 위한?] 넓은 깃털을 가진 코디프테릭스(Caudipteryx), 그리고 팔다리에 날개깃을 가진 기이한 4날개 공룡인 Microraptor gui가 포함되어 있다 [그림 4.7A]. 아케오프테릭스와 조류의 독특한 공유파생형질은 더 이상 깃털이 아니라 단지 이들의 마주 보는 뒷발가락이다 [그림 4.9의 7]! 속이 텅 빈 사지뼈처럼 오늘날 조류의 깃털 일부는 아케오프테릭스가 출현하기 오래전에 수각류에서 진화했으며 [그림 4.9의 1], 꼬리 척추뼈의 융합 같은 다른 형질은 [그림 4.9의 8에 나와 있는 콘푸키우소르니스(Confuciusornis)처럼] 나중에 진화했다. 나중에, 조류의 한 아군(subgroup, 亞群)에서 현생 조류의 전형인 용골형 가슴뼈, 이빨의 소실, [그림 4.9의 9처럼] 손에서 발톱이 소실한 것과 같은 형질이 진화했다.


수각류의 속이 텅 빈 뼈나 [아마도 깃털에 단열(斷熱) 기능이 있더라도] 시노사우로프테릭스의 몸 깃털이 적응 기능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히 이들 깃털은 변형된 형태에서 나중에 비행에 유용하게 되었다. [속이 빈 뼈는 하중을 줄이며 일부 깃털은 날개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형질은 기능의 진화적 변화와 훗날 우연히 다른 유용한 역할을 하게 된 형질의 획득이라는 “전적응”(前適應)의 예를 제공한다 [11장 참조].


포유류의 기원. 가장 초기의 양막류로부터 포유류의 출현은 주요 분류군의 진화에서 가장 충분히 화석으로 기록된 예 가운데 하나다 [그림 2.4 참조; Kemp 1982; Sidor and Hopson 1998]. 비록 털과 젖샘 같은 현존하는 포유류의 일부 형질이 화석화되지 않더라도, 포유류는 확인 가능한 골격 특징을 가진다. 예를 들어, 파충류의 아래턱은 몇 개의 뼈로 이루어졌지만, 포유류의 턱은 치골(齒骨)이라는 한 개의 뼈로만 이루어졌다. 수궁류 공룡의 턱관절이 관절뼈와 방형골(方形骨) 사이에 있는 것과는 달리, [가장 초기의 포유류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포유류의 초창기 턱관절은 치골과 측두린골(側頭鱗骨) 사이에 존재한다. 초기 양막류는 소리를 전달하는 하나의 등자뼈를 가졌지만, 포유류는 중이(中耳)에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 이렇게 세 개를 가진다. 사지동물류 대부분은 뾰족돌기가 하나 있는 가지런한 이빨을 가졌지만, 포유류의 이빨은 앞니, 송곳니 그리고 뾰족돌기가 여럿 난 작은 어금니와 어금니로 분화되었다. 대부분의 포유류와 파충류를 구별 짓는 다른 형질에는 확장된 두개, 눈구멍 뒤쪽의 확장된 측두창(側頭窓), 그리고 구강(口腔)과 호흡 통로를 나누는 2차구개(二次口蓋)가 있다.



그림 4.10 초기 단궁류에서 초기 포유류로 진화하는 일부 단계에서 나타나는 두개골. (A) 반룡(pelycosaur, 盤龍)인 합토두스(Haptodus). 측두창[f], 아래턱의 많은 뼈, 뾰족돌기가 하나 있는 이빨, 그리고 관절뼈/방협골[art/q]의 턱관절에 주목하라. (B) 초기 수궁류인 비아르모수쿠스(Biarmosuchus). 확장된 측두창에 주목하라. (C) 초기 견치동물(cynodont, 犬齒動物)인 프로시노수쿠스(Procynosuchus). 두개(頭蓋)의 세로 방향 쪽과 광대뼈[j]와 측두린[sq]에 의해 형성된 외측궁(lateral arch, 外側弓) 사이에서 측두창이 공간을 형성한다. 확장된 치골[d]에 주목하라. (D)후기 견치동물인 트리낙소돈(Thrinaxodon). 뾰족돌기가 여러 군데 있는 뒤쪽 어금니, 커다란 위아래 송곳니, 강한 턱 근육이 붙어 있으며 수직으로 매우 확장된 치골에 주목하라. (E) 진보한 견치동물인 프로바이노그나투스(Probainognathus). 어금니에 뾰족돌기가 여러 군데 있으며, 아래턱은 관절뼈[art], 각하골(surangular, 角下骨)[sa] 그리고 치골의 후부돌기에 의해 측두린과 연결됐다. (F) 모르가누코돈(Morganucodon)은 거의 포유류다. [안쪽의 뾰족돌기를 포함해] 뾰족돌기가 여러 군데 난 어금니와 치골 관절구(dentary condyle, 齒骨關節丘)[dc]와 측두린[sq]을 관절로 잇는 아래턱의 이중 관절에 주목하라. [After Futuyma 1995; based on Carroll 1988 and various sources.] *


* [용어설명] single-cusped (single-point) teeth, 뾰족돌기가 하나 있는 이빨; maxilla bone, 턱뼈; braincase, 두개(頭蓋); temporal fenestra, 측두창(側頭窓), dentary, 치골(齒骨); cusp, 뾰족돌기; squamosal, 측두린(側頭鱗); articulation, 관절(關節).



첫 양막류가 석탄기(Carboniferous period, 石炭紀) 때 출현한 이후 곧바로 눈구멍 뒤쪽의 열린 측두창을 특징으로 하는 분류군인 단궁강(class Synapsida, 單弓綱)이 출현했는데, 이 해부적 구조는 수축할 때 확장된 턱 근육이 확대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림 4.10A]. 측두창은 후기 단궁류(synapsids, 單弓類)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그림 4.10B~D].


수궁목(order Therapsida, 獸弓目)인 페름기(Permian period) 단궁류는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며 [그림 4.10] 구개(口蓋) 중앙이 오목하게 들어갔는데, 이것은 호흡 통로가 부분적으로 구강과 분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뒷다리는 파충류보다는 포유류와 비슷하게 다소 수직으로 되어 있다.


페름기 후기에서 삼첩기(Triassic period, 三疊紀) 후기까지 살았던 견치수궁류(cynodont therapsids, 犬齒獸弓類)는 포유류의 몇 단계를 대표한다. 두개골 뒤쪽은 눌려있어서 개와 비슷한 외모가 되었으며 [그림 4.10C4.10D], 치골은 아래턱의 다른 뼈보다 상대적으로 확장되었고, 어금니의 뾰족돌기가 하나의 열을 이뤘으며, 경골성 판(bony shelf, 硬骨性板)이 일부 견치류에서는 불완전했지만 다른 견치류에서는 완전한 2차구개를 형성했다. 방형골은 이전 형태보다 더 작고 더 느슨했으며 측두린의 구멍에 있었다.


삼첩기 중기와 후기에 살았던 진보된 견치류에서 어금니의 뾰족돌기가 일렬로 배열했을 뿐만 아니라, 어금니의 안쪽에도 뾰족돌기가 있었다 [그림 4.10E]. 이것은 포유류 어금니에 복잡한 뾰족돌기 양식 역사의 시작이었으며, 이러한 어금니는 서로 다른 혈통에서 서로 다른 먹이를 씹도록 변형되었다. 아래턱에서는 두개골이 예전의 관절뼈/방형골과 관절로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치골과 측두린 사이도 관절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조상 조건과 포유류 상태 사이의 중요한 변이를 알리는 전조다.


삼첩기 후기와 쥐라기(Jurassic period) 초기에 걸쳐 살았던 모르가누코돈(Morganucodon)은 이빨은 전형적인 포유류였다 [그림 4.10F]. 모르가누코돈은 약한 관절뼈/방형골 경첩 그리고 치골과 측두린 사이의 충분히 발달된 포유류 관절을 가진다. 관절뼈와 방형골은 귀 쪽으로 함입해 등자뼈와 함께 내이(內耳)로 소리를 전달하는 오늘날 포유류의 조건에 매우 근접했다.


쥐라기 초기의 화석으로 최근에 연구된 하드로코디움(Hadrocodium)은 모르가누코돈에서 포유류기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Luo et al. 2001]. 이 아주 작은 동물은 모르가누코돈과 매우 비슷하지만, 관절뼈와 방형골이 턱관절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중이에 박혔으며, 아래턱은 완전히 치골로만 구성되었다. 하드로코디움은 계통적으로 약 4천5백만 년 전 쥐라기 후기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포유류의 진정한 자매군이다.


따라서 화석기록은 [예를 들어, 자세, 이빨의 분화, 턱 근육조직과 관련된 두개골 변화, 2차구개, 중이골이 되는 요소의 감소 같은] 가장 포유류적인 형질이 점진적으로 진화했음을 나타낸다. 진화는 서로 다른 형질이 다른 속도로 “발전하는” 모자이크식이다. 어떤 새로운 뼈도 무(無)에서 진화하지 않았으며, 포유류의 모든 뼈는 “파충류” 기반군의 뼈에서 [결국, 양서류와 심지어 총기어류의 뼈에서] 변형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관절뼈와 방형골로 이것들은 다른 사지동물류에서 턱관절 역할을 하지만, 포유류에서는 소리를 전달하는 중이골이 되었다. 지난 1억 3천만 년 동안 단궁류는 점진적으로 포유류로 진화했으므로, 포유류를 인식할 수 있는 구분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포유강”(class Mammalia)의 정의는 임의적이다.


고래목의 기원. 전통적으로 고래목(order Cetacea)으로 분류되는 고래류와 돌고래류는 육상 조상에서 진화했다. 현존하는 포유류 가운데 이들과 가장 가까운 근연종은 분자 계통분석에 근거했을 때 하마로 나타난다 [Gatesy et al. 1999]. 따라서 고래류(cetacean)는 낙타, 돼지 그리고 소와 영양과 같은 반추동물류(ruminants, 反芻動物類)과 함께 짝수 발가락의 말굽을 가진 우제목(order Artiodactyla, 偶蹄目)에 포함된다.


기본적인 포유류와 비교할 때 현존하는 고래류는 수상생활에 대한 적응 때문에 매우 엄청나게 변형되었다. 모든 고래류는 귀를 감싸는 독특한 모양의 고실 소골(鼓室小骨), 두개골 위 맨 뒤쪽에 있는 콧구멍, 노(櫓) 모양의 지느러미발 안에 감싸진 뻣뻣한 팔꿈치와 손목 그리고 손가락 관절, 척주(脊柱)와 분리되었으며 [종종 뒷다리 흔적 기관과 연관된] 흔적 골반, 그리고 융합되고 분화된 [등 아래에 있는] 육상 포유류의 천추골(薦椎骨)이 없다는 점 등을 공유한다. 이빨고래의 경우에는 지방으로 된 소리 전달판이 있는 아래턱뼈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



그림 4.11 육상 우제류 조상으로부터 고래류의 진화 단계 재구성. (A) 하마를 닮은 점신세(Oligocene epoch, 漸新世)의 우제류인 엘로메릭스(Elomeryx)는 고래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는 조상 분류군을 대표한다. (B) 양서류인 암불로세투스(Ambulocetus). (C) 시신세 중기의 프로토세투스류인 로도세투스(Rodhocetus)는 독특한 우제류의 발목뼈를 가졌지만, 상당히 많은 고래 형질을 가졌다. (D) 시신세 중기와 후기 사이에 번성했던 도루돈(Dorudon)은 기능을 하지 않은 골반과 뒷다리가 오늘날 고래류보다는 더 컸지만, 오늘날 고래류의 형질 대부분을 가졌다. (E) 쥐돌고래(harbor porpoise)라고도 불리는 오늘날 생존해 있는 이빨고래인 Phocoena phocoena. 분수공(噴水孔)을 형성하는 콧구멍은 머리 위 훨씬 뒤쪽으로 후퇴했는데, 이것은 고래 두개골이 특별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A~D after Gingerich 2003 and de Muizon 2001; E art by Nancy Haver.]



필립 징거리치(Philip Gingerich), 한스 테위센(J. G. M. Hans Thewissen), 그리고 이들의 동료는 최근에 파키스탄에서 약 5천만 년부터 3천5백만 년 전까지 동안 살았던 고래류의 진화 역사를 밝혔던 시신세(Eocene epoch, 始新世) 화석을 다량 발견했다 [그림 4.11; Gingerich et al. 2001; Thewissen and Bajpai 2001; Thewissen and Williams 2002]. 이들 가운데 [5천3백만~4천8백만 년 전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파키세투스(Pakicetus)는 고래류만의 독특한 고실 소골을 가진 [아마도 물가에서 살았던] 육상동물이었다. [4천8백만~4천7백만 년 전에 살았던] 좀 더 최근의 암불로세투스(Ambulocetus)은 얕은 연안수(沿岸水) 생활에 적응했다. 이 동물은 뒷다리가 짧지만, 작은 발굽의 분리된 발가락이 있는 큰 발을 가졌다. 하악공(下顎孔)은 파키세투스류보다 컸으며, 점점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암불로세투스는 긴 턱과 다소 줄어든 돌출돌기가 있는 이빨을 가진 포식자였다. [예를 들어, 로도세투스(Rodhocetus)처럼] 4천9백만~3천9백만 년 전에 살았던 [프로토세티데과(family Protocetidae)의] 프로토세투스류는 천추골 사이의 융합이 줄어들었고, 이빨 형태는 더 단순해졌으며, 콧구멍은 주둥이 끝으로부터 훨씬 더 뒤쪽에 있었다. 프로토세투스류는 우제류의 복사뼈와 함께 발가락 끝의 작은 발굽을 가졌지만, 일부 수생 프로토세투스류의 골반과 뒷다리는 너무 작고 약해서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다. 수상생활에 대한 완전한 적응은 약 3천5백만 년 전에 살았던 도루돈류에 속하는 [바실로사우리데과(family Basilosauridae)의] 바실로사우루스류에서 나타나는데, 이빨이 훨씬 더 단순해졌고, 콧구멍은 더 뒤로 후퇴했으며, 앞다리는 잘 구부러지지 않는 손목과 팔꿈치를 가진 노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골반과 뒷다리는 기능이 완전히 사라졌다. 작은 골반은 척주와 분리되었고 뒷발과 뒷다리는 몸 표면에 간신히 튀어나온 형태였다. 도루돈류는 아마도 [고래의 갈라진 꼬리 같은] 수평 꼬리지느러미를 가졌으며 진실로 오늘날 고래류에서 한 발짝 물러선 단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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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2)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3)
[번역] 『Evolution』 Ch. 4. 화석기록에 나타난 진화 - (4)



그림 4.0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의 유골. “루시”(Lucy)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유명한 표본은 유달리 완전하다. 루시 같은 화석을 연구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사람 혈통의 진화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 [Photo ©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일부 진화 역사는 현존하는 생명체로부터 추론할 수 있지만, 오직 화석기록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만이 진화 역사의 직접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양한 현존하는 영장류 해부 구조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관찰하고,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으며, 이러한 관찰을 통해 사람 혈통에서 발생했던 변화를 추정할 수 있지만, 사람 또는 호미닌(hominin) 혈통이 대형 유인원 혈통에서 분기한 진화 역사의 세부사항을 기록하기 위해 화석을 연구해왔다. *


* 호미닌, 호미니드, 호미노이드, 호미나인과 같은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는 2장에서 이미 살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앞으로 사람족(tribe Hominini)의 구성원은 호미닌(hominin), 사람과(family Hominidae)의 구성원은 호미니드(hominid), 사람상과(superfamily Hominoidea)의 구성원은 호미노이드(hominoid), 사람아과(subfamily Homininae)의 구성원은 호미나인(hominine)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화석기록은 현존하는 후손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생명체의 존재, 멸종과 다양화에 관한 위대한 일화, 그리고 대륙과 생명체의 이동이 어떻게 이들의 현재 분포를 있게 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오직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만 생명체가 출현하는 환경 조건에 대한 증거뿐만 아니라 진화적 사건에 대한 절대 시간 척도(絶對時間尺度)를 얻을 수 있다.


화석기록은 특히 중요한 두 가지 주제, 즉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특정 혈통의 표현형 변형과 생물다양성의 변화에 관한 증거를 제공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가 이 장의 주요 주제다.


4.1 지질학의 기본 원칙


4.1.1 암석 형성


지표면의 암석은 지구 내부 깊숙한 곳에서 분출되는 마그마(magma)라 불리는 용융 물질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분출물 일부는 화산을 거쳐 발생하지만, 암석 대부분은 새로운 지각이 중앙 해령(mid-oceanic ridge, 中央海嶺)에서 형성되는 동안 발생한다 [그림 4.1 참조]. 이렇게 만들어진 암석을 [“from fire”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인] 화성암(igneous rock, 火成巖)이라고 한다. [“settle” 또는 “sink”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인] 퇴적암(sedimentary rock, 堆積岩)은 대개 더 오래된 암석의 분해 또는 물에 녹아 있는 무기물의 침전으로 형성되는 퇴적물의 퇴적과 응고로 만들어진다.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이들 화성암과 퇴적암은 변형되어 [“changed form”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인] 변성암(metamorphic rock, 變成岩)이 된다.


화석 대부분은 퇴적암에서 발견되고, 화성암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변성암에서는 보통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다. 일부 화석은 다른 상황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곤충이 [화석화된 식물성 수지(樹脂)인] 호박(琥珀)에서 발견되며, 일부 매머드는 빙하기 때 형성된 만년설에서 언 채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림 4.1 판 구조 형성 과정. 중앙 해령에서 마그마 분출로 새로운 암석권이 형성되며 기존의 판은 양옆으로 밀린다. 움직이는 암석권의 판이 서로 만날 때, 섭입 해구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지진과 조산 운동이 자주 일어난다. 더불어, 섭입으로 발생한 열은 암석권을 녹여 화산 활동을 일으킨다. *


* [용어설명] lithosphere, 암석권(岩石圈); asthenosphere, 암류권(岩流圈); oceanic crust, 해양 지각(海洋地殼); continental crust, 대륙 지각(大陸地殼); subduction trench, 섭입 해구(攝入海溝).



4.1.2 판 구조론


알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가 대륙이동(大陸移動)에 대한 생각을 처음 말한 때는 1915년이었지만, 그 증거와 이론적 메커니즘의 실재(實在)를 지질학자 대부분이 확신하게 된 때는 1960년대부터였다. 이때부터 판 구조론(plate techtonics, 板構造論)이라는 이론은 지질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대륙과 해저 지각을 포함한 지구 바깥쪽 딱딱한 층인 암석권(lithosphere, 岩石圈)은 상대적으로 고밀도에 가소성(可塑性)이 큰 암류권(asthenosphere, 岩流圈) 위를 움직이는 여덟 개의 주요 판(plate, 板)과 다수의 작은 판으로 이루어졌다. 지구 핵에서 발생하는 열은 암류권 내에서 대류환(對流環)이 일어나도록 촉발한다. 대서양 바닥 아래를 경도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중앙 해령 같은 어떤 지역에서는 암류권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표면으로 솟아올라 냉각되어 넓게 퍼짐으로써 새로운 지각을 형성하는데, 이 때문에 기존 판이 옆으로 밀려난다 [그림 4.1]. 판은 연간 5~10cm의 속도로 움직인다. 두 판이 서로 만나는 부분에서 [섭입(subduction, 攝入)이라고 알려진 현상으로] 두 판 가운데 하나의 앞 끄트머리가 다른 판 아래로 밀려들어 가서 암류권과 합쳐진다. 이러한 충돌의 압력은 조산 운동(造山運動)의 주요 원인이다. 판이 마그마가 암류권으로부터 분출하는 장소인 “열점”(熱點)을 향해 천천히 움직일 때, 화산이 솟거나 대륙이 갈라질 수 있다. 동아프리카의 거대 호수가 그런 열곡(裂谷)에 위치하며, 하와이 제도는 태평양판이 열점을 향해 움직인 결과로 형성된 일련의 화산섬이다 [6장 참조].


4.1.3 지질시대


천문학자는 우주가 약 140억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big bang)로 비롯되었으며, 그 후로 중심점에서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를 축적해왔다. 지구와 태양계 나머지의 나이는 약 46억 년 정도 되었지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암석은 약 38억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생명체는 약 35억 년 전부터 존재했으며, 동물이 살았다는 첫 증거는 약 8억 년 전의 것이다 [5장 참조].


우리가 그러한 시간 범위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비유하자면, 지구 나이를 일 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첫 생명체는 3월 말에 출현했고, 최초 해양동물은 10월 말에 첫선을 보였으며,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가 다양해진 시기는 12월 26일이고, 사람과 침팬지 혈통은 12월 31일 자정이 되기 13시간 전에 분기했으며, 예수는 자정이 되기 13초 전에 태어났다.



그림 4.2 방사성 연대 측정. 모 원자(parent atom)의 소실과 딸 원자(daughter atom)의 축적은 일정한 속도로 일어난다. 각 원소의 특이적 시간 단위인 반감기 동안 남아 있는 모 원자의 절반은 딸 원자로 붕괴한다. 두 원자의 상대적 개수로 얼마나 많은 반감기가 지났는지 알 수 있다. [After Eicher 1976.]



지질학적 사건의 “절대” 연대는 종종 화성암에 형성된 무기물 안의 특정 방사성 원소의 붕괴를 측정하는 방사성 연대 측정(radiometric dating, 放射性年代測定)으로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라늄-235(U-235)가 납-207(Pb-207)로 붕괴하는 것처럼] 방사성 모 원자가 안정한 딸 원자로 붕괴하는 속도는 일정하므로, 각각의 원소는 고유한 반감기(half-life, 半減期)를 가진다. 예를 들어, U-235의 반감기는 약 7억 년으로, 매 7억 년을 주기로 U-235의 초기 양 절반이 붕괴하여 Pb-207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암석 표본에 남아 있는 모 원자 대 딸 원자의 양적 비율로 우리는 암석 연령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림 4.2]. 오직 화성암만 방사성 연대 측정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화석이 담긴 퇴적암을 [퇴적암보다 상대적으로] 최근 생성된 화성암과 더 오래된 화성암 사이에 넣음으로써 연대 측정을 해야 한다.


방사능이 발견되기 오래전에 다윈 시대 이전의 지질학자는 최근 퇴적물이 좀 더 오래된 퇴적물 위에 쌓인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퇴적암 형성의 [즉, 더 빠르냐 대 더 느리냐에 관한] 상대적 연대를 규명했다. 이렇게 다른 시기에 쌓인 퇴적물 층을 지층(stratum, 地層)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지층은 다른 특성을 나타내며 때때로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던 종의 독특한 화석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들 생명체가 살았던 시기의 특징이 된다. 그러한 증거를 이용해서 지질학자는 다른 곳에 있는 동시대 지층을 맞출 수 있다. 많은 지역에서 퇴적물의 퇴적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퇴적암은 침식되곤 하므로, 어떤 한 지역은 보통 매우 간헐적인 지질학적 기록만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지질학적 절(age, 節)이 오래될수록 화석기록은 잘 나타나지 않는데, 침식(浸蝕)과 변성(變成)으로 화석이 손상될 기회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


* [지질시대의 연대를 연구하는 학문인] 지질연대학(geochronology, 地質年代學)에서 누대(eon 또는 aeon, 累代), (era, 代), (period, 紀), (epoch, 世), (age, 節), 크로노존(chronozone)이라 부르는 단위를 [지층의 분포•상태•역사•화석 등을 연구함으로써 지층의 시공간적 관계 및 발달사를 밝히는 과학 분야인] 연대층서학(chronostratigraphy, 年代層序學)에서는 각각 누대층(eonothem, 累代層), 대층(erathem, 代層), (system, 系), (series, 統), (stage, 組), 크론(chron)이라고 부른다.


4.1.4 지질연대


지질연대(geological time scale, 地質年代)의 대부분은 다윈 시대 이전에 진화에 관한 생각을 품지 않았던 지질학자에 의해 명명되고 순서가 정해졌다 [표 4.1]. 이러한 지질학적 대와 기는 과거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기꺼이 독특한 화석 분류군에 의해서 실제로 구별된다. 대멸종 사건(mass extinction event, 大滅種事件)의 결과로 나타난 동물상(動物相) 구성의 엄청난 변화로 이들 연대 사이의 경계 대부분이 구분된다. 이러한 경계의 절대시간은 단지 근사치일 뿐이므로 더 많은 정보가 축적되면서 약간씩 수정된다. [다양한 동물의 첫 출현이 특징인] 현생누대(Phanerozoic eon, 顯生累代)는 세 개의 (era, 代)로 나뉘며, 이들 각각은(period, 紀)로 나뉜다. 우리는 이러한 구분과 신생대(Cenozoic era, 新生代)의 기를 구성하는 세(epoch, 世)를 자주 참조할 것이다. *, ** 진화를 공부하는 모든 학생은 고생대(Paleozoic era, 古生代)의 [그리고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의] 시작[인 542 Mya], 중생대(Mesozoic era, 中生代)의 [그리고 삼첩기(Triassic period, 三疊紀)의] 시작[인 251 Mya], 신생대의 [그리고 신생대 제3기(Tertiary period, 第三期)의] 시작[인 65.5 Mya], 그리고 홍적세(Pleistocene epoch, 洪積世)의 시작[인 1.8 Mya]과 같은 몇몇 중요한 지질학적 연대뿐만 아니라 대와 기의 순서를 외워야 한다. ***


* 현생누대(Phanerozoic eon, 顯生代) 이전을 보통 선캄브리아누대(Precambrian eon)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는 오래된 순서대로 크게 태고누대(Hadean eon, 太古代), 시생누대(Archean eon, 始生代) 그리고 원생누대(Proterozoic eon, 原生代)로 구분할 수 있다.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현생누대는 고생대(Paleozoic era, 古生代), 중생대(Mesozoic era, 中生代), 신생대(Cenozoic era, 新生代)의 세 대로 구분된다.

** 신생대는 제3기(Tertiary period, 第三紀)와 제4기(Quaternary period, 第四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특히 제3기는 고제3기(Paleogene period, 古第三紀)와 신제3기(Neogene period, 新第三紀)로 세분할 수 있다.

*** Mya는 “million years ago”, 즉 “백만 년 전”을, 그리고 Gya는 “billion years ago”을 나타내는 단위다.



표 4.1 지질연대 [출처] 국제 층위 도표(International Stratigraphic Chart)에서 얻은 자료 [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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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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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계통분석은 진화적 추세를 입증한다



그림 3.21 초파리과(family Drosophilidae) 자이고트리카속(Zygothrica) 디스파르 아군(subgroup dispar) 수컷 머리의 정면도. 종 사이, 그리고 프로디스파르(prodispar) 아군, 디스파르(dispar) 아군 및 엑수베란스(exuberans) 아군 사이에서 머리와 눈 형태의 단계적 변화에 주목하라. 많은 형태적 형질에 근거한 계통분석에서 지적한 대로 이러한 단계적 변화는 좁은 얼굴에서 넓은 얼굴로 변하는 계통연속(phylogenetic series, 系統連續)을 이룬다. [After Grimaldi 1987.]



진화적 추세(evolutionary trend, 進化的趨勢)라는 용어는 단일 혈통 내 또는 독립적으로 많은 혈통에서 형질이 같은 방향으로 잇따라 변화하는 것과 관련 있다. 예를 들어, 지고트리카속(Zygothrica) 초파리 내에서는 수컷 초파리의 머리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음이 계통분석을 통해 밝혀졌는데 [그림 3.21], 이것은 적어도 초파리의 세 분기군에서 일어난 진화적 변화다. 현화식물 중 많은 분류군에서는 염색체 수와 DNA 양이 증가하고, [예를 들어, 수술이나 심피에서] 꽃의 구성요소가 줄어들며, 갈라진 꽃이 합쳐진 꽃으로 변하고, 꽃이 방사대칭(放射對稱)에서 좌우대칭(左右對稱)으로 변하며, 동물 수분(動物受粉)에서 풍매 수분(風媒受粉)으로 변하고, 목질구조(木質構造)에서 초질구조(草質構造)로 변하는 경향이 독립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21장에서 진화적 추세의 유형과 원인을 분석할 것이다.


3.5 많은 분기군에서 적응방산이 나타난다



그림 3.22 갈라파고스 군도와 코코스 섬(Cocos Island)에서 서식하는 다윈의 핀치(finch)의 적응방산. 이들 종의 부리는 다양한 섭식 습성에 적응했다. [After Schluter 2000; Burns et al. 2002.]



앞장에서 살핀 대로 진화방산(evolutionary radiation, 進化放散)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계통적으로 서로 연관된 수많은 혈통이 분기하는 진화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들 혈통은 다른 생활양식을 위해 변형되기 때문에, 진화방산은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 適應放散)으로 불린다 [Schluter 2000]. 진화방산의 특성에는 보통 어느 한 방향으로 가려는 지향적 경향성이 없다. 지속적이고 지향적인 진화적 경향보다는 진화방산이 장기적 진화에서 아마도 가장 흔한 양식일 것이다.


몇 가지 적응방산이 광범위하게 연구되었으며 많은 진화생물학 서적에 인용되었다. 가장 유명한 예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서식하는 다윈의 핀치(Darwin’s finches)에서 나타나는 적응방산이다. 남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이주해 갈라파고스 군도에 정착한 단일 조상에서 유래한 이들 핀치는 부리 형태가 저마다 다른데, 이것은 먹이에 따른 적응을 보여준다. 지오스피자속(Geospiza)의 여러 종은 크기와 단단함이 저마다 다른 씨앗을 먹는다. 핀치의 다른 속으로는 나무에서 곤충을 파먹는 카마린쿠스속(Camarhynchus)과, 꿀과 벌레를 먹고 사는 체르티데아속(Certhidea), 틈 사이에 있는 곤충을 빼내기 위해 선인장 가시를 도구로 사용하는 습성을 가진 종이 있는 칵토스피자속(Cactospiza)이 있다 [그림 3.22].



그림 3.23 다른 성장형태를 나타내는 하와이 은검초 군단(alliance, 群團)의 일부 구성원. (A) [그림에 나와 있는 모습처럼] 꽃이 필 때를 제외하곤 줄기가 없는 장미 모양의 식물인 Argyroxiphium sandwicense. (B) 줄기가 있는 장미 모양 식물인 Wilkesia hobdyi. (C) 작은 관목인 Dubautia menziesii. [A, photo by Elizabeth N. Orians; B, photo by Gerald D. Carr; C, photo by Noble Procter/Photo Researchers, Inc.]



비교적 적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하와이 제도(Hawaiian Islands)로 이주했지만,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적응방산을 했다. 예를 들어, 800종 이상의 초파리과 곤충이 하와이 제도에서 발생했다. 형태와 성행동에서 이들 초파리는 전 세계에 분포해 있는 나머지 모든 초파리과 곤충을 합한 것보다 더욱 다양하다 [Carson and Kaneshiro 1976]. 많은 종이 색다른 짝짓기 행동과 관련된 특이하게 변형된 입틀, 다리, 더듬이 등을 가진다. 식물 중에는 하와이 은검초(Hawaiian silversword)와 이 식물의 근연종으로 해바라기과에 속하는 계통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된 세 가지 속은 노출된 용암석부터 습한 산림 지역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서식하며, 이들 식물의 성장형태는 관목(灌木), 덩굴, 나무, 바닥을 뒤덮는 매트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림 3.23]. 이런 큰 차이가 있음에도, 이들 식물 대부분은 교배했을 때 번식 가능한 잡종을 낳을 수 있다 [Carlquist et al. 2003].



그림 3.24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 호수에서 서식하는 시클리드과(family Cichlidae) 어류의 다양한 머리 형태의 표본. 머리 형태의 차이는 먹이와 섭식 방법의 차이와 관련 있다. [After Fryer and Iles 1972.]



아프리카 동부의 거대 호수에서 서식하는 시클리드어류는 극적인 적응방산을 겪었다 [Kornfield and Smith 2000]. 빅토리아 호(Lake Victoria)에서는 200종 이상, 탕가니카 호(Lake Tanganyika)에서는 적어도 140종, 그리고 말라위 호(Lake Malawi)에서는 500종에서 많게는 대략 1,000종의 시클리드어류가 살고 있다. 각 호수에서 서식하는 종은 색, 체형, 이빨과 턱 모양이 매우 다르며 [그림 3.24], 여기에 대응해 섭식 습성도 다르다. 게다가, 곤충, 유기물 쓰레기, 바위 표면을 뒤덮고 있는 조류(algae, 藻類), 식물성 플랑크톤, 동물성 플랑크톤, 연체동물, 어린 물고기, 커다란 물고기 등 다양한 먹이에 대해 특화된 시클리드가 있다. 어떤 종은 다른 어류의 비늘을 먹으며, 어떤 종에는 다른 어류의 눈을 뽑아버리는 섬뜩한 습성이 있다. 계통적으로 확실히 가깝게 연관된 어떤 종의 이빨은 몇몇 다른 과의 어류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도 더 많이 다르다. 각 호수에 서식하는 종은 단계통군이며 매우 빠르게 다양해졌다.


3.6 요약


  1. 대다수 전통적인 생명체 분류는 분지[계통]와 표현형 분기 모두를 반영하도록 고안되었다. 오늘날 많은 계통분류학자는 분류가 계통관계를 명확히 반영해야 하고 모든 상위 분류군은 단계통적이어야 한다는 “분기학적 자세”를 취한다.
  2. 계통분석은 생명의 분지 역사를 설명하는 것 이외에도 많이 유용하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다른 자료에서 파생된 계통에 형질상태의 변화를 파시모니하게 “배치”함으로써 관심 있는 특성의 진화 역사를 추론하는 것이다. 이런 계통분류학 연구는 형질진화의 공통된 양식과 원리에 관한 정보를 낳았다.
  3. 새로운 형질은 거의 항상 기존 형질에서 진화한다.
  4. 진화에서 흔한 불계적 상동은 때때로 서로 다른 혈통에서 유사한 적응으로 나타난 결과다. 여기에는 수렴진화, 평행진화, 역진화가 포함된다.
  5. 대체로 서로 다른 형질은 다른 속도로 조금씩 진화한다. 보존형질은 오랫동안 변화가 거의 없이 유지되며, 다른 형질은 빨리 진화하고 폭넓게 변한다. 이런 현상을 모자이크 진화라고 한다.
  6. 계통적으로 연관된 종 사이의 차이는 큰 차이가 작은 단계를 거쳐 종종 점진적으로 진화함을 보여준다. 이런 양식은 흔하지만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7. 구조의 변화는 흔히 형질의 기능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서로 다른 구조가 다른 혈통에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변형될 수도 있다.
  8. 형태적 형질의 진화는 발생의 변화와 관계되어 있다. 이런 진화적 변화에는 반복된 구조의 개별화, 발달 과정에서 시기[이시성]나 위치[이소성]의 변화, 그리고 구조 복잡성의 증가와 감소 등이 있다. 이시성은 상대성장 때문에 때때로 형질 형태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9. 형질진화의 추세는 계통분석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진화적 추세는 혈통 내에서나 서로 다른 혈통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10. 적응방산으로 계통적으로 연관된 수만은 혈통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에 출현하며, 다른 서식지나 생활양식에 적응하면서 많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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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1)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2)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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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발생은 형태 진화의 몇몇 공통된 양식을 보여준다


수십 년 전까지 분류와 계통연구는 주로 배아 발생 동안 나타나는 형태 변화를 포함해 형태적 형질을 분석하는 데 주로 의존했다. 그러한 연구 과정에서 계통분류학자와 비교형태학자는 공통된 진화 양식을 많이 기록했다. 오늘날, 가장 왕성한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는 그런 진화적 변화의 유전적∙발생적 기초에 관한 것이다 [20장 참조]. 이런 양식 가운데 일부로 개별화, 이시성, 상대성장, 이소성 그리고 복잡성의 변화를 들 수 있다. [Rensch 1959; Müller 1990; Raff 1996; Wagner 1996.]




그림 3.12 파충류와 포유류의 이빨은 개별화의 획득과 소실에 대한 예를 보여준다. 대다수 파충류의 이빨은 균일하지만, 포유류의 이빨은 진화 과정 중에 개별화됐다. 이빨고래에서는 이빨의 개별 정체성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훗날 소실되었다. [A after Romer 1966; B~D after Vaughan 1986.] *


* [용어설명] Kuehneosaurus, 쿠에네오사우루스; elephant shrew, 코끼리땃쥐; Prozeuglodon, 프로제우글로돈; homodont (teeth), 동형치(同型齒); heterodont (teeth), 이형치(異形齒); incisor, 앞니; canine, 송곳니; premolar, 작은 어금니; molar, 어금니; cetaceans, 고래류.



개별화. 많은 생명체의 몸은 분명한 유전적 설명서(genetic specification), 발달 양식 그리고 [몸의 특정 부분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고유의] 위치를 가지며 다른 부분과 상호작용하는 분명한 단위체인 모듈(module)로 구성되어 있다 [Raff 1996]. [예를 들어, 다양한 식물의 잎사귀, 어류의 이빨 등과 같은] 일부 모듈에는 뚜렷한 개별 정체성이 없으므로 이들을 단일 형질의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다. 만일 그런 구조가 [척추뼈처럼] 몸의 축을 따라 배열해 있다면 이것을 연속상동(serial homology, 連續相同)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형(homonym, 同形)이라 한다. 그런 단위체를 통해 개별 정체성을 획득하는 중요한 진화적 현상을 개별화(individualization, 個別化)라 부르는데 [Wagner 1996; Müller and Wagner 1996], 결과적으로 모자이크 진화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대다수 파충류의 이빨은 균일하지만, 포유류의 진화 과정 동안 [앞니, 송곳니, 작은 어금니, 어금니 등으로] 개별화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빨고래에서는 이빨의 개별 정체성이 훗날 진화 과정 중에 사라졌다 [그림 3.12].


이시성. 이시성(heterochrony, 異時性)은 발생 사건의 시기 또는 속도의 진화적 변화로 폭넓게 정의된다 [Gould 1997; McKinney and McNamara 1991]. 많은 표현형 변화가 그러한 시기 변화에 근거한다고 보이지만, 몇몇 다른 발달 메커니즘도 비슷한 변화를 낳을 수 있다 [Raff 1996].



그림 3.13 도롱뇽의 유형진화. (A~B) 대다수 도롱뇽처럼 범도롱뇽(Ambystoma tigrinum)은 (A) [아가미가 존재하는] 수중 유생에서 (B) 육상 성체로 변태하는 과정을 겪는다. (C) 아가미와 꼬리지느러미를 가진 멕시코 도롱뇽(Ambystoma mexicanum)의 성체는 육상 근연종의 유생과 닮았다. 멕시코 도롱뇽은 전 생애를 수중에서 지낸다. [A, photo by Twan Leenders; B, photo © Painet, Inc.; C, photo by Henk Wallays.]



많은 형질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비교적 전체적인 이시적 변화는 [생식선(生殖腺)과 여기에 관련된 생식 구조를 제외한] 신체 형질 대부분의 발생 시기가 [번식(繁殖)의 시작인] 생식선 성숙 시기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변하는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 도롱뇽(axolotl)은 대다수 도롱뇽과는 달리 변태(metamorphosis, 變態) 과정을 거치지 않는데, 대신 유생의 특성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번식한다 [그림 3.13]. 이처럼, 번식 가능한 성체가 더욱 어린 형태로 진화하는 것을 [“child”를 뜻하는 그리스어 paedos와 “form”을 뜻하는 morphos에서 유래한 용어인] 유형진화(paedomorphosis, 幼形進化)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연된 성숙(delayed maturity)의 진화는 “과도하게 성숙한” 형질의 연장된 발달과 관련해서 더 많이 자랐을 때 번식하도록 이끌 수도 있는데, 이러한 진화적 변화를 과형진화(peramorphosis, 過形進化)라 일컫는다. 예를 들어, 사람 뇌가 커진 이유는 사람의 성장 기간이 연장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McNamara 1997].


상대성장. 상대성장(Allometric growth 또는 allometry, 相對成長)은 개체발생 중에 나타나는 생명체의 서로 다른 부분이나 크기의 차등적 성장속도와 관련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성장 기간에 머리는 몸 전체보다 늦게 자라고 다리는 더 빨리 자란다. 개별 형질의 상대성장 속도 변화, 즉 국소적 이시성은 진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많은 진화적 변화는 마치 국소적 이시성으로 하나 이상의 형질 형태가 변한 것처럼 설명될 수 있는데, 실제로 손가락의 신장(伸張) 속도 증가는 다른 포유류의 앞다리와 비교되는 박쥐의 날개 형태를 “설명할” 수 있으며 [그림 3.4 참조], 아래턱의 성장속도 변화는 동갈치(needlefish)나 [공미리라고도 불리는] 학꽁치(halfbeak)의 형태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림 3.14].



그림 3.14 계통적으로 밀접히 연관된 세 어류 과 사이에서 위턱과 아래턱 길이에 나타나는 상대성장 차이. (A) 날치, (B) 학꽁치, 그리고 (C) 동갈치. 형태의 차이는 몸 성장에 대한 턱 성장의 상대속도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From Jordan and Evermann 1973.]


상대성장은 종종 다음과 같은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y = b xa


여기에서 y와 x는 이빨의 길이와 폭, 또는 머리와 몸의 크기 등을 측정한 두 개의 값이다. [많은 구조가 전체 크기에 대해 불균형하게 변하기 때문에, 대다수 연구에서 x는 몸무게처럼 몸 크기를 측정한 값이다.] 상대성장계수(allometric coefficient) a는 상대성장속도를 나타낸다. a=1이라면 성장은 동형성장(isometry 또는 isometric growth, 同形成長)으로 두 구조 또는 크기가 같은 속도로 커짐을 뜻하며,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 크기 또는 체중에 대한 다리의 상대적 길이처럼 y가 x보다 빨리 증가하면 a > 1, 즉 양의 상대성장(positive allometry)이며, 사람의 머리 크기에서처럼 상대적으로 늦게 자라면 a < 1, 즉 음의 상대성장(negative allometry)이다 [그림 3.15]. y와 x 사이의 이런 곡선관계를 로그로 변환하면 더욱 선형으로 나타나 log y = log b + a log x 같은 직선 방정식을 얻는다.



그림 3.15 방정식 y = bxa에 따른 신체 측정치 y와 x 사이의 다양한 상대성장 관계를 나타낸 가설 곡선. (A) 산술 그래프. 곡선 1과 2는 y가 x와 상수 b와의 곱인 동형성장[a = 1]을 나타내며, 곡선 3과 4는 각각 양의 상대성장[a > 1]과 음의 상대성장[a < 1]을 나타낸다. (B) 앞의 도표를 로그로 변환한 로그 그래프는 선형으로 나타난다. 기울기 차이는 a가 결정한다. 곡선 1과 2는 기울기가 1이다.



조상형태에서 x는 몸 크기를 나타내고 y는 연령 α에서 발달하기 시작해 연령 β에서 성장을 멈추는 어떤 형질의 크기를 나타낸다고 가정하자 [Alberch et al. 1979]. 유형진화와 과형진화 모두 α나 β의 변화로 말미암은 발달 속도 또는 발달 지속기간의 진화적 변화로 일어날 수 있다 [그림 3.16]. 만일 [β에서 β+Δβ로] 발달 지속기간이 연장된다면 과형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림 3.16B]. 예를 들어, 그 어떤 사슴보다도 몸 크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멸종한 아일랜드 큰뿔사슴(Megaceros giganteus)의 거대한 뿔은 더 큰 몸 크기로 자라도록 발달 지속기간이 연장된 것과 관련 있는 과형진화적 형질이다 [그림 3.17]. [조기생식(progenesis, 早期生殖)이라는 유형진화의 한 형태로] 더 어린 연령[β-Δβ]에서 성장이 멈추거나, [유형성숙(neoteny, 幼形成熟)이라는 진화과정으로] 형질 y의 성장속도를 늦춤으로써 유형진화가 나타날 수 있다. 멕시코 도롱뇽은 변태 과정을 거치는 근연종과 같은 크기까지 자라는 유형성숙을 하는 도롱뇽 종이지만 [그림 3.13C 참조], 토리우스속(Thorius)에 속하는 작은 도롱뇽은 조기성숙을 한다. 결과적으로, 마치 발달 기간이 단축된 것처럼 이들 종은 더 큰 도롱뇽 종의 유생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형질을 많이 가진다 [그림 3.18].



그림 3.16 y와 x로 표현되는 구조와 크기의 상대성장속도를 로그로 표현함으로써 이시성 형태 일부를 나타낸 도표. x축은 몸 크기를 나타내며, y축은 다리 길이 같은 형질을 나타낸다. 기울기가 1인 점선은 참고로 표시했다. (A) 파란색 선은 연령 α에서 β 사이의 조상에서 일어나는 개체발생 변화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성장은 “기울기 > 1”인 양의 상대성장이다. (B) 더 길어진 성장 기간으로 [연령 β+Δβ로 성장이 연장됨; 보라색 화살표] 과형진화가 나타났고, 후손에서 과도한 구조 y가 출현했다. (C) 더 어린 연령[β-Δβ]에서 성장이 멈추면 조기생식으로 알려진 유형진화의 한 형태가 나타난다. (D) 성장 지속기간의 변화 없이 x와 대해 y의 성장속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 유형성숙이라 불리는 유형진화의 한 형태가 나타난다.



그림 3.17 상대성장과 과형진화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도 가장 큰 사슴인 멸종한 “아일랜드 큰뿔사슴”(Megaceros giganteus)일 것이다. 그 어떤 사슴보다도 이 사슴의 뿔은 몸 크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다. [From Millais 1897.]












그림 3.18 조기생식을 하는 난쟁이 도롱뇽인 토리우스속(Thorius)과 조기성숙을 하지 않는 근연종인 프세우도에우리체아속(Pseudoeurycea) 사이의 두개골 비교. 토리우스속의 성체 두개골에는 많은 유생 형질이 있다. [After Hanken 1984.]



이소성. 이소성(heterotopy, 異所性)은 생명체 내에서 표현형 형질이 발현하는 위치의 진화적 변화다. 유전자 산물의 분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종 사이에서 유전자 발현 위치의 이소적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심해 오징어의 어떤 종은 몸에 발광성 세균(light-emitting bacteria, 發光性細菌)이 서식하는 기관을 가진다. 이 빛은 오징어 눈의 수정체를 구성하는 것과 동일한 두 가지 단백질로 구성된 작은 수정체를 통해 회절 된다 [Raff 1996].



그림 3.19 이 그림에 나와 있는 자메이카 덩굴식물 같은 필로덴드론속(Philodendron) 식물은 열대산 덩굴식물이다. 필로덴드론속과 더불어 몇몇 속을 포함한 많은 덩굴식물에서는 지상경(aerial stem, 地上莖)에서 성장하는 토양 밖으로 노출된 뿌리가 진화했다. [Photo © photolibrary.com.]



종 사이의 이소적 차이는 식물에서 매우 흔하다. 예를 들어, 대다수 식물의 주요 광합성 기관은 잎이지만, 건조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선인장과 많은 다른 식물에서는 줄기의 표피세포에서도 광합성이 일어난다. 목본성 포도나무처럼 덩굴식물에 계통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다양한 종에서 뿌리는 지상경(aerial stem, 地上莖)을 따라 자란다 [그림 3.19]. 일부 덩굴식물에서는 이 뿌리가 부착기(holdfast, 附着器) 역할을 하지만, 다른 덩굴식물에서는 이 뿌리가 높은 곳에 있는 임관(canopy, 林冠)에서 토양까지 자라서 내려온다.


척추동물의 뼈에서도 이소성의 예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계통적으로 새로운 많은 뼈가 힘줄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다른 결합조직에서 발생하는 뼈인 종자골로 출현했다 [Müller 1990]. 많은 공룡의 꼬리에는 골화된 힘줄(ossified tendon)이 있으며, 자이언트 판다(Ailuropoda melanoleuca)는 실제 관절로 연결된 발가락이 아니라 단일 종자골인 “엄지”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 21.8 참조].



그림 3.20 진화 과정에서 구조의 감소와 소실의 예. 양막류가 파생한 [데본기의 유스테노프테론속(Eusthenopteron)과 같은] 초기 어류는 [페름기의 밀레레타속(Milleretta)과 같은] 초기 양막류보다 더 많은 두개골 뼈를 가졌다. 후기 양막류 중에는 두개골이 여전히 더 적은 뼈로 이루어진 개속(Canis)과 같은 태반 포유류가 있다. 아래턱에서 뼈 개수의 감소는 특히 주목할만하다. [After Romer 1966.]



복잡성의 증가와 감소. 가장 최초의 생명체는 매우 적은 수의 유전자를 가졌고 매우 단순한 형태였음이 분명하다. 계통연구와 고생물학 연구로 우리는 생명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복잡성이 엄청나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예시로 진핵생물의 기원, 그다음 다세포 생명체의 기원, 그리고 나중에 식물과 동물의 정교한 조직 구성의 기원 등을 들 수 있다 [21장 참조]. 진화가 일어나는 동안 복잡성이 전체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면, 구조의 감소와 소실로 나타나는 형태의 단순화가 분기군 내에서 보이는 가장 흔한 경향성 가운데 하나임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의 원시적인 “기본 설계”에는 수많은 꽃받침, 꽃잎, 수술, 심피(心皮)가 포함되어 있지만, 현화식물의 많은 혈통에서 이들 요소는 하나 이상 감소했고, 많은 분기군에서는 꽃받침 또는 꽃잎 가운데 어느 하나 또는 둘 다 사라졌다. 사지 척추동물류에서 발가락 숫자는 여러 차례 줄어들었지만 [말의 단일 발가락을 생각하라], [멸종한 어룡에서는] 단 한 차례 늘어난 적도 있었다. 초기 총기어류(lobe-finned fishes, 總鰭漁類)는 양막동물 후손보다 더 많은 두개골 뼈를 가졌다 [그림 3.20]. 그런 많은 변화는 늘어난 기능적 효율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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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형질의 진화속도는 다르다


서로 다른 형질은 다른 속도로 진화하는데, 이것은 어떤 두 종이라도 일부 형질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형질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단순한 관찰로 명백해진다. 종종 보존형질(conservative character, 保存形質)이라 불리는 일부 형질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어떤 조상의 많은 후손 사이에서 거의 변화 없이 유지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초기 양서류에서 처음 진화한 다섯 손/발가락이 있는 사지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림 3.4 참조], 모든 양서류와 파충류는 두 개의 대동맥궁을 가지고 모든 포유류는 오직 왼쪽 대동맥궁만 가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몸 크기는 빠르게 진화했는데 포유류의 목 내에서는 몸 크기가 적어도 100배 차이가 날 정도로 다양하다. 앞장에서 살폈듯이, DNA 서열의 진화속도는 유전자 사이, 유전자 내 구획 사이, 그리고 코돈(codon)이라 불리는 아미노산 정보를 암호화한 세 염기의 위치 사이에서도 다양하다.


한 혈통 안에서 서로 다른 형질이 다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을 모자이크 진화(mosaic evolution)라고 한다. 이것은 진화의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로, 종이 전체적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단편적으로 진화함을 뜻한다. 실제로 많은 형질이 준 독립적으로 진화한다. [중요한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함께 기능하는 형질은 일제히 진화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는 생명체 몸 전체가 아니라 개별 형질이나 심지어 그러한 형질을 뒷받침하는 개별 유전자의 변화에 관하여 진화를 분석하는 진화 메커니즘에 관한 이론이 대체로 옳음을 보여준다.


모자이크 진화 때문에 어떤 현생종이 다른 종보다 더 “진보”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못해 심지어 틀렸다. 개구리류로 이어지는 양서류 혈통은 포유류의 목이 다양해지기 전에 포유류로 이어지는 혈통과 갈라졌기 때문에, 분지 순서 면에서 개구리류는 소와 사람보다 더 오래된 분지다. 이런 점에서, 개구리류는 더 원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고생대의 양서류와 비교했을 때, 개구리류는 [예를 들어, 뒷발의 다섯 발가락과 아래턱을 구성하는 많은 뼈라는] “원시적” 형질과 [아래턱에 이빨이 없는] 진보된 형질 모두를 가진다. 게다가, 개구리 종 사이의 수많은 차이가 가까운 과거에 진화했다. 예를 들어, 어떤 개구리 속은 올챙이 단계 없이 곧바로 [성체로] 발달하며, 다른 속은 살아 있는 유생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손과 발의 다섯 가락과 아래턱의 이빨 같은] “원시적” 형질과 개구리와 비교할 때 [예를 들어, 하나로 된 아래턱뼈처럼] “진보된” 형질 모두를 가진다.


3.3.4 진화는 때때로 점진적이다


다윈은 진화가 큰 “도약”인 격변(saltation, 激變)보다는 점진주의(gradualism, 漸進主義)라는 연속한 작은 변화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진화가 항상 점진적인지는 모르지만, 이 쟁점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21장 참조]. [예를 들어, 동물 문, 곤충류와 포유류의 많은 목처럼] 먼 과거에 분기한 많은 상위 분류군은 서로 매우 다르며 현생종 사이에서 또는 화석기록에서 중간형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4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화석기록에는 몇몇 상위 분류군의 진화에 나타나는 중간형태가 기록되어 있다.



그림 3.9 도요새과(family Scolopacidae)인 도요새류 사이에서 나타나는 부리 길이와 형태의 변이. 도요새의 부리 형태를 세 개의 수직 열에 축척(scale, 縮尺)에 따라 그렸고 [아래쪽 가운데의] 18mm에서 [오른쪽 위의] 166mm까지 범위 안에서 부리 길이 차이에 대응하도록 배치했다. 부리의 곡률(curvature, 曲率)과 길이 모두에 단계적 변화가 있음을 주목하라. 이들 종 사이의 계통관계는 잘 풀리지 않았지만, 서로 매우 다른 부리가 작은 변화를 통해서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 이 변이에 잘 나타나 있다. [After Hayman et al. 1986.]



현존하는 종 사이의 단계적 변화는 흔하며 점진적 진화를 지지한다. 예를 들어, 도요새 부리의 길이와 형태는 이들 종 사이에서 매우 다르지만,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도 중간형태의 부리를 가진 종으로 연결된다 [그림 3.9; 초파리과 동물의 예는 그림 3.21에 나와 있다].


3.3.5 형태 변화는 때때로 기능 변화와 상관관계에 있다



그림 3.10 서로 다른 식물 분류군에서 덩굴로 기어오르기 위해 변형된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기능을 위해 어떤 구조가 변형될 수 있으며 동일한 기능 획득을 목표로 하는 서로 다른 진화적 경로가 다양한 분류군에서 나타날 수 있음을 잘 나타낸다. [After Hutchinson 1969.] *


* [용어설명] family Passifloraceae, 시계꽃과; family Bignoniaceae, 능소화과; family Ranunculaceae, 미나리아재비과; family Rubiaceae, 꼭두서니과; stipule, 턱잎; tendril, 덩굴손; leaflet, 소엽(小葉) 또는 작은 잎; sucker, 흡지(吸枝); tripartite leaf, 세 갈래 잎; inflorescence, 화서(花序) 또는 꽃차례; petiole, 잎꼭지.



상동형질이 분류군 사이에서 서로 매우 많이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능이 변화하면서 형태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벌과 꿀벌의 침은 막시목(order Hymenoptera, 膜翅目)의 다른 구성원이 식물이나 절지동물 숙주에 알을 넣는 데 사용하는 산란관(ovipositor, 産卵管)이 변형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직 암컷 말벌과 꿀벌만 침을 쏜다.] 덩굴처럼 기어오르는 습성이 독립적으로 진화한 많은 식물군에서 뿌리, 잎, 잎사귀, 턱잎, 꽃차례 등과 같은 구조가 덩굴 기관(climbing organ)으로 변형되었다 [그림 3.10].


3.3.6 종 사이 유사성은 개체발생을 통틀어 변한다


때때로 종은 성체보다 배아에서 더 유사하다. 1828년에 카를 에른스트 폰 베어(Karl Ernst von Baer)는 [척추동물아문(subphylum Vertebrata, 脊椎動物亞門) 같은] 더욱 포괄적인 분류군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형질은 종종 [목이나 과 같은] 하위 수준의 분류군에서 특정 형질이 나타나기 전에 개체발생(ontogeny, 個體發生) 단계에서 출현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이러한 일반화는 폰 베어의 법칙(von Baer’s law)으로 알려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는 아마도 사지 척추동물 강(綱)이나 과(科)에 속하는 구성원의 전형적 특징이 명확해지기 전에 이들 배아에서 나타나는 아가미구멍, 척삭(脊索), 난할(卵割), 노 모양(paddle-like)의 지아(limb bud, 肢芽) 등의 유사성일 것이다 [그림 3.11].



그림 3.11 그림의 현미경 사진을 보면 서로 다른 발달 단계의 몇몇 척추동물 배아 사이에 유사성과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이들 배아는 서로 다른 단계와 크기에서 이러한 구조를 갖지만, 모두 비슷한 기본적 구조로부터 시작한다. 배아가 발달하면서 이들은 서로 점점 달라진다. [Adapted from Richardson et al. 1998; photo courtesy of M. Richardson.]






다윈의 가장 열성적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개별 생명체의 발생은 그 조상이 갖고 있던 성체 형태의 진화 역사를 반복한다는 뜻으로 “개체발생이 계통을 반복한다”는 뜻으로 그러한 양식을 재해석했다. 따라서 헤켈은 발생학 연구를 하면 종의 계통 역사를 읽을 수 있으므로 생명체 사이의 직접적인 계통관계를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물 발생 법칙”(biogenetic law, 生物發生法則)으로 알려진] 헤켈의 언명(言明)이 절대로 유효하지 않다는 점은 19세기 말에 와서 이미 명백해졌다 [Gould 1977]. 포유류와 “파충류” 배아의 아가미구멍과 새궁(branchial arch, 鰓弓)은 결코 성체 어류의 전형적 형태를 획득하지 못한다. 게다가, 다양한 형질은 조상보다 후손에서 서로 다른 상대속도로 발달하고, 배아와 유아 단계는 [배아의 양막처럼] 각 단계에서 자신만의 특이적인 적응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물 발생 법칙은 계통 역사에 대한 오류 없는 안내자가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배아발생의 유사성에서 다윈은 진화의 가장 중요한 증거 가운데 일부를 얻었으며, 이런 유사성은 진화 과정에서 특성이 어떻게 변형했는지 밝히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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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계통분류학으로 추론된 몇 가지 진화적 변화 양식


진화의 많은 중요한 양식과 원리는 지난 1세기 이상 동안 연구된 계통분류연구에 근거해왔다. 실제로, 현존하는 생명체에 관한 계통분류연구는 진화의 실재(實在)에 관한 방대한 양의 증거를 제공했다 [Box 3A]. 이 절에서는 계통분류연구를 발전시킨 비교형태학의 전통에서 주로 도출된 사례를 바탕으로 진화 양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 장에서도 살피겠지만, 이들 원리 가운데 많은 경우가 생화학 또는 분자 수준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Box 3A 진화의 증거


계통분류학자는 항상 생명체 사이의 특성을 비교함으로써 생명체를 분류한다. 초기 계통분류학자는 『종의 기원』의 출판 이전에도 방대한 양의 비교 연구 정보를 축적했다. 그들의 자료는 공통조상에서 유래한다는 다윈의 이론에 비추었을 때 불현듯 설명하기 쉬워졌다. 실제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났다는 그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이 정보에 많이 의지했다. 다윈 시대 이후, 비교 연구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했으며, 오늘날에는 형태학과 발생학의 전통적 영역뿐만 아니라 세포생물학,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얻은 자료도 이러한 증거에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정보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는 다윈의 가설과 일치한다. 진실로, 생명체가 마치 진화했던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독단, 엉뚱함, 그리고 기만적 의도가 초자연적 존재에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많은 생물학적 관찰은 종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개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대안 가설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계통분류학자가 축적한 비교 연구 자료를 통해 우리는 진화의 역사적 실재를 확정하며 진화가 일어났어야만 이치에 맞는 몇 가지 양식을 찾아낼 수 있다.


  1. 생명체의 계층적 조직(hierarchical organization). 린네 이전에도 종을 분류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초기 체계는 유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자는 종을 복잡한 다섯 범주로 분류하려고 시도했지만, 생명체는 단순히 다섯 가지 분류군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러나 생명체는 린네가 설명한 분류군 내 분류군의 계층적 체계로 “자연스럽게” 나뉜다. 분지와 분기의 역사 과정은 계층적으로 배열될 수 있는 대상을 낳을 수 있지만, 다른 과정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언어는 계층적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원소와 광물은 그럴 수 없다.
  2. 상동. 기능의 차이가 있음에도 구조가 유사한 이유는 생명체의 특성이 그들 조상의 특성에서 변형되었다는 가설로부터 도출되는데, 이것은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知的設計)의 가설과는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지적 설계에서는 동일한 경골 요소(硬骨要素)가 영장류 손의 뼈대, 두더지의 땅 파는 앞다리, 박쥐, 새, 프테로사우리아 익룡(pterosaur, 翼龍)의 날개, 그리고 고래와 펭귄의 물갈퀴를 형성할 필요가 없다 * [그림 3.4 참조]. 설계가 아닌 기존 구조의 변형으로 왜 말벌과 꿀벌의 침이 변형된 산란관이며, 왜 암컷에게만 침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D-형 광학 이성질체(D-optical isomer)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 [효소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모든 단백질은 “L-형” 아미노산(L-amino acid)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조상이 L-형 아미노산을 채택하고 난 이후로 그 후손은 무조건 그것을 따라야 했는데, D-형 아미노산의 도입은 영국에서 오른쪽 차선으로 운전하거나 미국에서 왼쪽 차선으로 운전하는 것만큼 불리할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거의 보편적이고 임의적인 유전 부호도 오직 공통계보의 결과일 때만 이치에 맞는다 [8장 참조].
  3. 발생의 유사성. 상동형질로 발달 과정 중에 나타나는 몇몇 형질이 포함되지만, 생명체의 발생이 조상의 개체발생이 변형된 것이 아니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개미핥기 태아의 턱에서는 이빨의 원시세포(primordium, 原始細胞)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고, 몇몇 육상 개구리류와 도롱뇽류는 알 속에서 수중 유생(aquatic larva)의 전형적 특징을 보이며 유생 단계를 거치지만, 육상생활에 적합한 상태로 부화한다. 발생 초기에 사람의 배아에서는 물고기 배아의 아가미구멍과 비슷한 아가미 주머니가 잠깐 나타난다.
  4. 흔적형질. 생명체의 적응은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창조론자에 의해 창조자의 지혜로운 은혜의 증거로 인용되지만, 조상에서는 기능이 있었으면서도 후손 종에서는 더는 그렇지 않은 형질에 대해서는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없다. 동굴에 사는 어류와 동물은 모든 퇴화 단계에서 눈이 나타난다. 날지 못하는 딱정벌레는 흔적 날개를 가지는데, 일부 종에서는 날개를 펼칠 이유가 있어도 그럴 수 없는 융합된 겉날개 아래에 감춰져 있다.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다윈은 사람의 몸에 있는 10여 가지 흔적형질 목록을 작성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흔치 않은 변이로서만 나타난다. 여기에는 맹장(盲腸), [네 개가 융합된 꼬리 척추뼈인] 꼬리뼈, 귀나 두피(頭皮)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일부 사람의 흔적 근육, 많은 사람에서 나오지 않거나 비정상적으로 돋는 사랑니 등이 있다. 분자 수준에서 모든 진핵생명체의 유전체에는 위유전자를 포함한 기능이 없는 수많은 DNA 서열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유전자는 기능이 있는 조상 유전자와 서열이 비슷함에도 기능이 정지했으며 전사되지 않는다 [19장 참조].
  5. 수렴. 기능적으로 비슷한 형질이 구조는 실제로 매우 다른 예가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척추동물과 두족류 연체동물(cephalopod mollusk, 頭足類軟體動物)의 눈이다 [그림 3.5 참조]. 어떤 구조가 서로 다른 조상의 다른 형질에서 변형되었다면 그런 차이는 예상할 수 있지만, 최적의 설계를 고수해야만 하는 창조자가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생각은 이러한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진화 역사는 덩굴식물이 기어오를 수 있게 하는 여러 변형된 구조처럼 같은 기능에 대해서도 생명체마다 매우 다른 구조를 사용하는 사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창조론은 그렇지 않다] [그림 3.10 참조].
  6. 차선적 설계. 진화 역사의 “사건”은 그 어떤 지적 설계자도 설계하지 않았으리라 예상되는 수많은 형질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을 포함한 육상 척추동물의 인두(pharynx, 咽頭)의 음식물과 공기가 지나는 통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음식 때문에 질식할 위험이 있다. 사람의 눈에는 시선이 향하는 방향의 좌우 약 45에 “맹점”(blind spot, 盲點)이 있다. 이것은 망막세포의 축삭돌기가 기능적으로 무의미하게 배열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축삭돌기는 눈을 지나 시신경에 수렴하며, 시신경은 망막의 뒤쪽을 거쳐 뇌로 향하기 때문에 망막을 가로막는다 [그림 3.5 참조].
  7. 지리적 분포. 계통분류학 연구에는 종과 상위 분류군의 지리적 분포가 포함된다. 생물지리학(biogeography, 生物地理學)으로 알려진 이 주제는 6장에서 다룬다. 많은 분류군의 분포는 공통조상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면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를 들어, 유대류와 같은 많은 분류군은 남반구 대륙에 걸쳐 분포하는데, 중생대 때 갈라지기 시작한 하나의 남반구 땅덩어리에 걸쳐 분포했던 공통조상에서 이들 생명체가 출현했다면 이런 분포는 쉽게 이해된다.
  8. 중간형태. 연속적인 작은 변화로 진화한다는 가설로 종과 상위 분류군 사이에서 특성이 서서히 다양해지는 수많은 사례를 예측할 수 있다. 조류의 현생종 사이에서 우리는 부리의 단계적 변화를 볼 수 있으며, 일부 뱀에서는 골반대(骨盤帶)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다른 뱀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분자 수준에서 DNA 서열 차이는 계통적으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종 사이에서는 거의 없거나 더 멀리 연관된 종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차이가 나는 것처럼 다양하다.

이들 각각의 증거에 대해 수백 또는 수천의 사례가 현생종 연구로부터 인용될 수 있다. 심지어 화석기록이 없더라도 현생종에서 얻은 증거만으로도 진화의 역사적 실재, 즉 모든 생명체는 공통조상에서 변형되어 유래했음을 입증하는데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단 하나의 생명체 원형에서 유래했음을 우리는 다윈보다 더 확신할 수 있으며 주장할 수 있다.


* pterosaurs 그리고 pterodactyls 모두 한국어로는 익룡류(翼龍類)로 번역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 두 단어는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킨다. 즉, pterosaurs는 [2억 2천2백만 년 전에서 6천5백만 년 전 사이인] 삼첩기 후기에서 백악기 말엽까지 살았던 프테로사우리아목(order Pterosauria)의 익룡류에 속하는 동물 전체를 일컫는 말이며, pterodactyls는 프테로사우리아목의 프테로닥틸리데과(family Pterodactylidae)에 속하는 프테로닥틸루스속(Pterodactylus)의 구성원인 익룡을 뜻한다. 따라서 pterodactyls는 좀더 좁은 의미로 국한된 익룡류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된다.


3.3.1 생명체의 형질 대부분은 기존 형질에서 변형했다



그림 3.4 일부 사지 척추동물류의 앞다리 골격. 초기 양서류에서 나타나는 “기본 설계”와 비교했을 때, [예를 들어, 말과 새에서는] 뼈가 소실 또는 융합하거나 상대적 크기와 형태가 변형되었다. 수영을 위한 변형은 돌고래와 어룡(ichthyosaur, 魚龍)에서 진화했고, 비행을 위한 변형은 새, 박쥐 그리고 프테로사우리아 익룡에서 진화했다. 그림에 나와 있는 모든 뼈는 두더지(mole)와 익룡의 종자골을 제외하고는 이들 사이에서 상동인데, 이 뼈는 사지 골격의 나머지와는 발생 기원이 서로 다르다. [After Futuyma 1995.] *


* [용어설명] humerus, 위팔뼈; ulna, 자뼈; radius, 노뼈; carpals, 손목뼈; metacarpals, 손바닥뼈; sesamoid (bone), 종자골(種子骨); cartilage bone, 연골뼈; digit, 손/발가락; flipper, 물갈퀴; flight membrane, 비행막(飛行膜).



진화의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생명체의 형질은 거의 항상 조상의 기존 형질에서 진화한다는 것인데, 어떤 형질도 무(無)에서 새롭게 출현하지 않는다. 조류, 박쥐 그리고 프테로닥틸루스 익룡류(pterodactyl)의 날개는 변형된 앞다리로 [그림 3.4], 아마도 이들 동물의 조상은 비행을 위해 변형될 수 있는 어깨 구조가 없었으므로 [천사처럼] 어깨에서 날개가 발생하지 않는다. 4장에서 우리는 포유류의 중이골이 파충류 턱뼈에서 진화했음을 배우게 될 것이다. 19장에서는 조상 단백질에서 변형해 새로운 기능을 획득한 단백질의 예를 접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계통관계가 있는 생명체는 공통조상의 대응하는 기관에서 물려받은 [그리고 때때로 변형된] 상동형질(homologous character, 相同形質)을 가진다. 종 사이에서 때때로 상당한 분기를 겪을지라도, 상동형질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유전적∙발생적 토대를 가진다 [20장 참조].


[“발가락”과 같은] 형질이 종 사이에서 상동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발가락의 개수처럼] 주어진 형질상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다섯 발가락 상태는 사람과 악어에서 상동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들 두 종에는 그들의 공통조상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갈 만큼 끊어지지 않은 오지 상태(pentadactyly, 五指狀態)의 역사가 있다], 기니피그(guinea pig)와 코뿔소의 세 발가락 상태는 다섯 발가락 조상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이들 형질상태는 상동이 아니다.


만약 어떤 형질이 [또는 형질상태가] 공통조상에서 파생했다면 두 종에서 상동(相同)으로 정의되지만, 상동을 규명하는 것, 즉 두 종의 형질이 상동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어떤 종 사이의 해부 형질(anatomical character, 解剖形質)이 상동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몸의 다른 부분에 대해 상대적인 위치와 [복잡한 형질로 구성된 부분인] 구조의 일치다. 형태나 기능의 일치는 상동을 규명하는 데 유용한 기준이 아니다 [두더지와 독수리의 앞다리를 생각하라]. 발생학 연구는 상동을 가정하는 데 종종 중요하다. 예를 들어, 조류의 뼈 상당수는 발달 과정이 진행되면서 융합하므로 새와 악어의 뒷다리 사이의 구조적 일치는 성체보다 배아에서 더욱 명백하다. 그러나 어떤 형질이 종 사이에서 상동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른 형질에 근거한] 계통수에서 형질 분포가 그들의 공통조상에서 후손으로 계속해서 유전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3.3.2 불계적 상동은 흔하다



그림 3.5 (A) 척추동물과 (B) 두족류 연체동물의 눈은 수렴진화의 놀라운 예다. 이들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척추동물에는 두족동물에는 없는 시신경에 의한 망막의 중단(中段)을 포함한 몇 가지 차이가 있음에 주목하라. 척추동물에서 망막세포의 축삭돌기는 [또는 신경섬유는] 망막 표면을 가로지르고 시신경에 모여 “맹점(盲點)”을 형성한다. 두족류에서 축삭돌기는 망막세포의 기저에서 시신경절로 직접 들어간다. [From Brusca and Brusca 1990.] *


* [용어설명] retina, 망막(網膜); optic nerve, 시신경(視神經); eyelid, 눈꺼풀; iris, 홍채(虹彩); pupil, 동공(瞳孔); (eye) lens, 수정체(水晶體); cornea, 각막(角膜); ciliary muscle, 모양체근(毛樣體筋); cartilage, 연골; optic ganglion, 시신경절(視神經節).



서로 다른 분류군에서 형질 또는 형질상태의 독립적 진화를 일컫는 불계적 상동(homoplasy, 成因的相同)에 수렴진화와 역진화가 포함됨을 2장에서 언급했다. 많은 연구자는 수렴진화와 평행진화를 구별한다.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또는 convergence, 收斂進化)에서 겉보기에 비슷한 형질은 서로 다른 발달 경로로 형성된다 [Lauder 1981]. 척추동물과 [오징어 그리고 문어 같은] 두족류 연체동물의 눈은 수렴진화의 한 예다 [그림 3.5]. 이들 동물은 둘 다 수정체와 망막을 갖고 있지만, 이들 두 동물의 눈은 많은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두 동물의 눈이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두족류에서는 망막세포의 축삭돌기가 세포 기저(cell base, 細胞基底)에서 나오지만, 척추동물에서는 세포 정점(cell apex, 細胞頂點)에서 나온다. 따개비류의 해부와 계통분류의 사상 최고 권위자였던 다윈은 두 종류의 따개비속에 있는 여섯 판 껍질(six-plate shell)이 조상상태인 여덟 판 껍질(eight-plate shell)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생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Darwin 1854]. 조무래기따개비속(Chthamalus)에서는 여덟 판 가운데 두 개가 발달하지 않지만, 발라누스속(Balanus) 따개비는 여덟 판 가운데 두 개가 세 번째 판과 융합한다 [그림 3.6; 그림 4.17 참조].



그림 3.6 따개비 껍질을 구성하는 판(plate, 板)의 개수가 조상상태인 여덟 개로부터 후손 속인 조무래기따개비속(Chthamalus)과 발라누스속(Balanus)에서 여섯 개로 줄어드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에 대한 다윈의 설명. 이 그림은 껍데기의 횡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After Darwin 1854.]



반면에 평행진화(parallel evolution 또는 parallelism, 平行進化)는 [비슷한 발생 메커니즘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때때로 계통적으로 밀접히 연관된 생명체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유사한 발생 변형(developmental modification, 發生變形)과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굉장히 멋진 예로 턱다리(maxilliped)이라 불리는 갑각류(crustaceans, 甲殼類)의 섭취 구조 진화가 있다. 몇몇 다양한 갑각류 혈통에서 섭취 구조는 이들 동물의 입틀(mouthpart)이 있는 머리마디(head segment)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다리가 있는 가장 앞쪽의 가슴마디(thoracic segment)에서 한 쌍에서 많게는 세 쌍까지 발생한다. 마이클 에이버로프(Michael Averoff)와 니팜 페이틀(Nipam Patel)은 [21장에서 자세히 논하게 될 Hox 유전자라는] 두 가지 “주요” 조절 유전자(master regulatory gene)의 발현 차이를 연구했다 [Averoff and Patel 1997]. 이들이 연구한 Ultrabithorax(Ubx)와 abdominal A(abdA)라 불리는 두 유전자는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한 모든 절지동물류(arthropods, 節肢動物類)에서 각 마디가 어떻게 발생할지를 결정한다. 이들 두 유전자는 [입틀이 있는] 머리마디에서는 발현이 안 되지만, [다리가 있는] 가슴마디에서는 발현된다.



그림 3.7 평행진화. 갑각류의 가슴다리가 턱다리(maxilliped)라는 섭취 구조로 변하는 진화는 UbxabdA 유전자의 발현이 가슴마디에서 동시에 줄거나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박갑목(order Leptostraca, 薄甲目)의 파라네발리아속(Paranebalia)이 있는] 위쪽 사진에는 머리마디 H3에 [MxII로 표시된 턱인] 입틀이 있고, 가슴마디 T1과 T2에 [각각 En과 Ex로 분지한] 다리가 있는 조상상태가 나와 있다. 곤쟁이목(order Mysida)의 미시디움속(Mysidium)에서 가슴마디 T3는 [노란색으로 표시된 En 분지인] 정상 다리를 가지지만, T2와 [특히] T1에 붙어 있는 부속지(appendage, 附屬肢)에는 [녹색과 붉은색으로 표시된] En 분지의 턱을 닮은 변형이 나타난다. [그림에 없는] 요각아강(subclass Copepoda, 橈脚亞綱)의 요각류(copepods, 橈脚類)인 메소시클롭스속(Mesocyclops)의 유전자 발현과 형태에서도 비슷한 변형이 나타난다. [After Averoff and Patel 1997.] *


* [용어설명] class Branchiopoda, 새각강(鰓脚綱); class Maxillopoda, 소악각강(小顎殼綱); order Anostraca, 무갑목(無甲目).



에이버로프와 페이틀은 갑각류 다리가 턱다리로 바뀌는 모든 진화적 변형은 가슴마디의 UbxabdA 유전자 발현의 소실과 정확히 일치함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계통적으로 멀리 연관된 목인 요각류 메소시클롭스속(Mesocyclops)과 낭하류 미시디움속(Mysidium)에서 이들 두 유전자는 첫 번째 가슴마디에서 발현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턱다리가 발생한다 [그림 3.7]. * 이러한 진화적 변형의 유전적∙발생적 토대는 두 분류군이 같으며 일부 다른 갑각류 혈통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 낭하류(peracarids, 囊蝦類)는 낭하상목(superorder Peracarida, 囊蝦上目)에 속하는 동물을 총칭한다.


역진화(evolutionary reversal, 逆進化)는 “진보한” 또는 파생된 형질상태가 더욱 “원시적인” 또는 조상형질상태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개구리는 아래턱에 이빨이 없지만, 개구리는 이빨을 가진 조상에서 유래했다. 개구리의 한 속인 암피그나토돈속(Amphignathodon)에서는 아래턱에서 이빨이 “다시 진화했다” [Noble 1931]. 암피그나토돈속의 직전 조상은 이빨이 없으므로 이 속에 이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 먼 조상상태로 되돌아가는 불계적 상동성 역진화(homoplasious reversal)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불계적 상동형질(homoplasious character, 成因的相同形質)은 때때로 [그러나 자주는 아닌] 비슷한 환경조건에 대한 서로 다른 혈통의 적응이다. 사실, 서로 다른 분류군의 특정 불계적 상동형질과 이들 생명체가 서식하는 환경 또는 적소(niche, 適所)에서 나타나는 특징 사이의 연관성은 종종 그러한 형질의 적응 의의(adaptive significance)에 대한 가장 좋은 첫 증거다. 예를 들어, 길고 가는 부리는 꿀을 섭취하는 새 가운데 적어도 서로 다른 여섯 혈통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이들 새는 그러한 부리를 사용해, 먹이를 얻을 수 있는 긴 관 모양의 꽃 바닥에 모인 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림 3.8].



그림 3.8 비슷한 부리 형태가 꿀 섭취에 대한 적응으로써 독립적으로 진화한 네 가지 조류 분류군. (A) 풍금조과(family Thraupidae, 風琴鳥科)인 남아메리카 꿀먹이새(Cyanerpes caeruleus). (B) 되새과(family Fringillidae)에 속하는 하와이 꿀먹이새 중 하나인 Iiwi vestiaria coccinea. 하와이 꿀먹이새는 적응방산으로 잘 연구된 사례다. (C) 벌새과(family Trochilidae)인 벌새. 그림에 나와 있는 남미산 보라색 벌새인 Campylopterus hemileucurus는 코스타리카(Costa Rica)에서 산다. (D) 태양새과(family Nectariniidae)의 태양새. 붉은가슴태양새라 불리는 Nectarinia pulchella는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 호수가 위치한 지역 근처에서 서식하는 토착종이다. [A, photo © fotolincs/Alamy Images; B, Photo Resource Hawaii/Alamy Images; C, Anthony Mercieca/Photo Researchers, Inc.; D, Photo Resource Hawaii/Alamy Images.]



한 종의 형질이 다른 종의 형질을 닮도록 특이적으로 진화한 상태인 의태(mimicry, 擬態)는 수렴진화의 흥미롭고 특별한 예를 보여준다. 가장 흔한 의태 두 종류로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와 뮬러 의태(Müllerian mimicry)가 있는데, 이 용어는 이들 현상을 처음 연구한 박물학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이들 두 의태는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다. 베이츠 모방자(Batesian mimic)는 [모방모델로서] 맛없거나 위험한 동물을 닮도록 진화한 맛있거나 위험하지 않은 동물로, 무해한 많은 파리는 말벌을 닮은 밝은 노랑과 검정 무늬를 가지며 몇몇 맛있는 나비 종은 독이 있는 다른 나비 종과 매우 많이 닮았다 [그림 18.23 참조]. 따라서 기분 나쁜 경험 때문에 모방모델을 피하도록 학습한 포식자는 모방자를 공격하는 것 역시 피하려 할 것이다.


뮬러 의태에서는 둘 이상의 맛없거나 위험한 종에서 비슷한 특성이 진화했는데, 이런 경우에 한 종의 형질을 기분 나쁜 경험과 연관 짓는 포식자는 두 종 모두 공격하기를 피하려고 할 것이다. 같은 색 무늬를 공유하는 [베이츠 모방자인] 맛있는 나비와 나방뿐만 아니라 [그림 18.24에 나와 있는 뮬러 모방자인] 계통적으로 멀리 연관된 몇몇 맛없는 나비 종이 관련된 의태 “고리”(ring)의 많은 예가 있다. 베이츠와 뮬러 의태의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중간 상태를 포함해 의태의 진화에는 복잡한 사례가 많이 있다 [Mallet and Joron 1999]. 의태 연구는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이바지를 했으며, 의태는 이 책의 여러 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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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2)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3)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4)
[번역] 『Evolution』 Ch. 3. 진화 양식 - (5)



그림 3.0 건조한 환경에 대한 다양한 적응.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서식하는 식물의 적응으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물을 저장하며 잎이 없는 두툼한 줄기, 빛을 반사함으로써 열부하(熱負荷)를 줄이도록 빽빽이 모인 가시, 작은 잎, 가끔 내리는 빗물을 빨아들이도록 넓게 퍼진 뿌리, 짧은 계절성 개화(開花). 이러한 적응은 계통관계가 먼 많은 식물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Photo © J. A. Kraulis/Materfile.]



생명체를 분류하기 위해 계통분류학자는 이들의 특성을 비교한다. 이러한 비교는 진화에 관한 많은 토대를 제공한다. 특히, 앞장에서 소개한 계통분석법과 결합했을 때 이것은 다양한 생물군(生物群)의 진화 역사를 추론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기초가 되는데, 그러한 역사는 때때로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다양한 조류, 식물 또는 진균류 사이의 계통관계는 이들 생명체에 관한 흥미와 지식을 지속해서 확대해왔던 사람에게는 매혹적이며, 지난 20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 자신의 기원을 조사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3.1 참조].



그림 3.1 생명의 나무에서 모든 생명체의 범(汎) 공통조상으로부터 사람까지의 진화 경로를 추적하기. 진화 역사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 일부를 형질변화로 계통수 위에 배치해 나타냈다. 그러한 진화 역사는 때때로 본질적으로 매력적이다. *


* [용어설명] tunicates, 피낭동물류(被囊動物類); multicellularity, 다세포성(多細胞性); digestive cavity, 소화강(消化腔); deuterostomes, 후구동물류(後口動物類); blastopore, 원구(原口); chordates, 척삭동물류(脊索動物類); dorsal nerve cord, 배신경삭(背神經索); middle earbone, 중이골(中耳骨); binocular vision, 쌍안시(雙眼視); arboreality, 수상생활(樹上生活) 또는 나무에서 살기; anthropoid apes, 유인원(類人猿).



그런데 계통은 단지 분류군 사이의 분지관계 그 이상을 알려준다. 화석기록이 없을 때조차도 생명체의 특성에 나타나는 변화의 역사를 꽤 확실히 추론할 수 있다. 사실, 계통은 DNA 서열, 생화학적 경로 및 행동과 같은 화석 흔적을 거의 또는 전혀 남기지 않는 형질의 진화 역사를 추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계통연구와 계통분류연구로 우리는 지리적 분포, 서식지 연관성, 그리고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생태적 상호작용과 연관된 변화뿐만 아니라 유전자, 유전체, 생화학적∙생리학적 특징, 발생과 형태, 그리고 생활사와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과거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림 3.1은 뼈, 양막(羊膜), 중이골(中耳骨), 쌍안시(雙眼視) 그리고 이족보행(二足步行)과 같은 중요한 형질을 우리 조상이 획득한 순서를 나타낸다. 많은 종류의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그러한 변화를 추론함으로써 우리는 여기서 공통 주제, 즉 진화 양식(pattern of evolution, 進化樣式)을 발견할 수 있다.


생명체는 매우 다양하므로 물리학에서 알려진 것과 같은 종류의 보편적인 생물학 법칙이 거의 없다 [Mayr 2004]. 그러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진화적 변화가 일반적이었는지 일반화할 수 있는데, 그런 일반적인 진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과학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일반적인 변화 양식은 진화생물학이 설명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DNA 양인] 유전체 크기가 종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만일 한 종의 유전체가 다른 종보다 더 크다는 것만을 알기보다는 많은 분기군(分岐群)에서 유전체가 진화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반적으로 점점 더 커졌음을 알게 된다면, 유전체 크기에 대한 설명을 찾는 일이 [아마도 더욱 쉽고]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다.


따라서 계통연구와 비교연구는 진화의 거의 모든 측면에 관한 통찰을 제공하며 때때로 진화과정의 이해를 돕는다 [Futuyma 2004]. 이 장에서는 생명체 수준에서 형태적 특징 등에 집중함으로써 계통분류학적 분석과 계통분석의 오랜 역사에서 출현한 가장 중요한 진화 양식 몇 가지를 설명할 예정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유전체와 행동의 진화 같은 다른 주제에 대한 계통적 통찰과 마주칠 것이다.


3.1 진화 역사와 분류


공통조상으로부터 변형을 수반한 유래라는 다윈의 가설은 실제 진화 역사의 결과로서 종 사이의 유사성을 설명했기 때문에 생명체를 분류하는 데 과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래서 많은 분류학자는 분류는 진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진화와 생물다양성의 장기적인 양식을 논의할 때, 척삭동물문(phylum Chordata, 脊索動物門), 척추동물아문(subphylum Vertebrata, 脊椎動物亞門), 포유강(class Mammalia, 哺乳綱) 또는 사람속 같은 명명된 분류군을 언급해야 하므로 분류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분류가 진화를 반영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정말 그런가?


진화에는 두 가지 주요 특징이 있는데, 어떤 혈통이 둘 이상의 후손계통으로 분지하는 [“branch”를 뜻하는 그리스어 clados에서 유래한] 분기진화(cladogenesis, 分岐進化)와 다른 하나는 각각의 후손에서 다양한 특성의 진화적 변화를 뜻하는 [“up”을 뜻하는 그리스어 ana에서 유래했으며 지향(指向)적 변화를 나타내는] 향상진화(anagenesis, 向上進化)다. 공룡의 앞다리에서 새의 날개가 진화하는 것과 같은 일부 진화적 변화는 특히 놀랍고 적응적으로 중요하다. 전통적인 많은 분류는 분기진화와 향상진화를 둘 다 전달하도록 구성되었다. 예를 들어, 조류는 날개와 비행에 대한 적응 때문에 [조류강(class Aves)처럼] 다른 양막 척추동물류와는 다른 강에 놓이며, 인간은 직립자세(直立姿勢), 커다란 뇌, 그리고 자기 본위성(egocentricity, 自己本位性) 때문에 [사람과(family Hominidae)처럼] 다른 영장류와는 다른 과에 놓인다. 하지만 하나의 분류에 분기진화와 향상진화 모두를 반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림 2.9B에 나와 있는 사람상과 구성원의 계통을 고려했을 때, 사람을 대형 유인원과는 다른 과에 놓는 것이 사람의 뇌 크기와 다른 특징의 엄청난 분기를 반영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사람이 고릴라보다 침팬지에 계통적으로 더 가깝게 연관해 있다는 사실은 모호해진다.



그림 3.2 단계통군, 측계통군 그리고 다계통군. 측계통군과 다계통군이 오늘날 분류학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계통분류학자 대부분은 단계통군을 선호한다.



계통관계를 근거로 [명명된 생물군인] 분류군은 단계통적, 다계통적 또는 측계통적일 수 있다 [그림 3.2]. 앞서 지적한 대로 단계통적 분류군(monophyletic taxon)은 단일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알려진 모든 후손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조류강의 조류, 딱정벌레목(phylum Coleoptera)의 딱정벌레, 속씨식물문(division Angiospermae)의 현화식물(顯花植物)은 단계통군으로 여겨진다. 다계통적 분류군(polyphyletic taxon)은 다른 분류군에 놓인 종과 계통적으로 더욱 밀접한 연관이 있으면서 자신이 현재 속해 있는 분류군과는 계통적 연관성이 떨어지는 혈통을 포함한다. 오늘날 계통분류학자는 다계통군을 부적절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고래류는 어류와 공유하지 않는 [예를 들면, 가장 초기의 사지동물이나 가장 초기의 포유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으므로 고래류를 어류에 포함하는 분류군은 다계통적이다 [그림 2.6 참조]. 측계통적 분류군(paraphyletic taxon)은 공통조상의 후손 일부가 다른 분류군에 놓여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단계통적 분류군이다.


측계통적 분류군에는 독특한 적응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분류군에 놓였던 종이 보통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성성잇과는 오랑우탄, 고릴라 그리고 침팬지로 구성해 있지만, 침팬지의 가장 가까운 근연종인 사람이 성성잇과가 아니라 사람과에 놓여 있으므로, 성성잇과는 측계통적이다. 공룡과 악어류가 파충강(class Reptilia, 爬蟲綱)에 놓이고 조류가 그 독특한 비행에 대한 적응 때문에 조류강에 놓인다면, “파충강”은 측계통적이다. “파충류”같은 전통적인 분류군을 언급하는 것도 때때로 유용하지만, 이 명칭이 오늘날 공식적인 분류에서 사용되지 않음을 명시하기 위해 인용부호로 묶을 필요가 있다.


점점 더 많은 계통분류학자는 모든 분류군은 단계통적이어야 하므로 공통조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빌리 헤니히의 분류 철학을 받아들였다. 헤니히와 그 추종자는 “Pongidae”와 “Reptilia” 같은 측계통적 분류군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헤니히는 첫째로 진화 역사의 실제 분지 양식을 발견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그림 2.4 참조], 그리고 둘째로 분류 기준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계통분류학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 서로 다른 두 제안은 하나로 합쳐져 분기학(cladistics, 分岐學)으로 알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분기학적 방법으로 구성된 분지 도표를 때때로 분기도(cladogram, 分岐圖)라고 하며, 이때 단계통군은 분기군(clade, 分岐群)으로 불린다.


정확한 [실제] 계통을 추정한다 할지라도, 분류의 어떤 측면은 여전히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진화 역사 초기에 [포유류를 닮은 파충류인 수궁목(order Therapsida, 獸弓目)과 같이 기반군(stem group, 基盤群)이라 불리는] 어떤 종의 멸종한 분류군에서 [포유강(class Mammalia, 哺乳綱)와 같이 정상군(crown group, 頂上群)이라 불리는] 뚜렷한 파생형질을 가진 후기 분류군의 출현을 종종 발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군을 배제한 기반군의 어떤 이름도 분류의 불만족스러운 요소인 측계통적 분류군을 가리킬 수 있다. 이러한 예로 [보통 조류강에 놓이는] 정상군인 조류로 진화한 공룡인 수각아목(suborder Theropoda, 獸脚亞目)이 있다.


더욱이, 단계통군의 구성원을 몇 가지 분류군으로 나눠야 할지 또는 하나의 분류군으로 합쳐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임의적이다. 예를 들어, 그림 2.9에 나타난 계통처럼 오랑우탄을 성성잇과에 놓고 고릴라, 침팬지, 사람을 사람과 같이 다른 과에 두거나, 또는 이들 종 모두를 사람과에 놓음으로써 우리는 단계통적인 과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림 2.9B에 나와 있는 것처럼] 후자에서 언급한 분류가 나중에 널리 채택되었는데, 사람과 대형 유인원을 포함하는 단일 과(科) 내에서 사람아과(subfamily Homininae) 는 아프리카 유인원과 사람을 포함하며, 사람족(tribe Hominini)은 [통칭 “호미닌”(hominin)이라고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와 멸종한 여러 가지 사람의 근연종으로 구성된 분기군을 가리킨다. 일부 연구자는 [판속의] 침팬지와 보노보를 사람족에 포함한다. *


* 사람과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2장의 각주를 참조하라.


3.2 형질의 진화 역사 추론하기


계통정보의 가장 중요한 용도 가운데 하나는 형질상태의 위치를 계통수 위에다가 “지정”(mapping)하고 파시모니 원리를 사용해 각 공통조상의 형질상태를 추론함으로써 관심이 있는 특성의 진화적 변화에 관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2장 참조]. 즉, 우리는 독립적인 증거가 결여된 가장 적은 불계적 상동의 진화적 변화를 가정하는 데 필요한 형질상태를 조상에 할당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는 언제 [계통의 어느 분지 또는 부분에서] 형질변화가 발생했는지 추론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이들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그림 3.3 사람상과에서 마주 잡을 수 있는 발가락 대 마주 잡을 수 없는 발가락 형질변화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역사. [O: 오랑우탄; C: 침팬지; H: 사람]. (A) [열린 원으로 표시된] 마주 잡을 수 없는 발가락이 침팬지와 사람의 공통조상인 A3에 있다고 가정하면, [가는 눈금 선으로 표시된] 두 가지 가능한 형질상태도 가정해야 한다. (B) 만일 마주 잡을 수 있는 발가락이 A3에 있다고 가정하면, 단 한 번의 변화만 가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람이 마주 잡을 수 있는 발가락을 가진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결론짓는 것이 가장 파시모니하다.



예를 들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는 [우리의 엄지손가락처럼] 마주 잡을 수 있는 엄지발가락을 가졌지만, 사람은 마주 잡을 수 없는 엄지발가락을 갖고 있다. 그림 3.3에서 두 가지 가능한 진화 역사를 고려해보자. 최근 공통조상이 나중에 오도록 공통조상을 A1, A2, A3으로 표시했다. 그림 3.3A에서 A1과 A2는 마주 잡을 수 있는 엄지발가락을 가지고 침팬지와 사람의 직전 공통조상인 A3가 마주 잡을 수 없는 엄지발가락이 가진다고 가정하면 [그림 3.3A], 침팬지가 조상상태로 역진하는 것을 포함해 두 번의 변화가 있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A1과 A2와 마찬가지로 A3가 마주 잡을 수 있는 엄지발가락을 가진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사람 혈통에서 마주 잡을 수 없는 발가락으로 변하는 단 한 번의 진화적 변화만 추론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파시모니한 가설이므로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은 마주 잡을 수 있는 엄지발가락을 가졌다는 것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추정이다.


이것은 단지 형질진화를 추론할 수 있는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지극히 단순하고 심지어 명확하기까지 한 예다. 더욱 흥미롭고 도전적인 사례가 수렴진화와 관계된다. 예를 들어, 뱀과 [겉보기에 지렁이를 닮은 양서류인] 무족영원류(caecilians, 無足-類)는 둘 다 다리가 없다. 따라서 그림 2.10에 나와 있는 척추동물류의 계통은 이들 생명체의 무족 상태가 사지동물 조상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계통수에서 진화적 추론을 하는 많은 예와 마주칠 것이다. 이들은 분자진화 연구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데 [19장 참조], 조상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과 기능의 추론에도 이용된 적이 있으며, 나중에 실험적으로 합성되기도 했다. 분자생물학자 닐스 에이디(Niles Adey)와 그의 동료는 L1이라 불리는 역전위인자(retrotransposon, 逆轉位因子)를 이용해 그런 실험을 했다 [Adey et al. 1994]. 포유류 유전체에는 역전위인자와 비슷한 바이러스를 닮은 유전자 요소의 복사본이 많이 있는데, 이들 유전자는 자신을 복사해 유전체의 어떤 위치에라도 삽입할 수 있다 [역전위인자와 다른 종류의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 轉移因子)는 8장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L1 역전위인자에는 자신의 RNA 전사물(transcript, 轉寫物)을 DNA 복사본으로 전사할 수 있는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 逆轉寫酵素)에 대한 유전정보가 있는데, 이때 복제된 DNA는 유전체 안으로 삽입된다. 전사(transcription, 轉寫)는 L1 내의 A로 표시된 위쪽 프로모터(upstream promoter)에서 시작하는데, 쥐에서 L1의 복사본 일부는 F로 표시된 비활성 프로모터(inactive promoter)를 가진다. 대략 200개의 염기쌍 서열로 구성된 F 프로모터의 염기서열은 복사본마다 다른데, 이것은 약 6백만 년 동안 발생한 다양한 돌연변이 때문에 비활성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에이디와 그의 동료는 비활성 F 프로모터 서열의 기원인 기능 있는 조상 프로모터의 “부활”에 착수했다. 30개의 서로 다른 F 프로모터의 서열에 관한 계통분석을 이용하면서 이들은 조상 서열에 대한 최상의 추정을 구축하기 위해 파시모니 원리를 사용했다. 그다음에 이 서열을 합성해서 “보고 유전자”(reporter gene, 報告遺傳子)에 부착했는데, 만일 이 프로모터가 보고 유전자의 전사가 일어날 수 있게 한다면 단백질 생성물을 검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재조합 유전자를 조직 배양(tissue culture, 組織培養)으로 키운 쥐 세포 안에 집어넣었다. 실험은 완전히 성공했다. 합성 프로모터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단백질량이 원래 활성화된 A 프로모터에 부착된 대조군 유전자에서 만들어진 양과 같았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비활성 L1 복사본이 기능 있는 서열에서 진화했다는 가설을 지지하며,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계통분석의 힘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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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1)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2)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3)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4)


2.5 계통분석의 어려움



그림 2.15 화석기록에 근거해 가장 최근 공통조상 이후 흐른 시간에 대하여 도표로 나타낸 짝지은 척추동물 종 사이에서 차이가 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COI의 DNA 서열의 염기쌍 비율. 서열 차이는 코돈(codon)의 세 번째 염기 위치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했고, 두 번째 염기 위치에서 가장 느리게 진화했다 [8장 참조]. 세 번째 염기 위치에서 발생한 분기는 처음 공통조상이 출현한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증가했지만, 같은 위치에서 발생한 다중치환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었다. 따라서 이들 위치에서는 7천5백만 년 전에 분기한 분류군에 대해선 그 어떤 계통정보도 얻을 수 없다. 이 분석에 사용한 종은 잉어목(order Cypriniformes)에 속하는 두 종, 개구리류 한 종, 조류 한 종, 유대류 한 종, 설치류 두 종, 바다표범류 두 종, 수염고래류 두 종, 그리고 사람속이다. [After Mindell and Thacker 1996.]



실제로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를 푸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계통관계를 풀기 위해 개발된 그러한 방법에 관한 내용은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어려움 가운데 몇 가지를 언급하도록 하자. 그럼에도, 계통분석을 어렵게 하는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매우 자주 마주칠 것이다.


  1. 형질을 기록하는 것은 어렵다. 계통분석을 위한 기본 자료를 얻을 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부 형질은 계통분류학에 중요하며 멸종한 생명체에 대해서 전형적으로 이용 가능한 유일한 자료다. 생명체가 같은 형질상태를 갖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상세하고 광범위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은 쉽거나 사소한 일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독립형질이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만일 어떤 포유류의 턱에 앞니 두 개, 송곳니 한 개, 앞어금니 세 개, 그리고 어금니 네 개가 있는데, [예를 들어, 개미핥기와 같은] 다른 포유류에는 이빨이 전혀 없다면, 이것은 [이빨이 전혀 없는 것과 같은] 한 가지 형질의 차이를 나타낼까? 아니면 [네 종류의 이빨이 없는 것과 같은] 네 가지 차이를 뜻할까? 아니면 열 가지 차이를 뜻할까? DNA 서열의 여러 위치에서 동시 다발로 돌연변이가 발생했어도 생물학적 기능은 유지하도록 진화가 일어났다면 DNA 서열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rRNA 구조는 “줄기”(stem)를 형성할 때 반드시 쌍을 이뤄야 하는 짧은 RNA 서열을 가지는데, 이들 서열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독립적이지 않다.
  2. 불계적 상동이 매우 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자료 집합에서는 똑같이 좋거나 거의 비슷한 정도로 괜찮은 몇몇 서로 다른 계통추정을 얻을 수도 있다. 다른 계통가설이 단지 몇 개의 추가적인 진화적 변화만을 암시한다면 특정 계통추정에 의존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대신, 이런 때에는 [다른 형질에 관한 자료와 같은] 더 많은 자료를 얻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3. 진화과정은 가끔 앞선 진화 역사의 흔적을 지운다. 연구 중인 어떤 분류군이 아주 오래전에 분기했거나 매우 빠르게 진화했다면, 그들의 특성 가운데 많은 부분이 상당히 많이 분기해서 상동형질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빨은 많은 포유류 사이의 계통관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특징을 제공하지만, 이빨이 없는 개미핥기 사이의 계통관계를 평가할 때에는 사용할 수 없다. DNA 서열에서 다중치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같은 위치에서 발생할 수 있으므로, 초기 공유파생형질을 없앨 수 있다. 어떤 위치에서 발생한 A에서 C로의 돌연변이는 그 위치에서 더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공유파생형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후손 분류군에서 C가 G로 대체되거나 A로 역진한다면, 공통가계의 증거는 사라진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치환이 서로 다른 혈통에서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수렴진화와 [“다중타격”(multiple hits, 多重打擊)”인] 연속적 치환 때문에 분류군 사이의 서열이 분기하는 양이 줄어들어 결국 변동이 상쇄되어, 느리게 진화하는 서열보다는 빨리 진화하는 서열에서 더 빨리 안정기에 도달한다 [그림 2.15].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빠르게 진화하는 DNA 서열은 최근 분기한 분류군의 계통분석에 유용하지만 [그림 2.16], 늦게 진화하는 서열은 먼 과거에 분기한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를 평가하는데 적합하다.
  4. 어떤 혈통이 너무 빠르게 분기하면 각각의 단계통군의 조상에서 뚜렷한 공유파생형질이 진화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림 2.17]. 진화방산(evolutionary radiation, 進化放散)라 불리는 단기간 동안 많은 혈통이 “폭발”하듯 분기하는 현상은 때때로 각각의 혈통이 서로 다른 적응을 획득하기 때문에 종종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 適應放散)이라고도 불린다. 예를 들어, 명금류(songbirds, 鳴禽類)의 많은 과는 단시간에 다양해진 것처럼 보이므로 이들의 계통관계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5. 정확히 추정된 유전자 계통수도 잘못된 종 계통을 내포할 수 있다. 이것은 도전적인 개념이지만, 몇몇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다 [11장과 16장 참조]. 두 번의 연속적인 분지 사건의 발생으로 처음에 종 A가 출현하고 나중에 종 B와 C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종 A, B, C를 낳은 조상 종이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다형성(polymorphism, 多形性)인] 유전자의 서로 다른 두 가지 단상형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단지 우연으로 단상형 1이 종 A에 고정되고 [즉, 다른 단상형은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遺傳的浮動)으로 그 종에서 소실되었다; 10장 참조] 단상형 2는 B와 C의 공통조상에 고정된다면, 유전자 계통수는 그러한 종의 계통수를 반영할 것이다 [그림 2.18A]. 그러나 분기하고 있는 종으로 그러한 단상형이 분류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즉, 유전자 혈통의 불완전 정렬(incomplete sorting, 不完全整列)이 있다면] B와 C의 공통조상은 다형성이며, 따라서 그러한 단상형은 가장 가깝게 연관된 종은 같은 단상형을 물려받지 않는 방식으로 우연히 세 종에 고정될 것이다 [그림 2.18BC]. 그러므로 이들 단상형에 근거한 계통은 종 사이의 잘못된 계통관계를 내포할 것이다. 그림 2.19는 이러한 실제 예가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시클리드어류(chiclids)와 가깝게 연관된 종 일부는 미토콘드리아 DNA 단상형의 유전자 계통수의 여러 위치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들 종 각각이 다른 종과 함께 공통조상으로부터 몇몇 유전자 혈통을 상속받았음을 의미한다.



그림 2.16 서열의 진화속도에 차이가 있는 유전자는 계통분석에 이용할 때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엽록체 유전자인 ndhFrbcL을 토대로 한 계통추정이 가지과(family Solanaceae, 茄子科)에 속하는 토마토(Lycopersicon), 후추(Capsicum), 담배(Nicotiana) 등의 몇몇 속에 대하여 나타나 있다. ndhF 유전자는 rbcL 유전자보다 더 빨리 진화했다. 그림에 묘사된 [연속한 이분지 보다는 같은 지점에서 다양한 분지가 출현하는] 다분지로 미루어 봤을 때, rbcL로는 상대적으로 어린 많은 속 사이의 계통관계에 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더욱 빨리 진화하는 유전자와는 달리 rbcL은 샐피글로시스 (Salpiglossis), 피튜니아(Petunia), 그리고 피튜니아속의 자매군 사이에서 더 오래전에 발생한 분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After Olmstead and Sweere 1994.]



그림 2.17 빠른 진화방산. 파생형질상태가 이들 분류군의 공통조상으로부터 거의 진화하지 못할 정도로 분류군 W, X, Y, Z 모두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분기했으므로 이들 사이의 계통관계를 결정할 수 없다.












그림 2.18 [붉은색 선으로 나타낸] 유전자 계통수는 [바깥쪽을 감싸고 있는 부분인] 그 유전자를 표본 조사한 종의 계통을 반영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종 A, B, C는 두 번의 연속적인 분지 사건으로 출현했다. (A) 다른 자료로 추정한 실제 계통. 단상형 2와 3은 [굵은 눈금선인] 공유 염기쌍 치환(shared base pair substitution, 共有鹽基雙置換) 두 개로 표시된 단계통군을 형성하며, 유전자 계통수로 나타난 종 계통은 종의 실제 계통과 일치한다. 가는 눈금선은 그림에서 세 가지 단상형을 구분 짓는 돌연변이를 의미한다. (B) 단상형 1과 2는 단계통군을 형성하지만, 종 A와 B가 자매군으로 잘못 나타난다. 왜냐하면, 종 B와 C의 공통조상이 [단상형 2와 3인] 두 유전자 혈통에 대해서 다형성이기 때문이다. 자매군 B와 C에 고정된 유전자 혈통은 자매 혈통이 아니다. (C) 종 B와 C의 공통조상이 유전자 혈통 2와 3에서 다시 다형성이지만, 이들 유전자의 고정(固定)은 그림 B를 뒤집은 것이다. 유전자 계통수에 종 A와 C가 가장 밀접하게 연관해 있다고 잘못 나타나 있다. [after Maddison 1995.]



그림 2.19 동아프리카 말라위 호(Lake Malawi)의 시클리드어류 32종에서 채취한 표본의 미토콘드리아 단상형 계보 [또는 유전자 계통수]. 각각의 분지는 하나 이상의 종에서 발견될 수 있는 단상형을 나타낸다. 그러한 단상형이 발견되는 서로 다른 종은 세 글자로 된 머리글자로 표시했다. 색을 입힌 세 글자 이름표로 표시된 종은 αβ 혈통 모두에서 단상형이 다형성인데, 이것은 그들의 공통조상 또한 다형성임을 뜻한다. 많은 종이 하나 이상의 단상형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이들 종이 매우 최근에 기원했음을 뜻한다. 분명히, 유전자 계통수는 이들 종이 출현한 분지 순서를 나타내지 않는다. [After Moran and Kornfield 1993.]



2.6 교잡 및 수평 유전자 이동


많은 식물 종과 몇몇 동물 종은 두 조상 종 사이의 교잡(hybridization, 交雜)으로 [또는 이종교배(interbreeding, 異種交配)로] 출현했다 [16장 참조]. 그런 경우에 계통 일부는 엄격하게 분지하기보다는 망상형(reticulation 또는 netlike, 網狀型)이 되며, 잡종 개체군의 유전자 일부가 두 가지 다른 종 혈통의 각각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계통적으로 가장 밀접히 연관될 수 있다 [그림 2.20]. 즉, 서로 다른 유전자에 근거한 종 계통이 달라질 수 있다.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불일치는 비록 그것이 다른 이유로 발생할 수 있더라도 망상진화(reticulate evolution, 網狀進化)로 알려진 교잡에 의한 진화의 잠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유전체(genome, 誘電體) 대부분이 관여하는 교잡과는 대조적으로 수평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水平遺傳子移動)이나 측면 유전자 이동(lateral gene transfer, 側面遺傳子移動)에서는 단지 한 종의 유전자 몇 개가 다른 종의 유전체 안으로 유입한다. [이 용어는 부모에서 자손으로 유전자가 “수직적”으로 이동하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반대된다]. 예를 들어, 어떤 특정 “바이러스 유전자”는 오직 고양이의 근연종 한 분류군과 긴꼬리원숭잇과의 원숭이에게서만 발견된다. 이 유전자는 이들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보다는 긴꼬리원숭이와 더 가까이 연관해 있음을 뜻하므로 이것은 다른 유전자가 가리키는 계통과는 명백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림 2.21]. 이 유전자는 바이러스를 통해 원숭이에서 고양이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측면 유전자 이동은 세균의 진화에 매우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유전자는 박테리오파지에 의한 감염이나, 죽은 세포에서 방출한 노출된 DNA를 박테리아가 흡입하거나, 박테리아 간의 접합(conjugation, 接合) 등으로 멀리 연관된 종 사이로 이동할 수 있다 [Ochman et al. 2000]. 실제로, 항생제 내성에 대한 유전자, 숙주에 침입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온천과 같은 극한 환경의 적응과 관련된 유전자가 측면 유전자 이동으로 다양한 세균에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계통적 불일치와 몇 가지 다른 일련의 증거로 잘 알려졌다.



그림 2.20 교잡과 망상진화. (A, B) 서로 다른 두 유전자의 서열을 토대로 한 종 A, B, C 그리고 외군(O)의 계통. (C) 종 B는 종 A와 C 사이의 교잡으로 출현했다는 사실과 이 분류군의 역사를 망상진화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음을 이 그림에 나와 있는 계통관계의 불일치를 통해 알 수 있다. [After Sang and Zhong 2000.]



그림 2.21 몇몇 긴꼬리원숭잇과인 구대륙원숭이와 고양잇과(family Felidae) 동물의 계통. 구대륙원숭이와 [파란색 분지로 표시한] 고양이의 한 분류군이 매우 비슷한 서열의 바이러스 유전자를 가지므로, 이들 원숭이의 조상에서 고양이의 조상으로 바이러스 유전자가 수평 이동했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다. [After Li and Graur 1991.]



2.7 요약


  1. 계통은 종 또는 분류군이 공통조상에서 연속적으로 기원한 역사다. 이것은 계통수로 나타낼 수 있는데, 계통수의 각 분지점은 조상 종이 두 혈통으로 분리됨을 나타낸다. 가까이 연관된 종은 멀리 연관된 종보다 더 최근 공통조상을 가진다. 특정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종의 분류군은 단계통군이며, 계통수는 단계통군이 포함된 집합을 나타낸다. 분류군의 특징으로 추정된 계통수는 진화관계를 나타내며, 진화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하는 뼈대를 제공한다.
  2. 생명체 사이의 전체적인 유사성이 계통관계를 가장 잘 반영하진 않는다. 어떤 두 종은 [제3의 종이 분기했던 것과는 달리] 조상형질상태를 유지하고 있거나, [불계적 상동처럼] 비슷한 형질상태가 독립적으로 진화했거나, 공통조상에서 진화한 파생형질상태를 공유하기 때문에 제3의 종보다 서로 더 비슷할 수 있다. 오직 유일하게 공유된 파생형질상태만이 계통관계의 증거가 된다. 따라서 단계통군은 분류군 구성원이 공유한 유일한 파생형질상태로 특징지을 수 있다.
  3. 계통관계는 혈통 사이의 서로 다른 진화속도와 불계적 상동으로 모호해질 수 있다. 몇 가지 방법이 이들 잘못된 특징에 직면하며 계통을 추정하는 데 사용된다. 최대 파시모니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방법에 따르면 계통에 대한 최상의 추정은 종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적은 진화적 변화를 가정한 계통수다. 때때로 이외의 다른 방법이 더 신뢰할만하다.
  4. 계통수는 진화관계에 관한 서술이며, 모든 과학적 서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가설이다. 서로 다른 형질과 같은 새로운 자료가 가설을 지지할 때 우리는 가설의 타당성을 확신할 수 있다. 많은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에 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잘 입증되는 계통 또한 많이 있다.
  5. 형태적 자료와 분자 자료 모두가 계통분석에 사용된다. DNA 서열의 진화속도는 어떤 경우에는 [“분자시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일정하게 나타나는데, 이때 서로 다른 혈통의 서열은 대략 일정한 속도로 분기한다. 이 같은 경우에 전체적인 유사성 정도가 계통관계를 가리킬 수 있다. 몇몇 혈통의 화석이 알려졌다면 서열의 절대진화속도는 때때로 보정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속도는 분류군의 기원과 같은 몇몇 진화적 사건이 일어난 절대적 시기를 추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6. 진화과정이 계통관계의 추론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공유된 파생형질상태는 DNA 서열의 같은 위치에서 염기쌍 치환이 연속적으로 발생했을 때처럼 연속적인 진화로 지워질 수 있다. 만일 다양한 혈통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공통조상에서 기원한다면, 연속적인 분지 사건 사이에서 파생형질상태가 진화할 정도로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계통관계를 밝히기 어려울 수 있다. 서로 다른 종으로부터 얻은 유전자로 [또는 DNA 서열로] 정확하게 추정된 계통은 그 종의 실제 계통과 다를 수 있다. 충분한 자료가 있을 때만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7. 어떤 종이 서로 다른 조상 종 사이의 교잡으로 기원했거나 서로 다른 혈통 사이에 수평[측면] 유전자 이동이 있었다면, 계통분석을 위해 반드시 하나 이상의 분지 양식을 고려해야 한다. 만일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서로 다르게 분지한 계통을 나타낸다면 그러한 상황을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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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1)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2)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3)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5)


2.3 분자시계


진화가 오로지 분기로만 일어났고 [즉, 불계적 상동이 없고], 모든 혈통이 일정한 같은 속도로 진화했다면, 두 종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의 개수는 공통조상에서 분기한 이후 지난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림 2.12]. 이때 우리는 [그림 2.4A처럼] 단순히 분류군 쌍 사이의 차이 정도에 따라 계통, 즉 분지의 상대적 순서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림 2.12 (A) 분기가 거의 일정한 속도로 일어난다면 혈통 분기의 상대적 시간은 분류군 사이의 [유사성 또는] 전체적 차이로 결정할 수 있고, 따라서 분류군의 계통을 추정할 수 있다. (B) 진화가 거의 일정한 속도로 일어나 분류군 사이의 차이를 추정할 수 있는 가설계통. 가는 눈금선은 새로운 형질상태의 진화를 나타낸다.



초기 분자계통학 연구에 따르면 DNA 서열은 진실로 일정한 속도로 진화하며 분기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형태적 특징에서는 분명히 사실이 아니다.] 이 개념은 분자시계(molecular clock, 分子時計)라고 불렸다 [Zuckerkandl and Pauling 1965]. 정확한 분자진화시계(molecular evolutionary clock, 分子進化時計)가 존재하므로 계통을 추정하는 방법이 간단해질 수 있다. 또한, 분자시계가 얼마나 빨리 “똑딱거리는지” 결정할 수만 있다면 서로 다른 분류군이 분기한 이후 지난 절대시간도 추정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했던 계통수는 분지가 일어난 절대시간이 아니라 단지 분류군의 분지 순서와 그 상대적 시기만을 묘사할 뿐임을 명심하라.]


분자진화속도를 추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각각의 변화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그림 2.4그림 2.7에서처럼] 우리가 추정한 계통에 도표로 파시모니하게 작성함으로써 공통조상에서 기원한 쌍을 이루는 종 사이에서 누적된 차이의 개수를 [예를 들어, 염기쌍 돌연변이로 누적된 차이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그림 2.9B에서 사람속과 판속의 공통조상 사이에서는 [6374번 위치와 같은] 76개의 변화가 나타나고, 그 공통조상과 고릴라속 분지 사이에서는 [5365번 위치와 같은] 14개의 변화가 나타나며, 퐁고속 분지와의 사이에서는 [8230번 위치와 같은] 70개의 변화가 나타난다. 따라서 이들 사람상과의 구성원이 [붉은털원숭이인 마카카속으로 대표되는 긴꼬리원숭잇과에 속하는] 구대륙원숭이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분기한 이후, 사람속으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76+14+70+150=310개의 염기쌍 변화가 있었다.


만일 분기가 일어난 절대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면 어떤 혈통에서 발생한 염기쌍 치환의 평균속도도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긴꼬리원숭이류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2천5백만 년(25 My)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를 통해서 붉은털원숭이와 사람상과 구성원 사이에서 분기가 일어난 후 흐른 시간을 최소한 추정할 수 있다. * 붉은털원숭이 혈통에서 백만 년 당 각 염기쌍이 치환된 개수는 457/10,000개의 분석된 염기쌍/25 My=1.83 x 10-3개/My 또는 연간 1.83 x 10-9개다. 그리고 공통조상에서 사람속까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평균속도는 310/10,000/25=1.24 x 10-3개/My였다. 따라서 각각의 혈통에서 치환이 발생한 평균속도는 r = (457+310)/383.5/10,000/25 My 또는 1.534 x 10-3개/My다.


* My는 Mega year, 즉 백만 년의 약자다.


이런 식으로 어떤 분류군이 분기한 절대시간에 대한 화석기록에서 얻은 정보는 분자시계를 보정하는 데 [즉, 그 속도를 보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며, 좋은 화석기록을 남기지 않은 다른 분류군의 분기 시간을 추정하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영장류 종의 ψη-글로빈 위유전자 서열 사이에서 차이가 나는 염기쌍 비율이 0.0256이라고 가정하자. 분자시계를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현한다고 가정하자.


D = 2rt


이 식에서 D는 두 서열 사이에서 차이가 나는 염기쌍의 비율이고, r은 My 당 단위 염기쌍이 분기하는 속도며, t는 종의 공통조상 이후로 경과한 [My 단위의] 시간이며, 상수 2는 분기한 두 혈통을 나타낸다. 그림 2.9에서 추정했듯이 D=0.0256이고 r=0.001534라면 t=D/2r=8.3이므로, 두 종이 공통조상에서 분기한 시기는 8.3 My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림 2.13 분자진화속도가 대략 일정함을 보여주는 염기쌍 치환 대 분기 이후 경과한 시간. 각 점은 화석증거를 토대로 했을 때 x축 위에 표시된 시기에 가장 최근 공통조상이 출현한 현생 포유류 종의 쌍을 나타낸다. y축은 7가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에 나타난 두 종 사이의 차이로 추론한 염기쌍 치환의 개수를 나타낸다. 네 개의 초록색 원은 영장류 종의 쌍을 대표한다. [After Langley and Fitch 1974.]



찰스 랭글리(Charles Langley)와 월터 핏치(Walter Fitch)는 분자시계 가설을 검증하는 데 화석에서 얻은 자료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Langley and Fitch 1974]. 7가지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amino acid sequence)로 이들은 그들은 짝 지은 포유류 종 사이의 서로 다른 뉴클레오타이드 서열 개수를 추정했다. [8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하는지 배울 것이다]. 랭글리와 핏치는 분자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개수와 분기 이후 경과한 시간 사이에 강하지만 부정확한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그림 2.13]. 그들의 “시계”는 정교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계통을 추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열분기속도가 이 예만큼 거의 항상 일정하지는 않다 [Mindell and Thacker 1996; Smith and Peterson 2002]. 화석기록에서 얻은 분지 시간에 대한 정보 없이도 서열의 진화가 분자시계를 따르는지 알아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대속도 검증(relative rate test, 相對速度檢證)이다 [Wilson et al. 1977]. 우리는 어떤 공통조상으로부터 [즉, 계통수의 어떤 분지점(分枝點)으로부터] 그 조상에서 파생한 현생종 각각에 이르는 데 경과한 시간이 정확히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혈통이 일정 속도로 분기했다면, 하나의 후손 종에서 공통조상을 거쳐 다른 종에 이르는 계통수의 모든 경로를 따라 존재하는 [때때로 유전적 거리(genetic distance, 遺傳的距離)라 불리는] 변화의 개수는 대략 같아야 한다 [그림 2.14]. 사람상과 구성원의 예에서 [그림 2.9B 참조] 붉은털원숭이와 다양한 사람상과 구성원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개수는 [오랑우탄에 대해서는] 806개부터 [사람에 대해서는] 767개까지 범위 안에 들어간다. 사람 혈통이 다소 느린 것처럼 보이더라도, 서로 비슷한 이 숫자는 이들이 상당히 일정한 속도로 분기 분기했음을 가리킨다.



그림 2.14 분자분기(molecular divergence, 分子分岐)의 속도가 일정함을 보여주는 상대속도 검증. 서열은 현생종 A와 B 및 외군인 종 E에서 얻었다. Y와 X는 조상 종을 나타낸다. 이탤릭체 소문자는 각각의 분지를 따라 발생하는 차이의 개수를 [예를 들어, 뉴클레오타이드의 변화 개수를] 나타낸다. A와 E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DAE=a+c+d이고, B와 E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DBE=b+c+d이다. 만일 염기쌍 치환 속도가 일정하다면, a=b이므로 DAE=DBE이다. 일정한 속도가 계통을 통틀어 유지된다면, 종 X를 공통조상으로 가진 짝지어진 종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어떤 종의 다른 쌍과도 같을 것이다.



다양한 생명체에서 얻은 DNA 서열 자료에 적용된 상대속도 검증은 서열의 진화속도가 상당히 가깝게 연관된 분류군 사이에서 종종 매우 비슷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멀리 연관된 분류군은 때때로 다소 다른 진화속도를 나타냈다 [Li 1997]. 예를 들어, 설치류의 서열 진화속도는 영장류보다 두세 배 빠르다.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를 추정하기 위해 분자시계를 가정할 필요는 없으므로, 분자시계가 계통분석에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분자시계는 때때로 대략적인 분기 시기를 추정하는데 유용하므로 우리는 이 책 후반부에서 분자시계를 이용한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다.


2.4 유전자 계통수


지금까지 우리는 종의 계통수를 추론하는 데 관심을 뒀다. 같은 원리를 이용하면 우리는 단상형(haplotype, 單相型) 유전자의 다양한 DNA 서열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추론할 수 있다. 때때로 유전자 계통수(gene tree, 遺傳子系統樹) 또는 유전자 계보(gene genealogy, 遺傳子系譜)라 불리는 유전자의 계통은 어떤 단일 종이나 한 종 이상에서 기원한 서로 다른 단상형을 포함한다.


[단상형인] 하나의 DNA 서열에서 다른 형태가 돌연변이 때문에 출현한다 [8장 참조]. 가장 간단한 종류의 돌연변이는 어떤 단일 위치에서 하나의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쌍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 일련의 가설적 단상형을 고려해보자.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일련의 염기쌍 돌연변이로 발생한 7가지 단상형을 가정하자.


여기에서 단상형 3은 단상형 2의 7번 위치가 C에서 T로 치환해 발생했다. [그 역도 가능하다]. 새로운 단상형 3은 개체군 내 서로 다른 개체가 보유하는 유전자의 많은 복사본 가운데 오직 하나의 변화만으로 출현했으므로, 조상인 단상형 2는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 존재한다.


이제 생명체 표본에서 7가지 단상형 모두를 찾는다고 상상해보자. 근소한 차이가 있는 서열이 가장 가까운 조상-후손 관계를 나타낸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는 이들 생명체를 근절 유전자 계통수(unrooted gene tree, 根絶遺傳子系統樹)에 정확히 배열할 수 있다. 즉, 계통적으로 가장 밀접히 연관된 단상형은 가장 적은 가능한 돌연변이 개수에 따라 서로 연결된다. 단상형 1을 다른 단상형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돌연변이가 필요하므로 단상형 1은 단상형 2와 4 사이에 있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가장 파시모니한 [전혀 나무처럼 보이지 않는] 근절 유전자 계통수를 찾을 수 있다.



이 계통수는 뿌리가 없는데, 이것은 진화의 방향이 어떤지를 [즉, 어느 서열이 그들 모두의 공통조상과 가장 가까운지를] 알 수 없음을 뜻한다. 더욱이, 표본에서 단지 단상형 2에서 7만을 발견한다고 가정하자. 단상형 1은 [9번과 13번 위치에서 발생한] 두 개의 돌연변이로 서로 달라진 단상형 2와 4를 연결하는 데 필요한 단계이므로, 우리는 단상형 1이 현재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같은 개별 유전자에서 돌연변이 두 개가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없으므로 단상형 4가 단상형 2에서 직접 발생했을 개연성은 별로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단상형 1은 가설적 중간자(hypothetical intermediate, 假設的中間者) 또는 가설조상(hypothetical ancestor, 假設祖上)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어떻게 진화의 방향을 추론할 수 있을까? 단상형 4, 5, 6, 7이 종 A에서 발견되고 단상형 2와 3이 가깝게 연관된 종 B에서 발견된다고 가정하자. 단상형 4~7이 근연종인 것처럼 단상형 2와 3이 근연종임을 우리는 근절 계통수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역자: 여기서 사용한 근연종은 유전자 사이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용어일 뿐이다]. 가장 파시모니한 추론은 두 종의 공통조상이 그 두 종의 단상형 두 무리가 출현한 [단상형 1과 같은] 어떤 단상형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상의 순서를 밝힘으로써 우리는 아래와 같이 계통수의 뿌리를 결정할 수 있다.



단상형 1을 조상 단상형으로 가정했으므로 단상형의 진화 순서는 종 A에서 4→5→6→7이며 종 B에서는 2→3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느 한 종에서 [또는 둘 다에서] 단상형 1을 찾을 수 있다면 마찬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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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최대 파시모니법


고유 파생형질상태로 단계통군을 정의할 수 있다는 헤니히의 원리(Hennig’s principle)에는 두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첫째, 어느 형질상태가 파생되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둘째, 고유 파생형질상태인지 불계적 상동형질상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림 2.4에 나와 있는 가설계통(hypothetical phylogeny, 假設系統)에서 우리는 상태 0이 조상상태이고 g1이 두 번 진화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정보가 미리 주어지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 화석기록으로 무엇이 조상형질인지 알 수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살피게 될 것처럼 현생종(living species, 現生種) 사이의 계통관계와 마찬가지로 화석과 현생종 사이의 계통관계도 해석해야 한다. 더불어, 4장에 나타낸 대로 생명체 대다수는 매우 불완전한 화석기록을 가진다.



그림 2.6 고래류의 계통관계에 관한 두 가지 가능한 가설. (A) 등지느러미 공유를 근거로 고래류는 참치 같은 어류와 가까운 계통관계에 있음을 상정(想定)하는 가설계통. (B) 고래류가 다른 포유류와 가장 가까운 계통관계에 있다는 오늘날 인정되는 계통. 눈금선은 각 계통에서 발생한 몇몇 형질의 변화를 나타낸다. 형질 2~5는 사지동물류의 고유 공유파생형질로 여겨지며, 형질 6~9는 포유류의 공유파생형질로 간주한다. 오늘날 인정되는 계통은 (A)에 나타난 계통보다 더 적은 진화적 변화가 필요하므로 더욱 파시모니한 가설이다. *


* [용어설명] dorsal fin, 등지느러미; pectoral girdle, 흉대(胸帶); limb skeleton, 사지 골격; cervical vertebrae, 경추(頸椎); thoracic vertebrae, 흉추(胸椎); aortic arch, 대동맥궁(大動脈弓); dentary jawbone, 치골 턱뼈; 4-chambered heart, 네 구역으로 나뉜 심장.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안된 방법 가운데 일부가 파시모니(parsimony) 개념을 토대로 한다. 적어도 14세기 무렵부터 시작하는 파시모니는 최소한의 증거 없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 가장 단순한 설명이 증거가 빈약한 많은 가정을 필요로 하는 매우 복잡한 가설을 해결하는데 적합하다는 원리다. 파시모니에 기초한 방법은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계통분석의 가장 단순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계통분석에서 파시모니 원리는 한 무리의 분류군에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계통수 가운데 실제 계통에 대한 최상의 추정은 가장 적은 진화적 변화를 가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래류와 참치 같은 어류가 등지느러미를 가지기 때문에 하나의 단계통군을 형성하고, 고래류를 제외한 나머지 포유류가 또 다른 단계통군을 이룬다고 가정하자 [그림 2.6A]. 이 계통은 [어떤 증거도 없이] 고래류와 도마뱀 같은 다른 사지동물류가 공유하는 [사지동물류의 사지 구조와 폐 같은] 많은 형질뿐만 아니라 고래류와 다른 포유류가 공유한 [예를 들어, 네 구역으로 나뉜 심장, 젖, 단일 대동맥궁(aortic arch, 大動脈弓) 같은] 많은 형질이 각각 두 번 진화했다고 가정하라고 요구한다. 반대로, 고래류와 다른 포유류가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들 각각의 특징은 한 번 진화했으며, [체형(體型) 같은 몇 가지 특징과 더불어] 단지 등지느러미만이 두 번 진화했다고 나타난다 [그림 2.6B]. 제안된 계통에서 가정해야 할 “추가적인” 진화적 변화는 한 번 이상 출현했다고 가정해야 하는 불계적 상동 변화(homoplasious change)다. 따라서 파시모니에서 가장 좋은 계통가설은 가장 적은 불계적 상동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림 2.7 최대 파시모니법에 따른 계통추론. DNA 서열의 [a부터 g까지] 일곱 군데 위치에 대한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의] 형질상태가 행렬에 나타나 있다. 종 1, 2, 3의 가능한 계통관계를 대표하는 세 계통수에 파생형질상태로 변화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세 계통수의 길이[L]를 비교했을 때 계통수 1이 가장 짧은데 [L=8], 이것은 이 계통수에 가장 적은 형질변화가 있음을 뜻한다.



종 1, 2, 3 사이의 계통관계를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확실히 이들 종은 분류군 4와 5에 대해 상대적으로 단계통군을 형성하며, 분류군 4와 5는 이들 종보다는 순서대로 더 멀리 연관되었다. 계통관계를 추론하고자 하는 종의 단계통적 집합인 내군(ingroup, 內君)에 상대적으로 멀리 연관된 이들 분류군을 외군(outgroup, 外君)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종 1, 2, 3은 영장류 종이고, 종 4는 설치류 종이며, 종 5는 캥거루 같은 유대류(marsupials, 有袋類) 종이다. 이전의 많은 증거를 바탕으로 했을 때, 다양한 영장류가 계통적으로 서로 연관된 것보다는 설치류와 유대류는 확실히 영장류와 더 멀리 연관되어 있다.] 그림 2.7에서 나타났듯이 세 개의 내군 종 사이에는 [계통수 1~3과 같은] 세 가지 가능한 분지관계(branching relationship, 分枝關係)가 있다. 가장 가까운 근연종은 종 1과 2, 종 1과 3, 또는 종 2와 3일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자료 행렬은 각 종(種)의 상동 DNA 서열(homologous DNA sequence)에서 7개의 뉴클레오타이드 염기를 나타낸다.


우리의 임무는 어느 계통수 구조가 형질이 진화적으로 가장 적게 변화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태변화의 개수를 최소화하면서 각각의 형질이 변화했던 위치를 각 계통수에 도표로 표시함으로써 이러한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우선, 계통수 1을 살피고 종 사이에 나타난 형질 a의 변이를 조사하자. 종 1, 2, 3이 상태 A를 공유하고 종 4와 5가 상태 C를 공유하는 사실에 대한 가장 단순한 해석은 상태 C가 내군의 공통조상에서 상태 A로 대체되었고, 하나의 변화가 계통수를 상태 A를 가지는 종과 상태 C를 가지는 종으로 나눴다는 것이다. 상태 A가 조상형질상태였다면 종 4와 5의 진화에서 상태 A에서 C로 독립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가정해야 하므로, 그러한 변화는 A에서 C가 아니라 그 반대로 발생했다고 추론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식은 파시모니하지 않다.


각각의 형질에 대해 개별적으로 같은 과정을 따를 때 계통수 1에서 종 1과 2의 조상이 가진 형질 c와 d의 진화적 변화를 도표로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들 두 종이 [어떤 분류군과도 공유하지 않는 공통조상에서 파생된 분류군인] 자매군(sister group, 姉妹群)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형질 e는 수렴진화임이 분명하며, T에서 A로 두 번 진화했다. 만일 이 계통수가 실제 분지 역사(branching history, 分枝歷史)라면 단 한 번의 변화로 종 3과 5와 같은 형질상태를 가질 방법은 결코 없다. 형질 f와 g는 단독파생형질이며 오직 종 3과 5에서만 각각 변화했다. 이들은 가능한 다른 계통수에서 정확히 같은 위치에 있으며 분지 순서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같은 과정이 가능한 다른 모든 계통에도 적용된다. [이런 매우 지루한 과정은 실제 계통분석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며, 보통 더 많은 종과 훨씬 더 많은 형질을 다룬다.] 계통수 2의 위상(topology, 位相)은 형질 e가 불계적 상동이 아니라 이 계통수에서 자매 분류군(sister taxon, 姉妹分類群)인 종 1과 3의 공통조상에서 T에서 A로 진화했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형질 c와 d 모두 이 경우에는 수렴진화를 했었음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계통수 3에서도 형질 c와 d가 수렴적으로 진화했으며 형질 e가 T에서 A를 거쳐 다시 T가 되는 역진화를 겪었다고 나타난다.


만일 세 가지 가능한 모든 분지하는 계통수에 이 과정을 적용함으로써 [각 계통수의 “길이”(length)로 나타낸] 형질상태의 변화 개수를 계산한다면, 계통수 1이 가장 짧으며 가장 적은 형질상태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계통수 1에서 더 많은 형질이 종 1과 3 또는 종 2와 3 사이보다는 종 1과 2 사이에서 단계통성(monophyly, 單系統性)이 나타남을 지지한다. 따라서 파시모니 기준에 따르면 계통수 1이 분지 역사를 가장 잘 추정한 “실제 계통수”이다. 물론, 어떤 실제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가장 파시모니한 계통수와 다른 가능한 계통수 사이의 길이 차이가 우리가 추정에 확신하기 전에 훨씬 더 크길 원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설명한 최대 파시모니(maximum parsimony)는 계통관계를 추론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비록 이것이 계통관계 설명에 가장 쉽고 사용하기에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가장 신뢰할만한 방법은 아니다. 흔히 사용되는 몇 가지 다른 방법을 Box 2B에 소개했다.


Box 2B 다양한 계통분석법


계통추론을 위해 많은 방법이 제시되었으며 장단점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분석되었다 [Felsenstein 2004]. 이 가운데 자료에서 단일 계통수를 계산하는 “알고리즘법”(algorithmic method)이 있다. 여기에서 혈통 사이의 DNA 서열 진화속도가 같지 않다고 가정하는 이웃 연결법(neighbor-joining method)이 가장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연구자 대부분은 일부 분류군을 위해서조차도 될 수 있으면 엄청나게 많은 표본 사이로부터 상당히 많은 수의 계통수 표본을 비교하는 “계통수 검색법”(tree-searching method)을 선호한다. 이들 방법은 자료에 적합한 가장 짧은 계통수를 찾을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컴퓨터화 된 “검색” 경로를 사용한다.


최대 파시모니에 근거한 방법과 같은 일부 계통수 검색법 프로그램은 찾아낸 가장 짧은 계통수가 마찬가지로 거의 짧은 다른 계통수와 비교할 수 있도록 조사된 많은 계통수를 저장한다. 그리고 가장 짧은 계통수가 [또는 그 안에 있는 특정 분류가] 신뢰할 만한지 또는 그것이 단지 우연히 짧은 다른 계통수와 차이가 있는지 관심을 둔다. 이러한 통계적 문제는 [예를 들어, 뉴클레오타이드 위치와 같은] 형질에 대한 많은 임의 부표본(subsample, 副標本)이 계통분석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부트스트랩(bootstrap)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종종 다뤄진다. 만일 이러한 분류가 [부트스트랩 표본이라는] 이들 서로 다른 자료 집합을 사용했을 때에도 한결같이 나온다면, 특정 분류의 신뢰도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진다. 관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셋 이상의 분류군 무리는 종종 다분지(polytomy, 多分枝)라 불리는 셋 이상의 노드로 표시된다. 따라서 합의된 계통수(consensus phylogenetic tree)는 확신할 수 있는 계통관계와 “밝혀지지 않은” 관계를 나타내는 다분지를 둘 다 묘사한다.


몇몇 강력하고 각광받는 계통수 검색법 중에 최대우도법(maximum likelihood method 또는 ML, 最大憂度法)과 베이스법(Bayesian method)이 있다. 이들 방법은 너무 복잡해서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둘 다 [주로 DNA 서열과 같은] 자료에 대한 진화 모델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모델은 [“단일 매개변수 모델”(one-parameter model)처럼] 모든 염기쌍 치환이 동일하게 나타나며 일정한 치환속도가 자료로부터 추정될 수 있다고 가정하거나, [“기무라 두 매개변수 모델”(Kimura’s two-parameter model)처럼] 다른 종류의 치환이 특징적인 다른 속도로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모델과 가능한 계통수가 주어졌을 때, 최대우도법은 결과 관찰의 우도(likelihood, 憂度)를 계산한다. 계통에 관한 가장 좋은 추정은 이러한 우도를 최대화하는 계통수다. 더 최근에 개발되어 날로 인기가 높아지는 베이스법은 모델과 자료를 줬을 때 특정 계통수를 관찰할 가능성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최대우도법과 차이가 있다. [겉보기에 미묘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차이임에 주목하라.] 최대우도법과 달리 베이스법은 일련의 계통수를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각각의 확률을 제공하고 계산한다 [Huelsenbeck et al. 2001].


2.2.4. 계통분석의 예


고전적인 분류에서 영장목의 사람상과(superfamily Hominoidea)는 긴팔원숭이(gibbon)가 속하는 긴팔원숭잇과(family Hylobatidae), 사람과(family Hominidae), 그리고 대형 유인원인 성성잇과(family Pongidae)의 세 과로 구성된다. 대형 유인원에는 동남아시아의 오랑우탄(Pongo pygmaeus), 아프리카의 고릴라(Gorilla gorilla),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판속(genus Pan)의 침팬지 두 종이 있다. 사람상과는 하나의 단계통군이며, 긴팔원숭잇과는 사람상과에 속하는 다른 종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사람상과의 구성원과 더욱 멀리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이 해부학적 증거를 근거로 아주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 *


*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면서 호미닌, 호미니드, 호미노이드, 호미나인과 같은 용어를 자주 접할 것이다. (1) 호미닌(hominin)은 사람아과(subfamily Homininae)의 사람족(tribe Hominini)에 속하는 구성원으로 사람과 침팬지의 공통조상인 파니니족(tribe Panini)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속(genus Homo)과 지금은 멸종한 사람 분기군의 다른 구성원을 포함한다. (2) 호미니드(hominid)는 사람과(family Hominidae)에 속하는 [침팬지와 고릴라 같은] 판속(genus Pan), 고릴라속(genus Gorilla), [오랑우탄 같은] 퐁고속(genus Pongo), 사람속을 포함하는 영장류 분류군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다. 하지만 이 용어는 침팬지보다 사람에 더 가까운 [지금은 멸종한] 사람의 근연종과 더불어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3) 호미노이드(hominoid)는 사람상과(superfamily Hominoidea)에 속하는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최근의 호미니드, 긴팔원숭이 그리고 성성잇과 유인원과 [신생대 중신세에 살았던 멸종한 원시 아프리카 영장류인 프로콘술(Proconsul)과 중신세와 선신세에 걸쳐 살았던 원시 아프리카 영장류인 드리오피테쿠스아속(subgenus Dryopithecus) 등의] 조상형을 포함한다. (4) 호미나인(hominine)은 사람아과에 속하는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성성잇과가 분리된 이후 독립적으로 진화한 모든 계통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고릴라속, 판속, [멸종한 사람의 근연종을 포함한] 사람속이 포함된다.



그림 2.8 영장목 사람상과(superfamily Hominoidea)의 구성원. (A) 긴팔원숭잇과(family Hylobatidae)에 속하는 흰손긴팔원숭이(white-handed gibbon)인 힐로바테스 라르(Hylobates lar). (B) 오랑우탄(Pongo pygmaeus). (C) 아프리카 저지대 고릴라(lowland gorilla)인 고릴라 고릴라(Gorilla gorilla). (D) 침팬지(Pan troglodytes). 이밖에 현존하는 사람상과의 한 종인 보노보(bonobo, 학명: Pan paniscus)와 사람(학명: Homo sapiens)은 그림에 나타내지 않았다. [Photo: A © Steve Bloom/Alamy Images; B © Shaun Cunningham/Alamy Images; C, D © Gerry Ellis/DigitalVision.]



물리적으로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는 사람보다는 서로 더 비슷해 보인다 [그림 2.8]. 그러므로 전통적 관점은 성성잇과는 단계통군이며 사람속이 최초로 분지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분자생물학 자료는 사람과 침팬지가 서로 가장 가까운 근연종이라고 확실히 보여준다 [Ruvolvo 1997]. 이러한 결론으로 이끈 많은 DNA 분석 연구 중에는 모리스 굿맨(Morris Goodman)과 그의 동료가 수행한 연구가 있는데, 여기에서 이들은 영장류 진화 초기에 헤모글로빈(hemoglobin) 유전자의 중복(duplication, 重複)으로 파생된 기능이 없는 DNA 서열인 헤모글로빈 위유전자(pseudogene, 僞遺傳子)를 포함하는 1만 개 이상의 DNA 절편(切片)을 분석했다 [Goodman et al. 1989; Bailey et al. 1991] [8장 참조]. 이들이 분석에 사용한 외군은 사람상과의 먼 친족인 아텔레스속(Ateles, -屬) 아메리카 거미원숭이(spider monkey)와 거미원숭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사람상과에 계통적으로 좀 더 연관된 긴꼬리원숭잇과 마카카속인 붉은털원숭이다.



표 2.1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Ψη-글로빈 위유전자의 DNA 서열 사이의 분기. [자료: Bailey et al. 1991.] 두 사람 사이의 염기서열 분기를 오른쪽 아래 칸에 백분율(百分率)로 나타냈다. 사람과 다른 종 사이 분기는 이들 두 서열의 평균을 사용해 계산했다. 값은 다중치환(multiple substitution, 多重置換)에 대해 보정하지 않았다.



그림 2.9 ψη-글로빈 위유전자를 토대로 한 영장류 사이 계통관계에 대한 증거. (A) 영장류 여섯 종의 DNA 서열 일부. 마카카속(genus Macaca) 붉은털원숭이와 아텔레스속(genus Ateles) 아메리카 거미원숭이는 사람상과와 관련하여 순서대로 더 멀리 연관된 외군이다. 표시된 부분을 제외하고 염기서열은 모두 동일하다. 아텔레스속과 마카카속을 외군으로 사용했을 때, 3913번, 6375번, 8468번 위치는 다른 네 속의 공유파생형질이며, 8230번 위치는 고릴라속, 판속, 사람속의 공유파생형질로 나타난다. 판속과 사람속의 공유파생형질로는 5365번, 6367번과 8224번 위치에서 발생한 염기쌍 치환, 3903~3906번과 8469~8474번 위치에서 발생한 결실이 포함된다 [붉은색 별표]. [비공유 파생상태인] 단독파생형질에는 [마카카속은] 3911번과 3913번, [퐁고속은] 9230번, [고릴라속은] 6374번, [판속은] 5361번, 그리고 [사람속은] 6374번 위치가 포함된다. (B) 아텔레스속을 외군으로 사용해 ψη-글로빈 서열을 토대로 작성한 가장 파시모니한 계통. 최소 변화 개수는 각각의 분지 위에 표시했다. 사람속-판속-고릴라속으로 나뉘는 계통수는 65단계가 더 길며, 사람속과 판속으로 나뉘는 계통수는 8단계 더 길다. 이 그림에는 사람과 유인원 분류를 위해 제안된 몇 가지 가운데 하나가 포함되었다 [Delson et al. 2000]. [A after Goodman et al. 1989; B after Shoshani et al. 1996.] *


* [용어설명] tribe Hominini, 사람족; tribe Gorillini, 고릴라족; superfamily Homininae, 사람아과; superfamily Ponginae, 성성이상과; family Hominidae, 사람과; family Cercopithecidae, 긴팔원숭잇과; family Cebidae, 꼬리감는원숭잇과; superfamily Hominoidea, 사람상과; superfamily Ceboidea, 꼬리감는원숭이상과.



굿맨과 그의 동료는 서로 짝지어진 사람상과 구성원 사이에서 ψη-글로빈(ψη-globin) 위유전자의 DNA 서열 일치 정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사람속과 판속에서는 염기쌍 차이가 단지 2% 이하임을 발견했다 [표 2.1]. 그러나 두 종은 일부 염기쌍 치환(base substitution, 鹽基雙置換), 짧은 삽입(insertion, 揷入), 염기결실(base deletion, 鹽基缺失)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림 2.9]. 그림 2.9A의 8230번과 같은 위치 일부에서 오랑우탄은 침팬지, 고릴라 그리고 사람과 차이가 있다. [여기와 그리고 다른 예에서 단지 DNA 한 가닥만을 그림에 표시했는데, 다른 가닥은 이 서열과 상보적이다.] 그리고 8460~8474번 위치와 같은 짧은 서열의 결실을 포함한 14개의 공유파생형질로 침팬지와 사람이 자매군으로 묶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 그림에서는 나와 있지 않은] 단지 세 곳만이 침팬지와 고릴라가 가장 가까운 근연종이라는 가설을 지지할 뿐이다.


침팬지와 사람이 가장 가까운 근연종이고 고릴라는 이들 쌍의 자매군이라고 말하는 그림 2.9B의 계통은 침팬지와 사람을 구분 짓는 계통수보다 진화적 변화에서 8단계가 더 짧다. 게다가, 다른 많은 분자생물학 자료 집합도 이러한 결론을 지지한다. 따라서 이런 계통연구의 결과로 분류학자는 결국 3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장류와 인류의 분류를 바꾸게 되었다.


2.2.5. 계통가설의 평가


계통추론의 타당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특정 자료 집합에서 얻은 계통수 추정은 [다른 과학적 진술과 마찬가지로] 잠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계통가설(phylogenetic hypothesis, 系統假設)이다. 따라서 추가적인 자료로 우리는 그 가설을 수정하거나 포기하거나 더욱 지지할 수 있다. 계통가설을 확정하는 주요 방법은 그것이 독립적으로 얻은 자료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태적 특징과 DNA 서열은 상당히 대체로 독립적으로 진화하므로 독립적인 계통정보를 제공한다 [다음 내용과 19장 참조]. 일부 예외가 있지만, 이들 두 가지 자료는 대개 계통에 대한 비슷한 추정치를 내놓는다 [Paterson et al. 1993]. 예를 들어, DNA 서열에 기초한 척추동물 상위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형태적 특징으로 추정한 것과 동일하다 [그림 2.10].



그림 2.10 [그림 왼쪽의] 형태적 특징과 [그림 오른쪽의] DNA 서열로 추정한 척추동물 주요 분류군 사이의 계통관계. 전체적으로 이들 두 정보를 통해 계통에 대한 비슷한 추정치를 얻을 수 있다. 분자생물학 자료에서는 형태적 자료에 대하여 계통 위치에 [거북이류 같은] 단지 하나의 뚜렷한 변화와 [단공류(monotreme, 單孔類)/유대류 관계처럼] 하나의 가능한 변화를 요구한다 [회색으로 표시한 가지]. 두 계통수 사이에 차이가 나는 불명확한 관계와 DNA 서열 자료로 제시된 대안 가능한 관계는 점선으로 나타냈다. [After Meyer and Zardoya. 2003.] *


* [용어설명] gnathostomes, 악구류(顎口類)로 턱이 있는 척추동물인 악구하문(infraphylum Gnathostomata, 顎口下門)에 속하는 동물; agnathans, 무악류(無顎類)로 턱이 없는 척추동물인 무악상강(superclass Agnatha, 無顎上綱)에 속하는 동물; choanates, 코아나타류; ray-finned fishes, 조기류(條鰭類) 또는 조기어류(條鰭漁類); tetrapods, 사지동물류; lobe-finned fishes, 총기류(總鰭類) 또는 총기어류(總鰭漁類); lepidosaurs, 인룡류(鱗龍類)로 인룡상목(superorder Lepidosauria, 鱗龍上目)에 속하는 동물; archosaurs, 조룡류(祖龍類); squamates, 유린류(有鱗類)로 유린목(order Squamata, 有鱗目)에 속하는 비늘이 있는 파충류; Amphioxus, 활유어(蛞蝓魚)의 한 속(屬); hagfish, 먹장어; lamprey, 칠성장어; chimaeras, 은상어류; bichirs, 다기류 또는 다기어류; sturgeons, 철갑상어류; gars, 인골류(鱗骨類) 또는 인골어류(鱗骨魚類); teleosts, 경골어류(硬骨魚類); coelacanth, 실러캔스; lungfishes, 폐어류; caecilians, 무족영원류; monotremes, 단공류(單孔類); marsupials, 유대류; eutherians, 진수류(眞獸類).



우리는 또한 계통분석법을 잘 알려진 계통에 적용함으로써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는 컴퓨터를 이용해 진화 과정의 다양한 모델에 따라 컴퓨터로 생성되는 혈통(computer-generated lineage)이 분지하고 이들의 형질이 변화하도록 진화를 모의 실험했다. [예를 들어, 형질은 다른 평균속도로 무작위로 변하거나 공통조상에서 파생된 두 종 가운데 하나가 다른 것보다 빨리 진화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 연구자는 이들 혈통의 정확한 분지 역사를 내놓기 위해 다양한 계통분석법이 이들의 최종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아마도 회의론자(懷疑論者)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은 연구자에 의해 개별 혈통으로 분리되어 [인위적 분지 사건 또는 마디 또는 노드(node)를 생성하면서] 진화하도록 허용된 실제 생명체의 실험 집단에 계통분석법이 적용된 몇몇 연구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데이비드 힐리스(David Hillis)와 그의 동료가 수행한 실험으로, 이 연구팀은 T7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 혈통을 연속적으로 세분화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에 이들 박테리오파지를 노출해서, 300세대 동안 박테리오파지의 DNA 서열 차이가 빨리 발생해 누적하도록 했다 [Hillis et al. 1992; Cunningham et al. 1998]. 그런 다음에 이 연구팀은 8개 혈통의 서열 차이를 기록하고 그 자료에 대한 계통분석을 수행했다 [그림 2.11]. 이 많은 개체군 가운데 135,135개가 [각각의 혈통이 서로 다른 두 혈통으로 분지하는] 이분지성 계통수(bifurcating phylogenetic tree, 二分枝性系統樹)지만, 연구자가 사용한 계통분석은 정확히 단 한 개의 실제 계통수만 찾아냈다.




그림 2.11 힐리스와 그의 동료가 연구한 T7 박테리오파지 실험 개체군의 실제 계통. 실험의 마지막에 얻은 박테리오파지 개체군 사이의 서열 차이를 근거로 추정한 계통은 실제 계통과 정확히 일치했다. [After Hillis et al.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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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1)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3)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4)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5)


2.2. 계통 역사의 추론


2.2.1. 유사성과 공통가계


종이 점진적으로 서로 더욱 달라졌다는 다윈의 가정이 옳다면 종의 유사성과 차이 정도를 측정함으로써 다른 분류군이 출현하는 분지(branch, 分枝)의 역사를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진화 역사를 추론하는 이러한 방법이 간단한 사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고, 그러고 나서 몇몇 중요한 복잡한 사례를 검토할 것이다.



그림 2.3 갈라파고스 군도(Galápagos archipelago)의 여러 섬에서 서식하는 자이언트 거북(giant tortoise)은 등 껍질 형태와 목 길이가 다르지만, 이들 모두 Geochelone elephantophus라는 종에 속한다. (A) 과거 후드 섬(Hood Island)이라 불렸던 오늘날 에스파뇰라 섬(Española Island)에서 서식하는 안장(saddleback, 鞍裝) 모양의 등 껍질을 가진 자이언트 거북(G. e. hoodensis). (B) 이사벨라 섬(Isabela Island)에서 사는 돔(dome) 모양의 등 껍질을 가진 자이언트 거북(G. e. vandenburghi). [Photo © François Gohier/Photo Researchers, Inc.]



생명체 사이에서 차이가 날 수 있는 특성 또는 형질(character, 形質)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Galápagos archipelago)에서 맞닥뜨렸던 거북이 몇 종류는 몸 크기, 목 길이, 그리고 등 껍질의 모양과 같은 특징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림 2.3]. 다양한 생명체의 계통분석에 유용하다고 판명된 표현형 형질(phenotypic character, 表現型形質)에는 외적∙내적인 형태적 특징뿐만 아니라 행동, 세포 구조, 생화학 그리고 염색체 구조의 차이도 포함된다. 분자생물학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오늘날 생물학자는 종종 DNA 서열을 사용하는데, 서열 내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A, T, C 또는 G와 같은]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 정체성(正體性)은 하나의 형질로 간주할 수 있다. 각각의 형질은 뉴클레오타이드 A 대 C, 짧은 목 대 긴 목, 둥근 등 껍질 대 안장 모양의 등 껍질 등과 같은 서로 다른 가능한 형질상태(character state, 形質常態)를 가질 수 있다.


첫 단계로, 눈여겨볼 만한 다양한 형질 10가지[형질 a~j]를 보유한 일련의 네 종[종 1~4]을 살펴보자 [그림 2.4]. 여기에서 우리의 과제는 어떤 종이 최근 파생했고, 어떤 종이 가장 오래된 공통조상에서 파생했나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그림 2.4A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들을 하나의 계통수로 정리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각각의 분지점(branch point 또는 node, 分枝點)은 두 혈통의 공통조상을 나타낸다. 단순하게, 각각의 형질은 0과 1로 표시된 두 가지 형질상태에 놓일 수 있으며, 상태 0은 이 무리의 공통조상인 조상 1에서 발견되는 조상상태(ancestral state, 祖上狀態)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상태 1은 조상상태에서 진화한 파생상태(derived state, 派生狀態)라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하나 이상의 후손 분류군이 진화하는 동안 조상상태 A가 파생상태 C로 대체되거나, 조상상태인 붉은 눈이 파생상태인 노란색 눈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형용사 PLESIOMORPHICAPOMORPHIC은 때때로 “선조(ancestral)”와 “파생(derived)”이란 뜻으로 각각 사용되기도 한다. 종 사이의 계통관계를 추론하기 위해 형질상태에 관한 자료를 사용하도록 하자.



그림 2.4 세 가지 자료 집합에 적용된 계통분석의 예. 각각의 계통수에서 종 1~4는 계통수 위쪽에 표시되어 있고 공통조상은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다. a에서 j까지 10가지 형질 각각에 대한 [0 또는 1로 표시된] 형질상태가 조상 1과 현존하는 종에 표시되어 있다. 가지 위의 가는 눈금선은 형질상태의 진화적 변화를 나타낸다. 각 계통수의 오른쪽에 있는 위쪽 행렬은 각각 쌍을 이루는 종 사이의 공유형질상태 전체 개수를 나타내며, 아래쪽 행렬은 가지를 따라 발생한 상태변화를 뜻하는 공유파생형질을 나타낸다. (A) 상대적으로 일정한 진화속도의 불계적 상동이 없는 계통수. (B) 다른 가지보다 조상 3에서 종 2로 가는 가지에서 진화속도가 더 빠르다. (C) 세 가지 형질이 불계적 상동으로, 형질상태 g1과 h1 모두가 독립적으로 두 번 진화했고, 형질 j는 j1에서 조상상태인 j0로 되돌아가는 역진화를 겪었다. 모든 경우에서 종 4는 다른 모든 종과 더욱 멀리 연관된 외군이라고 가정한다.



그림 2.4A에는 네 종이 조상 1의 후손이라는 가설관계(hypothetical relationship, 假設關係)가 묘사되어 있다. 형질상태 a0에서 형질상태 a1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각각의 진화적 변화는 이 그림에서 굵은 가지 위에 가는 눈금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어떤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파생된 종의 집합을 단계통군(monophyletic group, 單系統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그림 2.4A에는 종 2+3, 종 1+2+3, 종 1+2+3+4와 같은 세 가지 단계통군이 존재한다. 그림 2.4A가 진실로 네 종의 실제 계통을 대표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이 자료에서 이러한 계통을 추론하거나 추정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각각 짝지은 후손 종이 공유하는 형질상태 개수로 이들의 유사성을 계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 1과 2 모두는 그림 2.4A의 공유형질상태(shared character state, 共有形質常態) 행렬에 나와 있는 대로 형질상태 a0, b0, c1 그리고 j0를 가진다. 종 2와 3이 서로 가장 비슷하며, 가장 최근 공통조상인 조상 3에서 진화했다. 종 1은 [종 1~3을 포괄하는] 모든 종의 가장 먼 공통조상인 조상 1을 공통조상으로 공유하는 종 4보다는 조상 2를 공통조상으로 공유하는 종 2 및 종 3과 더 비슷하다. 이처럼 유사성 정도는 공통가계(common ancestry, 共通家系)의 최신성(最新性)에 대한 신뢰할만한 지표며, 이들 종의 계통이 단계통군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가상의 사례에서, 우리는 어느 형질상태가 조상형이고 어느 것이 파생형인지 알고 있다고 가정했다. 유사성을 측정할 때, 우리는 그 어떤 두 종의 조상형질(ancestral character, 祖上形質)에서도 진화하지 않은 공유형질(shared character, 共有形質)과 [예를 들면, 종 1과 2가 공유하는 조상상태 a0] 두 종에서 모두 진화가 일어난 공유형질[이 경우에는 c1]을 모두 포함해 계산했다. 만일 우리가 진화하지 않은 공유되고 파생된 형질상태만을 고려한다면, 종 2와 3이 가장 비슷하고 종 1이 종 4보다 나머지 종과 유사하다는 또 다른 행렬을 얻게 된다. 이렇게 공유되고 파생되는 형질상태를 때때로 공유파생형질(synapomorphy, 共有派生形質)이라고 한다.


2.2.2. 계통추론의 복잡한 사례


그림 2.4A에서 형질상태의 변화 개수는 이 집단의 조상 1에서 각각의 후손 종에 이르기까지 대략 비슷하다. 다시 말하면, 진화속도가 혈통 사이에서 어느 정도 같다. 그러나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 그림 2.4B에서 우리는 조상 3과 종 2 사이의 진화속도가 계통수의 다른 곳보다도 크다고 가정했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는 종 2에서 DNA 서열의 염기쌍 치환(base pair substitution, 鹽基雙置換)이 다른 종보다 더 자주 발생했음을 나타낸다. * 이제 공유형질상태 행렬은 종 1과 3이 가장 비슷하다고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이들이 계통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종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된다. [계통관계의 정도(程度)는 유사성이 아니라 공통가계의 상대적 최신성을 뜻함을 명심하라.] 여기에서 유사성은 이들 관계의 적절한 지표가 아니다. 그러나 공유된 파생형질상태의 개수는 가장 가까운 근연종(close relative, 近緣種)이 종 2와 3이라고 분명히 가리키며, 이것은 계통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 염기쌍 치환(base substitution, 鹽基雙置換)은 개체군이나 종 전체에서 [예를 들어, A-T 염기쌍 같은] 하나의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쌍이 [예를 들어, G-C 염기쌍과 같이] 다른 것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이러한 치환은 유전자 암호(genetic code, 遺傳子暗號)로 지정되는 아미노산(amino acid)을 변화시키는데, 여기에 관해서는 8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


종 1과 3은 [c1처럼] 하나의 파생형질상태뿐만 아니라 [a0, b0, g0, h0, i0, j0과 같은] 여섯 개의 조상형질상태(ancestral character state, 祖上形質狀態)도 공유한다. 종 2는 종 3이 공유하지 않은 [g1, h1, i1 그리고 j1과 같은] 진화적 변화를 네 번 겪었으므로, 비록 종 2가 종 3과 더욱 가깝게 연관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종 2는 종 1과 더 비슷하다. 이들이 조상형질상태나 파생형질상태를 공유하기 때문에 분류군이 서로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공유파생형질처럼] 오직 분류군 사이에서 공유된 파생된 형질상태만이 단계통군을 가리키며 성공적으로 계통을 추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종 3에서 j1과 같은 상태와 같이] 단일 혈통에 제한된 때때로 단독파생형질(autapomorphy, 單獨派生形質)이라 불리는 파생형질상태는 다른 혈통과의 계통관계에 대해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전 예에서 각 형질은 계통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만 변화했다. 그러므로 어떤 형질상태를 공유한 모든 분류군은 공통조상으로부터 아무 변화 없이 형질을 물려받았다. 그러한 형질을 공유하는 모든 분류군에 존재하는 형질상태를 “상동”(homology, 相同)이라고 부른다. [상동형질상태(homologous character state, 相同形質狀態)와 상동형질(homologous character, 相同形質) 모두를 언급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것이 모든 경우에 통용되지는 않는다. 만일 형질상태가 두 번 이상 독립적으로 진화해서 고유한 기원을 갖지 않는다면 그러한 형질상태는 불계적 상동(homoplasy, 不系的相同)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형질을 공유한 분류군은 공통조상에서 모든 형질을 물려받지 않았다. 그림 2.4C에는 세 가지 불계적 상동형질(homoplasious character, 成因的相同形質)이 나와 있다. 상태 g1은 종 1과 3에서 g0로부터 독립적으로 진화했고, h1은 종 1과 2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이들 두 불계적 상동은 둘 이상의 분류군에서 파생형질상태가 독립적으로 기원한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收斂進化)의 한 예다. 반대로, 형질 j는 조상 2의 진화에서 j0로부터 j1으로 진화했고, 종 2에서는 j0역진화(evolutionary reversal, 逆進化)했다.


수렴진화나 역진화를 겪는 불계적 상동형질은 계통연구를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그림 2.4C에서 형질 g와 j 때문에 종 1과 3을 가장 가까운 근연종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형질 h는 종 1과 2가 단계통군이라는 그릇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공유된 파생형질상태는 단지 그들이 고유한 기원에서 파생되었을 때만 단계통군임을 확증할 수 있는 유효한 증거가 된다.



그림 2.5 척추동물 일부 분류군의 계통. 단 한 번 진화한 파생형질상태를 공유한 [사지동물류, 양막류(amniotes, 羊膜類), 조류와 같은] 구성원의 단계통군을 예로 들고 있다. *


* [용어설명] Actinopterygian bony fishes, 조기강(class Actinopterygii, 條鰭綱)에 속하는 경골어류.



오늘날 많은 계통분류학자가 사용하는 계통관계를 추정하는 방식은 독일 곤충학자인 빌리 헤니히(Willi Hennig)가 1966년에 발표했던 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Hennig 1996]. 헤니히는 분류군이 (1) 고유한 파생형질상태, (2) 조상형질상태, (3) 불계적 상동형질상태(homoplasious character state, 成因的相同形質狀態)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며, 오직 고유한 파생형질상태로 말미암은 유사성만이 계통수를 구성하는 한 데 묶인 단계통군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사지동물의 팔다리, 양막(amnion, 羊膜) 및 깃털은 각각 한 번씩만 진화했다고 확신한다. [지느러미 대신에 사지(四肢)를 가진 척추동물인] 모든 사지동물류는 하나의 단계통군을 형성한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그림 2.5]. 사지동물류 내에서 양막류(amniotes, 羊膜類)는 하나의 단계통군을 이룬다. * 양막류 내에서 [조류처럼] 깃털을 가진 모든 동물은 다시 하나의 단계통군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깃털 없는 모든 척추동물이 단일 분지를 형성한다고 뜻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따라서 깃털의 부재(不在)는 깃털 없는 동물 모두가 조류보다 서로 더 가깝게 계통적으로 연관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조상형질상태다. [어류, 도마뱀류 그리고 개구리류는 모두 깃털이 없지만, 모든 무척추동물도 마찬가지로 깃털이 없다.]


* 양막류(amniote, 羊膜類)는 파충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처럼 육상생활에 주로 적응한 척추동물로, 단단한 껍질을 가진 양막성 알(amniotic egg), [장막(chorion, 漿膜)과 양막 같은] 보호용 배막(protective embryonic membrane), 그리고 배의 배설물을 저장하는 [요막(allantois, 尿膜) 같은] 막 주머니(membraneous sac)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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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2)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3)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4)
[번역] 『Evolution』 Ch. 2. 생명의 나무: 분류와 계통 - (5)



그림 2.0 생명체는 어떻게 분류되는가? 다리가 없는 이 동물은 뱀이 아니라 동부 풀도마뱀(eastern glass lizard: Ophisaurus ventralis)이다. 이 동물은 무족도마뱀과(family Anguidae, 無足-科)에 속하는 약 80종의 풀도마뱀 가운데 하나로 이 과에 속하는 종 상당수는 다리가 있다. 몸 측면을 따라 나 있는 홈(groove)은 이 과의 특징이다. 대조적으로, 뱀은 매우 다른 비늘, 두개골 그리고 내부 특징을 가진다. [Photo © John Cancalosi / AGE Fotostock.]



약 20억 년 전 우리의 장(intestine, 腸) 안에서 사는 대장균(Escherichia coli, 大腸菌)과 다를 바 없는 어떤 세균이 다른 유사 세균 생명체(bacterial-like organism) 안에서 둥지를 틀었다. 이들 동반자는 명백히 서로에게 생화학적 편익(便益)을 제공했으므로, 이러한 관계는 번창했다. 이러한 동반자 관계에서 “주인”은 오늘날의 핵, 염색체와 방추사를 개발했지만, “손님”인 세균은 그 안에서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on)로 진화했다. 이러한 조상 진핵생명체(ancestral eukaryote, 祖上眞核生命體)에서 다양한 단세포 후손이 출현했다. 그러한 후손 가운데 일부는 체세포 분열로 생성한 세포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채 서로 붙어 있게 되었을 때 훗날 다세포 생명체가 되었으며, 이들 세포 집단에서 다양한 조직(組織)과 기관(器官)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다. 이러한 혈통(lineage, 血統) 가운데 하나는 녹색 식물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곰팡이와 동물의 선조가 되었다.


약 10억 년 전에서 6억 년 전 사이에 어떤 단일 동물 종(species, 種)에서 매우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른 두 동물군(動物群)의 조상이 되었던 두 가지 종이 출현했다. 하나는 불가사리류, 성게류 그리고 극피동물류(echinoderms, 棘皮動物類)로 진화했으며, 다른 하나는 척추동물류(vertebrate, 脊椎動物類)를 포함한 척삭동물류(chordates, 脊索動物類)로 진화했다. 가장 초기의 척추동물에서 파생한 종 대부분은 어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네 발 달린 척추동물인 사지동물류(tetrapods, 四肢動物類)의 조상이 되었다. 최초의 육상 사지동물이 진화하고 약 1억 5천만 년이 흐른 뒤에 그 후손 가운데 일부는 포유류 시대의 목전에 다가가 있었다. 약 1억 2천5백만 년이 더 흐른 뒤에 포유류는 나무 위 생활에 적응한 최초 영장류(primates, 靈長類)를 포함한 많은 분류군으로 다양해졌다. 일부 영장류는 몸집이 작아졌고, 일부는 물체를 잡을 수 있는 꼬리를 진화시켰으며, 어떤 것은 몸집이 크고 꼬리가 없는 유인원(ape, 類人猿)의 조상이 되었다. 약 1천4백만 년 전에 그러한 유인원 가운데 하나에서 한편으로는 아시아 오랑우탄이 출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후손이 출현했다. 아프리카 후손은 고릴라와 다른 종으로 나뉘었다. 약 6백만에서 8백만 년 전에 그 종은 결국 오늘날의 침팬지가 될 혈통과 자세, 발, 손, 뇌 등에서 빠른 진화를 겪은 다른 혈통, 바로 우리의 최근 조상으로 나뉘었다.



그림 2.1 생명의 나무. 주요 분지(branch, 分枝) 사이의 계통관계에 관한 추정은 대부분 DNA 서열, 특히 리보솜 RNA(ribosomal RNA 또는 rRNA)가 암호화된 유전자의 DNA 서열을 토대로 했다. 생명체의 역(empires 또는 domain, 域) 세 가지 가운데 고세균계(Archaea, 古細菌界)와 진핵생물계(Eucarya, 眞核生物界)는 가장 최근 공통조상(the most recent common ancestor 또는 MRCA)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생명의 나무에서 분류군 대부분은 단세포다. [After Baldauf et al. 2004.]



은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사람 종이 거대한 생명의 나무(the great Tree of Life)에 있는 잔가지 하나에서 발달했다는 것으로, 우리의 진화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 일부에 관해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5장과 7장에서 이 역사를 더욱 자세히 살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종은 “분지”(branch)할 수 있는데, 그 결과로 이들의 특징 가운데 일부가 달리 변형하도록 진화한 두 종이 출현할 수 있다. 그러한 종은 분지해서 결국 그 후손은 더욱더 변할 수도 있다. 수백만 년 동안 셀 수 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분지와 변형의 과정으로 수백만 가지의 생명체가 생명의 나무 아래 바로 그 토대 또는 뿌리에 있는 어떤 단일 조상 생명체에서 진화했다 [그림 2.1].


진화생물학자는 [어떤 종이 최근 공통조상(common ancestor, 共通祖上)을 공유하고, 어떤 종이 더 먼 조상을 공유하며, 어떤 종이 훨씬 더 먼 조상을 공유하는가와 같이] 생명체 사이의 계통관계(phylogenetic relationship, 系統關係) 또는 계보관계(genealogical relationship, 系譜關係) 관계를 추정하는 방법, 즉 생명의 나무를 “재구성”(reconstructing) 또는 “조립”(assembling)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러한 관계를 설명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도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자신이 불가사리, 나비, 버섯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다양한 특성이 진화했던 경로와 같은 진화 역사의 많은 측면을 이해하는 데 또한 중요한 토대가 된다.


우리는 진화 역사를 직접 관찰할 수 없으므로 셜록 홈스(Sherlock Holmes)가 범행 과정을 재구성하듯이 연역논리(演繹論理)로 그 과정을 추론해야 한다. 인류의 기원에 관한 간략한 개요에서 특정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같은 중요한 지점 몇 군데는 화석기록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대부분은 화석이 아니라 현존하는 생명체를 연구함으로써 밝혀졌다. 이 장에서 우리는 계통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접하고, 그러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생명체 분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접근법의 도움으로 분명해진 몇몇 보편적 진화 양식을 조사할 것이다.


2.1. 분류


종 사이의 계통관계를 연구하는 계통분석(phylogenetic analysis, 系統分析)은 생명체를 분류(分類)하고 명명(命名)하는 분류학(taxonomy, 分類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류와 명명은 둘 다 계통분류학(systematics, 系統分類學) 분야의 일에 속한다.


1장에서 살폈듯이, 1700년대 초반에 유럽의 박물학자(博物學者)는 신이 의도한 계획에 따라 종이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창조자의 작품을 목록화하고 “본연(本然)의” 진실된 분류를 발견함으로써 “창조 계획”을 발견하는 것은 신에 대한 헌신적 작업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당시에 채택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하는 분류 방식은 스웨덴 출신 식물학자 카롤루스 린네우스(Carolus Linnaeus, 1707-1778), 즉 린네(Carl von Linné)가 개발했다. 린네는 [Homo sapiens처럼] 속명(genus name, 屬名)과 특정 별칭(epithet, 別稱) 두 가지로 구성된 명명 체계인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 二名法)을 제시했다. 그는 [과(family, 科) 안에 속(genus, 屬)이 포함되는 것처럼] 더 큰 분류군 안에 다른 분류군을 포함하는 계층분류(hierarchical classification, 階層分類)로 종을 분류하는 체계를 제시했다 [Box 2A]. 계(kingdom, 界), 문(phylum, 門), 강(class, 綱), 목(order, 目), 과(family, 科), 속(genus, 屬) 그리고 종(species, 種)과 같은 분류 단계를 분류학적 범주(taxonomic category, 分類學的範疇)라 하며, 명확한 계층으로 할당된 특정 생물군은 분류군(taxon, 分類群)이다. 따라서 붉은털원숭이(rhesus monkey)는 마카카속(genus Macaca), 긴꼬리원숭잇과(family Cercopithecidae), 영장목(order Primates, 靈長目)에 위치하는데, 마카카, 긴꼬리원숭이, 영장은 각각 분류학적 범주인 속, 과 그리고 목을 나타내는 분류군이다. 때때로 상과(superfamily, 上科)나 아종(subspecies, 亞種)과 같은 몇몇 “중간 단계”의 분류학적 범주가 더욱 친숙하고 일반적인 범주와 더불어 사용된다. [종 준위(準位) 위의 분류군인] 상위 분류군(higher taxon, 上位分類群)에 종을 할당할 때, 린네는 그의 생각에 신의 창조 계획에 나와 있는 유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특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그는 “4개의 가지런한 위쪽 앞니와 2개의 가슴 유두”라는 특징으로 영장목을 정의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진화적 토대가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색깔이나 크기가 아니라 이빨로 포유류를 분류하는 데 반대할 근거가 박물학자에게는 없었다.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이 1859년에 출판된 후에 분류는 아주 다른 의미를 띄게 되었다. 1장에서 살펴봤듯이, 다윈은 서로 비슷함에도 구별 가능한 흉내지빠귀(mockingbird)가 갈라파고스 군도(Galápagos Islands)의 저마다 다른 섬에서 살고 있음을 관찰했다. 그는 흉내지빠귀의 서로 다른 형태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고, 그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를 획득했으리라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논리적으로 확장되어 조상 그 자체는 시간상으로 더 과거에 존재한 어떤 조상이 변형된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예를 들어, 다양한 남아메리카 흉내지빠귀처럼] 아주 다른 후손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제시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어떤 먼 조상은 모든 조류 종의 조상이며, 더 먼 조상은 모든 척추동물의 조상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윈은 조상 종이 때때로 두 종류의 후손 종으로 갈라질 수 있으며, 이들이 처음에는 매우 비슷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달라지며 분기(divergence, 分岐)한다고 제안했다. 이들 종 각각은 결국 나뉘고 분기해 두 가지 후손 종을 낳게 되며, 그 과정은 유구한 생명의 역사를 거치면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할 것이다. 따라서 다윈은 “가깝게 연관된” 종이라는 개념에 의미를 두었다. 즉, 이들은 상대적으로 최근 공통조상에서 유래했으며, 반면에 연관이 덜 된 종은 더욱 멀리 떨어진 [즉, 시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는]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 모든 척추동물이 척추를 갖는 것처럼 종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은 창조자가 그들 종 각각에 독립적으로 부여한 게 아니라, 그 특징이 처음 진화해 나타난 조상 종으로부터 유전되었다. 대담하게도, 다윈은 매우 놀랍도록 다양한 생명체의 모든 종은 긴 시기를 거치면서 그러한 사건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아마도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조상인] 단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기원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윈의 말에 따르면, 현존하든 멸종했든 간에 모든 종은 거대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또는 계통수(phylogenetic tree, 系統樹)를 형성하는데, 인접한 잔가지는 그들의 공통조상에서 단지 최근 파생된 살아 있는 종을 나타내지만 다른 가지에 붙어 있는 잔가지는 더 오래된 공통조상에서 파생된 종을 나타낸다 [그림 2.2]. 그는 이러한 은유(隱喩)를 매우 시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같은 부류의 모든 존재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때때로 거대한 나무로 표현되곤 한다. 나는 이 직유(直喩)가 대체로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다. 초록의 싹이 트는 잔가지는 현존하는 종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만들어진 잔가지는 멸종한 종의 긴 연쇄를 나타낼 것이다. 각 성장기에 자라나는 모든 잔가지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주변의 잔가지와 큰 가지보다 높이 솟아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종과 종의 집단은 생명을 위한 거대한 전장에서 항상 다른 종을 압도했다. 거대한 나뭇가지는 큰 가지로, 이것은 더 작은 가지로 나뉘지만, 이들도 한때는 싹이 튼 어린 잔가지였다. 분기하는 가지에 의한 과거와 현재 싹의 이런 연결은 어떤 집단에 종속된 집단에 속한 모든 멸종한 그리고 살아 있는 종을 잘 나타낸다. 나무가 단지 덤불이었을 무렵 번성한 많은 잔가지 가운데, 지금은 큰 가지로 자란 단지 두세 개만이 여전히 생존해 다른 가지를 낳는다. 그렇게, 오래전 지질학적 시기 동안 살았던 종과 함께 극히 일부가 살아 있는 변형된 자손을 남겼다. 그 나무가 처음 성장할 때부터 많은 수의 거대한 나뭇가지와 큰 가지가 썩어 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크기의 떨어진 가지는 지금은 그 어떤 살아 있는 대표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단지 화석 상태로만 알려진 목, 과 그리고 속 전체를 대표한다.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나무 아래쪽 갈라진 부분에서 뻗어 나와 어떤 우연한 기회에 생존에 유리해졌고 여전히 꼭대기에서 살아 있는 가늘고 제멋대로 자라는 가지를 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약간의 유사성으로 두 개의 큰 생명의 가지를 연결하면서 어떤 안전 지역에 거주함으로써 명백히 치명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았던 오르니토린쿠스(Ornithorhynchus)와 레피도시렌(Lepidosiren)과 같은 동물을 본다. *  새로운 싹의 성장으로 싹이 출현하고 이들이, 만일 건강하다면, 가지를 뻗어 사방으로 많은 허약한 가지 위로 솟으면서, 그렇게 세대를 거치면서 죽거나 부서진 가지로 지표면을 채우며 표면을 영원한 가지 뻗기와 아름다운 분지(分枝)로 뒤덮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와 함께 해왔다고 나는 믿는다.


* 오리너구리(duck-billed platypus)인 오르니토린쿠스(Ornithorhynchus)는 원시적이며 알을 낳는 포유류다. 레피도시렌(Lepidosiren)은 현존하는 폐어(lungfish, 肺魚)의 한 속(屬)이고, 사지 척추동물류의 조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고대 화석으로 알려진 분류군이다.



그림 2.2 어떻게 혈통이 공통조상에서 분기하고 멸종한 종과 현존하는 종이 출현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설적 계통관계에 관한 다윈의 설명. 로마숫자 사이의 시간 간격은 수천 세대를 나타낸다. 다윈은 X에서 XIV까지 시간 간격 동안 일어난 세부적 분지는 생략했다. XIV 시기의 현존하는 종은 조상 A, F 그리고 I로부터 추적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원래 혈통은 멸종했다. 가로축을 따라 표시된 거리는 [예를 들어, 체형의 차이처럼] 분기 정도를 나타낸다. 다윈은 진화속도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도표에서 다른 각도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 조상 F에서 파생된 혈통은 본질적으로 변화 없이 살아남았다. [From Darwin 1859.]



다윈의 공통혈통(common descent, 共通血統) 가설에 따르면, 계층분류는 다양한 정도로 가깝거나 멀리 떨어진 실제 계보관계를 가진 생명을 낳는 실제 역사 과정을 반영한다. 같은 과의 다른 속은 이들 각각이 그들의 더욱 먼 공통조상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같은 속 내의 종보다 더 적은 특성을 공유한다. 어떤 목 내의 다른 과는 더욱더 멀리 떨어진 조상에서 기원하며, 공통으로 지니는 특성도 더 적다. 그래서 분류는 어느 정도까지는 실제 진화 역사를 묘사할 수 있다.


Box 2A 분류학 실습과 명명


생명체의 표준 명칭은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 명칭의 표준화를 보장하기 위해 분류학에서는 명명(命名) 규칙을 개발했다.


종 대부분은 특정 생물군의 전문가인 분류학자에 의해 명명된다. 새로운 종은 [예를 들어, 깊은 바다에서 저인망으로 잡힌 생명체처럼]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수도 있지만, 무명(無名)의 많은 종이 기재되기를 기다리며 박물관 수집품에서 대기하고 있다. 더욱이, 어떤 단일 종은 세부 연구를 통해 때때로 둘 또는 그 이상의 매우 유사한 종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어떤 분류군을 종합적 분석으로 검토(revision, 檢討)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분류학자는 자주 새로운 종에 이름을 붙인다. 종명(species name, 種名)은 학술지나 대중적으로 이용 가능한 사적 출판물로 간행되면 공인된 지위를 가진다.


종명은 속명(genus name, 屬名)과 특정 별칭(epithet, 別稱)으로 구성되며, 둘 다 라틴어나 라틴어화 된 단어다. 이들 단어는 항상 이탤릭체로 [또는 밑줄로] 표기하고, 속명은 항상 첫 글자가 대문자다. 곤충학 같은 분야에서는 [특정 별칭을 부여한 사람인] 명명자(命名者)를 포함하는 것이 관례다. 예를 들어, 옥수수뿌리벌레(corn rootworm)의 학명은 Diabrotica virgifera LeConte이다.


종명을 정할 때에는 많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속명과 특정 별칭은 문법적 성(gender)이 일치해야 하는데, 갈색쥐(brown rat)의 학명은 Rattus norvegica가 아니라 Rattus norvegicus로 표기해야 한다.] 명칭에 뜻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예를 들면, 황금날개휘파람새(golden-winged warbler)의 학명은 Vermivora(“벌레를 먹는 존재”) chrysoptera(“황금 날개의”)이며, Rana warschewitschii는 “Warschewitsch의 개구리”란 뜻이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때때로 분류학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종명에 사용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명명법의 첫 번째 규칙은 어떤 두 종의 동물이나 식물도 동시에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 속과 동물 속이 같은 이름을 갖는 것은 허용된다. 예를 들어, Alsophila는 고사리 속과 나방 속의 이름이다. 두 번째는 우선권(priority, 優先權)의 규칙으로, 어떤 분류군의 유효한 이름은 가장 오래전에 적용된 유용 가능한 이름이다. 따라서 두 명의 연구자가 같은 종을 다른 이름으로 독립적으로 기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유효한 이름은 먼저 발표된 것이며, 뒤늦게 발표된 이름은 동의어(synonym, 同義語) 또는 동종이명(同種異名)이 된다. 역으로, 둘 또는 그 이상의 종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판명 날 수도 있다. 이때는 그 이름을 명명자가 기재할 때 사용했던 종에만 적용한다. 이런 식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분명한 모호함을 방지하기 위해, 연구자가 지정한 [모식표본(type specimen, 模式標本) 또는 완전모식표본(holotype, 完全模式標本)이라 불리는] 어떤 단일 표본을 “이름 소유자(name-bearer)”로 지정하는 것이 표준적 관행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연구자가 몇몇 유사 종 가운데 어떤 것이 타당한 이름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부모식표본(paratype, 副模式標本)이라 불리는] 폭넓은 변이의 예가 되는 다른 표본을 통상 수반하는 완전모식표본은 박물관이나 식물원에 맡겨져 조심스럽게 보존된다.


속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분류학에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 변화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 선행 연구자가 다른 속으로 분류했던 종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나타난다면 훗날 같은 속으로 묶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종의 특정 별칭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다른 속으로 바뀌었다면 명명자의 이름이 괄호 안에 기재된다.
  • 어떤 종이 다른 구성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확인되면 원래 있던 속에서 제외되고 다른 속에 놓일 수 있다.
  • 원래 서로 다른 종으로 묘사된 형태가 같은 종이나 동종이명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 새로운 종이 기재될 수 있다.

상위 분류군 명명에 관한 규칙은 종명과 속명의 명명 규칙처럼 엄격하지 않다. 동물학에서 [그리고 식물학에서도 점점] 아과, 과 그리고 때때로 목의 이름은 [최초로 묘사된] 속의 형태에서 파생해 형성된다. 식물의 과명(family name, 科名) 대부분은 –aceae로 끝난다. 동물학에서 아과명(subfamily name, 亞科名)은 –inae로 끝나며 과명은 –idea로 끝난다. 따라서 집쥐의 속명인 Mus(라틴어 mus와 muris이며, 영어로 mouse)는 쥣과(family Muridae)와 쥐아과(subfamily Murinae)의 모식속(type genus, 模式屬)이며, 장미의 속명인 Rosa는 장미과(family Rosaceae)의 모식속이다. 과 이상의 분류에서 명칭의 어미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에서는 표준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집참새(house sparrow)인 Passer를 포함한 참새목의 새는 목명(order name, 目名)에 Passeriformes처럼 –formes를 붙인다. 속 준위 이상의 분류군 이름은 이탤릭체로 표기하지 않지만, 항상 첫 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이들 명칭을 따서 만든 형용사나 구어체 명사는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murids나 murid rodents라고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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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북극곰의 털

2012. 11. 7. 14:48 from 과학 관련



실험실 동료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누군가가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어서 모든 빛을 완전히 반사할 텐데,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지?”란 의견을 내놓았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래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물체가 반사한 가시광선(可視光線)이 우리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최종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며, 이런 점에서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의 어쭙잖은 과학 상식으로 봤을 때, 전반사(total reflection, 全反射)하는 물체는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을 반사하므로 우리 눈엔 그것이 흰색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귀요미 포텐 터지는 북극곰의 털이 흰색인 이유는 북극곰의 몸체가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可視光線)을 반사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꽤 그럴싸하다 [그림 1, 왼쪽].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아니다.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시각적 착각이 북극곰을 흰색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림 1. (왼쪽)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이지만 정말로 무섭고 사나운 맹수인 북극곰. (가운데) 북극곰의 보호 털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출처: Daily Mail] (오른쪽) 북극곰의 보호 털을 측면에서 확대한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 Alaska Fur ID Project]



북극곰 털을 한 올 한 올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극곰의 털이 투명할 정도로 무색에 가깝단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2, 왼쪽]. 그렇다고 곰 털이 투명한 창문 유리처럼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단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의 털은 다른 동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극곰의 털에는 우리 몸의 손톱이나 발톱과 마찬가지로 색소체(色素體)도 없다. 더욱 재미있는 건 북극곰의 피부색이다. 북극곰은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피부색도 하얗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북극곰의 피부색은 검다 [그림 2, 오른쪽]. 그렇다면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는 털과 검은 피부를 가진 북극곰은 당연히 검게 보여야 하는데, 왜 우리 눈에는 하얗게 보이는 걸까?



 

그림 2. (왼쪽) 북극곰의 보호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 흰색이 아니라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다. (오른쪽) 북극곰의 피부색. 의외로 북극곰의 피부는 검다. [출처: Marine Science]



북극곰의 피부는 10 cm 정도 두께의 지방층, 그 위를 덮는 가죽 그리고 무성한 털로 구성되어 있어 혹독하리만치 추운 기후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북극곰의 털은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안쪽에 있는 잔털(underfur)이며, 나머지는 바깥쪽에서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5~15 cm 길이의 보호 털(guard hair)이다. 잔털과 보호 털 모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색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독 보호 털 만은 속이 텅 빈 상태다 [그림 1, 가운데와 오른쪽]. 그런데 이런 무색의 보호 털도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높은 밀도로 빽빽이 밀집해 있으면 빛을 전체적으로 산란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북극곰이 태양빛을 전혀 흡수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으로 유입되는 빛을 산란시킬 뿐이다. 특히, 보호 털의 텅 빈 내부는 태양빛이 피부로 잘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있지만, 빛 자체를 산란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3. 녹색 곰 [출처: FeedAgg.com]



여기에 북극곰의 털이 투명하다는 또 한 가지 증거가 있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은 색이 녹조류(綠藻類) 때문에 가끔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 3]. 초록색 북극곰이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사육장 연못에서 자생하는 녹조류 더미가 북극곰의 털이나 피부에 달라붙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 놀랍게도 북극곰의 텅 빈 보호 털 안에서 녹조류가 자라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의 털 색이 흰색이 아니라 초록색을 띠게 되었다. 아마도 부러진 보호 털의 빈 공간 안으로 우연히 녹조류가 끼어든 게 주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은 북극곰의 털이 녹조류의 초록색을 그대로 투과해 보여줄 정도로 투명함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놀랍고도 신기한 북극곰이다.


참고 문헌

[1] Polar bear. Wikipedia. [링크]
[2] Everyday Mysteries. The Library of Congress. [링크]
[3] Answers [링크]
[4] Lewin RA, and Robinson PT. 1979. The greening of polar bears in zoos. Nature. 278: 445-447.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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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불안증(Mathematics anxiety 또는 Mathematical anxiety)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솔직히 필자도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된 연구가 꽤 있는 것을 보니, 이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항목이 있다 [1]. (위키피디아는 정말 최고다!) 각설하고, 우리는 불안증(不安症)이나 혐오증(嫌惡症)을 정신적 부수 현상(psychological epiphenomena)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필자도 이러한 거부 반응은 순전히 정신적 문제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무시무시한 악몽 같은 수학 앞에 마주했을 때, 이들의 뇌가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맞거나 불에 데거나 하는 물리적 고통의 순간으로 인식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는 반응은 일단 접어두자.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출처: MATH ANXIETY CARTOONS]



미국 시카고 대학 심리학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한 뇌주사(腦走査, brain scan) 기법으로 중증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이 자신이 조만간 수학 시험을 볼 예정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제로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했다 [2]. 그 결과, 꽤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뇌 영역 가운데 통증 등의 육체적 위해(危害)나 위협을 감지한다고 알려진 뇌섬엽(posterior insula)이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주로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불안증 환자의 뇌는 예정된 수학 시험을 기다리는 과정이 물리적 고통과 다름없다고 인지하는 듯하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뇌섬엽 활성화는 오직 수학 문제를 풀기 전까지만 유지되며 막상 수학 문제를 푸는 순간이 되면 이 부분은 비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동일 피험자에게 낱말 맞히기 문제 등을 풀게 했을 때에는 뇌섬엽의 활성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에게 (특히 이들의 뇌에) 고통으로 인식되는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수학 시험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즉,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뇌는 고통을 겪으며, 그러한 생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 이들의 정신은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고통으로 여길지 몰라도 뇌의 통증 인지 영역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인지부조화(인지부조화)와 맞먹지 않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 대부분이 수학과 관련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수학이나 산수를 사용해야만 하는 분야를 꺼리는 성향이 강함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어떤 것을 피하려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불안증이나 공포증―예를 들면, 물 공포증, 거미 공포증, 대인 공포증 등등―은 어떤 뇌 활동 양상을 나타낼까? 비록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르지만, 그것을 회피하려는 행동의 전반적 양상이 비슷함을 고려할 때 이들도 수학 불안증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다르지만 과정과 결과는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얼마 전 필자는 수학을 기피하는 생물학자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3].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수학만 보면 움츠러드는 우리 생물학자 대부분도 수학적 분석 기법으로 연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수학 불안증 환자와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일까? 혹시 우리가 수학적 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임에도 그것을 기피하거나 수식이 가득한 논문만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이유도 사실은 우리 생물학자의 뇌가 수학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통”으로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데에 필자는 500원을 걸겠다. 물론, 농담이다.


[사족 #1] 난 왜 자꾸 이런 게 재미있을까? 아마도 이번 생은 망한 모양이다.
[사족 #2] PLOS ONE은 세상 모든 연구자의 성지이자 자애로운 포용자(包容者)인 모양이다. 별의별 논문이 다 게재되니 말이다.
[사족 #3] PLOS ONE이여, 영원하여라!


참고 문헌
[1] Mathematical anxiety. Wikipedia. [링크]
[2] Lyons IM, and Beilock SL. 2012. When Math Hurts: Math Anxiety Predicts Pain Network Activation in Anticipation of Doing Math. PLOS ONE. 7: e48076. [링크]

[3] 「생물학자 그리고 수학. 그 넘사벽에 관하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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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생식(sex reproduction)으로 번식하는 생명체의 핵 DNA(nuclear DNA) 가운데 절반은 부계 쪽에서 나머지 절반은 모계 쪽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은 모직 모계 계통을 통해서만 자손에게 전달되는데, 이것을 좀 유식하게 표현하면 모계 유전(maternal inheritanc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가장 오래된 최근 공통 조상으로 유전자 흔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핵 DNA를 길라잡이로 사용한다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경로를 거쳐야만 우리의 공통 조상에 도달할 수 있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브"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다. 단, 오해는 마시라. 비교를 위해 단순히 "쉽다" 또는 "어렵다"란 표현을 썼지만, 원래 이런 역주행은 매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런데 핵 DNA는 부모 양쪽에서 정확히 절반씩 물려받으면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왜 모계 계통으로만 자손으로 전해질까? 진화적으로 왜 그리되었는지 본인도 아는 바가 없으므로 뭐라고 답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그 이유는 꽤 명확하다. 왜냐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fertilization)이 일어나면서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정자의 구성 물질은 DNA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즉, (정자의 핵 DNA에 결합한 히스톤 단백질 등을 제외한) 정자 단백질 대부분과 정자의 미토콘드리아 등은 난자 안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정말로 만약에" 정자의 미토콘드리아가 난자 안으로 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 수정란은 여느 개체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자랄까? 아니면 제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까?


최근 『Cell』에 「Heteroplasmy of Mouse mtDNA Is Genetically Unstable and Results in Altered Behavior and Cognition」란 제목으로 하나의 실험용 쥐 개체 안에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존재할 때, 다시 말하면 쥐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이형질성(heteroplasmy) 상태에 있을 때, 이 생명체 안에서 생물학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어떻게 이런 쥐를 만들었는지에 관한 세부적 실험 기법이야 나도 잘 모르므로, 그 부분을 확인하고 싶다면 논문을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면서 결과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명확하다. "정상적인 쥐와 비교했을 때, 이형질성 실험 쥐는 생체의 신진대사 과정뿐만 아니라 쥐의 행동이나 기억 등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아래 그림 참조]." 즉,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조합은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출처: Cell]



쥐를 이용한 이 연구는 다세포성 생명체의 이형질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만일 효모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성 진핵세포나 히드라, 말미잘 같은 다세포성 무척추동물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말미잘 같은 다세포성 무척추동물은 필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진핵세포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세포 안에 존재하더라도 별 탈 없는 건 아닐까? 과거에 이런 연구가 실제로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뒤져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면 이런 생명체가 이형질성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을 때 생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확인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Sharpley MS, et al. 2012. Heteroplasmy of Mouse mtDNA Is Genetically Unstable and Results in Altered Behavior and Cognition. Cell. 151: 333-343.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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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나도 허피스는 영원하리라!"


허피스 바이러스(Herpesvirus)는 한 번 감염되면 죽을 때까지 몸 안에서 계속 생존하는 감염체로, 숙주의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잠복기(latent phage)에서 벗어난다. 이때 허피스는 여타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자기증식을 시작하면서 그 여파로 숙주의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데, 보통은 입술 등 감염 부위에 발진이 일어나고 심한 경우에는 극심한 두통도 선사하는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다.


그런데 허피스 바이러스가 잠복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활성화 상태로 진입하는지 그 메커니즘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제시하는 허피스의 "잠복기-활성기" 전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2].


(1) 어떤 미생물이 숙주 몸 안에 침투할 때, 이 미생물을 막기 위해 면역 체계가 가동한다.
(2) 이 과정에서 허피스 바이러스에 대한 memory T cell의 수가 줄어든다. 즉, 허피스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
(3) 이때를 틈타 허피스 바이러스는 잠복기에서 벗어나 자기증식을 시작한다.
(4) 그리고 감염자는 발진이나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5) 외부 감염원 제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숙주는 허피스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체계를 다시 작동한다.
(6) 그리고 허피스 바이러스는 잠복기에 접어들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잠복기-활성기" 전환 과정이 오로지 미생물 등의 새로운 외부 감염으로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생물학적 과정이 적어도 허피스 바이러스의 생활 주기에 영향을 준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사랑은 저 멀리 떠나가도 아픈 추억은 죽을 때까지 몸에 각인되니, 이런 의미에서 허피스 바이러스는 진정한 생물학적 기회주의자임이 분명하다. 아니, 진정한 사랑의 아픔(?)이라고 해야 적당한 표현일까?


[티스토리 에디션에 표시된 사진 출처: Natalie Dee archives]


참고 문헌
[1] Campbell J, et al. 2012. Transient CD8-memory contraction: a potential contributor to latent cytomegalovirus reactivation. J Leuk Bio. in press. [링크]
[2] 「How and Why Herpes Viruses Reactivate to Cause Disease」. ScienceDaily. 31 Oct 2012.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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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과 정우성이 출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수애와 김래원이 열연한 『천일의 약속』,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히구치 카나코(樋口可南子)와 와나나베 켄(渡邊謙)이 나왔다는 『내일의 기억(明日の記憶)』,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과 레이첼 맥아담스(Rachel McAdams)이 분한 주인공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트북(The Notebook)』.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다. 관람자의 눈물샘을 자극할 목적으로 이 병을 모티브로 사용했겠지만, 실제로도 이 병은 환자 본인은 물론 주변인도 꽤 힘들게 한다고 알려졌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출처: DAUM 영화], 『천일의 약속』 [출처: DAUM 영화], 『내일의 기억(明日の記憶)』 [출처: DAUM 영화], 『노트북(The Notebook)』 [출처: DAUM 영화]



알츠하이머병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腦疾患)이자 노년에 주로 나타나는 치매(dementia, 癡簞)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노화(老化) 과정에서 뇌 조직에 문제가 발생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1]. 주요 병리학적 특징으로는 뇌 조직의 전반적 위축(萎縮), 뇌실(腦室)의 확장, 신경 섬유의 다발성 병변(多發性病變), 초로성 반점(初老性半點) 등을 들 수 있으며, 임상적으로는 기억, 판단, 그리고 언어 능력과 같은 지적 기능이 점진적으로 감퇴하여 일상생활 능력이 저하되고 인격과 행동 양상의 퇴행을 보이는 등 기억과 정서 측면에서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 이 병의 발병 원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밝혀졌지만, 명확한 치료법은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불안정 수면 양상(disturbed sleeping pattern)이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徵候)일 수 있다는 보고가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개최된 신경과학 연례 학회(the Annual Meeting of the Society for Neuroscience)에서 발표되었다 [2].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는 일반적으로 발병 초기에 수면 각성 주기(sleep-wake cycle, 睡眠覺醒週期)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 변화가 알츠하이머병과 어떤 연관―원인이냐 결과냐? 원인이라면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등등―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는 듯하다. 캐나다(Canada) 핼리팩스(Halifax)에 있는 댈하우지 대학(Dalhousie University)의 신경심리학 연구팀은 이러한 수면 교란(sleep disruption, 睡眠攪亂)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진짜 관련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50세 이상의 1만 4천6백 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수면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우 흥미로운 양상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수면 장애를 호소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이러한 증상이 있은 지 2년 이내에 알츠하이머 환자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수면 장애가 심할수록 알츠하이머병의 증상도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Futurity]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연구팀의 의견을 따른다면 이러한 교란된 수면 양상은 알츠하이머병의 두드러진 병리학적 증상인 신경 세포 주변의 아밀로이드-베타(amyloid-ß) 단백질의 축적으로 나타나는 비수용성 플라크(insoluble plaque)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했기 때문에 단순히 불규칙한 수면 주기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가능성도 분명 배제할 수 없는데,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과학자, 특히 미주리(Missouri) 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 의과 대학 소속 신경학자인 데이비드 홀츠만(David Holtzman)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비정상적 수면 양상이 알츠하이머 병의 진행 속도를 가속할 가능성도 있다. 즉, 알츠하이머병으로 이러한 수면 주기가 나타남은 분명하지만, 이것 때문에 오히려 병의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노년에 비정상적인 수면 주기가 발생하는 경우, 알츠하이머병과의 관련성이 높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수면 주기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꼭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노년에 자신의 수면 주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반드시 병원에 들러 전문의와 상담하기 바란다.


참고 문헌
[1] Alzheimer's disease. Wikipedia. [링크]
[2] Cossins D. 19 Oct 2012. Restless Nights Predict Alzheimer's? The Scientist.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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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몬산토(Monsanto)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에 대한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Genetically modified crop) 옥수수를 실험용 쥐에게 먹였을 때, 이들에서 유방암 등의 발병률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이 연구는 유전자 변형 작물에 호의적인 일부 과학자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1, 2, 3, 4]. 그리고 2012년 11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모든 제품에 유전자 변형 작물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명시하는 법안(Proposition 37)에 관한 투표가 실행될 예정이며 [5], 최근에는 미국 과학진흥협회(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가 이 법안이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5, 6]. 이처럼 유전자 변형 생명체에 관한 논란은 점점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 양상 또한 매우 격해지고 있다.



유전자 변형 콩을 키우는 농장 [출처: Daily Mail Online]



필자는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과학적 문제 제기는 어떤 식으로든 타당하다고 믿으며,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한 비판, 방어 그리고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옹호도 과학적 방식으로만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두 진영의 인식에 있는데, 한쪽은 철저하게 은닉하거나 외면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두 진영 모두 유전자 변형 작물의 과학성만 주구장창 바라볼 뿐이지 되려 문제의 본질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유전자 변형 작물을 연구하는 과학자 가운데 상당수는 유전자 작물 연구의 최대 지원자인 다국적 농업 기업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밥줄에 날 선 비판을 섣불리 갖다 대기 어렵다. 반대 진영 또한 이들 작물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길만이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듯 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학 자체에는 선악(善惡)이 없다. 문제는 그 과학에 올라탄 존재인 인간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어떤 의도로 과학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유용성 여부는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으며,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과학자 다수는 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 순수한 의미에서든 속물적 계기든 어떤 의도를 가슴 속에 품으며, 이것은 비단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전형적 행동 방식이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싶으냐에 따라서 그것이 유익하든 유해하든 상관없이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매우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의 유용성/유해성이라는 과학 논쟁은 두 진영 사이의 대립에 숨겨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의도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끝없는 소모적 논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과 동시에 본질을 더욱 은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 것이며, 말 그대로 “죄 없는 허수아비를 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찬성자나 반대자 모두 과학을 중심에 놓고 자신의 당위성이 제일이라며 서로 설전(舌戰)을 주고받기에 바쁘다. 예를 들어, 다국적 농작물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찬성 측에서는 유전자 변형 작물이 다가올 전지구적 식량 위기 해결과 기근에 시달리는 저개발 지역 주민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 진영에서는 이 작물이 인류의 건강과 지구 환경을 해치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믿음이 팽배하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다. 그렇다고 백 퍼센트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득(得)이 있으면 실(失)이 있기 마련. 유전자 변형 작물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 그것은 바로 20세기 이후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이다. 우리는 이윤 추구를 최고의 미덕(美德)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초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와 비교하면 그래도 나아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행이나 편법도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되는 것은 과거와 다를 바 없으며 어떻게 보면 더욱 정교해졌다고 할 수 있다. 몬산토 같은 다국적 거대 농작물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들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단지, 이들은 자신의 이윤에 대한 무한한 갈망(渴望)을 “과학”이라는 울타리 뒤에 숨긴 채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한 듯이 “인류의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범지구적 인류애”라는 눈물 나는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치장되어 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일은 이윤 추구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은 인류를 위한 것이다!”


과학은 “악”이 아니다. 단지 사용하는 자가 그 운명을 결정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다국적 기업의 손에 넘어간 유전자 변형 작물 연구를 다시 우리에게 돌리는 일이다.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섣부른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말도 안 되는 헛된 꿈만 가득한 과장과 숨김없이 유전자 변형 작물에 관한 과학적 진실을 대중 일반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이 유기체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이점이 있고 어떤 위해(危害)가 있으며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연구 의존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공적 자금으로 이들의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이래야만 하고 싶은 말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법이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어렵다면 과학자 스스로 최소한 자신의 양심을 걸고 스스로 문제를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야 한다. 이런 행동을 위한 결단이 어렵다는 것쯤은 잘 안다. 과학자도 사람인데 특별히 다를 게 뭐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우리 과학자 말고는 제대로 할 사람이 없다. 솔직히 과학에 무지한 열정적 활동가, 정치가, 관료, 기자, 자본가 아니면 이런저런 필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단언컨대, 과학자 이외엔 아무도 없다.


참고 문헌

[1] Séralini GE, et al. 2012. Long term toxicity of a Roundup herbicide and a Roundup-tolerant genetically modified maize. Food Chem Toxicol. 50: 4221-4231. [링크]
[2] MacKenzie D. 19 Sep 2012. Study linking GM crops and cancer questioned. New Scientist. [링크]
[3] 이성규. 2012년 10월 9일. 「GM 작물 안전성, 다시 도마 위에….」 사이언스타임즈. [링크]
[4] 「유전자 변형 작물이 정말로 암을 유발하는가? ― 세랄리니 박사 연구팀의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 [링크]
[5] Grant B. 30 Oct 2012. AAAS: Don't Label GM Foods. The Scientist. [링크]
[6] AAAS. 20 Oct 2012. Statement by the AAAS Board of Directors On Labeling of Genetically Modified Food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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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 발생에 관한 담론(談論)은 17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묘한 변화가 일부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설명에 첨삭(添削)하거나 가벼운 반론(反論)을 제기하는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인도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관찰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자세로 임했던 똑똑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자연발생설”을 받아들였으니, 고대 그리스와 비교했을 때 철학적으로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한 고대 로마인도 별수 없었을 게다. 물론, 당시 고대 로마인 중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문헌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위키피디아(Wikipedia) “자연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에서 다루고 있는 고대 로마 제국 시기 문헌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통념(通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



 

그림 1. (왼쪽) 비트루비우스가 자신의 책 『건축론』을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주제로 1864년에 제작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390년경에 양피지(羊皮紙)로 제작된 『건축론』의 필사본(筆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며 기술자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 BC 80?~ BC 15?)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의 역작인 『건축론(de Architectura)』은 고대 로마 시대 이전까지 있었던 다양한 건축 기법을 총망라했다고 알려졌다 [17] [그림 1, 왼쪽]. 생명체 발생 이론의 변천사를 다루는 글에서 건축학의 고전을 다루는 게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제6권 제4장 제1절에는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 [그림 1, 오른쪽]. 원래대로라면 독자의 수고를 덜기 위해 영어 원문을 번역하는 게 글쓴이의 도리(?)지만, 번역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영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도 재미로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번역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필자의 실력 또한 변변치 않으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글에서 인용한 고대 로마 시대 작품은 인터넷상에 그 전문(全文)이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I shall now describe how the different sorts of buildings are placed as regards their aspects. Winter triclinia (주: 고대 로마의 3면에 눕는 안락의자가 붙은 식탁이 있는 식당) and baths are to face the winter west, because the afternoon light is wanted in them; and not less so because the setting sun casts its rays upon them, and but its heat warms the aspect towards the evening hours. Bed chambers (주: 로마의 주택의 침실) and libraries should be towards the east, for their purposes require the morning light: in libraries the books are in this aspect preserved from decay;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에서 굵은 글씨체로 표시한 “Bed chambers …… preserved from decay”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자. 여기에서 비트루비우스는 책의 부패(腐敗) 방지를 위해 “침실과 도서관은 아침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창문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지어야 한다”고 기술(記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햇볕이 잘 들어오는 건물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잘 자라지 않는다. 햇볕 이외에 건물의 환기 여부도 미생물의 증식을 사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건물 내부의 눅눅함을 지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건물 내부로 햇볕이 얼마나 잘 들어오느냐”일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사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게다가, 당시 문서 대부분이 파피루스(papyrus)나 양피지(羊皮紙) 등과 같은 썩기 쉬운 재질(才質)로 만들어졌음을 고려한다면 도서관 건립 시 이런 점이 매우 중요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남쪽과 서쪽을 향하는 건물은 습한 바람이 생성하는 벌레와 그것이 불어넣는 눅눅함(damp)으로 손상된다”고 서술한 점에서 이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습한 바람의 건물 내 유입으로 말미암은 습도 상승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벌레를 생성한다”는 생각은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당연하게 여긴 고대인의 전형적 발상이다. 게다가, 이 바람은 “벌레를 생성케 하는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책에 곰팡이가 피게 한다(make the books mouldy). 이러한 사고방식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비추어 살펴보자. 내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무조건 멍청하고 무지한 내 책임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사물이 물, 불, 바람(공기), 흙(대지)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인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천구(天球)의 움직임을 설명할 목적으로 아이테르(aither)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생명체의 발생은 오로지 4원소만으로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발생론(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제3권 제11편에 나와 있는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3].


 Animals and plants come into being in earth and in liquid because there is water in earth, and air in water, and in all air is vital heat so that in a sense all things are full of soul. Therefore living things form quickly whenever this air and vital heat are enclosed in anything. When they are so enclosed, the corporeal liquids being heated, there arises as it were a frothy bubble. …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따르면 동물과 식물은 흙(땅)과 액체(아마도 물)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흙에 물이 있고, 물에는 공기가 있으며, 공기에는 생체열(vital heat, 生體熱)이 있으므로, 모든 사물은 영혼(즉, 프네우마[pneuma])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공기’는 모든 기체를 포괄하는 단어이므로 바람은 공기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따르면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실체는 상반된 성질을 가진 4원소―흙은 냉기(冷氣)와 건조(乾燥), 물은 냉기와 습기(濕氣), 공기는 열(熱)과 습기, 불은 열과 건조―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4]. 따라서 비트루비우스가 언급한 “습한 바람”, 즉 “습한 공기” 안에는 생체열이 있으므로, 고대인의 관점에서 곰팡이 같은 생명체는 최적의 조건만 주어진다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 관점은 철학 그 자체로는 의미 있다 할지라도 과학적으로는 황당무계하다. 하지만 비트루비우스를 비롯한 고대 로마인이 알고 있는 상식은 오늘날 우리와 같지 않다. 그러니, “습한 바람이 자연적으로 벌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의 기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어



  

그림 2. 여러 가지 종류의 장어. (왼쪽) 곰치(moray eel, 곰치). 곰치도 장어의 한 종류다. (가운데) 아메리카 장어의 치어(稚魚). (오른쪽) 정원 뱀장어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유명한 박물학자를 살피기 전에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훑어보자.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에서도 소개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특히 해양동물에 관한 관찰 기록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순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몇몇 하등동물과 일부 동물에 대해서는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그의 이런 이중적 태도가 나타난 데에는 이들 동물에 대한 어떤 선입견과 아무리 꼼꼼하게 살폈다 하더라도 있을 수밖에 없는 관찰의 미진(未盡)함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룰 주인공은 바로 장어(eel)이다 [그림 2].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나와 있는 장어에 관한 설명을 살펴보자 [5].


All male fishes are supplied with milt, excepting the eel: with the eel, the male is devoid of milt, and the female of spawn. The mullet goes up from the sea to marshes and rivers; the eels, on the contrary, make their way down from the marshes and rivers to the sea.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수컷 물고기에 어백(milt, 魚白), 다시 말하면 정액(精液)이 있다면서, 장어만은 예외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수컷 장어는 정액이 없으며, 암컷 장어는 알을 낳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장어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신의 장난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 길”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에서 사는 장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무리 봐도 이해하긴 어렵고,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한 채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철학적 입장을 고려했을 때에도 갑자기 신을 우뚝 세우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장어가 땅에서 솟아나길 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6편 일부를 살펴보자 [6].


There is no doubt, then, that they proceed neither from pairing nor from an egg. Some writers, however, are of opinion that they generate their kind, because in some eels little worms are found, from which they suppose that eels are derived. But this opinion is not founded on fact. Eels are derived from the so-called 'earth's guts' that grow spontaneously in mud and in humid ground; in fact, eels have at times been seen to emerge out of such earthworms, and on other occasions have been rendered visible when the earthworms were laid open by either scraping or cutting.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장어 탄생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 발생으로 장어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우리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에서 해답을 찾았다. 위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장어가 진흙이나 축축한 땅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지구의 내장(earth’s guts)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내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곧바로 지렁이(earthworm)가 언급되는 걸로 봐선 “지구의 내장”이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環形動物)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처럼 생긴 어떤 동물에서 나타난다고 봤으며, 간혹 잘린 나뭇가지(cutting: ‘cut’의 원래 의미는 ‘자르다’이지만 ‘cutting’에는 ‘나뭇가지’란 뜻도 있다)나 어떤 물체의 부스러기(scraping: ‘scrape’은 ‘긁다’란 뜻으로 사용되지만 ‘scraping’에는 ‘부스러기’란 뜻도 있다) 등으로 땅을 파서 지렁이를 땅 바깥으로 드러내면 장어의 모습이 보였다는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목격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봤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 같은 동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을까?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어린 장어나 장어의 치어(稚魚)는 매우 가는 모양새 때문에 지렁이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면 “아, 저건 지렁이야!”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어린 장어가 지렁이와 혼동될 정도로 그렇게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가? 어린 장어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필자로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둘째, 장어는 바다나 강의 얕은 물가에 있는 모래 더미나 진흙 속 또는 바위틈에서 주로 서식한다 [18]. 지렁이는 어떨까? 지렁이의 서식지는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습기가 충분한 토양에서 산다고 알려졌다 [19]. 따라서 모양도 길쭉하니 얼추 비슷한 서로 다른 두 동물이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장어는 지렁이에서 비롯한다”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문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다.


장어의 발생에 관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잘못된 설명을 내놓은 아리스토텔레스라 할지라도, 장어의 독특한 습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숭어(mullet)는 바다에서 습지(marsh, 濕地)와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장어는 습지와 강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란 문구가 있는 걸로 봐선, 그는 장어의 이동 습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5].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장어의 회귀성(回歸性)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장어에겐 담수(淡水)에서 자라 적도 근처의 심해(深海)에서 산란하고, 부화한 치어가 담수로 다시 돌아와 산란기 전까지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 [18]. 따라서 이런 장어의 신비로운 특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대로 된 장어의 생활사를 관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장어의 발생에 관해 엉뚱한 해석을 내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대(大) 플리니우스 그리고 장어



 

그림 3. (왼쪽) 대(大) 플리니우스. 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에 제작된 플리니우스의 초상화도 실제 그의 모습은 아니며 누군가가 상상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669년에 제작된 『박물지』 제1권의 사본(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조카인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AD 61~AD 112)와 구별하기 위해 훗날 대(大) 플리니우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 AD 23~AD 79)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궁금한 게 많았던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의 명문가였던 플리니우스 씨족에서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학구적인 사람으로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다고 알려졌다. 다만, 철학적인 소양은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런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말자.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부분이니까 말이다. 여담이지만, 대 플리니우스는 서기 79년경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Pompeii)를 하루 만에 멸망의 길로 인도한 베수비오(Vesuvio) 화산 폭발 당시 미세노(Miseno) 함대 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7]. 매우 근면했다고 알려진 그답게 (그리고 로마 제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투철한 시민 정신으로 무장한 채) 그는 화산 폭발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폼페이 시민의 탈출을 열심히 돕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구조 작업 중에 화산이 뿜어낸 유독 가스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다 [7]. 또 하나 여담이지만, 당시 황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황제 티투스(Titus Flavius Caesar Vespasianus Augustus, AD 39~AD 81)도 이 엄청난 재앙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재위 2년 만에 과로로 죽었다. 그의 동생인 다음 황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Caesar Domitianus Augustus, AD 51~AD 96)가 독살로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 [8].


플리니우스는 매우 박식하고 지식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대중적 백과사전을 집필하고자 하는 욕구도 매우 강했다. 그 결과가 바로 우주론, 천문학, 지리학, 인류학, 생물학, 식물학, 광물학 등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다룬 (아마도 유럽 최초의 대중적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자연사(Historia Naturalis)』라고 할 수 있다 [9].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몇몇 주제는 적어도 당대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관점에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의 책에 나와 있는 우주론과 천문학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그 어떤 수학자나 철학자에게 자문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적 견해와도 매우 동떨어졌다. 게다가, 이 책은 플리니우스의 염원대로 “대중적이며 종합적인 대백과사전”을 지향(指向)했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넓었지만, 내용의 깊이 또한 매우 가볍고 피상적이었다 [10].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매우 많은 것을 다루었고 훗날 중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나의 관심사인 “생명 발생 이론의 변천사”에 관한 조사를 전개하는 데도 중요하다. 특히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플리니우스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장어의 생활사를 서술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덕후에겐 덕후의 즐거움이란 게 있지 않은가? 나에게 즐거운 덕질을 안겨준 대 플리니우스에게 진심으로 경의(敬意)를 표한다. 이제 플리니우스의 시점에서 장어를 바라볼 차례인데, 『박물지』 제9권 『어류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제74장 「어류의 발생(The Generation of Fishes)」을 살펴보자 [11].


Eels, again, rub themselves against rocks, upon which, the particles which they thus scrape from off their bodies come to life, such being their only means of reproduction.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과는 별개로, 같은 책 제38장에 나와 있는 장어의 생활사에 관한 묘사는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크게 다르진 않다 [12]. 하지만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어는 지렁이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떠올렸을 때, “장어는 자신의 몸을 바위에 문질러 장어가 될 입자를 몸에서 떼어낸다”는 플리니우스의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와는 구별되는 독창성이 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의 이런 해석은 근거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13]. 아리스토텔레스도 당대의 상황적 한계로 많은 그가 관찰한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있었지만, 플리니우스는 그것과 더불어 해석에서도 좀 뜬금없는 부분이 있다. 지금처럼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어에 관한 두 박물학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일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무리를 짓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플리니우스는 장어의 발생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과연 알고 있었을까?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몇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고대 로마인은 그리스 철학이 유약(幼弱)하고 퇴폐적이라고 생각했다 [20]. (물론,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등감 또한 상당했다.) 따라서 전형적인 로마 지식인 플리니우스가 직접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가 『자연사』를 집필할 때, 수많은 조수를 동원해 당시 존재했던 엄청난 양의 문헌을 조사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직접 섭렵하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그의 조수가 정리해놓은 내용을 살펴봤을 가능성도 있다 [9]. 따라서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장어의 발생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플리니우스 그리고 자연발생


장어를 포함한 일부 사례를 제외한다면 플리니우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믿고 있다. 『자연사』에서 장어의 발생을 설명하는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홍합, 가리비, 굴에 관한 그의 의견을 살펴보자 [11].


Mussels, also, and scallops are produced in the sand by 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 Those which have a harder shell, such as the murex and the purple, are formed from a viscous fluid like saliva, just as gnats are produced from liquids turned sour, and the fish called the apua, "from the foam of the sea when warm, after the fall of a shower. …… Those fish, again, which are covered with a stony coat, such as the oyster, are produced from mud in a putrid state, or else from the foam that has collected around ships which have been lying for a long time in the same position, about posts driven into the earth, and more especially around logs of wood. It has been discovered, of late years, in the oyster—Beds, that the animal discharges an impregnating liquid, which has the appearance of milk.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그림 4. (왼쪽) 홍합(mussel, 紅蛤) [출처: 위키피디아]. (가운데) 가리비(scallop)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굴(oyster) [출처: 위키피디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필자는 이 사진을 보고 “소주 한잔하면 정말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플리니우스는 홍합(mussel, 紅蛤)과 가리비(scallop)처럼 딱딱한 껍질을 가진 해양생물은 자연의 자발적 작용(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으로 모래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림 4]. 그리고 굴(oyster)은 부패한 진흙이나 한 지역에 오랫동안 정박해 있는 배(주: 이런 배는 주로 난파선이다)와 (아마도 부두 선착장을 지지하기 위해 바닷속에 박아 둔) 통나무 주변으로 모여든 거품에서 굴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인가! 플리니우스는 이 모습을 보고 이런 곳에서 굴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플리니우스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부패한 진흙, 난파선, 그리고 바닷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는 통나무가 바로 굴과 같은 어패류가 산란하며 군집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플리니우스가 장어를 비롯한 몇몇 동물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주장을 펼쳤지만, 이 단락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지지하는 견해에 서 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멸치 그리고 아테나이우스의 멸치


나우크라티스(Naucratis)의 아테나이우스(Athenaeus)는 서기 2~3세기 사이 고대 로마 제정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 출신의 수사학자이자 문법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저작 가운데 『데이프노소피스타이(Deipnosophistae)』라는 작품, 우리말로 풀어쓰면 “식탁 대화의 명인(名人)”이나 “식탁 대화의 철학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책은 꽤 유명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거나 알려진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필자도 이 책의 이름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접한 터라 실상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도 소개까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은 철학자 사이의 잡담이라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와 관련된 다양한 화제―주로 식사와 관련된 것이지만, 음악, 미술, 노래, 오락, 창녀, 사치와 관련된 내용도 다룬다―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작품 안에서 무려 거의 8백 명의 작가와 2천5백 가지의 작품이 이 책에서 언급되었다고 알려졌다 [14]. 이 가운데 여러 가지 물고기와 관련된 잡담을 주고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15].


But of the anchovies (주: 멸치류 물고기) there are many kinds, and the one which is called aphritis is not produced from roe, as Aristotle says, but from a foam which floats upon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which collects in quantities when there have been heavy rains.



그림 5. 혹시라도 멸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넣은 …… [출처: 위키피디아]



이 부분에서 화자(話者)는 “다양한 종류의 멸치류 물고기 가운데 아프라이티스(aphritis: 필자도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라 불리는 멸치류 물고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알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대신 수면을 떠다니며 폭우가 내릴 때 다량으로 모이는 거품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다 [그림 5]. 식탁에서 일어난 대화 형식을 빌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멸치가 거품에서 태어나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혹시 다른 부분에 이것과 관련된 언급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장에서만큼은 그 어떤 근거도 나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멸치의 발생을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5편을 살펴보자 [16].


The ordinary fry(주: 치어[稚魚]) is the normal issue of parent fishes: the so-called gudgeon-fry of small insignificant gudgeon-like fish that burrow under the ground. From the Phaleric fry comes the membras, from the membras the trichis, from the trichis the trichias, and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to wit from that found in the harbour of Athens, comes what is called the encrasicholus, or anchovy. There is another fry, derived from the maenis and the mullet.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저런 치어가 이런저런 물고기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하는데, 마지막 부분인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 the encrasicholus, or anchovy”에서 멸치류 물고기는 아테네 항에서 발견되는 특정 종류의 치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보기엔 물고기에서 물고기가 발생하는 게 거품에서 멸치가 발생하는 자연발생적 관점보다 훨씬 이치에 맞지만,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에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적어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부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묘사가 오늘날의 과학에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보다 말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을 살펴봤다.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이 가졌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음번에는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의 생명체 발생에 관한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de Architectura (On Architecture)』 Book VI, Chapter 4, Section 1. Marcus Vitruvius Pollio / translated by Joseph Gwilt. [링크]
[3]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On the Generation of Animals)』 Book III, Part 11. Aristoteles / translated by Arthur Platt. [링크]
[4]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50쪽.
[5]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VI. Part 14. Aristoteles / translated by D'Arcy Wentworth Thompson. [링크]
[6] Ibid. Book IV, Part 16. [링크]
[7] Gaius Plinius Secundus. Wikipedia. [링크]
[8] Titus. Wikipedia. [링크]
[9]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238~240쪽.
[10] 같은 책. 241~242쪽.
[11] 『Historia Naturalis (Natural History)』. Book IX, 『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Chapter 74, 「The Generation of Fishes」. Gaius Plinius Secundus / translated by John Bostock and Henry Thomas Riley. [링크]
[12] Ibid. Chapter 38, 「The Generation of Fishes」. [링크]
[13] Ibid. Chapter 74. See Note 20. [링크]
[14] Athenaeus. Wikipedia. [링크]
[15] 『Deipnosophistae』 Volume I, Book VII. Athenaeus of Naucratis / translated by Henry G. Bohn. p. 447. [링크]
[16]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6, Part 15. [링크]
[17] Marcus Vitruvius Pollio. Wikipedia. [링크]
[18] Eel. Wikipedia. [링크]
[19] Earthworm. Wikipedia. [링크]
[20]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375~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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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에 대한 보충으로써,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 놓은 『The TalkOrigins Archive』에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의 역사(History of Animals)』 발췌 부분이 있어서 이를 내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다.


다음은 『동물의 역사』에서 몇몇 종류의 동물이 원소(흙, 물, 공기, 불)와 질료 안에 담긴 영혼으로 직접 발생할 수 있다는 언급이 담겨 있는 문장이다.


So with animals, some spring from parent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whilst others grow spontaneously and not from kindred stock; and of these instances of spontaneous generation some come from putrefying earth or vegetable matter, as is the case with a number of insects, while others are spontaneously generated in the inside of animals out of the secretions of their several organs. ― 539a18-26

As a general rule, then, all testaceans grow by spontaneous generation in mud, differing from one an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material; oysters growing in slime, and cockles and the other testaceans above mentioned on sandy bottoms; and in the hollows of the rocks the ascidian and the barnacle, and common sorts, such as the limpet and the nerites. ― 547b18-22

Other insects are not derived from living parentage, but are generated spontaneously: some out of dew falling on leaves, ordinarily in spring-time, but not seldom in winter when there has been a stretch of fair weather and southerly winds; others grow in decaying mud or dung; others in timber, green or dry; some in the hair of animals; some in the flesh of animals; some in excrements: and some from excrement after it has been voided, and some from excrement yet within the living animal, like the helminthes or intestinal worms. ― 551a1-10

A creature is also found in wax long laid by, just as in wood, and it is the smallest of animalcules and is white in colour, and is designated the acari or mite. In books also other animalcules are found, some resembling the grubs found in garments, and some resembling tailless scorpions, but very small. As a general rule we may state that such animalcules are found in practically anything, both in dry things that are becoming moist and in moist things that are drying, provided they contain the conditions of life. ― 557b1-13

Some writers actually aver that mullet all grow spontaneously. In this assertion they are mistaken, for the female of the fish is found provided with spawn, and the male with milt. However, there is a species of mullet that grows spontaneously out of mud and sand. From the facts above enumerated it is quite proved that certain fishes come spontaneously into existence, not being derived from eggs or from copulation. Such fish as are neither oviparous nor viviparous arise all from one of two sources, from mud, or from sand and from decayed matter that rises thence as a scum; for instance, the so-called froth of the small fry comes out of sandy ground. This fry is incapable of growth and of propagating its kind; after living for a while it dies away and another creature takes its place, and so, with short intervals excepted, it may be said to last the whole year through. ― 569a21-569b3


그는 『동물 발생론(On the Generation of Animals)』의 제3권 11장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All those which do not bud off or 'spawn' are spontaneously generated. Now all things formed in this way, whether in earth or water, manifestly come into being in connexion with putrefaction and an admixture of rain-water. For as the sweet is separated off into the matter which is forming, the residue of the mixture takes such a form. Nothing comes into being by putrefying, but by concocting; putrefaction and the thing putrefied is only a residue of that which is concocted. For nothing comes into being out of the whole of anything, any more than in the products of art; if it did art would have nothing to do, but as it is in the one case art removes the useless material, in the other Nature does so. Animals and plants come into being in earth and in liquid because there is water in earth, and air in water, and in all air is vital heat so that in a sense all things are full of soul. Therefore living things form quickly whenever this air and vital heat are enclosed in anything. When they are so enclosed, the corporeal liquids being heated, there arises as it were a frothy bubble. Whether what is forming is to be more or less honourable in kind depends on the embracing of the psychical principle; this again depends on the medium in which the generation takes place and the material which is included.


자세한 사항은 앞에서 언급한 『The TalkOrigins Archive』의 「Spontaneous Generation and the Origin of Life」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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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론(spontaneous generation theory, 自然發生論)은 어떤 생명체가 같은 종(species, 種)의 생명체가 아니라 비(非)생명체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 수 있다. “벼룩(flea)은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구더기(maggot)는 썩은 고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것과 유사한 이론으로 이형 발생론(heterogenesis, xenogenesis 또는 unequivocal generation, 異形發生論)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생명체가 전혀 다른 생명체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촌충(tapeworm, 寸衷)은 돼지나 인간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발생론이 생명체의 비생명체 기원 가능성을 주장하고, 이형 발생론은 어떤 생명체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의 발생이 가능함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이론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지만, 두 주장 모두 오늘날 유전 법칙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형 발생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내놓은 예는 오늘날 기생-숙주 관계(parasite-host relation, 寄生宿主關係)의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부분은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19세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자연발생론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한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그의 생물학은 그의 선배 철학자의 이론과 고대부터 전해진 신화를 규합하고 확장한 작업이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 연구는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전 유럽을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 [1]. 마치, 천문학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있었다면 생물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이 있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이론은 점차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들어서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1859년 출간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과 1861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생명의 자연발생을 부정하는 유명한 실험으로 말미암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은 극히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과학 체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1, 2].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생물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명체, 특히 동물, 그 가운데에서도 해양 동물 연구에 많은 힘을 쏟아 부었다. 그의 이런 노력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동물 연구를 포함한 생명체 관련 저작은 현존하는 그의 저작 가운데 무려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 어떤 동기로, 생명체 연구에 관심을 뒀는지 불분명하다. 그의 부친이 내과 의사였기 때문에 그가 생물 연구에 관심을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4], 결정적 동기는 아마도 자신의 철학을 뒷받침할만한 실체적 근거를 찾으려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형상(形相)과 목적인(目的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예증할 어떤 증거나 뒷받침을 생명체와 그것의 일부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특히, 『동물 부분론(On the Part of Animal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물과 인간은 본질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인체 구조에 관한 지식 확장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자연이 우연한 산물이라는 관념을 물리칠 좋은 기회다”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자연과학의 목적과 정당성은 어떤 현상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으며, 자연에 의한 것이든 기술(技術)에 의한 것이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설명을 위해 네 가지 요인―(a) 사물의 질료(質料), (b) 사물의 형상(形相), (c) 사물의 운동인(運動因) 또는 작용인(作用因), 그리고 사물의 목적인(目的因)―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5]. 탁자를 예로 들어보자. 테이블은 나무와 같은 그 무언가(즉, 질료)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탁자는 특정 형태(즉, 형상)을 띠고 있다. 더불어, 탁자는 목수와 같은 기술자(즉, 운동인)가 만든다. 마지막으로, 목수가 탁자를 만들 때에는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든다(목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철학적 원리를 적용했다. 인간의 생식 작용(生植作用)을 예로 들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의 질료가 어머니로부터 제공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인간 종(species, 種)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하는 특성이다. 운동인은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의 목적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이성적 직립 동물”이 되기 위한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완전한 성인(成人)이 되는 것이다 [5]. 이것은 단지 인간의 생식작용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탄생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1) 어떤 것으로 구성되고, (2) 어떤 것의 작용 때문에 만들어지며, (3) 반드시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어떤 유기체를 구성하는 것은 질료이며, 만드는 것은 형상과 운동인(또는 작용인)이며,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그 생명체의 성장이 추구하는 목적인이다 [6].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생명체는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질료는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관이며 형상은 모든 기관을 통일된 유기적 전체로 엮어주는 원리이다. 이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영혼(pneuma, 靈魂)이며 이것은 섭생, 번식, 성장, 감각 작용, 운동 등과 같은 생명체의 기본 특징을 결정하는 제일 원인이라고 믿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어떤 종류의 영혼을 갖느냐에 따라 생명체의 기능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는 위계질서(位階秩序)로 배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은 섭생의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번식할 수 있으며, 동물은 감각의 영혼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다 [6].


인간은 여기에 이성이라는 영혼이 하나 더 추가된다. 즉, 식물이 가진 섭생의 영혼과 동물이 가진 감각의 영혼과 더불어 인간은 신이 가진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더욱 높은 수준의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영혼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생명체와 달리 상위 계층에 설 수 있게 되었다 [6, 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유기 물질의 현신(現身)인 영혼이 한낱 형상에 불과하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죽어 그 육신이 해체되면 영혼도 마찬가지로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6].


이런 상황에서 영혼을 자손에게 전하는 방법은 생명 발생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손은 부모 신체 전부에서 비롯된다”는 판게네시스(pangenesis) 이론을 비판하면서 영혼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원리를 설명했다 [8]. 그는 암수 양성의 존재가 (작용인과 결합한) 형상과 (형상인이 작용하는 대상인) 질료 사이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는데,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은 암컷이 월경할 때 발생하는 혈액으로 질료를 공급한다. 여기에 수컷의 정자가 자신의 형상을 월경의 혈액에 새기는 운동인으로 생명체가 탄생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 안에 질료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6, 9].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인식은 자연발생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생명 발생에 대한 인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생명체의 등급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형상과 질료 그리고 운동인으로 영혼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등동물은 다른 방식의 발생 과정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생물 연구 결정체인 『동물의 역사(The History of Animals)』의 제5권 1편에 나와 있는 다음 문구를 살펴보자 [1]. 아래 인용문은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것으로 번역은 필자가 임의로 한 것이다.


이제 식물과 동물의 공통적인 한 가지 속성이 있다. 몇몇 식물은 씨앗에서 발생하지만, 다른 식물은 씨앗과 비슷한 몇 가지 기본 원리(elemental principle)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후자 가운데 몇몇은 흙에서 양분을 얻지만, 다른 것은 식물학에 관한 나의 논문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다른 식물 안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동물에서도 몇몇 동물은 종류에 따라 부모에서 태어나지만, 몇몇은 동족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자연 발생의 사례 가운데 몇몇은 수많은 곤충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부패한 흙이나 식물성 물질에서 기인하지만, 다른 것은 동물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Now there is one property that animals are found to have in common with plants. For some plants are generated from the seed of plants, whilst other plants are self-generated through the formation of some elemental principle similar to a seed; and of these latter plants some derive their nutriment from the ground, whilst others grow inside other plants, as is mentioned, by the way, in my treatise on Botany. So with animals, some spring from parent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whilst others grow spontaneously and not from kindred stock; and of these instances of spontaneous generation some come from putrefying earth or vegetable matter, as is the case with a number of insects, while others are spontaneously generated in the inside of animals out of the secretions of their several organs.
― 톰프슨(D'Arcy Wentworth Thompson)의 번역의 1910년도 번역 [1]. (강조는 필자가 임의로 처리한 것임).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곤충과 같은 하등동물은 흙이나 부패한 물질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그의 책에서 언급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질료와 형상 그리고 운동인으로 비롯된 씨앗을 통한 영혼의 흐름으로 생명이 탄생한다고 봤지만, 곤충 등의 하등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인식한 점에서 매우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하등동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공기 안에 담긴 생체열(vital heat, 또는 호흡열)이 흙과 같은 어떤 질료 안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 그렇다면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전히 그의 관점에서)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의 발생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조사 방법과 관찰 대상의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체 연구를 위해 스스로 관찰을 많이 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소아시아 연안 레스보스(Lesbos) 섬에서 지냈을 때에는 해양동물을 주로 관찰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자료 수집 과정에서 제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탐험가, 농부, 어부의 보고 및 풍문에도 의존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연구를 위해 선배 철학자의 저술과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여러 가지 구전(口傳)도 많이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4, 10].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용한 자료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자신이 관찰한 사물이나 내용조차도 회의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알려졌다 [10].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회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알려졌다 [10]. 게다가 그의 관찰 대상이 주로 해양생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곤충과 같은 매우 작은 생명체를 신경 쓰기엔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평소 품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관찰한 대상 이외에 그가 소홀히 했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당대의 상식에 비추었을 때,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생각은 한 편으로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우리는 『동물의 발생론(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그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진딧물은 식물에 맺힌 이슬에서 발생하며, 파리는 썩은 고기에서 발생하고, 쥐는 더러운 건초 더미에서 발생하며, 악어는 호수 밑바닥의 썩은 통나무에서 발생한다” [1].


이런 식으로, 그가 자세히 관찰한 것과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을 포함한 존재 이외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자연발생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업적과 함께 한동안 (적어도 그의 생명체 연구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 없이 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창조 교리와 맞물려) 무려 2천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유럽 전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맺음말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발생에 관한 이론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 나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Abiogenesis. Wikipedia. [링크]
[3]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60쪽.
[4]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115~116쪽.
[5] 『그리스 과학 사상사』 148쪽.
[6]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8~119쪽.
[7] 『그리스 과학 사상사』 168쪽.
[8] 같은 책. 165쪽.
[9] 같은 책. 166쪽.
[10]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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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과학자가 수학을 잘하거나 수학에 매우 친숙하리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절반은 진실이지만 절반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연구는 수학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간단한 사칙연산이나 간단한 통계 분석 정도의 수학적 기법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문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생물학이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본인으로서도 수학적 문제에 다다르면 꽤 곤혹스럽다. 심지어 본인은 부업으로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음에도 수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자주 망설이는 편이다. 설령, 그것이 간단한 통계처리일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나 같은 곤혹스러움을 겪는 생물학자가 많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자와 수학적 수식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 연구가 「지나친 수식(數式) 사용은 생물학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Heavy use of equations impedes communication among biologists)」란 제목으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렸기 때문이다 [1].



[출처: MicrobeWorld]


연구팀은 생물학자가 수학과 얼마나 안 친한지 알아보려고 생태학(ecology, 生態學)과 진화생물학(evolutionary biology, 進化生物學) 관련 논문의 인용 빈도를 조사했다. 그런데 왜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을 골랐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생태학과 진화생물학만큼 수식 사용 빈도에 있어서 극과 극을 달리는 분야도 없다. 어떤 논문은 수식에서 시작해 수식으로 끝나지만, 어떤 논문은 수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생명과학 관련 논문이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논문 제목처럼 생물학자 다수는 수학과 안 친한 걸로 나타났다. 특히, 생물학자의 수학에 대한 거부감(?)은 생물학자의 논문에서 인용한 다른 논문의 성격에서 잘 드러나는데, 수식을 많이 사용한 논문일수록 수식을 별로 사용하지 않은 전형적인 생명과학 논문에서는 인용 빈도가 낮은 게 특징이다. 즉, 나처럼 수학과 친하지 않은 생명과학 연구자가 작성한 논문은 수식으로 넘쳐나는 논문을 잘 인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수식이 가득 담긴 논문은 이론적 성격이 강한 논문, 예를 들어 어떤 신진대사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 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유동물의 신체 크기 변화를 수학적 모델로 구현한 이론적 성격이 강한 논문은 마찬가지로 이론 생물학의 성격이 강한 다른 논문에서 인용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끼리끼리 노는 것인가? 정말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내용임에도 수식으로 가득한 논문을 인용하지 않는 걸까? 왜냐하면, 그런 논문은 기본적으로 읽기가 싫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논문 초록에 나와 있는 핵심적인 요약문을 제외하면, 본문에 나와 있는 설명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해봐라.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식이 가득한 연구 논문의 부담스러움을 말이다. 물론, 생물학자가 이런 논문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라면, 즉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용하고 숙지해야 할 논문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읽어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러분의 예상대로 매우 힘들고 험난하다. 마치 사막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랄까?


진실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생물학자가 수학을 싫어하는 것―간혹 생물학자에게 히스테리를 일으키거나 기억 속에 트라우마(trauma)로 각인되는―은 진리인 모양이다. 오죽하면 찰스 다윈도 수학을 싫어했다는 소기가 나왔을까? (참고로, 그의 아들인 레너드 다윈은 유명한 수학자였다.) 수학과 담을 쌓은 생물학자. 정말 이러면 안 될 일이지만, 더불어 수학적 문제 해결이 과학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학이 어려워 수식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 같은 생물학자의 고충은 정말 슬픈 현실이다.


오! 신이시여! 왜 우리 생물학자에게 수학적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문제를 진화적으로 해결하란 말입니까? 오! 정녕 슬픈 현실이로다! 우리 생물학자 다수에게 수학적 능력을 주지 않은 당신의 그 오만함과 실수를 끝까지 규탄하리라!


참고 문헌
[1] Fawcett TW, and Higginson AD. 2012. Heavy use of equations impedes communication among biologists. Proc Natl Acad Sci USA. 109: 11735-11739.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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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라는 과학철학자가 저술한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Nonsense on Slits: How to Tell Science from Bunk)』이란 책을 발견했다. 책일 빌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도서 대여가 돈 드는 일도 아니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대출 신청을 했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곧바로 접하지 않은 이유는 이 책을 “그저 흔하디흔한 과학철학서”나 “시중에 많이 나도는 사이비 과학 폭로서”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판단이 근거라곤 전혀 없는 개인적 편견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정말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출처: 알라딘]



이 책은 연성 과학(soft science, 軟性科學)과 경성 과학(hard science, 硬性科學)의 특징을 살피면서 카를 포퍼(Karl Popper)라는 고집스러운 과학철학자 할아범이 오래전에 제기한 과학의 경계 문제(the Problem of demarcation, 境界問題)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 과학으로 인정되거나 스스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과학에 관해 고찰하면서, 이들을 진짜 과학(real science), 거의 과학(almost science) 그리고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으로 분류했다. 영광스런 무대 위에 오른 후보는 다음과 같다.


(1) 철학보다 더욱 철학적이 되어버린 현대 물리학의 다채로운 우주론(cosmology, 宇宙論), (2) 진화생물학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진정한 과학인지는 진실로 의심되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進化心理學), (3) 한때 미국을 풍미했던 외계 지적 생명체에 관한 대대적 탐사 프로젝트인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4) 진정한 과학인 진화생물학과 사이비과학의 전형(典型)인 너무나도 끈질기고 병적으로 집요한 창조론(creationism, 創造論)과 그 적자(嫡子)인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知的設計論), (5) 과학이 아니라고 오래전에 판명되었지만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성술(astrology, 占星術) 등등. 진화심리학에 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인간을 다루지 않는) 사회생물학은 엄연한 (거의) 과학이라고 판단한다.


저자는 언론에 의해 조장되거나 왜곡된 과거와 오늘날 과학의 현주소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피면서, 비과학적 주제가 언론을 통해서 어떻게 과학적으로 포장되는지,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해서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인식되어버리는지, 그리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과학을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더불어, 저자는 유명한 과학자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리고 과거와 오늘날의 지식인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씽크 탱크(Think Tank)가 불리는 집단의 사례를 분석해 이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는지 보였다.


과학 진영과 비과학 진영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이 책에서 다루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지적 사기(intellectual impostures, 知的詐欺)라 불리는 물리학자 앨런 소칼(Alan Sokal)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된 과학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을 오해하는지 설명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파울 파이어벤트(Paul Feyerabend)라는 괴팍하면서도 걸출한 철학자의 과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오해의 실체를 파헤쳤다. 이와 함께, 저자는 과학을 교조적 선언으로 받드는 과학주의(scientism, 科學主義)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피글리우치는 과학이 발전하는 원리에 관해서도 고찰했다. 실제로, 그는 책에서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유명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일이 과학 발전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물리학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 생물학 같은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실로, 이 책은 정말 잘 쓰인 책이다. 과학철학자이면서도 식물학과 유전학을 전공한 저자의 경험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 책의 내용은 실험 생물학을 전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크게 와 닿는다. 덧붙여, 이 책은 그 어떤 대중적 과학철학/과학사회학 도서보다도 재미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숨넘어갈 정도로 낄낄거리며 웃은 적도 있다. 그만큼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촌철살인(寸鐵殺人) 그 이상의 의미와 유머로 가득하다. 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철학이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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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과학 그리고 큰 과학

2012. 10. 11. 18:23 from 잡글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대부분은 연구자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이나 관찰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전통적인 가설 기반 연구(hypothesis-driven research, 假設基盤硏究)를 중심으로 지식 체계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대부분은 연구자 개인이나 수 명 내외로 조직된 소규모 실험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연구를 편의상 (연구 주제의 중요도가 아니라 연구 규모가 작음을 뜻하는) 작은 과학(small science)이라 부르도록 하자. 물론, 과거에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실험실 사이의 상호 협력 체계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규모는 (마치 가내 수공업을 연상케 하는) 작은 과학에 머물러 있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연구를 “가내 수공업”에 비교했다 해서 기분 상하지 않길 바란다. 사실, 나도 이런 식의 “가내 수공업” 연구에 종사하는 일개 연구 노동자다. 게다가 이렇게 멋지고 성공적인 가내 수공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연구 방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바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대규모 협력 연구인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시작은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전부 파악하면 생명 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란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단위 연구는 존 설스턴(John Sulston)과 로버트 워터스톤(Robert Waterstone)의 꼬마선충(C. elegans) 유전체 지도 작성이라는 선도적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결로 생명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하자. 어쨌든, 반대자와 회의론자의 거센 압박을 견뎌낸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과거에 성공했으며 오늘날에도 성공적이니까 말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생명 과학의 역사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파급 효과는 과학 전체로 봤을 때 실로 엄청났다. 이것은 단지 지식 체계의 확장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즉, 새로운 학문의 출현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실제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성공은 오믹스(Omics)의 출현을 이끌었으며, 기존의 생명과학 연구 영역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생명과학 연구의 흐름 자체도 많이 달라졌다. 바야흐로 (절대로 연구 주제의 중요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연구의 규모가 큼을 의미하는) 큰 과학(big science)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흔하디흔한 연구 방식이 되었다. 진심으로 바라 건데, “큰 과학”이나 “작은 과학”이란 표현에 기분 상하지 않길 바란다. 계속 강조했지만, 이것은 연구의 경중(輕重)을 따지는 게 아닌, 단지 연구 규모를 빗댄 표현이니까 말이다.


확실히,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성공 덕분에 큰 과학이라 불리는 대규모 연구의 발족(發足)이 증가했다. 그리고 최근 이런 종류의 연구가 『셀(Cell)』, 『네이쳐(Nature)』 그리고 『사이언스(Science)』와 같은 유명 학술지나 대중 과학지에 게재되는 빈도 또한 높아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생명과학 연구의 트렌트(trend)가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방증(傍證)하고 있다. 더불어, 단일 연구에 투입되는 돈의 규모 또한 과거에 비해 급속히 커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대해 많은 과학자는 한결같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즉, 작은 과학에 대한 재정 지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 때부터 시작된) 비관론 말이다.


자신의 존재와 천지창조의 원리가 과학적으로 밝혀지길 기다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해 연구비에 목말라 하는 과학자의 염원을 풀어줄 수만 있다면 이보다도 더 기쁜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데 초자연적인 방법을 거부하는 과학자 다수가 초자연적인 신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한 편으로 웃긴 일이며, 더불어 그런 식의 제한 없는 재정 지원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사회의 일원으로서 썩 달갑지만은 않다. 따라서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전체 연구비는 늘 제한적이기 마련이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까?”는 과학자, 특히 자기 실험실을 운영하는 연구 책임자라면 누구나 갖는 고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렇게 한정된 연구비 내에서 나날이 늘고 있는 큰 과학에 대한 재정 지원 비율이 높아진다면, 작은 과학에 돌아갈 연구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작은 과학에 종사하는 과학자가 큰 과학의 승승장구(乘勝長驅)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이유다.


사실, 대부분의 기초 과학 연구는 돈벌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러므로 이윤 추구가 최고의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기초 과학 연구에 재정 지원을 해줄 정도로 머리가 돈 사적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다고나 할까? 물론, 돈벌이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기초 과학 연구가 아주 가끔 잭팟을 터뜨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 것보다도 매우 어려운 일이니 기대를 품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초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정부 지원 연구비에 대한 절실함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이마저도 과학자의 간절함을 풀어주기에는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가뭄 중에 가끔 내리는 쥐똥만큼의 빗방울이라도 갈증을 해결할 수 있으니 이 정도라도 어디냐며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 큰 과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점차 증가한다면 작은 과학의 연구비 수혜는 그에 반비례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큰 과학이 어떤 식으로든 성공적으로 끝나거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포장된다면 그 비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작은 과학에 몸담은 과학자 사이의 연구비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쟁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데, 심지어 어떤 과학자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이러다 전통적 접근법을 고수하는 연구는 절멸하는 게 아니냐”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늘어놓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자 다수가 품고 있는 이런 비관론은 정말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을까? 진정, 작은 과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태(舊態)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런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조처(措處)를 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지식 생태계 문제이며 과학의 지식 체계 구축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에 관한 위기의식이다. 물론,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서 보인 것처럼 큰 과학도 중요하다. 그런 큰 과학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과학적 지식의 폭과 생명 현상의 본질에 관한 물음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큰 과학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큰 과학은 나름의 방식대로 생명 현상의 전반적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큰 이바지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네트워크도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헛발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오늘날 큰 과학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전통적인 방식의 작은 과학의 분전(奮戰) 덕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에도 성공적이었던 작은 과학은 오늘날에도 그 존재가 퇴색하기는커녕 중요성은 더욱 커져만 간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작은 과학의 중요성을 설파(說破)하는 기고문 하나가 올라왔다. 생물학 전공자라면 한 번 정도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한 세포생물학 교과서인 『세포의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of the Cell) 』의 저자이자 『사이언스』의 편집자인 부르스 앨버츠(Bruce Alberts)가 「“작은 과학”의 종말?(The End of “Small Science”?)」이란 제목으로 『사이언스』에 게재한 글이다 [2].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규모 연구의 양적 확장이 있다고 해서 전통적인 작은 과학이 사라질 일은 없으며, 오히려 이런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어야만 생명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생명과학의 연구 분야는 놀라우리만치 확장했으며, 많은 새로운 연구 분야가 탄생했다. 더불어,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생명 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마치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그보다 몇 배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는 꼴이라고나 할까? 이런 이유 때문에 앨버츠는 그의 기고문에서 큰 과학의 확장으로 작은 과학이 절멸하는 일이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작은 과학이 이전보다도 더 활성화되어야만 과학, 즉 생명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지를 펼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잊지 않았다. “Ensuring a successful future for the biological sciences will require restraint in the growth of large centers and -omics–like projects, so as to provide more financial support for the critical work of innovative small laboratories striving to understand the wonderful complexity of living systems.” 즉, “생명과학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를 위해 작은 과학에 대한 더 많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위해서라도, 큰 과학이라 불리는 대규모 연구에 대한 재정 지원은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브루스 앨버츠의 글은 무료로 열람할 수 있으므로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참고 자료
[1]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유전자 시대의 적들(The Common Thread)』 존 설스턴(John Sulston), 조지나 페리(Georgina Ferry) 지음 / 유은실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년.”을 참고하길 바란다.
[2] Alberts B. 2012. The End of "Small Science"? Science. 337: 1583.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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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대략적 유추 정도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이나 고대 현생 인류 유적에서 매장(埋葬)이나 샤머니즘(shamanism)적 풍습이 자주 관찰된다. 매장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샤머니즘”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경외(敬畏)가 있었단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라면 막연할지라도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물음” 정도는 품고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지만, 근거는 없다. 물론 누군가 이런 부분에 관해 연구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하지만 고대 여러 종교의 창세신화(創世神話)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내용으로 미루어본다면 세상의 시작이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선사 시대부터 누적된 인간 사고의 산물(産物)이라 결론지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종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재미없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신이 모든 것을 이룩해 놓았으니 인간이 할 일이라곤 고작 “신에게 여쭙는 것”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 선에서 끝난다면 정말로 싱거울뿐더러 정말로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그 신은 과연 누가 창조했느냐는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그렇다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신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오로지 자연법칙으로 설명하는 것뿐인데, 시쳇말로 이것을 과학적 추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과거에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티끌 축에도 못 끼겠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추론이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실, 이런 추론의 주목적은 “세상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며 “생명의 기원” 또는 “생명의 발생”은 솔직히 말해 덤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이 유치함 그 자체이지만, 그래도 이들 대부분이 전능하신 신의 힘을 빌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1) ―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7세기 무렵 밀레투스(Miletus) 출신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B.C. 546?)는 “물이 만물의 근본 물질”이라고 주장한 탈레스(Thales, ?~?)의 제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스승과는 달리,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 第一實體)에서 비롯되었지만 물은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도 아니며, 제일 실체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은 채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주장했다 [A1]. 그는 독특하게도 “여러 세계”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마치 현대 물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 다우주 이론(multi-universe theory, 多宇宙理論)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가 언급한 “여러 세계”가 그가 알고 있는 곳 이외의 지구 위 다른 세상인지, 다른 우주의 다른 세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여러 세계”를 주장한 고대 철학자가 아낙시만드로스가 유일한지도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철학 전공도 아니며, 철학에 대해서는 전병(煎餠)이나 마찬가지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정의(正義)가 제일 실체라고 주장하면서, “사물이 정해진 대로 다시 한 번 발생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사물이 시간 순서에 따라 부정의(不正義)를 서로 상쇄하거나 서로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1]. 그가 언급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철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많은 철학자가 이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이미 알려진 다른 실체이자 요소인 불, 물, 흙, 공기 등의 요소가 서로 대립하면서 존재하는 가운데 아낙시만드로스의 “정의”는 이들을 중재하는 “중립자”의 역할에 서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그는 세계가 종교 일반에서 주장하는 대로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영원한 운동 속에서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A2]. “대립과 투쟁” 그리고 “생성과 소멸”. 언뜻 “진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고는 이러한 “진화적 관점”이 어느 정도 투영(投影)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태양의 영향을 받은 습지에서 생명체가 처음 발생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습기가 태양의 열기로 증발하듯이 생명체 또한 습한 요소에서 발생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A2, B1]. 태양으로 상징되는 불과 습지로 대변되는 물과 흙의 만남이 어떻게 해서 생명체를 빚어냈는지에 관한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본래부터 존재했던 실체인 물, 불, 흙이 한데 어우러져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체가 “땅”에서 생성되었다는 설명은 “신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전지전능보다는 그나마 합리적 모양새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아낙시만드로스만의 독창적인 생각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건만 맞으면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 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적 시각은 당대에는 일종의 상식이었으며, 이것은 19세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B1, 1]. 따라서 “신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꽤 흥미롭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고기 같은 생명체에서 인간이 비롯했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을 낳은 후보 물고기로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를 지목했다 [B1, 2]. 고대 창세신화를 비롯해 아주 먼 과거에는 “물”과 생명의 탄생을 자주 연관 지었으니 “인간이 물고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많고 많은 물고기 가운데 하필이면 활상어를 지목했을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료가 분명치 않지만 몇몇 사람은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양 생물에 관해 어느 정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A2, B1]. 특히,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46?~120?)의 『도덕론(Moralia)』 제8권에 포함된 「식탁 대화집(Table-talk)」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인간은 상어의 일종인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아낙시만드로스는 활상어를 포함한 일부 상어의 새끼가 인간처럼 탯줄을 통해 태반상 조직 또는 유사 태반 조직(pseudo-placental tissue)에 연결되어 어미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B1].


바로 여기에 아낙시만드로스 주장의 핵심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보기에 인간은 출생 후 자립하기 전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 물론, 다른 생명체도 성체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양육 기간을 비교한다면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짧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오랜 양육 기간”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고 판단했다 [A2, B2].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습기 또는 물을 머금은 습지에서 기원했다고 가정했을 때, 평소에도 하나의 완전한 독립체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생명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데 족보(族譜)도 없는 물고기가 인간을 보살폈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의 논리로 판단했을 때 유사 태반을 가진 활상어가 인간이 하나의 독립적인 종(species, 種)으로 설 수 있게 한 가장 그럴싸한 생명체다. 이것이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2) ― 아낙시메네스


밀레투스 출신 또 다른 철학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B.C. 528?)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 자신만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와는 다르게, 제일 실체는 공기(air, 空氣)이며, “영혼은 공기이고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며, 공기가 응축하면 처음에 물이 되고, 더욱 응축하면 흙이 되며, 마지막에는 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A3].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탈레스는 제일 실체가 물이며 아낙시만드로스는 제일 실체가 “정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는 그의 선배 철학자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게다가 “공기”의 양적 차이가 물질 간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단정하는데, 실제로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최대 장점은 세상 만물의 차이를 오로지 공기의 응축(凝縮) 정도에 따른 양적 차이로 설명하는 데 있다 [A3]. 공기의 양적 차이는 물질의 차이를 규정하며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물질은 소멸하여 공기로 환원되며, 공기가 다시 응축하면 새로운 물질을 형성한다. 바로 이것이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을까? 앞에서 아낙시메네스는 “영혼은 공기다”라고 주장했으며, 여기에 “공기로 이루어진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도 숨과 공기가 전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란 말도 덧붙였다 [A3, C1].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순히 “공기의 응축”으로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공기의 응축을 통한 물질의 변화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미더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낙시메네스는 여기에 흙과 물의 혼합물인 원시 육상 점액(primordial terrestrial sli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적용했으며, 이로도 모자랐는지 원시 육상 점액이 “태양의 열기”와 결합해야만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그럼에도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이 아낙시만드로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며,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과학적 추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유치한 것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B.C. 500?)가 세상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뒀다는 문헌적 기록을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들은 자연의 탐구보다는 사물의 원리에 대해 주로 관심을 쏟았던 모양이다 [B3].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는 종교적 신념과 실천으로 결속된 신비주의 집단에 가까웠다. 아니, 말 그대로 오르페우스교적 교리를 따르는 신비주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不滅)과 윤회(輪廻)를 믿었으며 특정 음식에 대한 금식 등과 같은 금기 사항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으며, 최초의 근원을 질료적 실체에서 찾은 밀레투스 학파와 달리 그들은 모든 사물의 원리를 수(number, 數)에서 찾으려고 했다 [B3].


이와는 달리, 피타고라스학파의 열렬한 비판자인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B.C. 560?~B.C. 478?)는 만물이 흙과 물로 만들어졌으며 [A4], 인간의 출현 시기는 흙의 유동 단계와 땅의 형성 사이의 전이 기간(transitional period, 轉移期間) 사이라고 주장했다 [3]. 하지만 그 역시도 태양의 영향 아래에서 어떤 조건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식물과 동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자연 발생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A4, 3].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B.C. 430?)는 그는 고대부터 막연히 인식되었던 만물의 구성 실체인 흙, 공기, 불, 물의 개념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A5]. 또한, 그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물잔에 줄을 달아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원심력을 입증하는 한 가지 사례를 발견했으며, 식물에도 암수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5]. 이런 면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오늘날의 과학자에 가깝다. 게다가, 그는 생명체의 자연 발생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자연 발생설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진화론과 비슷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자체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3].


우선 그의 철학적 면모를 한 번 들여다보자.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4원소라고 부르는) 흙, 공기, 불, 물의 각 원소는 영원히 지속하지만 각기 다른 비율로 혼합해 만물을 구성하며, 그 결과로 우리가 세계에서 두루 목격하는 변화하는 복합적 실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 원소의 상호작용에 결합을 상징하는 “사랑”과 분리를 나타내는 “다툼”이 관여하여 “우연과 필연”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 [A6]. 여기서 “우연과 필연”에 주목하자. 이것은 그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엠페도클레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견해는 오늘날 진화론과 일정 부분 공유하는 점이 있다. 특히, 적자생존과 끊임없는 변화는 두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엠페도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이 세상에 무수한 종의 생명체가 온갖 형태로 널리 퍼져 있었다. 목 없는 머리, 어깨 없는 팔, 이마 없는 눈, 서로 떨어진 팔과 다리 등등. 서로 합쳐지길 바라는 이런 기괴한 생명체는 우연히 만날 때마다 서로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셀 수 없이 많은 손을 가진 생명체, 황소의 얼굴과 인간의 몸을 가진 생명체, 남성과 여성이 결합되었으나 불임인 자웅동체(雌雄同體)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가 과거 어느 순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A6, C2]. 이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적 조합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성공적이지 못한 형태는 번식에 실패해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이었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 500?~B.C. 428?)는 아낙시메네스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아낙사고라스는 공기에는 식물의 씨앗이, 에테르(ether)에는 동물의 씨앗이 존재했다는 정도다 [3]. 더불어, 아낙사고라스에게 있어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은 정신(nous)으로, 오로지 정신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생명체가 된다. 따라서 정신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과 동물은 아무 차이가 없으며, 이들을 구분 짓는 요인은 그들의 신체적 차이일 뿐이다 [A7].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제시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이론을 살펴봤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A1]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63~64쪽.
[A2] 같은 책. 65쪽.
[A3] 같은 책. 66쪽.
[A4] 같은 책. 81쪽.
[A5] 같은 책. 100~101쪽.
[A6] 같은 책. 102쪽.
[A7] 같은 책. 111~112쪽.
[B1] 『그리스 과학사상사: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36쪽.
[B2] 같은 책. 37쪽.
[B3] 같은 책. 45~46쪽.
[C1] 『왜 하필이면 그리스에서 과학이 탄생했을까(Eureka! The Birth of Science)』 앤드류 그레고리(Andrew Gregory) 지음 / 김상락 옮김. 몸과마음. 2003년. 135~136쪽.
[C2] 같은 책. 135~136쪽.
[1] “spontaneous generation”을 한국어로는 비슷한 뜻으로 해석되는 “abiogenesis”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전자는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오늘날에는 폐기된 이론이지만, 후자는 “오늘날 생명체가 있기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생명체의 우연한 출현이 있었다”는 현대 생물학 이론이다.
[2] Anaximander. Wikipedia. [링크]
[3]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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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변형 작물(Genetically modified crop 또는 GM crop)은 오늘날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유전자 변형 작물이 직∙간접적으로 우리 밥상 위에 올라오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그 관심을 더욱 커져만 간다. 이 때문에 그러한 관심 대부분은 “이들 작물이 우리 건강에 정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가”에 쏠려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이들 유전자 변형 작물이 우리 건강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학자 대부분은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 반기를 든 연구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질레스 에릭 세랄리니(Gilles-Eric Séralini) 박사 주도로 진행된 연구로, 「라운드업 제초제와 라운드업 제초제에 내성을 갖는 유전적으로 조작된 옥수수의 장기적 독성(Long term toxicity of a Roundup herbicide and a Roundup-tolerant genetically modified maize)」이란 제목으로 『식품과 화학 독성학(Food and Chemical Toxicology)』이란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1].


이 연구는 라운드업(Roundup)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것으로, 라운드업 제초제를 처리하거나 처리하지 않은 제초제 내성 옥수수 또는 0.1 ppb(parts-per-billion, 또는 10억분의 1)로 물에 희석한 라운드업 제초제를 쥐에게 2년간 먹힌 후 상태 변화를 주기적으로 측정했다 [1]. 그 결과, 연구팀은 GM 작물 또는 제초제를 먹인 쥐가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옥수수를 먹인 쥐인 대조군과 비교해서 호르몬 불균형을 더 많이 겪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방암이라든지 간 이상의 빈도 또한 대단히 높았는데, 요약하자면 “GM 작물은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가 이들의 주장이다 [1]. 그런데 실제로 이들의 주장이 정말 타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단의 비판적 전문가―아마도 다국적 농작물 회사를 위해 일하는 연구자―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2].


이 연구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전문가의 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 전문은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이 발견이 신뢰할만한가? : 그렇지 않다. 이들이 실험에 사용한 쥐는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실험용 생명체다. 따라서 먹이를 무제한 공급하거나 호르몬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는 곰팡이로 오염된 옥수수를 먹여도 암이 잘 발생한다. 그리고 이 쥐는 오래 살아도 암이 잘 발생한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대로 “GM 작물 섭취가 암 발생 빈도를 높인다”라고 주장하려면 이런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는데, 이들은 이를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GM 옥수수 섭취가 암 발생의 원인인지는 이들의 주장처럼 확신할 수 없다.


(2) 하지만 GM 옥수수를 먹인 쥐가 그렇지 않은 쥐보다 더 아프지 않았는가? : 일부가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20마리의 대조군 쥐 가운데 25 퍼센트에 해당하는 5마리 쥐도 마찬가지로 암에 걸려 죽었다. 그리고 GM 옥수수를 섭취한 실험군 쥐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대조군보다 더 건강했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이 신뢰성을 얻으려면 엄밀한 통계 분석을 거쳐야 하는데, 그들은 (특히 수명 관련 자료 분석에서) 그 흔하디흔한 표준 편차 분석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 연구팀은 복잡하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통계 분석(complicated and unconventional analysis)으로 연구 결과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이것은 “통계를 이용한 낚시질(statistical fishing trip)일 뿐이다.” 더불어, 실험군 수와 비교했을 때 대조군 수가 너무 적다.


(3) 통계 분석 말고도 다른 문제는 없는가? : 이 연구팀은 자신들의 연구가 동물 전체 수명을 통틀어 GM 작물의 유해성을 파악한 첫 사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전에도 더욱 철저하게 계획된 연구가 있었으며, 이 연구에서는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성 연구는 2년 동안 진행된다. 그리고 이 연구도 2년 동안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연구 방법에서도 특별한 점이 없다. 더욱이, 연구팀은 라운드업을 먹었을 때와 GM 옥수수를 먹였을 때 똑 같은 독성 효과가 관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GM 옥수수는 제초제를 처리하지도 않았다. 제초제와 그 제초제를 분해하는 효소를 발현하는 작물이 동일한 병리학적 증상을 나타낸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4)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이 일이 실제로 근거 없는가? :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연구 결과에서 쥐가 얼마만큼의 작물 또는 제초제를 먹든 간에 동일한 암 발생 효과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이 병리학적 원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처리량이 증가함에 따라 그 발생 빈도 또한 커져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 연구는 전혀 그렇지 않다.


(5) 왜 과학자가 이런 일을 하며 이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는 누구인가? : 이 연구팀은 오래전부터 GM 작물을 반대해 왔고, 2010년에도 GM 작물에 독성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동료 독성학자들은 이 결과에 매우 회의적인 편이다. 더불어, 이 연구는 파리에 거점을 둔 Committee for Research and Independent Information on Genetic Engineering 또는 CRIIGEN라 불리는 기관의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기관의 과학 자문 팀장이 바로 이 논문의 교신 저자인 세랄리니 박사다.


난 개인적으로 유전자 변형 작물에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그것이 세랄리니 박사 연구팀의 주장처럼 “임상적·의학적 안정성"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유전자 변형 작물도 초창기에는 몇 가지 (어떻게 보면 매우 심각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 안정성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많은 향상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비판적 입장에 서 있는 자들의 비판 또한 백 퍼센트 타당하며 순수하게 과학적이며 학술적이라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연구 대상이 바로 유전자 변형 생명체이므로 세랄리니 박사와 같은 격렬한 반대자가 자신의 밥줄에 엄청나게 초를 치는 행위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며, 더불어 유전자 변형 생명체를 직접 연구하는 과학자 다수는 어떤 식으로든 다국적 농작물 회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로써도 "유전자 변형 작물 연구 자체를 부정한다고도 여겨질 수 있는" 세랄리니 박사의 주장은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과는 별개로, 필자를 포함한 일부 과학자는 유전자 변형 작물이 환경에 장기적으로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서 내가 우려하고 비판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생태학적 문제, 즉 이들 유전자 변형 작물이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 그리고 (2) 유전자 변형 작물이 본래 의도(사실은 이것도 정말 진정한 대의라는 게 있었느냐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와는 다르게 더욱 자본주의 사회의 정교한 상품이 되어간다는 현실이다. (1)번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현재로서는 어떤 결론도 명확히 내리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2)번 문제의 경우엔, 분석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명확하다. 최근 미국에서도 몬산토 같은 거대 기업에 대한 식물 종자 의존도가 커지고 있으니까 말 다했다. 이들 연구팀이 비판적으로 연구한 "라운드업 제초제 내성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라운드업 제초제"도 하나의 완전한 자본주의적 패키지 상품으로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패키지 상품은 이것 하나만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상황이 이런데도, 일부 과학자는 거대 다국적 농산물 기업의 횡포는 외면한 채 유전자 변형 작물의 대의만 줄기차게 주장하는데, 이건 뭐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닌, 일종의 현실 도피나 마찬가지다. 유전자 변형 작물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까지는 좋다. 과학에 선악이 어디 있는가? 다만, 과학도 인간 활동의 산물이니만큼 자기 연구 결과를 누가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앞으로 어떤 사회적·환경적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결과를 가져올지 확실히 인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과학자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유전자 변형 작물 연구자 사이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모양새니 상황이 좀 암울하긴 하다. 어쨌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떻게 보면 정치성이 지나치게 짙게 드리워진) 이 소모적 논쟁은 앞으로도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참고 문헌
[1] Séralini GE, et al. 2012. Long term toxicity of a Roundup herbicide and a Roundup-tolerant genetically modified maize. Food Chem Toxicol. 50: 4221-4231. [링크]
[2] MacKenzie D. 19 Sep 2012. Study linking GM crops and cancer questioned. New Scientist. [링크]
[3] [특집] GMO 안전성 과연 문제없나 ― 하정철 박사. 한겨레. [링크] :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올라온 기사인데, 한 번 읽어보시길.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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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저술가인 페이 플램(Faye Flam)이 쓴 「프랑스인 무신론자 라마르크에 대한 몇 가지 변론(Some Vindication for "French Atheist" Lamarck)」에 나와 있는 라마르크 관련 에세이. 아직도 많은 이들은 라마르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품고 있다. 그는 진정 똑똑한 사람이었다. 다만, 글을 너무 재미없고 어렵게 썼을 뿐이다. 핵심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많은 이에게 라마르크 진화로 알려진 “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은 자손에게 유전 가능하다”는 사실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1829)가 주장하지 않았다. [시카고 대학 역사학자인 로버트 리차드스(Robert Richards)에 따르면,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1859년에 출간된 다윈의 진화론보다 수십 년 먼저 발간된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2) 라마르크가 살던 당시에는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의 유전”이란 잘못된 상식은 일종의 통념이었다. 라마르크의 실책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정도다. 하지만 다윈도 마찬가지였음에도, 다윈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부각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라마르크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은 진화론자든 창조론자든 관계 없이 그의 적대자가 행한 악의적인 조작과 누명 덕분이었다.

(3) 라마르크의 업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은 “생명체는 진화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떤 종이 다른 종으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4) 그럼에도, 라마르크식 유전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며, 오늘날 과학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4번 항목 같은 경우엔 암이라든지, 유전병 관련해서 최근 많이 주목받고 있다. 시간이 된다면 위 기사를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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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막을 가진 유기 생명체는 약 34억 년 전 고시생대(Paleoarchean, 古始生代)에 단세포성(unicellularity, 單細胞性) 형태로 처음 출현했다 [1] [그림 1, 위쪽]. 그러나 늦어도 약 21억 년 전 고원생대(Paleoproterozoic, 古原生代) 리야시아기(Rhyacian) 때 다세포성(multicellularity, 多細胞性)이라는 새로운 진화적 경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 1, 아래쪽] [2]. 어떻게 보면 독립생활을 영위하던 단일 세포가 다세포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개체가 하나의 닫힌 울타리 안에서 유기적 연합을 구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포 다수가 하나의 덩어리(cluster)를 이루면서 새로운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나타났고 생물학적 복잡성(biological complexity, 生物學的複雜性) 또한 커져 갔다. 이 때문에, 새로운 생명 형태에 주어진 자연 선택이라는 엄격한 규범은 세포 사이의 치밀하고 끈끈한 “상호 협력”을 요구했다. 다시 말하자면, 독립생활을 영위했던 단일 세포는 다세포 생명체의 구성 세포가 되는 대신에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으며, 심한 경우엔 자신의 소멸로 그 대의(大義)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림 1. (위쪽)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스트렐리 풀(Strelley Pool) 지층의 암석에서 발견된 산소 대신에 황을 물질대사(metabolism, 物質代謝) 과정에 사용한 원시 세포의 흔적 [1] [출처: Nature Geoscience]. (아래쪽) 아프리카 가봉에서 발견된 다세포 생명체 화석. 산소 호흡을 했다고 추측되는 평균 수 센티미터에서 최대 12 센티미터 크기의 평면형 다세포 생명체가 암석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2] [출처: Nature].



단일 세포 형태에서 다세포 형태로


단일 세포 형태에서 다세포 생명체로의 진화를 (그리고 왜 다세포 생명체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든 예처럼 고대 다세포 생명체의 흔적이 간혹 발견되긴 하지만 [그림 1, 아래쪽], 그것이 최초 형성 과정을 반영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화석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결과적으로, 초기 다세포 생명체의 생리학적∙생태학적 특징과 그 진화 과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결정적 증거는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다세포 생명체는 많은 세포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단세포-다세포 전환 과정의 첫 단계는 독립적으로 있기보다는 한 덩어리로 있으려는 유전적 경향을 지닌 세포의 첫 출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세포의 집결체인 바이오필름(biofilm) 같은 형태인지 아니면 모세포(mother cell, 母細胞)의 세포 분열로 형성된 딸세포(daughter cell, -細胞)가 분열 후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한 데 뭉쳐서 나타났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물학적 상식을 기반으로 각각의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우선,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출현하자마자 다세포 덩어리 사이에서의 선택(selection among multicelled clusters)이 본질적으로 덩어리 내 단일 세포 사이의 선택(selection among single cells within clusters)보다 우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당초 유전적으로 다른 독립생활 세포의 응집(aggregation, 凝集)은 내부적으로 어떤 생물학적 불화(不和)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형성조차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유기체 덩어리 하나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다세포 생명체의 특성상 유전적으로 불균일한 유기체 덩어리는 적응과 경쟁에서 불리했으리라. 따라서 유전적으로 다른 단일 세포가 하나의 집단을 형성해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세포 생명체 출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전적 동일성을 확보 방법에 어떤 것이 있을까? 최선은 모세포에서 딸세포가 세포 분열을 한 다음 분리되지 않은 채 뭉치는 것, 즉 분열 후 유착(post-division adhesion, 分裂後癒着)이다. 이 방법이라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가 하나의 다세포 생명체를 이룰 수 있으며, “유전적으로 우리는 하나다”란 확고한 동족 의식(同族意識) 또한 공유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같은 세포라도 한 데 뭉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립생활 세포는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한다. 번식조차도 자신의 일부를 (다소 정교한 방법으로) 떼어내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단일 세포가 한 덩어리로 모이면 영양분과 같은 자원 분배와 번식 문제 같은 생물학적 이해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탈, 즉 오늘날의 암과 같은 이단(異端)이 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일탈을 막는  것은 다세포 생명체가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며, 결과적으로도 다세포 생명체는 그러한 일탈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실일까? 단지 우리의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까?


이 같은 설명은 논리적으로 개연성은 있지만, 과학 대부분이 그렇듯 어떤 식으로든 증명되지 않으면 단순한 허구(虛構)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우리의 논리적 상상에서 비롯된 가설이 실험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과거에 전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유기체 덩어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생태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실제 과정 자체를 재현하기 위한 시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2012년에 「다세포성의 실험적 진화(Experimental evolution of multicellularity)」란 제목으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된 논문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이 논문을 「Ratcliff, et al.」이라 부르겠다) [3].


문제 해결은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다


가설을 증명하려면 정교하게 고안된 실험을 준비해야 한다.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인(variable, 變因)을 통제해야 하며, 대조군(control group, 對照群)과 실험군(experimental group, 實驗群)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적절한 통계 분석법으로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어떻게 증명하느냐” 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 현상 가운데 진화만큼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흔치 않다. 왜냐하면, 인간 수명은 고작 80~100년이지만, 진화 대부분―바이러스와 미생물의 단기적 진화는 예외로 하자―은 적어도 몇천몇만 년이 지나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억 년의 세월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단세포-다세포 진화를 실험적으로 재현(再現)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일 지경이다. 그럼에도, 어떤 때에는 정말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Ratcliff, et al.」도 그런 연구 가운데 하나다 [3, 4].


실험 연구자의 눈에 이들의 방법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실제 진화가 일어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연구팀이 선택한 생명체는 흔하디흔한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 또는 Baker’s yeast, 酵母)였다. 자연 상태의 효모는 단세포로 존재한다. 영양분이 매우 부족할 때 군집을 이루기도 하지만,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 미련 없이 서로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실험이 그렇지만, 이들의 실험도 지루하고 단순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실험 기구도 원심분리기(centrifuge, 遠心分離機), 세포 배양기(incubator, 細胞培養機) 그리고 현미경이 전부였다. 약간의 화학 약품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그 어떤 첨단 연구 기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실험 과정을 살펴보자.


(1) 효모를 세포 배양액(media, 培養液)이 담긴 플라스크(flask)에 주입해 세포 배양기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길어봐야 반나절 정도) 키운다. (2) 세포 분열로 수가 늘어난 효모가 담긴 플라스크를 꺼내 약 45분간 그대로 놔둔다 (또는 원심분리기로 아주 잠시 돌린다). (3) 바닥에 가라앉은 소량의 배양액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이 소량의 배양액 안에 연구팀이 원하는 다세포성 효모가 존재한다). (4) 바닥에 남아 있는 소량의 배양액을 새로운 배양액이 담긴 플라스크에 주입해 세포 배양기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키운다. (5) (2)~(4)의 과정을 최대 60번 반복한다.


지루하고 단순한 실험이지만,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바닥에 가라앉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효모를 골라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다세포성 진화를 촉진하는 일종의 “자연 선택”으로 가정했는데, 실제 진화 과정에서 이런 식의 자연 선택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다세포성 생명체 진화의 실질적 원인이라고 보기도 무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구팀이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더라도) 다세포성 진화를 위해 어떤 “선택압(selection pressure, 選擇壓)”을 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선택압”으로 어떤 진화적 변화, 특히 다세포성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선택압”이 주어졌더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도 있다.


단세포, 다세포가 되다



 

그림 2. (왼쪽) 「Ratcliff, et al.」에서 찾아낸 새로운 형태의 효모 생명체. 맨 윗줄 왼쪽 그림(Ancestor라고 표기)은 자연 상태의 효모이며, 나머지는 실험적 선택으로 나타난 눈송이 효모 덩어리(Snowflake-like yeast cellular cluster)이다. (오른쪽)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자연 상태의 효모와 눈송이 효모 덩어리의 반응. 왼쪽 두 사진은 자연 상태의 효모이며 오른쪽 두 사진은 눈송이 효모 덩어리이다. 윗줄은 영양 상태가 좋을 때이며, 아랫줄은 영양 상태가 안 좋을 때이다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세포 형태의 효모가 지루한 실험적 선택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관찰된 적 없는 “전체적으로 둥글고 눈송이 같은” 효모 덩어리로 진화했다 (앞으로 이 생명체를 “눈송이 효모 덩어리”라고 부르겠다 [3] [그림 1, 왼쪽]. 그리고 그 효모 덩어리의 크기는 배양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눈송이 효모 덩어리가 생존에 있어서 단세포 형태의 효모보다 딱히 불리하지도 않았다. 즉, 자연 상태의 효모만큼 이 새로운 생명체도 영양 상태의 좋고 나쁨과 관련 없이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눈송이 효모 덩어리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최초의 효모에서 세포 분열로 생성된 딸세포가 모세포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로 분열을 반복하면서 눈송이 덩어리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다세포 생명체 기원의 가설 가운데 하나인 분열 후 유착 과정이 실제 다세포 생명체 출현에 중요했음을 암시한다. 더불어, 이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자연 상태의 효모에서 흔히 관찰되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유사 균사 형태(pseudohyphal form, 類似菌絲形態)와도 확연히 달랐다 [3] [그림 2, 오른쪽]. 물론, 주변 영양분이 부족하면 눈송이 효모 덩어리를 이루는 구성 세포의 모양도 어느 정도 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세포성을 해치진 않았다. 이들에게 한 번 동지는 영원한 동지였다.



그림 3. (위쪽) 눈송이 효모 덩어리의 시간에 따른 분열 과정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새로운 형태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번식 방식도 달랐다. 자연 상태의 효모는 이분법으로 번식한다. 하지만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제아무리 커 봤자 부모의 절반도 안 되는 전구 과립체(progranule, 前驅顆粒體) 형태를 자손으로 낳을 뿐이었다 [3] [그림 3].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간 전구 과립체는 부모 개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계속 성장했다. 그리고 이 전구 과립체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기 부모처럼 전구 과립체 형태의 자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과정과 많이 닮았다. 바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세포 생명체가 겪는 유아기(juvenile phase, 幼兒期)와 성년기(adult phase, 成年期)라는 세대에 따른 주기적 순환이다.


세포, 분업을 시작하다


단세포가 다세포성을 띄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세포 덩어리 그 자체로만 존재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가 존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물학적 복잡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거대 생명체가 오늘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은 최초 다세포성 생명체에 어떤 기능적 변화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물학적 복잡성이 나타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세포의 분업(division of labor, 分業)이다. 더불어 세포 분업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생물학적 과정인 세포 분화(cellular differentiation, 細胞分化)도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세포 분화로 단순한 유기체 덩어리는 몸의 부위에 따라 고유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외형적으로는 다세포성을 나타내는 「Ratcliff, et al.」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실질적으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분업 체계 또는 이러한 분업 체계를 가능케 하는 세포 분화 과정을 획득했을까?


세포 분화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세포 소멸(apoptosis, 細胞消滅)이라는 세포 자살 메커니즘이다. 분화 과정에는 다양한 세포가 참여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분화 과정 초기에 필요할 수도 있고, 일부는 나중에 필요할 수 있으며, 일부는 전 과정 통틀어 참여할 수도 있다. 어떤 세포는 임무가 끝나면 올바른 분화를 위해 바로 사라져야 하지만, 어떤 것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다. 개중에 어떤 세포는 분열 과정 중에 손상을 입어 폐기처분 해야 한다. 이때 폐기처분 해야 하는 세포 가운데 상당수는 세포 소멸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분해된다. 따라서 분화 과정 중에 세포 소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개체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만큼 세포 소멸은 다세포 생명체에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세포 사멸이 일어나는 부분이 노란색 또는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대부분 과립 전구체가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갈 부분이다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물론, 이러한 세포 소멸 메커니즘이 꼭 다세포 생명체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연 상태의 효모에게도 세포 소멸은 일어난다 [5]. 그러나 자연 세포 상태의 효모에서 발생하는 세포 소멸의 최종 결과가 주로 자신에게 국한된다면, 다세포 생명체에서의 세포 소멸은 자신이 아닌 다세포 생명체의 존속을 위한 자기희생의 결정체(結晶體)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세포 사멸은 다세포 생명체 일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연속적인 배양 과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진화한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의 소화 기관 또는 신경계 같은 어떤 특별한 생물학적 분화가 일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우리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구조적으로 너무 단순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생명체는 분명히 자연 상태의 효모와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번식 방법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특히, 모체에서 전구 과립체가 분리될 때, 두 개체의 접지 부분에서만 세포 소멸 과정이 매우 특이적으로 발생한다 [3] [그림 4]. 다시 말하면, 다세포 생명체가 자손을 번식하는 과정에서 일부 세포가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에서 흔히 나타나는 생물학적 분업은 시험관 안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진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으며, 「Ratcliff, et al.」의 실험에서 진화한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진정 원시적 다세포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지금까지 웬만해서는 관찰도 재현도 어려운 진화의 과정, 특히 다세포 생명체의 출현에 관한 실험적 재구성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이 실험이 실제 진화 과정에서 일어났을 다세포 생명체의 기원을 반영한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적어도 어떤 “선택압”이 단세포 생명체에 주어졌을 때, 그 단세포 생명체가 독립생활이라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다세포성”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번에 다세포성 진화의 실험적 재구성이 가능함을 확인한 상황에서 필자의 기대는 커져만 갔다. 앞으로 어떤 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구성할 수 있을까? DNA/RNA 고분자 생명체의 출현, 세포의 출현, 아니면 이것보다도 더 어려운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진화의 과정들?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참고 문헌
[1] Wacey D, et al. 2011. Microfossils of sulphur-metabolizing cells in 3.4-billion-year-old rocks of Western Australia. Nat Geosci. 4: 698-702. [링크]
[2] El Albani A, et al. 2010. Large colonial organisms with coordinated growth in oxygenated environments 2.1 Gyr ago. Nature. 466: 100-104. [링크]
[3] Ratcliff WC, et al. 2012. Experimental evolution of multicellularity. Proc Natl Acad Sci USA. 109: 1595-1600. [링크]
[4] Dybas C, and Rinard P. January 16, 2012. Biologists Replicate Key Evolutionary Step in Life on Earth.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링크] : 이 기사는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본문에 잠깐 언급했지만, 과학적 아이디어는 농담 따먹기 식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가 튀어나올 수 있다.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실험만 밤새 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아이디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적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끊임없는 생각과 동료 과학자와의 논의 가운데 나올 가능성이 크다.
[5] Madeo F, et al. 2004. Apoptosis in yeast. Curr opin Microbiol. 7: 655-660.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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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연구는 일반인이 봤을 때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개미, 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모양, 초파리의 섹스, 화석, 원숭이에게 셈법을 가르치기, 별의 탄생 등등.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미덕이라 믿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창출” 및 “효용성”과는 거리가 먼 과학자의 덕질은 한량(閑良)의 유희(遊戱)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식으로 연구에 투입되는 그 돈이 실제로는 나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부분 사람은 분노로 피가 거꾸로 치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연구가 정말로 쓸모없을까?


쓸모없는 과학 쓸모있는 과학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오늘날 인간 사회의 변혁과 과학기술 혁신 대부분은 ‘멍청하거나 쓸모없는’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그런 ‘무의미한’ 연구 대부분은 많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 거둬들인 세금으로 진행되는 ‘공적 연구(公的硏究)’였다. 사실, 단기간에 사적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 ‘쓸데’없는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하기란 어렵다. 즉, 신약 및 신기술 개발처럼 어떤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면 대부분의 기초 과학 연구는 기업에게 관심조차 받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고부가가치 창출도 기초 과학의 발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더불어, 과학사를 통틀어 어떤 특수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염두에 둔 연구가 ‘과학과 사회의 진보’를 이끈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있다손 치더라도 첫 단추는 ‘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으며, 그러한 연구 대부분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물론, 과학혁명의 시기라 일컫는 17~19세기 상황은 오늘날과는 좀 다르다. 훗날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던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는 예외로 하더라도 당대(當代)의 과학 연구는 주로 부유한 자산가의 후원을 받거나 부유한 과학자(또는 자연철학자)가 자신의 사비를 털어 진행되었다. 어떤 식으로 연구비를 충당하든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사회∙경제적 이익을 바라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바라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지적 욕구의 충족이나 사회적 명성의 획득이 전부였다. 물론 훗날 럼포드 백작(Count Rumford)이라 불린 벤저민 톰프슨 경(Sir Benjamin Thompson, 1753~1814)과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1].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오해 ― 프록스마이어와 황금 양모 상


실상(實相)이 이런데도 많은 이들은 과학 발전의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쓸데없는’ 기초 과학 연구가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며 말 그대로 ‘까기에’ 바빴으며, 지금도 바쁘다. 그리고 이것은 개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과학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서 드러나는 전형적 양상이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사례가 있다. 윌리엄 프록스마이어(William Proxmire) 민주당 상원 의원은 “황금 양모 상(Golden Fleece Award, 黃金羊毛賞)을 제정해 1975~1987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미국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은 쓸모없는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또는 과학자 집단)에게 조롱과 비아냥의 의미로 이 상을 수여해왔다 [2, 3]. 말이 ‘상(賞)’이지 이것은 과학에 일방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것은 그의 조롱 대상 가운데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그램(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또는 SETI)을 진행한 미 항공 우주국(the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또는 NASA)과 인간관계에 관한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한 미국 국가 과학 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또는 NSF)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2]. 비록 프록스마이어 의원 본인은 미국 국민의 세금이 유용한 곳에 쓰이도록 하겠다는 숭고한 대의를 갖고 시작했겠지만, 이 같은 기초 과학 연구를 향한 적대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2].


과학, 스스로를 변호하다 ― 황금 거위 상


최근에 프록스마이어의 악의적인 ‘황금 양모 상’과 그 적자(嫡子)를 조롱함과 동시에 그동안 과학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내려는 의미 있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황금 거위 상(Golden Goose Award)’이다 [4, 5].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고전 동화에서 따온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상의 목적은 “일반인이 보기에 효용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이상한 과학 연구가 훗날 과학기술의 진보와 사회 변혁을 이끈 다양한 사례를 조명(照明)함으로써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의 대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4]. 실제로 이 상은 지난 60여 년 동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연구 가운데 과학 및 사회적으로 중요한 발견과 진보를 이끈 경우에만 수상 자격을 주며, 매년 미국 과학 진흥회(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와 미국 대학 협회(the Association of American Universities)를 포함한 미국 내 다양한 과학∙대학 단체가 협의하여 수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4].


그러한 심사 과정을 거쳐 올해에는 (당시엔 말도 안 되는) 방사선 파장 증폭 연구로 레이저 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찰스 타운스(Charles Townes)와, (의학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열대 산호초의 해부학 구조 연구로 뼈 이식 등의 의학 분야 발전에 결정적 이바지를 한 유진 화이트(Eugene White), 로드니 화이트(Rodney White), 델라 로이(Della Roy) 그리고 고인(故人)이 된 존 웨버(Jon Weber), 그리고 (당시에는 파급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해파리의 신경계 연구 과정에서 녹색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또는 GFP)을 발견하고 이를 생명 과학 연구에 적용한 오사무 시노무라(Osamu Shinomura), 마틴 찰피(Martin Chalfie)와 로져 치엔(Roger Tsien) 등 총 8명이 영광스러운 “황금 거위 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4, 5]. 이 가운데 레이저 기술과 GFP 연구는 1964년과 2008년에 각각 노벨상을 받았다 [4, 5].


한국 과학의 고민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과학에 요구하는 사명감은 매우 크다. 정치인,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대한민국의 과학적 위상(位相)을 국제적으로 드높여야 한다”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자원이 없으니까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해 국가의 부(富)를 창출함으로써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70~80년대의 낡은 슬로건을 대의(大義)로 외치면서 한국 과학에 “경제적 가치” 창출을 강요한다. 그러나 모든 과학 연구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 이익이라는 자본주의적 미덕(美德)이 과학을 이끄는 원동력도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과학과 사회의 진보는 이익 창출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기초 과학 연구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 아래에서 기업이 좋아하는 ‘이윤 창출’의 기회도 많아질 수 있다. 즉,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에서 얻는 게 많듯이 연구 다양성이 풍부해야 ‘똥’이든 ‘된장’이든 건질 것도 많아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과학에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닥치고’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 결과, 한국의 과학은 생태계 자체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진정으로 한국의 과학 현실은 참담하다.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시작한 “엘리트 중심의 연구”와 “세계 최초∙최고”라는 헛된 수사(修辭)는 “황우석 사태”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했고, 과학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불굴의 일념(一念)은 이들을 흡수할 사회적 인프라는 고려하지 않은 채 과학기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동반 양산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연출했다. 더불어, 정치인은 앞뒤 생각 없이 선거에서 승리할 목적으로 실현 가능성도 불확실한 단기적 공약만 연신 남발한다. 그리고 정부가 계획한 연구 지원의 수혜자는 연구비 경쟁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과학자로 국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과학자는 안정적 연구비 확보를 위해 정부가 원하는 분야의 연구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한국의 기초 과학은 고사(枯死) 직전이다.


맺음말


도대체, 한국의 과학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별거 없다.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초 과학 연구일지라도, 정말 쓸모없는 ‘잉여로움’ 가득한 연구일지라도 학문적 타당성만 명확하다면 정부는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연구자가 자기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과학자보다는 신진 과학자에게 다 많은 재정적∙환경적 지원을 함으로써 기초 과학 연구의 풀(pool)을 확충해야 한다. 더불어 앞으로 과학을 이끌어나갈 미래의 예비 과학자에게 한국 사회에서도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과학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연구 다양성이 보장되어야만, 이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과학을 통한 가치 창출”의 기회도 폭넓게 확보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별생각 없이 씨앗을 뿌리고 키운 쭉정이가 내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한국 과학이 발전하려면 당장의 이익을 좇는 필부(匹夫)의 편협함이 아니라 100년 200년 또는 그 이상을 내다보는 현자(賢者)의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참고 문헌
[1] Benjamin Thompson. Wikipedia. [링크]
[2] Golden Fleece Award. Wikipedia. [링크]
[3] Golden Fleece. Wikipedia. [링크] : “황금 양모(Golden Fleece, 黃金羊毛)“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말로 “희생을 통해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제물”을 뜻한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프록스마이어 의원이 이 말을 썼는지 잘 모르겠지만, 맥락으로 판단했을 때 “과학자의 쓸모없는 호기심을 위해 희생된 정부의 세금”을 빗대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4] The Golden Goose Award [링크]
[5] Boyle A. 13 Sep 2012. Science oddities win Golden Goose. NBC New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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