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fried Henke, and Ian Tattershall, (editor). 2015. Handbook of Paleoanthropology, 2nd ed., pp. 4~13]


소개


역사 연구: 거울을 보는 것 이상으로!


“학문의 역사는 중요한가?“ 고인류학과 고고학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동명(同名)의 회의에서 레이먼드 코비(Raymond Corbey)와 윌 뢰브뢱스(Wil Roebroeks)가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Corbey and Roebroeks 2001a, p. 1). 이 질문에 대한 부정적 답변은 이들 과학 분야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작심해서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일이며, 기껏해야 은퇴한 동료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즐거운 활동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미샤 랜도우(Misia Landau)가 자신의 책 <인류 진화의 서사(Narratives of Human Evolution)>에서 현대 고인류학자는 아직도 “이야기꾼(storytellers)”에 불과할 뿐이라고 은연중 내비친 이후로 (Landau 1991), 고인류학의 역사는 양면의 문제(double-sided problem)에 봉착했다. 이 때문에, 단지 과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 분야에 대한 불확실한 역사적 접근이 정말로 필요한지 우리는 물어야만 한다.


고인류학은 진지하고 존중받을 만한 연구 분야가 아니라는 주장은 용인할 수 없으므로, 비록 이런 인류학의 하위 분야가 신용할 수 없는 측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지언정, 이 책 <고인류학 편람(Handbook of Paleoanthropology)>의 다양한 기고문에 제시된 폭넓은 스펙트럼의 진정한 연구가 이러한 점을 증명해주길 바란다 (White 2000; Kalb 2001; Stoczkowski 2002; Henke 2010a, b; Reader 2011;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기술할 것이다).


더불어, 과학사(科學史)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학문의 역사는 과학사가(科學史家)뿐만 아니라 현역 종사자에게 단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가?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일관된 답은 없다. 파멜라 윌러비(Pamela R. Willoughby)는 역사과학(歷史科學, historical science)이 가정(假定)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소위 경성과학(硬性科學, hard science)과 다르다고 정확히 언급했지만 (Willoughby, 2005), 그렇다고 생물학조차도 물리학은 아니다. 이언 태터숄(Ian Tattershall)이 자신의 세련된 에세이 <거울 속의 원숭이(The Monkey in the Mirror)>에서 언급한 것처럼 (Tattershall 2002, p. 14), 카를 포퍼(Karl Popper)는 진화생물학을 “형이상학적 연구 프로그램(metaphysical research program)”이자 “검증 가능한 과학적 가설이 가능한 프레임워크(a possible framework for testable scientific hypotheses)”로 묘사했다. 비록, 이른바 경성과학과 연성과학(軟性科學, soft science) 사이의 구분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고 인류학이 연성과학 쪽에 있더라도, 우리는 “흰색 코트를 입은 집단(white coat group)”이 비슷한 인식론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Oeser 2004) 근래의 후생적 발견을 통해 점점 더 자각하게 되어왔다 (Jobling et al. 2004; Sassone-Corsi and Christen 2012). 명백히, 과학자는 철학자의 지지가 필요하다. <영적 과학의 필연성에 대하여(Über die Unvermeidlichkeit der Geisteswissenschaften)>라는 에세이에서 독일 철학자 오도 마르크바르트(Odo Marquard)는 인문과학(人文科學, cultural science)의 보상기능(compensatory function)을 강조했으며 (Marquard 1987) 자기 학문 분야의 “무능력에 대한 보상 능력(Inkompetenzkompensationskompetenz, competence in compensating for incompetence)[고백 건데, 나는 이 용어가 좋다]”을 호소했다 (Marquard 1974). 이 책에서는 한낱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초보 논리(propaedeuticum logicum)를 사회적으로 과소평가해왔던 것이 유럽 생물과학 교육 과정의 중대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역사과학과 고인류학에 대한 관련성으로 돌아가자. 윌러비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Willoughby 2005, p. 60): “‘물리학의 질투(physics envy)’를 걱정하기보다는 (Gould 1981 (sic!), p. 113), 일부 역사과학은 이러한 제약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해 보인다: 만일 고인류학자와 과학사가가 그 분야의 (학문적) 증진(增進, improvement)을 위한 좋은 제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과학사를 포기하거나 이 분야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류 기원 연구의 역사(The History of Human Origins Research)>에 게재한 값진 기고문에서 매튜 굿럼(Matthew R. Goodrum)은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그리고 과학사회학자는 고인류학의 발전을 하나의 과학으로써 더욱 잘 이해하도록 한 것과 고인류학이 현대 문명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데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Goodrum 2009, p. 349).


걸출한 현대 다윈주의자인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1904–2005)는 다양하고 적절한 역사적 접근에 대해 비록 철저하진 않더라도 타당한 분류를 제시했다: (1) 정교한 사전식 역사(elaborated lexicographic histories), (2) 연대기적 역사(chronological histories), (3) 전기(傳記)적 역사(biographical histories), (4) 문화사회학적 역사(cultural and sociological histories), 그리고 (5) 개연(蓋然)적 역사(problematic histories) (Mayr 1982). 피터 보울러(Peter J. Bowler 1976, 1988, 1996, 1997, 2001), 밀포드 월포프(Milford H. Wolpoff)와 레이첼 캐스퍼리(Rachel Caspari) (Wolpoff and Caspari 1997), 프랭크 스펜서(Frank Spencer 1997), 베르트 토이니센(Bert Theunissen 2001), 빅토르 스톡츠코프스키(Wiktor Stoczkowski 2002), 리차드 딜라일(Richard G. Delisle 2007), 굿럼 (Goodrum 2009, 2013), 그리고 톰 건들링(Tom Gundling 2005)이 강조한 것처럼, 이 모든 것의 핵심은 실증주의(實證主義)적 접근이 반영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몇몇 사람들은 이들이 제시한 (휴리스틱스[heuristics], 원전비평[原典批評], 해독[解讀, interpretation], 논리적 해석[解釋學, hermeneutics], 그리고 분석론[分析論, analytics] 같은) 다양한 접근이 고인류학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심할지라도, 코비와 뢰브뢱은 역사적 연구의 휴리스틱 가치(heuristic value)를 강조한다 (Corbey and Roebroeks 2001a로빈 데널(Robin W. Dennell)은 과학사에서 두 가지 교훈을 더 보는데, 그것은 바로 분열(fragmentation)과 자기만족(complacency)의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다. 데널은 인류학 분야 사이의 대화와 이해의 부족을 치명적 위험으로 간주하고 “이들 학문 분야, 특히 전문용어와 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과도한 전문화(專門化, specialization)와 불충분한 대화가 여전히 존재함”을 경고한다 (Dennell 2001, p. 66). 자기만족의 측면에 관해서 그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위험을 보는 게 언제나 훨씬 더 쉽지만, 과학사에서 얻을 수 있는 주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한 아이디어에 지나치게 안주하게 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도 단지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 동의하고 과거에도 매우 자주 거기에 동의해왔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Dennell 2001, p. 66). “비록 시기적으로 오래전일지라도, 과거는 현재보다는 약한 영향력으로 우리에게 작용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역사의 과정은 느리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수 있으며, 관성력(慣性力)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가 편재(遍在)하고, 어제와 그 전날의 생각들이 오늘날의 생각들을 짓누른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사실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개념적 도구를 더 잘 숙달하고자 하는 과학자에게도 어느 정도 실질적인 결과를 제공한다”고 스톡츠코프스키는 주장한다 (2002, p. 197). 그리고 굿럼은 역사기록학적 연구가 “때때로 자연과학사와 인문과학사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틈새를 메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표현할 때 또 다른 관련 있는 측면을 간략히 언급한다 (Goodrum 2009, p. 338).


나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에 놓인 울타리를 가로지르는 시각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참 전에 나왔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다음을 참조할 것, Riedl 1985, 2003; Sarasin and Sommer 2010). 학문의 역사로 과학을 향상시킨다는 앞의 심각한 주장은 모든 연구 분야 또는 “그물처럼 밀접하게 얽혀 연결된 문제를 다루려는 관심사, 이론 그리고 절차 또는 기술의 공통집합을 보유하고 있는 지적 노력(intellectual endeavor)의 영역”에 유효하다 (Shipman and Storm 2002, p. 108). 진화생물학을 주제로 한 무수히 많은 학제 간 콜로퀴움(colloquium)과 “다윈주의자”의 홍수와 함께한 2009년의 다윈 기념일은 “우리 과학의 진화사를 철두철미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중요한 단계”로써 “다양한 이론적 접근의 상호교류(cross-fertilization)”를 갈망하는 지속적인 대화가 있음을 입증했다 (Destro-Bisol and Paine 2011; further Delisle 2007; Henke 2010a, b; Henke and Herrgen 2012; Begun 2013; Goodrum 2013).


생물인류학(生物人類學, biological anthropology)의 주요한 측면은 현재가 필연적으로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데널은 인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화석 표본, 층서(層序) 및 기후의 변화, 우리 주변 세계로부터의 추정(推定, inference) 및 기타 등등을 통해 과거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창(窓)을 탐색하는 일”로 본다 (2001, p. 65). 고인류학자, 선사학자(先史學者, prehistorian), 그리고 고고학자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을 찾고 있지만, 서로 다른 열쇠 꾸러미를 사용한다. 하지만 거울을 창으로 착각해서 현재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시각과 편견을 과거에 비추어 단순히 추정할 가능성 있다는 치명적 위험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슬리 하틀리(Leslie P. Hartley)가 말한 것처럼 “과거는 외국이고, 그들은 거기에서 다른 무언가를 한다” 이다 (Foley 1987, p. 78). 이런 이유로, 로버트 폴리(Robert A. Foley)는 “세상이 현재 나아가고 있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과거는 발명되거나 상상할 수 없을뿐더러 재구성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로 말미암아 고인류학 연구와 같은 진화 과학의 임무와 도전이 표면에 드러난다: 우리는 중요한 모델을 창조하고 있다 (Foley 1987; Henke and Rothe 1994; McHenry 1996; Delson et al. 2000; Stoczkowski 2002; Gutmann et al. 2010; Henke 2003a, b, 2004, 2005, 2007a, b, 2009, 2010a, b, c; Henke and Hardt 2011; Henke and Herrgen 2012). 이러한 종류의 접근은 결코 단순한 서사일 수가 없고, 다소 맥락과 관련된 가설 검증이며, 심지어 몇몇 사례에서 과학적 추론이 관련되어 있을지라도 방점은 여전히 과학에 있다 (White 1988; Henke and Rothe 1994; Henke 2003a) (그림 1과 2). 모든 과학자는 구체화된 상상 내에서 획기적인 해결책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태터숄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실로, 단 하나의 과학적 방법은 없다. 물론, 과학적 방법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은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서로 다른 것들이 지니는 엄청난 다양성의 핵심에 놓여있다. [하지만] 모든 유형의 과학적 탐구에 답해줄 열쇠를 건네줄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강조한다 (Tattersall 2002, p. 3).


다윈 이론의 선물은 윌리엄 하우얼스(William W. Howells)의 말마따나 “따라야 할 청사진 없이, 오직 기회의 전개(展開)만 있다”는 것이다 (Howells 1993, p. 14). 만일 오늘날 생명의 장엄한 위용이 계획 없는 실제 역사적 유전 과정의 결과라면, 우리는 그러한 양상과 과정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윈의 이론은 생물학이라는 전체 과학의 중심으로서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 Idea)>에서 대니얼 대넷(Daniel C. Dennett)은 진화론을 “부식성이 매우 강해서 그 어떤 것도 삼켜버리는 상상의 액체”인 보편적 산(universal acid)과 비교하며 “성스러운 것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Dannett 1995, blurb).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모든 전통적인 개념은 다윈의 혁명적 세계관과 경쟁해야 한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가 “진화의 빛을 비추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格言)에서 표현한 것처럼, 다윈의 생명에 관한 이론의 결과로 말미암아 심지어 인류 조차도 더 이상 목적론적 방식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Dobzhansky 1973, p. 125).


상식적으로 고인류학은 인간 화석을 연구하고, 연구가 안 된 대중매체 친화적인 화석과 인류의 진화 과정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키는 발견이 지배하는 기술(記述)적이고 상당히 서술적인 학문 분야로 주로 간주된다. 특히, 냉정하게 봤을 때 대부분의 화석과 발견들이 그저 예상한 대로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중 과학 매체는 고인류학이 기껏해야 스토리텔링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인상을 전달하면서도 모든 인류 화석을 극적인 것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실증적인 연구에 따르면 대중적 관심은 대부분 곧바로 희미해지거나 비누거품처럼 폭하니 터져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사실은 고인류학의 역사가 “최후에는 폐기될 오류, 희한한 의견, 기괴한 개념으로 가득 찬 길임을 입증하는 어떤 것 이상이지 않을까?” (Corbey and Roebroeks 2001a, p. 1). 그게 아니라면 스톡츠코프스키가 논평하듯이 (Stoczkowski 2002, p. 2) “몇천 년 동안 꾸준히 숙고된 인류 및 문명 기원에 관한 문제는 서양 문화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순진한 인류학을 복원할 수 있는 편리한 기회를 제시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오늘날 학문적 생각에 대한 이러한 암울한 지식이 초래한 영향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우리가 주체-객체 정체성(subject-object identity)의 딜레마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과학계에서 유행하는 이론, 패러다임,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력 관계와 같은 다양한 ‘사회적’ 요소”로부터 줄곧 이어져온 관습(baggage)를 의식해야만 한다 (Stroczkowski 2010, p. 1). 대부분의 인류학자가 이러한 장애물을 알고 있을까? 명백히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고인류학자는 주로 “순수한 사실”에 관심을 가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인류학자는 고인류학이 진화생물학의 다른 분야처럼 가설 검증과 과학적 모델링을 수반하는 진지한 주제라는 데 동의한다 (Wuketits 1978; Foley 1987; White 2000; Wood and Richmond 2000; Wood and Lonergan 2008; Cartmill and Smith 2011; Begun 2013). 그들은 화석에서 확인된 자료가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과학적 접근은 가설과 이론의 창조와 검증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림 3). 이론적인 통찰을 의심해야만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되며, 질문함으로써 진실을 – 또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 인식할 수 있다 (Popper 1959a, b, 1968, 1983; Foley 1987; Mahner and Bunge 2000; Vollmer 2003; Oeser 2004). 강력한 이론일수록 최적화되어 확증되지만, 잘 검증된 일반 이론조차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개요는 다음에 잘 나와 있다, Sarasin and Sommer 2010; Toepfer 2011; Wood 2011). 고인류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물리학과 같은 실증과학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이 고인류학이 서사적인 주제(narrative subject)라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모든 과학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기본적으로 오직 한 종류의 근본적인 과학이 존재한다. 모든 진정한 과학은 실재(實在)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며, 이러한 이해를 성취하기 위해 이론과 증거 모두를 조합해서 사용한다”고 강조했던 알프레드 크뢰버(Alfred L. Kroeber)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Kroeber 1953, p. 358).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다양한 대답이 주어져 왔다. 하지만 다윈 이후의 시대에도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서 도달했는지에 대한 그 어떤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개요는 다음을 참고할 것, Eldredge and Tattersall 1982; Tattersall 1995, 1998, 2002; Corbey and Theunissen 1995; Antweiler 2009; Bohlken and Thies 2009; Bayertz 2012). 다른 모든 인류학을 연구하는 과학자처럼, 고인류학자는 단지 우리 인간의 조건(conditio humana)에 대한 환원주의적 시각만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다 (Henke and Herrgen 2012). 게하르트 헤버러(Gerhard Heberer)는 (현재 상황[status quo]을 뜻하는) “예츠트빌트(Jetztbild; 현재의 상[current image])”와 “예바일스빌트(Jeweilsbild; 각각의 상[each image])”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Heberer 1968a), 우리 지식의 가변성(changeablilty) 및 모든 고고학적 보고는 발표되자마자 곧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Hoßfeld 1997, 2005a, b; Schwartz and Tattersall 2002, 2003, 2005). 호미닌 분류의 다양한 도식(圖式)과 – 비전문가와 외부인뿐만 아니라 학부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 호미닌/호미니드 화석 기록의 짜증날 정도로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Wood 2000; Wood and Lonergan 2008), 생물학자가 원칙적으로 인류 화석의 발견을 평가하고 진화학적 용어로 인류의 기원을 재구성할 때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Tattersall 1998, 2002; Delson et al. 2000; Levinton 2001; Grupe and Peters 2003; Cartmill and Smith 2009; Begun 2013).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비생물학적인 대안적 설명과 관련된 말이 하나 있다.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신봉자의 눈높이에서 유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적 이론을 논의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따라서 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hold Brecht)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지성으로 들어오는가? (Wie kommt die Dummheit in die Intelligenz?)”란 말을 인용하고 싶다. 생물학자는 우선 자신의 집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근래에 창조론의 르네상스를 촉진해왔던 원인과 그 저변에 놓인 정치사회 구조를 해석하는 것은 일부 과학사학자에게는 큰 흥미를 일으키는 주제다 (Graf 2007, 2010; Graf and Soran 2010; 다음 글은 뛰어난 논평이자 비평이다 Meyer (2006), 다음을 참조할 것 Neukamm 2009).


생명의 과정에 대한 다윈의 관점


지난 세기의 두 번째 절반이 시작될 무렵 전통적인 고정적 시각에서 역동적 진화 개념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로 말미암아 인간은 역사적 과정의 집약체(integrated part)라는 인식이 생겼다. 1859년에 출간된 다윈의 걸작으로 촉발된 소위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은 오랫동안 혼란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보울러가 자신의 사서(史書) <비(非)다윈 혁명(The Non-Darwinian Revolution)>에서 증명한 것처럼, 다윈의 아이디어는 근본적으로 오해를 받고 있었다 (Bowler 1988). 판단컨대, 진화주의(evolutionism, 進化主義)가 19세기 후반의 사상에 끼친 영향은 역사가에 의해 엄청나게 과대평가되어왔다 (Hull 1973; Moore 1981; Desmond and Moore 1991; Engels 1995; Bowler 1996, 1997, 2001, 2009; Hemleben 1996; Ruse 2005; Goodrum 2004, 2009, 2013; Wuketits and Ayala 2005; Engels and Glick 2008).


전통적으로, 생물학의 다윈 혁명은 인류 기원의 새로운 평가에 대한 자극(impetus)을 제공했다고 가정되어왔고, 보울러는 이러한 가정이 어느 지점까지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종교적인 염려 때문에,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고차원적인 인류의 능력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다윈과 그의 추종자들은 알고 있었다” (Bowler 1988, p. 141). 지속해서 증가하는 생물학적 사실의 프레임 안에서 복잡한 과학적 대답과 토마스 쿤(Thomas Kuhn)이 의미하는 “학문 모체(disciplinary matrix)”는 (Chamberlain and Hartwig 1999) 본질적으로 우리의 자아상(自我像)과 방향을 반영했다. 고인류학 연구의 과학적 필요성을 위해 제시된 논거는 인간은 어디로 갈지 결정하기 위해 자신이 기원한 곳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How [do] we know what we think we know?)”는 동명의 태터숄의 책에서 차용한 문구이다 (Tattersall 1995).


오늘날 고인류학은 주로 광대한 귀납적 접근과 연역적 가설 검증을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묘사하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진화생물학의 하위 분야다 (Foley 1987; Henke and Rothe 1994; Wolpoff 1999; Tattersall and Schwartz 2000; Begun 2013). 만일 우리 인류의 기원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우리의 진화사(進化史)를 재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세 가지 기본적인 접근법이 있다 (Washburn 1953; Henke and Rothe 1994, 1999a; Cartmill and Smith 2009):


  • 첫 번째, 영장류학(靈長類學, primatology)적 접근: 진화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현존하는 가장 밀접한 근연종(近緣種)을 연구할 수 있다. 그러한 작업에는 행동, 인지(cognition, 認知) 및 비교형태학, 생리학, 혈청학, 세포유전학,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 연구에 대한 현장 및 실험실 연구가 포함된다 (e.g., Goodall 1986; Martin 1990; Jones et al. 1992; Tomasello and Call 1997; Tomasello 1999, 2008; de Waal 2000; Dunbar et al. 2010).
  • 두 번째, 고인류학적 또는 인간 고생물학적·고유전학적 접근: 임의의 적절한 화석 증거의 복구 및 분석, 거시·미시형태학, 조직학, 그리고 (예를 들어, 동위원소 같은) 생물리학 그리고 mtDNA(mitochondrial DNA)와 유전체 DNA(genomic DNA)와 같은 고유전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의 진화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e.g., Aiello and Dean 1990; Herrmann 1986, 1994; Henke and Rothe 1994, 1999a, 2003; Henke 2005; 2010a; Hartwig 2002; Schwartz and Tattersall 2002, 2003, 2005; Hummel 2003; Jobling et al. 2004; Burger 2007; Wagner 2007).
  • 세 번째, 집단유전학적 접근: 최근 인류 집단의 집단 내 또는 집단 사이의 표현형적유전적 변이를 연구함으로써 지리학적 표본과 이들의 진화사에 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e.g., Jones et al. 1992; Freeman and Herron 1998; Jobling et al. 2004; Crawford 2006).
  • 마지막으로, 선사시대 인간 활동, 독심술(mind reading), 그리고 문화적 발견물, 즉 고고학적 기록과 활동 화석(behavioral fossil)으로부터 얻은 상징적 표현(symbolism)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가 있다 (e.g., Haidle 2006; Gamble 1999; Klein 2009; Dunbar et al. 2010; Haidle and Conard 2011; Pu°tová and Soukup 2015 in press).


오늘날 고생물학 연구는 우리의 선행자가 어떤 모습이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다른 영장류 종은 멸종했는데 우리 인간은 왜 진화했는지를 특히 묻는다 (White 1988; Tattersall and Schwartz 2000). 때때로 호미니드화(hominization)로 정의되는 과정인 인류의 진화에서 적응을 유발하는 결정요인을 정의하기 위해 화석 인류의 생태계 니치(ecological niche)를 재구성해야 하지만, 몇몇 인류학자는 이 용어가 마치 목적론처럼 들리므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Delisle 2001). 그러므로, 이러한 개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콜린 피텐드라이(Colin S. Pittendrigh)가 의미하는 목적률적 과정(teleonomic process)을 설명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Pittendrigh 1958). 연대기적 관점을 지닌 다른 생명과학 분야처럼 고인류학의 실험은 자연 그 자체의 역사적 과정에 존재한다. 그에 상응하여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진화 이론의 일반적 원칙 안에서 사후 행동으로(ex post-factum)으로 해석해야만 하고, 주체-객체 정체성으로 알려진 인식론상의 어려움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고려해야만 한다 (Riedl 1975; Mahner and Bunge 2000; Vogel 2000; Vollmer 2003).


왜 고인류학을 과학적이며 역사적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고인류학의 역사적 발달을 다면적인 생물학 주제로 소개한 이 글은 고인류학의 문화사회적 배경 및 특정 시기의 여러 문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 진화적 사고의 어떤 패러다임 변화가 고인류학 연구 분야를 이끌어왔는가?
  • 어떤 문화·사회·과학적 요인이 고인류학 형성 과정을 저해했고 가속해왔는가?
  • 어떤 걸출한 과학자 및 아이디어가 생물학·지리학·고고학 연구의 통합을 일으켰는가?
  • 다윈주의에서 신다윈주의에 이르는 연속적 발달, 그리고 종합이론 및 “현대종합”에서 고인류학 연구의 개념이자 전략인 진화체계이론(the System Theory of Evolution)에 이르는 일련의 발달이 있게 한 그 저변에는 각각 무엇이 있는가?
  • 고인류학 연구의 방향에 특정 국가가 미치는 영향을 무엇이었는가?
  • (예를 들어, 근본주의적이자 권위주의적인 국가주의, 공산주의, 식민주의 같은)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와 체계의 영향이 고인류학적 사고 및 연구에 기재될 수 있는가?
  • 이 분야를 오랫동안 남성이 점유해왔다는 사실이 인류 진화에서 특정 성(性)의 역할에 대한 고인류학적 사고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 오늘날과 같은 멀티미디어 시대가 현대 고인류학에 미친 영향 및 혁신적인 생물학 기술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 고인류학은 예외적인 호미닌 화석의 발견과 홍보로 촉발되는 화석 그리고/또는 대중매체 위주의 과학인가?
  • 만일 고인류학자가 (세익스피어의 희곡 <거짓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 따르면) 인류 진화의 양상과 과정을 적절히 이해하는 데 별 기여를 하지 않는 얕지만 매체 친화적인 “발견”을 주로 제공한다는 비난이 정당하다면 (White 2000), 고인류학의 역사적 연구가 반(反)진화적 사고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교육 전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그림 1. 연역적 그리고 귀납적 과학 접근 사이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그림 (Galley 1978에서 따왔으며, 약간의 수정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Henke and Rothe (1994)를 참조할 것).


그림 2. 화석 기록에서 얻은 골격 및 맥락 상의 자료가 초기 호미닌의 폭넓게 겹치는 다섯 범주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그림 (White 1988에 나온 자료를 다시 그림).


그림 3. 과거로 가는 길은 호미니드의 진화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Foley 198에 나온 그림을 수정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메타스 metas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