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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2 <자본> 번역 비교 및 비판 - '독일어 제3판 서문'에 대한 부분
  2. 2011.12.21 <자본> 번역 비교 및 비판 - '프랑스어판 서문과 후기'에 대한 부분
  3. 2011.12.20 <자본> 번역 비교 및 비판 - '독일어 제2판 후기'에 대한 부분
  4. 2011.12.16 <자본> 번역 비교 및 비판 - '독일어 초판 서문'에 대한 부분
  5. 2011.12.16 <자본>의 번역에 대한 비교 및 분석 - 들어가는 말
  6. 2011.12.03 [스크랩]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 단서 (Seven Clues to the Origin of Life)
  7. 2011.12.02 실험하기 귀찮다. 연구하기 귀찮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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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11.11.16 [교내 게시판에 올린 글] “의료공제 폐지”를 반대하며 고합니다.
  12. 2011.11.14 [교내 게시판에 올린 글] OOO대 학생 중 진보 정당 및 단체에 가입하신 분 혹은 지지자께 여쭙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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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66~69쪽에 해당한다.



제3판에 부쳐

마르크스는 이 제3판의 인쇄를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의 적들까지도 그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는 이 뛰어난 사상가는 1883년 3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나는 40년 동안 가장 훌륭하고 믿음직했던 친구를, 그리고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빚을 진 친구를 잃었으며 이제 나에게는 이 제3판의 출간과 아직 초고상태로 남겨진 제2권의 출간을 담당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이제 나는 여기에서 그 첫 번째 의무인 제3판의 출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원래 제1권의 본문을 대부분 고쳐 쓰는 것은 물론 많은 이론적 부분들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고 새롭게 덧붙이고 또한 역사적인 자료나 통계적인 자료를 최근의 것들로 보완할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세가 계속 좋지 않았던 데다 제2권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 때문에 그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단지 꼭 필요한 부분들만이 수정되었고 그 사이에 출간된 프랑스어판(Le Capital. Par Karl Marx, Paris, Lachâtre, 1873)에 이미 새롭게 추가된 부분들만 덧붙여졌을 뿐이다.



그가 남긴 유고 속에는 군데군데 수정을 가하고 프랑스어판을 참고하라고 지시해둔 독일어판이 한 권 있었고 그가 해당되는 부분을 자세하게 표시해둔 프랑스어판도 한 권 있었다. 이렇게 수정되고 첨가된 부분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책의 마지막 부분, 즉 '자본의 축적과정' 편에 대한 것들이었다. 제2판에서 이편의 앞부분은 완전히 새롭게 고쳐 쓴데 반해 이편은 원래의 초고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문체에서 이편은 훨씬 생생하고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덜 다듬어지고 영어식의 특유한 말투가 뒤섞인 채로 있었으며 군데군데 불분명한 부분도 많았다. 그리하여 논리적인 전개과정에서도 군데군데 빈틈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이는 논리전개에서 중요한 몇몇 계기가 단지 암시되는 데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스스로 여러 절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는데, 이렇게 수정된 부분들과 마르크스 스스로 여러 곳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암시들을 통해서 나는 영어식의 기술적인 표현과 말투를 어느 정도까지 없애버려도 될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만일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면 추가된 부분과 보완된 부분도 좀 더 손을 보았을 것이고 매끄러운 프랑스어도 그 자신의 간결한 독일어로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부분을 원래의 본문에 최대한 적합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제3판에서는 마르크스 자신이 수정하려고 했다는 것을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을 말고는 하나도 수정되지 않았다. 독일 경제학자들이 흔히 잘 사용하는 항간의 은어들, 즉 예를 들어 현금을 지불하는 대신 타인으로 하여금 노동을 제공하도록 하는 사람을 노동수여자(Arbeitgeber), 이 사람에게 임금의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빼앗기는 사람을 노동수취자(Arbeitnehmer)이라고 일컫는 그런 조리에도 닿지도 않는 용어들을 『자본』에 끌어들이는 일 따위는 내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에서도 노동(travail)은 일상생활에서 '일'(Beschäftigung)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만일 자본가를 donneur de travail(노동수여자), 노동자를 receveur de travail(노동수취자)라고 부르려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당연히 그 사람을 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문 속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는 영국의 화폐단위나 도량형단위도 나는 독일의 최근 화폐단위나 도량형단위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7.1] 초판이 발간될 당시 독일에는 일 년 365일만큼이나 제각각인 도량형단위들이 있었고, 게다가 화폐단위로는 두 종류의 마르크(Mark)(당시 제국마르크는 1830년대 말에 그것을 창안한 죄트베르[Adolf Soetbeer]의 머릿속에서만 통용되고 있었다)와 두 종류의 굴덴(Gulden) 그리고 최소한 세 종류의 탈러(Taler)가 있었으며, 탈러 가운데 하나는 '노이에 츠바이드리텔(neue Zweidrittel: '새로운 '3분의 2'라는 뜻-옮긴이)을 단위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7.2.] 자연과학에서는 미터법이, 그리고 세계시장에서는 영국의 도량형단위들이 통용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 사례를 거의 영국의 산업상황에 의존해야만 했던 이 책으로서는 영국의 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세계시장에서 쓰이는 도량형단위가 오늘날에도 별로 변함이 없고 특히 핵심적인 산업들—철과 면화—에서는 영국의 도량형단위들이 거의 전적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7.1.
(SS) Nor have I taken the liberty to convert the English coins and moneys, measures and weights used throughout the text to their new-German equivalents.
(BF) Nor have I taken the liberty of converting the English coins and money, weights and measures used throughout the text in their new German equivalents.
(DK) Ebensowenig habe ich mir erlaubt, das im Text durchweg gebrauchte englische Geld, Maß und Gewicht auf seine neudeutschen Äquivalente zu reduzieren.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본문 전체에 사용한 영국 화폐와 도량형을 최근 독일 것으로 바꾸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을 의역하면 "나는 본문 전체에 사용한 영국 화폐와 도량형을 최근 독일 것으로 바꾸지 않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강 교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지 않다.
7.2.
(SS)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measures and weight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Besides there were two kinds of marks (the Reichsmark existed at the time only in the imagination of Soetbeer, who had invented it in the late thirties), two kinds of gulden and at least three kinds of taler, including one called neues Zweidrittel. In the natural sciences the metric system prevailed, in the world market — English measures and weights.
(BF)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weights and measure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Apart from this, there two kinds of mark (the Reichsmark only existed in the time in the imagination of Soetbeer, who had invented it in the late thirsties), two kinds of guilder, and at least three kinds of thaler, including one called the neues Zweidrittel.
(DK) Als die erste Auflage erschien, gab es in Deutschland so viel Arten von Maß und Gewicht wie Tage im Jahr, dazu zweierlei Mark (die Reichsmark galt damals nur im Kopf Soetbeers, der sie Ende der dreißiger Jahre erfunden), zweierlei Gulden und mindestens dreierlei Taler, darunter einer, dessen Einheit das "neue Zweidrittel" war.
DK의 한 문장을 SS와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마지막으로 일반에 거의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은 마르크스의 인용방식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여두고자 한다. 순수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나 서술의 경우 인용은, 예를 들어 영국의 청서(淸書)에서 인용한 내용과 같은 것은 말 그대로 단적인 예증으로 사용된 것이다. [8.1]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견해들을 인용한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경우의 인용은 논리적인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사상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처음에 명시적으로 얘기되었는지에 대한 것만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된 경제학적인 견해가 역사에서 의의가 있는 것인지, 또한 그것이 당시의 경제적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절한 이론적 표현인지의 여부일 뿐이다. [8.2] 그러나 이런 생각이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여부나 그것이 이미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는지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 인용은 본문에 대한 그때그때의 주석으로서 경제학의 역사에서 단지 빌려 온 것들에 지나지 않으며, 경제학 이론에서 몇몇 중요한 진보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를 밝혀주고 있을 뿐이다. [8.3] 그리고 이들 인용은 학문의 역사가 지금까지 편파적이고 거의 고의적인 무지함에 의해서만 기술되어온 그런 학문의 경우(바로 경제학을 가리킨다-옮긴이) 특히 매우 필요한 것이다. [8.4] 그래서 독자들은 이제 제2판의 후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 마르크스가 거의 전적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만 인용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8.1.
(SS)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measures and weight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BF) When they are pure statements of fact or descriptions, the quotations, from the English Blue Books, for example, serve of course as simple documentary proof.
(DK) Bei rein tatsächlichen Angaben und Schilderungen dienen die Zitate, z.B. aus den englischen Blaubüchern, selbstredend als einfache Belegstellen.
강 교수는 '단적인 예증'이라고 번역했는데, SS, BF, DK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다만 'simple references'에 대응하는 'einfache Belegstellen'만 있을 뿐이다. 'einfache'의 원형은 'einfach'로 'simple'이란 뜻의 형용사다. 'Belegstellen'의 원형은 'Belegstelle'로 'reference'를 뜻하는 명사다. 그러므로 제대로 번역하면 '단순한 참조'가 정확하다.
8.2.
(SS) Here the only consideration is that the economic conception in question must be of some significance to the history of science, that it is the more or less adequate theoretical expression of the economic situation of its time.
(BF) Here the only consideration is that the economic conception in question must be of some significance to the history of the science, that it is the more or less adequate theoretical expression of the economic situation of its time.
(DK) Wobei es nur darauf ankommt, daß die fragliche ökonomische Vorstellung für die Geschichte der Wissenschaft Bedeutung hat, daß sie der mehr oder weniger adäquate theoretische Ausdruck der ökonomischen Lage ihrer Zeit ist.
강 교수는 'es nur darauf ankommt'를 '중요한 것은'이라고 번역했는데,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이라고 서술하는 게 옳다. 'Vorstellung'은 'idea'를 뜻한다. 강 교수는 'die Geschichte der Wissenschaft'를 그냥 '역사'라고 번역했다. '학문(혹은 과학)의 역사'가 옳은 표현이다. 수정 번역해보자. "여기서 단지 고려해야 할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제학적 견해가 학문(혹은 과학)의 역사에 중요성을 가졌는지 이며, 대체로 당시의 경제 상황에 적절한 이론적 수사(修辭)였는지 여부이다."
8.3.
(SS) Hence these quotations are only a running commentary to the text, a commentary borrowed from the history of economic science, and establish the dates and originators of certain of the more important advances in economic theory.
(BF) Hence these quotations are only a running commentary to the text, a commentary borrowed from the history of economic science. They establish the dates and originators of certain of the more important advances in economic theory.
(DK) Zitate bilden also nur einen der Geschichte der ökonomischen Wissenschaft entlehnten laufenden Kommentar zum Text und stellen die einzelnen wichtigeren Fortschritte der ökonomischen Theorie nach Datum und Urheber fest.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서 번역했다. 강 교수의 번역을 다시 번역했다. "그러므로 이들 인용문은 단지 본문에 대한 현재의 주석으로부터 차용(借用)한 경제학의 역사 중 하나이며, 경제학적 이론의 개별적인 중요한 진보가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를 밝힌다."
8.4.
(SS) And that was a very necessary thing in a science whose historians have so far distinguished themselves only by tendentious ignorance characteristic of careerists.
(BF) And that was a very necessary thing in a science whose historians have so far distinguished themselves only by the tendentious ignorance characteristic of place-hunters.
(DK) Und das war sehr nötig in einer Wissenschaft, deren Geschichtschreiber bisher nur durch tendenziöse, fast streberhafte Unwissenheit sich auszeichnen.
DK의 'Wissenschaft, deren Geschichtschreiber …'를 강 교수는 '학문의 역사'라고 번역했는데, 'Geschichtschreiber'(Geschichtsschreiber를 잘못 표기한 것 같다)는 'historian 혹은 historiographer(역사학자 혹은 학자)'를 뜻하므로 '역사가의 학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으며, 이는 결국 '경제학자의 학문'을 가리킨다. 다시 번역해보자. "그리고 그것(인용)은 지금까지 자신을 멍청이와 같은 고의적 무지함으로 구분 지었던 역사학자의 학문에 매우 필요한 것이다."

제2권은 아마 1884년 중에 발간될 수 있을 것이다.

1883년 11월 7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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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 (1) (2) (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62~65쪽에 해당한다.



프랑스어판 서문

모리스 라 샤트르 선생에게

친애하는 선생,

자본의 번역을 정기적인 분책으로 나누어 출판하겠다는 선생의 생각을 저는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런 형태가 되면 노동자들은 이 저작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테고, 바로 그런 생각은 내가 보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생의 아이디어가 갖는 동전의 밝은 앞면에 불과하고 거기에는 또 다른 어두운 뒷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사용한 연구방법—아직 경제적인 문제들에는 적용된 적이 없는—은 처음 몇 장을 읽어나가는 데서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이 책은 시원시원하게 곧장 읽어나가기 어렵게 되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언제나 결론에 대해서 조바심을 내고 일반적인 원리와 자신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들 사이의 관련을 빨리 알아내고자 하는 성향을 지닌 프랑스 대중은 이 책의 앞부분만 읽고는 더 이상 읽기를 중단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점에 대하여 나로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미리 이 점을 알리고 각오를 다지게끔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하는 데에는 평탄한 길이 없으며,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어 기어 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습니다. [1.1]

1872년 3월 18일, 런던
마르크스

1.1.
(SS) To the citizen Maurice Lachâtre

Dear Citizen,

I applaud your idea of publishing the translation of “Das Kapital” as a serial. In this form the book will be more accessible to the working class, a consideration which to me outweighs everything else.

That is the good side of your suggestion, but here is the reverse of the medal: the method of analysis which I have employed, and which had not previously been applied to economic subjects, makes the reading of the first chapters rather arduous, and it is to be feared that the French public, always impatient to come to a conclusion, eager to know the connexion between general principles and the immediate questions that have aroused their passions, may be disheartened because they will be unable to move on at once.

That is a disadvantage I am powerless to overcome, unless it be by forewarning and forearming those readers who zealously seek the truth. There is no royal road to science, and only those who do not dread the fatiguing climb of its steep paths have a chance of gaining its luminous summits.

Believe me, dear citizen,
Your devoted,
Karl Marx
London, March 18, 1872
(DK) An den Bürger Maurice La Châtre

Werter Bürger!

Ich begrüße Ihre Idee, die Übersetzung des "Kapitals" in periodischen Lieferungen herauszubringen. In dieser Form wird das Werk der Arbeiterklasse leichter zugänglich sein, und diese Erwägung ist für mich wichtiger als alle anderen.

Das ist die Vorderseite Ihrer Medaille, aber hier ist auch die Kehrseite: Die Untersuchungsmethode, deren ich mich bedient habe und die auf ökonomische Probleme noch nicht angewandt wurde, macht die Lektüre der ersten Kapitel ziemlich schwierig, und es ist zu befürchten, daß das französische Publikum, stets ungeduldig nach dem Ergebnis und begierig, den Zusammenhang zwischen den allgemeinen Grundsätzen und den Fragen zu erkennen, die es unmittelbar bewegen, sich abschrecken läßt, weil es nicht sofort weiter vordringen kann.

Das ist ein Nachteil, gegen den ich nichts weiter unternehmen kann, als die nach Wahrheit strebenden Leser von vornherein darauf hinzuweisen und gefaßt zu machen. Es gibt keine Landstraße für die Wissenschaft, und nur diejenigen haben, Aussicht, ihre lichten Höhen zu erreichen, die die Mühe nicht scheuen, ihre steilen Pfade zu erklimmen.
Karl Marx



프랑스어판 후기

독자들에게

루아(J. Roy)는 직역에 가까울 정도로 최대한 엄밀하게 번역하고자 노력했으며, 자신의 이런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그의 성실성 때문에 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본문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수정작업은 분책이 발간될 때마다 그때그때 이루어져야 했고 그래서 한결같은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으며 문체의 통일도 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일단 이 수정작업에 착수하고 나자 그것의 원본에 해당하는 독일어본(제2판)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즉 어떤 곳은 설명을 단순화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설명을 보충하기도 했으며 역사적인 자료나 통계자료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비판적인 주석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 프랑스어판은 비록 문장에는 결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독일어 원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학문적 가치가 있으며 독일어에 능통한 독자들도 참고할만한 것이다.

이제 독일어 제2판의 후기 가운데 독일에서의 경제학의 발전과 이 저작에서 사용된 방법에 대한 부분을 아래에서 옮겨두고자 한다. 5) [2.1]

1875년 4월 28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2.1.
(SS) To the reader

Mr. J. Roy set himself the task of producing a version that would be as exact and even literal as possible, and has scrupulously fulfilled it. But his very scrupulosity has compelled me to modify his text, with a view to rendering it more intelligible to the reader. These alterations, introduced from day to day, as the book was published in parts, were not made with equal care and were bound to result in a lack of harmony in style.

Having once undertaken this work of revision, I was led to apply it also to the basic original text (the second German edition), to simplify some arguments, to complete others, to give additional historical or statistical material, to add critical suggestions, etc. Hence, whatever the literary defects of this French edition may be, it possesses a scientific value independent of the original and should be consulted even by readers familiar with German.

Below I give the passages in the Afterword to the second German edition which treat of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Economy in Germany and the method employed in the present work.
Karl Marx
London, April 28, 1875

(DK) An den Leser

Herr J. Roy hat es unternommen, eine so genaue und selbst wörtliche Übersetzung wie möglich zu geben ; er hat seine Aufgabe peinlich genau erfüllt. Aber gerade seine peinliche Genauigkeit hat mich gezwungen, die <32> Fassung zu ändern, um sie dem Leser zugänglicher zu machen. Diese Änderungen, die von Tag zu Tag gemacht wurden, da das Buch in Lieferungen erschien, sind mit ungleicher Sorgfalt ausgeführt worden und mußten Stilungleichheiten hervorrufen.

Nachdem ich mich dieser Revisionsarbeit einmal unterzogen hatte, bin ich dazu gekommen, sie auch auf den zugrunde gelegten Originaltext anzuwenden (die zweite deutsche Ausgabe), einige Erörterungen zu vereinfachen, andre zu vervollständigen, ergänzendes historisches oder statistisches Material zu geben, kritische Bemerkungen hinzuzufügen etc. Welches auch die literarischen Mängel dieser französischen Ausgabe sein mögen, sie besitzt einen wissenschaftlichen Wert unabhängig vom Original und sollte selbst von Lesern herangezogen werden, die der deutschen Sprache mächtig sind.

Ich gebe weiter unten die Stellen des Nachworts zur zweiten deutschen Ausgabe, die sich mit der Entwicklung der politischen Ökonomie in Deutschland und der in diesem Werk angewandten Methode befassen.

London, 28. April 1875
Karl Marx

<주석>

5) 이 책(MEW를 가리킨다-옮긴이)의 19~28쪽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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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50~61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제2판 후기

먼저 초판의 독자들을 위해서 나는 제2판에서 수정된 점들을 알려 드리고자 한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으로는 책의 차례가 좀 더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제2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주(註)는 모두 제2판의 주라는 점을 따로 표시하였다. 본문에서 수정된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1장 제1절에서는 교환가치를 나타내는 등식들의 분석을 통한 가치의 추론과정을 과학적으로 더욱 엄밀하게 수행했으며, 초판에서는 그저 암시하는 것으로만 그쳤던 가치실체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한 가치크기의 결정 간의 관련도 더욱 명시적으로 서술하였다. [2.1]   제1장 제3절 「가치형태」는 완전히 새롭게 고쳐 썼는데 그것은 초판에서 이 부분이 중복해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했던 부분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여두자면, 이 중복 서술된 부분은 하노버에 사는 나의 친구 쿠겔만(L. Kugelmann) 박사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1867년 봄 내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함부르크(Hamburg)에서 1차 교정지가 도착했는데, 그는 나에게 대다수 독자들을 위해서는 가치형태에 관한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추가해설이 필요하다고 설득하였다. ―제1장의 마지막 절인 「상품의 물신성」은 대부분 다시 고쳐 썼다. 제3장 제1절 「가치척도」는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는데, 이는 이 부분이 초판에서는 『경제학 비판』(베를린, 1859년)에서 이미 다루어진 설명을 참고하도록 하고 소홀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제7장, 특히 제2절 부분은 꽤 많이 수정되었다.

2.1.
(SS) In Chapter I, Section 1, the derivation of value from an analysis of the equations by which every exchange-value is expressed has been carried out with greater scientific strictness; likewise the connexion between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magnitude of value by socially necessary labour-time, which was only alluded to in the first edition, is now expressly emphasised.
(BF) In Chapter 1, Section 1, the derivation of value by analysis of the equations in which every exchange-value is expressed has been carried out with greater scientific strictness; similarly, the connection between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magnitude of value by the labour-time socially necessary, which was alluded to in the first edition, is now expressly emphasized.
(DK) Kapitel I, 1 ist die Ableitung des Werts durch Analyse der Gleichungen, worin sich jeder Tauschwert ausdrückt, wissenschaftlich strenger durchgeführt, ebenso der in der ersten Ausgabe nur angedeutete Zusammenhang zwischen der Wertsubstanz und der Bestimmung der Wertgröße durch gesellschaftlich-notwendige Arbeitszeit ausdrücklich hervorgehoben.
DK의 'ausdrücklich hervorgehoben'을 강 교수는 '더욱 명시적으로 서술했다'라고 번역했고, SS와 BF에서는 'now expressly emphasized'로 번역했다. 'ausdrücklich'는 'expressly(명시적으로, 특별히)', 'hervorgehoben'은 'stressed(강조된)'를 뜻한다. '명시적으로'와 '특별히'는 같은 뜻이지만, '특별히'로 표현하는 게 더 명료해 보인다. 따라서 '특별히 강조되었다'로 나타낼 수 있다.

단지 표현을 다듬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곳곳의 본문 수정을 일일이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수정은 책 전체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파리에서 발간된 프랑스어 번역본을 수정하면서 독일어 원본 가운데 많은 부분이 때로는 좀 더 엄격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고 때로는 표현을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으며 또 때로는 몇몇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3.1]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책이 매진되어 1872년 1월에는 제2판의 인쇄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1871년 가을이었는데, 이때 나는 다른 긴급한 여러 일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3.1.
(SS) Nevertheless I find now, on revising the French translation appearing in Paris, that several parts of the German original stand in need of rather thorough remoulding, other parts require rather heavy stylistic editing, and still others painstaking elimination of occasional slips.
(BF) Nevertheless, I find now, on revising the French translation which is appearing in Paris, that several parts of the German original stand in need of a rather thorough re-working, while other parts require rather heavier stylistic editing, and still others require the painstaking elimination of occasional slips.
(DK) Dennoch finde ich jetzt bei Revision der zu Paris erscheinenden französischen Übersetzung, daß manche Teile des deutschen Originals hier mehr durchgreifende Umarbeitung, dort größere stilistische Korrektur oder auch sorgfältigere Beseitigung gelegentlicher Versehn erheischt hätten.
강 교수는 '때로는 엄격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고, 때로는 … 때로는 …'이란 표현을 썼는데, SS, BF, DK에서는 그런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Beseitigung'은 'elimination 혹은 removal (제거)'이란 뜻으로 '바로잡음'은 오역이다. 전반적으로는 강 교수 번역이 SS와 BF보다 나아 보이지만, 강 교수 번역도 깔끔하지는 않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파리에서 발간될 프랑스어 번역본을 수정하면서 독일어 원본의 몇몇 부분은 면밀한 개정작업이 필요하지만, 다른 부분은 표현을 세심하게 다듬거나 혹은 몇몇 잘못된 부분을 없애는 등의 엄청난 수고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자본』(Das Kapital)에 대한 이해가 독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급속하게 확산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 작업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빈(Wien)의 공장주인 마이어(Sigmund Mayer)가 보불 전쟁(the Franco-Prussian War) 기간 동안에 출간한 소책자(Die Sociale Frage in Wien, Vienna, 1871) 안에서 독일적인 유산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이론적 감각이 독일의 이른바 식자 계급에게서는 완전히 소멸해버린 반면 독일의 노동자 계급에서는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4.1]

4.1.
(SS) Herr Mayer, a Vienna manufacturer, who in economic matters represents the bourgeois point of view, in a pamphlet published during the Franco-German War aptly expounded the idea that the great capacity for theory, which used to be considered a hereditary German possession, had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amongst the so-called educated classes in Germany, but that amongst its working class, on the contrary, that capacity was celebrating its revival.
(BF) A man who in economic matters represents the bourgeois standpoint, the Viennese manufacturer Herr Mayer, in a pamphlet published during the Franco-German War, aptly expounded the idea that the great capacity for theory, which used to be considered a hereditary German attribute, had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amongst the so-called educated classes in Germany, but that amongst the working class, on the contrary, it was enjoying a revival.
(DK) Ein Mann, ökonomisch auf dem Bourgeoisstandpunkt, Herr Mayer, Wiener Fabrikant, tat in einer während des deutsch-französischen Kriegs veröffentlichten Broschüre treffend dar, daß der große theoretische Sinn, der als deutsches Erbgut galt, den sog. gebildeten Klassen Deutschlands durchaus abhanden gekommen ist, dagegen in seiner Arbeiterklasse neu auflebt.
SS와 BF 번역은 난잡한 느낌이다. 강 교수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깔끔하지만, 그럼에도 다소 장황하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적으로 부르주아의 입장에 서 있는 빈(Wien)의 공장주(工場主) 마이어 씨가 보불 전쟁(the Franco-Prussian War) 기간에 출판한 소책자에는 독일의 유산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이론적 감각이 소위 독일의 식자 계급에서는 완전히 소멸했지만 노동자 계급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고 적절히 제시되어 있다."

독일에서 경제학은 지금 이 시간까지 외래 학문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구스타프 폰 귈리히(Gustav von Gülich)는 『주요 무역국가의 상업·공업·농업의 역사(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nd des Ackerbaus, &c..)』, 특히 1830년에 출간한 제1권과 제2권에서 우리나라(독일-옮긴이)에서 자본주의적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조건들을 거의 대부분 설명하였다. [5.1]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학의 현실적인 토대가 결여되어 있었다. 경제학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제품 상태로 수입되었다. 그래서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은 언제나 배우는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외국의 현실에 입각한 이론적 표현들은 이들에 의한 하나의 교의집(敎義集)으로 변해버렸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소(小)부르주아적 세계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곡해되었던 것이다. [5.2] 이들은 피할 수 없는 학문적 무력감과 사실상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서 모두 다 아는 교수인 척해야 하는 양심의 가책을 은폐하기 위하여 현란한 문헌사적 학식을 둘러대거나 이른바 재정학(Kameralwissenschaften: 독일의 중상주의 경제학-옮긴이)―청운의 꿈을 품은(hoffnungsvoll) 2) 독일의 관료 지망생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연옥(煉獄)의 불길과도 같은 복잡한 지식들의 혼합물―에서 빌려 온 낯선 자료들을 혼합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하곤 하였다. [5.3]

5.1.
(SS) Gustav von Gülich in his "Historical description of Commerce, Industry," &c., especially in the two first volumes published in 1830, has examined at length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in Germany,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consequently the development, in that country, of modern bourgeois society.
(BF) In his 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sw., especially in the first two volumes, published in 1830, Gustav von Gülich has already examined, for the most part,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n Germany, and consequently of the construction there of modern bourgeois society.
(DK) Gustav von Gülich hat in "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sw.", namentlich in den 1830 herausgegebnen zwei ersten Bänden seines Werkes, großenteils schon die historischen Umstände erörtert, welche 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 bei uns hemmten, daher auch den Aufbau der modernen bürgerlichen Gesellschaft.
DK에서 'die historischen Umstände … , welche 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 bei uns hemmten, daher auch den Aufbau der modernen bürgerlichen Gesellschaft'에 해당하는 부분을 SS에서는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in Germany,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consequently the development, in that country, of modern bourgeois society'로 번역했으며 (BF도 비슷하다), 강 교수는 '자본주의적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조건들'로 번역하고 있다.
우선, 강 교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혹은 생산방식)의 발달(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을 '자본주의적 발달'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Produktionsweise'는 'Produktions (productions) + Weise (way)'의 합성어로 '생산양식' 혹은 '생산방식'을 뜻한다. 사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자본주의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 구조"를 뜻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 아래에서 생산방식·생산관계·교환관계라는 경제적 토대 등의 하부구조뿐만 아니라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설령 번역이 '생산방식'을 뜻한다고 해도, '자본주의적 발달'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느냐란 생각이 든다. 단순한 오역인지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신념을 따랐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강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오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은 같이 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이 선행해야만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은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 강 교수의 번역은 다음처럼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달의 저해와 결과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발달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상황"
5.2.
(SS) The theoretical expression of a foreign reality was turned, in their hands, into a collection of dogmas, interpreted by them in terms of the petty trading world around them, and therefore misinterpreted.
(BF) The theoretical expression of a alien reality turned in their hands into a collection of dogmas, interpreted by them in the sense of the petty-bourgeois world surrounding them, and therefore misinterpreted.
(DK) Der theoretische Ausdruck einer fremden Wirklichkeit verwandelte sich unter ihrer Hand in eine Dogmensammlung, von ihnen gedeutet im Sinn der sie umgebenden kleinbürgerlichen Welt, also mißdeutet.
SS, BF 그리고 DK에서는 바로 앞의 문장과 이 문장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DK의 'der sie umgebenden kleinbürgerlichen Welt'를 SS는 'the petty trading world around them', BF에서는 'the petty-bourgeois world surrounding them', 강 교수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소(小)부르주아적 세계'라고 번역했다. 'kleinbürgerlichen'은 klein + bürgerlichen'의 합성어로 'klein'은 'petite'란 뜻이고 'bürgerlichen'의 원형은 'bourgeois'를 뜻하는 'bürgerlich'라는 형용사로 '소(小)부르주아'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5.3.
(SS) The feeling of scientific impotence, a feeling not wholly to be repressed, and the uneasy consciousness of having to touch a subject in reality foreign to them, was but imperfectly concealed, either under a parade of literary and historical erudition, or by an admixture of extraneous material, borrowed from the so-called "Kameral" sciences, a medley of smatterings, through whose purgatory the hopeful candidate for the German bureaucracy has to pass.
(BF) The feeling of scientific impotence, a feeling which could not entirely be suppressed, and the uneasy awareness that they had to master an area in fact entirely foreign to them, was only imperfectly concealed beneath a parade of literary and historical erudition, or by an admixture of extraneous material borrowed from the so-called cameral science, a medley of smatterings through whose purgatory the hopeful candidate for the German bureaucracy has to pass.
(DK) Das nicht ganz unterdrückbare Gefühl wissenschaftlicher Ohnmacht und das unheimliche Gewissen, auf einem in der Tat fremdartigen Gebiet schulmeistern zu müssen, suchte man zu verstecken unter dem Prunk literarhistorischer Gelehrsamkeit oder durch Beimischung fremden Stoffes, entlehnt den sog. Kameralwissenschaften, einem Mischmasch von Kenntnissen, deren Fegfeuer der hoffnungsvolle Kandidat deutscher Bürokratie zu bestehn hat.
DK의 'und das unheimliche Gewissen, auf einem in der Tat fremdartigen Gebiet schulmeistern zu müssen'을 SS는 'the uneasy consciousness of having to touch a subject in reality foreign to them'으로, BF는 'the uneasy awareness that they had to master an area in fact entirely foreign to them'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Gewissen'은 'conscience(양심 혹은 도의심)'란 단어로써 'das unheimliche Gewissen'은 '불편한 양심(혹은 도의심)'을 뜻하는데, SS와 BF에서 각각 사용한 'consciousness'와 'awareness'는 'conscience'로 바꿔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auf … schulmeistern zu müssen'은 SS와 BF에서는 having to lecture on …'이라고 번역했는데, 'schulmeistern'은 'Schule + meistern'의 합성어로 보인다. 'Schulmeister는 '(남자)교사'를 뜻하는데, 그렇다면 'schulmeistern'은 '(학교에서 선생이) 가르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의 독일어 원문은 "사실상 그들에게는 낯선 영역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편치 않은 양심"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강 교수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잉 해석했다.

1848년 이후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급속히 발전했고 오늘날에는 이미 전성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6.1] 그러나 우리의 전문가들에게 운명은 여전히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이 경제학을 편견 없이 연구할 수 있었던 당시 독일의 현실에는 근대적인 경제적 관계가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근대적인 경제적 관계가 이제 현실화하자 부르주아적 시각에서는 그들의 편견 없는 연구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것인 한, 즉 다시 말해서 그것이 자본주의적 질서를 역사적으로 잠깐 거쳐 가는 하나의 발전단계로서가 아니라 거꾸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사회적 생산의 형태로서 이해되는 한, 그것이 과학으로 남을 수 있는 경우란 오직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단지 분산된 형태로만 나타나고 있는 동안뿐이다. [6.2]

6.1.
(SS) Since 1848 capitalist production has developed rapidly in Germany, and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
(BF) Since 1848 capitalist production has developed rapidly in Germany, and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
(DK) Seit 1848 hat sich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 rasch in Deutschland entwickelt und treibt heutzutage bereits ihre Schwindelblüte.
DK의 'treibt heutzutage bereits ihre Schwindelblüte'를 SS와 BF는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으로, 강 교수는 '오늘날에는 이미 전성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번역했는데 'speculation'은 '투기(投機)'를, 'swindling'은 ‘사기(詐欺)’를 뜻한다. 따라서 SS와 BF의 번역은 한국어로 '투기와 사기로 가득하다'라고 해석된다. DK의 'Schwindelblüte'는 'Schwindel + blüte'의 합성어로 중의적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izzy bloom' 혹은 'the bloom of swindling'인데, 맥락을 따져본다면 '만개(滿開)하다' 혹은 '번성하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6.2.
(SS) In so far as Political Economy remains within that horizon, in so far, i.e., as the capitalist regime is looked upon as the absolutely final form of social production, instead of as a passing historical phase of its evolution, Political Economy can remain a science only so long as the class struggle is latent or manifests itself only in isolated and sporadic phenomena.
(BF) In so far as political economy is bourgeois, i.e. in so far as it views the capitalist order as the absolute and ultimate form of social production, instead of as a historically transient stage of development, it can only remain a science while the class struggle remains latent or manifests itself only in isolated and sporadic phenomena.
(DK) Soweit sie bürgerlich ist, d.h. die kapitalistische Ordnung statt als geschichtlich vorübergehende Entwicklungsstufe, umgekehrt als absolute und letzte Gestalt der gesellschaftlichen Produktion auffaßt, kann die politische Ökonomie nur Wissenschaft bleiben, solange der Klassenkampf latent bleibt oder sich in nur vereinzelten Erscheinungen offenbart.
DK의 'Erscheinungen'은 'appearance'란 뜻으로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을 비교했을 때, 강 교수의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vereinzelten'의 원형인 'vereinzelt'는 'isolated'와 'scattered' 모두를 뜻한다. 그래서 강 교수는 두 가지 뜻을 함께 표현한 것 같다. 독일어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자본주의적 질서가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이해되는 한, 정치경제학은 계급 투쟁이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거나 또는 고립되고 분산된 형태로 나타날 때만 단지 과학으로 남아 있다."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덜 발달한 시기에 나타났다. 그 경제학의 최후의 위대한 대표자인 리카도(David Richardo)는 결국 계급 간 이해의 대립, 즉 임금과 이윤 간의 대립과 지대 간의 대립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를 자기 연구의 도약점으로 삼아 이 대립을 소박하게 사회적 자연법칙으로 파악하였다. [7.1]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는 또한 부르주아 경제학이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도달한 것이기도 하였다. [7.2] 리카도가 아직 살아 있던 시기에 이미 리카도의 이론에 반대하여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시스몽디(Jean Charles Léonard Simonde de Sismondi)라는 사람에 의해 제기되었다. 3) [7.3]

7.1.
(SS) Its last great representative, Ricardo, in the end, consciously makes the antagonism of class interests, of wages and profits, of profits and rent, the starting point of his investigations, naively taking this antagonism for a social law of Nature.
(BF) Richardo, ultimately (and consciously) made the antagonism of class interests, of wages and profits, of profits and rent, the starting-point of his investigations, naively taking this antagonism for a social law of nature.
(DK) Ihr letzter großer Repräsentant, Ricardo, macht endlich bewußt den Gegensatz der Klasseninteressen, des Arbeitslohns und des Profits, des Profits und der Grundrente, zum Springpunkt seiner Forschungen, indem er diesen Gegensatz naiv als gesellschaftliches Naturgesetz auffaßt.
강 교수가 '리카도가 대립을 의식해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라고 번역한 부분을 SS와 BF '리카도는 대립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상의 차이는 'bewußt'를 풀이한 방식 때문인 것 같은데, 'bewußt'는 'conscious'란 형용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consciously'라는 부사로도 쓰인다. 그런데 DK에서 'bewußt'는 부사로 쓰였다. 따라서 강 교수의 번역을 수정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정치경제학의) 마지막 위대한 대표자인 리카도는 마침내 의식적으로 계급 이해의 대립, 즉 임금과 이윤 그리고 이윤과 지대의 대립을 자기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순진하게도 이러한 대립을 사회적인 자연법칙으로 간주했다."
7.2.
(DK) Damit war aber auch die bürgerliche Wissenschaft der Ökonomie bei ihrer unüberschreitbaren Schranke angelangt.
독일어 원본에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다.
7.3.
(SS) Already in the lifetime of Ricardo, and in opposition to him, it was met by criticism, in the person of Sismondi.
(BF) Already in Richardo’s lifetime, and in opposition to him, it was met by criticism in the person of Sismondi.
(DK) Noch bei Lebzeiten Ricardos und im Gegensatz zu ihm trat ihr in der Person Sismondis die Kritik gegenüber.
DK의 'in der Person Sismondis'에 대응하는 번역으로 SS와 BF는 'in the person of Sismondi'라고 표현했다. 'in the person of …'은 '…의 자격으로' 또는 '…을 대표[대신]하여'를 뜻하는데, 사실 DK의 'in der Person Sismondis'는 '시스몽디라는 사람에게서'로 해석한다. 따라서 SS와 DK의 번역은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강 교수의 번역도 깔끔한 것은 아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리카도가 살아 있을 당시에 시스몽디란 사람이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비판을 제기했다."

뒤이은 시기인 1820~30년대는 영국의 경제학 영역에서 학문적인 활기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리카도의 이론이 대중화되면서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고 또한 리카도 이론이 기존의 고전파 이론과 투쟁을 벌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8.1] 그리하여 현란한 시합들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벌어진 일들은 유럽 대륙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 논쟁이 평론지나 시사적인 소책자 그리고 팸플릿 등을 통해 산재된 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논쟁은 별다른 편견 없이 솔직한 형태로 이루어졌는데―물론 리카도의 이론이 가끔씩 이미 부르주아 경제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사용된 적도 있긴 하지만―이는 당시의 시대상황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8.2] 즉 한편으로는 대(大)공업 자체가 이제 막 자신의 유년기를 겨우 벗어나고 있었을 뿐인데, 이는 대공업이 1825년의 위기를 계기로 해서야 비로소 근대적인 형태의 주기적 순환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투쟁이 다른 사회적 갈등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이들 갈등이란 크게 두 가지였다. [8.3] 하나는 정치적 갈등으로 신성동맹(the Holy Alliance)을 둘러싸고 모여 있던 정부 및 봉건귀족들과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되던 인민 대중 사이의 갈등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갈등으로 산업자본과 토지소유 귀족들 사이의 갈등이었는데 이 갈등은 프랑스에서는 분할지 소유와 대토지 소유 간의 갈등 때문에 배후에 감춰져 있었지만, 영국에서는 곡물법(the Corn Laws) 이후 바깥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8.4] 이 무렵 영국의 경제학 문헌들을 보면 마치 프랑스에서 케네(François Quesnays) 사후(死後)에 밀어닥쳤던 경제적인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늦여름의 따스한 날씨가 봄을 연상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1830년이 되면서 이제 결정적인 위기가 밀어닥쳤다.

8.1.
(SS) It was the time as well of the vulgarising and extending of Ricardo’s theory, as of the contest of that theory with the old school.
(BF) It was the period of vulgarizing and the extending of Richardo’s theory, and of the contest of that theory with the old school.
(DK) Es war die Periode wie der Vulgarisierung und Ausbreitung der Ricardosche Theorie, so ihres Kampfes mit der alten Schule.
강 교수는 번역은 깔끔하지 않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기는 리카도의 이론이 대중화되고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으며, 고전학파와의 논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8.2.
SS, BF 그리고 DK에는 '솔직한'이란 표현이 없다.
8.3.
"이들 갈등이란 크게 두 가지였다."는 강 교수가 임의로 삽입한 문장이다.
8.4.
(SS) On the other hand, the class struggle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forced into the background, politically by the discord between the governments and the feudal aristocracy gathered around the Holy Alliance on the one hand, and the popular masses, led by the bourgeoisie, on the other; economically by the quarrel between industrial capital and aristocratic landed property - a quarrel that in France was concealed by the opposition between small and large landed property, and that in England broke out openly after the Corn Laws.
(BF) On the other hand, the class struggle between capital and labour was forced into the background, politically by the discord between the governments and the feudal aristocracy gathered around the Holy Alliance, assembled in one camp, and the mass of the people, led by the bourgeoisie, in the other camp, and economically by the quarrel between industrial capital and aristocratic landed property. This latter quarrel was concealed in France by the antagonism between small-scale, fragmented property and big landownership, but in England it broke out openly after the passing of the Corn Laws.
(DK) Andrerseits blieb der Klassenkampf zwischen Kapital und Arbeit in den Hintergrund gedrängt, politisch durch den Zwist zwischen den um die Heilige Allianz gescharten Regierungen und Feudalen und der von der Bourgeoisie geführten Volksmasse, ökonomisch durch den Hader des industriellen Kapitals mit dem aristokratischen Grundeigentum, der sich in Frankreich hinter dem Gegensatz von Parzelleneigentum und großem Grundbesitz verbarg, in England seit den Korngesetzen offen ausbrach.
DK와 SS는 한 문장으로 서술했고, 강 교수의 번역과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이 문장과 그다음 문장은 원래 하나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 투쟁은 뒷전으로 밀려났는데, 정치적으로는 정부와 봉건 귀족이 모인 신성 동맹과 부르주아가 이끄는 인민 대중 사이의 갈등이었고, 경제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분할지 소유와 대토지 소유 간의 대립으로 은폐된 산업 자본과 귀족적 토지 소유 사이의 분쟁이었는데, 영국에서는 곡물법 제정 이후 (그러한 분쟁)이 공개적으로 발생했다."

부르주아들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정권을 획득하였다. 그때부터 계급투쟁은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점차 뚜렷하고 급박한 형태를 띠어갔다. 그리고 계급투쟁은 과학적 부르주아 경제학의 종언을 고하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정리(Theorem)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자본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자본에 편리한가 불편한가, 자본이 허락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되었다. [9.1] 사심 없는 연구 대신 돈벌이를 위한 논쟁이 자리를 잡았고, 편견 없는 연구 대신 비양심적이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변론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9.2] 그러나 공장주 코브던(Cobden)과 브라이트(Bright)가 선봉에 섰던 곡물법 반대동맹이 날림으로 만들어 시중에 배포한 조잡한 소책자까지만 해도 토지소유귀족들에 대한 그들의 반론 속에는 비록 전혀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역사적인 흥미 정도는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아직 남아 있었다. [9.3] 그러나 로버트 필(Robert Peel) 이후 자유무역입법은 이런 마지막 양념조차도 속류 경제학으로 완전히 지워버리고 말았다. [9.4]

9.1.
(SS) It was thenceforth no longer a question, whether this theorem or that was true, but whether it was useful to capital or harmful, expedient or inexpedient, politically dangerous or not.
(BF) It was thenceforth no longer a question whether this or that theorem was true, but whether it was useful to capital or harmful, expedient or inexpedient, in accordance with police regulations or contrary to them.
(DK) Es handelte sich jetzt nicht mehr darum, ob dies oder jenes Theorem wahr sei, sondern ob es dem Kapital nützlich oder schädlich, bequem oder unbequem, ob polizeiwidrig oder nicht.
'polizeiwidrig'는 'illegal'이란 뜻이므로 '자본이 허락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고 서술한 강 교수의 번역은 '정치적으로 불법이냐 아니냐 (혹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냐)'라고 수정해야 한다.
9.2.
(SS) In place of disinterested inquirers, there were hired prize fighters; in place of genuine scientific research, the bad conscience and the evil intent of apologetic.
(BF) In place of disinterested inquirers, there stepped hired prize-fighters; in plate of genuine scientific research, the bad conscience and evil intent of apologetics.
(DK) An die Stelle uneigennütziger Forschung trat bezahlte Klopffechterei, an die Stelle unbefangner wissenschaftlicher Untersuchung das böse Gewissen und die schlechte Absicht der Apologetik.
SS와 BF는 'uneigennütziger Forschung'을 'disinterested inquirers'로 번역했다. 'Forschung'은 'research(연구)'를 뜻하므로 사람 혹은 직책을 뜻하지는 않는다. SS와 BF는 'Klopffechterei'를 'prize-fighters'로, 강 교수는 '돈벌이를 위한 논쟁의 자리'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원래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prize-fight'는 '맨손으로 대결하는 프로 권투 경기'를 뜻한다.
9.3.
(SS) Still, even the obtrusive pamphlets with which the Anti-Corn Law League, led by the manufacturers Cobden and Bright, deluged the world, have a historic interest, if no scientific one, on account of their polemic against the landed aristocracy.
(BF) Still, even the importunate pamphlets with which the Anti-Corn Law Leagues, led by the manufactures Cobden and Bright, deluged the world offer a historical interest, if no scientific one, on account of their polemic against the landed aristocracy.
(DK) “Indes selbst die zudringlichen Traktätchen, welche die Anti-Corn-Law League, mit den Fabrikanten Cobden und Bright an der Spitze, in die Welt schleuderte, boten, wenn kein wissenschaftliches, doch ein historisches Interesse durch ihre Polemik gegen die grundeigentümliche Aristokratie.
DK에서는 '날림으로 만들어', '조잡한' 등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공장주 코브던과 브라이트가 이끈 곡물법 반대동맹이 시중에 배포한 공격적인 소책자는, 과학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토지소유 귀족들을 향한 반론에 대해서는 역사적 흥미를 제공한다."
9.4.
(SS) But since then the Free Trade legislation, inaugurated by Sir Robert Peel, has deprived vulgar economy of this its last sting.
(BF) But since then the free-trade legislation inaugurated by Sir Robert Peel has deprived vulgar economics even of this, last sting.
(DK) Auch diesen letzten Stachel zog die Freihandelsgesetzgebung seit Sir Robert Peel der Vulgärökonomie aus.
강 교수는 'Stachel'을 '양념'으로 번역했는데, '신랄함'이 옳은 표현이다. 덧붙여 SS 그리고 BF의 번역과 강 교수의 번역 사이에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보이는데, SS와 BF는 "그러나 그 이후 로버트 필 경에 의해 상정된(inaugurated) 자유무역입법은 속류 경제학에서 이런 마지막 신랄함 조차도 완전히 없애버렸다"이다. 그런데 독일어 원문을 따른다면 강 교수의 번역이 타당해 보인다. 강 교수의 번역을 토대로 수정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로버트 필 경 이후에 자유무역입법은 이런 마지막 신랄함조차도 속류 경제학에서 완전히 없애버렸다."

1848년 유럽 대륙의 혁명은 영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직 과학적인 의의를 주장하고 지배계급의 단순한 궤변가나 앞잡이 노릇 이상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자본의 경제학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프롤레타리아들의 요구와 조화시켜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가장 잘 대표되는 얼빠진 혼합주의(Synkretismus)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이자 평론가인 체르니셰프스키(Nikolay Tschernyschewski)가 자신의 책 『밀의 경제학 개요(Outlines of Political Economy According to Mill)』에서 이미 탁월하게 해명하였듯이 바로 "부르주아" 경제학의 파산선언이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이미 역사적인 투쟁을 통해서 그것의 적대적인 성격이 요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야 성숙해졌고 이때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는 벌써 독일의 부르주아들보다 훨씬 더 분명한 이론적 계급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11.1] 그래서 독일에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과학으로서 가능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자마자 곧바로 다시 불가능해져 버렸던 것이다.

11.1.
(SS) In Germany, therefore,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came to a head, after its antagonistic character had already, in France and England, shown itself in a fierce strife of classes. And meanwhile, moreover, the German proletariat had attained a much more clear class-consciousness than the German bourgeoisie.
(BF) In Germany, therefore,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came to maturity after its antagonistic character had already been revealed, with much sound and fury, by the historical struggles which took place in France and England. Moreover, the German proletariat had in the meantime already attained a far clearer theoretical awareness than the German bourgeoisie.
(DK) In Deutschland kam also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 zur Reife, nachdem ihr antagonistischer Charakter sich in Frankreich und England schon durch geschichtliche Kämpfe geräuschvoll offenbart hatte, während das deutsche Proletariat bereits ein viel entschiedneres theoretisches Klassenbewußtsein besaß als die deutsche Bourgeoisie.
SS와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눴다. 강 교수 번역이 SS와 BF보다 명료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대변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교활하고 돈벌이를 즐기며 실리적인 무리로, 이들은 속류 경제학의 옹호론자 가운데 가장 천박하고 바로 그래서 가장 성공한 바스티아((Claude-)Frédéric Bastiat)의 깃발 아래 몰려들었다. 다른 하나는 교수로서의 학문적인 품위를 과시하려는 무리로, 이들은 존 스튜어트 밀을 추종하면서 서로 합칠 수 없는 것을 합치려고 노력하였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고전파 시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몰락하던 시기에도 독일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학생으로서, 즉 그것의 모방자이자 추종자로서 외국 도매상인의 소매상 역할에만 머물러 있었다.



독일 사회의 이런 독특한 역사적 발전과정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어떠한 독창적인 발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대한 비판까지도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 그런 비판이 어떤 계급을 대변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계급,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혁과 계급의 궁극적인 철폐를 자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독일 부르주아들의 박식하면서도 동시에 무식하기도 한 대변자들은 내 초기 저작들에 대해서 그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 수법으로 『자본』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일단 묵살해버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런 수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내 책에 대한 비판을 한다는 핑계로 "부르주아적 의식을 진정시키기 위한" 처방전을 쓰기도 했지만 이도 또한 노동자신문에서―『폴크스슈타트』(Volksstaat: ‘인민의 국가’라는 뜻-옮긴이)에 실린 요제프 디츠켄(Joseph Dietzgen)의 논문을 보다―그들을 능가하는 투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들 투사에 대한 답변을 아직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4) [14.1]

14.1.
(SS) As soon as they found that these tactics no longer fitted in with the conditions of the time, they wrote, under pretence of criticising my book, prescriptions “for the tranquillisation of the bourgeois mind.” But they found in the workers’ press — see, e.g., Joseph Dietzgen’s articles in the Volksstaat — antagonists stronger than themselves, to whom (down to this very day) they owe a reply.
(BF) As soon as they found that these tactics no longer fitted the conditions of the time, they wrote prescriptions ‘for tranquillizing the bourgeois mind’, on the pretext of criticizing my book. But they found in the workers’ press — see for example Joseph Dietzgen’s articles in the Volksstaat — chapions stronger than themselves, to whom they still owe a reply even now.
(DK) Sobald diese Taktik nicht länger den Zeitverhältnissen entsprach, schrieben sie, unter dem Vorwand, mein Buch zu kritisieren, Anweise "Zur Beruhigung des bürgerlichen Bewußtseins", fanden aber in der Arbeiterpresse - sieh z.B. Joseph Dietzgens Aufsätze im "Volksstaat" - überlegene Kämpen, denen sie die Antwort bis heute schuldig.
DK와 강 교수 번역은 한 문장이지만, SS와 BF는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눴다.

『자본』의 우수한 러시아어판이 1872년 봄 페테르부르크에서 발간되었다. 3,000부를 발행한 이 판은 지금 벌써 거의 매진되었다. 이미 1871년 키예프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 지베르(N. Sieber)는 그의 저서 『리카도의 가치 및 화폐 이론(David Richardo’s Theory of Value and of Capital)』에서 가치·화폐·자본에 관한 내 이론이 본질적으로 스미스와 리카도 이론의 필연적인 발전이라고 논증하였다. 그의 이 훌륭한 책을 서유럽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거기에서 순수한 이론적 입장이 일관되게 견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게 될 것이다.



『자본』에서 사용된 방법은 아직 거의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이 책에 대한 해석들이 제각기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6.1]

16.1.
(SS) That the method employed in “Das Kapital” has been little understood, is shown by the various conceptions, contradictory one to another, that have been formed of it.
(BF) That the method employed in Capital has been little understood is shown by the various mutually contradictory conceptions that have been formed it.
(DK) Die im "Kapital" angewandte Methode ist wenig verstanden worden, wie schon die einander widersprechenden Auffassungen derselben beweisen.
'Auffassungen'을 SS와 BF에서는 'conceptions', 강 교수는 '해석'이라고 표현했다. 'Auffassungen'은 'Auffassung'의 복수형으로써 'opinion' 혹은 'view'를 뜻한다. (물론 'conception'이란 뜻도 있다.) 맥락 상 'opinion' 혹은 'view'가 타당해 보인다.

즉 파리에서 발간되는 『실증주의 평론』은 한편으로는 내가 경제학을 형이상학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한번 들어보라!―내가 미래의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리법(콩드류의?)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비난한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지베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고유한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방법은 영국의 모든 학파가 사용하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이 방법의 장점과 단점은 최고의 이론경제학자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블로크(M. Block)―「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들, 『이코노미스트』지 1872년 7월•8월호에서 발췌」―는 내 방법이 분석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발하고 있다.

이 저작을 통해서 마르크스는 가장 뛰어난 분석적 사상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독일의 비평가들은 내 책에 대해 헤겔적 궤변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런데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유럽 통신(Vyestnik Evropy)』에 실린 한 논문(1872년 5월호, 427~436쪽)에서는 『자본』의 방법만을 다루면서 내 연구방법(Forschungsmethode)은 매우 실재론적(realistisch)인 반면 내 서술방법(Darstellungsmethode)은 불행하게도 독일변증법적(deutsch-dialektisch)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서술형태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얼핏 보아 마르크스는 위대한 관념철학자이다. 그것도 그 말이 독일어에서 함축하고 있는 나쁜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는 경제학적 비판에 종사한 자신의 모든 선배들에 비해서 훨씬 더 실재론자(Realist)이다. … 우리는 그를 결코 관념론자(Idealist)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이 필자(카우프만[I. I. Kaufmann])에 대해서 그가 행한 비평 가운데 몇 군데를 발췌하는 것 이상으로 답변을 해줄 수는 없지만, 이 발췌문들은 러시아어 원본을 구할 수 없는 많은 독자들에게 아마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필자는 내가 나의 유물론적 방법의 토대를 설명한 『경제학 비판』(베를린, 1859년)의 내 서문(IV~VII쪽; MEW Bd. 13, 8~10쪽)을 인용하면서 계속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현상들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칙은 그 현상들이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취하고 일정한 시기에 관찰될 수 있는 관련을 맺을 경우에만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법칙이 아니다. [21.1] 그에게서 더욱 중요한 법칙은 이들 현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법칙, 다시 말해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하나의 관련체계에서 다른 관련체계로 이행하는 법칙이다. 그는 먼저 이 법칙을 찾아낸 다음, 이 법칙이 사회생활을 통해서 보여주는 각종 결과를 상세하게 연구한다. … 그럼으로써 마르크스가 가장 힘들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엄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일정한 사회적 관계질서의 필연성을 논증하고 자신의 논증을 받쳐줄 출발점과 주요 거점으로 사용될 수 있는 사실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성해내는 일이다. [21.2.] 이 일은 그가 현재 질서의 필연성과,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사람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이 질서가 다른 질서로 이행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논증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완전히 달성된다. [21.3.] 마르크스는 사회운동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즉 인간의 의지나 의식 그리고 의도와는 무관한, 아니 오히려 이들 의지나 의식·의도를 규정하는 그런 법칙이 지배하는 과정으로 간주하였다. … 만일 의식적인 요소가 문화사에서 이처럼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문화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은 다른 어느 것들보다도 더욱 의식의 어떤 형태나 결과들을 자신의 토대로 삼을 수 없을 것이 당연한 일이다. [21.4] 다시 말해서 비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뿐일 것이다. 그리하여 비판은 하나의 사실을 관념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실들과 비교 대조하는 것에만 국한될 것이다. 이제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두 개의 사실을 가능한 한 자세히 연구하여 사실상 하나의 사실이 다른 사실에 대해서 갖가지 발전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며, 특히 각 질서들의 연쇄, 즉 발전단계들이 서로 고리를 이루면서 이어지는 연쇄를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21.5] 그러나 경제생활의 일반법칙은 똑같은 것이고 그것이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러한 추상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그 반대로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시기에는 저마다 독자적인 법칙이 있다. … 생명은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하고 나면, 즉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고 나면 곧바로 다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21.6] 요컨대 경제생활은 생물학이라는 다른 영역에서의 발전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1.7] … 과거의 경제학자들도 경제법칙을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과 비교하였지만, 그들은 경제법칙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였다. … 현상을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하면 사회적 유기체들은 식물이나 동물의 유기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그렇다, 똑같은 하나의 현상도 각 유기체들의 전체 구조의 차이, 각 구성기관의 차이, 각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는 조건의 차이 등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인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부인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모든 발전단계마다 독자적인 인구법칙이 있다고 단언한다. … 생산력 발전의 차이에 따라서 제반 사회적 관계는 물론 그것을 규정하는 법칙들도 변화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연구하고 해명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경제생활에 대한 모든 세밀한 연구가 가져야 할 목표를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정식화했을 뿐이다. [21.8] … 그런 연구의 과학적인 가치는 하나의 주어진 사회적 유기체가 탄생하여 유지, 발전하다가 더욱 고도의 다른 유기체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규정하는 특수한 법칙을 해명하는 데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책은 사실상 바로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21.9]

21.1.
(SS) and not only is that law of moment to him, which governs these phenomena, in so far as they have a definite form and mutual connexion within a given historical period.
(BF) and it is not only the law which governs these phenomena, in so far as they have a definite form and mutual connection within a given historical period, that is important to him.
(DK) Und ihm ist nicht nur das Gesetz wichtig, das sie beherrscht, soweit sie eine fertige Form haben und in einem Zusammenhang stehn, wie er in einer gegebnen Zeitperiode beobachtet wird.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SS와 BF를 참조해 DK를  직역했다. "(그러나) 이 현상이 주어진 어떤 기간 내에서 완성된 형태와 상호 관련을 가지는 한, 이들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단지 그(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번역도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다. SS와 BF는 'a given historical period'라는 표현을 썼는데, DK에서는 'in einer gegebnen Zeitperiode'로 서술되어 있다.
21.2.
(SS) Consequently, Marx only troubles himself about one thing: to show, by rigid scientific investigation, the necessity of successive determinate orders of social conditions, and to establish, as impartially as possible, the facts that serve him for fundamental starting-points.
(BF) Consequently, Marx only concerns himself with one thing: to show, by an exact scientific investigation, the necessity of successive determinate orders of social relations, and to establish, as impeccably as possible, the fact from which he starts out and on which he depends.
(DK) Demzufolge bemüht sich Marx nur um eins: durch genaue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 die Notwendigkeit bestimmter Ordnungen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 nachzuweisen und soviel als möglich untadelhaft die Tatsachen zu konstatieren, die ihm zu Ausgangs- und Stützpunkten dienen.
세 번역이 DK와 비교했을 때 조금씩 상이하다. 그나마 강 교수의 번역이 좀 낫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 관계 질서에 대한 필연성'에 해당하는 구문은 'die Notwendigkeit bestimmter Ordnungen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이고, '논증하는 것’은 'nachzuweisen', '출발 지점과 토대로 사용한 사실들'은 'die Tatsachen …, die ihm zu Ausgangs- und Stützpunkten dienen', '가능한 나무랄 데 없이'는 'soviel als möglich untadelhaft'이다. DK의 ‘konstatieren'은 'notice'를 뜻한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오직 한 가지에 대해 노력한다: 정확한 과학적 연구로 어떤 사회적 관계 질서에 대한 필연성을 논증하는 것 그리고 출발 지점과 토대로 사용한 사실을 가능한 나무랄 데 없이 알아차리는 것."
21.3.
(SS) For this it is quite enough, if he proves, at the same time, both the necessity of the present order of things, and the necessity of another order into which the first must inevitably pass over; and this all the same, whether men believe or do not believe it, whether they are conscious or unconscious of it.
(BF) For this it is quite enough, if he proves, at the same time, both the necessity of the present order of things, and the necessity of another order into which the first must inevitably pass over; and it is a matter of indifference whether men believe or do not believe it, whether they are conscious of it or not.
(DK) Hierzu ist vollständig hinreichend, wenn er mit der Notwendigkeit der gegenwärtigen Ordnung zugleich die Notwendigkeit einer andren Ordnung nachweist, worin die erste unvermeidlich übergehn muß, ganz gleichgültig, ob die Menschen das glauben oder nicht glauben, ob sie sich dessen bewußt oder nicht bewußt sind.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깔끔하지 못하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혹은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만일 그가 현재 질서의 필연성과 동시에 이 질서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다른 질서의 필연성을 논증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만족스럽다."
21.4.
(SS) If in the history of civilisation the conscious element plays a part so subordinate, then it is self-evident that a critical inquiry whose subject-matter is civilisation, can, less than anything else, have for its basis any form of, or any result of, consciousness.
(BF) If the conscious elements plays such a subordinate part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t is self-evident that a critique whose object is civilization itself can, less than anything else, have for its basis any form or any result of consciousness.
(DK) Wenn das bewußte Element in der Kulturgeschichte eine so untergeordnete Rolle spielt, dann versteht es sich von selbst, daß die Kritik, deren Gegenstand die Kultur selbst ist, weniger als irgend etwas andres, irgendeine Form oder irgendein Resultat des Bewußtseins zur Grundlage haben kann.
SS, D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간결하지 않다.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의식적인 요소가 문명사에서 이처럼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문명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이 다른 무엇보다도 의식의 형태나 결과를 그 토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21.5.
(SS) For this inquiry, the one thing of moment is, that both facts be investigated as accurately as possible, and that they actually form, each with respect to the other, different momenta of an evolution; but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rigid analysis of the series of successions, of the sequences and concatenations in which the different stages of such an evolution present themselves.
(BF) The only things of importance for this inquiry are that the facts be investigated as accurately as possible, and that they actually form different aspects of development, vis-à-vis each other. But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precise analysis of the series of successions, of the sequences and links within which the different stages of development present themselves.
(DK) Für sie ist es nur wichtig, daß beide Tatsachen möglichst genau untersucht werden und wirklich die eine gegenüber der andren verschiedene Entwicklungsmomente bilden, vor allem aber wichtig, daß nicht minder genau die Serie der Ordnungen erforscht wird, die Aufeinanderfolge und Verbindung, worin die Entwicklungsstufen erscheinen.
DK에서 하나로 구성된 문장을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DK의 'beide Tatsachen (both factors)'을 BF는 'the facts'라고 번역했다. 'wirklich die eine gegenüber der andren verschiedene Entwicklungsmomente bilden'은 번역하면 '사실상 다른 사실에 대해서 갖가지 발전계기를 형성하는 하고 있는'이란 뜻인데, BF는 'they actually form different aspects of development'라고 서술했다. 결론적으로 BF가 다른 두 번역과 비교해서 이상하다.
21.6.
(SS) As soon as society has outlived a given period of development, and is passing over from one given stage to another, it begins to be subject also to other laws.
(BF) As soon as life has passed through a given period of development, and is passing over from one given stage to another, it begins to be subject also to other laws.
(DK) Sobald das Leben eine gegebene Entwicklungsperiode überlebt hat, aus einem gegebnen Stadium in ein andres übertritt, beginnt es auch durch andre Gesetze gelenkt zu werden.
DK의 'Leben'을 SS는 'society'라고 번역했다. 물론 문맥상 'society'도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Leben'의 본뜻인 'life'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 한데,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이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는 것으로 주어진 발전의 시기를 거치자마자, 그것은 또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21.7.
(SS) In a word, economic life offers us a phenomenon analogous to the history of evolution in other branches of biology.
(BF) In short, economic life offers us a phenomenon analogous to the history of evolution in other branches of biology.
(DK) Mit einem Wort, das ökonomische Leben bietet uns eine der Entwicklungsgeschichte auf andren Gebieten der Biologie analoge Erscheinung.
강 교수의 번역은 틀렸다. 강 교수의 과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했겠지만, 마르크스가 과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 특히 진화론에 관심이 많아서 찰스 다윈과 만나려고 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식으로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 교수가 '발전사'라고 풀이한 ‘Entwicklungsgeschichte’는 'evolution(진화)'로 해석해야 한다. DK를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요컨대 경제생활은 생물학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보이는 진화의 역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1.8.
(SS) Whilst Marx sets himself the task of following and explaining from this point of view the economic system established by the sway of capital, he is only formulating, in a strictly scientific manner, the aim that every accurate investigation into economic life must have.
(BF) While Marx sets himself the task of following and explaining the capitalist economic order from this point of view, he is only formulating, in a strictly scientific manner, the aim that every accurate investigation into economic life must have.
(DK) Indem sich Marx das Ziel stellt, von diesem Gesichtspunkt aus die kapitalistische Wirtschaftsordnung zu erforschen und zu erklären, formuliert er nur streng wissenschaftlich das Ziel, welches jede genaue Untersuchung des ökonomischen Lebens haben muß
DK의 'enforschen'은 'to explore' 혹은 'to investigate'란 뜻으로 쓰이는데, SS와 BF는 'follow'로 번역했다. 'follow'는 일반적으로 '따르다'란 뜻으로 쓰이지만,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다[지켜보다]'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21.9.
(DK) Und diesen Wert hat in der Tat das Buch von Marx.
깔끔하게 번역해보자. "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 책의 가치다."

이 필자는 그가 나의 참된 방법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을 참으로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또한 그 방법을 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적절하게 서술하였는데, 그가 서술한 바로 이것이 변증법적 방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2.1]

22.1.
(SS) Whilst the writer pictures what he takes to be actually my method, in this striking and [as far as concerns my own application of it] generous way, what else is he picturing but the dialectic method?
(BF) Here the reviewer pictures what he takes to be my own actual method, in a striking and, as far as concerns my own application of it, generous way. But what else is he depicting but the dialectical method?
(DK) Indem der Herr Verfasser das, was er meine wirkliche Methode nennt, so treffend und, soweit meine persönliche Anwendung derselben in Betracht kommt, so wohlwollend schildert, was andres hat er geschildert als die dialektische Methode?
DK의 한 문장을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물론 서술방법은 형식적으로 연구방법과 구분되어야 한다. 연구는 소재를 자세히 검토하고 그것의 갖가지 발전형태를 분석하여 그 내적 연관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 작업을 모두 마친 뒤에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서술될 수 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이제 소재의 생생한 모습에 관념이 반영된다면 그 생생한 모습은 하나의 선험적 구성과 관련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근본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이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붙인 이념(Idee)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독립된 주체(Subjekt)로 전화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적인 것들은 이 사유과정이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4.1] 그러나 거꾸로 나에게서 관념적인 것(Ideelle)은 단지 인간의 머릿속에서 전환되고 번역된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24.2]

24.1.
(SS) To Hegel, the life process of the human brain, i.e., the process of thinking, which, under the name of "the Idea," he even transforms into an independent subject, is the demiurgos of the real world, and the real world is only the external, phenomenal form of "the Idea."
(BF) For Hegel, the process of thinking, which he even transforms into an independent subject, is the creator of the real world, and the real world is only the external appearance of the idea.
(DK) Für Hegel ist der Denkprozeß, den er sogar unter dem Namen Idee in ein selbständiges Subjekt verwandelt, der Demiurg des wirklichen, das nur seine äußere Erscheinung bildet.
DK의 'Demiurg'를 SS에서는 'demiurgos', BF에서는 'creator'로 번역했다. 플라톤 철학의 '조물주'를 뜻하므로 'demiurgos'가 좋아 보이지만, 의미상으로는 'creator'를 쓰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더불어 DK에서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강 교수는 앞의 문장과 지금 문장 두 개로 분리했다. 그리고 강 교수는 'Idee'를 '이념'으로 번역했는데, 지금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Idee'는 '이데', '이데아' 혹은 '관념'으로 번역해야 한다. DK를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관념이란 이름 아래에서 독립된 주체로 전화(轉化)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며, 관념의 외적 현상이다."
[24.1 추가 #1] 내가 'Idee'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강 교수의 '이념'이라는 번역이 맞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이념이란 이름 아래에서 독립된 주체로 전화(轉化)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며, 관념의 외적 현상이다."
24.2.
(SS) With me, on the contrary, the ideal is nothing else than the material world reflected by the human mind, and translated into forms of thought.
(BF) With me the reverse is true: the ideal is nothing but the material world reflected in the mind of man, and translated into forms of thought.
(DF) Bei mir ist umgekehrt das Ideelle nichts andres als das im Menschenkopf umgesetzte und übersetzte Materielle.

헤겔 변증법의 신비적인 측면에 대해서 나는 약 30년 전, 그것이 아직 유행하고 있을 당시에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자본』 제1권을 집필하고 있는 바로 지금은 독일의 식자층 사이에서 큰소리깨나 치는 돼먹지 않게 시건방지고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이 헤겔을 마치 "죽은 개"처럼―레싱(Lessing, Gotthold Ephraim: 독일의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옮긴이) 시대에 대담한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스피노자(Spinoza)에 대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다루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공개적으로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천명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고의적으로 여러 곳에서 그의 고유한 표현방식들을 따라 사용하기도 하였다. 변증법은 헤겔에게서 비록 신비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신비화 때문에 헤겔이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이고 의식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실패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변증법은 단지 그에게서 거꾸로 서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그의 변증법에서 신비화된 외피 속에 감추어진 합리적인 핵심을 찾아내려면 우리는 그것을 도로 뒤집어야만 한다.



독일에서는 이 신비화된 형태의 변증법이 유행했는데 이는 그것이 현존하는 것들을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26.1] 합리적인 형태의 변증법은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교의를 대변하는 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과 그것의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성하는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언제나 그것들을 일시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변증법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화를 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며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26.2]

26.1.
(SS) In its mystified form, dialectic became the fashion in Germany, because it seemed to transfigure and to glorify the existing state of things.
(BF) In its mystified form, the dialectic became the fashion in Germany, because it seemed to transfigure and glorify what exists.
(DK) In ihrer mystifizierten Form ward die Dialektik deutsche Mode, weil sie das Bestehende zu verklären schien.
'verklären'을 SS와 BF에서는 'transfigure and glorify'로 중복으로 표현했는데, 사실 'verklären'은 두 가지를 다 뜻한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거룩하게 하기(혹은 미화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신비화된 형태로 유행했다."
26.2.
(SS) In its rational form it is a scandal and abomination to bourgeoisdom and its doctrinaire professors, because it includes in its comprehension and affirmative recognition of the existing state of things, at the same time also, the recognition of the negation of that state, of its inevitable breaking up; because it regards every historically developed social form as in fluid movement, and therefore takes into account its transient nature not less than its momentary existence; because it lets nothing impose upon it, and is in its essence critical and revolutionary.
(BF) In its rational form it is a scandal and an abomination to the bourgeoisie and its doctrinaire spokesmen, because it includes in its positive understanding of what exists a simultaneous recognition of its negation, its inevitable destruction; because it regards every historically developed form as being in a fluid state, in motion, and therefore grasp its transient aspect as well; and because it does not let itself be impressed by anything, being in its very essence critical and revolutionary.
(DK) In ihrer rationellen Gestalt ist sie dem Bürgertum und seinen doktrinären Wortführern ein Ärgernis und ein Greuel, weil sie in dem positiven Verständnis des Bestehenden zugleich auch das Verständnis seiner Negation, seines notwendigen Untergangs einschließt, jede gewordne Form im Flusse der Bewegung, also auch nach ihrer vergänglichen Seite auffaßt, sich durch nichts imponieren läßt, ihrem Wesen nach kritisch und revolutionär ist.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세 문장으로 불리했으며, 'ein Ärgernis und ein Greuel'에 해당하는 부분을 '분노와 공포'라고 번역했는데, 'Ärgernis'는 영어로 'outrage(격노)'이고 'Greuel(Gräuel)'은 'horror'와 'abomination'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은 모두 적당해 보인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합리적 형태로서 변증법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이론적 대변자에게는 분노와 공포의 대상인데,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과 필연적 몰락에 대한 즉각적 인지를 함의하고 있으며, 모든 역사적으로 발전된 형태를 유동적인 움직임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시적인 형태로 파악하고 있으며, 변증법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화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가득 찬 운동은 근대산업이 겪는 주기적인 순환의 부침을 통해서 실천적인 부르주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부침의 절정이 바로 일반적 위기(Krise)이다. 이 일반적 위기는 아직 예비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긴 하지만 다시 진행 중이며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매우 높은 강도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신성 프로이센 독일제국의 벼락부자들에게도 변증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1873년 1월 24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주석>

2) 제3판과 제4판에서는 "절망에 빠진"(hoffnungslos)으로 되어 있다.



3) 내 저작 『경제학 비판』 39쪽을 볼 것(MEW Bd. 13, 46쪽)



4) 독일 속류 경제학의 멍청한 떠벌이들은 내 저작의 문체와 서술방식을 문제 삼아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집필 상의 결함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과 그들의 독자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 흥미라도 제공해주기 위해 여기에서 영국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를 각각 하나씩만 인용해보고자 한다. 내 견해에 대하여 철저하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 ‘토요 평론’이라는 뜻-옮긴이)는 독일어 초판에 대해서 이 책의 서술이 "극히 무미건조한 경제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독특한 흥미를 끌어내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1872년 4월 20일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신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은 몇몇 특별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명료하게 씌어졌으며, 다루고 있는 것들이 매우 고도의 과학적인 대상들인데도 놀라울 정도의 현실감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 보통사람들이 읽으면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모호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를 사용하여 책을 쓰는 … 많은 독일 학자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족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띤 독일 교수들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종류와는 완전히 또 다른 형태의 머리를 빠개는 고통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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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43~49쪽에 해당한다.
 



제1판 서문 [1.1]

여기에 제1권으로 출간되는 이 저작은 내가 1859년에 출간한 『경제학 비판(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속편에 해당한다. [1.2] 전편과 이 속편 사이에 오랜 공백이 있었던 까닭은 몇 년 동안 계속된 병으로 내가 작업을 중간에 여러 번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1.1.
1867년 출간된 자본론 제1권 독일어판에 대한 「서문(Preface to the First German Edition)」이다.
1.2.
'경제학 비판'이라고 번역한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옳은 번역이라고 본다. 실제로 SS와 BF에서는 『A Contribution to the Criticism of Political Economy』라고 번역했다. 정의상 정치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경제학과 법학 그리고 정치학에 기원을 둔 학제적인 연구 분야'를 지칭하며, 정치 기관과 정치 환경이 시장 행동 양태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 교수가 '정치경제학'을 '경제학'이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상의 편리함이라기보다는 『자본론』을 오로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국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비평에 대에 대해 EM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번역사를 참조하면 … 경제학이 맞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학의 원어가 political economy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오히려 [경제학=주류], [정치경제학=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라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편의 내용은 이 책의 제1장에 요약되어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앞뒤 저작들 사이의 맥락을 완전하게 이어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서술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는 전편에서 단지 암시하는 데 그쳤던 많은 부분을 이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으며, 반대로 전편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던 것을 이 속편에서는 단지 암시하는 정도만으로 그치기도 하였다. [2.1] 물론 가치이론과 화폐이론의 역사를 다룬 절은 이 속편에서 완전히 생략하였다. 그렇지만 전편을 읽어본 독자는 제1장의 각주에서 이들 이론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
(SS)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st,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BF)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e,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DK)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 sind viele früher nur angedeuteten Punkte hier weiter entwickelt, während umgekehrt dort ausführlich Entwickeltes hier nur angedeutet wird.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를 강 교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로, SS와 BF는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으로 번역했다. 의미상 큰 차이는 없겠지만, 독일어 원본을 따른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허락하는 한'이 적당해 보인다.

어떤 학문에서든 언제나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3.1] 그래서 이 책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의 분석을 다루는 절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나는 가치실체(Wertsubstanz)와 가치크기(Wertgröße)는 되도록 평이하게 분석하였다. 1) [3.2] 가치형태는 화폐형태(Geldform)를 완성된 모습으로 가지며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3.3]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Menschengeist)은 2천 년 이상이 지나도록 이것을 해명하는 데 실패하였다. [3.4]

3.1.
(SS) Every beginning is difficult, hold in all sciences.
(BF) Beginnings are always difficult in all sciences.
(DK) Aller Anfang ist schwer, gilt in jeder Wissenschaft.
'Wissenschaft'는 일반적으로 'science(과학)'와 'scholarship(학문)'을 뜻한다. SS와 BF에서는 'Wissenschaft'를 전부 'scienc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이에 해당하는 말을 거의 모두 '학문'으로 번역했으며, 일부에서만 '과학'으로 번역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scientific'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적인' 혹은 '과학의'란 말로 번역했다.) 현대 독일어에서는 '자연과학'을 뜻하는 말로 'Naturalwissenschaft'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대 독일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강 교수가 'Wissenschaft'를 '학문'으로 번역한 것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언어 사용의 시대적 혹은 역사적 맥락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이 학문의 영역에서 독립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특히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 과학은 개별적 학문으로서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더불어 마르크스는 자신의 자본에 대한 분석 및 연구는 일반적인 속류 경제학자의 연구와는 다르게 객관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자본론』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에 빗대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Wissenschaft'는 '학문'이 아닌 '과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science'란 단어가 '과학'뿐만 아니라 '학문'이라는 포괄적 의미 또한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술과 서신(書信) 여러 곳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 연구에 빗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가 제안한 것과 같이 '학문'보다는 '과학'이라고 번역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2.
(SS) That which concerns more especially the analysis of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I have, as much as it was possible, popularised.
(BF) I have popularized the passages concerning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as much as possible.
(DK) Was nun näher die Analyse der Wertsubstanz und der Wertgröße betrifft, so habe ich sie möglichst popularisiert.
DK의 'möglichst'는 'as possible'을 뜻하는 부사로, SS와 BF에서는 각각 'as much as it was possible'과 'as much as possible'이다. 강 교수는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으로 번역했는데, DK에는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3.3.
(SS)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elementary and simple.
(BF)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simple and slight in content.
(DK)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강 교수가 번역한 '완성된'은 영어판에서는 'developed(발전된)'로 번역되어 있다. 사실 '완성'과 '발전'은 둘 다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완성'은 '더는 변화가 불가능함'을 뜻하는 반면에 '발전'은 '앞으로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가치형태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단 화폐형태로 나타나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분명히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 교수의 번역은 좀 이상하다. 더불어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란 번역도 영어판 번역과는 다르다. 영어판 번역은 "매우 단순한 형태이고 내용도 빈약하다"이다. '아예 없는 것'과 '빈약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sunanugi님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MEW판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MEW 참조). 일단 평범하게 독해를 하면 "가치형태는, 그것의 다 된 모습이 화폐형태인데, 아주 내용이 없고 단순하다."이다. 독일어 형용사 'fertig'는 '완성된'이라고 번역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서구어끼리의 일차적 의미 연관 상 영어 ready에 해당한다. "밥이/준비가 다 되었다/끝났다" 할 때의 그런 느낌이다. 한국어의 '완성된'에 해당하는 독일어 형용사나 과거분사는 'fertig' 말고 많이 있다. 예컨대, 'vollendet'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 기준으로는 오히려 간결하게 옮기지 못한 게 문제인 것 같다.
3.4.
영어판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DK도 확인해본 결과 두 단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 교수가 번역과정에서 임의로 한 단락을 두 단락으로 분리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보다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다른 가치형태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적어도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4.1] 왜 그럴까? 그것은 완성된 신체를 연구하는 것이 그 신체의 세포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적 형태에 대한 분석에서는 현미경이나 화학적인 시약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4.2] 거기에서는 이런 것들 대신에 추상화할 수 있는 힘(Abstraktionskraft)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그 경제적인 세포형태에 해당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 형태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사소한 것만 문제 삼는 듯이 보일 것이다. 실제로 거기에서는 매우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인 해부에서 매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4.3]

4.1.
(SS)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for more than 2,000 years sought in vain to get to the bottom of it all, whilst on the other hand, to the successful analysis of much more composite and complex forms,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BF)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sought in vain for more than 2,000 years to get to the bottom of it, whil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to a successful analysis of forms which are much richer in content and more complex.
(DK) Dennoch hat der Menschengeist sie seit mehr als 2.000 Jahren vergeblich zu ergründen gesucht, während andrerseits die Analyse viel inhaltsvollerer und komplizierterer Formen wenigstens annähernd gelang.
바로 앞 단락의 마지막 문장과 이 단락의 첫 문장은 DK에서는 하나로 연결된 문장이다. 강 교수는 하나의 문장을 번역의 편의를 위해 두 문장으로 나누었고, 그것도 모자라 개별 단락으로 나눠버렸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번역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랬겠지만, 이런 식의 자의적 구성 변경은 저자(마르크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왜곡 혹은 희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할 때는 반드시 하나의 문장은 하나로, 하나의 단락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하나의 단락으로 번역해야 한다.
영어판을 기준으로 다시 번역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은 2000년 이상 동안 그 모든 것(혹은 그것)의 진상을 밝히려고 헛되이 노력해 왔지만, 매우 혼합되고 복잡한 형태(혹은 내용상으로 풍부하고 훨씬 더 복잡한 것)에 대한 성공적인 분석에는 최소한 접근해왔다."
4.2.
영어판에서는 '화학적 시약들'을 'chemical reagents'라고 번역했다. 우리말로도 '화학 약품' 내지 '화학 시약'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4.3.
(SS)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they are of the same order as those dealt with in microscopic anatomy.
(BF)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so similarly does microscopic anatomy.
(DK) Es handelt sich dabei in der Tat um Spitzfindigkeiten, aber nur so, wie es sich in der mikrologischen Anatomie darum handelt.
DK의 'Spitzfindingkeiten'을 SS와 BF에서는 'minutia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사소한' 혹은 '사소한 것'으로 번역했다. 물론 'minutiae'가 '사소한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상세한 것'이란 뜻도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서문과 그의 다른 서신(書信)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자주 언급했는데, 『자본』의 「독일어 초판 서문」에서도 현미경을 통한 세포 관찰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 단락을 전부 읽어봤을 때, 'minutiae'는 의미상 '상세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의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가 그것을 반증하는데, 우리가 미시적인 해부의 방법론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자 할 때, 그것은 사소한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것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도 잘못 번역되었다. EM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자본 혹은 상품 연구를 '현미경을 이용한 세포 연구'에 비유한 마르크스의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microscopic anatomy'는 ‘미시적 해부’가 아니라 '현미경 해부학' 혹은 '미세해부학(微細解剖學)'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 참고로, 미세해부학은 오늘날의 조직학(histology)이며 일반적 의미의 해부학은 육안 해부학(gross anatomy)이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오늘날 『자본론』을 집필했다면 microscopic anatomy보다는 histology를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다. 현대에는 전자현미경이 있으니 electron microscopy를 대신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더불어 sunanugi님께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영어 'minutiae'에 해당하는 독일어본의 단어는 'Spitzfindigkeiten'이다. 'Spitzfindigkeiten'는 복수이고 단수가 'Spitzfindigkeit'인데, 오늘날 영어로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본 결과 'subtlety'라고 나온다. 에디숑 소시알판의 불어본에서도 영어 'subtlety'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subtilité'로 되어 있다. 형태론상 명사 'Spitzfindigkeit'는 형용사 'spitzfindig'에서 파생된 추상명사인데, 그 의미의 성분은 "Spitz(뾰족한 끝) + find(동사 finden의 어간; '찾다'의 뜻) + ig(형용사 만드는 어미)"이다. 그러니까 'spitzfindig'란 단어는 그 일차적 의미가 '디테일한 것들 찾아내는'이란 뜻인데, 용법은 부정적인 의미로 쓸 수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문맥상 판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사학적으로 'Spitzfindigkeit'는 (DK에서) 다음 문장의 'Schwerverständlichkeit(이해하기 어려움)'이란 단어와 미묘하게 상응하고 있는데, BF 번역은, 엥겔스의 권위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어휘 선택 등에 있어서 너무 자주 SS를 그냥 따른다는 게 일반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하고는 이 책이 어렵다는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또 그럼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자 하는 그런 독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연과정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그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와 가장 덜 교란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또한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보장된 조건에서 그것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다. [6.1]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Producktionsverhältnisse) 그리고 교환관계(Verkehrsverhältnisse)이다. 그것들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장소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이론적 논의에서 주로 영국의 사례들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독일의 독자들이 영국의 산업노동자와 농업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바리새인처럼 경멸을 보내거나 독일에서는 사태가 그렇게 악화되어 있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만 한다. [6.2]  "바로 당신 자신에 관한 이야기요(De te fabula narratur)!" [6.3]

6.1.
(SS)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physical phenomena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typical form and most free from disturbing influence,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that assure the occurrence of the phenomenon in its normality.
(BF)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natural processes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significant form, and are least affected by disturbing influences,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which ensure that the process will occur in its pure state.
(DK) Der Physiker beobachtet Naturprozesse entweder dort, wo sie in der prägnantesten Form und von störenden Einflüssen mindest getrübt erscheinen, oder, wo möglich, macht er Experimente unter Bedingungen, welche den reinen Vorgang des Prozesses sichern.
SS, BF와 강 교수의 번역은 간결하지도 않을뿐더러 완전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번역했다. "물리학자는 매우 간결하고 교란받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거나, 가능하다면 그러한 현상이 순수하게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에서 실험한다."
6.2.
(SS)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labourers, or in optimist fashion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BF)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pharisaically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workers, or optimistically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DK) Sollte jedoch der deutsche Laser pharisäisch die Achseln zucken über die Zustände der englischen Industrie- und Ackerbauarbeiter oder sich optimistisch dabei beruhigen, daß in Deutschland die Sachen noch lange nicht so schlimm stehn,
SS, BF 그리고 DK 어디에서도 독일 독자가 영국 노동자를 비난하거나 경멸한다는 표현은 없다. SS와 BF는 'shrugs his shoulders at' 그리고 DK는 'die Achseln zucken über'라는 '어깨를 으쓱한다'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깨를 으쓱할 때는 잘 모르거나 혹은 젠체할 때다. 하지만 타인을 비난할 때 어깨를 으쓱하지는 않는다. SS, BF 그리고 DK의 이 문장은, 마르크스가 영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독일 독자와 설령 알고 있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일 독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은 "당시 독일인이 영국 노동자를 우습게 봤다"라는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만일 독일 독자가 영국의 산업 노동자와 농업 노동자에 대해 (동정하거나 혹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바리새인처럼 어깨를 으쓱하거나, 혹은 독일의 상황은 당분간 나쁘지 않다며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6.3.
B.C. 65~8년 사이에 활동했던 로마 출신의 시인 호라티우스(영어로는 Horace, 라틴어로는 Horatius)의 작품에서 인용했다. (Satires, Bk I, Satire 1).

본질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법칙 그 자체, 즉 철칙(鐵則)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 관철되어나가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7.1] 산업적인 선진국은 산업적인 후진국에게 언젠가 그들이 도달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7.1.
(SS)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orking with iron necessity towards inevitable results.
(BF)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inning their way through and working themselves out with iron necessity.
(DK) Es handelt sich um diese Gesetze selbst, um diese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 und sich durchsetzenden Tendenzen.
DK의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을 SS는 working with iron necessity'로 BF는 'working out with iron necessity'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철칙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라고 번역했는데, 이런 식의 독일어(혹은 영어 표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용례(用例)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쳐두기로 하자. 우리나라(독일-옮긴이)에서 완전한 형태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 즉 예를 들어 제대로 된 공장의 경우 그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공장법(the Factory Acts)이라는 균형추(均衡錘)가 없기 때문이다. [8.1]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우리는, 나머지 서유럽 대륙 전체와 꼭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이 빚어내는 고통은 물론 그 발전이 더딘 데에서 비롯되는 고통까지도 함께 겪고 있다. 근대적인 해악들과 함께 많은 전통적인 해악들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데, 이런 전통적인 해악들은 낡은 생산양식의 잔재로부터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이런 낡은 생산양식에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정치적 관계들까지도 함께 붙어 있다. [8.2] 우리는 살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죽은 것으로부터도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사로잡도다(Le mort saisit le vif)!"

8.1.
(SS) But apart from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is fully naturalised among the German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 the condition of things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wanting.
(BF) But in any case, and apart from all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has made itself fully at home amongst u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ly so called, the situation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absent.
(DK) Aber abgesehn hiervon. Wo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 völlig bei uns eingebürgert ist, z.B. in den eigentlichen Fabriken, sind die Zustände viel schlechter als in England, weil das Gegengewicht der Fabrikgesetze fehlt.
DK, SS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에서 두 문장으로 되어 있는 표현을 BF에서는 한 문장으로 나타냈다. 문장을 합쳐서 자연스럽게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제쳐놓기로 하자.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자리 잡은 곳, 즉 실제 공장에서 상황은 영국보다 나쁜데, 왜냐하면 공장법이라는 균형추가 없기 때문이다."
8.2.
(SS) Alongside the modern evils,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oppress u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ntiquat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inevitable train of social and political anachronisms.
(BF) Alongside the modern evils, we are oppressed by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rchaic and outmod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accompanying train of anachronistic social and political relations.
(DK) Neben den modernen Notständen drückt uns eine ganze Reihe vererbter Notstände, entspringend aus der Fortvegetation altertümlicher, überlebter Produktionsweisen, mit ihrem Gefolg von zeitwidrigen gesellschaftlichen und politischen Verhältnissen.
DK의 'Fortvegetation'을 SS와 BF는 'passive survival'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잔재'로 번역했다. 'Fort'는 '성(혹은 성채, castle)'이란 뜻이고 'vegetation'은 '숲'이란 뜻인데, 둘을 합치면 '숲의 성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으로만 보면 '(수동적) 잔재(혹은 생존)' 등의 해석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사전을 찾아봐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영국의 사회통계와 비교해볼 때, 독일과 나머지 서유럽 대륙의 사회통계는 매우 빈약하다. 그렇지만 이들 빈약한 통계도 마치 베일 속에 감추어진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의 암시는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 [9.1]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 사태의 진실을 조사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이런 조사를 수행하는 데서 필요한 인력, 즉 영국의 공장감독관, 또는 '공중위생' 상태를 보고하는 전문의사들 그리고 부녀자·아동에 대한 착취상태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전문위원들처럼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9.2] 페르세우스(Perseus)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모자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괴물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서 그 모자로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9.1.
(SS)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 head behind it.
(BF)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s head behind it.
(DK) Dennoch lüftet sie den Schleier grade genug, um hinter demselben ein Medusenhaupt ahnen zu lassen.
마르크스는 바로 앞 문장에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조사한 내용을 담은) 통계의 빈약한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는 빈약한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처참한 현실을 알 수 있다고 긍정하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하면 우리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SS와 BF는 DK의 'Dennoch'를 'But'으로 번역했는데, 'Dennoch'는 'nevertheless'를 뜻한다. 그러므로 문맥의 흐름을 통해 파악해본다면, 영어 번역은 접속사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Nevertheless'를 사용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에도 알맞아 보인다.
9.2.
(SS) We should be appalled at the state of things at home,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appointed periodically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as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the English factory-inspectors, her medical reporter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housing and food.
(BF) We should be appalled at our own circumstances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periodically appointed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ere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England’s factory inspectors, her medical report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conditions of housing and nourishment, and so on.
(DK) Wir würden vor unsren eignen Zuständen erschrecken, wenn unsre Regierungen und Parlamente, wie in England, periodische Untersuchungskommissionen über die ökonomischen Verhältnisse bestallten, wenn diese Kommissionen mit derselben Machtvollkommenheit, wie in England, zur Erforschung der Wahrheit ausgerüstet würden, wenn es gelänge, zu diesem Behuf ebenso sachverständige,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 zu finden, wie die Fabrikinspektoren Englands sind,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 über "Public Health" (Öffentliche Gesundheit), seine Untersuchungskommissäre über die Exploitation der Weiber und Kinder, über Wohnungs- und Nahrungszustände usw.
DK의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를 BF는 'her medical reports'라고 번역했는데, SS처럼 'reporters'로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강 교수의 '전문의사'란 번역도 너무 앞서나갔다. (물론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의료(혹은 보건의료) 보고자'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다.
DK의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를 SS와 BF는 '(men)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로, 강 교수는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로 번역했다. 'partisanship'은 '당파성'이란 뜻이고 'respect of persons'는 '특별 대우' 혹은 '편파적인 대우'란 뜻인데, 영어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DK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동떨어진 느낌이다. 대신 각각 'impartial'과 'ruthless'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그리고 DK의 'erschrecken'을 강 교수는 '깜짝 놀라다'라고 번역했는데, 'erschrecken'은 'frighten'을 뜻하므로, '깜짝 놀라 무서워하다(혹은 두려워하다)'로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의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립하고, 이 위원회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및 의회와) 동일한 전권을 갖추고 있으며,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대한 의료 보고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착취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위원처럼 공명정대하고 엄정하며 이 목적에 걸맞은 능력 있는 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혹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섬뜩해할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이 유럽의 중간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듯이 19세기 미국의 내전(the American Civil War, 한국에서 남북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을 가리킨다. 정확한 용어로는 미국내전이다-옮긴이)은 유럽의 노동자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 변혁과정이 계속 진행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0.1]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그것은 분명히 유럽 대륙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그러한 변혁과정은 영국에서보다 더 야만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고 더 인간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는 각 나라들에서 노동자 계급 자신의 발전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10.2]

10.1.
(SS) In England the process of social disintegration is palpable.
(BF) In England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is palpably evident.
(DK) In England ist der Umwälzungsprozeß mit Händen greifbar.
취향의 차이겠지만 '불을 보듯 뻔한'보다는 '명백한'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강 교수의 표현도 괜찮다.
10.2.
SS, BF 그리고 DK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강 교수에서는 번역본에서는 두 단락이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다른 더욱 숭고한 동기가 아니더라도 바로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법적인 장애요인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11.1]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꽤 많은 부분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장입법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그것의 성과에 대한 서술에 할애하였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또 그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설사 자신의 운동에 대한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도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혀내는 데 있다—그 사회는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생략하고 건너뛸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을 법령으로 제거할 수도 없다. 단지 그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산고(産苦)를 단축하고 완화하는 것뿐이다. [11.2]

11.1.
(SS) Apart from higher motives, therefore, their own most important interests dictate to the classes that are for the nonce the ruling ones, the removal of all legally removable hindrances to the fre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BF) Apart from any higher motives, then, the most basic interests of the present ruling classes dictate to them that they clear out of the way all the legally removable obstacles to th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DK) Von höheren Motiven abgesehn, gebietet also den jetzt herrschenden Klassen ihr eigenstes Interesse die Wegräumung aller gesetzlich kontrollierbaren Hindernisse, welche die Entwicklung der Arbeiterklasse hemmen.
DK의 'kontrollierbaren'은 'controlled(관리할 수 있는)'란 뜻인데, SS와 BF는 'removable'로 번역했고, 강 교수는 아예 번역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포함해서 직역하여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숭고한 동기와는 별개로 오늘날 지배 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그들(지배 계급)에게 노동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적으로 제거 가능한 모든 요소를 완전히 없애도록 강제한다."
11.2.
(SS) And even when a society has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 of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lay bare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clear by bold leaps, nor remove by legal enactments, the obstacles offered by the successive phases of its normal development.
(BF) Even when a society has begun to track down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reveal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leap over the natural phases of its development nor remove them by decree.
(DK) Auch wenn eine Gesellschaft dem Naturgesetz ihrer Bewegung auf die Spur gekommen ist - und es ist der letzte Endzweck dieses Werks, das ökonomische Bewegungsgesetz der modernen Gesellschaft zu enthüllen -, kann sie naturgemäße Entwicklungsphasen weder überspringen noch wegdekretieren.
DK의 'auf die Spur gekommen ist'를 강 교수의 '발견했다 하더라도'로, SS는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로 BF에서는 'has begun to track down'으로 번역했다.

만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자본가와 토지소유자를 결코 장밋빛으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문제로 삼는 것은 단지 그들이 갖가지 경제적 범주들의 인격체라는 점에서만, 즉 특정한 계급관계와 계급이해의 담당자라는 점에서만 그러하다. [12.1]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경제적 사회구성체(ökonomischen Gesellschaftsformation)의 발전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각 개인은 그들이 설사 주관적으로는(subjektiv)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는(sozial) 사회적 관계의 피조물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들 개인의 책임은 적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12.1.
(SS) But here individuals are dealt with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embodiment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class-interests.
(BF) But individuals are dealt with here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the bearer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interests.
(DK) Aber es handelt sich hier um die Personen nur, soweit sie die Personifikation ökonomischer Kategorien sind, Träger von bestimmten Klassenverhältnissen und Interessen.
DK의 'Personen'을 SS와 BF에서는 'personification'으로, 'Träger'는 SS와 BF에서는 각각 'embodiments'와 ‘bearer’로 번역했다. 'Träger'의 경우에는 '담당자'라는 말보다는 철학용어인 '담지자(擔持者)'가 문맥상 낫다고 본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 적들은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만나게 되는 그런 적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인간의 가슴에 가장 격렬하고 가장 편협하며 가장 악의에 찬 감정, 즉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을 싸움터로 불러냄으로써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다. [13.1] 예를 들어 영국 국교회(English Established Church)는 자신들의 신앙 39개조 가운데 38개조에 대한 공격을 용인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화폐 수입 39분의 1(1/39)에 대한 공격은 용인하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무신론까지도 전통적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차라리 더 가벼운 죄에 해당한다. [13.2]

13.1.
(SS)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s it deals with, summons as foes into the field of battle the most violent, mean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BF)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 it deals with summons into the fray on the opposing side the most violent, sordid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DK) Die eigentümliche Natur des Stoffes, den sie behandelt, ruft wider sie die heftigsten, kleinlichsten und gehässigsten Leidenschaften der menschlichen Brust, die Furien des Privatinteresses, auf den Kampfplatz.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정치 경제학)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은 인간 가슴의 가장 난폭하고 비열하며 악의로 가득한 감정인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을 반대편 전장으로 소환한다." 번역의 용이함을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강 교수는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막는다'란 말을 덧붙였다.
13.2.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는 단락을 나눠버렸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예를 들어 우리는 몇 주일 전에 발표된 청서(淸書) 『산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재외사절 통신문집(Correspondence with Her Majesty’s Missions Abroad, regarding Industrial Questions and Trades’ Unions)』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통신문들에서 영국 국왕의 재외사절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도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 노동 간의 기존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며, 이런 경향은 이제 불가피하다는 점을 숨김없이 얘기하고 있다. [14.1] 동시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미국의 부통령 웨이드(Wade)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 자본관계와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천명하였다. [14.2]

14.1.
(SS)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there declare in so many words that in Germany, in France, to be brief, in all the civilis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BF) There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declare in plain language in that in Germany, in France, in short in all the civiliz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a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DK) Die auswärtigen Vertreter der englischen Krone sprechen es hier mit dürren Worten aus, daß in Deutschland, Frankreich, kurz allen Kulturstaaten des europäischen Kontinents, eine Umwandlung der bestehenden Verhältnisse von Kapital und Arbeit ebenso fühlbar und ebenso unvermeidlich ist als in England.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왕조의 재외사절들은 독일과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 간의 기존 관계의 근본적 변화(radical change)가 명백하고(evident) 피할 수 없음을(inevitable) 노골적으로(in so many words 혹은 in plain language) 단언(혹은 얘기)한다."
14.2.
SS, BF 그리고 DK에서 한 단락으로 연결된 문장을,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임의로 단락을 나눴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징후이며 자포(紫袍: 군주의 의복-옮긴이)나 흑의(黑衣: 승려의 법의-옮긴이)로는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징후들이 당장 내일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현재의 사회가 완전히 응고되어버린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점을 지배계급 내에서조차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5.1]

15.1.
(SS) They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a foreboding is dawn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is constantly changing.
(BF) They do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the foreboding is emerg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constantly engaged in a process of change.
(DK) Sie zeigen, wie selbst in den herrschenden Klassen die Ahnung aufdämmert, daß die jetzige Gesellschaft kein fester Kristall, sondern ein umwandlungsfähiger und beständig im Prozeß der Umwandlung begriffener Organismus ist.
영어 번역을 기준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들은 현재 사회가 응고된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것(영어 번역에서는 유기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전조(foreboding)가 지배 계급 내에서조차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 저작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Zirkulationsprozeß des Kapitals, 제2책)과 총과정의 형태(Gestaltungen des Gesammtprozesses, 제3책)를 그리고 마지막 제3권(제4책)은 학설사(Geschichte der Theorie)를 다루게 될 것이다.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의견도 나는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이 갖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피렌체인(단테-옮긴이)의 좌우명이 내 대답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1867년 7월 25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주석>

1) 내가 보기에 이것은 라살레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자신의 책에서 슐체-델리치(Schultze-Delitzsch)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 주제(가치실체와 가치크기-옮긴이)를 다른 내 글의 "핵심적인 진수"를 설명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거기에는 그가 나를 아주 잘못 이해한 부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라살레는 경제문제를 다룬 그의 모든 이론적인 저작에서, 즉 예를 들어 자본의 역사적 성격이나 생산양식 및 생산관계 사이의 관련을 다룬 등등의 글 속에서 내 저작 가운데 상당 부분을, 심지어는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들까지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빌려 쓰면서 아무런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가 선전 목적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그가 수행한 작업들의 자세한 내용이나 그것들이 사용된 방식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N1.1]

N1.1.
(SS) This is the more necessary, as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subject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e.g., those on the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xion between the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c., &c., eve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here, of course, not speaking of his detailed working 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ith which I have nothing to do.
(BF) This is more necessary, in that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matter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for example those on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ction between the rela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etc., etc., even dow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of course not speaking here of his detailed working-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hich I have nothing to do with.
(DK) Es schien dies um so nötiger, als selbst der Abschnitt von F. Lassalles Schrift gegen Schulze-Delitzsch, worin er "die geistige Quintessenz" meiner Entwicklung über jene Themata zu geben erklärt, bedeutende Mißverständnisse enthält. En passant. Wenn F. Lassalle die sämtlichen allgemeinen theoretischen Sätze seiner ökonomischen Arbeiten, z.B. über den historischen Charakter des Kapitals, über den Zusammenhang zwischen Produktionsverhältnissen und Produktionsweise usw. usw. fast wörtlich, bis auf die von mir geschaffene Terminologie hinab, aus meinen Schriften entlehnt hat, und zwar ohne Quellenangabe, so war dies Verfahren wohl durch Propagandarücksichten bestimmt. Ich spreche natürlich nicht von seinen Detailausführungen und Nutzanwendungen, mit denen ich nichts zu tun hab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이 주제들에 대한 내 설명의 지적 전형(intellectual quintessence)을 슐체-델리치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에 담았다고 고백한 책에 중요한 실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필요하다. 만일 페르디난드 라살레가 사전 동의도 없이 그의 경제학적 연구에 담겨 있는 모든 일반 이론적 서술들(propositions)을 사전 동의도 없이 나의 저작에서, 예를 들자면 자본의 역사적 성경, 생산과 생산양식의 관계 사이의 연결에 관한 것 등등, 내가 만들어낸 용어까지 포함하여 문헌적으로 빌렸다면, 아마도 선전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이들 서술에 대한 그의 세부적인 작업이나 적용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Posted by metas :
모 선생이 『자본』을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한다.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두 가지 영어판과 모 선생의 번역을 구글 번역기와 독일어 사전의 도움을 받아 독일어 원본과 일일이 비교·확인했다. 그 결과물을 여기다 올리고자 한다. 사실 나도 내가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른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여기다 글을 올리면 누군가 언젠가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주겠지?

어쨌든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순전히 영어도 공부하고, 독일어도 공부하고, 자본론도 공부하고, 번역 방법도 공부하고, 시간도 보내고 등등 ... 이유를 따지자면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혹은 '마르크스 철학'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 일반 독자다. 일반 독자가 이런 멍청한 (혹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으니 다들 동정의 눈길을 ... (응?)

『Das Kapital』 Band I, Band II, 그리고 Band III와, Sonnenschein판 『Capital』(엥겔스가 번역을 총지휘한 것) vol. I, vol. II, 그리고, vol. III, 그리고 펭권출판사(Penguin Classics)의 『Capital』(Ben Fowkes와 David Fernbach의 재번역판), 그리고 『자본』 한국어 번역판을 비교 분석할 생각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도 정말 크다)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자.

그런데 저작권법 위반으로 설마 고소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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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서: 생물학에서
유전정보는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세대 간에 전수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정보는 비록 유전물질 속에 담겨 있기는 하지만, 유전정보 자체가 물질은 아니다. 유전정보는 ‘형태’다. 그러나 유전정보는 복제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형태다. 진화는 이러한 종류의 형태가 있을 경우—유전정보를 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할 때—에만 시작할 수 있다.

이 첫 번째 단서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이것은 우리의 관심을 중요한 핵심적 문제로 돌려주었고, 최초의 생명체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데 대한 해답을 아주 일반적으로나마 제시해주었다. 최초의 생명체는 ‘발가벗은 유전자(naked gene)’ 또는 이와 비슷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이 단서는 책의 앞 부분(제2장)에서 제시되었다.



두 번째 단서: 생화학에서
DNA는 현재의 생화학적 물질대사 경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에 위치하는 분자다. 이 사실은 RNA에도 적용된다. 화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생화학적으로도 이것은 만들기가 아주 어려운 분자다. 생화학에서 좀더 간단한 핵심적인 분자를 가지고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 구성 단위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DNA와 RNA라는 이제는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는 통제자가, 진화에 있어서 비교적 뒤늦게 나타났음을 시사해준다.

두 번째 단서는 이러한 유전물질이 태초부터 있었다고 간주했던 첫 번째 단서와는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순이 지적된 후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과제였다. 두 번째 단서를 제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몇 가지 세부사항이 설명되어야 했으며 두 개의 함정을 제거해야 했다. 이 단서는 제6장에서 잠재된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마침내 제7장의 끝 부분에서 제시되었다.



세 번째 단서: 빌딩 만드는 일에서
아치 모양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종의 발판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즉 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개의 돌이 쓰러지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있으면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돌을 지탱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을 보면, 마지막 완성물이 나타나기 전에 그 동안 건물의 틀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들이 제거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화과정에서도 기존 생명체가 포함하고 있던 물질이 제거될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핵심적인 생화학적 통제 기계류의 놀라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품 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세 번째 단서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은 없어진 것—옛날에는 발판으로 쓰였던 것—이 옛날에 있었을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즉 진화가 시작되던 단계에서는 구식 생명체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최초 생명체는 현재 우리의 생화학적 조직 내에는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은 유전물질에 바탕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단서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빨리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단서는 제8장의 앞 부분에서 제시되었다.



네 번째 단서: 밧줄의 본질에서
밧줄을 구성하는 어떤 섬유도 밧줄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기까지 연결해 있을 필요가 없다. 세대 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유전자 집합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우리의 먼 조상과 연결해주는 긴 계보는 여러 섬유로 구성된 밧줄과도 같다. 따라서 새로운 ‘유전자 섬유’는 전체적인 연속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더해질 수도 있고,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전자 섬유’는 없어질 수도 있다.

네 번째 단서는 수단과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이 단서는 어떤 한 종류의 유전물질에 근거를 둔 생명체가 어떻게 전혀 다른 유전물질에 근거를 둔 생명체로 점진적 진화를 해나갈 수 있었는지를 시사해주었다. 이 단서는 여러모로 첫 번째 단서보다도 더 핵심적인 단서였다. 이 단서는 제8장 중간 부분에서 나타났다.



다섯 번째 단서: 기술의 역사에서
원시적 기계류는 그것의 디자인 방식이나 구성 물질에 있어서 현재의 발전된 기계류와는 다르다. 원시적 기계류는 직접 구할 수 있는 물질로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장비로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발전된 기계는 작동을 잘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쉽게 조립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서로 협력하여 작동하는 다양한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다섯 번째 단서는 최초의 진화되지 않은 생명체가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하이-테크’ 생명체와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틀림없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도 현재의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 다섯 번째 단서는 제8장의 끝 부분에서 나타났다.



여섯 번째 단서: 화학에서
결정은 스스로를 만든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로-테크’ 유전물질로서 적당한지도 모른다. 유전자를 인쇄하는 공정은 가장 원시적인 과정에서조차도 아주 정확해야 하며, 많은 원자가 결합해야 한다. 커다란 유기분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이 경우에 복잡한 정보의 통제가 결정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여섯 번째 단서는 우리가 원시적인 생화학적 물질을 찾아나서는 데 있어서 일종의 방향 감각을 제공해주었다. 이 단서의 중요성은 제9장의 전반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나타났으며, 이 단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이 전부 소요되었다. 이 단서는 제10장의 첫 부분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일곱 번째 단서: 지질학에서
강에 의해 휩쓸려 내려가는 엄청난 양의 점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지구는 항상 점토를 만들고 있다. 점토의 광물은 단단한 바위가 풍화되어 생긴 물질을 담은 수용액에서 자라나는 작은 결정이다. 원시적인 유전자로서뿐만 아니라 ‘로-테크’ 촉매나 막과 같은 원시적인 통제 구조로서도, 이러한 종류의 무기화학 결정은 커다란 유기분자보다 훨씬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일곱 번째 단서의 중대성은 앞의 여섯 가지 단서에 의존한다. 물론 점토라는 아주 흔해빠진 물질이 최초 생명체의 물질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은 새로운 사실은, 이 점토라는 물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연구해보면 그것은 매우 재미있고 다양하며 복잡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이 일곱 번째 단서는 11장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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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 부분 발췌  (0)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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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끔찍하다. 실험을 안 하면 졸업을 못해요. 졸업을 못하면 먹고 살 수 없어요.




미치고 환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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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졸업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바쁘다. 문제는 연구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나질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일수록 연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만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다 (아, 연구할 시간도 빠듯한데 일에 매진하지 않고 엉뚱한 것(?)에만 전념하고 있으니, 이번 생은 망한 것임이 틀림없다).

큰마음 먹고 책 세 권을 모 온라인 서점에서 샀다. 그것도(!) 3개월 무이자 할부로 말이다 (돈 없다고 투덜대면서 돈 안 되는 데에는 펑펑 잘만 쓰지요). 내 전공―분자세포생물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가운데에 마르크스주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만큼 마르크스의 사상을 향유하는 것과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정치·사회의 현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꿈은 (아랫글에서 언급한 데이비드 하비의 예처럼) 생물학―특히 진화생물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목해 두 이론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냉철한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인데 그리될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니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것 같다.

구매한 책은 다음과 같다. 성공회대 석좌교수인 김수행 선생과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자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인 김진엽 씨가 공동번역한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금융자본론(Das Finanzkapital)>,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가끔 실없는 소리도 마구마구 늘어놓으시는) 강신준 선생이 번역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맑스 「자본」 강의(A Companion to Marx's Capital)> 그리고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이자 부소장인 조현연 씨가 저술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공부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나처럼) 마르크스주의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bourgeois society)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르크스가 살았던 1800년대 중반과 후반은 산업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던 시기로 애덤 스미스(Adam Smith)로 시작해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hardo)에서 정점에 다다른 고전파 자본주의 경제학이 시대의 주류를 차지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듯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인'의 상호작용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산업과 사회 전체의 부는 놀라우리만치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의 부가 증가하면 할수록 무산자의 수는 그에 비례해 늘고 있었다. 결국, 증가한 사회의 부는 개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일부 계층―즉 부르주아 계급―으로만 집중하고 있었다.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 실체'로 자리매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봉건사회의 귀족을 대신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했고, 부르주아는 자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속박했다. '자본을 연구하자'. 마르크스의 이러한 신념은 유물론(materialism),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하부구조(substructure), 계급이론(class theory)과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으로, 이를 위해 그는 최초에는 자본(capital), 토지재산(landed property), 임금노동(wage-labor), 국가(the State), 대외거래(foreign transactions),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라는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여섯 권의 책을 모두 쓸 시간을 갖지 못해 자본·토지재산·임금노동에 관한 연구 중 자본의 '일반적 성격'에 관한 부분을 <자본론> 세 권에 남겼다. 그 <자본론> 세 권 중에서도 마르크스가 직접 저술한 것은 제1권이고 나머지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남긴 자료를 토대로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마르크스가 죽은 뒤 정리해 발간한 것이다. 이것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엥겔스도 곧 죽음을 맞이했고, 제4권은 훗날 '마르크스주의 교황(좀 네거티브한 의미가 담겨 있다)'이라 일컬어졌던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가 <잉여가치학설사(Theories of surplus-value)>란 제목으로 따로 정리해 출판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구조(structure)와 동학(dynamics)을 '이상적 평균(ideal average)'에서 해명하기 위해 자본, 임금노동 그리고 토지재산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거대한 세 계급이 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 그리고 토지소유자 계급이라는 것에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형태의 자본(예: 독점자본)이나 임금노동자 계급의 투쟁(예: 노동조합) 그리고 자본주의적 토지소유 이외의 역사적 형태(예: 소농)에 관해서는 깊이 서술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론>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속성을 자세히 분석한 순수 연구 학술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이런 목적으로 저술했다고 해서 그의 투쟁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투쟁은 그의 다른 저술(예를 들어, <공산당 선언>, <고타강령 초안 비판>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다만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학자적 면모가 유달리 두드러진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쉬운 점이라면 마르크스가 생전에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인데―물론 현재 마르크스-엥겔스의 메모 등을 포함한 모든 문헌을 총정리해 재평가하는 MEGA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니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연구했는지는 훗날 밝혀지리라―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완수하지 못한 부분―국가와 세계경제―을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연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대로 이 책이 <자본론> 제4권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특히 <자본론> 제4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이미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의 연구를 정리해서 출판했으니―굳이 <자본론> 제4권이라는 별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힐퍼딩의 이론은 레닌(Vladimir Lenin)이 '제국주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하니, 그의 <제국주의(Imperialism)>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읽어야 할 책이 자꾸만 늘어나니 너무 슬프다).

  

데이비드 하비는 지리학자로서 마르크스의 자본 비판을 도시로 확장시킨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구소련과 중국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사실 이들 사회주의 국가가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일단은 유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자―를 참조하며 사상을 공부했던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지리학적 사유 속에서 마르크스의 분석을 재평가한 학자라고 한다(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소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데이비드 하비 : 공간의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라는 이력이 매우 흥미로운데―따지고 보면 힐퍼딩도 소아과 의사였음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했으니, 원래 이 바닥이 이런가 보다―그가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해서 약 40여 년간 공부해온 <자본론> 강독과 2007년도부터 시작한 강의 녹취록(데이비드 하비의 인터넷 웹 사이트 http://www.davidharvey.org에서 강의을 볼 수 있다)을 바탕으로 <맑스 자본 강의>라는 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세간의 평이 좋기도 하고(적어도 데이비드 하비 본인에 대한 평은 꽤 우호적인 것 같다), 그동안 공부한 마크그스주의를 정리할 겸해서 한 번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세 권 중 오직 제1권에 해당하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뭐 문제 될 것은 없다. <자본론> 제1권만이라도 다시 읽어보는 게 다행이지. 여담이지만 <자본론>은 정말 어렵다. 어렵다는 게 말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읽을 때는 '아하, 그렇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뒤돌아서면 '어, 그러니까 그게 뭐였지?' 때문에 어렵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내가 멍청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하나인)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는 그토록 출간되길 기다렸음에도 막상 책이 출간된 2009년에는 읽어볼 생각도 안 하다가, 인제야 읽고자 마음먹은 책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런 책은 인생에서도 그리고 정치적 입장에서도 제일 힘든 시기에만 꼭 생각난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아니,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
이 책은 진보 정당 운동의 역사적 궤적을 통해 한국 현대 정치를 조망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현대 정치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이 추구해 온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들은 어떤 이념과 가치 체계를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그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은 어떠했고 그에 대해 대중은 어떤 판단과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이 왜 실패했는지를 말 그대로 개인적 차원에서 조망하고 싶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역사적 기간은 해방 이후부터 시작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사태까지지만, 그때의 문제의식이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 '진보 정당 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본원적 문제―운동권 혹은 좌파 운동 내부의 이데올로기 부재와 사회주의 운동의 실종, 그리고 대중 일반과의 유리―를 아직도 끌어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내가 가진 지극히 개인적 판단이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진보 정당 운동의 문제점이라는 것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통합연대가 삼당합당(과거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삼당합당을 빗대어 비꼬는 이들도 있다)을 결정하기로 한만큼 이들이 세운 정당이 과연 진보 정당의 길을 갈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첨병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더불어 홍세화 선생을 새로운 대표로 맞이한 진보신당의 앞날도 더 두고 볼 일이고. 물론 현실이 암울한 만큼 다가올 미래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절실히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를 읽는다는 건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연구는 연구고 정치는 정치니 어서 빨리 읽어보자.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책을 읽자,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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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2011. 11. 23. 18:16 from 잡글
이곳은 과학 블로그를 지향하지만, 점점 정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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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의료공제회 이사회의 일방적인 "의료공제회 폐지" 결정 사태로 인해 구성원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총학생회장께서는 직접 PosB와 POVIS에 사과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사태의 책임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해명을 하셨는데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문제는 이 급박한 상황을 어떻게 학생의 권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돌이키느냐니까요. 따라서 앞으로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행보는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한 가지 상당히 아쉬운 점은 사태에 대한 사과 및 해명이 오직 '총학'에게서만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총학이 포항공대 학생 구성원을 대표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총학이 대의할 수 있는 계층은 주로 학부생일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을 설립하여 총학이 신경쓰지 못하는―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배려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대학원생 계층을 대의하고자 하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몇 분께서 아직 원총 결성이 안 되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로잡습니다). 의료공제회 이사회에 총학, 여총, 학과협, 기자회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 대표자가 참여하여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 것도 "의료공제"에 관한 회의에 대학원생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총학에서 사과문을 통해 입장을 표명한 만큼 대학원생 대표자도-공식적으로 원총은 설립되어 있지 않지만-일단은 대학원생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만큼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해야하지 않을까요? 대학원생 대표자께서도 총학 회장처럼 자신이 어떤 연유로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공식적으로 명확한 입장 표명 및 사과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실지 대답도 하시구요.

대학원생 대표자께서는 PosB 혹은 POVIS를 하지 않으신다구요? 그럼 오프라인에 대자보라도 붙여드리겠습니다.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대표자분들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구하느라 바쁘시다구요? 포항공대 학생 중에 안 바쁜 사람 누가 있습니까? 저도 제 연구뿐만 아니라, 학교 다니는 아내의 학비, 아이 육아비, 생활비 및 집세 등을 마련하느라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해야할 것은 합니다.

대학원생 대표자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명확한 입장표명 및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사후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진정 해야할 일 아닐까요?

대학원생 대표자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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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O과 박사과정 OOO입니다.

요새 여러 가지 일로 학교가 시끄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다사다난하고 시끌벅적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제(2011년 11월 15일) 접한 소식은 어떻게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25대 총학생회장이 전교 학생에게 공지한 "학생의료공제회(이하 의료공제)가 2012학년도부터 폐지될 예정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러한 결정이 오늘에서야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OOO 의료공제회 이사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구구절절한 설명 다 빼고 핵심만 간추려서 말해보겠습니다. 왜 학교는 '의료공제' 폐지를 주장하는가? 학교 측에서 내놓은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양한 의료 관련 보험이 존재하므로 '의료공제'의 운영의미가 미미하다. (2) '의료공제' 운영이 편향적이다. 즉, 모든 학생이 의료공제비를 내지만 오직 일부만이 그 혜택을 본다. (3) '의료공제' 운영비가 현재 적자인데, 의료공제 회비 인상 시 학생의 저항(혹은 불만)이 있을 것이다.

'의료공제'는 OOO대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안전망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오늘’을 살아가지 ‘내일’을 살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만 적확하게 직시할 수 있을 뿐,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미래라는 불확실성을 안고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불확실성’을 개인의 건강과 결부한다면, 오늘은 별 탈 없이 살아도 내일은 질병이나 육체적 손상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경험적 진리로 귀결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예기치 못한 일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개인이 받아야만 하는 '의료 서비스'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의 그 수준과 내용에 따라서 환자 개인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소득 원천이 없거나 혹은 매우 미미한 학생에게 ‘의료 서비스’ 구매 시 지출하는 비용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어떤 식으로든 금전적 부담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의료공제’는 ‘의료 서비스’ 구매 시 짊어지는 학생 개인의 금전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완충’ 혹은 ‘해소’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의료공제'의 최초 시행 이유가 "지역의료보험 및 국민건강보험 전국민 의무가입 시행 이전에 미가입 학생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라는 학교 측 설명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2011년도 제1차 의료공제회 이사회 안건> 참조). 그런데 여기서 학교 측의 논리는 이상합니다. “대학과 학생 개인별 의료사고에 대비한 보험가입이 활발해짐에 따라 학생의료공제회 운영의미가 미미함"을 ‘의료공제’ 폐지의 근거로 내걸고 있습니다. 학교는 왜 이런 결론을 내린 걸까요?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 다양한 의료보험이 대학 내외로 확충되었다고 해서 실제 학생 개인에게 돌아가는 의료비 부담이 과거에 비해 충분히 완화되었고, 이 때문에 실제로 짊어지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금전적 부담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현재 국민건강보험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확대 시행되었다 하더라도 실제 '의료 서비스'의 모든 부분이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보험적용 대상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당연히 ‘의료 서비스’ 사용에 대한 비용 지출이 발생하며, 이러한 비용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따라서, 소득 원천이 전무한 학생에게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의료비 지출은 서비스의 종류를 떠나서 금전적 부담이 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것이 단 돈 몇천 원이더라도 말이죠.

(2)번 사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11년도 제1차 의료공제회 이사회 안건>을 보면 '의료공제'가 편향적으로 운영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부생의 의료비 수혜비율이 22.55% 그리고 외국인 학생을 포함한 대학원생의 의료비 수혜비율이 77.45%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통계자료만 본다면 대학 측의 근거는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의료공제'라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망'에 해당하는 사항입니다. '의료공제'가 편향적으로 운영된다고 언급하는 것은 '의료공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성격인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 시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출된 결론이라고 봅니다.

(3)번 사항도 들여다볼까요? '의료 서비스'라는 것이 획일화되어 있지 않고 저마다 겪을 수 있는 질병이 다르므로, 환자 개인이 받아야 하는 '서비스'의 종류 및 가짓수와 소요 비용의 정도 또한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매 학기 등록금 납부와 동일한 시기에 일정하게 거둬들이는 '의료공제’ 회비로는 다양한 종류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실제로도 대학은 <이사회 안건>에서 "2011학년도 의료공제 회비 수입 및 지출 현황"에서 수입 136,660천원 지출 146,294천원으로 전체 9,634천원, 다시 말하자면 약 천만 원 가량의 적자가 났음을 명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의료공제'를 폐지를 뒷받침하는 정당한 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비용적 측면이 부담된다면 이를 보완해나갈 방법을 강구하면 될 것입니다. 또한 ‘의료공제’ 운영은 기본적으로 대학의 금전적인 지원이 없이 전액 학생들이 납부한 회비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대학이 제시한 '의료공제회비'의 지출현황에는 '전년도 미지급 이월지급'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료공제 회비 인상 시 학생 개인의 부담 증가와 불만표출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폐지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학생 개인에게 의료공제’ 회비 인상이 부담되는지 물어봤습니까? 공청회라도 열었습니까? 아무런 의견 수렴의 노력이 없었는데도, 대학은 어떻게 해서 학생에게 불만이 표출될지 예상할 수 있습니까? 혹시 ‘학생은 학교의 결정 사안에 대해 불만을 품기 마련이다’라는 편견이 대학 측의 사고방식에 은연중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학교 입장에서는 사소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학생에게는 절실한 것도 있습니다. 일례로 ‘의료공제’와 같은 사안입니다. 일방적 결정은 언제나 그에 비례하는 저항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문제는—학교의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 정책 결정 및 진행—어떻게 보면 이것이 많은 학생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는 핵심적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의료공제 폐지'라는 'OOO대 구성원의 이해'와 밀접히 결부된 중요 사안이라면 의료공제회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구성원의 생각이 어떤지 알아보는 게 올바른 순서 아니었을까요? 특히 총학생회와 대학원생 대표는 이사회 의결 이전에 이를 전체 구성원에게 알리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판단합니다만, 저를 포함한 학내 구성원 다수는 이사회 의결 전까지, 즉 총학생회 회장이 교내 게시판을 통해 알리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절차상의 문제입니다. 학생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학생의 대표자 ‘총학생회’가 중차대한 의사결정 사항에 있어 학생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더 어이가 없는 것은 학생 대표자(들)이 내놓은 표결 결과였습니다. ‘의료공제 폐지안’에 대해 반대가 한 표고 나머지는 찬성 혹은 기권이었습니다. 대표자들의 결정은 학생의 의견을 반영한 것입니까? 아니면 개인의 의견입니까? 학생 대표자는 ‘의료 서비스’를 전혀 받을 필요 없는 ‘유령 학생’이라도 대변하는 겁니까?

'총학'이 선거라는 공적인 과정을 통해 구성되고 이 때문에 학생 전체를 대의한다는 공식적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학생은 '총학'에게 대변할 수 있는 권한을 선거를 통해 한시적으로 부여한 것이지, 중요 사안에 대한 '일방적 결정권'을 합법적으로 허락한 게 아닙니다. 위임이라는 것에는 대표자 개인의 의사가 투영되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언제나 구성원 전체의 의견과 뜻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이 일은 총학생회장이 오늘(11월 16일) 낸 사과문으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명백히 현 총학생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의료공제’와 관련된 중대 사안은 2011년도 총학생회로 넘겨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고민도 없이 중대 사안을 마음대로 결정했다는 것은 분명한 잘못입니다. 총학생회장은 모든 질책은 자신이 받겠다며 혼자 총대를 메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 일은 총학생회장 본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집행부 전체의 문제입니다. ‘의료공제 폐지’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집행부끼리라도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습니까? 집행부는 총학생회장에게 이번 ‘의료공제’ 폐지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제기했습니까?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건 총학생회장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행부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사회에서 본인들의 손으로 직접 결정한 사항을 사후대책이랍시고 이제서야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정녕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식의 정책 진행은 명백한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안이함 그 자체입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여쭙겠습니다. 소득 원천이 없는 학생에게 ‘OOO 의료공제’가 정말 무의미하다고 보십니까? 최소한의 안전망적 성격이 강한 ‘의료공제’가 대학원생이 높은 비율로 수혜를 입는다고 해서 그것이 ‘편향적’이라 판단하십니까? 더불어 ‘의료공제’ 운영이 적자를 본다고 해서 다른 해결 방안은 찾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그게 최선입니까? 마지막으로 총학생회 및 대학원 대표를 포함한 학생 자치 기구에게 당부 드리겠습니다.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은 십분 공감합니다. 학생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반적 절차—즉 여론 수렴의 과정—를 거치지 않는 파행적인 의사결정은 총학생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비록 ‘2012년도 의료공제 폐지’가 이사회에서 결의되었다 하더라도, 이번 사안의 중대성과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이에 대한 제반 사항을 원점부터 다시 짚어 봐야 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의료보험 시행과 운영의 편향성 그리고 비용적 문제를 고려한다고 해도, ‘의료공제’가 내포하고 있는 실체적 의미를 일방적으로 폐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의료공제’에 관한 여러 사항이 2012년도 이후 총학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며,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OOO대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의견 다수가 충분히 수렴되고 논의되어 “의료공제”라는 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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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XX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OOO입니다.

혹시 OOO대의 학부생과 대학원생 중에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사회당, 녹색당, 사노위 등의 여러 진보 정당(혹은 설립모임)에 가입해 있거나 혹은 지지하는 분이 계신지요? 또는 ‘전국 학생 행진’, ‘대학생 사람연대’, ‘자본주의 연구회’ 등 진보적 단체 등의 회원이거나 지지하는 분이 계신지요? (제가 모든 단체의 이름을 전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정당 또는 단체 이름을 일일이 기재하지 못하는 것을 미리 양해드립니다.)

이렇게 [교내BBS]를 통해 여쭙는 이유는, 제가 OOO대의 구성원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진보신당 당적을 가진 당원으로서 OOO대 내에 있는 여러 진보적 정당 및 단체 회원 혹은 지지자와 함께 한국사회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주제(예를 들어 진보대통합 등)를 포괄하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우리는 OOO대라는 학문의 터전에서 저마다 큰 꿈을 안고 매일 학업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학생이자 예비 과학자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학문분야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의 여러 가지 정치적 이슈에 대해 무관심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적 단위체입니다. 외적으로는 사회 현안에 관심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정치적 의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문제일 수 있고, 연구와 관련된 문제—과학 본연의 문제가 아닌 과학정책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인권과 노동 문제 등을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주체인 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정기적/비정기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 서명을 통해 사회적 단결을 도모하기도 하거나 언론을 통해 의사를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에서 보장된 수단을 통해 정부 혹은 특정 기관 및 단체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강력히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정당 및 단체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구체화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제가 가진 정치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진보신당이라는 정당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미미하기는 하지만, 저의 정치적 의사가 소속 정당을 통해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진보신당 당원이기 때문에 다른 진보 정당과 단체의 회원 또는 지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안에 대해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대상이 주로 진보신당에 소속한 당원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학교 내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현실적으로 다른 정당과 단체의 회원 또는 지지자와 의견을 나눌 기회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제가 알고 있는 다른 진보 정당과 단체의 입장은 ‘공식 논평’ 혹은 이와 비슷한 것을 통해서 얻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진보대통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직도 민주노동당, 통합연대 그리고 국민참여당 사이에도 논의되고 있는 ‘진보대통합’이라는 사안에 대해서도 저는 ‘진보신당’만의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며, 다른 진보 정당 및 단체의 회원 또는 지지자 개인의 생각과 의견은 사실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진보대통합’을 포함한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해 ‘정당’이나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닌 회원 또는 지지자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 위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여러분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OOO대 내에 진보적 정당 또는 단체에 소속하거나 지지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리고 저를 포함한 다른 정당 및 단체에 소속된 당원과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으시다면 주저하지 말고 제 이메일(XXX@XXX)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두서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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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새 증후군

2011. 11. 7. 13:20 from 잡글

"과학자들은 좋겠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면서 "예, 뭐 그런 셈이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건 아마 어떤 세계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연구실에서 내 위치는 박사후 과정(Post Doctor)이었다. 박사 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자리는 교육 과정을 끝낸 연구원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간이다.
이과계 연구원들은 대학 4년 과정을 마치면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석사 2년, 박사 3년, 합계 5년이 표준이다. 이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구 프로젝트를 다루면서 여러 편의 논문을 쓰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소속된 연구실의 교수로부터 주제를 받는다. 그리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우리에게 박사 학위는 연구원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운전면허증에 불과하다.
사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실험으로 밤이고 낮이고 고생하다가 겨우 박사 학위를 받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후의 인생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연구원으로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운이 좋다면 대학의 조교 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돈을 받는 건 맞지만 그 외의 겻들은 전혀 상상과 다르다.
조교로 채용된다는 것은 아카데미의 탑을 오르기 위한 사다리에 발을 얹어놓은 것임과 동시에 계급사회에 진입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카데미 밖에서는 보기에는 반짝이는 탑처럼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어둡고 칙칙한 문어단지 속이다. 강좌제라 불리는 이 구조의 내부에는 전군대적인 계급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교수 이외의 모든 사람은 하인이나 다름 없다. 조교―강사―조교수. 자신의 인격은 팔아버리고, 나를 버리고 교수에게 빌붙어서는 그 사다리에서 혹시 발을 헛디디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걸레질, 가방 대신 들어주기, 온갖 잡무와 학대를 끝까지 견뎌낸 자만이 이 문어단지의 가장 안쪽에 마련된 방석 위에 앉을 수 있다. 오래된 대학의 교수실은 어느 곳이나 죽은 새 냄새가 난다.
죽은 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새는 넓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다. 성공하여 이름을 날린 위대한 교수님. 우아한 날개는 기류를 세차게 박차고 더욱 높은 곳을 향한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죽은 새 증후군. 옛날부터 우리 연구원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일종의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병의 이름이다.
우리는 빛나는 희망과 넘칠 듯한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선에 선다. 보는 것, 듣는 것마다 날카롭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하나의 결과는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우리는 세상의 누구보다도 실험 결과를 빨리 알고 싶어하므로 기꺼이 몇 날 밤을 새기도 한다. 경험을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업무에 능숙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일이 더 잘 진행되는지를 알기 때문에 어디에 주력하면 되는지, 어떻게 우선 순위를 매기면 되는지 눈에 보인다. 그러면서 점점 더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무슨 일을 하든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가장 노련해진 부분은, 내가 얼마나 일을 정력적으로 해내고 잇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기술이다. 일은 원숙기를 맞이한다. 모두가 칭찬을 아까지 않는다. 새는 참으로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항공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 새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이제 그의 정렬은 모두 다 타버리고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후쿠오카 신이지, <생물과 무생물 사이>, 75~77쪽


후쿠오카 신이치라는 일본 출신 생리학자의 저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신이치는 PCR을 발견한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있었던) 캐리 멀리스(Kary B. Mullis)를 소개하기 위해 자신의 모국인 일본의 과학계의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한국의 과학계에 몸을 담고 있거나 한때 몸담았던 적이 있었다면 후쿠오카 신이치가 묘사한 일본의 과학계가 한국과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블루오션 혹은 잭팟이 터지길 바라며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를 가슴에 품고 갖은 고생을 견디며 연구에 매진하지만, 학위 수여 후 돌아오는 것은 불안정한 연구원 생활이다. 사람들은 박사 학위가 세상의 온갖 부와 명예에 대한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지만, 허울을 벗겨보면 그것은 대부분 거짓 혹은 과장에 가깝다. 혹시나 명예 정도는 있을지 몰라도―한국에서는 박사 학위를 소지한 사람은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것처럼 취급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냥 그게 전부다.―명예가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명예가 램프의 요정 '지니'는 아니다.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를 계속하려면 교수 혹은 선임급 이상의 연구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직책을 얻으려면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줄 수 있는 업적이 필요하다. 즉 셀(Cell), 사이언스(Science), 네이처(Nature)라는 '대단한' 저널에 자신의 연구 업적을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저널에 발표하는 게 쉽지 않다. 일의 중요도가 선별 기준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대단한' 저널에 자신의 연구를 발표할 기회를 잡지는 못한다. 바로 인지도 혹은 정치력이다.

백인이 선점한 과학계에서 비(非)서구권 출신의 비(非)백인이, 그것도 미국·유럽이 아닌 한국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나라에서 몇십 점 되는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의 영향력이 있는 좋은 저널에 논문을 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만약 한국의 어떤 교수 혹은 연구원이 빅 저널(big journal)에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다면 그 연구가 뛰어나거나, 연구의 책임자로 포함되어 있는 교수 혹은 연구원의 학계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함을 의미한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업적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선 특히 연줄―학연, 지연 그리고 혈연―도 강하게 작용한다. 아무리 좋은 논문을 내도 연줄이 없으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내 선배 중에도 연구 실적은 좋지만, 연줄이 없어서 한국에서 직장을 잡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이들은 낫다. 자신들이 원하면 미국 같은 곳에서 교수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미국에서 교수가 되어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쪽도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은 소수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 연구비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돈이 있고, 이런 여건이 충족되므로 자기가 먹고 사는 건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머지는 어떤가? 교수도 되지 못하고 연구소의 연구원도 되지 못한 수많은 박사들… 후쿠오카 신이치는 죽은 새 증후군을 얘기했지만, 교수가 되지 못하고 안정된 연구원도 되지 못한 다수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날지도 못한 채 둥지 밖에서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한다. "넓은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꾸며 둥지 밖으로 나가지만,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끊임 없는 경쟁을 종용받으며 과학에 대한 꿈과 열정은 점점 더 사라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삶을 두려워하며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채 쓸쓸히 죽어간다. 후쿠오카 신이치가 언급한 것처럼 연구자의 일부는 죽은 새 증후군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성공한 자의 이야기다. 연구자 다수는 그냥 방치되어 두려움에 떨다가 이름도 모를 병으로 쓸쓸히 죽어 간다.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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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지난 9월 4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 송파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진보대통합 안'을 논의하기 위한 '진보신당 3차 임시 당 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대의원을 포함한 당원 동지들이 송파구민회관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정족수가 채워지자 안건에 대한 발언과 토의가 활발히 오고 갔다. 분위기는 매우 격앙됐다. 통합 지지와 반대를 오고 가는 토론은 시간이 갈수록 격해졌다. '진보대통합'이라는 화두로 시작해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어져 온 우리끼리의 대립은 곧 종지부를 찍을 듯 보였지만, 당의 앞날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임시 당 대회'의 최종 결론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당 대회 진행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당원 동지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표결의 순간을 만감이 교차한 가운데 진지한 눈빛으로 유심히 지켜봤다.

결과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안건의 전면 부결이었다. 원안인 <5·31 연석회의 최종 합의문>과 <8·28 (잠정)합의문>이라는 두 개의 '진보대통합 안' 모두 모두 재석 410명 중 3분의 2인 274명을 넘기지 못한 222명에 그쳐 부결됐다. 이에 앞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문구가 포함된 <수정동의안>도 재석 408명 중 찬성 231명으로 부결됐다. '진보대통합'은 진보신당에서 시작되어 진보신당에 의해 부결됐다.

애당초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반대해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해 만든 진보신당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된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자 정당을 기반으로 이전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진보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설립한 진보신당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 창당 후 3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단지 지방 선거에서 연속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 분당의 원인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나 다름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은 진보신당 당원 대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진보신당이 왜 민주노동당에서 분리해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내 명망가와 일부 활동가들의 일방적인 통합 강행은 당 운영의 민주주의에 반하는 패권주의적 발상이었다.


사진 출처: 뉴시스

당 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된 이후, 진보신당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이미 곪을 대로 곪은 통합파와 독자파 간의 첨예한 대립은 통합파의 대거 탈당이라는 예견된 파국을 낳았다. '통합연대'의 주축인 노회찬과 심상정 전 상임고문의 탈당을 시작으로 통합파 동지들의 탈당은 본격화되었고, 조승수 전 대표를 포함한 전국 시도당 위원장의 동반 탈당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최고조에 달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합파 동지들이 대거 탈당하더라도, 남아 있는 독자파 동지들이라도 힘을 한데 모아 위기를 헤쳐나간다면 현재 위기 상황은 어떻게든 극복하겠지만, 조승수 전 대표가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김은주 부대표가 권한대행직을 맡으면서 진보신당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출처: 참세상

강경 독자파인 김은주 권한대행의 독단적이며 비민주적인 당 운영―특히 당직자를 포함한 비대위 위원을 자기 쪽 사람으로 채우려는 독선적인 행태―은 통합파 동지뿐만 아니라 독자파 동지들에게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중앙당의 밀어붙이기식 통합 방식에서 보인 비민주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방식을 김은주 권한대행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그것도 진보신당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때문에 강상구 전 대변인을 포함한 다수의 진보신당 동지들은 김 권한대행의 즉각 사퇴 및 조속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촉구한 바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혜경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가 구성되었으며, 김은주 권한대행은 새로운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만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어제(10월 26일) 홍세화 선생이 진보신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홍세화 선생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당 대표 출마의 변>이라는 한 편의 장문으로 진보신당 당 게시판에 남겼다.


사진 출처: 한겨레

홍세화 선생은 1979년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때문에 공안 당국의 수배를 받았고 프랑스로 망명해 20여 년간을 객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오다가 2002년 한국으로 귀국한 바 있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온갖 고초를 겪은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남민전 사건'이 공안 당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최근에 밝혀져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탄압받은 29명이 2006년 3월, 전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일도 있었다.

홍세화 선생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진보신당 내 동지들―독자파든 통합파든―의 의견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홍세화 선생의 당 대표 취임은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그동안 불거진 상호 불신을 불식하는 데도 어느 정도 일조할 듯 하다. 그럼에도, 이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솔직히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에 새로이 취임한다 해도 그에게 진보신당을 위한 명확한 비전―민주노동당과 차별되는 대중적인 좌파정당으로서 생존을 모색할 방안―이 없다면 그의 당 대표 취임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고, 우리가 우려했듯이 진보신당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홍세화 선생에게는 진보신당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는가?

"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홍세화 선생의 말마따나 그동안 우리는 '진보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론―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에만 매달렸을 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잊고 지냈다. 내부에서 우리끼리 투쟁하느라 모든 힘을 소진해버리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는다고 상황이 달라지는가?

오직 '우리만 음미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어봤자 대중 일반이 알아주지 않는 한 아무 소용없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대의명분을 제대로 알린 적이 있는지 반문해보자. 내 기억엔 없다. 내가 기억하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대의명분'만 있고, 노선 투쟁만 죽어라 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이다. 상황이 이러니 진보신당의 지지율 하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중권에게 '좌파 동아리'란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 없다.

"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 우리 당의 능력 있는 젊은 일꾼들과 함께 지역별로 또는 과제별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루속히 조직화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생존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갈 것입니다. …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바뀌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 당 속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진보정치를 다짐하며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왔지만,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 선거 몇 번 한 것이 전부다. 따지고 보면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것도 당연하다.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에 몸담은 당원이거나 혹은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민중 대부분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진보신당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한 정당'인지도 잘 모르는데 누가 지지의 손길을 보내겠는가? 그나마 노회찬, 심상정 그리고 조승수 같은 명망가가 있었으니 대중에게 어필이라도 했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대중 일반에게 진보신당은 사실상 '듣보잡'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대중 일반의 선택은 당연히 인지도가 있는 민주노동당이다. 단순히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는 굳이 정당을 설립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진보신당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꾸준한 정치적 활동이다. 지역사회에도 알려지지 않은 신생 정당을 대중 일반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거란 순진한 착각은 버려야 한다. 더불어 주류 정당이 만들어내는 사회적·정치적인 이슈만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서 선점해야 한다. 사회적 이슈 앞에 언제나 진보신당이 앞장서야지만, 대중은 '진보신당' 이름 넉 자라도 기억해준다. 이런 노력은 전무한 채로, 우리의 "정체성"만 맨날 찾다가 맞이하는 것은 오로지 '진보신당의 예정된 멸망'뿐이다.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 출마의 변>이라는 아주 감동적인 글로 자신의 소회를 밝히긴 했지만,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벅찬 감동이 아니라, 냉철한 자기성찰과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다. 눈물로 뒤범벅된 벅찬 감동은 진보신당이 살아남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내가 정말로 홍세화 선생의 글에서 아쉬운 점은 정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냉철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한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반성문이 아니라 진보신당을 살릴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판단이다.

물론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로 취임한 뒤에 진보신당의 생존을 위한 계책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출마의 변'은 그냥 '출마의 변'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홍세화 선생이 새로운 당 대표가 된다면 다 죽어가는 진보신당은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아직도, 진보신당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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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
 -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

홍세화(서울마포당협 당원)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 있었던 땅에 다시 돌아온 뒤로, 저는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 뿌려진 진보정당의 씨가 마침내 개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회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망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쓴 글을 읽거나 저를 알고 지내온 사람이라면 제가 버릇처럼 되뇌던 말 하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의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는 것, 이것이 귀국 이후 10년 동안 제가 품어온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가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이를 두고 가당찮은 나르시시즘이라 이름 붙일지 모르지만, 제 꿈은 ‘사병’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합니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습니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평당원 홍세화!”― 이처럼 자랑스런 호명이 없을 것이고, 이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고 싶다는 것! 지독히도 척박한 이 땅에서 힘겨운 진보정당의 발걸음 앞에 놓이는 작은 거름이 되는 것, 그 긴 행렬의 끄트머리를 지키며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우다 사라지는 것, 이것은 단지 소망을 넘어 제 삶의 원칙이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둑이 흔들리고 금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보신당>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당의 보루라 믿어왔던 원칙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는 것을 목격하면서 저와 같은 평당원들의 꿈들 역시 황망한 처지에 놓였을 것을 생각하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힘겨웠습니다. 그냥 달아나버리고 싶을 때는 마포강변을 걸었습니다. 나의 빈 주먹질을 묵묵히 지켜보던 쎄느강처럼, 과거 홍수가 나면 주변을 초토화시키곤 했던 그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 말입니다.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무너져가는 둑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언제나처럼, 대답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믿음이 살아나는 당을 위해 이 무대에 오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허공을 향해 퍼부었던 탄식과 누군가를 향한 원망을 모두 접습니다. 주저와 망설임 끝에 저는 오는 11월 진보신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하였습니다. ‘보다 나은 삶’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정치는 존재하며, 그러므로 ‘정치는 고귀한 것’이라 주장해왔지만 결코 저 자신이 오르고 싶지는 않았던 무대, 그 무대에 오르며 당원 동지 여러분께 제 두려운 결심을 알리고, 숱한 번민과 그동안 느꼈던 마음의 고통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진보신당의 미래에 대한 저의 희망을 간략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3년 전 ‘새로운 진보’의 깃발을 내걸고 창당된 뒤, 우리 당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모든 노력들이 헛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오늘 <진보신당>의 초라한 모습 앞에서 자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관성과 관습을 넘어선 우리의 새로움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입니까? 새로움은 어디서 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까? 진보정치의 새로움은 잠자는 권리와 저항의식을 일깨워 불의한 세상의 질서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고 그 최전선에서 눈 부릅뜨고 미래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어디에서 나태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이 자가당착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상황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당 바깥의 대중은 진보신당의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고 우리 당의 당원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불신과 반목은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 피어나는 가시꽃입니다.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지리멸렬을 지속하다 자멸의 시간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 황량한 가시밭을 다시 일구어 ‘빵과 장미’를 가져오는 당의 새로운 시작을 피와 땀을 흘려 만들어낼 것인가? 만일 우리가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위해 저는 이제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 위로 오릅니다.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되새깁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동지 여러분과 제가 떠올려야 할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진보신당>에 남으려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다른 이가 내던지고 간 이 막막한 짐을 계속 지려 하는 것입니까? 그 까닭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아니면 어떤 정당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군부 독재가 종말을 고한 뒤에 민중은 지금 자본의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전 세계에서 요동치는 반反금융자본 투쟁 하나만을 보아도 충분한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35미터 상공의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찬바람을 맞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만 보아도 명확해지는 사실 아닙니까? 우리가 만일 <진보신당>의 당원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양심적인 시민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 땅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약자들의 투쟁의 뒷자리에 서있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만으로는 당과 당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신당>은 자본의 거대한 힘과 싸울 뿐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너머의 내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권력에 맞서 싸워야 할 진보세력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포기하고 급속히 ‘우경화’되는 사태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이 아니라 먼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당의 정체성은 어떤 경우에도 선언이 아니라 실천적 활동 속에서 실현됩니다. 비정규직 없는 평등국가, 핵과 자연 수탈이 없는 생태국가, 전쟁 없는 평화국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연대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입니다. <진보신당>은 싸우는 시늉만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민생은 ‘투어’로 자족해도 좋을 만큼 여유롭지도 녹록치도 않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저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싸우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거대 지배 권력과 싸우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 그리하여 약자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진보신당>밖에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이 공허한 논쟁으로 분열되고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을 올바르게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여기가 로두스Rhodus다. 여기서 뛰어보라!” 만일 우리에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힘이 남아 있다면 다친 무릎을 일으켜 세워 있는 힘을 다해 절벽과 절벽 사이를 다시 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당의 능력 있는 젊은 일꾼들과 함께 지역별로 또는 과제별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루속히 조직화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생존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일에만 몰두하여 ‘지혜’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열악할수록 지혜는 선택과 집중 속에서 잘 발휘될 것입니다. <진보신당>처럼 단 하나의 의석도 없는 작은 정당일수록 한국 사회에 새롭고 핵심적인 의제를 던지면서 진보정치를 주체적으로 견인해야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도자를 추종하는 당원이 아니라 이 시대의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따지는 지혜로운 당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들이 무엇인지 상당 부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해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하며, 상비군 폐지를 공론화시켜 병영국가의 성벽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서울대는 없애고, 대학은 평준화하며, 각종 국가고시는 지역별로 할당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학벌사회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지배 담론에 길들여져 허락된 것만 말하는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바뀌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 당 속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 당의 문화가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호혜적이지 않다면, 보수정당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비난하는 극우 사익추구집단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작은 차이로 끝없이 반목을 거듭한다면, 누구에게 참된 만남과 고양高揚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이 결심을 하고자 했을 때 저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극구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한 말 중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선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를 아직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상처가 두려워 평당원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였던가요,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던 이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만신창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척박한 땅에 참된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는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얻은, 그것 아니었다면 쎄느강변에서 소멸했을 허명에 값하는 의미로서 이미 충분합니다. 동지 여러분이 <진보신당>의 당원임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반드시 오게 하기 위해 오늘과 내일 받을 상처 때문에 뒷걸음질 치지 않겠습니다. <진보신당>은 지나간 역사와 희생당한 투사들에게 빚지고 있는 정당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듯이, 제게도 제가 부재한 땅에서 어둠과 싸우다 앞서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진보신당>의 새출발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으로 이 빚들을 갚으려고 합니다. 부디 저를 딛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인사글의 제목은 체코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치가인 바츨라프 하벨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바츨라프 하벨

일단 내가 시작해야 하리, 해보아야 하리.
여기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어디서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라고
자신에게 핑계 대지 않으면서,
장황한 연설이나
과장된 몸짓 없이,
다만 보다 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홀연히 알게 되리
놀랍게도
내가 유일한 사람도
첫 사람도
혹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에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2011년 10월 26일 홍세화 드림

출처: 진보신당 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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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는… 영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괴테의 생각에 동의한다. … 우리는 단순 명료한 스피노자의 일원론을 확고하게 신봉한다. 물체와 영혼(또는 에너지)은, 즉 무한히 확장된 실체와 지각있고 사유하는 실체는 세계의 포괄적인 본질로 우주의 두 가지 기본적인 속성이다"

"정신은 세포 속에 있고, 불멸이란 형이상학적 허위이며, 생명은 그 자체 이외엔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존재는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의 물질이다."

"인간성이란 그저 영원한 실체의 진화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단계에 불과할 뿐이며, 물질과 에너지의 특별한 현상적 형태,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금방 인식할 수 있는 진정한 부분이다."

from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 도리언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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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럽의 시민들?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에티엔 발리바르 / 진태원역
출판 : 후마니타스 2010.05.31
상세보기

대중들의 공포 (양장)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에티엔발리바르 / 서관모,최원역
출판 : 도서출판b 2007.09.18
상세보기

정치체에 대한 권리
국내도서>사회과학
저자 : 에티엔 발리바르 / 진태원역
출판 : 후마니타스 2011.10.17
상세보기

학교 도서관에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가 저술한 책 세권을 주문했다. 발리바르를 읽는 건 왠지 새로운 경험이 될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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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글로벌 시장경제에서 금융이 무너질 확률은 매우 과소평가되고 있다. 은행 손실은 한없이 악화될 수 있다. 은행 자체가 파산하는 것은 약과이다. 다른 은행에 대한 부채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손실은 한 금융기관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퍼질 것이다. 규제 당국이 가장 상태가 나쁜 금융기관 주위에 방화벽을 쳐야만 위기가 더 이상 학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은 연달아 발생하는 법이라서 한 번은 위기를 넘기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위기는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 대부분의 경제이론가들은 잘못하고 있다. 경제 모델들이 실패해도 버리는 법이 별로 없다. 대신 틀린 경제 모델들을 '고친다'. 즉, 수정하고 한정시키고 상세화하고 확장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나쁜 씨앗에서 자라 튼튼하지 않은 나무를 풀, 못, 나사, 지지대 등으로 서서히 키워낸다. 기존 경제학은 금융시스템이 선형으로 움직이고 지속적이며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며, 세계의 은행들이 많이 사용하는 리스크 모델에는 이런 잘못된 가정이 반영되어 있다.
― <자본주의 4.0>, 239쪽


만델브로트(Benoit Mandelbrot)와 허드슨(Richard Hudson)이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The (Mis)behavior of Market: A Fractal View of Risk, Ruin and Reward)>에서 언급한 내용을 칼레츠키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했다.

여기서 만델브로트는 금융 위기에 대한 예를 들고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몇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본다. "기존의 경제 모델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현실은 경제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반증함에도, 경제학자들은 억지로 현상을 경제 모델에 맞추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합리적인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순환오류에 빠져 있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제 모델도 타당하지 않으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똑같은 말을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확실성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친 자본주의적이든 반 자본주의적이든 누구나가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단지 둘 사이의 차이는 친 자본주의 이론가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반 자본주의적인 이론가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필연적 모순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는 비관론적인 경향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다 큰 차이가 있다) .

자본가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경제 이론가는 자본주의가 가장 최선이며, 가장 민주적이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도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의 심연에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최상이다'라는 명제가 무의식에 각인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외 것은 최선도 아니고, 비민주적이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자본가와 자본주의 이론가도 수두룩하니 말이다. 이런 냉소적 시선에 대해 뭐라 하지 말라. 그냥 잡설은 잡설로 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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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본주의 4.0”이 화두다. 특히, 조선일보는 위기의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라면서 연신 “자본주의 4.0”을 떠들어대고 있다. 도대체 “자본주의 4.0”이 무엇인가? 조선일보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주의 4.0은 따뜻한 자본주의다". 그리고 그 따뜻한 자본주의는 기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4.0”은 기부로 철철 넘쳐나는 아름다운 자본주의 세상이다. 얼핏 들으면 정말 그럴싸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기자수첩] 386세대 기부는 생활의 일부… '자본주의 4.0'의 희망을 보다
[자본주의 4.0]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다, 한국의 부자 49人

아름다운 자본주의라는 것은 실재하는가? 자본주의가 정말 아름답고―인간이 만든 시스템이니 어느 정도 그 안에 내재한 모순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훌륭한 것이었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본질이 물질―즉, 잉여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의 발화로 나타난 것임을 상기한다면 인간 노동까지도 상품이 되어버리는 자본주의는 전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노동이 어떠한 취급을 받는가? 모든 것은 자본으로 환원되고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어진다. 사회의 모든 것은 발전과 진보라는 미명 하에 철저히 자본화되어 간다. 그리고 인간성은 점점 더 말살되고, 자본은 인간의 위에 서서 군림한다.

기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고래로부터 기부는 끊임없이 행해져 왔다. 고대 로마, 중세, 근대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그것을 기부라 부르거나 혹은 기부 이외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간에―기부는 많은 부자가 선심 쓰듯 가난한 자를 위해 시행된 일종의 사적 구휼책이었다. 서양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경우는 동양에서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기부가 과연 세상을 바꿨을까? 가까운 예를 들자면,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등의 초대형 자본가의 아낌없는 기부가 진정 세상을 바꿨다고 할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부자의 기부가 미국 사회에 만연한 가난을 궁극적으로 해결했는가?

물론, 부자의 기부가 가난한 자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사회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어느 정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부는 일종의 사적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시스템의 본질적인 모순 때문에 가난한 자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면, 그리고 그것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극으로 치닫는다면 기부가 할 수 있는 별로 없다. 기부를 많이 하고 또한 장려하는 것은 분명히 미덕이지만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데 있어 최선책은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모순을 심층부에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본질 자체가 변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부는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가 저술한 <자본주의 4.0 –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Capitalism 4.0 – The Birth of a New Economy)>이란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본주의 4.0”은 애당초 "기부가 철철 넘쳐나는 아름다운 자본주의 사회의 도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칼레츠키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4.0”의 핵심은 정부와 시장이 서로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완하는 관계로 가야지만,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부란 개념을 찾은 조선일보의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것인지 알길이 없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 미루어 보건대 실상은 후자―조선일보 필진 혹은 경영진의 난독증을 동반한 멍청함―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국사회에 만연한 자본주의 모순을 "서민을 착취해 자기 배를 채운 부자가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가난한 자를 향해 기부라는 아름다운 손길을 내민다"는 형용모순으로 감추기 위해 "자본주의 4.0"이라는 본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말을 쓴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음은 <자본주의 4.0>이란 책에 나오는 머리말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꽤 길지만, 아나톨 칼레츠키의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 있다.




마침내 <자본주의 4.0>을 다 읽었다. 솔직히 다 읽지는 않았다. 책의 뒤편에 나와 있는 "자본주의 4.0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대충 훑어만 봤는데, 진부한 내용에 그가 말하는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이 책에 그리도 관심을 두고 열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나톨 칼레츠키의 주장은 여태껏 케인즈주의자를 위시한 비주류 경제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내용의 짬뽕이나 마찬가지다. 더불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역사관도 어느 정도 차용하긴 했는데, 그것 이외에 쓸만한 내용은 없다.

서평이라 할 것도 없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자본주의 4.0'은 너무나 뻔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시장과 정부가 서로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상호 보완 및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표면적으로는 시장과 정부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적어도 1920년대의 대공황 이후에는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해왔다. 그것은 198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정치가와 자본주의 경제학자는 작은 정부를 통한 시장의 우위를 주장했지만, 뒤에서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했다.

더불어 시장은 언제나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실상 뻔한 얘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가 얘기하는 것은 거의 케인즈주의에서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강력하면서도 작은 정부는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 역시나 진부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시스템은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가 있어야만 시장경제가 유지될 수 있다 (2)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경제 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 즉 케인즈식 총수요 관리를 해야 한다 (3) 시장과 정부는 모두 불완전하며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케인즈가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자본주의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기조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본질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조가 다를 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다.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

더 이상 잡설은 늘어놓지 않겠다. 이 책에 대한 신랄한 서평이 궁금하다면 프레시안의 기사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자본주의 4.0'?…<조선>, 말장난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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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내 진보신당 및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동지 몇 분과 저녁 식사를 하며 두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몸담으셔서 그런지 한국 진보정당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계셨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도 있었고, 처음 듣는 것도 있었다.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야사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지만, 언급하기에는 껄끄러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내용이 오고 갔건 간에 무엇보다도 이 대화가 유익했던 점이 있었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 즉 이데올로기적 측면이나 진보정당 운동의 방향성에서 잘 정리되지 않았던 조각의 단편들이 이 ‘유익한’ 대화를 계기로 잘 짜 맞춰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정도일 것이다.

요새 진보진영 안팎으로 시끌벅적하다. 누구는 진보진영의 절멸을 언급하며 '진보대통합'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진보세력의 독자적 생존이 장기적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진보대통합' 세력 중에서도 민주당을 포함하는 '범야권통합'을 주장하는 부류가 있고, '민주당'은 배제한 상태에서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의 범주로 보자는 세력도 있으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을 배제한 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통합파)를 중심으로 한 '진보대통합'의 구축을 통해 진보진영을 재정립하자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도 있다. 전자를 제외하고는 후자 둘―국민참여당을 포함하느냐 하지 않느냐―이 현재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세력이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의 독자생존을 주장하는 쪽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진보신당 내에서는 '사회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이도 있고, 통합의 범위를 '사노위'까지 확대하자는 쪽도 있으며, '진보신당'의 독자적 노선을 계속 이끌어 나가자는 주장도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녹색좌파'를 주장하는 분파도 있으며, '노동자 전위 정당'만이 사회변혁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는 극좌파 세력도 당 안팎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통합파와 마찬가지로 독자 쪽도 정치적 의견을 수렴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서로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통합파만큼이나 독자적 세력화를 주장하는 쪽도 피차일반인 것 같다.

어떤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가지고 어떤 정치적 명분을 견지하든 간에 분명한 것은 민주노동당 주류와 비주류, 진보신당의 통합파 그리고 독자파, 사회당, 사노위 등을 포함한 모든 좌파세력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이 처한 '좌파의 정치적 위기'라는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이 통합을 통한 좌파세력의 재구축이든 독자생존을 통한 고난의 행군이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누가 옳은 길이다 혹은 그릇된 길이라는 흑백논리에 대해 극명하게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한 시시비비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져 나오면서 진저리를 칠 정도로 거친 설왕설래를 통해 주고받았다. 애당초 그런 시시비비의 시작이 진보신당 내 통합파와 독자파 간의 정치적 논쟁에서부터 비롯한 것도 아니다. 멀게는 자주파가 득세하고 있던 민주노동당으로부터 평등파가 탈당해 진보신당을 만들 때부터 그러한 논쟁은 언제나 있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학생 그리고 서민 기층이 반독재 반민주 저항을 하던 그 시점에도 전술과 전략에 대한 논쟁은 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끌어온 ‘정치적’ 혹은 ‘사회적’ 논쟁은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살에 살을 붙여 왔으며, 그때 시작된 논쟁의 연장 선상에서 지루한 논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지금 그러한 것―통합이 맞느냐 독자가 맞느냐―을 따지는 것은 논쟁을 위한 논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지금 시점에서는 별로 중요해 보이진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이유야 어쨌든, 그들이 선택한 결정의 근거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 혹은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가 같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정치적 결정은 다양하며, 한 개인이 내리는 결정도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은 분명하다. 결국, 각자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자신의 선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그 어떤 결정도 (자본주의와의 타협이 아니라면 그리고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좋다 나쁘다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들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생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하는 집착이 나를 괴롭혔는데, 어제 진보신당 및 민주노총 동지들과 대화를 하면서 명확해졌다.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노동자를 위한 길인가? 우리가 가는 길이 과연 노동자를 위시한 한국사회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길인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을 때 우리가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자정당의 설립'이다. 민주화 이후 노조운동이 활발해지고, 복수노조법과 타임오프제를 저지하기 위한 노동자 저항운동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뼈저리게 느낀 것은 부르주아 정치판에서 노동자의 정치적 열망을 내세울 수 있는 세력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영호남의 토호들과 사회 기득권 엘리트가 모여 만든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입으로만 서민 정치를 부르짖을 뿐, 그 누구도 서민, 노동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민주화가 필요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민주주의를 한국사회에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노동자,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치를 추구했다면 양극화가 심화하지도 않았을뿐더러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온갖 악법에 대해 저렇게 관망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서민은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전략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진보정당 운동이다. 민중당으로 시작해 국민승리21을 거쳐 민주노동당을 통해 대약진했다. 진보정당을 설립하고 기반을 다지는 과정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때는 국회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지방선거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진보정당 운동은 계속 성장하는 듯 보였고 한국사회의 앞날은 진보정당 운동을 통해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은 위기에 치달았다. 진보정당 운동이 위기의 상황에 몰리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 특별히 논하지는 않다. 이미 많은 사람이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정말로 유효하며 적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그것을 판단하기엔 내 지적 수준도 모자랄뿐더러 정세를 판단하기 위한 능력도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것은 각자의 정치적 이유로 통합을 부르짖든 독자를 주장하든 간에 진보를 지향하는 우리 정치적 좌파가 마음속에 항상 담아두어야 할 신조이다. 더불어 그것은 사민주의를 지향하든 사회주의를 지향하든 공산주의를 지향하든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정치적 이상향이 무엇이든 간에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자 정당의 설립". 그 어떤 순간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우리는 진보정당 운동을 하면서 늘 잊고 지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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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던 중 털납작벌레라는 흥미로운 동물을 발견했다. 진성후생동물의 초기형태에 속하는 다세포 동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오직 이 동물 문(phylum)에는 털납작벌레가 유일하다.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만, 근래에 털납작벌레가 속하는 판형동물문에 속하는 다른 동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이 동물이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진위는 의심스럽다. 이 동물이 특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1) 초기시냅스 형태로 보이는 세포들이 보임. (2)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동시에 할 수 있지만, 유성생식이라고 해서 엄밀하게 성이 구분된 것은 아님. 일종의 처녀생식에 가까운 형태임. (3) 세포 재생능력이 월등함. 재생수준은 플라나라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임. (4) 털납작벌레는 조직(organ)이라는 것이 없는데, 그럼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상피모양세포(epithelioid) 등이 있음. 등등 이라고나 할까?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관련 내용이 있지만, 몇 군데 오류가 보이고 내용도 불충분하다. 그래서 번역을 하려고 했는데, 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특히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전문 용어의 한글화인데, 보통 영어로만 쓰다가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한국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겠더라. 그리고 표준화의 문제. 한 가지 용어에 대해서도 한국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그러니 번역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사실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 몇몇 용어는 본문에 한글로 표시했다 (나도 계통 분류학쪽 용어는 그렇게 익숙치가 않다). 내용은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위키피디아 내용을 스크랩한 수준이니 내용의 진위에 대해서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시길. 이것은 그냥 참고 내용일 뿐이니까.

출처: Wikipedia

Trichoplax adhaerens(털납작벌레 혹은 트리코플랙스) is the only extant representative(현존하는 유일한 전형) of phylum Placozoa(판형동물문[板形動物門]), which is a basal group(기저군[基底群]) of multicellular animals(metazoan 혹은 후생동물[後生動物]). Trichoplax are very flat creatures around a millimeter in diameter, lacking any organs or internal structures. They have three cellular layers: the top epitheloid layer(상피모양층[上皮模樣層]) is made of ciliated(섬모[纖毛]가 있는) "cover cells" flattened toward the outside of the organism, and the bottom layer(기저층[基底層]) is made up of cylinder cells which possess cilia used in locomotion and gland cells(분비세포[分泌細胞]) which lack cilia [1]. Between these layers is the fiber syncytium(합포체 섬유[合胞體 纖維]), a liquid-filled cavity(강[腔]) strutted(지지되는, 받쳐지는) open by star-like fibers.
Trichoplax feed by absorbing food particles—mainly microbes—with their underside. They generally reproduce asexually(무성생식[無性生殖]하다), by dividing(이분법[二分法]) or budding(출아법[出芽法]), but can also reproduce sexually(유성생식[有性生殖]하다). Though Trichoplax has a small genome in comparison to other animals, nearly 87% of its 11,514 predicted protein-coding genes are identifiably similar to known genes in other animals.
Discovery
Morphology
Epithelioid
Fiber syncytium
Genetics
Relationship with animals
Distribution and habitat
Feeding and symbionts
Locomotion
Regeneration
Reproduction
Role as a model organism
Systematics(분류학[分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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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란 책은 진화의 원동력에 대한 재미있고 유의미한 가설을 소개한다. 특히 린 마굴리스는 미생물 간의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가 진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책 전반을 통해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핵(nucleus)과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그리고 식물의 경우에는 엽록체(chloroplast)—등 진핵세포(eukaryotic cell, 眞核細胞) 안에 존재하는 세포 소기관(organelle, 小器官)은 원핵세포(prokaryotic cell, 原核細胞)인 원시 박테리아(primitive bacteria) 간의 공생(symbiosis, 共生)을 통해 형성됐다는 내부공생설(endosymbiotic theory, 內部共生說)을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들

   
순서대로 쉼퍼, 메레쉬코프스키, 리스 (사진출처: 구글)

내부공생설은 마굴리스의 저술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이 가설이 마굴리스에서 처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즉, 마굴리스 이전에도 몇몇 과학자가 여러 가지 생물학적 관찰을 통해 세포 내 소기관이 원핵세포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1893년 독일의 식물학자(botanist)이자 식물 지리학자(phytogeographer)인 안드레아스 쉼퍼(Andreas Franz Wilhelm Schimper, 1856-1901)는 식물세포 속을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으로 관찰했을 때 광합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원시식물(primitive plants), 남조류(cyanophyceae, 藍藻類), 남조식물문(cyanophytes, 藍藻植物門) 혹은 청녹조류(blue-green algae)로도 불린다―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엽록체의 박테리아 기원설을 제안했다 [1]. 1905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쉬코브스키(Konstantin Mereschkowsky, 1855-1921)는 식물세포의 엽록체가 핵과는 독립적으로 분열(division)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한 진핵세포의 소기관이 원시 박테리아에서 온 것임을 주장했다 [2]. 생물학자 한스 리스(Hans Ris, 1914-2004)는 1962년 광학현미경보다는 세포의 구조를 더욱 자세히 조사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 분석(electron microscopic analysis)을 통해 녹조류(green algae, 綠藻類)의 일종인 Chlamydomonas의 엽록체 구조가 (쉼퍼가 발견한 것과 동일하게) 시아노박테리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Paramecium aurelia이라 불리는 원생생물(protist, 原生生物)의 일종인 짚신벌레의 세포질에 kappa 인자라 불리는 박테리아가―최근에는 Caedibacter로 명명되었다―공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3]. 이러한 발견이 한결같이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핵세포가 어느 날 이 세상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원시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즉, 원시 박테리아들의 합작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핵세포 소기관의 원시 박테리아 기원설을 지지하는 ‘화학적, 구조적, 계통학적’인 관찰 증거는 계속 축적하고 있었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해줄 실험적 증거—내부공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위적 실험의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수백 년, 수천만 년 혹은 수십억 년을 거쳐 서서히 일어나는 진화의 대장정을 실험실에서 짧은 시간 동안에 인위적으로 재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진화의 전 과정을 끊임없이 목격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100년이다. 물론 우리에게 100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45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에 있어서 100년은 촌각(寸刻)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진화의 과정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연은 가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때로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위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연이 갖다 준 단서


전광우 박사 (사진출처: 테네시 대학)

전광우(Jeon, Kwang W.)는 원생동물(protozoa, 原生動物)의 위족(pseudopod, 僞足) 형성과 운동성 및 생물학적 기능 등을 연구하던 사람으로서 이를 위해 수년간 다양한 지역에서 채집한 아메바(amoebae)를 배양했다. 그는 새로운 아메바를 얻으면 빈 배양 용기에 담아 다른 종류의 아메바가 담긴 배양 용기와 함께 보관했는데, 어느 날 심각한 질병이—그는 아메바의 질병 원인이 뭔지 몰랐던 것 같다—아메바 사이에 퍼지는 것을 관찰했다. 건강하던 아메바가 구슬 같은 둥근 형태로 변했으며 먹지도 번식하지도 않았다. 극히 일부의 아메바는 성장을 계속하면서 분열할 수 있었지만, 감염되기 전에는 격일에 한 번이었던 것이 감염 후에는 5일에 한 번으로 크게 늦춰졌다 [2].

 
다양한 종류의 아메바 (사진출처: 구글)

보통의 실험 생물학자라면 이럴 때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배양된 세포를 사용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다른 세포에 대한 이차 감염을 사전에 차단키 위해 감염된 세포를 바로 폐기하고, 감염원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감염된 세포를 키우던 배양실도 대거 소독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오염된 세포를 탓하며, 다음에는 세포가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스스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광우는 달랐다. 그는 아메바의 감염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놀라운 발견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는 광학현미경을 사용해 죽거나 혹은 죽어가는 아메바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세포 속에 무수히 많은 점이 퍼져 있는 것을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작은 점의 정체는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였고 적게는 약 6만에서 많게는 15만 개에 달하는 수가 아메바 안에 존재했다. 그동안 아메바의 먹이라고 생각한 미세한 박테리아가 병의 원인이었으며 아메바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가 모든 아메바를 죽이진 않았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일부는—이유는 알 수 없지만—분명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물론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는 매우 연약했으며 온도 및 먹이 등의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아메바는 될 수 있으면 살리고 박테리아만 죽일 요량이었는지, 박테리아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아메바에게는 (상대적으로) 해가 없는 항생제를 처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원래대로라면 항생제는 박테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죽여야 하지만,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까지도 대부분 죽였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아메바 내부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아메바의 생존은 (항생제 처리의 예에서 보듯) 전적으로 박테리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2, 4].

적대적인 둘에서 새로운 하나로의 가능성

박테리아에 의한 아메바의 감염 사건 이후 5년 동안 전광우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계속 배양했고 감염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며 정상적인 주기로 분열할 수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얻는 데 성공했다 [2, 5]. 그렇다고 아메바가 박테리아를 죽인 것은 아니다. 박테리아는 아메바 속에서 분명히 살아 있었고 마치 아메바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으며 그 안에는 감염 초창기와 비슷한 숫자에 해당하는 개체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든 생명체는 외부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 기작(defense mechanism)을 가지고 있다. 아메바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박테리아가 아메바 내부로 침입했을 때에도 분명히 아메바의 방어 기작은 생존을 위해 작용했을 것이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힘에 부친 아메바가 자신의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방법대로 자살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에 감염된 아메바 다수가 대부분 죽었을 수도 있다. 물론 앞의 설명과는 별개로 박테리아의 파괴적인 공격이 아메바의 생명활동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교란시켜 아메바의 대량학살을 불러왔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최초 감염의 일차적 결과는 아메바의 죽음이었고, 아메바는 괴멸상태가 되었다. 그런데도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는 절멸이라는 비운의 상황 속에서 박테리아를 몸 안에 품은 채 꿋꿋이 살아남았다. 아메바의 저항이 살의로 가득 찬 박테리아의 치명적인 공격을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다. 혹은 아메바의 절멸로 더이상 자신의 삶을 유지할 터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박테리아로 하여금 아메바의 생존을 선택하도록 종용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두 인간적인 설명이다. 자연의 법칙에 인간의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자연의 법칙에는 그에 걸맞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자연선택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목적론적 사고와는 관계없이, 아메바에게든 혹은 박테리아에게든 그 어느 것도 거부할 수 없는 공평한 잣대—살아남을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개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영속성을 쟁취할 자격이 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생명의 패러다임 — 유전자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가 박테리아 의존성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메바와 박테리아라는 두 생명체의 관계변화—숙주(host, 宿主)와 감염원(pathogen, 感染源)이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어떻게 (상호협력적으로 보이는) 공생관계로 전환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접적으로 아메바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실험적 방법을 통해 이를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적 능력이 있다. 객관적 관찰을 통해 얻은 사실에 근거한 추론은 우리가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약간의 지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gene)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형(genotype)의 조합을 통해 표현형(phenotype)을 발현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를 이루게끔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생명체에 내재된 모든 유전자의 일차적 정보는 DNA에 저장되어 있고, DNA로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자의 근원적 담지자(擔持者)는 세포라는 생명 단위체다. 세포는 필요한 순간마다 전사(transcription, 傳寫)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DNA에서 RNA를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RNA(특히 mRNA)는 핵에서 세포질로 전달되어 리보솜(ribosome)이라 불리는 거대한 단백질 중합체와 만나게 된다. 리보솜은 RNA의 긴 염기서열에 기록된 정보를 3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코돈(codon)을 나열을 바탕으로 유전자 정보를 번역(translation, 飜譯)해서 아미노산 중합체(polypeptide)를 합성하고, 아미노산 중합체는 자신 안에 내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3차원적 구조를 이루어 단백질이라 불리는 생명현상의 기본 기능 단위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생존이라는 보편적 목적을 위해 각자에게 부여된 특수한 기능을 통해 고유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세포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인 유전자(들)의 변화(혹은 돌연변이)는 대부분 치명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영향이 미비하거나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유전자 서열의 차이는 같은 종이라도 개체 간 표현형이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엄격한 선택압을 부여하는 급격한 환경 변화는 어떤 유전자(들)의 표현형이 바뀐 환경에 적합한지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아메바와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생명 현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상, 이들 개체도 자연선택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박테리아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에 감염하려 들 것이고, 아메바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의 침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똑같은 방어 기작을 가지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대항한다 할지라도 유전적 차이에 의해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굴복해 자신의 유기물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줄 것이다.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박테리아는 아메바가 제아무리 격렬하게 저항하더라도 무리 없이 아메바 내부를 점령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어떤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자 표현하는 공격력이 아메바에 침입하기에는 미약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전자 변이, 자연 선택, 그리고 적응

박테리아에 감염되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아메바는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것이고 아메바를 죽이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감염성 박테리아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추론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상상 속에 머문다. 그렇다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가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한 진정한 이유일까?

전광우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미세수술(微細手術, micrurgy)이라는 실험방법으로 한 번도 감염성 박테리아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아메바(D)와 박테리아에 감염된 상태로도 왕성한 활동을 유지하는 아메바(xD)의 핵을 상호치환해서 공생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핵에 있는지 아니면 세포질에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5, 6].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DNxDC)는 대조군—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합친 아메바(DNDC)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xDC)—과 비교했을 때 성장과 분열 주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감염된 아메바의 핵을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과 융합한 경우(xDNxDC)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메바의 삶은 변함이 없었고 박테리아도 새로운 핵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염된 아메바의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DC)는 분열을 통한 증식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살지도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은 감염된 아메바의 핵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었고, 감염된 아메바의 핵은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에서 원하는 것을 얹을 수 없었다. 박테리아 감염 때문에 발생한 변화는 아메바의 핵에서 일어났다.

전광우는 또 하나의 실험을 계획했는데,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을 미세주사(microinjection, 微細注射)라는 실험방법으로 이용해 실험적으로 조작한 아메바의 세포질에 주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지만,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 에게 원래의 삶을 부여했다. 원인은 아메바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였고, 박테리아는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가 원하는 그 무엇—박테리아 유전자의 산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메바의 세포질 추출물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적이 없는 아메바에 주입했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포질 추출물 안에는 엄청난 수의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최초에는 분명히 엄청난 파괴력의 감염성을 가진, 아메바 다수를 전멸의 위기까지 몰고 간 바로 그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감염 증상을 유발하지 않았다. 공생관계는 아메바에게만 변화를 준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는 공생관계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상실했다.

최초에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모든 감염성 박테리아가 아메바에게 똑 같은 수준의 끔찍함을 선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박테리아는 다른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아서 아메바를 죽음의 문턱까지는 끌고 가더라도 죽음의 문턱을 넘길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감염 전에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다 할지라도, 아메바에 침입한 이후 아메바의 세포질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박테리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유전적 변이는 특정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당 유전자(들)을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 집단에서 배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는 아메바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메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메바의 유전적 변이 정도는 어떤 식으로는 박테리아의 공격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상호 유전적 변이의 결과는 아메바가 박테리아에게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몸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주는 것과 박테리아는 공격을 멈추고 그 대신 아메바가 원하는 무엇인가는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적대적 관계는 다소 비가역적인 것처럼 보이는—그러나 실제로 비가역적인지는 알 수 없는—호혜적 관계로 개선되었다.

박테리아성 아메바의 출현

클로람페니콜(chloramphenicol)이라는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리보솜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해 박테리아의 단백질 합성을 막는 항생제다 [7].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에 처리하면 박테리아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아메바의 미토콘드리아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안에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미토콘드리아 고유의 리보솜이 있어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여러 가지 단백질을 미토콘드리아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은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있는 리보솜에 결합해 미토콘드리아의 단백질 합성에 영향을 줘 ATP라는 생체 에너지 생산을 막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아메바를 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클로람페니콜은 박테리아에 더욱 치명적이다. 클로람페니콜이 박테리아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메바가 받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전광우는 클로람페니콜이라는 항생제를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사는 아메바에 처리해봤다 [8].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건강한 아메바는 클로람페니콜을 처리했을 때 급격하게 죽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소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아메바 내에서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최초의 적대적 관계는 공생 관계를 통해 이젠 하나의 개체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아메바의 삶은 곧 박테리아의 삶과 밀접해지고 있으며, 박테리아에게 재앙은 곧 아메바에게도 재앙이다. 박테리아의 삶도 곧 아메바와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두 개체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완전히 하나의 개체로 합쳐질 수 있는 공생진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공생의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길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예는 서로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생물체와 공동생활을 하는 생물체 그리고 서로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된 생물체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단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35억 년 혹은 그 이상 진화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찰나에 불과한 불과 5-10년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치명적인 병원균이 세포에 꼭 필요한 소기관으로 변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전광우의 발견과 실험은 진화라는 것이 단순히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이 지구 상에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진화의 요인이 되는 유전적 돌연변이는 단순히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을 통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감염과 공생이라는 개체 간의 유리되지 않은 상호과정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격렬함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Mereschkowsky's Tree of Life. Scientific American. 2001
[2]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저 / 홍욱희 역 / 범문사 / 1987년 8월 31일) 123-126쪽
[3] Magulis, L. (2005). Hans Ris (1914-2004). Genophore, chromosomes and the bacterial origin of chloroplasts. Int Microbiol 8(2): 145-148
[4] Jeon, K. W., and Lorch, I. J. (1967). Unusual intra-cellular bacterial infection in large, free-living amoebae. Exp Cell Res 48(1): 236-240
[5] Jeon, K. W. (1972). Development of cellular dependence on infective organisms: micrurgical studies in amoebas. Science 176(39):1122-1123
[6] Jeon, K. W., and Jeon, M. S. (1976). Endosymbiosis in amoebae: recently established endosymbionts have become required cytoplasmic components. J Cell Physiol 89(2):337-344
[7] Wikipedia: Chloramphenicol
[8] Jeon, K. W., and Hah, J. C. (1977). Effect of chloramphenicol on bacterial endosymbiotes in a strain of Amoeba proteus. J Protozool 24(2):289-293








Posted by metas :
지금으로부터 약 150억 년 전, 빅뱅이라 불리는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원자가 생성되었고 물질 형성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약 45억 6700만 년 전 우주 역사의 어느 한순간에 원시 태양계가 생성되었고 지구란 별도 태양계의 한 일원으로 그 형태를 드러냈다.

생명체는 약 36억 년 전 원시 지구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태고대(the Archean Era, 太古代)의 지구 내부는 고열과 방사능으로 뒤끓고 있었으며, 지각(地殼)의 열린 틈으로는 끊임없이 용암을 방출했다. 끊임없는 지각활동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지표 외부로 방출했으며, 지구 표면은 수증기가 가득한 대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지표면이 점점 식어갈 무렵, 대기 중에 응결된 수증기는 물방울을 이루어 오랫동안 지표면을 향해 비를 뿌렸고, 그 결과 마그마와 암석으로 가득 찬 지표면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바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 밑바닥에서는 지각의 틈새를 통해 마그마가 끊임없이 분출되었고 중금속과 황 화합물로 가득한 유독 가스를 품은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떻게 원시 지구에서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었으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생명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지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바로 심해 생태계의 모습을 보면 된다.

심해(深海, ocean depth) 깊은 곳에는 빛이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해수면(water layer) 등에서 서식하는 조류(alga, 藻類)나 육상 식물 등과 같이 광합성(photosynthesis, 光合成)을 통해 탄소화합물(carbohydrate, 炭素化合物)을 생성하는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다. 그런데 탄소화합물은 생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영양분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산소를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심해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사진 출처: Wikipedia

여기서 잠시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 熱水噴出孔)에 대해 알아보자. 해저 지각의 틈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은 뜨거운 마그마와 만나 데워지고 주변 암석에 들어 있던 구리, 철, 아연, 금, 은 등과 같은 금속성분을 함유한 채 지각의 틈 사이로 다시 솟아나온다. 이때 솟아나온 열수(熱水)는 최고 350ºC 정도로 뜨거워진 상태에서 해저부(海底部)에 흐르는 보통 0ºC에 가까운 차가운 물과 만나 급격히 식게 되고 열수 안에 포함되어 있던 금속성분은 지각 틈의 주변에 침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면 굴뚝처럼 생긴 지형물이 서서히 생성되는데, 이것을 열수분출공이라 한다.

해저분출공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깊은 바다 속에서 생물이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왜냐하면, 생태계(生態系, ecosystem)는 스스로 영양분 합성이 가능한 자가영양생물(autotroph)이 있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상과 해양에서는 광자가영양생물(photoautotroph)인 식물과 조류가 빛 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과정을 통해 탄소화합물 등의 영양분을 생성하여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심해저(深海底), 특히 열수분출공 주변은 영양분도 없을뿐더러 황 화합물 및 중금속 같은 독성 무기물질이 가득하고 게다가 엄청 뜨겁기까지 하다. 생명체가 생존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심해저의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 어떤 생태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고 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가 바닷물에 녹아 해류의 흐름으로 대양저(ocean floor, 大洋底) 끝자락까지 전해지는 것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유기물 중심의 영양분이 희소한 것처럼 보이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의 일종인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합성(chemosynthesis, chemosynthesis, 化學合成) 반응 과정을 통해 태양 에너지(sunlight energy) 대신 황화수소(hydrogen sulfide)를 산화(oxidation)해서 나오는 화학 에너지(chemical energy)를 이용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 등의 탄소화합물로 전환한다. 황화수소가 다량 함유된 열수를 뿜어내는 열수분출공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자가생명체(chemoautotroph)의 역할을 함으로써 심해저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 열수방출구 주변 지역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식물이 하는 역할을 대신 함으로써 영양분을 제공해야 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심해저 생명체가 황화수소 박테리아의 부산물을 이용할까?


사진 출처: Wikipedia

거대 서관충(giant tube worm, 학명: Rifia pachytila)은 환형동물문(phylumAnnelida, 環形動物門)에 속하는 서관충(tube worm, 棲管蟲)의 일종으로 조간대(intertidal zone, 潮間帶)와 원양생태계(pelagic zones, 遠洋生態系)에서 주로 발견된다. black smokers라 불리는 태평양 일대 대양저의 열수분출공 근처에서 살고 상당한 고농도의 황화수소에도 견딜 수 있으며, 최대 2.4 m까지 자랄 수 있다. 그런데 거대 서관충은 대형 동물에서 흔히 보이는 소화기관이 없다. 이 때문에, 거대 서관충은 다른 동물처럼 포식행위(eating, 捕食行爲)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것 외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형 동물 중,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하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상식적인 방법으로 거대 서관충이 영양분을 확보할 방법은 없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십 억년 진행된 진화의 놀라운 광경은 개체의 생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생존―에 있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는 경이로운 진화의 과정을 볼 것이다. 바로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사이의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 혹은 symbiosis, 共生關係)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서관충 몸 안―특히, 영양체부(trophosome, 營養體部)라 불리는 기관―에서 살아간다. 거대 서관충은 특화된 플룸 구조(vascularized red plume)을 산소, 황화수소 그리고 이산화탄소 등의 무기물을 흡수하여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사는 영양체부로 보낸다. 그리고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이렇게 얻은 무기물을 화학합성 반응을 통해 유기물로 전환한다. 박테리아가 합성한 유기물은 다시 거대 서관충이 사용한다.

이런 관계를 놓고, 몇몇 사람은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안에서 기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대개 기생(parasitism, 寄生)이라고 하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에서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하고는 한다. 특히, 박테리아와 대형 동물 간의 관계라면 이런 식의 일방적 상호관계를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일방적 기생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다.

거대 서관충은 황화수소 박테리아를 통해 영양분을 얻는다. 그렇다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몸 안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생물학적 이점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황화수소 화학합성 과정에서 몇 가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생물은 호흡을 위해 산소를 이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다. 해양 생물이 이용하는 산소는 대기 중의 산소가 바닷물에 용해된 것일 수도 있고, 바닷속 조류의 광합성 작용으로 생성된 산소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생성된 산소는 해류의 흐름을 타고 심연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헨리의 법칙(Henry's law)에 따르면 기체의 용해도는 기체의 부분압력에 비례한다. 즉,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의 용해도는 증가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심해 위쪽의 용존 산소량보다 높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상대적으로 낮다. 심해저에는 빛이 안 들어오므로 녹조류가 살지 못하므로 광합성을 통한 직접적 산소공급이 불가능하며, 깊이에 따른 해류속도의 차이는 용존 산소량의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심해저에서 발생하는 부패 등의 화학반응은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을 상대적으로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화학합성 반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용 가능한 산소량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거대 서관충의 플럼 구조틀 통한 산소 흡입은 황화수소 박테리아 주변의 용존 산소농도를 높임으로써 화학합성 반응을 원활히 해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 서관충 몸 밖에서 서식하고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서관충 몸 안에서 서식하는 것은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 같은 화학합성 반응에 필요한 다른 무기물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산소 대신 질소 화합물―질산염 화합물(nitrate) 혹은 아질산염 화합물(nitrite)―을 이용해 화학합성 반응을 할 수 있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위치에 따라 약 68~78%를 차지하는 원소로서 단백질 등과 같은 유기물질의 주요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해수에서 질소는 주로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산소보다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질소 화합물을 화학합성 반응에 사용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질소 화합물을 사용한 화학합성 반응의 부산물(by-product)인 암모늄 이온(ammonium ion)은 거대 서관충이 흡수하여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합성하는 데 사용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거대 서관충은 생명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질소 화합물의 농도를 체외 농도와 비교했을 때 체내에 100배 이상 농축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종(異種) 간의 공생을 통한 상호작용이 진화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저부 열수분출공에서 서식하는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간의 공생관계에 대해 살펴봤다. 수십억 년 전 원시 지구의 혹독한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의 삶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지적 수준으로 가늠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공생관계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생명체는 다양한 환경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존을 위해 변화해 왔고 그러한 변화는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종의 적응이라는 사실이다. 마그마가 지각의 틈 사이로 솟아나오고 유독 물질이 섞인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어떤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와의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협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협력관계를 구사했다는 것은 생명체의 표현형을 결정하는 수많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중 공생관계를 선택하게 한 유전적 변이(들)의 결과가 원시 지구의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의 요구조건에 적합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공생관계가 생존에 필요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연선택이라는 다양한 진화 가능성 조건에서 어떤 돌연변이(들)로 인해 나타난 개체의 표현형은 공생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생활방식이 생존에 적합했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공생이 아니라 기생 혹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어떤 돌연변이는 비슷한 공생적 관계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보여주는 공생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혹은 상상도 하지 못할 다른 방식의 공생관계에 적합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화라는 것은 임의의 개체를 구성 있는 유전자 간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와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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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승수 전 대표가 탈당을 했다. 이와 함께 광주시당 윤난실 위원장, 유의선, 박창완, 신언직, 우병국 전 서울시당 위원장, 김병태, 이홍우 전 경기도당 위원장, 이은주 전 인천시당 위원장, 임성대 전 충남도당 위원장, 김병일, 박경열 전 경북도당 위원장, 조명래 전 대구시당 위원장 등 전현직 광역시도당 위원장도 동반 탈당했다.

지난 당대회 때 민노당과의 통합안이 부결된 이후, 진보신당 당원동지들이 지속적으로 탈당을 한 상태에서 노심조 중 노회찬과 심상정은 이미 탈당을 한 상태고 이때 꽤 많은 당원이 동반 탈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 전 대표의 탈당. 그리고 당 내 핵심인물들의 대단위 엑소더스. 앞으로도 통합 진보정당 건설을 빌미로 한 통합파의 엑소더스는 계속 될 것이라 본다. (물론, 정당 정치에 환멸을 느낀 동지들도 꽤 탈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신당의 깃발이 남아 있는 한 이 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그것도 경북도당 당원회의 때 직접 들은 말이었다)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말도 지나간 일이라는 듯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지만 내가 이 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실언과 그에 따른 꼬리표는 제가 평생 안고 가야할 몫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란 장문만 남기고 조 전 대표는 그렇게 진보신당을 떠났다. 그리고는 향후, 통합연대 활동에 매진함으로써 통합진보정당 창당에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가서 열심히 하세요'란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듯하다.

어쨌거나, 지금과 같은 암울한 상황에서 진보신당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머릿속에서 뭔가 억지로라도 끄집어내려고 해도 도통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어두컴컴하다. 조승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진보신당의 원외정당화, 국회에서 철수, 국회 기자회견장 사용 제한, 국고지원의 감소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 전현직 시도당 위원장의 동반탈당 때문에 빚어지는 광역시도당 조직 결성 및 유지의 어려움 등. 그리고 세 번에 걸친 대 격돌로 인해 당내 분위기는 최악이고, 비대위가 설립되어 당 분위기를 추스린다고 해도 얼마나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진보신당의 이름은 명망가들의 대거 탈당으로 인해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인데, 솔직히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거나 돈이 별로 없다 이런 이유보다도 상황을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진보신당에게 과연 미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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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단상

2011. 10. 5. 17:09 from 잡글
사회적인 의미에서 동성애가 언제부터 공식적으로 금기되기 시작했을까? 우리의 도움되는 친구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봤다.

"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나 고대 로마와 달리 소년과 성인 남성 사이의 동성애가 쉽게 수용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로마인은 이를 이질적인 '그리스 풍습'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상류 사회에서는 그리스적 동성애 문화가 일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에서도 313년 기독교 공인 전까지 동성애에 대해 특별한 탄압은 가해지지 않았다."

로마제국에서는 동성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금기시까지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적어도 동성애를 장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유대의 신 여호와의 뜻이 곧 법으로 통하던 중세 유럽은 어땠을까?

"313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되면서부터 동성애는 교회법에 의해 죄악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동성애는 수음이나 피임처럼 하느님이 허용한 성교의 본래 목적인 종족 보존과는 무관한 탐욕적인 성행위라는 해석이 담긴 성경의 계율을 어긴 범죄로 본 것이다."

기독교 사상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극단적으로 변한 것은 적어도 유럽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이때가 본격적이 아닌가 싶어 보인다. '동성간의 성행위는 종족보존과는 무관하다'는 순전히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시되었다고 하지만, 암암리에 동성애가 성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동성애가 과연 종족번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일까? 보통 동성애 혐오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이런 류인데, 과학적으로 본다면 동성애적 행동양상(homosexual behavior)을 보이는 동물군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요는, 우리의 시각이 두 개의 성―즉, 남성이냐 여성이냐―에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나중에 이에 대한 과학적 시각을 한 번 정리해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자.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지, 차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피부색을 근거로 인종의 우열을 가름해 버리는 인종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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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생물학자로 메사추세츠 앰허스트대학교의 교수이다. 세포생물학과 미생물 진화에 대한 연구, 지구 시스템 과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국의 지구생물학과 화학진화에 관한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NASA의 지구생물학에 관한 실험들을 지도하고 있다. 공생진화론과 같은 충격적인 가설로 생물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연구로 19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제학술 강연, 100종이 넘는 논문과 더불어 1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영국의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공헌한 바가 크다.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함께 책들을 펴냈으며, 《진핵세포로의 진화》《공생과 세포진화》등의 저술이 있다. ― 출처: 알라딘
 

      
      

이 아줌마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순서대로 「마이크로코스모스」, 「공생자 행성」, 「생명이란 무엇인가?」, 「섹스란 무엇인가?」. 다행이도 학교 도서관에 위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 같다. 돈 없는 사람은 자고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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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자가 그랜트 확보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연구할 시간이 없다. 다들 이게 문제인 줄은 알지만, 뾰족이 해결할만한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안 될까?"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뭘 하든 (심지어 자는 것까지도) 돈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연구하기 위해서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 microarray라도 하나 할라치면 한 번 할 때마다 몇백만 원 쓰는 것은 예사일 뿐더러, antibody 같은 것은 거의 소모품 수준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제작하지 않는 한, 대부분 상당히 비싼 비용으로 구입해야만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런 것 정도는 직접 만들어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직접 만드는 거 정말 어렵다. 어떤 경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때도 있다. 특히, antibody 만드는 것은 하늘에서 점지해주지 않는 한 제작에 성공할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 또한, antibody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불어, 이런 것들을 제작하는 데도 또한 돈이 들고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연구자 간의 경쟁이 (한국의 대학 입시만큼이나) 심한 때는 자본력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오히려 아이디어는 부차적일 경우가 많다. Cell, Nature 그리고 Science―연구자들이 흔히 CNS(앞의 세 논문을 central nerve system에 빗댄 표현)라 부르는 과학잡지에 게재된 논문을 한 번 보라. 정확히 산출할 수는 없어도, 그 논문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이 들어갔는지 눈에 선할 정도다. 가끔은 Figure 하나하나에 돈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든지,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후원을 받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혹시라도 있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털거나 어디 마음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라도 한 명 섭외해서 돈을 마련해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윤이 발생할지도 불투명한 연구 따위에 선뜻 돈을 내어줄 부자는 배포가 큰 없다. 따라서, 내 연구는 이윤이 발생한다고, 당신의 탐욕을 채워줄 수 있다고 끊임없이 선전해야만 한다.

그렇게 연구계획서를 쓰는데 시간을 소진하고 나면, 과학자에게 연구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연구는 엉망진창이고 내가 왜 연구를 하는지 소명의식도 희미해진다.

돈 걱정 없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그날이 과연 올 것인가?



사진출처: NATURE (The image from the Nature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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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선생은 민주화 운동의 결과가 오늘날에 이르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더욱 나빠진 이유는 정당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근본적 원인 중 하나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 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봤다. 덧붙어, 그는 "현실 삶과 유리된 조건에서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지배하는 곳"으로 전락한 학생운동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 민주주의 없는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봤다.

그런데, 과거 학생운동에 이념적 실체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 제대로 된 이념이 있었다면 그들이 저리도 쉽게 기득권 세력에 편입될 수 있었을까?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유시민, 이명박...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열렬히 저항했던 '운동권'에 포함된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어떠한가? 서로 대척점에 두고 있지만,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며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다. 이들이 진정 과거에 제대로 된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노동자를 외면하는 정치를 했을까?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과거에 자신이 그토록 저항했던 세력과 양손을 붙잡고 합심하여 오늘도 씩씩하게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억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장집 선생이 다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장집 선생이 언급한 것처럼 학생운동에 내재된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 학생운동의 동력을 사회로 내 딪게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이념이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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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사회활동가이자 환경운동가이며 아프리카 전역에 그린벨트 운동을 널리 전파하고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리(Wangari Matthai)가 암으로 투병하다가 향년 71세로 운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Wangari Maathai, Nobel peace prize winner, dies at 71 — Kenyan social activist and environmental crusader who founded the Green Belt Movement has died of cancer from the Guardian]


Wangari Maathai, Nobel peace laureate at the Hay festival in 2007.
Photograph: Martin Godwin for the Guardian
(The photograph from the Guardian UK web)

나는 솔직히 왕가리 마타이란 인물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사실 이름도 어제 가디언 기사를 읽고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녀의 아프리카와 그녀의 조국 케냐를 위해 들인 엄청난 그리고 정력적인 노력에 대한 일화를 듣고 있자면, 입이 열 개 있어도 그녀를 칭송하기 모자랄 정도다.

세상은 이렇게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2011/09/27 14:50 이글루스에서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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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시리즈

2011. 9. 29. 16:43 from 잡글
리차드 도킨스 (Clinton Richard Dawkins) 시리즈 다시 읽기

1.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지은이) | 홍영남(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06-11-25 | 472쪽 | 15,000원


2. 눈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1986년판)
리처드 도킨스(지은이) | 이용철(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4-08-09 | 558쪽 | 25,000원


3.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2006년판)
리처드 도킨스(지은이) | 이한음(옮긴이) | 김영사 | 2007-07-20 | 604쪽 | 25,000원


4.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 (2009년판)
리처드 도킨스(지은이) | 김명남(옮긴이) | 김영사 | 2009-12-09 | 625쪽 | 25,000원


5.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 (1982년판)
리처드 도킨스(지은이) | 홍영남(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04-07-30 | 556쪽 | 19,000원


*            *            *            *            *

학부 때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난 후, 한동안 진화론에 대해 관심을 끊고 지내다가 근래 들어 도킨스의 모든 저작을 다시 읽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며 그 이유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없을테니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생물학자인 내가 도킨스를 통해 진화론을 다시 음미하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            *            *            *            *

현재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은 다 읽은 상태이고 다음으로 <확장된 표현형>을 읽으려고 한다. 도킨스의 저작을 읽다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과거에 알고 있던 내 관념 속의 도킨스가 지금의 도킨스와는 다르다"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지만, 과거의 도킨스와 지금의 도킨스가 많이 달라졌을리는 없다. 물론, "생존기계" 도킨스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한, 그리고 그가 잘 정의된 물리학 법칙의 세계에서 현실을 초월하지 않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면 - 표형형으로 나타난 과거의 도킨스와 지금의 도킨스는 분명 다를테니까 말이다. 달라진 것은 분명히 나다. 나의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s)가 대표하는 "생존기계" [나]가 아니라, 세계의 밈(meme) 속에 혼연일체가 되어 나타난, 다른 이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내가 달라진 것이다.

*            *            *            *            *

철 없던 시절에 읽어서라고나 할까? 그 시절 도킨스의 저작을 접했던 나는 이성적으로 사물이나 현상 등에 접근하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모든 것에 반응을 했고, 살아온 생활패턴과는 많이 다르게 관념적으로는 도덕적 우위를 최고의 선으로 둔 윤리적 환원주의 시각에서 세상을 판단했다. 때문에, '유전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그당시 분명히 나는 도킨스가 유전자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도킨스를 "유전자 환원주의자"라 매도하며 폄하했다(심지어는, 스스로가 도덕론적 환원주의자였으면서 말이다).

*            *            *            *            *

관록이 붙어서일까, 아니면 생물학 공부를 오래 해서일까? 다시 읽어본 도킨스의 저작은 학부 때 알던 도킨스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 스스로가 도덕론적 환원주의에서 벗어나 공정한 시각으로 사물의 이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유전자"일 뿐이다. 도킨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상(특히 생명체)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앞으로 생명체는 멸망을 맞이하지 않는한 어떤 식으로 변화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이다. 그 안엔 - 우리가 설령 어떤 도덕적이며 윤리적이고 초현실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것이 있다고 어리석은 오해를 하더라도 -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관한 도킨스의 답변만 존재할 뿐이다.

자연에 도덕이란 없다. 도덕이란 오로지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비자연적이며 오로지 100%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유전자'의 입장에서, 다 나아가서는 '생명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오랜 시간동안 지속하고자 하는 본능만 존재할 뿐이다. 본능에는 목적의식이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일 뿐이다. 그 욕구가 동력이 되어 세상은 우연히도 지금까지 오게되어 필연적으로 다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            *            *            *            *

아직 도킨스의 저작(들)을 읽고 있는 중이지만, 한 가지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절대 자연을 도덕과 윤리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도덕과 윤리가 파고드는 그 순간 그건 과학이 아니다. 바로 그 순간, 그건 인간적인 철학이라 불리우며 때로는 망상으로 가득찬 종교로 불리우기도 한다.

2011/09/22 14:31 이글루스에서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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