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fried Henke, and Ian Tattershall, (editor). 2015. Handbook of Paleoanthropology, 2nd ed., pp. 4~13]


소개


역사 연구: 거울을 보는 것 이상으로!


“학문의 역사는 중요한가?“ 고인류학과 고고학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동명(同名)의 회의에서 레이먼드 코비(Raymond Corbey)와 윌 뢰브뢱스(Wil Roebroeks)가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Corbey and Roebroeks 2001a, p. 1).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 답변은 이들 과학 분야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작심해서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일이며, 기껏해야 은퇴한 동료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즐거운 활동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미샤 랜도우(Misia Landau)가 자신의 책 <인류 진화의 서사(Narratives of Human Evolution)>에서 현대 고인류학자는 아직도 “이야기꾼(storytellers)”에 불과할 뿐이라고 은연중 내비친 이후로 (Landau 1991), 고인류학의 역사는 양면의 문제(double-sided problem)에 봉착했다. 이 때문에, 단지 과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 분야에 대한 불확실한 역사적 접근이 정말로 필요한지 우리는 물어야만 한다.


고인류학은 진지하고 존중받을 만한 연구 분야가 아니라는 주장은 용인할 수 없으므로, 비록 이런 인류학의 하위 분야가 신용할 수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지언정, 이 책 <고인류학 편람(Handbook of Paleoanthropology)>의 다양한 기고문에 제시된 폭넓은 스펙트럼의 진정한 연구가 이러한 점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White 2000; Kalb 2001; Stoczkowski 2002; Henke 2010a, b; Reader 2011;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기술할 것이다).


더불어, 과학사(科學史)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학문의 역사는 과학사가(科學史家)뿐만 아니라 현역 종사자에게 단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가?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일관된 답은 없다. 파멜라 윌러비(Pamela R. Willoughby)는 역사과학(歷史科學, historical science)이 가정(假定)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소위 경성과학(硬性科學, hard science)과 다르다고 정확히 언급했지만 (Willoughby, 2005), 그렇다고 생물학조차도 물리학은 아니다. 이언 태터숄(Ian Tattershall)이 자신의 세련된 에세이 <거울 속의 원숭이(The Monkey in the Mirror)>에서 언급한 것처럼 (Tattershall 2002, p. 14), 카를 포퍼(Karl Popper)는 진화생물학을 “형이상학적 연구 프로그램(metaphysical research program)”이자 “검증 가능한 과학적 가설이 가능한 프레임워크(a possible framework for testable scientific hypotheses)”로 묘사했다. 비록, 이른바 경성과학과 연성과학(軟性科學, soft science) 사이의 구분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고 인류학이 연성과학 쪽에 있더라도, 우리는 “흰색 코트를 입은 집단(white coat group)”이 비슷한 인식론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Oeser 2004) 근래의 후생적 발견을 통해 점점 더 자각하게 되어왔다 (Jobling et al. 2004; Sassone-Corsi and Christen 2012). 명백히, 과학자는 철학자의 지지가 필요하다. <영적 과학의 필연성에 대하여(Über die Unvermeidlichkeit der Geisteswissenschaften)>라는 에세이에서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Odo Marquard)는 인문과학(人文科學, cultural science)의 보상기능(compensatory function)을 강조했으며 (Marquard 1987) 자기 학문 분야의 “무능력에 대한 보상 능력(Inkompetenzkompensationskompetenz, competence in compensating for incompetence)[고백 건데, 나는 이 용어가 좋다]”을 호소했다 (Marquard 1974). 이 책에서는 한낱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초보 논리(propaedeuticum logicum)를 사회적으로 과소평가해왔던 것이 유럽 생물과학 교육 과정의 중대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역사과학과 고인류학에 대한 관련성으로 돌아가자. 윌러비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Willoughby 2005, p. 60): “‘물리학의 질투(physics envy)’를 걱정하기보다는 (Gould 1981 (sic!), p. 113), 일부 역사과학은 이러한 제약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해 보인다: 만일 고인류학자와 과학사가가 그 분야의 (학문적) 증진(增進, improvement)을 위한 좋은 제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과학사를 포기하거나 이 분야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류 기원 연구의 역사(The History of Human Origins Research)>에 게재한 값진 기고문에서 매튜 굿럼(Matthew R. Goodrum)은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그리고 과학사회학자는 고인류학의 발전을 하나의 과학으로써 더욱 잘 이해하도록 한 것과 고인류학이 현대 문명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데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Goodrum 2009, p. 349).


걸출한 현대 다윈주의자인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1904–2005)는 다양하고 적절한 역사적 접근에 대해 비록 철저하진 않더라도 타당한 분류를 제시했다: (1) 정교한 사전식 역사(elaborated lexicographic histories), (2) 연대기적 역사(chronological histories), (3) 전기(傳記)적 역사(biographical histories), (4) 문화사회학적 역사(cultural and sociological histories), 그리고 (5) 개연(蓋然)적 역사(problematic histories) (Mayr 1982). 피터 보울러(Peter J. Bowler 1976, 1988, 1996, 1997, 2001), 밀포드 월포프(Milford H. Wolpoff)와 레이첼 캐스퍼리(Rachel Caspari) (Wolpoff and Caspari 1997), 프랭크 스펜서(Frank Spencer 1997), 베르트 토이니센(Bert Theunissen 2001), 빅토르 스톡츠코프스키(Wiktor Stoczkowski 2002), 리차드 딜라일(Richard G. Delisle 2007), 굿럼 (Goodrum 2009, 2013), 그리고 톰 건들링(Tom Gundling 2005)이 강조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의 핵심은 실증주의(實證主義)적 접근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몇몇 사람들은 이들이 제시한 (휴리스틱스[heuristics], 원전비평[原典批評], 해독[解讀, interpretation], 논리적 해석[解釋學, hermeneutics], 그리고 분석론[分析論, analytics] 같은) 다양한 접근이 고인류학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심할지라도, 코비와 뢰브뢱은 역사적 연구의 휴리스틱 가치(heuristic value)를 강조한다 (Corbey and Roebroeks 2001a로빈 데널(Robin W. Dennell)은 과학사에서 두 가지 교훈을 더 보는데, 그것은 바로 분열(fragmentation)과 자기만족(complacency)의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다. 데널은 인류학 분야 사이의 대화와 이해의 부족을 치명적 위험으로 간주하고 “이들 학문 분야, 특히 전문용어와 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과도한 전문화(專門化, specialization)와 불충분한 대화가 여전히 존재함”을 경고한다 (Dennell 2001, p. 66). 자기만족의 측면에 관해서 그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위험을 보는 게 언제나 훨씬 더 쉽지만, 과학사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한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안주하게 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단지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 동의하고 과거에도 매우 자주 거기에 동의해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Dennell 2001, p. 66). “비록 시기적으로 오래전일지라도, 과거는 현재보다는 약한 영향력으로 우리에게 작용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역사의 과정은 느리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 있으며, 관성력(慣性力)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가 편재(遍在)하고, 어제와 그 전날의 생각들이 오늘날의 생각들을 짓누른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사실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개념적 도구를 더 잘 숙달하고자 하는 과학자에게도 어느 정도 실질적인 결과를 제공한다”고 스톡츠코프스키는 주장한다 (2002, p. 197). 그리고 굿럼은 역사기록학적 연구가 “때때로 자연과학사와 인문과학사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틈새를 메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할 때 또 다른 관련 있는 측면을 간략히 언급한다 (Goodrum 2009, p. 338).


나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에 놓인 울타리를 가로지르는 시각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참 전에 나왔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다음을 참조할 것, Riedl 1985, 2003; Sarasin and Sommer 2010). 학문의 역사로 과학을 향상시킨다는 앞의 심각한 주장은 모든 연구 분야 또는 “그물처럼 밀접하게 얽혀 연결된 문제를 다루려는 관심사, 이론 그리고 절차 또는 기술의 공통집합을 보유하고 있는 지적 노력(intellectual endeavor)의 영역”에 유효하다 (Shipman and Storm 2002, p. 108). 진화생물학을 주제로 한 무수히 많은 학제 간 콜로퀴움(colloquium)과 “다윈주의자”의 홍수와 함께한 2009년의 다윈 기념일은 “우리 과학의 진화사를 철두철미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중요한 단계”로써 “다양한 이론적 접근의 상호교류(cross-fertilization)”를 갈망하는 지속적인 대화가 있음을 입증했다 (Destro-Bisol and Paine 2011; further Delisle 2007; Henke 2010a, b; Henke and Herrgen 2012; Begun 2013; Goodrum 2013).


생물인류학(生物人類學, biological anthropology)의 주요한 측면은 현재가 필연적으로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데널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화석 표본, 층서(層序) 및 기후의 변화, 우리 주변 세계로부터의 추정(推定, inference) 및 기타 등등을 통해 과거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창(窓)을 탐색하는 일”로 본다 (2001, p. 65). 고인류학자, 선사학자(先史學者, prehistorian), 그리고 고고학자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을 찾고 있지만, 서로 다른 열쇠 꾸러미를 사용한다. 하지만 거울을 창으로 착각해서 현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시각과 편견을 과거에 비추어 단순히 추정할 가능성 있다는 치명적 위험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슬리 하틀리(Leslie P. Hartley)가 말한 것처럼 “과거는 외국이고, 그들은 거기에서 다른 무언가를 한다” 이다 (Foley 1987, p. 78). 이런 이유로, 로버트 폴리(Robert A. Foley)는 “세상이 현재 나아가고 있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과거는 발명되거나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재구성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로 말미암아 고인류학 연구와 같은 진화 과학의 임무와 도전이 표면에 드러난다: 우리는 중요한 모델을 창조하고 있다 (Foley 1987; Henke and Rothe 1994; McHenry 1996; Delson et al. 2000; Stoczkowski 2002; Gutmann et al. 2010; Henke 2003a, b, 2004, 2005, 2007a, b, 2009, 2010a, b, c; Henke and Hardt 2011; Henke and Herrgen 2012). 이러한 종류의 접근은 결코 단순한 서사일 수가 없고, 다소 맥락과 관련된 가설 검증이며, 심지어 몇몇 사례에서 과학적 추론이 관련되어 있을지라도 방점은 여전히 과학에 있다 (White 1988; Henke and Rothe 1994; Henke 2003a) (그림 1과 2). 모든 과학자는 구체화된 상상 내에서 획기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태터숄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실로, 단 하나의 과학적 방법은 없다. 물론, 과학적 방법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은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서로 다른 것들이 지니는 엄청난 다양성의 핵심에 놓여있다. [하지만] 모든 유형의 과학적 탐구에 답해줄 열쇠를 건네줄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강조한다 (Tattersall 2002, p. 3).


다윈 이론의 선물은 윌리엄 하우얼스(William W. Howells)의 말마따나 “따라야 할 청사진 없이, 오직 기회의 전개(展開)만 있다”는 것이다 (Howells 1993, p. 14). 만일 오늘날 생명의 장엄한 위용이 계획 없는 실제 역사적 유전 과정의 결과라면, 우리는 그러한 양상과 과정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윈의 이론은 생물학이라는 전체 과학의 중심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 Idea)>에서 대니얼 대넷(Daniel C. Dennett)은 진화론을 “부식성이 매우 강해서 그 어떤 것도 삼켜버리는 상상의 액체”인 보편적 산(universal acid)과 비교하며 “성스러운 것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Dannett 1995, blurb).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모든 전통적인 개념은 다윈의 혁명적 세계관과 경쟁해야 한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가 “진화의 빛을 비추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格言)에서 표현한 것처럼, 다윈의 생명에 관한 이론의 결과로 말미암아 심지어 인류 조차도 더 이상 목적론적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Dobzhansky 1973, p. 125).


상식적으로 고인류학은 인간 화석을 연구하고, 연구가 안 된 대중매체 친화적인 화석과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 발견이 지배하는 기술(記述)적이고 상당히 서술적인 학문 분야로 주로 간주된다. 특히, 냉정하게 봤을 때 대부분의 화석과 발견들이 그저 예상한 대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중 과학 매체는 고인류학이 기껏해야 스토리텔링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인상을 전달하면서도 모든 인류 화석을 극적인 것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대중적 관심은 대부분 곧바로 희미해지거나 비누거품처럼 폭하니 터져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사실은 고인류학의 역사가 “최후에는 폐기될 오류, 희한한 의견, 기괴한 개념으로 가득 찬 길임을 입증하는 어떤 것 이상이지 않을까?” (Corbey and Roebroeks 2001a, p. 1). 그게 아니라면 스톡츠코프스키가 논평하듯이 (Stoczkowski 2002, p. 2) “몇천 년 동안 꾸준히 숙고된 인류 및 문명 기원에 관한 문제는 서양 문화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순진한 인류학을 복원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를 제시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오늘날 학문적 생각에 대한 이러한 암울한 지식이 초래한 영향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우리가 주체-객체 정체성(subject-object identity)의 딜레마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과학계에서 유행하는 이론, 패러다임,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력 관계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요소”로부터 줄곧 이어져온 관습(baggage)를 의식해야만 한다 (Stroczkowski 2010, p. 1). 대부분의 인류학자가 이러한 장애물을 알고 있을까? 명백히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는 주로 “순수한 사실”에 관심을 가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학자는 고인류학이 진화생물학의 다른 분야처럼 가설 검증과 과학적 모델링을 수반하는 진지한 주제라는 데 동의한다 (Wuketits 1978; Foley 1987; White 2000; Wood and Richmond 2000; Wood and Lonergan 2008; Cartmill and Smith 2011; Begun 2013). 그들은 화석에서 확인된 자료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과학적 접근은 가설과 이론의 창조와 검증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림 3). 이론적인 통찰을 의심해야만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되며, 질문함으로써 진실을 – 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 인식할 수 있다 (Popper 1959a, b, 1968, 1983; Foley 1987; Mahner and Bunge 2000; Vollmer 2003; Oeser 2004). 강력한 이론일수록 최적화되어 확증되지만, 잘 검증된 일반 이론조차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개요는 다음에 잘 나와 있다, Sarasin and Sommer 2010; Toepfer 2011; Wood 2011). 고인류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물리학과 같은 실증과학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이 고인류학이 서사적인 주제(narrative subject)라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모든 과학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기본적으로 오직 한 종류의 근본적인 과학이 존재한다. 모든 진정한 과학은 실재(實在)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며, 이러한 이해를 성취하기 위해 이론과 증거 모두를 조합해서 사용한다”고 강조했던 알프레드 크뢰버(Alfred L. Kroeber)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Kroeber 1953, p. 358).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주어져 왔다. 하지만 다윈 이후의 시대에도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도달했는지에 대한 그 어떤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개요는 다음을 참고할 것, Eldredge and Tattersall 1982; Tattersall 1995, 1998, 2002; Corbey and Theunissen 1995; Antweiler 2009; Bohlken and Thies 2009; Bayertz 2012). 다른 모든 인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처럼, 고인류학자는 단지 우리 인간의 조건(conditio humana)에 대한 환원주의적 시각만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다 (Henke and Herrgen 2012). 게하르트 헤버러(Gerhard Heberer)는 (현재 상황[status quo]을 뜻하는) “예츠트빌트(Jetztbild; 현재의 상[current image])”와 “예바일스빌트(Jeweilsbild; 각각의 상[each image])”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Heberer 1968a), 우리 지식의 가변성(changeablilty) 및 모든 고고학적 보고는 발표되자마자 곧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Hoßfeld 1997, 2005a, b; Schwartz and Tattersall 2002, 2003, 2005). 호미닌 분류의 다양한 도식(圖式)과 – 비전문가와 외부인뿐만 아니라 학부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 호미닌/호미니드 화석 기록의 짜증날 정도로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Wood 2000; Wood and Lonergan 2008), 생물학자가 원칙적으로 인류 화석의 발견을 평가하고 진화학적 용어로 인류의 기원을 재구성할 때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Tattersall 1998, 2002; Delson et al. 2000; Levinton 2001; Grupe and Peters 2003; Cartmill and Smith 2009; Begun 2013).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비생물학적인 대안적 설명과 관련된 말이 하나 있다.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신봉자의 눈높이에서 유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적 이론을 논의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따라서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hold Brecht)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지성으로 들어오는가? (Wie kommt die Dummheit in die Intelligenz?)”란 말을 인용하고 싶다. 생물학자는 우선 자신의 집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근래에 창조론의 르네상스를 촉진해왔던 원인과 그 저변에 놓인 정치사회 구조를 해석하는 것은 일부 과학사학자에게는 큰 흥미를 일으키는 주제다 (Graf 2007, 2010; Graf and Soran 2010; 다음 글은 뛰어난 논평이자 비평이다 Meyer (2006), 다음을 참조할 것 Neukamm 2009).


생명의 과정에 대한 다윈의 관점


지난 세기의 두 번째 절반이 시작될 무렵 전통적인 고정적 시각에서 역동적 진화 개념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역사적 과정의 집약체(integrated part)라는 인식이 생겼다. 1859년에 출간된 다윈의 걸작으로 촉발된 소위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은 오랫동안 혼란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보울러가 자신의 사서(史書) <비(非)다윈 혁명(The Non-Darwinian Revolution)>에서 증명한 것처럼, 다윈의 아이디어는 근본적으로 오해를 받고 있었다 (Bowler 1988). 판단컨대, 진화주의(evolutionism, 進化主義)가 19세기 후반의 사상에 끼친 영향은 역사가에 의해 엄청나게 과대평가되어왔다 (Hull 1973; Moore 1981; Desmond and Moore 1991; Engels 1995; Bowler 1996, 1997, 2001, 2009; Hemleben 1996; Ruse 2005; Goodrum 2004, 2009, 2013; Wuketits and Ayala 2005; Engels and Glick 2008).


전통적으로, 생물학의 다윈 혁명은 인류 기원의 새로운 평가에 대한 자극(impetus)을 제공했다고 가정되어왔고, 보울러는 이러한 가정이 어느 지점까지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종교적인 염려 때문에,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차원적인 인류의 능력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다윈과 그의 추종자들은 알고 있었다” (Bowler 1988, p. 141). 지속해서 증가하는 생물학적 사실의 프레임 안에서 복잡한 과학적 대답과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의미하는 “학문 모체(disciplinary matrix)”는 (Chamberlain and Hartwig 1999) 본질적으로 우리의 자아상(自我像)과 방향을 반영했다. 고인류학 연구의 과학적 필요성을 위해 제시된 논거는 인간은 어디로 갈지 결정하기 위해 자신이 기원한 곳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How [do] we know what we think we know?)”는 동명의 태터숄의 책에서 차용한 문구이다 (Tattersall 1995).


오늘날 고인류학은 주로 광대한 귀납적 접근과 연역적 가설 검증을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묘사하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진화생물학의 하위 분야다 (Foley 1987; Henke and Rothe 1994; Wolpoff 1999; Tattersall and Schwartz 2000; Begun 2013). 만일 우리 인류의 기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우리의 진화사(進化史)를 재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세 가지 기본적인 접근법이 있다 (Washburn 1953; Henke and Rothe 1994, 1999a; Cartmill and Smith 2009):


  • 첫 번째, 영장류학(靈長類學, primatology)적 접근: 진화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현존하는 가장 밀접한 근연종(近緣種)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러한 작업에는 행동, 인지(cognition, 認知) 및 비교형태학, 생리학, 혈청학, 세포유전학,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 연구에 대한 현장 및 실험실 연구가 포함된다 (e.g., Goodall 1986; Martin 1990; Jones et al. 1992; Tomasello and Call 1997; Tomasello 1999, 2008; de Waal 2000; Dunbar et al. 2010).
  • 두 번째, 고인류학적 또는 인간 고생물학적·고유전학적 접근: 임의의 적절한 화석 증거의 복구 및 분석, 거시·미시형태학, 조직학, 그리고 (예를 들어, 동위원소 같은) 생물리학 그리고 mtDNA(mitochondrial DNA)와 유전체 DNA(genomic DNA)와 같은 고유전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의 진화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e.g., Aiello and Dean 1990; Herrmann 1986, 1994; Henke and Rothe 1994, 1999a, 2003; Henke 2005; 2010a; Hartwig 2002; Schwartz and Tattersall 2002, 2003, 2005; Hummel 2003; Jobling et al. 2004; Burger 2007; Wagner 2007).
  • 세 번째, 집단유전학적 접근: 최근 인류 집단의 집단 내 또는 집단 사이의 표현형적유전적 변이를 연구함으로써 지리학적 표본과 이들의 진화사에 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e.g., Jones et al. 1992; Freeman and Herron 1998; Jobling et al. 2004; Crawford 2006).
  • 마지막으로, 선사시대 인간 활동, 독심술(mind reading), 그리고 문화적 발견물, 즉 고고학적 기록과 활동 화석(behavioral fossil)으로부터 얻은 상징적 표현(symbolism)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가 있다 (e.g., Haidle 2006; Gamble 1999; Klein 2009; Dunbar et al. 2010; Haidle and Conard 2011; Pu°tová and Soukup 2015 in press).


오늘날 고생물학 연구는 우리의 선행자가 어떤 모습이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다른 영장류 종은 멸종했는데 우리 인간은 왜 진화했는지를 특히 묻는다 (White 1988; Tattersall and Schwartz 2000). 때때로 호미니드화(hominization)로 정의되는 과정인 인류의 진화에서 적응을 유발하는 결정요인을 정의하기 위해 화석 인류의 생태계 니치(ecological niche)를 재구성해야 하지만, 몇몇 인류학자는 이 용어가 마치 목적론처럼 들리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Delisle 2001).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콜린 피텐드라이(Colin S. Pittendrigh)가 의미하는 목적률적 과정(teleonomic process)을 설명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Pittendrigh 1958). 연대기적 관점을 지닌 다른 생명과학 분야처럼 고인류학의 실험은 자연 그 자체의 역사적 과정에 존재한다. 그에 상응하여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진화 이론의 일반적 원칙 안에서 사후 행동으로(ex post-factum)으로 해석해야만 하고, 주체-객체 정체성으로 알려진 인식론상의 어려움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고려해야만 한다 (Riedl 1975; Mahner and Bunge 2000; Vogel 2000; Vollmer 2003).


왜 고인류학을 과학적이며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고인류학의 역사적 발달을 다면적인 생물학 주제로 소개한 이 글은 고인류학의 문화사회적 배경 및 특정 시기의 여러 문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 진화적 사고의 어떤 패러다임 변화가 고인류학 연구 분야를 이끌어왔는가?
  • 어떤 문화·사회·과학적 요인이 고인류학 형성 과정을 저해했고 가속해왔는가?
  • 어떤 걸출한 과학자 및 아이디어가 생물학·지리학·고고학 연구의 통합을 일으켰는가?
  • 다윈주의에서 신다윈주의에 이르는 연속적 발달, 그리고 종합이론 및 “현대종합”에서 고인류학 연구의 개념이자 전략인 진화체계이론(the System Theory of Evolution)에 이르는 일련의 발달이 있게 한 그 저변에는 각각 무엇이 있는가?
  • 고인류학 연구의 방향에 특정 국가가 미치는 영향을 무엇이었는가?
  • (예를 들어, 근본주의적이자 권위주의적인 국가주의, 공산주의, 식민주의 같은)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와 체계의 영향이 고인류학적 사고 및 연구에 기재될 수 있는가?
  • 이 분야를 오랫동안 남성이 점유해왔다는 사실이 인류 진화에서 특정 성(性)의 역할에 대한 고인류학적 사고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 오늘날과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가 현대 고인류학에 미친 영향 및 혁신적인 생물학 기술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 고인류학은 예외적인 호미닌 화석의 발견과 홍보로 촉발되는 화석 그리고/또는 대중매체 위주의 과학인가?
  • 만일 고인류학자가 (세익스피어의 희곡 <거짓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 따르면) 인류 진화의 양상과 과정을 적절히 이해하는 데 별 기여를 하지 않는 얕지만 매체 친화적인 “발견”을 주로 제공한다는 비난이 정당하다면 (White 2000), 고인류학의 역사적 연구가 반(反)진화적 사고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교육 전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그림 1. 연역적 그리고 귀납적 과학 접근 사이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그림 (Galley 1978에서 따왔으며, 약간의 수정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Henke and Rothe (1994)를 참조할 것).


그림 2. 화석 기록에서 얻은 골격 및 맥락 상의 자료가 초기 호미닌의 폭넓게 겹치는 다섯 범주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그림 (White 1988에 나온 자료를 다시 그림).


그림 3. 과거로 가는 길은 호미니드의 진화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Foley 198에 나온 그림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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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fried Henke, and Ian Tattershall, (editor). 2015. Handbook of Paleoanthropology, 2nd ed, p. 4]


초록


이 장에서는 다면(多面)적인 생물학 분야로서 고인류학(古人類學, paleoanthropology)의 과학적·역사적인 포괄적 개요를 제시한다. 다윈 이전의 진화 이론을 간략히 요약하고 나면, 생명의 과정(life process)에 대한 다윈의 관점으로 촉발된 (모든 사물은 목적에 의하여 규정되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목적론(目的論)적 시각(teleological view)에서 (목적론과는 달리 자연선택과 같은 자연법칙으로 발생한 살아 있는 유기체의 구조와 기능의 [생존 및 적응을 위한] 명백한 목적과 목표 지향성의 질[quality]을 뜻하는) 목적률(目的律)적 시각(teleonomic view)으로의 패러다임 변화(paradigmatic change)에 관해 역사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유럽 그리고 훗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화석을 발견한 일과 다양한 방법론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면서, 고인류학을 여러 방식으로 생물학적 사고(思考)의 주류에서 벗어나게 한 (예를 들어,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 및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와 같은) 당대 널리 퍼진 선입견(preconceptions)뿐만이 아니라 (정향진화주의[orthogensim] 및 유형적 접근[typological approach]과 같은) 잘못된 개념화(conceptualization) 때문에 고인류학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까지도 생물학의 다른 분야와는 대조적으로 훨씬 더 서술적인 분야(narrative discipline)인 채로 남아 있었음이 명백해진다. 내가 희망에 차 보여주듯이, 고인류학은 이러한 “무지갯빛 이미지(iridescent image)”를 잘못 유지해왔다고 널리 여겨진다. 하지만 인류의 기원에 대한 현재의 이론이 서술적 요소에서 자유롭다는 주장에 대한 회의론(懷疑論, skepticism)도 여전히 존재한다. 셔우드 워시번(Sherwood L. Washburn)이 자연인류학(自然人類學, physical anthropology)에 대한 혁신적인 개념적 개요(conceptual outline)를 제시한 이래, 인류 진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영장 목(靈長目, order Primates) 내에서의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adaptation)에 초점을 맞춘 이론적·방법론적 변화가 나타났다. 비록, (예를 들어, “단일 종 가설[single species hypothesis]” 같은) “현대 종합(Modern Synthesis)”으로 발생한 문제 때문에 약간의 지연이 있었을지라도, 고인류학이라는 인류학의 하위 분야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으로부터 상당한 이득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과거 및 신규 유적의 심도 있는 개발, 발굴 기술의 개선, 그리고 실험실에서 수행되는 호미니드(hominid) 화석에 대한 복합적인 연구, 다른 한편으로는 (예를 들어, 분류학[taxonomy], 생체역학[biomechanics], 행동심리학[behavioral psychology], 동물행동학[ethology],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 및 유전체학[genomics]처럼) 현존(現存)하는 영장류에 대한 비교 연구가 간결한 가설 검증(hypothesis testing)으로 우리 인류의 진화를 포함한 호미니드화(hominization)의 과정을 설명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진화 과학에 속하는 매우 혁신적인 하위 분야로서 고인류학을 구성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심오한 역사기록학적 회고(historiographical lookback)는 여러 다른 이유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이론적 개념, 방법론적 접근, 그리고 실증적 기반에 대한 신뢰성(reliability)과 타당성(validity)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고인류학의 역사는 우리 인류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사고의 신뢰도(creditability)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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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고릴라(학명: Gorilla gorilla) 유전체(genome, 遺傳體) 연구 결과가 「고릴라 유전체 서열을 통한 인류 진화에 대한 통찰(Insight into hominid evolution from the gorilla genome sequence)」이라는 제목으로 『네이쳐(Nature)』에 게재되었다(앞으로 이 논문을 「Scally, et al.」이라 부르겠다) [5]. 따라서 2001년에 발표된 현생 인류(학명: Homo sapiens)의 유전체 [1, 2], 2005년에 발표된 침팬지(학명: Pan troglodytes) 유전체 [3], 2011년에 보고된 수마트라 오랑우탄(학명: Pongo abelii)의 유전체 [4], 그리고 최근에 분석된 보노보 원숭이(학명: Pan paniscus)의 유전체를 포함해 [6] 웬만한 유인원의 유전체는 거의 분석이 이루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그림 2]. 능력이 된다면 이 모든 유전체 연구 결과를 전반에 걸쳐 살피고 싶어도 필자의 능력이 이 모든 것을 여유롭게 소화해내기에는 매우 미약하므로, 이 글에서는 고릴라 유전체 연구 결과에서 밝혀진 유인원 진화의 신비로움(?)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에 나와 있는 내용 대부분은 필자의 창의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필자보다도 훨씬 능력이 뛰어난 연구자들이 밝힌 사실과 가설의 기계적 종합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현존하는 유인원(great ape, 類人猿)의 분류 체계. 사람 과 또는 유인원 과(family Hominidae)는 크게 사람 속(genus Homo), 판 속(genus Pan), 고릴라 속(genus Gorilla), 그리고 퐁고 속(genus Pongo)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각 속에 속하는 종은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다 [5] [출처: Nature].



    

그림 2. 왼쪽부터 순서대로 아프리카 서부 저지대 고릴라(학명: Gorilla gorilla gorilla) [출처: Wikipedia], 동부 저지대 고릴라(학명: Gorilla beringei graueri) [출처: Wikipedia], 침팬지(학명: Pan troglodytes) [출처: Wikipedia], 보노보 원숭이(학명: Pan paniscus) [출처: Wikipedia], 보르네오에서 사는 오랑우탄(학명: Pongo pygmaeus) [출처: Wikipedia].



들어가기


인간은 해부학적∙생리학적으로 유인원과 유사하다. 물론 외양(外樣)만 놓고 본다면 “인간과 유인원의 유사성”에 당연히 이의(異議)를 제기하겠지만, 오직 생물학적 특징만을 고려한다면 이 말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과학자에겐 그렇다. 안 그렇다면 뭐 할 말은 없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유사점이 있는 만큼 차이도 크다. 어떤 면에서 그런 차이점(들)은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 짓는 결정적 요인(要因)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DNA가 있다.


오늘날에야 유전자의 구성적 본질(本質)인 DNA의 염기 서열을 아주 손쉽게(?) 분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진짜 쉽지는 않으며 유전체를 분석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DNA 서열 분석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양의 DNA가 확보된 상태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몇십에서 몇백 개의 염기 서열을 겨우 화학적 방법으로 겨우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유전체 연구에게 확실한 기폭제(起爆劑)였다. 따지고 보면 분자생물학이 있었기 때문에 유전체학(genomics, 遺傳體學)의 태동도 가능했다. 따라서 분자생물학 연구법이 미약했던 과거에는 염기 서열의 분석∙비교로 생명체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그림 3. 아프리카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규명하려 한 접근법(왼쪽)과 그 결론(오른쪽). 2008년 당시만 해도 고릴라 유전체 분석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10] [출처: Journal of Anatomy].



초기 현대 생물학에서 주요 연구 대상은 단백질이었다. 특히, 진화적 관계를 유추하는 데 있어 항원-항체 면역 반응과 전기영동(electrophoresis, 電氣泳動) 같은 생화학적∙면역학적 접근법은 그 자체로 많은 한계가 있었음에도 당시에는 매우 유용한 연구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화학적∙면역학적 접근법으로 인간과 침팬지의 알부민(albumin) 그리고 미오글로빈(myoglobin) 단백질이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등과 확연(擴延)한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7]. 더불어 단백질과 DNA의 서열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비교했다. 오늘날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생어 시퀀싱법(Sanger sequencing method)으로 DNA 서열을 분석하거나 에드만 분석법(Edman degradation method) 등으로 단백질 서열을 밝힘으로써 생화학적∙면역학적 방법으로 확인한 진화적 관계가 유전자 수준에서도 반영됨을 확인했다 [7, 8, 9]. 하지만 결론이 명확하지는 않았으며, 때로는 분석 방법에 따라 결론 사이에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 침팬지, 고릴라 등의 유인원 진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0] [그림 3].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Scally, et al.」는 과거 여러 연구에서 드러난 불완전함과 모호함을 좀 더 분명하게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 고릴라 유전체 프로젝트(Gorilla genome project)의 유전체 분석 대상인 카밀라(Kamilah)[출처: Nature].



「Scally, et al.」에서 연구팀은 아프리카 서부 저지대에서 사는 카밀라(Kamilah)란 이름의 암컷 고릴라(western lowland gorilla, 학명: Gorilla gorilla gorilla)의 유전체를 주로 분석했다 [그림 4] [5]. 더불어 이들 연구팀은 카밀라의 동족(同族)인 수컷 고릴라 콴자(Kwanza)의 유전체를 Y 염색체 염기 서열 확보를 위해 분석했으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릴라의 성염색체도 수컷은 XY 그리고 암컷은 XX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같은 서부 저지대에서 사는 암컷 고릴라인 EB(JC)와 동부 저지대의 수컷 고릴라인 무키시(Mukisi)의 유전체도 고릴라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 遺傳的多樣性) 및 차이를 조사하기 위해―카밀라의 유전체만큼 본격적이지는 않았지만―마찬가지로 분석했다 [그림 2, 왼쪽 첫 번째 그림과 두 번째 그림].


유인원의 종 분화 시기


「Scally, et al.」에서는 서부 저지대의 암컷 고릴라인 카밀라의 유전체 서열을 CoalHMM이라는 융합 추정(coalescent inference, 融合推定) 방법으로 [11] 이미 공개된 인간, 침팬지, 오랑우탄 그리고 짧은꼬리원숭이(macaque, 학명: Macaca mulatta)의 유전체와 비교했는데, 이때 오랑우탄 유전체를 외군(outgroup, 外群)으로 둬서 유인원의 종 분화 시기를 추정했다 [5]. 이들 연구팀은 CoalHMM 분석으로 얻은 결과를 해석하는 데 두 가지 사안(issue, 事案)을 고려했다. (1) 융합 추정으로 얻은 결과 자체는 시간이 아닌 상대적인 염기 분기(sequence divergence, 塩基分岐) 정도를 나타내므로 시간 단위로 환산해야 한다. (2) 고릴라 집단의 실제적인 지리적 분포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짧은꼬리원숭이 염기 분기(sequence divergence, 塩基分岐)를 화석 증거로 보정해 얻은 돌연변이 비율1 × 10-9/bp∙year로 상대적 염기 분기 정도를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인간-침팬지 그리고 인간-침팬지-고릴라의 종 분화 시기는 각각 3백7십만 년 전5백9십5만 년 전으로 나타났다 [5]. 이 결과는 염기 서열의 돌연변이 빈도를 비교∙분석해 종 분화 시기를 파악하는 분자 추정법(molecular estimate)을 이용한 최근 논문의 주장과 일치하지만 [10, 12], 한편으로는 화석 증거 등으로 추정한 전통적인 주장과 모순된다. 그런데 질병 유발 돌연변이(disease-causing mutation)의 발생 빈도 또는 부모-자식 간 염기 서열 차이를 분석한 최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세대를 20~25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현대 인류 집단에서의 세대당 돌연변이 비율 0.5~0.6 × 10-9/bp∙year라고 가정하면 [13, 14, 15], 인간-침팬지 그리고 인간-침팬지-고릴라 종 분화가 각각 6백만 년 전과 1천만 년 전에 발생했다고 나타나며, 이것은 화석의 연도 측정을 바탕으로 기존 주장과 일치한다 [5]. 다시 말하면, 염기 서열의 돌연변이 비율을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 이들 유인원의 종 분화 시기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시기에 따라 돌연변이 비율이 달라진다고 가정함으로써 해결했다. 예를 들어, “모든 유인원의 공통 조상에서는 1 × 10-9/bp∙year이라는 돌연변이 비율이 나타나지만, 현존하는 모든 유인원에서는 돌연변이 비율이 이것보다 더 낮다”란 식으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5]. 실제로 같은 종에 속하는 각 개체의 유전체에서도 돌연변이 정도가 세대에 따라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이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 연구팀은 조상인 집단의 인구 변동이 유인원의 종 분화 시기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고려했다. 즉, 조상 집단의 크기가 일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는 어떤 집단으로부터 조상 집단으로 개체(들)가 유입되거나 조상 집단에서 일부 또는 많은 개체가 외부로 빠져나갈 때, 이러한 변화는 조상 집단의 돌연변이 비율과 전체적인 진화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소위 유전자 확산(gene flow, 遺傳子擴散)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5]. 마찬가지로 집단의 세대 간 시간 간격도 종 분화 시기 결정에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인간-침팬지와 인간-침팬지-고릴라 종 분화 시기를 추정하면 각각 5백5십만~7백만 년 전8백5십만~1천2백만 년 전이란 결론이 나온다 [5]. 모든 진화 연구가 그렇듯, 「Scally, et al.」에서 나타난 종 분화 시기도 어떤 모델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꽤 큰 편이지만, 전반적으로 이 결과는 화석으로 보정한 기존의 종 분화 시기와 상당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인간,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 사이의 진화적 관계


앞에서 언급한 종 분화 시기는 인간,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가 과거 어느 시기에 서로 다른 종으로 나뉘기 시작했는지를 말할 뿐이며, 이들 종 사이에 어떤 유전적 흐름이 있었는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종 사이에 완전한 유전적 격리가 있었는지 아니면 종 분화가 시작된 후 일정 기간 유전적 교환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인간,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진화적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인 분자 계통 발생(molecular phylogenetics, 分子系統發生) 분석에서는 종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밝히기 위해 주로 DNA 서열을 비교 분석(comparative analysis)한다. 그런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사람은 2001년 이후로 많은 개체를 대상으로 유전체 분석이 이루어졌다) 각각의 종을 대표하는 단일 개체에서 DNA를 추출하고 서열을 확인함으로써 종 사이의 유전체 서열을 비교∙분석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단일 개체에서 얻은 DNA 서열이 각각의 종의 유전체를 대표한다고 가정하면 분석 과정에서 종 내 개체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 遺傳的多樣性)이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과소평가(過小評價)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종 분화가 이루어지는 시간 간격이 상대적으로 길다고 했을 때, 서로 다른 두 종이 공통 조상에서 분지된 이후 축적되는 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between-species genetic difference)는 종 내의 유전적 변이(within-species genetic variation)보다 더욱 두드러질 개연성(蓋然性)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둘 또는 그 이상의 진화적 분기가 매우 근접한 시기에 발생한다면 (즉, 하나의 단일 계통에서 첫 분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리된 계통 가운데 적어도 하나에서 또 진화적 분지가 발생한다면), 유전자에 대한 자연 선택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채 마지막 공통 조상이 갖고 있던 유전적 변이가 자손 계통에 무작위로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유전체의 서로 다른 부분은 서로 다른 계통적 유연관계(類緣關係)를 나타낼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유전자에 대한 서로 상충하는 진화적 계통 관계를 이끄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불완전 계통 정렬(incomplete lineage sorting 또는 ILS)이라고 부른다 [16].



그림 5. (왼쪽) 불완전 계통 정렬의 예. (오른쪽) 유전자 확산의 예 [16] [출처: Nature].



예를 들어보자. 과거 어느 시기에 AB 유전자형을 가진 가장 먼 조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림 5, 왼쪽 그림의 검은 선]. 자기 서식지에서 평화롭게 잘살고 있던 이 조상은 어떤 (지리적 또는 환경적) 변화 때문에 AA 유전자형과 AB 유전자형을 갖는 두 자손 계통으로 갈라졌다 [그림 5, 왼쪽 그림의 녹색 선과 붉은색 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AB 유전자형을 가진 자손 계통이 AA 유전자형과 BB 유전자형을 가진 가장 최근 계통으로 각각 분리되어 서로 다른 진화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림 5, 왼쪽 그림의 주황색 선과 붉은색 선]. 그리고 현재 이 지역에는 녹색 선으로 대표되는 AA 유전자형을 가진 종, 주황색 선으로 대표되는 BB 유전자형을 가진 종, 붉은색 선의 AA 유전자형을 가진 종 이렇게 세 가지 종이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녹색 선으로 대표되는 AA 유전자형을 가진 종은 주황색 선의 BB 유전자형을 가진 종과 붉은색 선의 AA 유전자형을 가진 종의 공통 조상과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진화적으로 서로 분기했는데,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형만 놓고 따져본다면 오히려 녹색 선으로 대표되는 종과 붉은색 선으로 대표되는 종이 AA 유전자형을 갖기 때문에, 주황색 선으로 대표되는 종보다 진화적으로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유전자 공유 현상이 바로 불완전 계통 정렬이다 [16].


「Scally, et al.」의 분석에서는 실제로 이런 양상이 나타난다. 인간,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의 유전체 가운데 70%는 고릴라보다도 인간과 침팬지가 상대적으로 더욱 비슷한데, 이것은 인간과 침팬지가 고릴라보다 더 최근에 진화적으로 갈라졌다는 일반적인 시각과 일치한다 [5].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의 유전체 가운데 나머지 30%에서는 인간-고릴라 또는 침팬지-고릴라의 DNA 서열 유사성(similarity, 類似性)이 오히려 인간-침팬지 유사성보다 높다는 점이다 [5]. 즉, 우리 유전자 가운데 침팬지와 유사하지 않은 부분에 오히려 고릴라와 더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첫 번째 가능성으로 앞 단락에서 언급한 불완전 계통 정렬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침팬지-고릴라의 분지가 시기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졌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전자 확산으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림 5, 오른쪽 그림]. 실제로도 유전자 확산으로 서로 다른 두 종 사이에 유전적 유사성이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현생 인류, 네안데르탈인(Neandertal) 그리고 데니소바인(Denisovan) 사이에서 유전자 확산으로 나타난 염기 서열의 유사성을 들 수 있다 [17, 18] [여기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고대 인류 데니소바인의 정체가 드러나다」를 참조하라].


하지만 유전자 확산보다는 불완전 계통 정렬 때문에 인간과 고릴라 사이의 DNA 서열 유사성이 높게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왜냐하면, 이 정도로 높은 비율의 서열 유사성이 유전자 확산 때문에 나타나려면 꽤 가까운 시기에 인간의 조상과 고릴라의 조상 사이에 유전적 혼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유전체 가운데 1~4% 정도를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받았다고 알려진 오늘날 유럽인에서 유전적 혼합이 이루어진 시점이 약 8만 6천~3만 7천 년 전 사이임을 감안(勘案)한다면 [17, 18], 인간과 고릴라 사이의 DNA 유사성이 거의 15%에 가깝게 나타나는 이유가 단지 유전자 확산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물론, 인간 계통의 조상과 고릴라 계통의 조상 사이에 유전자 확산이 전혀 없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유전자 확산이 인간과 고릴라 사이의 유전적 유사성에 크게 이바지를 했다고 보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다. 어쨌든, 「Scally, et al.」의 결과는 인간-침팬지-고릴라의 종 분화와 진화적 차이와 유전적 유사성에 대해 많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특히 이들 연구팀의 결과는 “영장류 종의 다양성은 한 종이 재빨리 그리고 비가역적으로 유전적으로 고립된 두 종의 분지로 증가한다”는 전통적인 학설에 반(反)하는 실체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5, 16]. 비록 필자의 개인적 견해가 인간과 고릴라 사이의 유전자 확산 가능성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과 고릴라의 차이


유인원 진화 연구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형태적∙행동적 특징을 갖추게 되었느냐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종이 가진 상동 유전자(homologous gene, 相同遺傳子) 사이의 직접적 비교가 필요하다. 「Scally, et al.」은 이를 위해 인간, 침팬지, 고릴라 사이에 유전자의 변화, 소실(消失) 또는 획득(獲得)이 진화 과정 중에 발생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인간의 유전자 가운데 663개, 침팬지 유전자 중 562개 그리고 고릴라 전체 유전자 가운데 535개가 어떤 진화적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5].


진화적 변화를 겪은 유전자 가운데 듣기 및 뇌 발달 등 감각 인지(sensory perception) 기능과 관련된 것이 포함되어 있다 [5]. 특히, 침팬지보다는 고릴라에서 뇌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의 변이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5], 이는 뇌에서 발현되거나 뇌 발달에 관련된 유전자가 영장류에서는 양성 선택(positive selection, 陽性選擇) 대상이 아니라는 통상적 인식과 비교해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몇몇 경우에 인간의 유전 질환과 관련된 변이가 고릴라에서는 정상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치매(dementia, 癡呆)와 관련된 성장 호르몬 PGRN 유전자와 비후형 심장근육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肥厚形心筋病症) 관련 유전자인 TCAP에서 자주 보이는 유전 질환 관련 변이가 고릴라에서는 정상으로 확인되었다 [5]. 사실, 이런 변이는 침팬지와 짧은꼬리원숭이에서도 정상으로 확인된 유전형인데, 이 변이가 왜 인간에서는 문제가 되고 인간이 아닌 유인원에서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방법은 현재로서 전무(全無)하지만, 여기에는 아마도 다른 유전자와의 상호 작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환경적인 어떤 요인도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매우 모호한 추측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고릴라의 유전적 다양성


고릴라 속(genus Gorilla)은 크게 서부 고릴라(Gorilla gorilla)와 동부 고릴라(Gorilla beringei) 두 종으로 나뉘며, 각각은 두 아종(subspecies, 亞種)으로 분류된다 [그림 1; 그림 6, 왼쪽 그림].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이런 식의 분류는 지리적 분포에 따라 편의상 이루어졌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식으로 분류된 고릴라 사이에는 무시 못할 정도의 유전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서로 별개의 종으로 나눌 정도로 지나치게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연구자는 오히려 서부 고릴라와 동부 고릴라 사이에 유전자 확산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



그림 6. (왼쪽) 아프리카 내 고릴라 분포 지도. 기니(Guinea), 나이지리아(Nigeria), 가봉(Gabon), 콩고(Congo) 지역에 분포하는 서쪽 고릴라 집단은 크게 서부 저지대 고릴라(western lowland gorilla, 학명: Gorilla gorilla gorilla)와 크로스 리버 고릴라(Cross River gorilla, 학명: Gorilla gorilla diehli)라는 두 가지 아종(subspecies, 亞種)로 나뉠 수 있으며, 콩고 민주 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 동부 지역에 서식하는 동쪽 고릴라 집단은 동부 저지대 고릴라(eastern lowland gorilla, 학명: Gorilla beringei graueri)와 마운틴 고릴라(mountain gorilla, 학명: Gorilla beringei graueri)의 두 가지 아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른쪽) 서부-동부 고릴라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고립-이주 모델(isolation-migration model). NA, NW 그리고 NE는 각각 선조, 서부, 동부 고릴라의 유효 집단 크기(effective population size, )를 뜻하며, m은 이주 비율을 나타낸다 [5] [출처: Nature].



「Scally, et al.」에서는 이들 고릴라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암컷 서부 고릴라인 카밀라와 EB(JC) 그리고 수컷 동부 고릴라인 무키시의 유전체 서열을 비교해 염기 서열의 다양성을 조사했다 [5]. 결과적으로 카밀라와 EB(JC)는 유전적으로 서부 고릴라 집단에 속하며 무키시는 서부 고릴라 집단과 확연히 구분되는 동부 고릴라 집단임이 확인되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무시키의 이형접합성(heterozygosity, 異型接合性)이 다른 두 고릴라와 비교해서 상당히 낮았는데, 이것은 동부 고릴라 집단의 크기가 유전적 다양성을 폭넓게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상대적으로 작음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현재 서부 고릴라 개체 수는 약 20만 정도지만 동부 고릴라 개체 수는 서부 고릴라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알려져 있다 [5].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유전자 다양성 분석에서 확인된 동부 고릴라 집단 크기의 축소 경향이 단순히 인간 활동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에 동부 고릴라 집단이 오래전부터 서부 고릴라 집단에 비견할 수 있는 정도로 규모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인간의 무분별(無分別)한 개입 때문에 최근에 개체 수가 감소했다면, 유전체에서 드러나는 동부 고릴라의 다양성은 확실히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집단의 규모가 과거 어느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고 동부 고릴라 개체 수 감소에 인간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때문에 나타난 동부 고릴라 개체 수 감소와는 별개로 이 유전적 집단이 전체적으로 쇠락(衰落)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 연구팀의 결과를 근거로 했을 때)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두 고릴라 집단이 유전적으로 분지한 시점을 약 1백7십5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5].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두 고릴라 집단의 이형성이 (분명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에, 초창기 염기 서열의 분기가 일어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유전자 교환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종 자체가 나뉘는 시기는 대략 50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을 내렸다 [5] [그림 6, 오른쪽 그림].


후기 ― 더 많은 유전체 연구 결과가 필요하다


사람도 아닌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원숭이, 오랑우탄 등과 같은 유인원의 유전체를 왜 분석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이런 연구가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백 퍼센트 거짓말이며 거의 사기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이들 유인원의 유전체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인류를 포함한 유인원의 진화”를 전반에 걸쳐 이해하는 데 매우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D급 과학 잉여에게는 이런 연구가 암 정복이나 생명 연장 따위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고 실용적인 연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관심을 안 둘 뿐이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고릴라 유전체 분석으로 유인원의 진화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를 확보했지만,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특히 각각의 종마다 거의 한 개체만 이루어진 완전한 유전체 분석을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데, 언젠가는 오늘날 다양한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것처럼 다른 종류의 유인원도 개체마다 일일이 유전체를 분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참고 문헌
[1] International Human Genome Sequencing Consortium. 2001. Initial sequencing and analysis of the human genome. Nature. 409: 860-921. [링크] : 유전체 연구에 관한 기념비적 논문이다. 국제적 협력으로 진행된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보노보 등과 유인원의 유전체 분석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고대 인류의 유전체 분석 사업은 애당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2] Venter JC, et al. 2001. The sequence of the human genome. Science. 291: 1304-1351. [링크] : 과학적 지식을 공공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해 특허를 걸으려 한 크레이크 벤터의 논문이다. 크레이크 벤터는 자신의 전매특허(專賣特許)인 샷건(shot-gun) 분석만으로 인간 유전체를 분석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발표한 인간 유전체 결과가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서 국제 인간 유전체 분석 컨소시엄(International Human Genome Sequencing Consortium)의 분석 결과를 참조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어쨌든, 크레이크 벤터가 똑똑한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한 개인이 사적 이익을 위해 유전자 정보를 독점하려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할 수 있다.
[3] Chimpanzee Sequencing and Analysis Consortium. 2005. Initial sequence of the chimpanzee genome and comparison with the human genome. Nature. 437: 69-97. [링크] : 침팬지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 결과로 유인원 유전체 가운데 인간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DNA 서열이 분석된 종이다.
[4] Locke DP, et al. 2011. Comparative and demographic analysis of orang-utan genomes. Nature. 469: 529-533. [링크] : 오랑우탄 유전체 분석 연구다. 분석 대상은 주로 수마트라 오랑우탄(학명: Pongo abelii)이며, 보르네오 오랑우탄(학명: Pongo pygmaeus)의 유전체도 일부 분석했다.
[5] Scally A, et al. 2012. Insights into hominid evolution from the gorilla genome sequence. Nature. 483: 169-175. [링크] : 이 글에서 주로 인용하며 분석하는 핵심 논문이다.
[6] Prüfer K, et al. 2012. The bonobo genome compared with the chimpanzee and human genomes. Nature. 486: 527-531. [링크] : 고릴라 유전체 분석 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노보 원숭이의 유전체 분석 결과가 곧바로 발표되었다. 고릴라 유전체 분석과 관련해서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필자도 조금밖에 읽지 않았다).
[7] King MC, and Wilson AC. 1975. Evolution at two levels in humans and chimpanzees. Science. 188: 107-116. [링크]
[8] DNA sequencing. Wikipedia. [링크] : DNA 서열 분석법을 소개한 위키피디아 글이다. 이 글은 생어 시퀀싱법(Sanger sequence analysis)도 설명하고 있다. 영어가 된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게 좋다.
[9] Edman degradation. Wikipedia. [링크] : 단백질 서열 분석법 가운데 하나인 에드만 분석법을 설명하는 위키피디아 글이다.
[10] Bradley BJ. 2008. Reconstructing phylogenies and phenotypes: a molecular view of human evolution. J Anal. 212: 337-353. [링크] : 2008년도에 발표된 유인원 진화에 관한 소개 글이다. 유인원 진화에 관한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하는 측면에서 읽어보길 추천하지만, 이 글에서 내리는 결론은 필자가 소개하는 논문의 주장과 다소 차이가 있다.
[11] Coalescent theory. Wikipedia. [링크] : 이 글에서 언급하는 통계 분석법인 CoalHMM이라는 융합 추정의 기본 이론을 소개하는 위키피디아 글이다.
[12] Burgess R, and Yang Z. 2008. Estimation of hominoid ancestral population sizes under bayesian coalescent models incorporating mutation rate variation and sequencing errors. Mol Biol Evol. 25: 1979-1974. [링크]
[13] 1000 Genomes Project Consortium. 2010. A map of human genome variation from population-scale sequencing. Nature. 467: 1061-1073. [링크] : 부모-자손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재미있는 논문이다. 필자도 아직 다 안 읽어봤지만, 꽤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을 담고 있다. 어쨌거나 이 논문의 결론은 “부모의 유전자 절반이 각각 자손에게 전해진다 하더라도, 부모와 자손의 염기 서열은 다소 차이가 있다”이다.
[14] Roach JC, et al. 2010. Analysis of genetic inheritance in a family quartet by whole-genome sequencing. Science. 328: 636-639. [링크] : 참고 문헌 [13]과 거의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15] Lynch M. 2010. Rate, molecular spectrum, and consequences of human mutation. Proc Natl Acad Sci USA. 107: 961-968. [링크]
[16] Gibbs RA, and Rogers J. 2012. Genomics: Gorilla Gorilla Gorilla. Nature. 483: 164-165. [링크] : 고릴라 유전체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글이다. 필자도 이 글을 많이 참조했다. 논문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 글을 읽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17] Green RE, et al. 2010.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Science. 328: 710-722. [링크] : 이미 필자의 블로그에서 많이 소개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논문이다.
[18] Meyer M, et al. 2012. 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 Science. Published online 30 August 2012 [DOI:10.1126/science.1224344] [링크] : 얼마전에 필자가 다룬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 논문이다.

[19] Thalmann O, et al. 2007. The complex evolutionary history of gorillas: insights from genomic data. Mol Biol Evol. 24: 146-158.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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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stone tool, 石器)와 같은 정교한 도구 제작과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은 초기 호미니드(Hominid) 진화와 고유한 문화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속(genus, 屬)과 같은 멸종한 호미니드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호모 아파렌시스(Homo aparensis),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 네안데르탈인(Neandertal 또는 Homo neanderthalensis), 데니소바인(Denisovan) 그리고 고대 호모 사피엔스(archaic Homo sapiens) 등과 같은 고대 인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 불리는 현생 인류의 탄생에서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진화사(進化史)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호미니드 역사에 있어서 도구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직립 보행(bipedalism, 直立步行)으로 해방된 두 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점점 커지는 뇌 용적량도 역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동반 상승효과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림 1. (왼쪽) 이집트 독수리(Neophron vulture 또는 Egyptian Vulture) [출처: 위키피디아], (가운데) 느시아 제비류 가운데 Cariama cristata라는 학명의 동물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흰목꼬리감기원숭이(capuchin monkey) [출처: 위키피디아].



도구 사용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중요했음은 분명하지만, 도구 사용이 꼭 호미니드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 독수리(Neophron vulture 또는 Egyptian Vulture)는 타조 알 같은 크기가 매우 큰 알(egg)을 깨기 위해 (보통 둥근 모양의) 조약돌을 부리에 물고 알에 톡톡 내리치는 과정을 알이 깨질 때까지 반복한다 [5] [그림 1, 왼쪽].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에서 서식하는 검은 다리 세리에마(Red-legged Seriama, 학명: Chunga burmeistrei) 새 같은 느시아 제비(Cariama)류는 먹이인 뱀, 도마뱀, 개구리, 새, 곤충 등을 잡아다 통째로 삼키기 쉽게 하려고 바위에다가 계속 내리친다 [6] [그림 1, 가운데].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역에 분포하는 흰목꼬리감기원숭이와 같은 세부스 속 (genus Cebus) 원숭이는 먹이인 견과류(堅果類)나 게(crabs) 그리고 조개류 등의 단단한 껍질을 깰 때 돌을 사용한다 [7] [그림 1, 오른쪽]. 이러한 사례 외에도 많은 생명체가 먹이를 잡아먹거나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주변에 있는 물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 그러므로 단순히 도구만 사용하는 것이라면 호미니드와 다른 생명체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무방하다. 그러나 도구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제작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조성 등을 고려한다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호미니드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2. (왼쪽) 침팬지(chimpanzee, 학명: Pan troglodytes)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보노보 원숭이(bonobo, 학명: Pan paniscus)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현생 인류와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연관계에 있는 자매군(sister group, 姉妹群)이며 판 속(genus Pan)에 속하는 유인원(類人猿)인 침팬지(chimpanzee, 학명: Pan troglodytes)와 보노보 원숭이(bonobo, 학명: Pan paniscus)는 어떨까? [그림 2] 약 6백50만 년 전에 현생 인류와의 공통 조상(common ancestor, 共通祖上)에서 분지(divergence, 分枝)한 침팬지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먼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에 위치한 고대 침팬지의 유적에서 4천3백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했음을 뜻한다 [8, 9]. 실제로 침팬지는 흰개미를 잡아먹을 때 커다란 막대기를 사용해 땅을 판 다음 작은 막대기로 흰개미를 사냥한다고 알려졌으며, 최근에 아프리카 세네갈(Senegal)에서 서식하는 침팬지가 이빨로 날카롭게 다듬은 창으로 부시베이비(bushbaby)라는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9]. 약 2백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분지한 보노보 원숭이도 감자나 고구마 동과 같은 영양 줄기 식물을 파먹을 때 나뭇가지를 사용하며, 견과류 같은 단단한 먹이를 부술 때도 돌 위에 견과류를 올려놓고 다른 돌로 내리치기도 한다 [1]. 도구 사용의 다양성과 복잡성 측면에서 이들 두 영장류(靈長類)가 앞에서 언급한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두 영장류가 고대 호미니드의 다른 점은 바로 창조적으로 도구를 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적어도 그런 모습은 지금까지 관찰된 적이 없다.



 

그림 3. (왼쪽) 보노보 원숭이 칸지(Kanzi)가 석기를 제작하는 모습. (오른쪽) 고대 인류가 사용한 구석기 유물. 올도완 시대의 것이다 [4] [출처: Annual Reviews of Anthropology].



구석기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palaeolithic archaeologist)와 인지 심리학자(cognitive psychologist)로 구성된 협동 연구팀은 칸지(Kanzi)란 이름의 12살 된 수컷 보노보 원숭이에게 석기 제작법과 사용법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간 가르쳤다 [3]. 이 연구의 주요 목적은 칸지가 돌을 깨는 방법과 칸지가 만든 석기의 형태를 조사 및 연구하는 것이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칸지의 석기 제작 능력은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칸지가 만든 석기에 고대 호미니드의 석기 유물과 같은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3]. 하지만 이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었고 보노보 원숭이 칸지는 계속해서 석기 제작을 연마(硏磨)했다. 이 당시 판-바니샤(Pan-Banisha)라는 암컷 침팬지도 같이 교육받았고 칸지와 함께 이번 실험에 참여했으며 그 결과도 같은 논문에 언급되었지만, 필자의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2012년 현재, 30살이 된 칸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 사이에 석기 제작법만 배운 게 아니라 언어 교육도 같이 받았다 (인지 심리학자가 참여한 연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 보자. 1999년 당시 칸지는 밧줄에 매달리거나, 상자에 또는 가죽 안에 담긴 먹이를 획득하기 위해 자신이 배운 석기 제작법으로 도구를 제작했다 [1, 3]. 그런데 칸지가 해결한 문제와 같은 상황은 칸지가 포획되기 전에 살았던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연구팀은 될 수 있으면 칸지가 과거 살았던 서식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통나무 상자 안에 먹이를 넣어 쉽게 열지 못하도록 닫아놓거나 다양한 상태의 흙더미 아래에 먹이를 숨겼다. 물론, 연구팀은 먹이를 숨기기 전에 그곳에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안에서 먹이를 빼내라든지 하는 그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칸지가 하는 행동을 관찰할 뿐이었다 [1].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칸지는 연구팀이 숨겨 놓은 먹이를 빼내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통나무 안에 숨겨진 먹이를 빼내려는 과정에서 칸지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 (1) 통나무를 커다란 돌멩이로 내리쳤다. (2) 통나무를 시멘트 바닥 또는 바위 위에다 내리쳤다. (3) 막대기를 통나무 상자 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4) 석기를 제작해 그것으로 드릴처럼 구멍을 뚫거나(drilling), 송곳처럼 찍어 내리거나(wedging), 깎아 내리거나(chopping), 긁거나(scraping), 자르는(cutting) 모습을 보였다. 최후에는 (5) 온 힘을 다해 헐거워진 통나무 상자를 열어 먹이를 꺼냈다 [1]. 통나무 상자 안에서 먹이 꺼내기 실험을 24번 반복하면서 칸지의 문제 해결 능력은 점점 나아졌다. 그 과정 중에 칸지는 무려 156개에 달하는 여러 가지 석기 도구를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 60여 개에 해당하는 것이 어떤 특정 목적(예를 들면, 구멍 뚫기, 긁기, 틈 사이로 집어넣기, 자르기 등)에 사용한 석기 도구였다 [1].



그림 4. 보노보 원숭이 칸지가 통나무 상자를 열기 위해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석기 도구. 1~4는 통나무에 구멍을 낼 때 칸지가 제작하고 사용한 석기 도구이며 5는 통나무 상자를 긁을 때 사용한 석기 도구이다 [1]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



땅을 파서 먹이를 찾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칸지는 토양 상태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를 달리했다. 부드러운 모래에 먹이가 숨겨져 있을 때에는 그냥 손으로 먹이를 파냈지만, 진흙 안에 숨겨져 있을 때에는 나뭇가지로 흙을 파냈으며, 딱딱한 토양 안에 있을 때에는 (실험이 반복되면서) 상황에 맞는 석기를 제작해 땅을 파 먹이를 찾아냈다 [1].


이 연구 결과가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필자는 앞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명체는 지금까지 호미니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침팬지와 보노보 원숭이 같은 영장류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제작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관찰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비록 훈련받긴 하지만) 보노보 원숭이 칸지도 어떤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석기 도구를 제작하는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였다. 진실로 칸지가 제작한 석기 도구는 지금까지 영장류 사회에서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 과정이었다 [1].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로 칸지가 통나무 상자를 열기 위해 석기로 나무에 낸 생채기 양상이 지금까지 보고된 고대 인간 속이 만들어낸 그것과 매우 유사하단 사실이다 [1]. 고대 호미니드가 자신의 석기 도구로 낸 흔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에티오피아(Ethiopia) 보우리(Bouri)에서 발굴된 약 2백50만 년 된 소뼈에 새겨진 흔적으로, 고대 호미니드가 뼈 안에 든 골수(marrow, 骨髓) 성분을 먹거나 뼈에서 살을 발라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했음을 뜻하며 [1, 10],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칸지가 도구를 사용해 통나무 상자 안에 있는 먹이를 빼낼 때랑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그림 5]. 그리고 칸지가 제작한 석기 도구들은 전반적으로 2백60만~1백70만 년 전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구석기 시대 올도완(Oldowan) 문화에 속하는 석기 양상과 유사하다 [1, 11] [그림 3, 오른쪽; 그림 4]. 칸지가 제작한 석기와 올도완 문화의 것으로 고대 호미니드가 사용한 석기 유물의 모양을 비교해보자.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연구팀은 이런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판 속 영장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와 비슷한 구부러진 손가락을 갖고 있고 올도완 석기를 제작한 존재라고 알려진 호모 플로렌시엔시스(Homo floresiensis)와 유사한 손목뼈와 두개골 용적을 나타낸다고 했을 때, 칸지가 통나무 상자에 낸 생채기 흔적과 2백50만 년 전 고대 인류가 석기로 낸 흔적 사이의 유사성은 의미 있다. 따라서 우리 연구팀은 판 속 영장류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낸 흔적이 뼛조각 유물에 나타난 초기 생채기 흔적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제안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은 연구 결과는 판 속 영장류와 인간 속 영장류의 최근 공통 조상에도 우리 실험에서 관찰된 것과 같은 도구 사용의 발달 과정이 있었으리라 제안한다.” [1, 12]



 

그림 5. (왼쪽) 보노보 원숭이 칸지가 자신이 제작한 석기 도구로 통나무 상자에 낸 생채기 패턴 [1]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 (오른쪽) 에티오피아 올두완에서 발굴한 소뼈 유물 사진. 그림 아래의 확대한 사진에서 석기 등으로 자국 낸 흔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10] [출처: Science].



물론 연구팀이 내린 “판 속 영장류와 인간 속 영장류의 최근 공통 조상에도 … 도구 사용 발달 과정이 있으리라”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생명체 진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收斂進化)의 예처럼 판 속 영장류의 도구 사용과 인간 속 호미니드의 도구 사용은 두 속의 최근 공통 조상에는 없었지만, 두 속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를 진행한 협동 연구팀의 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하며 몇 가지 새로운 화두(話頭)를 던진다. 첫째, 보노보 원숭이 칸지는 자신이 창조적으로 습득한 석기 제작법을 자기 동료—그것이 같은 연구소에서 어느 정도 교육받은 보노보 원숭이든 전혀 교육받지 않은 동족이든 상관없이—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둘째, 칸지가 자손을 낳는다면 자손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줄 수 있는가? 이 두 가지는 문화 전수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번쯤 품을 수 있는 생각으로, 몇백만 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대 호미니드가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 실재적 과정이며, (어찌 보면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습성은 오늘날 현생 인류에서도 명백히 (그리고 더욱 정교하게) 드러난다. 어쨌든,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어떻게 보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그런 모습을 바로 목격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몇 년에서 몇십 년 또는 몇백 몇천 년 이상을 요구하는 오랜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 인간도 바로 그런 식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으니까 말이다.


참고 문헌
[1] Roffman I, et al. 2012. Stone tool production and utilization by bonobo-chimpanzees (Pan paniscus). Proc Natl Acad Sci USA. 109: 14500-14503. [링크] : 필자가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논문이다. 조만간 공공에 무료로 공개되니 관심 있는 사람은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2] Tool use by animals. Wikipedia. [링크]
[3] Schick K, et al. 1999. Continuing investigations into the stone tool-making and tool-using capabilities of a bonobo (Pan paniscus). J Archaeol Sci. 26:821–832. [링크]
[4] Toth N, et al. 2009. The Oldowan: The tool making of early hominins and chimpanzees compared. Annu Rev Anthropol. 38:289–305. [링크] : 초기 호미니드와 침팬지 사이의 도구 제작에 관한 소개 글로 읽어보면 좋다.
[5] Egyptian Vulture. Wikipedia. [링크]
[6] Seriemas. Birds and Beyond. [링크]
[7] Capuchin monkey. Wikipedia. [링크]
[8] Mercader J, et al. 2007. 4,300-Year-old chimpanzee sites and the origins of percussive stone technology. Proc Natl Acad Sci USA. 104: 3043-3048. [링크]
[9] Chimpanzee. Wikipedia. [링크]
[10] de Heinzelin J, et al. 1999. Environment and behavior of 2.5-million-year-old Bouri hominids. Science. 284:625–629. [링크]
[11] Oldowan. Wikipedia. [링크]
[12] “Given that Pan has curved finger phalanges similar to those of australopithecines/Homo habilis and wrist bones and cranial capacity similar to those of Homo floresiensis, makers of Oldowan stone tools, the similarity between the wear patterns observed on KZ’s logs and those seen in early Homo artifacts from 2.5 mya is significant. Our experiments thus suggest that the wear patterns resulting from the various tool uses by Pan can be used to help decipher the earliest wear patterns preserved on bones. Therefore, our results reinforce the evidence for early Homo traits in Pan, and suggest that the potential for the development of the observed tool use existed in the last common ancestor of Pan and Homo.” [1]에서 참조한 논문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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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보다 흥분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장 가고 싶은 때가 언제야?” 누가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겠다. “인류의 조상이 처음 출현했던 그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를 속박(束縛)하는 물리 법칙 때문에 정방향(正方向)의 시간 여행은 그럭저럭 할 수 있어도, 역방향(逆方向)의 시간 여행은 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불행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물러설 수밖에 없나?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물리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수단은 없어도, 과거가 어땠는지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는 최소한의 힌트 정도는 다행히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존재한다. 다만 너무 적을뿐더러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과거의 흔적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조상과 관련한 것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경이로움과 흥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인류의 흔적은 때때로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의 과학자 집단—예를 들면, 고인류학자 그리고 고유전학자—에게는 베일에 싸인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과학자 또는 인류학자가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고대 인류의 화석과 그들이 남긴 도구 또는 유적이 전부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체의 극히 일부밖에 안 되는 파편이라면 상황은 매우 힘들어진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分子生物學)이 있다. 특히, 임의의 DNA 조각을 다른 DNA 조각에 집어넣을 수 있는 클로닝(cloning) 기법의 개발, DNA 염기 서열의 특정 부분을 인식해 그 부분만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 制限酵素)의 발견, 특정 DNA 염기 서열을 증폭(增幅)해 배가(倍加)할 수 있는 중합 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또는 PCR, 重合酵素連鎖反應)의 발견 등 생물학사에 기록된 놀라운 혁신 덕분에 과거에는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던 고대 인류의 수수께끼 같은 서사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와 같은 첨단 하드웨어의 발달은 과거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강력한 주술과 지팡이를 가진 시간 여행을 하는 과학자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1.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 — 고대 인류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과학자 집단



 

그림 1. (왼쪽)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박사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산하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 연구실 건물 전경(全景)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라이프치히(Leibzig)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에는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박사가 이끄는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 進化人類學) 연구팀이 있다 [1]. 이곳에서는 인간,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DNA 염기 서열을 고대 인류의 유전자 정보와 비교함으로써 인류의 기원과 이동의 궤적 등을 밝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의 하나로 이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Neandertal Genome Project)라는 이름의 연구를 국제적 협업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2] [그림 1].


2012년 8월 이 연구팀은 「고대 데니소바인 개체에서 얻은 광범위한 유전체 염기 서열(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이란 제목으로 멸종한 고대 인류 가운데 하나인 데니소바인(Denisovan, -人) 유전체 정보 연구 결과를 『Science』에 발표했다 [3, 4, 5]. 사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고대 인류의 유전체 정보에 관한 연구를 보고한 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전에도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人) 유전체 분석 결과를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적이 있으며 [6, 7],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데니소바인 유전체 분석 결과도 2010년에 한 차례 발표한 적이 있다 [8]. 따라서 단순히 고대 인류의 유전체를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이 연구는 과거 연구와 비교했을 때 그리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기술적 측면과 그 분석 내용에서 고대 DNA(ancient DNA, 古代-) 연구에 획기적인 지평(地平)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2. 고대 DNA 연구의 어려움 (1) —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이 고대 인류 연구 발전에 도움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 앞에는 새로운 (간혹 이전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도사린다 [9].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는다. (포식자한테 잡아 먹인 게 아니라면) 수명이 다한 생명체는 어떤 경로로든 썩기 마련이다. 여기서 “썩는다는 것”, 즉 부패(腐敗)는 유기 물질이 분해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부패를 흔히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으로 생각하지만, DNA와 RNA 등의 핵산(nucleic acids, 核酸)도 알고 보면 유기 물질이다. 따라서 부패 과정이 진행할 때에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와 RNA 같은 핵산도 같이 분해된다. 이때, DNA 분해 과정을 담당하는 것은 핵산 가수 분해 효소(nuclease, 核酸加水分解酵素)라고 불리는 단백질 고분자다.


그런데 사체(死體) 또는 그 주변 환경이 급격히 건조해지거나, 온도가 낮아진다든지, 또는 염분 농도가 매우 짙어지는 상황이 때때로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핵산 가수 분해 효소가 파괴되거나 이 효소의 핵산 분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9]. 결과적으로 DNA가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대 DNA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운빨(?)은 없다. 하지만 고대 DNA를 연구하는 사람에겐 이것보다도 더 큰 행운이 필요하다. (사실 모든 연구자에겐 엄청난 행운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운빨도 실력이라는 소리가 있을까?) 바로 물리화학적 반응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DNA의 자발적 분해와 복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염기 서열의 치환(substitution, 置換) 때문이다 [9] [그림 2].



그림 2. 이중 나선 형태의 DNA 가운데 한 가닥을 모식화한 그림. DNA 구성 요소인 아데닌(adenine 또는 A), 티민(thymine 또는 T), 시토신(cytosine 또는 C) 그리고 구아닌(guanine 또는 G)을 DNA 한 가닥에 묘사했다. 효소가 관여하지 않는(non-enzymatic) 자연적 손상(damage, 損傷)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초록색 화살표는 가수 분해(hydrolysis, 加水分解)가 일어나는 부분이며, 빨간색 화살표는 탈 퓨린화(depurination, 脫-化)가 발생하는 지점이고, 파란색 화살표는 산화(oxidation, 酸化)가 일어나는 곳이다 [9] [출처: Nature Review Genetics].



예를 들면, DNA를 구성하는 질산 염기(nitrous base)와 당-인산 뼈대(sugar-phosphate backbone)가 자연 방사선(background radiation, 自然放射線)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이곳에서 산화(oxidation, 酸化)가 발생하면 DNA 자체에 어떤 변화—예를 들면, 원래의 염기가 다른 염기로 변하거나 DNA가 잘리는 것—를 수반(首班)할 수 있다 [그림 2]. 탈 아미노화(deamination, 脫-化), 탈 퓨린화(depurination, 脫-化), 그리고 가수 분해(hydrolysis, 加水分解) 등과 같은 작용도 DNA 분자 자체의 안정성을 낮추므로, 외부로 노출된 DNA가 분해될 수도 있다 [그림 2]. 지금부터 아주 잠깐만 (사실은 좀 길다) 이런 현상이 고대 DNA 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3. 고대 DNA 연구의 어려움 (2) — 시간 여행을 가로 막는 것


고대 DNA 염기 서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DNA 라이브러리(DNA library) 제작이다. DNA 라이브러리란 어떤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를 클로닝 기법 등으로 DNA 절편(fragment, 切片) 형태로 조각내어 모아 놓은 일종의 거대 유전자 묶음이다 [10]. 유전체 염기 서열 분석 전에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유전체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길기 때문이며 (만약 상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분석할 때마다 생명체 안에서 DNA를 매번 추출하는 일도 매우 번거롭다. 따라서 유전체 정보를 라이브러리로 구축해 놓으면 보관과 합성이 매우 용이(容易)하다. 물론,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분석하고자 하는 DNA 양이 충분하면 라이브러리를 만들지 않고도 곧바로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대 DNA 연구에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화석 또는 사체에서 일차적으로 추출한 DNA 양이 바로 분석하기에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 DNA 염기 서열 분석의 성공과 정확도를 위해 고품질의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림 3. 중합 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또는 PCR, 重合酵素連鎖反應)에 관한 모식도. (A) 증폭하고자 하는 주형(template, 鑄型) DNA를 약 95°C로 가열해 상보적(complementary, 相補的)으로 결합한 이중 가닥 DNA(double-stranded DNA)를 단일 가닥 DNA(single-stranded DNA)로 분리한다. (B) 분리된 단일 가닥 DNA를 55°C로 냉각해 특정 염기 서열과 상보적 결합할 수 있는 프라이머(primer)와 결합시킨다. (C) 표본을 75°C로 가열해 DNA 중합 효소(DNA polymerase, -重合酵素)가 프라이머와 상보적으로 결합한 단일 가닥 DNA에 붙어 상보적인 긴 가닥을 합성할 수 있도록 한다. (A)~(C)까지 일련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원하는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출처: Ocean Explorer].



염기 서열 분석을 위한 DNA 라이브러리를 (특히 고대 DNA) 구축할 때 PCR 기법을 주로 이용한다. 이때 주형(template, 鑄型) DNA로 상보적으로 결합한 두 가닥 형태의 DNA를 주로 사용한다 [그림 3]. 원하는 DNA만 선택적으로 증폭할 수 있는 PCR 반응에서 DNA 중합 효소(DNA polymerase, -重合酵素)는 이론적으로 주형 DNA와 똑같은 염기 서열을 가진 복제 DNA를 합성한다. 따라서 그림 3에 묘사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특정 염기 서열을 가진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주형 DNA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DNA를 증폭할 수 없거나 잘못된 염기 서열을 가진 복제 DNA만 잔뜩 늘어날 수 있다. 특히, 고대 DNA로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어, 화석에서 추출한 고대 DNA의 시토신과 티민 상당수는 외부에 노출되었을 때 산화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므로 이런 DNA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PCR 반응을 할 때 원하는 DNA를 합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9]. 그리고 DNA가 외부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시토신 염기의 탈 아미노화로 (원래 생명체의 염기 서열이 아닌) 잘못된 서열을 가진 DNA가 과도하게 증폭될 수도 있다 [9].


외부 DNA 오염으로 잘못된 DNA 라이브러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9]. 외부로 노출된 DNA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분해된다. 따라서 오래된 화석일수록 그 안에 존재하는 DNA 양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미생물의 DNA 또한 상대적으로도 화석에 많이 잔존한다. (실제로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DNA의 90% 이상은 미생물의 DNA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 발굴자 또는 연구자의 상피세포나 머리카락 등을 통해 유입된 외부 DNA로 화석이 오염된다면 고대 인류의 유전체 연구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지 못하면, 신뢰할만한 고대 DNA 라이브러리를 얻지 못할뿐더러 말 그대로 돈 날리고 시간 날리는 불쌍한 꼴이 되고 만다. 실제로 파보 박사 연구팀이 2006년에 발표한 첫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는 외부 DNA(특히 현생 인류의 DNA)로 오염된 DNA 라이브러리를 사용한 덕분에 시쳇말로 “폭풍 까임”을 당하기도 했다 [6, 11]. 물론 4년 뒤인 2010년에 문제의 소지를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초안”을 발표했지만 [7], 결과적으로 고대 DNA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4. 기술의 혁신 — 장애물을 뛰어 넘기 시작하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2012년도에 발표한 논문(앞으로 이 논문을 “「Meyer, et al.」”이라고 부르겠다)의 중요성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설명한 고대 DNA 연구의 문제점, 특히 라이브러리 제작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3, 4, 5]. 필자는 앞에서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이중 가닥 DNA를 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고대 DNA를 주형으로 사용해 통상적인 방법으로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에 어려움이 있음을 곧바로 설명했다. 「Meyer, et al.」이 발표되기 전 파보 박사 연구팀에서 발표한 고대 인류 유전체 연구는 모두 통상적인 방법으로 제작한 라이브러리를 사용했다 [6, 7, 8] [그림 4, A와 B를 참고할 것]. 그런데 「Meyer, et al.」에서는 이중 가닥 DNA를 단일 가닥 DNA로 전환해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방법을 사용해 고대 인류 유전체를 분석했다 [3] [그림 4, C를 참조할 것].



그림 4. 고대 DNA 라이브러리 제작 과정에 관한 모식도. (A) 454 라이프 사이언스(454 Life Science)에서 고안한 제작법. 고대 DNA 조각(회색으로 표시됨)에서 단일 가닥으로 존재하는 부분을 복구 효소(repair enzyme, 復舊酵素)를 이용해 이중 가닥으로 만들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어댑터 DNA(adaptor DNA, 파란색과 빨간색)를 DNA 양쪽 끝에 연결한다. PCR 반응에서 오직 서로 다른 두 개의 어댑터 DNA를 가진 고대 DNA만 증폭될 수 있다. (B) 일루미나(Illumina) 고안한 제작법. 결손 부분을 보충하는 방식은 454 라이프 사이언스의 것과 같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DNA의 3’ 양 끝에 아데닌을 붙여 오버행(overhang)을 만들고, 여기에 3’ 끝에 티민이 오버행 형태로 연결된 어댑터 DNA가 상보적으로 결합해 그림과 같은 형태가 만들어진다. (C) 「Meyer, et al.」에서 사용한 제작법. 주형 DNA에 열을 가해 이중 가닥을 단일 가닥으로 분리한 다음에 바이오틴(biotin)이 결합한 어댑터 DNA를 단일 가닥 DNA 끝에 연결한다. 이 DNA 복합체를 바이오틴과 강하게 결합하는 스트렙타비딘(Streptavidin) 단백질이 붙어 있는 젤(gel)에 연결해 PCR 반응으로 증폭해 DNA를 증폭한다 [3] [출처: Science].



「Meyer, et al.」에서 사용한 라이브러리 제작법의 최대 강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 발생하는 고대 DNA 염기 서열 변화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중 가닥 DNA를 주형으로 사용하는 기존 라이브러리 제작법은 어느 한 가닥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배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 과정에서 그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단일 가닥 DNA를 주형으로 사용하는 라이브러리 제작은 (돌연변이가 발생한 단일 가닥 DNA도 증폭하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가닥도 분석 가능한 정도의 양으로 증폭해 기존 방법보다 더 많은 풀(pool)을 확보할 수 있었다 [3].


그뿐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수율(yield, 收率)에서도 기존 방법과 비교했을 때 괄목(刮目)할만한 향상이 보였다 [3]. 유전체 염기 서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accuracy, 正確度)다. 정확도가 어느 수준 이상 확보되어야만 신뢰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유전체 A에 해당하는 표본을 단지 한 개 갖고 있을 때보다 두 개 또는 그 이상 갖고 있을 때 라이브러리 제작과 염기 서열 분석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실험적 오차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실제로 2010년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와 같은 해 발표된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에서 사용한 라이브러리 안에는 복제 DNA가 각각 평균 1.3개와 1.9개였지만, 「Meyer, et al.」에서 사용한 단일 가닥 라이브러리는 이전보다 양적으로 6~22배 증가한 복제자를 확보했다 [3, 5]. 따라서 파보 박사 연구팀은 「Meyer, et al.」에서 예상되는 데니소바인 유전체 가운데 99.99%에 해당하는 염기 서열을 높은 정확도와 신뢰도로 분석할 수 있었다 [3].


5. 데니소바인은 누구인가? — 현생 인류도 아닌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존재


샛길로 많이 빠진 것 같다. 글 쓰는 나도 정말 힘들다. 뻘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Meyer, et al.」의 내용을 살피기로 하자. 그런데 중요한 것을 하나 빼먹었다. 바로 데니소바인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데니소바인은 일반인에게 매우 생소하다. 심지어 나 같은 D급 아마추어 고인류학도에게도 데니소바인은 정말 생소하다. 물론 나는 아마추어에 심지어 D급이니 몰라도 죄가 되진 않는다. 하하하.



 

그림 5. (왼쪽)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발굴된 데니소바인의 어금니 뼈 [8] [출처: Fox News]. (오른쪽) 데니소바 동굴의 위치 [출처: BBC News].



데니소바인은 인간 속(genus, 屬)에 속하는 구석기 시대의 멸종한 고대 인류로 러시아 고고학 연구팀이 2008년에 시베리아 남쪽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에 위치한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처음 발굴했다 [12]. 당시 발굴된 잔해는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락 뼛조각과 어금니 두 개 그리고 팔찌 형태의 유물이 전부였는데, 탄소 동위원소 연도 측정 결과 약 3~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분자생물학이 없었다면 이 소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어떤 연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화석 주인의 나이는 (비록 전체 몸 가운데 일부일지라도) 화석 형태로 어림잡아 가늠할 수 있지만, 성별 파악은 순전히 염기 서열을 분석해서 알아낸 것으로 알고 있다. — 하지만 운 좋게도 유골 일부가 발견된 시기는 고대 DNA 연구가 활발한 때였다.


행운이 여기에서 멈출 리가 없다. 이런 것을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지 몰라도, 데니소바 동굴의 자연환경은 DNA가 보존되기 좋은 최적 조건—이곳의 연간 평균 온도는 약 0°C이다—이었다 [12]. 주저할 것도 없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어린 소녀의 손가락 뼛조각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현생 인류는 약 1백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분지(divergence, 分枝)했으며 (참고로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약 46만 6천 년 전에 분지했다), (2)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과는 별개의 종(species, 種)으로 아프리카 바깥 지역으로 처음 퍼져 나간 고대 인류가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지만, (3)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과 고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는 유전적으로 다른 고대 인류에서 진화했다고 추측된다 [13] [그림 6].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계통 분석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1)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 이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참조하라.]



그림 6. (왼쪽)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 54명과 신생대 홍적세에 살았던 고대 현생 인류,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계통 분석 결과. 계통 분석에서 침팬지와 보노보 원숭이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외군(out-group, 外群)으로 사용했다. (오른쪽) 계통 분석에 사용한 미토콘드리아 DNA의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 왼쪽 그림의 계통 분석도에 나와 있는 숫자가 오른쪽 지도에 그대로 표시되어 있다 [13] [출처: Nature].



그리고 같은 해에 발표된 파보 박사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소녀의 손가락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로 데니소바인 유전체를 분석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어떻게 보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와 상충(相衝)하는 결과가 나왔다 [8]. (1) 미토콘드리아 DNA를 사용한 계통 분석 결과와 달리 유전체 비교•분석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보다 더 가까운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는 약 80만 4천 년 전에 분지했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 64만 년 전에 분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 그렇지만 미토콘드리아 분석 결과와 마찬가지로 데니소바 소녀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3)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인, 서아시아인 그리고 중앙아시아인 전체 유전체 가운데 1~4%에 해당하는 유전적 기여(genetic contribution)를 한 것과 달리, 데니소바인은 오세아니아와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멜라네시아인(Melanesian) 계통 현생 인류의 유전체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유전적 기여를 했다. (4)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손가락 뼛조각과 어금니 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했을 때, 화석의 주인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 같은 개체군에 속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며, 둘 사이의 생존 시기는 약 7천5백 년 정도 차이가 난다 [8].


뭔가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가? 잘 안 그려져도 상관없다. 내가 설명할 테니 말이다. 명확한 것부터 짚어 보자. 우선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와 별개의 종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진화적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진화적으로 가깝다고 말하지만, 유전체 분석에서는 오히려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과 진화적으로 가깝다고 속삭인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에 대해 파보 박사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1)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주 오래전(1백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과 고대 현생 인류에서 분지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안에 존재하던 고대 조상의 흔적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2) 이들 고대 인류가 서로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대 인류가 데니소바인 집단에 흘러들어 자신의 유전자를 집단 안에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이 자주 일어나다 보면 데니소바인 집단과 네안데르탈인 집단 사이에 (적어도 유전체에서는) 차이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유전체를 비교했을 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진화적으로 더 가깝게 나타날 수 있다. (3) 우연히도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고대 조상 형태로 회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8].


이와 대조적으로 좀 더 분명해진 것도 있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분석에서도 나타났듯이 데니소바인 유전체 분석에서도 고대 현생 인류가 과거 어느 시점에 (적지만 어느 정도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와 이종 교배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리적 분포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나타나는 고대 인류의 흔적으로 확실히 뒷받침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적 추론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데니소바 동굴에서 손가락 뼛조각의 주인과 비슷한 연대에 살았으리라 추정되는 고대 인류의 발가락뼈도 발견되었는데,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으로 이 발가락뼈 주인은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13]. 자세한 사항은 「Meyer, et al.」처럼 유전체를 분석해야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거의 진실 앞에 한 걸음 더 전진했다.


6. 데니소바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다


기술적 진보는 불확실한 어떤 존재에서 “불확실함”을 덜어낼 좋은 수단을 제공한다. 「Meyer, et al.」의 연구는 데니소바인이란 존재에 도사리고 있는 “불확실함”을 덜어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 발표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는 고대 DNA 연구라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둠을 걷어낼 차례다. 「Meyer, et al.」은 2010년도 연구에서 드러난 자료의 불완전함과 해석의 모호함, 그리고 이 때문에 제기된 몇 가지 반론을 일소(一掃)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림 7.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를 비교한 계통 분석도. 아프리카 계통인 산인(San), 므부티인(Mbuti), 요루바인(Yoruba), 마뎅카인(Mandenka) 그리고 딩카인(Dinka)은 파란색 글자; 유럽 계통인 사르데냐인(Sardinian)과 프랑스인(French)은 주황색 글자; 초록색은 아시아 계통인 한인(Han) 그리고 다이인(Dai)과 남아메리카 계통인 카리티아나인(Karitiana)은 초록색 글자; 멜라네시아 계통인 파푸아인(Papua)은 붉은색 글자로 표기했다. 데니소바인은 맨 아래쪽에 검은색 글자로 표시했다. 노란색 선은 데니소바인에서 파푸아인으로 유전자 확산(gene flow)이 있었음을 뜻하며, 선 위 숫자는 유전자 기여 정도를 나타낸다. 각 인종의 지리적 분포는 그림 8을 참조하라 [3] [출처: Science].



「Meyer, et al.」은 새롭게 분석한 데니소바인 유전체를 각 인종을 대표하는 11명의 현생 인류—아프리카 계통인 산인(San), 므부티인(Mbuti), 만뎅카인(Mandenka), 요루바인(Yoruba), 딩카인(Dinka); 유럽 계통인 사르데냐인(Sardinian)과 프랑스인(French); 아시아 계통인 한인(Han), 다이인(Dai); 멜라네시아 계통인 파푸아인(Papua); 남아메리카 계통인 카리티아나인(Karitiana)—의 유전체와 염기서열을 비교했다 [그림 7, 그림 8]. 이때 인간-침팬지의 DNA 염기 서열 분지 시점을 약 6백5십만 년 전이라고 가정했을 때,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가 분지한 시점은 약 80만 년 전으로 파보 박사 연구팀의 2010년도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편이다 [3, 8]. 그런데 여기서 산출해 낸 결과는 각 개체의 DNA 염기 서열이 처음으로 분지한 시점으로, 각 개체가 속하는 집단이 최초로 분지한 시점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Meyer, et al.」은 네안데르탈인 등과 같은 고대 인류와 그 어떤 유전적 혼합이 없었으리라 생각되는 오늘날 서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체를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비교해 데니소바 개체군과 고대 현생 인류 개체군이 분지한 시점을 조사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 집단과 고대 현생 인류 집단은 대략 17만~70만 년 전 사이에 처음 분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3]. 그런데 오차 범위가 너무 넓다. 무려 50만 년이라니 너무 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 인간의 염기 서열 돌연변이율이 정확히 측정되지 않았고 (사실 측정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지금도 논쟁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냥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Meyer, et al.」은 데니소바인, 침팬지 그리고 현생 인류 사이의 염기 서열 차이도 조사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데니소바인-침팬지의 염기 서열 차이가 현생 인류-침팬지 사이 염기 서열 차이보다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Meyer, et al.」은 이것을 근거로 데니소바 소녀가 살았던 시기를 유전자 연도 측정법(genetic dating, 遺傳子年度測定法)으로 확인한 결과, 소녀가 생존했던 시기는 7만 4천~8만 2천 년 전 사이로 밝혀졌다 [3].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에서는 이 소녀의 생존 시기가 약 3만~5만 년 전 사이였던 것으로 나왔는데 [12], 유전자 연도 측정법은 무려 약 2만 년 정도 앞선 시기에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나는 D급 과학도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대신 이런 식으로는 대충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동위원소 연도 측정법으로 화석 주인이 살았던 시기는 일반적으로 화석이 출토된 지층의 퇴적층(정말 오래된 화석은 변성암) 안에 들어 있는 특정 동위원소의 비율을 계산해 반감기(half-life, 半減期)를 역으로 환산해서 도출(導出)한다. 데니소바인 소녀가 살았던 시기를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때 연도 측정 조사 대상은 같은 지층에서 출토된 유물이었다 [12]. 이와는 달리, 「Meyer, et al.」은 침팬지, 데니소바인, 현생 인류 사이에서 염기 서열 치환(substitution, 置換)이 일어난 횟수를 계산한 다음, 침팬지-현생 인류 사이의 분지 시점이 약 6백50만 년일 때를 기준으로 염기 한 개가 치환될 때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해서, 이것을 바탕으로 데니소바인 소녀의 생존 시기를 결정했다 [3]. 무엇이 더 정확하고 신뢰할만한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Meyer, et al.」은 자신들이 연도 측정할 때 사용한 방법이 (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하면서) 출처가 다양한 오차가 이러한 (연도) 측정에 영향 줄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현생 인류에게 발생했을 것으로 추론되는 치환된 염기의 수가 데니소바인 뼈에서 측정된 것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양까지 다양하다”란 변명(?)으로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갔을 뿐이다 [3, 18].


7. 고대 인류의 흔적이 우리 안에 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두 편에 걸친 2010년도 논문에서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자 안에 고대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7, 8]. 그러나 당시 분석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2010년도 논문에서 사용한 분석 모델에서는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있는 네안데르탈인(또는 데니소바인) 흔적이 고대 현생 인류와의 유전적 혼합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던 다른 유전적 집단의 고대 현생 인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 실제로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대 인류가 아프리카 외부로 퍼져 나가기 전에 크게 두 부류의 유전적 다양성을 나타내는 고대 인류 집단이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두 집단 가운데 하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고대 DNA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채 동아프리카를 떠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먼 훗날 네안데르탈인 또는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했고, 또 다른 집단은 조상은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조상이 과거 갖고 있던 고대 DNA의 특징을 소실한 채 오늘날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기원이 되었다 [5]. 뭔가 그럴싸해 보인다. 이런 식의 시나리오는 왜 유럽인, 중앙아시아인, 서아시아인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왜 멜라네시아 인 등의 유전자 안에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오늘날 아프리카인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개연성 있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eyer, et al.」에서는 그런 시나리오 자체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고대 현생 인류가 적어도 두 번 정도 고대 인류와 유전적 혼합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3, 5].


게다가, 파보 박사 연구팀에서는 오늘날 유럽인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고대 DNA라는 과거 유물을 받은 시점이 약 8만 6천~3만 7천 년 사이임을 산출해 냈다 [5]. 그런데 고대 현생 인류가 자신이 살던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시기가 약 12만 5천~6만 년 전 사이이고,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아프리카 바깥으로 퍼져 나간 시기가 약 1백8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조상이라고 알려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 보통 하이델베르크인이라 불린다)가 유럽으로 진출한 시기가 약 60만 년 전임을 감안(勘案)하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 사이에 발생한 유전자 혼합이 최근에 일어났음을 뜻한다 [19]. 더불어, 앞의 반박 시나리오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특히, 유럽인과 멜라네시아인)가 공통으로 갖는 고대 유전자의 흔적이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진화한 시기가 다르고 오늘날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이 아프리카 중부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서 나타났음을 고려한다면 마찬가지로 그러한 시나리오는 애당초 불가능해 보인다.



그림 8.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거주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존재하는 데니소바인 유전자 흔적 정도. 그림에 알파벳 대문자로 표기된 약자는 인종(race, 人種)을 뜻한다. 각각의 원에서 검은색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데니소바인과 유전적 혼합이 많음을 뜻한다 [14] [출처: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



파보 박사 연구팀의 2010년도 데니소바 유전체 연구에서는 멜라네시아 계통 현생 인류 유전체의 약 4~6%가 데니소바인 유전체에서 유래했다고 나타났는데, 「Meyer, et al.」에서는 그 주장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실제로 「Meyer, et al.」의 분석에 따르면 멜라네시아인 계통인 파푸아인의 유전자 가운데 약 6% 정도가 데니소바인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3] [그림 7, 노란색 선].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대로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 현생 인류 가운데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이주한 사람이 과거 어느 시점에 데니소바인과 유전적 혼합을 거쳤음을 강하게 방증(傍證)하고 있다 [8, 14] [그림 8]. 그리고 과거 일부 연구자가 주장한 한인(Han, 그림 8에서는 HA로 표기)과 다이인(Dai, 그림 8에서는 DA로 표기)의 데니소바인과의 유전적 혼합 가능성에 대해서도, 「Meyer, et al.」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 15]. 어쨌거나 그림 8을 보면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일부 지역에 국한해 나타남을 확실히 알 수 있다.


「Meyer, et al.」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유럽인보다는 동남아시아 계통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 DNA의 특징을 더 많이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3, 5]. 이것이 사실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이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해 그곳에 유입한 고대 현생 인류와 서로 이종교배를 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사실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지금까지 유럽과 서아시아 인근에서만 발굴되었고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네안데르탈인에서 현생 인류도 독립적으로 두 번 유전자 유입이 있었을 가능성과 (2) 유럽에서 살고 있는 고대 현생 인류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유입된 후에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흔적이 희석되어 결과적으로 동남아시아인이 유럽인보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흔적을 더 많이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3].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다.


「Meyer, et al.」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만한 결과가 있다. 파푸아인을 대상으로 한 비교 유전체 연구 결과에서 데니소바인 유전자 흔적이 성염색체(특히, X 염색체)보다는 상염색체(autosomal chromosome, 常染色體)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3]. 이러한 패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1) 데니소바인 남성이 고대 현생 인류 여성과 이종교배를 했거나 (2) 데니소바인의 X 염색체와 현생인류의 X 염색체 사이 조합이 유전적으로 부적합해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3, 5]. 특히 (2) 번 가설은 XX라는 성염색체 조합을 갖는 여성 잡종이 XY라는 성염색체 조합을 갖는 남성 잡종보다는 결과적으로 생존에 부적합했을 것이란 추측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쨌든, 성염색체보다 상염색체에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 사이의 조합도 전반적으로는 (어떤 환경적/사회적 조건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어도) 생존에 불리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8.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


품질(?)이 좋으면 이전에 할 수 없던 것도 간혹가다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Meyer, et al.」에서 분석한 데니소바인 유전체는 예상되는 유전체 크기의 99.99%에 해당하는 양이다 [3].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 말한다면 나도 할 말 없다. 내가 한 연구도 아니니. 이처럼 고품질의 DNA 정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데니소바인의 여러 측면을 (비록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의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 遺傳的多樣性)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런 연구를 하려면 다양한 개체를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수행해야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정체를 드러낸 데니소바인은 겨우 둘(손가락 뼛조각의 주인과 어금니 뼈의 주인)일뿐더러 유전체 분석에 사용한 표본은 오직 손가락 뼛조각뿐이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명의 데니소바인에 관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는 일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염색체는 항상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쌍으로 묶을 수 있는 염색체를 상동 염색체(homologous chromosome, 相同染色體)라 부른다. 상동 염색체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한테서 받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어머니한테서 받는 게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런 예외를 벗어나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농담이다). 따라서 상동 염색체 사이의 염기 서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면, 비록 하나의 개체에서 뽑은 유전체라 하더라도 유전적 다양성이 어떻게 되는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의 이형 접합체 빈도(heterozygocity, 異型接合體頻度)는 약 0.022%로 나타났다 [3]. 이것을 오늘날 현생 인류의 이형 접합체 빈도와 비교해보자. 아프리카인은 약 20%, 유럽인/아시아인은 약 26~33%, 남아메리카의 카리티아나인은 약 36%다. 결과로만 놓고 본다면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오늘날 현생 인류보다도 확연히 낮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데니소바인 소녀가 단순히 근친 교배(近親交配)로 태어난 개체이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낮게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들은 (이 소녀가 속한) 데니소바인 집단의 크기가 이 시기에 상당히 작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으리라 추정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생 인류는 이 시기, 즉 12만 5천~25만 년 사이에 집단 크기가 두 배로 커졌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인하기 위해 끌어들인 데니소바인은 단 한 명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데니소바인 화석을 발굴해 같은 방식으로 연구한다면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9.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특징


완전한 데니소바인 화석이 없으므로(있어도 손가락 뼛조각 일부와 어금니 뼈 두 개가 전부다) [12], 현실적으로 데니소바인의 외형적 특징을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인간이 할 수 없는 게 아직 많다고는 하더라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데니소바인에 관한 그 어떤 해부학적 근거(예를 들어, 어느 정도 완전한 모습을 갖춘 두개골 화석 등)가 거의 없더라 하더라도, 유전학적 정보 분석을 통해 적어도 데니소바인의 모습 정도는, 백 퍼센트 확신은 못해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연구도 있다 [16]. 2012년 「유전체 자료를 통해 인간 피부색 표현형을 예측하기: 네안데르탈인에서 제임스 왓슨까지(Predicting Homo Pigmentation Phenotype Through Genomic Data: From Neanderthal to James Watson)」란 제목으로 『미국 인간 생물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인간의 피부색을 포함한 표현형(phenotype, 表現型) 다수가 몇 가지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해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에 착안해, 인종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표현형(특히 피부색과 관련된 것)과 유전체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연구팀은 주근깨 존재 여부, 피부 색, 머리카락 색, 그리고 눈동자 색을 각각 91%, 64%, 44% 그리고 36%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균 59% 정도에 해당하는 예측률이다) [16].



 

그림 9. (왼쪽) 데니소바인의 모습을 복원한 결과. 「Meyer, et al.」 결과가 발표되기 전 누군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설명한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가? (오른쪽) 오늘날 멜라네시아인의 모습. 왼쪽 사진의 데니소바인과 비슷해 보이는가? [출처: Ancient & Lost Civilizations]



그렇다면 우리의 데니소바인 소녀는 어떤 모습일까? 「Meyer, et al.」은 앞에서 소개한 색소 분포 예측에 관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데니소바인의 모습을 추측해봤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데니소바인 소녀는 피부가 검은 편이고, 은은한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렸으며, 갈색 눈으로 사물을 응시(凝視)했지만, 피부에 주근깨는 없었다 [3] [그림 9]. 물론 「Meyer, et al.」은 (아무리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를 뒀다 하더라도)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바로 데니소바인 얼굴에 주근깨는 없다는 것 말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유전체를 기반으로 한 색소 분포 예측 방법은 무려 91%라는 놀라운 확률로 주근깨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어쨌든 이것도 좀 더 완전한 데니소바인 화석이 발굴되면 확실히 밝혀질 일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데니소바인의 핵형(karyotype, 核型)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적으로 매우 가깝다고는 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침팬지는 24쌍의 염색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진화사적 이유는 바로 침팬지와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이 가지고 있던 말단 동원체형 염색체(acrocentric chromosome, 末端動原體型 染色體) 두 개가 하나로 연결되어 중부 동원체형 염색체(metacentric chromosome, 末端動原體型)인 (인간으로 치면) 2번 염색체(chromosome 2)가 되었기 때문이다 [17]. 핵형이 완전히 다르면 사실상 이종 교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고대 현생 인류 사이에 잡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핵형이 동일하지 않았겠느냐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그런데 실제로 데니소바인의 핵형은 오늘날 현생 인류와 같은 23쌍이다 [3].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데니소바인 유전체 결과를 근거로 했을 때 마찬가지로 23쌍의 염색체를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좀 더 앞으로 나가보자. 우리 인간 속의 핵형은 언제부터 23쌍이 되었을까? 침팬지와 분지된 후일까? 아니면 인간 속이 처음 출현했을 때일까? 아니면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던 시점일까? 답은 여러분이 찾길 바란다.


10. 현생 인류와 고대 인류의 결정적 차이


좋은 자료가 있으면 좋다. 이런 당연한 말을 나는 계속 반복하고 있다. 거의 완전한 형태의 데니소바인 유전체는 오늘날 현생 인류와 고대 인류 사이의 차이점, 특히 유전적 차이로 나타날 수 있는 외형적 차이와 생리학적 차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Meyer, et al.」에서는 오늘날 현생 인류를 과거 조상보다 더욱 파생된 형태로 놓고 데니소바인을 과거 공통 조상 형태와 비슷한 형태로 놓고 둘 사이에 염기 서열 치환(substitution, 置換)이 어느 정도 일어났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인간 종 사이의 염기 서열 치환은 전부 118,812개 발생했으며, 9,444개의 유전자 삽입(gene insertion, 遺傳子揷入)과 유전자 삭제(gene deletion, 遺傳子削除)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3]. 일반적으로 한 두 개 정도의 미약한 염기 서열 변화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정말로 치명적인 사례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변화가 계속 누적된다고 하자. 초기 한두 개 정도의 염기 서열 변화는 당장에 아무 영향도 없다 할지라도, 그런 변화가 열 개, 백 개, 천 개, 그리고 수십만 개 누적된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유전자 일부분이 완전히 삭제되거나 새로 유입된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수천수만 년 동안 누적된 변화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 인자(因子)인 단백질의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심지어 이들이 생명체 안에서 발현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데니소바인 등의 고대 인류에서 현대 인류로 인간이 진화를 거듭했을 때, 우리 유전자 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파보 박사 연구팀은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 뇌의 기능과 신경계 발달에 관련된 여덟 가지 유전자인 NOVA1, SLITRK1, KATNA1, LUZP1, ARHGAP32, ADSL, HTR2B, CBTNAP2의 염기 서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3]. 그 가운데 SLITRK1KATNA1은 신경 세포의 축삭돌기(axon, 軸索突起)와 수상돌기(dendrite, 樹狀突起) 성장에 관여하는 유전자며, ARHGAP32HTR2B는 시냅스 전달(synaptic transmission, -傳達)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자폐증(autism, 自閉症)과 관련된 유전자인 ADSLCBTNAP2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점인데, 특히 CNTNAP2 유전자는 언어 장애와 관련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유전자로 언어와 대화 기능의 발달 및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可塑性)의 중요한 발달 조절 인자로 알려진 FOXP2 유전자의 조절을 받는다고 연구 및 보고된 적이 있다 [3].


더불어 「Meyer, et al.」에서는 오늘날 인간의 질병과 명확히 연관된 34개의 유전자에서도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비교했을 때 어떤 유의미한 유전적 변화가 있었음을 관찰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관심을 둔 34개 유전자 가운데 HPS5, GGCX, ERCC5, ZMPSTE24라는 네 가지 유전자는 피부 관련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로 알려졌으며, RP1L1, GGCX, FRMD7, ABCA4, VCAN, CRYBB3란 여섯 가지 유전자는 눈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3].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데니소바인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전적 차이가 생리학적으로 어떤 차이를 나타내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정도는 유추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유전자의 변화는 오늘날 현생 인류에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생리학적 특성을 부여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변화된 특성은 자연 선택으로 더 공고히 되는 쪽으로 진화가 확고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닐까?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Meyer, et al.」에서는 EVC2라는 유전자의 변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뒀다. 왜냐하면, EVC2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엘리스-반 크레벨트 증후군(Ellis-van Creveld syndrome)이라는 유전 질환이 발병하기 때문이다. 이 병은 발달 과정에서 치아가 우상치(taurodontism)라고 하는 황소의 것과 같은 형태를 띠면서 구강 내부가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치근(dental root, 歯根)이 하나로 합쳐지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3, 20]. 물론 이 유전자에 이상이 발생하면 구강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발달 과정에 이상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파보 박사 연구팀이 이 유전자의 염기 서열 차이에 관심을 둔 이유는 엘리스-반 크레펠트 증후군에 걸린 환자의 구강 형태가 네안데르탈인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기 나타내기 때문이다 [3]. (내가 보기엔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데, 잘 모르겠다.) 물론 데니소바인의 어금니는 전체적으로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지만, 치근이 두 개이므로 앞의 유전 질환에서 나타나는 병리학적 증상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5, 왼쪽]. 하지만 엘리스-반 크레벨트 증후군의 증상 일부와 네안데르탈인 및 데니소바인의 어금니 뼈 구조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고대 인류가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했을 때, EVC2 유전자를 포함한 다양한 유전자의 변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날 인간의 치아 구조와 같은 형태를 띠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 사이의 유전적 차이에 대해 살펴봤다. 이러한 사실은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 부류가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하면서 형태학적 기능적 변화를 줄 수 있는 많은 유전적 변이를 겪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언어 기능 및 지적 능력과 관련도 부분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이 고대 현생 인류보다 지적인 면에서 떨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은 오늘날 인류의 가까운 조상보다 더 뛰어난 점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11. 맺음말 — 아프리카 기원설 vs. 다지역 기원설


지금까지 매우 길고 지루한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다. 여기까지 온 여러분께 박수를 보낸다. 재미없는 내용을 더럽게 재미없게 써서 정말 죄송하다 ㅠㅠ. 현생 인류의 기원에 관한 두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 가운데 대세는 솔직히 말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관한 글은 내 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1)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 이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참조하라].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에서 “단일”이란 말을 빼야 할 시점이 되었단 사실이다. 최근 보고되고 있는 고대 인류 유전체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비교 유전체학 연구는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기원이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출현한 고대 호모 사피엔스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강조하는데, 바로 이들 고대 현생 인류가 이미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던 다른 인간 종과 유전적 혼합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후로도 아프리카 출신의 고대 현생 인류를 중심으로 한 오늘날 인간의 진화의 흐름이라는 큰 줄기 자체가 변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다른 인간 종의 유전자가 이러한 진화 과정에 유입했는지는 차후 연구 결과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바야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고대 인류의 흔적이며, 그들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Department of Evolutionary Genetics.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링크] : 독일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 진화 인류학 실험실 홈페이지다.
[2] Neandertal Genome Project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사업을 소개한 웹사이트다. EMBL 사이트와 연계해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염기 서열을 공공에 공개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써도 좋다.
[3] Meyer M, et al. 2012. 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 Science. Published online 30 August 2012 [DOI:10.1126/science.1224344] : 현재 이 논문은 공식적으로 출판된 상태는 아니며, 현재 Sciencexpres라는 곳에 초안 형태로 올라와 있다. 링크와 논문 참조에 관련된 정보는 해당 논문이 정식으로 출판될 때 수정하도록 하겠다. [링크]
[4] Ancient genome reveals its secrets. Biology News Net. August 30, 2012. [링크]
[5] Gibbons A. 2012. A Crystal-Clear View of an Extinct Girl's Genome. Science. 337: 1028-1029. [링크]
[6] Green RE, et al. 2006. Analysis of one million base pairs of Neanderthal DNA. Nature. 444: 330-336.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염기를 분석한 첫 논문이지만, 본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폭품 까임"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과학이란 원래 이런 식으로 자주 까이면서 발전한다. 까이다보면 언젠가 문제점을 해결하기 마련이니까.
[7] Green RE, et al. 2010.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Science. 328: 710-722. [링크] : "폭풍 까임"을 당하고 난 다음 발표안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초안이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다. 현재 네안데르탈인 유전체는 단일 가닥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해 새롭게 분석할 계획이란 소식이 있다.
[8] Reich D, et al. 2010. Genetic history of an archaic hominin group from Denisova Cave in Siberia. Nature. 468: 1053-1060. [링크] : 처음 발표된 데니소바인 유전체 관련 연구다.
[9] Hofreiter M, et al. 2001. Ancient DNA. Nat Rev Genet. 2: 353-359. [링크] : 고대 DNA 연구 관련 소개 글이다. 추가적으로 이것을 읽으면 더 좋다. Pääbo S, et al. 2004. Genetic analyses from ancient DNA. Annu Rev Genet. 38: 645-679. [링크]
[10] Library in biology. Wikipedia. [링크]
[11] Hofreiter M. Drafting human ancestry: what does the Neanderthal genome tell us about hominid evolution? Commentary on Green et al. (2010). Hum Biol. 83: 1-11.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전반을 알고 싶다면 이 논문을 추천한다.
[12] Denisova hominin. Wikipedia. [링크]
[13] Krause J, et al. 2010. The complete mitochondrial DNA genome of an unknown hominin from southern Siberia. Nature. 464: 894-897. [링크] :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연구한 논문이다. 여러 모로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와 상충되는 점이 있다.
[14] Reich D, et al. 2011. Denisova admixture and the first modern human dispersals into Southeast Asia and Oceania. Am J Hum Genet. 89: 516-528. [링크]
[15] Skoglund P, and Jakobsson M. 2011. Archaic human ancestry in Eash Asia. Proc Natl Acad Sci USA. 108: 18301-18306. [링크]
[16] Cerqueria CC, et al. 2012. Predicting homo pigmentation phenotype through genomic data: From neanderthal to James Watson. Am J Hum Biol. 24: 705-709. [링크] : 본문과 상관없이 이 글 자체는 꽤 흥미롭다. 유전자만 가지고도 생면부지(生面不知)인 사람을 그 외모까지 알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7] IJdo JW, et al. 1991. Origin of human chromosome 2: an ancestral telomere-telomere fusion. Proc Natl Acad Sci USA. 88: 9051-9055. [링크]
[18] 「Meyer, et al.」에 기술된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 “However, we caution that multiple sources of error may affect this estimate. For example, the numbers of substitutions inferred to have occurred to the present-day human sequences vary by up to one-fifth of the reduction estimated for the Denisovan bone.”

[19] Early human migrations. Wikipedia. [링크]
[20] Ellis–van Creveld syndrome. Wikipedia. [링크] : 원래 본문에 이 병의 증상에 관한 그림을 넣으려 했지만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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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Nedanderthal)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만~3만 년 전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에 살았던 멸종된 호미니드(hominid)다 [1]. 고인류학 기록으로 추정했을 때 약 20만 년 전에 현생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했고 약 4만 3천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크로마뇽인(Cro-Magnon)인이라 불리는 고대인류 화석이 유럽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을 참작한다면, 지구 역사 어느 시점에 아프리카 바깥으로 이주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후예, 특히 네안데르탈인이 어떤 식으로든 현생인류와 접촉했을 것이란 사실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2, 3].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혹시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direct ancestor, 直系祖上)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진화적 관계, 특히 네안데르탈인이 오늘날 인류의 직계조상인지는 인류학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흥미로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이에 대한 많은 (격렬한) 논의가 오고 갔다. 그런 가운데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 형태학적 비교(morphological comparison, 形態學的比較) 연구를 근거로 몇 가지 가설이 제시되었다 [4]. (1) 네안데르탈인은 현대 유럽인의 직계조상이다. (2)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대 현생인류와의 유전적 혼합, 즉 교미(交尾)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오늘날 인류에게 전해줬을 것이다. (3)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완전히 다른 종으로 오늘날 인류에 그 어떤 유전적인 기여(genetic contribution)도 하지 않았다.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할까? 이 물음에 답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아주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모든 사람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명확히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몇십 년 전 일도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몇 만 년 전 지구에서 일어난 일은 오죽할까? 그러나 제한적이며 단편적인 증거라 할지라도 차곡차곡 모아 객관적으로 분석한 다음 공정하고 신뢰할만한 수준의 분석 방법으로 당시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추리해 낼 수 있다면,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까지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과학적 분석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사업(Neanderthal genome project)에 대한 최근 동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유전자를 직접 들여다보는 것만큼 생명 진화의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물론 화석 및 유적 발굴 등을 통한 문화사적 또는 비교해부학적 연구도 무시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인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이러한 연구 성과 덕분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대인류 유전자 분석을 통한 과거로의 여행은—만일 우리가 그것을 확보했다고 가정할 때—전통적인 연구법으로는 쉽사리 결론 내리기 어려운 여러 가지 논쟁을 해결하는데 상당한 일조를 할 수 있다.


필자의 글은 영국 요크 대학(University of York) 마이클 호프라이터(Michael Hofreiter) 박사가 2011년도 『인간 생물학(Human Biology)』에 게재한 「인간 혈통의 초안 작성하기: 네안데르탈인 유전체는 우리에게 인류 진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2010년도 그린의 논문에 대한 논평(Drafting Human Ancestry: What Does the Neanderthal Genome Tell Us about Hominid Evolution? Commentary on Green et al. 2010)」이라는 소개 논문(review article)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지만 [5], 필요하다 판단되는 경우에는 호프라이터의 논문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도 본문 안에서나 또는 참조 형식을 빌어 될 수 있으면 자세히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이 글을 쓸 예정이다. 언제 이 여정이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에 관한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여러분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가설, 즉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유전적 흐름에 대한 가설 중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가장 그럴싸한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1. 네안데르탈인 vs. 현생인류 — 아종인가? 별종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진화적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세 가지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분류학적 위치를 어디다 두느냐는 문제와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 즉, 이 논쟁은 네안데르탈인을 현생인류의 별종(distinct species, 別種)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종(subspecies, 亞種)인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rthalensis)로 봐야 한다는 주장 사이의 학문적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전자의 시각이 전체적으로 우세한 편이라 할 수 있다 [1]. 예를 하나 들어보자.


1999년 포르투갈(Portugal) 아브리고 도 라가 벨로(Abrigo do Lagar Velho)에서 4살 된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연도 측정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2만 4천 5백 년 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인류 아이의 화석이었다. 두아르떼(Cidália Duarte)의 발굴팀은 두개골(cranium, 頭蓋骨), 하악골(mandible, 下顎骨), 치열(dentition, 齒列) 등과 같은 아이의 유골을 비교해부학적 분석법을 동원해 자세히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포르투갈 라가 벨로에서 발굴한 2만 4천5백 년 전에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살 된 아이는 현대 유럽인과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아이는 고대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유전적 혼합(admixture, 混合)으로 태어난 혼혈이다” [6]. 이 주장은 당시 일반적인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시각, 즉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다른 종이다” 또는 “과거 어느 시점에 현생인류는 유전적 혼합 없이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는 보편적인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같은 연도 동일 학술지에 미국 자연사 박물관(the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관장(curator, 館長)인 고인류학자 이언 태터설(Ian Tattersall)이 (어떻게 보면 매우 냉소적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논평(Commentary, 論評)을 기고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7]. 두아르떼의 분석은 “상당히 용감하고 상상으로 가득한 해석”이지만, 고인류학자 다수가 보기에 입증 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보인다 [the analysis by Duarte et al. of the Lagar Velho child’s skeleton is a brave and imaginative interpretation, of which it is unlikely that a majority of paleoanthropologists will consider proven]. 좋게 말해서 이런 식이지 태터설의 논평 전반은 두아르떼의 분석과 해석에 상당히 부정적이며 시니컬한 논조로 일관했다. 실제로 여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하나 있다. 바로 고대인류 아이의 연령이 4세라는 사실인데, 성체가 아닌 성장 과정 중에 있는 아이를 현생인류 일반의 해부학적 특징과 비교해 어떤 결론—아이의 유골은 네안데르탈인과 고대 현생인류 사이에 잡종(hybrid, 雜種)이 있었음을 시사한다—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제법 무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것 이외에도 네안데르탈인/현생인류의 잡종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비교해부학적 견해 몇몇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재조사 결과 전형적인 네안데르탈인 또는 현생인류의 유골을 잘못 분석해 내린 결론이거나 또는 연도 측정이 잘못 이루어져 일어난 해프닝임이 훗날 밝혀졌다 [7]. 어쨌든,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다른 종이며 잡종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대부분 우세한 가운데 이를 더욱 뒷받침하는 유전학적 증거가 1980년대 이후 현대인류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계통분석 연구에서 다수 발표되었다. 사실 이 연구는 단순히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진화적 유연관계 또는 직계조상 여부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대인류의 기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른바, 아프리카 기원설(African origin hypothesis 또는 Out-of-Africa hypothesis)과 다지역 기원설(Multiregional origin hypothesis)로 대변되는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를 판단하는데 그 의도가 할 수 있다고 하겠다 [8]. 하지만 현대인류를 대상으로 한 비교유전학 연구는 결과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다른 별개의 종이며 현생인류에게 그 어떤 유전적 기여(genetic contribution)도 하지 않은 채 멸종했다”라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2. 현생인류 기원에 대한 비교유전학적 고찰


서두(序頭)에서 언급했듯이 이 글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진화적 관계에 대해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삼천포로 빠지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 유전체를 논의하기 전에 현생인류 기원을 살펴보는 것도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관계에 대한 어떤 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데 나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 전에 몇 가지 사전 설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다루는 내용 상당 부분은 유전학적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내용을 다루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어차피 이쪽은 내 전문 분야도 아니니 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잠시 설명할 예정인 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 학습은 아주 최소한의 개념만 주로 다뤘다. 혹시라도 더 많이 알고 싶은 독자는 참고 문헌에 딸린 내용을 직접 읽어보길 바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면 건전한(?) 지식이 필요한 법이니 명심하도록 하자.


1) 유전학이 쉬웠어요 —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유전학적 배경 지식


소제목이 이상한가? 모 광고에서 회자되는 카피라이트라 한 번 써봤다. 더불어 못하는 게 없으신 전능하신 지도자 각하도 불현듯 생각나서 “유전학이 쉬웠어요”란 표현을 한 번 써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유전학을 해봐서 아는데”란 표현이 적절해 보이기도 하지만, 존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이래 봬도 난 그분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왜 있잖은가?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고. 농담이다. 어쨌든, 유전학이 쉬울 리는 절대로 없다. 그래도 쉽다고 자기최면을 걸면 쉽지 않을까? 이것도 농담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농담이 너무 길어지는데, 아무래도 이 글은 인류진화를 유전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지라 글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진정 “유전학이 쉬웠어요”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그냥 넘어가도 좋다.


멸종한 생명체를 포함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대부분은 DNA(deoxyribonucleic acid)를 유전물질(genetic material, 遺傳物質), 즉 유전정보 매개체(媒介體)로 사용한다 [9]. 동물의 DNA는 세포핵(nucleus, 核) 안에 존재하는 핵 DNA(nuclear DNA)와 세포의 직접적 에너지원인 ATP(adenosine triphosphate) 대부분을 합성하는 세포 소기관(organelle, 細胞小器官)인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안에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 또는 줄여서 mtDNA라고 한다)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0]. 핵 DNA는 또한 상염색체(autosomal chromosome, 常染色體)와 성염색체(sex chromosome, 性染色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상염색체는 성별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염색체를 통상 일컬으며 인간은 모두 22쌍(전체 44개)을 가지고 있다. 성염색체는 개체(individual, 個體)의 성별을 결정하는 인자(factor, 因子)로 인간은 X와 Y 두 가지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XY와 XX라는 성염색체 조합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별이 각각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들 DNA는 어떤 식으로 부모세대에서 자손세대로 전달될까?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유전(maternal inheritance, 母系遺傳)으로 성별과 관계없이 자손에게 전달된다 [11, 12]. 즉, 모든 자손은 부계 혈통이 아니라 모계 혈통을 통해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어머니,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고조할머니의 어머니 등등 몇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미토콘드리아 DNA의 조상은 오직 한 단일 계통만 존재한다. 이것은 사람이든 침팬지든 개든 식물이든 동일한 유전 현상으로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을 가진 생명체라면 예외 없이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이와는 달리 Y 염색체는 부계유전(paternal inheritance, 父系遺傳)으로 자손세대에 전달된다. 자손세대라고 해서 모든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아버지의 Y 염색체는 오직 아들에게만 전달된다 [13]. 따라서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등등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Y 염색체의 조상은 미토콘드리아와 마찬가지로 단일 계통에 도달하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이것은 남자만 적용된다는 사실 정도다. 덧붙여 자손의 성별은 아버지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것은 정자와 난자 등의 생식세포(reproductive cell, 生殖細胞)를 형성하는 감수분열(meiosis, 減數分裂) 과정 전반을 살펴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5]. 예를 들어, 체세포분열(mitosis, 體細胞分裂)과 달리 감수분열에서는 전체 염색체 수가 반으로 나뉘어 정자와 난자 같은 딸세포(daughter cell)에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성염색체도 감수분열 과정에서 반으로 나뉘는데, XX 성염색체 쌍을 가진 여성은 오직 X 염색체만을 가진 난자를 만드는 반면, XY 성염색체 쌍을 가진 남성은 X 또는 Y 염색체를 가진 두 가지 종류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 그리고 남성의 성염색체 가운데 어머니로부터 유전 받는 X 염색체를 제외하면, 여성의 두 X 염색체와 상염색체 전부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같은 확률로 자손에게 전달된다.


2) 현생인류 기원에 대한 두 가설 — 다지역 기원설과 아프리카 기원설


분자생물학 실험 기법이 발전하기 전에 진화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기원을 파악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는 방법론은 고고학적 증거와 비교해부학적 분석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의미 있는 가설과 객관적으로 유효한 해석이 많이 제안되었지만, 그만큼 가타부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격렬한 논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분자생물학·유전학 지식의 혁신적인 축적은 오랫동안 끌어왔던 논쟁을 종식하는데 상당한 일조를 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과학 기술적 혁신은 인류 기원에 대한 논쟁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물론 과거의 논쟁이 고대 그리스 희극처럼 대승적으로 마무리되면 더 큰 쓰나미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생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가설로 다지역 기원설아프리카 기원설이라 불리는 두 가지 주장이 존재한다 [8]. 다지역 기원설의 핵심은 꽤 오래전부터 논의됐지만, 용어 자체는 1988년 인류학자 밀포드 월포프(Milford Wolpoff)가 아프리카 기원설을 반박하는 「현대인류의 기원(Modern Human Origins)」이란 제목의 논문을 『사이언스(Science)』에 기고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6, 17]. 이 가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최초의 인간종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약 2백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전 세계로 퍼졌으며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대 호모 사피엔스가 현대인류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8]. 따라서 이 가설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호모 에렉투스 집단이 각 지역에 정착에 독자적인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고대 호모 사피엔스 종이 나중에 독자적으로 진화한 호모 에렉투스 종과 유전적 혼합을 거쳤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지역에 따라 인종적 다양성이 달리 나타났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네안데르탈인의 출현은 다지역 진화설에서 주장하는 인류 진화의 한 경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이 가설을 확장한다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대인류가 오늘날 인류의 직계조상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정확히 말하자면 월포프가 다지역 기원설을 『사이언스』에 발표하기 바로 얼마 전에 크리스 스트린져(Chris Stringer)와 피터 앤드류스(Peter Andrews)가 같은 학술지에 「현대인류 기원에 대한 유전학적 그리고 화석 증거(Genetic and Fossil Evidence for the Origin of Modern Humans)」이란 제목으로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19]. 이 가설에 따르면 오늘날 현생인류, 즉 고대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직접적 조상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계속 진화해오다가, 7만~5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 이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결국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던 다른 종류의 호미니드(예를 들면 네안데르탈인이나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해온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적 후손 등)를 (어떤 식으로든) 대체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일단 두 가설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한 최초의 인간 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다지역 기원설이 오늘날 현대인류가 있게 한 인류의 아프리카 대륙 외부로의 진출이 단 한 번—최초 인간 종인 호모 에렉투스의 엑소더스(Exodus)—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아프리카 기원설은 첫 번째 엑소더스가 아니라 가장 최근의 엑소더스—즉 20만 년 전 아프리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종의 아프리카 외부로의 진출—가 오늘날의 현대인류를 존재하게 한 궁극적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가설이 자연사적 진실에 가장 가까울까? 현재까지 축적된 비교해부학적·유전학적 연구 결과 대부분은 애석하게도(?)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고 있으며, 특히 현생인류를 대상으로 한 비교유전학 연구는 오늘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인간 대부분이 단일 조상 개체군에서 비롯되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초기 비교유전학 연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3) 미토콘드리아 이브설(Mitochondrial Eve hypothesis) ― 고인류학과 유전학과의 첫 만남


일반적으로 인류유전학(human genetics, 人類遺傳學)에서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는 현생인류의 모계 쪽 가장 최근 공통조상(most recent common ancestor 또는 MRCA)을 가리킨다 [20]. 즉, 모든 현대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한 명의 여성에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을 가리키는 상징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명의 여성”이라는 표현을 오해하면 안 된다. 이브(그리고 뒤에서 다룰 아담이라는 용어)는 어느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게 아닌 대상이 바뀔 수 있는 상징적 표현으로 현대인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개체군(population, 個體群)에 속한 여성(들)을 뜻함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한 명이 아니라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가진 개체군(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쪽 직계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아니, 미래에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물리학자들이여 어떻게 좀 안 되겠니? 따라서 우리는 ‘그’의 존재를 오직 엄밀한 과학적 추론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으며, 이때 사용 가능한 가장 유용한 수단은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다.


일반적으로 어떤 종의 진화적인 계통사(genealogical history, 系統史) 또는 계통수(genealogical tree, 系統樹)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11, 21, 22]. 첫째, 미토콘드리아 DNA는 핵 DNA보다 돌연변이가 몇 배는 더 빨리 축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유전자 풀(gene pool)의 다양성(diversity, 多樣性)을 파악하는데 적절하다 [23]. 두 번째,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유전으로 자손에게 전달되며 핵 DNA에서 흔히 일어나는 재조합(recombination, 再組合)이 관찰되지 않기 때문에 개체군 및 종의 종류와 상관없이 서로 다른 개체(군)를 비교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24]. 셋째, 우리 몸 안에는 대략 1016개에 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존재하며,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핵 DNA처럼 세포 또는 조직(tissue, 組織)의 분화(differentiation, 分化) 과정에 염기서열이 뒤바뀌거나 소실될 일이 없으므로 한 개체의 모든 미토콘드리아 DNA는 원칙적으로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는 매우 낮은 유효집단 크기(effective population size)를 보이며 이배체(diploid, 二倍體)로 기능하는 핵 DNA와는 달리 마치 반수체(haploid, 半數體)인 것처럼 행동한다 [25]. 요약하자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세대를 거듭하더라도 자체에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제외하고는 다른 유전자와 섞일 가능성이 없으며 오직 모계유전을 통해서만 자손세대에 전달되기 때문에, 어떤 종 또는 개체군 사이의 진화적 유연관계 (genetic relationship, 類緣關係)—특히 모계 혈통을 중심으로 한 관계—를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25].


인류학에 유전학을 접목한 최초의 유의미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설”은 1987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연구를 통해 하나의 정론으로 자리 잡았으며, 더불어 스트린져와 앤드류스가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21, 22].


먼저, 「미토콘드리아 DNA와 인류의 진화(Mitochondrial DNA and human evolution)」란 제목으로 레베카 칸(Rebecca Cann), 마크 스톤킹(Mark Stoneking), 앨런 윌슨(Allan Wilson)이 1987년 『네이쳐(Nature)』에 발표한 논문은 다섯 지역의 지리적 개체군(geographic population)을 대표하는 145개의 태반(placenta, 胎盤) 표본과 두 가지 세포주(cell line, 細胞株)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 지리적 분포에 따른 인간의 진화적 유연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21, 26]. 이를 위해 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 누적(accumulation of mutation) 정도를 측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시퀀싱 분석법(sequencing analysis)을 통한 염기서열의 직접 조사가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특정 염기서열의 DNA를 인식해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 制限酵素) 단백질을 이용한 지도작성법(restriction mapping)을 도입해 각 표본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 정도를 동정(同定)했고, 그 결과를 분석해 개체 사이의 돌연변이 정도와 이에 따른 진화적 유연관계를 간접적으로 분석·비교했다 [27]. 결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우므로 생략하도록 하자. 더불어 나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쉬운 말로 풀어쓰기엔 내 능력이 너무 많이 모자란다. 미안하다. 어쨌든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여성, 즉 현생인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개체군에 속한 어떤 여성(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주로 다지역 기원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제기된 논란—이 있었다 [22]. (1) 제한효소를 이용한 간접적인 분석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전체 염기서열 변화 또는 돌연변이 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기술 수준에서 시퀀싱 분석법으로 DNA 염기서열을 직접 분석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가능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비용 문제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2)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면서도 아프리카인 미토콘드리아 DNA라며 사용한 표본 대부분은 아프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실제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얻은 것이며 표본 크기[20개]도 너무 작다 [26]. (3)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공통조상을 인간 미토콘드리아 DNA 계보에 위치시킬 때 사용한 중앙점 방식(midpoint method, 中央點方式)이 분석 방식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으므로 평가를 할 수 없지만, “inferior method”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아마도 이 분석법이 별로 적절치 않은 모양이었다. (4)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기원이 아프리카임을 추론할 때 통계적 타당성(statistical justification, 統計的妥當性)을 검증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MRCA의 생존 시기를 단순히 약 20만 년 전으로만 기술했지 오차범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5) 인간 미토콘드리아 DNA의 진화율(evolution rate, 進化率)을 산출할 때 적절한 보정(calibration, 補正)을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진화율 등과 같은 적절한 레퍼런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사이언스』에 「아프리카 개체군과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진화(African Populations and the Evolution of Human Mitochondrial DNA)」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같은 그룹의 논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을 보완해 좀 더 엄밀하고 정확한 결론을 내놓았다 [22]. 우선 1991년도 연구는 제한효소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분석한 1987년 연구와는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중 돌연변이율(mutation rate, 突然變異率)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초가변영역(hypervariable region, 超可變領域) 두 군데의 돌연변이 여부를 시퀀싱 분석법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선행 연구가 오직 20개의 (그것도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서 얻은) 아프리카 표본만을 다룬 것과는 달리, 전체 표본 189개 중 121개가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것이었다 [28]. 또한,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DNA 계보도를 작성할 때 중앙점 방식이 아닌 외군 비교법(outgroup comparison method, 外群比較法)을 사용했으며 (저자들은 이 방식을 “superior method”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서 침팬지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더불어 미토콘드리아 DNA의 지리적 기원(geographical origin)을 특정(特定)할 때에도 이전보다 엄밀한 통계 처리를 적용했다.


어쨌거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좀 더 확실해졌을 뿐이다. 1987년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다듬어졌다. 현생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프리카에서 살던 고대인류 개체군의 어떤 여성(들)에게서 비롯된 게 확실하며 생존 시기는 24만 9천~16만 6천 년 전 사이로 추정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1987년 연구에서는 아프리카 표본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관찰할 수 없었지만, 1991년 연구는 121개라는 아프리카 표본 덕분에 과거에는 찾을 수 없었던 어떤 경향성을 아프리카 표본 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프리카 바깥에서보다 아프리카 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염기서열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관찰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필자는 고인류학 전공이 아니므로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지만, 더불어 진화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떤 유의미한 가설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 현대인류에게 나타나는 인종적 다양성은 고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 바깥으로 진출하기 전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어느 정도 확립되었으며, 이들 유전적 다양성(특히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다양성)을 가진 여러 호모 사피엔스 개체군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가설을 벌써 내놓았겠지 내 주제에 무슨. 아무튼, 아프리카 대륙 이외의 지역보다 아프리카 내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양성이 더 크다는 사실은 오늘날 상황과 견주었을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4) Y 염색체 아담설(Y-chromosome Adam hypothesis) —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증거


앞의 두 사례는 현생인류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를 중심으로 추론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유전으로 자손세대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우리가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부모세대 중 오직 모계혈통에 대한 유전자 흐름뿐이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 번 가정해보자. 임의의 개체군 A가 있다. 그리고 다른 쪽에는 개체군 A와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포함한) 유전자 풀이 다른 개체군 B가 있다. 이때 개체군 B에 속한 남성(들)이 개체군 A에 유입해 개체군 A의 여성과 만나 자손을 낳았다. 이 자손을 C라고 하자. 자손 C는 개체군 A 여성의 유전자 반과 개체군 B 남성의 유전자 반을 유전 법칙에 따라 전달받았다. 그런데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개체군 A와 B 사이의 인적 접촉이 완전히 끊겼으며 이후로 개체군 A에는 개체군 B의 유전자가 더이상 유입하지 않았다. 개체군 A의 여성과 개체군 B의 남성의 자손으로 태어난 C(또는 C와 동일한 처지에 놓인 혼혈 자손들)는 오직 개체군 A 안에서 배우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개체군 A의 가계도를 구축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를 대상으로 유연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과거의 사건, 즉 개체군 A 여성과 개체군 B 남성이 만나 혼혈인 자손 C가 태어났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모두 개체군 A에 대한 미토콘드리아 DNA만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미토콘드리아 DNA의 계보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현생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가설에 신빙성을 더하려면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아닌 다른 증거도 필요하다. 이쯤에서 아담을 소환을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는 태초에 아담이 먼저 존재했고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가 탄생했지만, 고인류학의 세계에서는 이브가 먼저 태어났다.


성경에 아담과 이브가 있듯이 아프리카 기원설에도 아담과 이브가 있다. 하나는 앞에서 “미토콘드리아 이브”란 이름으로 이미 소개했다. 남은 것은 아담, 바로 “Y 염색체 아담”이다 [29]. Y 염색체 아담(또는 Y-MRCA)은 현생인류 남자의 가장 최근 공통조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점! 아담과 이브라 해서 꼭 같은 시기에 존재할 이유는 없다. 성경이 상징과 은유의 복합체인 것처럼 우리의 유전적 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Y 염색체 아담도 아주 먼 과거에 살았음 직한 유전적 직계조상일 뿐이다. 더불어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한 명이 아닌 것처럼 Y 염색체 아담도 단 한 명만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1995년 『네이쳐』에 마이클 해머(Michael Hammer)는 「인간 Y 염색체에 대한 최근 공통 계보(A recent common ancestry for human Y chromosome)」라는 제목으로 인간 Y 염색체의 MRCA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0].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처럼 몇백 개에 달하는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연구하지는 않았다. 오직 아프리카인 8명, 오스트레일리아인 2명, 일본인 3명, 유럽인 2명과 침팬지 4마리라는 합계 19개체에서 추출한 Y 염색체 표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는 부계유전을 통해서 바라본 현생인류의 기원이 전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라는 모계유전과 매우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Y 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비교유전학 연구에서 마이클 해머는 주로 다음과 같은 특징에 초점을 맞췄다. 핵 DNA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전이할 수 있는 DNA 조각을 일반적으로 트랜스포존(transposon)이라 부른다 [31]. 인간 염색체에는 다양한 종류의 트랜스포존이 존재하는데, 해머는 그 중 300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알루(Alu) 요소를 일차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더불어 해머는 알루 요소의 끝 부분에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아데닌 핵산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의 길이도 관측했는데, 일반적으로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Y 염색체의 특정 염기 서열 위치에서 자주 나타나는 단일 염기 변이 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으로 줄여서 SNP라고 한다, 單一鹽基變異多形性)의 변이 정도를 관찰함으로써 개체 혹은 개체군에 따른 진화적 유연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32].


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현존하는 생명체 중에서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진화적 유연관계를 보인다. 즉, 침팬지와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6백만 년 전에 하나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고, 두 분지 중 하나는 다양한 진화 경로를 거치며 오늘날 인류가 있게 한 진화의 흐름을 있게 했으며 다른 하나는 약 2백만 년 전에 진화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침팬지와 보노보라는 두 영장류의 기원이 되었다. 그런데 침팬지의 Y 염색체와 아프리카 원주민 일부에서는 알루 요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바로 침팬지와 현생인류의 Y-MRCA, 즉 Y 염색체에 대한 공통조상이 알루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남성의 Y 염색체에서 알루 요소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진화적으로 최근—그럼에도 최소 몇백 몇천 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진화의 역사에서는 매우 짧은 축에 속한다—에 일어난 일이라 추측할 수 있다. 더불어 인간과 침팬지 유전체의 유사성이 대략 90% 정도고 이들 두 종 사이의 Y 염색체 유사성은 대략 70%라는 점을 상기하자 [13]. 이것은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조상에서 분지한 이후 Y 염색체에서 유달리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분석에 사용한 인간 Y 염색체 표본 사이에서는 돌연변이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Y 염색체가 어떤 이유 때문에 현재까지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결과적으로 오늘날 인류가 최근에 하나의 단일 개체군에서 주로 기원했음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증거가 된다. 또 하나 유심히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와 마찬가지로 Y 염색체의 염기서열 다양성이 아프리카 바깥쪽 개체군(즉, 오스트레일리아인 2명, 일본인 3명, 유럽인 2명)보다 아프리카 내 개체군(아프리카인 8명)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게 관찰되었다는 사실로, 현생인류의 전반적인 진화 정도가 아프리카 외부로 확산하기 이전에 매우 빨리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의 Y 염색체 아담이 생존했던 시기로 대략 18만 8천 년 전(오차범위9만4천년)으로 측정되었는데, 이것은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생존시기와 상당히 일치한다. (훗날 독립적으로 시행된 다른 연구에서는 다른 생존시기를 제안했다 [29].)


자!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환호성을 내지를 수 있다. “우리의 유전적 직계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Y 염색체 아담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우리가 전 세계로 퍼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열심히 진화의 과정을 몸소 체험하고 계셨다.” 멋지지 아니한가?


5) 상염색체에 존재하는 현생인류 기원의 증거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에만 있지는 않다. 상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비교유전학 연구에서도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증거가 다수 제시되었다. 일례로 1996년 『네이쳐 지네틱스(Nature Genetics)』에 「미소부수체의 다양성은 현생인류의 최근 아프리카 기원을 지지한다(Minisatellite diversity supports a recent African origin for modern humans)」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연구는 매우 높은 빈도의 유전적 변이(變異)를 보이는 인간 유전자좌(locus, 遺傳子座)의 다양성을 측정함으로써 현생인류의 기원과 이동을 조사했다 [33]. 그 결과 비아프리카계 현대인류가 아프리카계 인류보다 상염색체 부분에서 훨씬 더 큰 다양성이 나타남을 확인했는데, 앞의 두 사례에서 고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음을 상기한다면 이 결과는 아프리카에서 비롯된 현생인류 개체군이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으로 점점 확산하면서 상염색체 DNA에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음을 뜻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된다.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아프리카 내부로 인류가 대규모 이동을 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또한 1996년 『사이언스』에 「CD4 유전자좌의 연관불균형에 대한 전 지구적 패턴과 현생인류의 기원(Global Patterns of Linkage Disequilibrium at the CD4 Locus and Modern Human Origins)」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도 앞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또 다른 증거를 내놓았다 [34].


이렇게 1987년 칸과 윌슨의 비교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한 인류학 연구와 1988년 스트린져와 앤드류스가 제시한 현생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서 비롯된 현대인류의 진화적 흐름을 추적하는 연구는 오늘날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기원설에 대한 일종의 반발로 제안된 월포프의 다지역 기원설은 전체적으로 현생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근거도 빈약할뿐더러 이론적 취약점도 많아서 현재로서는 가설의 신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대략 ‘망’이다 OTL.


3. 아프리카 출신의 현생인류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지금까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진화적 유연관계에 대해 논하기 위한 사전 떡밥(?)으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가설, 특히 아프리카 기원설에 대해 대략 살펴봤다. 앞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했지만, 아프리카 기원설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비교해부학적·비교유전학적 연구 및 가설은 공통적으로 다음 내용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대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던 어느 개체군에 직접적인 유전적 뿌리를 두고 있다. 더불어 이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뜻도 있다. 현대인류의 유전자는 전적으로 약 20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던 호모 사피엔스 개체군에서 비롯된 것이며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호모 에렉투스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오늘날에는 멸종한) 다른 종의 인간은 이 유전자 흐름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으로 충분할 것일까? 다시 말하자면 아프리카 기원설에서 주장하는 대로 현대인의 유전자에는 그 어떤 고대인류의 유전자 흔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또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종, 즉 현대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고 100% 주장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앞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증거를 꼼꼼히 살펴보자. 우선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혈통으로부터 자손세대로 전달되므로 부계혈통에서 전달되는 유전자 흐름을 관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앞에서 언급했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 아버지와 고대 현생인류 어머니 사이에 (성적 접촉으로 인한) 어떤 유전적 결합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네안데르탈인/현생인류 잡종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가정했을 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 접근법으로는 이 부분에 관해 확인할 길이 없다. Y 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유전학 연구도 마찬가지다. 현생인류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 사이에 현생인류/네안데르탈인 잡종이 태어났다면 Y 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접근법은 오직 현생인류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Y 염색체만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염색체를 대상으로 한 비교유전학 연구는 어떨까? 미토콘드리아 DNA나 Y 염색체 연구보다는 좀 더 자세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상대적으로 나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현생인류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고대인류의 유전자, 즉 고대인의 DNA 염기서열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무리 현대인류를 대상으로 비교유전학 연구를 백날 해봤자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을 조사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불어 60억 이상에 달하는 전 지구 인류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 작업에 성공에 어떤 결론을 도출해 냈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진화 또는 기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어떤 레퍼런스, 즉 고대인류의 신뢰할만한 유전자 정보가 없다면 어떤 결론을 추론해도 여전히 부족한 점투성이다. 따라서 현생인류가 다른 멸종한 인간 종과의 아무런 유전적 혼합 없이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지역으로 퍼졌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장하든, 혹은 어느 정도의 유전적 혼합은 있었다는 절충론을 제안하든, 아니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조상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든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을 단번에 꿰뚫어 버릴만한 필요조건은 바로 그러한 가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검증하며 기각할 수 있는 증거, 곧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오늘날 멸종한 고대인류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는 일이다.



참고문헌


[1] Neanderthal. Wikipedia [링크]
[2] Homo sapiens. Wikipedia [링크]
[3] Cgo-Magnon. Wikipedia [링크]
[4] Krings M, et al. 1997. Neandertal DNA Sequences and the Origin of Modern Humans. Cell 90: 19-30. [링크]
[5] Hofreiter M. 2011. Drafting Human Ancestry: What Does the Neanderthal Genome Tell Us about Hominid Evolution? Commentary on Green et al. (2010). Hum Biol 83: 1-11. [링크]
[6] Duarte C, et al. 1999. The early Upper Paleolithic human skeleton from the Abrigo do Lagar Velho (Portugal) and modern human emergence in Iberia. Proc Natl Acad Sci USA 96: 7604-7609. [링크]
[7] Tattersall I, and Schwartz JH, et al. 1999. Hominids and hybrids: The place of Neanderthals in human evolution. Proc Natl Acad Sci USA 96. 7117-7119. [링크]
[8] Human evolution. Wikipedia [링크]
[9] 여기서 “대부분”으로 표현한 이유는 RNA(ribonucleic acid)를 유전물질로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꼬마선충(nematode 또는 학명으로 Caenorhabditis elegans)에는 부모 세대에서 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trait, 形質)을 자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일종의 라마르크 유전(Lamarckian genetics) 메커니즘이 존재하는데, 이때 유전 정보 매개체가 바로 RNA다. 그럼에도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 생명체—바이러스는 논외로 하자—는 예외 없이 D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하기 때문에 인류의 진화를 유전학적 측면에서 고찰하는 데 있어서 RNA를 배제한 채 DNA만 고려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 식물에는 동물과 달리 광합성 반응이 일어나는 세포 소기관인 엽록체(chloroplast, 葉綠體)가 있다. 이 소기관에도 엽록체 DNA(chloroplast DNA)가 존재한다.
[11] Mitochondrial DNA. Wikipedia [링크]
[12] 미토콘드리아. 위키피디아 [링크] : 미토콘드리아(단수: mitochondrion, 복수: mitochondria)는 진핵생물(eukaryote, 眞核生物) 세포 안에 있는 중요한 세포 소기관으로 여러 유기물질에 저장된 에너지를 산화적 인산화 과정(oxidative phosphorylation process)을 통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주요 에너지원인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합성하는 세포의 발전소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의 25%를 차지하지만, 세포 기능 및 역할과 주변 환경에 따라 그 크기와 수가 다양하게 변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체적으로 DNA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세포 소기관과 달리 이중막 구조(double-membraned organization)로 되어 있어 공생진화설(Endosymbiosis, 細胞內共生說)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로 인식되고 있다. [더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여기(#1) 또는 여기(#2)를 클릭!]
[13] Y chromosome. Wikipedia [링크] : Y 염색체는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 포유류에서 성별을 결정하는 성염색체 두 가지 중 하나다. 인간의 Y 염색체는 약 5천만 개 염기쌍(base pair)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직 아버지에서 아들로만 유전된다. 인간과 침팬지의 Y 염색체 염기서열을 비교했을 때 대략 30% 정도의 차이(difference, 差異)를 보인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인간과 침팬지 유전체가 전반적으로 94%가량 유사성(similarity, 類似性)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14], 인간 유전체(genome, 遺傳體) 가운데 Y 염색체가 상대적으로 진화가 빨리 일어난 부분 가운데 하나임을 뜻한다. 더불어 Y 염색체는 다른 염색체와 비교했을 때 4.8배라는 매우 높은 돌연변이율(mutation rate, 突然變異率)을 나타내고 있다.
[14] Chimpanzee. Wikipedia [링크]
[15] Meiosis. Wikipedia [링크] : 감수분열(meiosis, 減數分裂)은 생식세포를 만들기 위한 진핵생물의 세포 분열 형태 중 하나이다. 어떤 생명체의 전체 염색체 수를 2n이라 한다면 감수분열로 형성된 난자와 정자는 각각 n개의 염색체 수를 가지게 된다. 이들 생식세포가 수정(fertilization, 受精) 과정을 통해 하나로 합치게 되면, 2n개의 염색체 수를 가진 자손이 형성된다. 이와는 달리 일반적인 세포분열을 뜻하는 체세포분열은 몇 번을 분열해도 전체 염색체 수는 2n개로 동일하다.
[16] Wolpoff MH, et al. 1988. Modern human origins. Science 241: 772-774. [링크]
[17] Wolpoff MH, et al. 2000. Multiregional, not multiple origins. Am J Phys Anthropol 112: 129-136. [링크]
[18] 여기서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제외하도록 하자. 이 대륙에 인류가 유입한 시기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 Stringer CB and Andrews P. 1988. Genetic and fossil evidence for the origin of modern humans. Science 239: 1263-1268. [링크]
[20] Mitochondrial Eve. Wikipedia [링크]
[21] Cann RL, et al. 1987. Mitochondrial DNA and human evolution. Nature 325: 31-36. [링크]
[22] Vigilant L, et al. 1991. African populations and the evolution of human mitochondrial DNA. Science 253: 1503-1507. [링크]
[23] 유전자 풀(gene pool)은 주어진 유성생식 집단의 유전자 전체를 의미한다.
[24] Genetic recombination. Wikipedia [링크] : 유전자 재조합(genetic recombination, 遺傳子再調合)은 DNA와 같은 유전물질이 복제 과정에서 원래 서열과는 다르게 뒤바뀌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러 가지 원인과 메커니즘이 있지만, 유전 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수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조합 현상인데, 이러한 메커니즘은 자손세대가 부모세대와는 다른 유전자 조합을 갖도록 해 대립형질(allelomorphic character, 對立形質)의 발현빈도(expression frequency, 發現頻度)를 다르게 함으로써 다양성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25] 유연관계(genetic relationship, 類緣關係)는 생물학에서 개체(군)의 표현형, 유전형 등의 특성이 어느 정도 가까운가를 나타내는 관계를 뜻한다.
[26] 1987년 『Nature』에 발표된 연구에 사용된 표본은 다음과 같다. 태반 조직 145개 중 98개는 미국, 나머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파푸아 뉴기니에서 얻었다. 분석에 사용한 세포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유래한 HeLa와 남아프리카 쿵족(!Kung, 사하라 사막 이남 보츠와나[Botswana]와 나미비아[Namibia]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조직에서 배양한 것으로 알려진 GM3043이다. 인종 분포는 다음과 같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계통(20개), 중국·베트남·라오스·필리핀·인도네시아·통가 등의 아시아 계통(34개), 유럽·북아프리카·중동 등 코카시안 계통(Caucasian)(46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21개),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26개). 아프리카 표본 20개 중 단지 2개만이 실제로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태어난 사람의 것이고, 나머지 18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얻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핵 유전자(nuclear gene)를 제한효소 지도작성법으로 분석했을 때 코카시언의 특징을 보이기는 했지만, 18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표본 중 12개에서 아프리카 원주민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같은 제한효소 위치표지(restriction site marker, 制限酵素位置標識)를 나타냈기 때문에 연구팀은 자신들이 사용한 아프리카 미토콘드리아 DNA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사실상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7] 제한효소와 제한효소를 이용한 유전자 지도 작성법은 다음을 참조하라. [링크 #1, 링크 #2]
[28] 189개 표본 중 121개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 거주하는 개체군에서 얻은 것으로 쿵족 25개, 헤레로족(Herero, 보츠와나) 27개, 나론족(Naron, 보츠와나) 1개, 하드자족(Hadza, 탄자니아[Tanzania]) 17개, 요루반족(Yoruban, 나이지리아[Nigeria]) 14개, 아프리카 동부의 피그미족(East Pygmics, 자이레[Zaire]) 20개, 아프리카 서부 피그미족(Western Pygmics, 중앙아프리카공화국[Central African Republic]) 17개를 포함한다. 나머지 68개 가운데 파푸아 뉴기니인은 20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1개, 유럽인은 15개, 아시아인은 24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8개를 포함한다.
[29] Y-chromosomal Adam. Wikipedia. [링크]
[30] Hammer MF. 1995. A recent common ancestor human Y chromosomes. Nature 378: 376-378. [링크]
[31] Transposon. Wikipedia [링크]
[32]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Wikipedia [링크]
[33] Armour JA, et al. 1996. Minisatellite diversity supports a recent African origin for modern humans. Nat Genet 13: 154-160. [링크]
[34] Tishkoff E, et al. 1996. Global patterns of linkage disequilibrium at the CD4 locus and modern human origins. Science 271: 1380-1387. [링크]








Posted by metas :


요즘 내 전공—참고로 내 전공은 생물학이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류학(anthropology, 人類學)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인류학이 생물학을 위시해 여러 가지 학문 분야를 두루 섭렵하는 상당히 포괄적인 학문이며, 특히 인간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는 진화생물학(evolutionary biology, 進化生物學) 또는 고생물학(palaeontology, 古生物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의 관심이 인류학 쪽으로 가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인류학에 대해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인간 그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과거 인류의 조상 혹은 공통조상을 가지는 인류의 다른 가지(branch)는 어떻게 해서 멸망했을까? 수많은 물음이 인류학과 관련된 책과 논문을 읽으면서 지속해서 떠오르는 가운데, 내가 공부한 부분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이다. 이 글에 나와 있는 내용이 전부 내가 작성한 것은 아니지만—사실 문장 또는 문단 자체를 인용해서 짜깁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글귀와 문장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많은 논문과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왠지 이것 덕질인 듯 한 기분이 들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그냥 올리기로 하겠다. 에잇! 조교한테 너 전부 베껴 쓴 게 아니냐는 욕만 안 먹으면 돼!!! (-_-;)


1. 네안데르탈인: 간략한 소개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은 약 60만~2만 5천 년 전 신생대(the Cenozoic era, 新生代) 홍적세(the Pleistocene epoch, 홍적세) 중기~후기 무렵에 살았던 인간 속(genus Homo, 人間屬)의 멸종된 호미니드(hominid)로 현생인류(modern human, 現生人類) 바로 전 단계에 살았던 종(species, 種)으로, 인류 진화 과정 중 가장 늦은 단계에 살았던 원시 호미니드(primitive hominid)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1, 2, 3, 4] 네안데르탈인을 계통분류학상 어디에 놓을지는 연구자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학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네안데르탈인을 현생인류(Homo sapiens)의 아종(subspecies, 亞種)이라 주장하는 쪽은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sapiens neanderthalensis)라 부르며, 별개의 호미니드 종이라 판단하는 진영에서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라고 명명한다. [1] 특히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별개의 종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유전자 비교분석을 통한 계통분류 분석(phylogenetic analysis) 연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 또는 mtDNA)가 현생인류와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과 두 종 사이의 조직학적/형태학적 차이를 들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의 아종임을 부정하고 있다. [5, 6, 7, 8] 그러나 최근 진행하고 있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Neanderthal Genome Project)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의 종간교배(interbreeding, 種間交配)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시선을 끌고 있는데,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생식적으로 완전히 격리되어 있지 않았을 개연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9, 10]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향후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림 1. 네안데르탈인 모습을 복원해 그린 첫 번째 그림 (헤르만 샤프하우젠) (왼쪽) [출처: Wikipedia]. 네안데르탈인의 삶을 재현한 모습 (오른쪽). [출처: Daily Mail]. Mathilda’s Anthropology Blog에 가면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복원한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다. [링크]



고고학적인 기록으로 볼 때 그들의 기본적인 행위와 능력은 현생인류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네안데르탈인 두뇌가 현생인류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 두뇌가 현생인류보다 작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출토된 유골을 재구성한 비교해부학적 연구 결과, 네안데르탈인 두뇌는 현생인류와 비슷하거나 좀 더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1, 11] 더불어 네안데르탈인은 인류 진화과정 중 한 구성원에 속하지만, 해부학적 특징이나 그 출현시기에서 초기 현생인류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네안데르탈인은 초기 현생인류와 더불어 비교적 최근까지 존재했으며, 멸종한 다른 고(古)인류와 비교했을 때 그 특징 또한 아주 잘 알려졌다. 실제로 네안데르탈인은 생김새와 행동 등에 있어서 그 어떤 종류의 고인류보다 현생인류를 많이 닮았으며, 어떤 면—주로 골격 등의 신체적인 특징—에서는 초기 현생인류보다 더 발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2, 13] [그림 1, 그림 2]



그림 2.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간 두개골 비교. Shainder 1과 La Ferrassie 1은 네안데르탈인 두개골이며, Qafzeh 9과 Předmostí 3는 현생인류, 즉 크로마뇽인의 두개골이다. [출처: Mathilda’s Anthropology Blog] 크로마뇽인에 대한 설명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Cro-magnon, Wikipedia] Shainder 1은 해부학 상 차이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La Ferrassie 1은 두 종류의 크로마뇽인 두개골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네안데르탈인의 진화적 조상은 오늘날 유럽 지역에 분포했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의 후손으로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에 국한되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2] 실제로 네안데르탈인의 초기 특징(traits)을 보이는 60만~35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하이델베르크인 유골이 스페인 부르고스(Burgos) 근처 시에라 데 아따뿌에르까(Sierra de Atapuerca) 동굴에 있는 시마 드 로스 우에소스(Sima de los Huesos, 죽음의 동굴)라 불리는 지하 14m 깊이의 수갱(竪坑)에서 발굴되었는데, 나중에 이들 고인류는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공통조상(common ancestor, 共通祖上)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즉 하이델베르크 원인의 한 부류이며 진화적으로도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14, 15] 참고로 하이델베르겐시스, 즉 하이델베르크인은 약 60만 년 전부터 약 25만 년 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이며, 약 30만 년 전에 분기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2]


2.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발굴


네안데르탈인의 발견은 고인류학(paleoanthropology, 古人類學)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네안데르탈인은 최초로 발견된 인류의 조상이며, 네안데르탈인의 발견으로 고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대중 일반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호미니드이기 때문이다. [1, 12] 물론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진화적 관계가 어떻든 상관없이 문화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데, 대표적으로 네안데르탈인(또는 네안데르탈인을 닮은 원시인이라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이름은 어느 순간 모욕적인 관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16]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선입견과는 달리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충분히 컸고 지능도 높았으며, 상당한 사고력과 직관력이 있어야 가능한 정교한 석기(石器)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그림 3] 어쨌든, 네안데르탈인이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인류라는 것과는 별개로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는, 이들이 인류진화에 관한 최초의 과학적 증거이며, 이들 화석이 발견된 시기가 진화론이 학계와 사회 일반에서 뜨겁게 논의될 때라는 점이다. [12]



그림 3. 현생인류와 고대인류 그리고 영장류 사이의 뇌용적량을 비교한 그림. 1부터 5까지 순서대로, 침팬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크로마뇽인이다. [출처: Softpedia]



 

그림 4. 엥기스 동굴에서 발견한 고인류 화석을 조사한 슈멜링과 (왼쪽) 엥기스 동굴 전경 (오른쪽). [출처: Wikipedia]



1829년 벨기에(Belgium) 리에 주(Liège) 근처 엥기스(Engis) 동굴에서 슈멜링(Philippe-Charles Schmerling)이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화석 발굴로 평가받는 어린아이의 머리뼈 조각을 발굴했다. 그리고 1948년 북부 아프리카 맞은 편에 있는 스페인(Spain) 지브롤터(Gibraltar) 포르비 광산(Forbes' Quarry)의 어느 동굴에서도 네안데르탈인의 어른 머리뼈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17, 18] [그림 4] 그러나 이 발견은 당시 과학적인 흥미를 크게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세상에 선보인 이후에도 이때 발견된 고대인의 흔적은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으며, 1936년에 이르러서야 그 진가가 드러났다. [33, 34]



  

그림 5. 그들이 발견한 화석에 대해 제대로 된 해석을 내리진 못했지만, 어쨌든 네안데르탈인을 발견하고 이름 붙인 카를 풀로트와 (왼쪽) [출처: Wikipedia] 헤르만 샤프하우젠 오른쪽). [출처: Wikipedia]



네안데르탈인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1856년에 발견된 화석으로, 1859년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독일 뒤셀도르프(Dusseldorf) 근처 에르크라트(Erkrath)에 있는 네안더 계곡(Neander Valley) 펠트호퍼 동굴(Feldhofer Cave)에서 두개관(skull cap 혹은 calvarium, 頭蓋管 혹은 머리덮개뼈)과 대퇴골(femur, 大腿骨 혹은 넓적다리뼈) 두 개, 우측 팔의 뼈 세 조각, 좌측 팔 두 조각, 장골(ilium, 腸骨 혹은 엉덩뼈) 일부분, 견갑골(scapula, 肩胛骨 혹은 어깨뼈) 조각, 그리고 늑골(rib, 肋骨 혹은 갈비뼈) 등으로 구성된 사체가 발견되었다. [1, 18, 19] 당시 이 유골을 발견한 광부 다수는 이것을 곰의 잔해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산 소유주는 이 뼈를 지역 학교 교사이자 아마추어 박물학자(naturalist, 博物學者)인 카를 풀로트(Johann Carl Fuhlrott)에게 넘겼다. [그림 5] 풀로트는 이 뼈가 일반 사람의 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는데, 두개관에는 커다란 눈두덩과 낮은 앞머리라는 특징이 있었고, 두개관 양옆이 불룩했으며, 대퇴골을 포함한 사지뼈는 두텁고 굳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로트는 해부학, 특히 뼈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유명한 해부학자 헤르만 샤프하우젠(Hermann Schaaffhausen)에 이 뼈를 보여줬다. [그림 5] 하지만 샤프하우젠은, 그가 당시 유럽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다윈과 월러스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음에도, 인간의 진화에 대해 무지했거나 또는 그것을 염두에 두었더라도 큰 의미는 두지 않았었는지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이 뼈를 게르만 족과 켈트 족 이전 북부 유럽에 살았던 한 종족에 속하는 사람의 것으로 결론내렸고, 그 결과를 풀로트와 공동으로 1857년에 공식 발표했다. [1]


3. 끊이지 않는 논란



  

그림 6. 찰스 라이엘과 (왼쪽) [출처: 위키피디아] 토마스 헨리 헉슬리 (오른쪽) [출처: Wikipedia]. 현대 지질학의 이버지와 다윈의 불독도 네안데르탈인을 조사하고 연구했다. 다만 다른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지만, “XX의 아버지”라 불리며 칭송받는 사람들도 헛발질을 정말 자주 하는 모양이다.



1859년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이 출판될 무렵 다윈은 이미 네안데르탈인 화석에 관해 알고 있었음에도, 인류 진화라는 민감한 문제를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될 수 있으면 이 화석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고 한다. [20] 그 후 1863년 『고대 인류에 관한 지질학적 증거(The Geological Evidence of the Antiquity of Man)』에서 현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라이엘(Charles Lyell)은 슈멜링이 찾은 엥기스 화석을 포함한 네안데르탈인 화석을 진화상 별 중요성 없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인간 진화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다윈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헉슬리(Thomas Henry Huxley)였다. 그는 1862년 네안데르탈인 두개골(1857년에 발견된)을 직접 조사 및 연구했고 그 결과를 1863년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한 증거(Evidence as to Man’s Place in Nature)』에서 밝혔는데, 네안데르탈인이 비록 그 모습에서 원시성을 띠고 있지만, 유인원이나 인류진화에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는 아니라고 서술했다. [17, 21] [그림 6]



  

그림 7.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학명을 처음 명명한 윌리엄 킹과 (왼쪽) [출처: Wikipedia]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내린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 루돌프 비르코프 (오른쪽) [출처, Wikipedia].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아버지도 헛발질을 좀 하셨다. 더불어 킹 본인은 비르코프를 아버지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웃음), 당대의 권위에 눌려 자기 의견을 한 수 접은 사람의 좋은 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 말은 들으면 안 된다. (응?)



아일랜드(Ireland) 출신 해부학자 윌리엄 킹(William King)은 네안데르탈인을 절멸한 인류, 즉 현생인류와 다른 종으로 생각해 이것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daderthalensis)라고 처음 명명했고, 1863년 영국 왕립학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주최 학회에서 발표한 뒤 1864년에 공식적으로 논문을 발표했지만, 킹 자신은 나중에 프러시아 출신 병리학자 루돌프 비르코프(Rudolf Virchow)의 견해—즉 네안데르탈인은 질병(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걸린 구루병과 성인 시기에 발병한 관절염 등)에 걸린 현대인으로 추정했으며 머리에 난 상처는 죽은 후에 타격을 받아 생긴 것으로 단정했다—를 따랐다. [17, 22, 23] [그림 7] 비르코프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시 학자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첫째, 비르코프가 신뢰할만한 전문가—실제로 비르코프는 현대 병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였고, 둘째, 인류 진화의 개념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정체를 설명하기보다는 의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당대 과학자에게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당시에는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확실한 과학기술적 방법—예를 들면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법 등—이 없었기 때문에 비르코프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증거를 내놓을 수 없었다. [24] 비록 비르코프가 네안데르탈인 화석에 대해 잘못된 해석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가 막무가내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신중한 과학자였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비판적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사람도 아니었다. 더불어 그의 전공이 병리학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린 판단—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병에 걸린 현생인류의 유골이다—은 꽤나 상식적인 결론이었다. [26] 그럼에도 그의 권위에 찬 발언이 한동안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기까지 장애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그의 헛발질은 아래와 같은 사례에서도 계속되었다.


1866년에 프랑스 출신 인류학자 에두아드 듀퐁(Edouard Dupont)은 굳세 보이는 아래턱과 위팔뼈, 그리고 손등뼈 등을 벨기에 투르드 라나울레테(Trou de la Naulette) 동굴에서 발굴해 보고했는데, 이 유적에서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매머드(mammoth)와 개, 털코끼리, 털코뿔소와 순록 등 다양한 동물의 뼈가 함께 출토되었다. [25] 현생인류의 턱과는 달리 라나울레테 동굴에서 출토된 아래턱은 턱이 휘어 들어가지 않은 모습인데, 당시에는 이 화석과 비교할만한 다른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비르코프는 이 전에 발견된 다른 네안데르탈인 화석과 마찬가지로 이를 병리학적인 증상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잘못 판단했으며, 1880년에 인류학자 마스카(K. Maska)가 체코 모라비아(Moravia) 시프카(Sipka) 동굴에서 출토된 화석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적용했다. [24]


4. 네안데르탈인 유적 위상의 재정립


그러나 1885년 벨기에 스피(Spy) 근처 한 동굴에서 마르셀 드 푸이트(Marcel de Puydt)와 막스 로헤스트(Max Lohest)가 발굴한 두 개체의 어른 뼈 화석으로 비르코프의 주장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24, 26] 스피에서 출토된 머리뼈에는 네안더 계곡에서 발견된 화석 뼈와 매우 유사한 해부학적 특징이 보이는데, 비르코프의 해석을 그대로 따른다면 프랑스, 체코, 독일 등의 여러 지역에서 출토된 동일한 해부학적 소견을 보이는 화석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똑같은 병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단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똑같은 병력을 지닌 사람의 유골이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관련이 없는 지역에서 발견되는 일이 가능할까? 물론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누적된 화석 결과는 이들 화석 뼈가 비교해부학적으로 놀라운 유사성을 보였기 때문에 비르코프의 견해는 점차 설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비르코프의 주장은 오늘날 기각되었으며 다른 네안데르탈인 유적과 함께 스피 동굴에서 발견된 유적은 이전에 발견된 다른 유적과 함께 오늘날 관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증거로 함께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림 8. 피테칸트로푸스(또는 자바 원인)를 발견한 뒤부아 (왼쪽) [출처: Wikipedia]와 그가 스케치한 자바 원인의 유골 화석 (가운데) [출처: Wikipedia], 그리고 발굴된 뼈를 토대로 재구성한 자바 원인의 모습 (오른쪽) [출처: Wikipedia]. 뒤부아 아저씨는 다윈의 진화론에 감명받아 인도네시아에 가서 열심히 화석을 발굴했지만, 그가 발견한 화석은 "소두증에 걸린 기형아의 뼈"라며 학회에서 맹비난을 받았다. 불쌍한 아저씨.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인류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전환은 1891년 네덜란드 출신 해부학자이자 군의관이었던 뒤부아(Marie Eugène François Thomas Dubois)가 인도네시아 자바(Java)에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일종인 흔히 자바 원인(Java man)이라 불리는 피테칸트로푸스(Pithecanthropus)을 발견한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1908~1921년에 걸쳐 남서 프랑스에서 발견된 일련의 화석 증거—샤펠오생(La Chapell-Aux Saint), 무스티에(Le Moustier), 페라시(Le Ferrassie), 그리고 퀴나(La Quina) 등지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화석—는 그간 사람들이 지녔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의심, 즉 네안데르탈인은 병에 걸린 현생인류라는 비르코프의 강력한 견해를 떨쳐버리기에 충분했다. [27, 28] [그림 8]


프랑스, 벨기에 등지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적의 고고학적 당위성은 1899~1905년 사이에 옛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Zagreb) 근처 크라피나(Krapina)에서 크로아티아 출신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드라구틴 고리야노비치-크람베르거(Dragutin Gorjanović Kramberger)가 발굴한 화석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이곳에서는 약 800여 개 이상의 네안데르탈인 뼛조각이 수습되었는데, 이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14개체에 해당하는 양이었으며 스피를 포함한 프랑스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형태의 석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다른 유적과 마찬가지도 오래전에 살았던 동물 화석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식인행위(cannibalism) 또는 장례 과정에서 죽은 자의 살을 발라낸 것으로 추측되는 흔적도 발견되었다. [29] 크라피나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기존에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에서 발견된 유적과 더불어 네안데르탈인이 유럽 전역에 퍼져 살았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증거로 자리매김했다.


5. 이어지는 발견




그림 9. 네안데르탈인 유적 위치와 고고학적 시기를 같이 나타낸 지도 (위). [출처: Neanderthal Locations].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적 위치를 나타낸 지도 (아래) [출처: List of Neanderthal sites]. 그런데 저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으신 분은 여러분의 친한 친구 구글과 위키피디아에게 상담하세요. 단, 위키피디아는 양덕이 좋습니다.



1930년대 이르면 네안데르탈인 유적 발굴은 서아시아 지역까지 확대된다. 이스라엘 지역 타분(Tabun) 동굴과 우즈베키스탄 테시크 타시(Teshik Tash) 동굴을 시작으로 1953~1960년까지 이루어진 이라크 샤니다르(Shanidar) 동굴, 그리고 이스라엘 지역 아무드(Amud)와 케바라(Kebara) 동굴 등에서도 네안데르탈인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흑해 연안 크리미아 반도 키크-코바(Kiik-Koba) 동굴과 헝가리 수발류크(Subalyuk) 동굴, 독일 에링스도르프 샘(Ehringsdorf Spring), 이탈리아 사코파스토레(Saccopastore), 구아타리(Guattari) 동굴, 그리고 프랑스 르구르두(Regourdou), 오르튀(Hortus), 생 세제르(Saint Cesaire) 등지에서 새로운 유적이 다량 발굴되었다. [30] 2007년 현재 70여 군데 이상 유적지에서 400개 이상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발견되었고, 이들 대부분은 조각난 뼈이지만 몇몇 개체는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다. [31] [그림 9] 향후 네안데르탈인 또는 네안데르탈인과 공통조상을 공유하는 새로운 화석이 유럽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등지에서도 계속 발견되고 있으므로 그 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6. 맺음말


지금까지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과 발굴 역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이 글이 현재까지 밝혀진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도 않고 내 전공도 아니므로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없지만, 더불어 여러 가지 기술적이며 현실적인 문제—고고학적 발견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시도 자체도 매우 어렵지만, 향후 과학 기술 발전(예를 들면, 극소량의 DNA만 가지고도 유전자를 증폭해 분석할 수 있는 기술 등의 발전)으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지식이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것이라 기대한다. 차후에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 더욱 공부에 매진해서(이게 정말 중요한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네안데르탈인의 해부학적 특징과 유전체 연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올리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Neanderthal. Wikipedia. [링크]
[2] 『고인류학』. 박선주. 아르케. 1999. 464쪽.
[3] 호미니드(hominid)란 명칭은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원숭이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진화선상의 과거 종과 현재 인간을 규정하는 표현으로, “두 발로 걷는 존재”를 뜻한다. 특히 호미니드는 사람과(Hominidae)에 속하는 사람,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대형 유인원을 포함하는 영장류의 한 과로 대표될 수 있는데, 현재 여기에는 모두 4속 7종이 포함된다. [출처: 『유전자 인류학(Reflection of Our Past)』. 존 릴리스포드(John. H. Relethford)/이경식 옮김. 휴먼앤북스. 2003. 75쪽] [출처: 사람과. 위키피디아. 링크]
[4] 인류진화에서 최종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인류 진화단계를 원인(猿人), 원인(原人), 구인(舊人), 신인(新人)으로 분류했을 때 가장 새로운 단계에 해당된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모두 신인으로, 그 출현은 4만 년 이상은 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5] Schmitz RW et al. 2002. The Neandertal type site revisited: Interdisciplinary investigations of skeletal remains from the Neander Valley, Germany. Proc Natl Acad Sci USA 99: 13342-13347. [링크]
[6] Briggs AW et al. 2009. Targeted Retrieval and Analysis of Five Neandertal mtDNA Genomes. Science 325: 318-321. [링크]
[7] Serre D et al. 2004. No evidence of Neanderthal mtDNA contribution to early modern humans. PLoS Biol 2: e57. [링크]
[8] Currat M, and Excoffier L. 2004. Modern humans did not admix with Neanderthals during their range expansion into Europe. PLoS Biol 2: e241. [링크]
[9] Green RE et al. 2010. A Draft Seqeunce of the Neanderthal Genome. Science 328: 710-722. [링크] : 이 논문은 가장 최근에 나온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분석 결과로 어렵기는 하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다.
[10] Hofreiter M. 2011. Drafting Human Ancestry: What Does the Nealderthal Genome Tell Us about Hominid Evolution? Commentary on Green et al. (2010). Hum Biol 83: 1-11. [링크] : 참조 [9]와 관련되어 현재(2011년)까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에 대해 어떤 의견이 나왔는지 종합적으로 소개하며 비평하는 소개 논문이다. 마찬가지로 읽어볼 가치가 있는 논문이다.
[11] Neandertals. Behavioral Sciences Department, Palomar College. : 이 웹사이트에는 호미니드 사이 두개골 용적 크기를 비교한 도표가 있는데, 현생인류는 평균 1345 cm3이고, 네안데르탈인은 1450 cm3이며, 호모 에렉투스는 930 cm3, 그리고 침팬치 두개골 용적은 300-500 cm3이다. [링크]
[12] 『고인류학』. 465쪽.
[13] Neanderthal anatomy. Wikipedia. : “Neanderthal anatomy was more robust than modern humans.” [링크]
[14] 재난에 의해 사라진 원생인류. 해외과학기술동향. 624호. [링크]
[15] Bischoff JL and Shamp DD. 2003. The Sima de los Huesos Hominids Date to Beyond U/Th Equilibrium (>350 kyr) and Perhaps to 400–500 kyr: New Radiometric Dates. J Archaeol Sci 30: 275-280. [링크]
[16] 『유전자 인류학(Reflection of Our Past)』. 존 릴리스포드(john. H. Relethford)/이경식 옮김. 휴먼앤북스. 2003. 134-135쪽.
[17] 『고인류학』. 466~471쪽.
[18] 이 당시 발견된 지브롤터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현재 지브롤터 1(Gibraltar 1)이라 불린다.
[19] 독일어로 ‘tal’은 ‘골짜기(계곡)’을 뜻하며 영어로 ‘thal’이라 쓴다. 그러므로 이 화석은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Neanderthaler’라고 불렸으며 간단히 ‘Neanderthal’ 또는 ‘Neandertal’이라고도 표기한다. 당시 발견된 화석은 현재 ‘네안데르탈 1’(Neanderthal 1)이라 명명되었다.
[20] 『고인류학』. 467쪽. : 이 문장의 출처가 어디인지 찾아봤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다윈 평전』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수중에 책이 없어 확인할 길이 없다.
[21] Thomas Henry Huxley. Wikipedia. [링크] : "In 1862 he examined the Neanderthal skull-cap, which had been discovered in 1857. It was the first pre-sapiens discovery of a fossil man, and it was immediately clear to him that the brain case was surprisingly large."
[22] William King. Wikipedia. [링크] : "the first (in 1864) to propose that the bones found in Neanderthal, Germany in 1856 were not of human origin, but of a distinct species: Homo neanderthalensis. He proposed the name of this new species at a meeting of the British Association in 1863, with the written version published in 1864. He is commonly thought to have been a professor of anatomy, but never taught the subject. He was part of a 2012 EOS project."
[23] Schultz, MG. 2008. Rudolf Vircow. Emerg Infect Dis 14. 9. 1480-1481. [링크] : “Virchow believed that the Neanderthal man was a modern Homo sapiens, whose deformations were caused by rickets in childhood and arthritis later in life, with the flattened skull due to powerful blows to the head.”
[24] 『고인류학』. 468쪽.
[25] Germonpré, M., et al. 2009. Fossil dogs and wolves from Palaeolithic sites in Belgium, the Ukraine and Russia: osteometry, ancient DNA and stable isotopes. J Archaeol Sci 36: 473-490. [링크]
[26] Drell, J.R.R. 2000. Neanderthals: A history of interpretation. Oxford J Archaeol. 19: 1-24. [링크]
[27] 『고인류학』. 469쪽.
[28] 자바 원인. 위키피디아. [링크]
[29] Krapina. Wikipedia. [링크]
[30] 『고인류학』. 469-470쪽.
[31] New Evidence On The Role Of Climate In Neanderthal Extinction. Science Daily. 2007. [링크]
[32] Homo heidelbergensis. Wikipedia. [링크]
[33] Philippe-Charles Schmerling. Wikipedia. [링크] : “In 1829 he discovered the first Neanderthal fossil in a cave in Engis, the partial cranium of a small child, although it was not recognized as such until 1936, and is now thought to be between 30,000-70,000 years old.”
[34] 네안데르탈인은 아니지만, 1823년 다니엘 데이비스(Daniel Davies), 존 데이비스(John Davies), 그리고 옥스포드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윌리엄 벅클랜드(William Buckland)가 영국 웨일즈 남부 가우어 반도(Gower Peninsula) 아이논 항(Port Eynon) 로실리(Rhossili) 사이에 위치한 석회 동굴에서 발견한 파빌랜드의 붉은 여인(Red Lady of Paviland)이라 불리는 현생인류의 화석이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 고인류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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