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단서: 생물학에서
유전정보는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세대 간에 전수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정보는 비록 유전물질 속에 담겨 있기는 하지만, 유전정보 자체가 물질은 아니다. 유전정보는 ‘형태’다. 그러나 유전정보는 복제될 수 있기 때문에 물질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형태다. 진화는 이러한 종류의 형태가 있을 경우—유전정보를 복제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할 때—에만 시작할 수 있다.

이 첫 번째 단서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이것은 우리의 관심을 중요한 핵심적 문제로 돌려주었고, 최초의 생명체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데 대한 해답을 아주 일반적으로나마 제시해주었다. 최초의 생명체는 ‘발가벗은 유전자(naked gene)’ 또는 이와 비슷한 무엇이었을 것이다. 이 단서는 책의 앞 부분(제2장)에서 제시되었다.



두 번째 단서: 생화학에서
DNA는 현재의 생화학적 물질대사 경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에 위치하는 분자다. 이 사실은 RNA에도 적용된다. 화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생화학적으로도 이것은 만들기가 아주 어려운 분자다. 생화학에서 좀더 간단한 핵심적인 분자를 가지고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 구성 단위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DNA와 RNA라는 이제는 더 이상 논의의 여지가 없는 통제자가, 진화에 있어서 비교적 뒤늦게 나타났음을 시사해준다.

두 번째 단서는 이러한 유전물질이 태초부터 있었다고 간주했던 첫 번째 단서와는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순이 지적된 후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이 책의 중심 과제였다. 두 번째 단서를 제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몇 가지 세부사항이 설명되어야 했으며 두 개의 함정을 제거해야 했다. 이 단서는 제6장에서 잠재된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었으며 마침내 제7장의 끝 부분에서 제시되었다.



세 번째 단서: 빌딩 만드는 일에서
아치 모양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종의 발판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즉 활 모양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개의 돌이 쓰러지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있으면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돌을 지탱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하다.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을 보면, 마지막 완성물이 나타나기 전에 그 동안 건물의 틀을 잡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들이 제거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화과정에서도 기존 생명체가 포함하고 있던 물질이 제거될 수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핵심적인 생화학적 통제 기계류의 놀라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부품 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세 번째 단서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은 없어진 것—옛날에는 발판으로 쓰였던 것—이 옛날에 있었을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즉 진화가 시작되던 단계에서는 구식 생명체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최초 생명체는 현재 우리의 생화학적 조직 내에는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은 유전물질에 바탕을 두고 있었을 것이다. 단서 하나씩 둘씩 점점 더 빨리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단서는 제8장의 앞 부분에서 제시되었다.



네 번째 단서: 밧줄의 본질에서
밧줄을 구성하는 어떤 섬유도 밧줄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에 이르기까지 연결해 있을 필요가 없다. 세대 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유전자 집합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우리의 먼 조상과 연결해주는 긴 계보는 여러 섬유로 구성된 밧줄과도 같다. 따라서 새로운 ‘유전자 섬유’는 전체적인 연속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더해질 수도 있고,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전자 섬유’는 없어질 수도 있다.

네 번째 단서는 수단과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이 단서는 어떤 한 종류의 유전물질에 근거를 둔 생명체가 어떻게 전혀 다른 유전물질에 근거를 둔 생명체로 점진적 진화를 해나갈 수 있었는지를 시사해주었다. 이 단서는 여러모로 첫 번째 단서보다도 더 핵심적인 단서였다. 이 단서는 제8장 중간 부분에서 나타났다.



다섯 번째 단서: 기술의 역사에서
원시적 기계류는 그것의 디자인 방식이나 구성 물질에 있어서 현재의 발전된 기계류와는 다르다. 원시적 기계류는 직접 구할 수 있는 물질로 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장비로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발전된 기계는 작동을 잘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특별히 쉽게 조립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서로 협력하여 작동하는 다양한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다섯 번째 단서는 최초의 진화되지 않은 생명체가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하이-테크’ 생명체와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틀림없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도 현재의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 다섯 번째 단서는 제8장의 끝 부분에서 나타났다.



여섯 번째 단서: 화학에서
결정은 스스로를 만든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로-테크’ 유전물질로서 적당한지도 모른다. 유전자를 인쇄하는 공정은 가장 원시적인 과정에서조차도 아주 정확해야 하며, 많은 원자가 결합해야 한다. 커다란 유기분자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이 경우에 복잡한 정보의 통제가 결정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여섯 번째 단서는 우리가 원시적인 생화학적 물질을 찾아나서는 데 있어서 일종의 방향 감각을 제공해주었다. 이 단서의 중요성은 제9장의 전반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나타났으며, 이 단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이 전부 소요되었다. 이 단서는 제10장의 첫 부분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일곱 번째 단서: 지질학에서
강에 의해 휩쓸려 내려가는 엄청난 양의 점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지구는 항상 점토를 만들고 있다. 점토의 광물은 단단한 바위가 풍화되어 생긴 물질을 담은 수용액에서 자라나는 작은 결정이다. 원시적인 유전자로서뿐만 아니라 ‘로-테크’ 촉매나 막과 같은 원시적인 통제 구조로서도, 이러한 종류의 무기화학 결정은 커다란 유기분자보다 훨씬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일곱 번째 단서의 중대성은 앞의 여섯 가지 단서에 의존한다. 물론 점토라는 아주 흔해빠진 물질이 최초 생명체의 물질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경에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은 새로운 사실은, 이 점토라는 물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연구해보면 그것은 매우 재미있고 다양하며 복잡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이 일곱 번째 단서는 11장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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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는… 영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괴테의 생각에 동의한다. … 우리는 단순 명료한 스피노자의 일원론을 확고하게 신봉한다. 물체와 영혼(또는 에너지)은, 즉 무한히 확장된 실체와 지각있고 사유하는 실체는 세계의 포괄적인 본질로 우주의 두 가지 기본적인 속성이다"

"정신은 세포 속에 있고, 불멸이란 형이상학적 허위이며, 생명은 그 자체 이외엔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존재는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 속의 물질이다."

"인간성이란 그저 영원한 실체의 진화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단계에 불과할 뿐이며, 물질과 에너지의 특별한 현상적 형태,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금방 인식할 수 있는 진정한 부분이다."

from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 도리언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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