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의 멸망 후 많은 그리스 출신 학자가 이탈리아 등지로 대거 망명하면서, 14세기 무렵부터 시작한 르네상스(Renaissance)는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신을 앞세운 교회의 아성은 여전히 유럽을 지배했지만, 한동안 잊혀진 고대 그리스 문화를 발판으로 한 유럽의 지성은 교회 이외의 것을 자신 안에 꽃피우기 시작했다. 천문학에서는 천 년 이상 유럽의 세계관을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대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중세의 우주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면, 중세 유럽의 사고를 지배한 또 하나의 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설도 천동설과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되었다.


자연발생설의 쇠락과 종결: 레디부터 파스퇴르까지



그림 1. 프란체스코 레디 [출처: Wikipedia].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이자 박물학자며 시인인 프란체스코 레디(Francesco Redi, 1626~1697년)는 1668년에 출판된 『Esperienze Intorno alla Generazione degl'Insetti (Experiments on the Generation of Insects)』란 저술에서 자연발생설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몇 가지 실험을 소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구더기는 썩은 고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믿음에 도전했다 [1, 2] [그림 1].


자연발생설의 실재(實在)를 확인하기 위해 레디는 두 개가 한 묶음으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항아리를 준비했다. 첫 번째 묶음에는 [현대적 의미에서 일종의 대조군(control experiment)으로] 썩지 않는 물체를 담았고, 두 번째 묶음에는 죽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담았으며, 세 번째 묶음에는 익히지 않은 쇠고기를 한 덩이씩 담았다. 그는 각 묶음의 첫 번째 항아리를 오직 공기만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천 조각으로 덮었으며, 나머지는 입구를 열어 놓는 채로 방치했다. 며칠 뒤에 그는 물고기와 날고기가 담긴 밀봉되지 않은 항아리 안에서 구더기가 출현한 것을 관찰했으며, 천 조각으로 입구를 밀봉한 항아리의 내부에는 구더기가 없는 대신에 천 조각 위에 구더기가 몇 마리 존재하는 것을 관찰했다. 당연히, 썩지 않는 물체가 담긴 항아리에서는 [입구의 밀봉 여부에 관계없이] 그 어떤 구더기도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로 만으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구더기의 자연발생은 기각됨이 마땅하지만, 이로선 만족할 수 없었던 레디는 두 번째 실험을 계획했다. 항아리 세 동이를 준비한 레디는 각각에 날고기를 한 덩이씩 집어넣고, 그 중 하나는 입구를 열어놓은 채로 방치했으며, 하나는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천 조각으로 덮었으며, 다른 하나는 천 조각보다는 공기 투과가 덜 자유로운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첫 번째 실험처럼 항아리를 며칠 간 방치했다. 결과는 다들 예상했겠지만, 당연히 입구가 뻥하니 열려 있는 항아리 안에서는 구더기가 발생했고, 천 조각으로 밀봉된 항아리는 천 조각 위에서만 구더기가 발생했으며,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은 항아리는 안이든 마개 위든 그 어떤 곳에서도 구더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결론은 확실하다. [적어도] 구더기만큼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레디의 결론이다. 다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단순히 썩은 고기가 있고, 흙이 있고, 태양 빛이 있고, 물이 있다고 해서, 구더기의 존재가 항아리 안에서 순간이동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사의 주문처럼 “얏!”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 안에 썩은 고기가 있으니, 구더기여 네가 있을 곳을 그곳이니라!”하며 썩은 고기로 구더기를 빚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항아리 안에서 구더기를 만들까?


레디는 구더기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세 번째 실험을 계획했다. 레디는 날고기가 담긴 항아리 안에 구더기를 넣었다. 이때 구더기는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항아리에 각각 따로 담았다. 그리고 또 다른 항아리에 파리도 넣어뒀다. 파리도 마찬가지로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을 따로 담았다. 결과야 뻔하다. “살아 있는 구더기가 살아 있는 파리로 변하고 그 파리에서 구더기가 나오며, 살아 있는 파리에서 살아 이는 구더기가 나오고 그 구더기가 다시 파리가 되더라.” 생명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오로지, 기원이 될 수 있는 어떤 살아 있는 존재가 있어야만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주 다른 형태의 생명이 출현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체는 언제나 부모를 닮는다 [1, 2].



그림 2. 피에르 안토니오 미켈리 [출처: Wikipedia].



생명체는 부모를 닮는다”란 레디의 관찰은 이탈리아 출신의 식물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인 피에르 안토니오 미켈리(Pier Antonio Micheli, 1679~1737년)에 의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1, 3] [그림 2]. 미켈리는 1729년에 『Nova plantarum genera』란 책을 통해 곰팡이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남겼고, 오늘날 유전학과 발생학 등에서 모델 생명체로 자주 쓰이는 Aspergillus을 발견했으며, 버섯의 포자(spore, 胞子)를 처음 발견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은 무엇보다도 “자연발생설”을 부정한 실험을 수행한 것이다. 레디는 “자연발생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계획했다. “곰팡이의 포자를 멜론 위에 올려놓는다. 며칠 뒤 멜론에서는 실험에 사용한 종류와 똑같은 곰팡이가 피어났다. 어떤 곰팡이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곰팡이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오로지 기원이 되는 곰팡이의 포자를 통해서만 발생한다.” [1, 3]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확실한 실험 결과가 있더라도 오랫동안 유럽을 지배해 온 이론이 쉽사리 무너지지는 않는다.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있으면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있는 법.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증거가 끊임없이 나오는 가운데 자연발생설을 지지하는 실험이 소개되었다. 바로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로마 기독교의 신부인 존 니덤(John Turberville Needham, 1713~1781년)이 수행한 1745년의 실험이다 [1, 4] [그림 3].



그림 3. 존 니덤 [출처: Wikipedia].



모든 생명체는 고온에서 살 수 없다. 이건 바이러스건 세균이건 식물이건 우리 몸 안의 세포건 예외가 없다. 아, 물론 예외가 하나 있긴 하다. 온천 등의 극한 환경에서 사는 극한성 생물(extremophiles)은 적정 수준의 고온에서는 잘 산다. 그럼에도, 생명체 대부분은 고온에서는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온갖 영양분이 가득한 수프를 멸균하면 그 안에 있을 지도 모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는 죽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식을 바탕으로 니덤은 수프가 담긴 항아리를 펄펄 끓인 뒤에 상온에서 어느 정도 식힌 다음, 이 항아리의 입구를 천 조각으로 밀봉해 방치했다. 며칠 뒤 항아리 안의 수프는 뿌옇게 변했는데, 이것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상식, 즉 “생명체는 고온에서 살 수 없다”는 것에 위배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안에서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는가? 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한 가지, 바로 “끓인 수프 안에서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였다 [1, 4].


니덤은 그가 원하던 [또는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던] 결과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실험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몇 가지 있다. (1) 멸균이 제대로 안 되었을 가능성, (2) [어떻게 보면 가장 결정적일 수 있는 문제인] 식히는 과정에서 수프가 담긴 항아리 안으로 세균이 유입되었을 가능성, (3) [이것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실험 과정에서 제대로 멸균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 등이다. 특히, (2)번은 매우 개연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식히는 과정에서 수프가 담긴 항아리의 입구를 그 어떤 것으로도 막지 않았다. 어쨌든, 니덤의 실험 결과는 자연발생론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어찌 보면 자연발생설을 찬성하는 측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림 4. 라자로 스팔란자니 [출처: Wikipedia].



이런 논쟁의 한 가운데서 이탈리아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생물학자이며, 생리학자인 라자로 스팔란자니(Lazzaro Spallanzani, 1729~1799년)은 니덤의 실험이 잘못되었으며, 자연발생설은 일어날 수 없음을 밝힌 결정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1, 5] [그림 4]. 그는 니덤의 실험 과정에 어떤 문제점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니덤의 실험을 약간 수정해 그의 실험을 재현했다. 스팔란자니는 수프를 니덤보다 더 오래 끓이고, 끓이거나 식히는 순간에도 항아리 입구에 천 조각을 대는 방식으로 외부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항아리 안으로 유입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수프 안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니덤의 실험에서는 수프가 뿌옇게 변했고, 스팔란자니의 실험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을까? 스팔란자니는 공기 안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자신의 실험에서는 열기로 죽었고, 니덤의 실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림 5. (왼쪽) 루이 파스퇴르. (오른쪽) 파스퇴르가 사용한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데 사용했던 실험 도구 [출처: Wikipedia].



역시나 최후의 결정타는 후대인의 몫이다. 거기엔 프랑스 출신의 화학자이자 미생물학자인 끝판왕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년)가 있었다 [1, 6] [그림 5]. 파스퇴르의 업적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 알 것이라 믿는다. 특히, 미생물학자로서의 그의 입지는 과학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자연발생설의 결정적 임종에는 1859년에 수행한 그의 실험의 힘이 컸다. 그는 거위처럼 아래로 휘어진 기다란 목을 가진 플라스크 안에 담긴 고기 수프를 펄펄 끓였다. 그리고 상온에서 천천히 식히면서 오랫동안 방치했다. 플라스크가 식으면서 그림 5의 오른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래로 휘어진 부분에는 증류수가 고이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플라스크 안에서는 그 어떤 세균도 자라지 않았다. 단지, 플라스크를 기울여 끓인 고기 수프가 외부 공기와 접촉했을 때만 그 안에서 세균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자연발생이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한 생명의 자연발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루이 파스퇴르의 실험에는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실험은 당시 수준에서는 수행하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파스퇴르가 이랬다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배우지만, 실제 저 실험은 정말로 어려웠고 어느 정도의 [당시 수준에서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세상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성공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끓인 고기 수프에서 세균이 자라는 경우가 꽤 많았다. [반대로, 세균이 창궐하지 않았던 실험도 분명히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것은 바로 잔존 세균의 문제다. 니덤과 스팔란자니의 예에서도 봤겠지만, 아무리 오래 끓이더라도 용기나 고기 수프 안에 미량의 세균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안에서 세균이 자랄 확률은 매우 높다. 더군다나, “멸균”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당시로써는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따라서 실험에 사용하는 모든 재료를 [수프를 포함해] 멸균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위 실험은 당시로써는 [개념적 측면에서] 정말로 어려운 실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일련의 실험 과정을 통해 시행착오를 반복한 파스퇴르와 그의 동료이자 스승인 존 틴달(John Tyndall)은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를 증명함과 동시에 의학과 과학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멸균법(autoclaving)법을 발견함으로써 과학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중세부터 파스퇴르까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지 가설에 대해 살펴봤다. 비록 파스퇴르에 이르러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은 그 운명을 다했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전후하여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새로운 “자연발생설”(abiogenesis)이 인간의 지성 안에서 태동했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두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비슷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spontaneous generation과 진화생물학의 abiogenesis가 의미하는 점은 분명히 다르다. 다시 말하면, spontaneous generation은 생명체가 어떤 조건에서 무작위적으로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비과학적 추론이자 믿음이지만, abiogenesis는 오늘날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46억 년 전 지구 탄생 이후에서 약 30억 년 전 최초의 원시적 단세포 생명체의 출현 사이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생명체가 자발적으로 출현해야 함을 뜻한다 [1]. 물론, “자발적”이라고 해서 흙에서 지렁이가 출현하고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머나먼 화학적∙물리적 여정일 뿐이다. 다음번에는 파스퇴르 이후 생명과학에서 다루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설에 대해 살피도록 하자.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Francesco Redi. Wikipedia. [링크]
[3] Pier Antonio Micheli. Wikipedia. [링크]
[4] John Needham. Wikipedia. [링크]
[5] Lazzaro Spallanzani. Wikipedia. [링크]
[6] Louis Pasteur. Wikipedi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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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자연발생설



  

그림 1. (왼쪽) 프랑스 화가 필립 드 샹파뉴(Philippe de Champaigne, 1602~1674년)가 그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초상화 [출처: Wikipedia]. (가운데) 『신국론』의 첫 페이지 [출처: Wikipedia]. (오른쪽)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출처: Flavin's Corner].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년)는 4세기 무렵인 후기 로마 제국 시절에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활동한 신학자로, 가톨릭에서는 4대 교부(theological father, 敎父) 중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1] [그림 1, 왼쪽].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적 대부이자 대학자로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도 처음부터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북아프리카 출신의 이교도이긴 했지만] 그의 어머니가 심지어 독실한 [당시 기독교 신자는 대부분 독실(!)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말이다.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20대의 한 유형이라고나 할까? 철학적 사고에 심취해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젊은 시절 한 여성과 동거를 하면서 [세속적 의미의 결혼은 아니었던 모양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이를 하나 두기도 했고, 당시엔 [초기 기독교보다도] 체계적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던 마니교(摩尼敎)에 심취해 10년간 신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니교의 교리 자체에 내재한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마니교 신도와의 갈등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는 마니교에서 뛰쳐나왔으며 플라톤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다양한 철학적 사고 사이에서 방황(?)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에 능하며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인 [능력자]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Sanctus Aurelius Ambrosius, 330~397년)를 만나면서 그는 본격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2].


마니교와 귀의했었던 경험과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기독교 교리에는 기독교적인 색채보다는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교도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플라톤적인 철학을 공부한 아우구스티누스 덕분에 기독교 교리는 암브로시우스에 이후 한 층 더 강화되고 체계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3]. 특히, 세상이 빛과 어둠의 투쟁으로 창조되었다는 마니교의 이원론(二元論)적 영향으로 성경 내용 가운데 유달리 구약성경 창세기 부분의 천지창조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기독교 철학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창조 과정을 묘사할 때, 공인된 성경보다는 성경 외전(Apocrypha)을 탐독하는 경향이 강했다 [3].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창조 과정을 설명할 때,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은] 당대의 주류 과학이론인 자연발생설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인 천동설(geocentricism)에 맞춰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3]. 그가 그리스 과학에 대해 얼마만큼 조예가 깊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플라톤 등 다양한 철학자의 이론을 공부했다는 역사적 사실로 짐작하건대, 그가 어느 정도 그리스적 우주론과 과학관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그의 유명한 두 저작 『신국론(De civitate dei)』과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De Genesi ad litteram)』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경 창세기 1장 20절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물에는 생물 떼가 번성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에서 날아다니라 말씀하셨습니다”를 인용하면서 지속적 창조를 가능케 하는 신의 칙령으로써 자연발생의 가능성을 자주 논의했다 [4, 5] [그림 1, 가운데와 오른쪽]. 이렇듯, 고대 그리스 때 비롯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립된 자연발생의 원리는 중세에 이르렀을 때 종교적 권위가 더해져 당대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흰뺨기러기(barnacle goose) 그리고 조개삿갓(goose barnacle)


서기 5세기경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쇠락과 1054년 동∙서 교회의 분리 시기 동안에 유럽에서 그리스 과학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례에서 살핀 대로 자연발생과 천동설을 포함한 당대 과학의 원리 몇 가지는 종교적 믿음과 권위가 어우러져 그 영향력이 한 층 더 강화되고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러한 믿음 가운데 일부는 성경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교회에 예속된 성직자의 권위가 더해지면서 공고해진 때도 있었다.



 

그림 2. (왼쪽) Branta leucopsis란 학명의 흰뺨기러기(barnacle goose)와 [출처: Wikipedia] (오른쪽) 페둔쿨라타목(order Pedunculata)에 속하는 갑각류인 Lepas anatifera란 학명의 조개삿갓(goose barnacle) [출처: Wikipedia]. 생김새와 계통발생의 기원이 전혀 다른 두 생명체는 한때 같은 기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로 “barnacle goose”와 “goose barnacle”을 들 수 있다. ‘barnacle’과 ‘goose’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 다른데, 전자는 한국어로 Branta leucopsis란 학명의 “흰뺨기러기”며, 후자는 페둔쿨라타목(order Pedunculata)에 속하는 갑각류인 Lepas anatifera란 학명의 “조개삿갓”이다 [11, 12] [그림 2]. 계통적 기원이 다른 두 생명체가 단어 배열만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경위는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이름의 기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나 헤로도토스의 서사시 등을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유산에서 비롯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7]. 대신, 이 분야를 연구하는 어떤 학자는 두 단어의 기원이 1) 11세기 무렵 다미엔 신부(Father Damien)라고 알려진 인물이 "조류는 인도의 실론 섬에서 그렇듯이 나무에서 만들어진다"라는 묘사와, 2)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의 경전이며 13세기경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조하르(Zohar)』에 나와 있는 "랍비 아바(Abba)가 조류가 부화하는 열매가 달린 나무를 봤다"란 문구라고 생각한다 [7] [그림 3]. 그 기원이 어떻든, “barnacle goose”와 “goose barnacle”에 관한 신화는 6~7세기 동안 전 유럽을 풍미했는데, 거기에는 [오늘날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과학적인 근거, 종교적인 믿음,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세속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그림 3. (왼쪽) 영국의 식물학자인 존 제라드(John Gerard, 1545~1611년)가 1597년에 저술한 『Herball』, 또는 『Generall Historie of Plantes』란 제목의 책에 그려진 삽화. 이 그림은 조개삿갓에서 흰뺨기러기가 태어난다는 고대의 믿음을 묘사하고 있다. 식물을 소개하는 이 책에서 조개삿갓과 흰뺨기러기기를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오른쪽) 왼쪽의 그림을 현대적으로 다시 재현해 낸 그림 [출처: Sea Rescue].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두 생명체의 계통적 기원과 외형이 엄청나게 다를지라도, 당시 사람의 눈엔 이들 두 생명체의 모습이 얼핏 비슷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림 3의 왼쪽에 나와 있는 흰뺨기러기와 그림 4의 조개삿갓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조개삿갓 껍질은 흰뺨기러기의 무늬 양식과 비슷하며, 조개의 극모(cirrhus, 棘毛)는 새의 깃털처럼 보인다. 어떤 기록자는 조개삿갓의 극모가 어린 흰뺨기러기의 물갈퀴 발가락을 닮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다시 유럽인 중에 그 누구도 흰뺨기러기의 어린 개체를 관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흰뺨기러기는 여름에 북극 인근의 툰드라 지역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며 겨울에는 유럽과 프랑스를 포함한 북반구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이기 때문이다 [11]. 따라서 성체가 새끼를 낳고, 새끼가 나중에 자라서 또 새끼를 낳는다는 당연한 상식을 체득하고 있던 사람에게 새끼의 모습이라고는 눈 씻고 둘러봐도 찾아볼 수 없었던 흰뺨기러기의 생활은 매우 이상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따라서 새가 이동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지라도, “새끼를 낳지 않는” 흰뺨기러기가 어떻게 해안 연안에 매년 주기적으로 출몰하는지 알 수 없었던 당시 유럽인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흰뺨기러기가 [당대 유럽인이 생각하기에 모양도 매우 비슷한] 이들 조개 옆에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면, 현대적 과학 지식이 전무한 사람의 눈에 흰뺨기러기는 마치 조개삿갓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림 4. 조개삿갓을 개체 하나를 확대해서 나타낸 그림. 얼핏 봤을 때, 조개삿갓 껍질은 흰뺨기러기의 무늬 양식과 비슷하며, 조개의 극모(cirrhus, 棘毛)는 새의 깃털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흰뺨기러기가 이들 조개 옆에 서 있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면, 현대적 과학 지식이 전무한 당대 사람의 눈에 흰뺨기러기는 마치 조개삿갓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출처: Arkive].



일례로, 1188년에 아일랜드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성직자이자 브레콘(Brecon)의 부주교인 웨일스(Wales)의 제럴드(Gerald of Wales 또는 라틴어로 Giraldus Cambrensis, 1146~1223년)는 아일랜드에서 조개삿갓이 엄청나게 붙어 있는 통나무 위에 흰뺨기러기가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음을 그의 여행기에 기록했다 [6]. 게다가, 제럴드 부주교는 흰뺨기러기의 비자연적인 발생이 성경에서 말하는 무원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 無原罪孕胎設)의 증거라고 믿었다 [13, 6]. 그 근거는 꽤 종교적이다. “인간의 첫 번째 탄생은 남자와 여자 없이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 아담(Adam)을 만든 것이 시작이며, 두 번째 탄생은 여자 없이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Eve)를 만든 것이며, 세 번째 탄생은 원죄를 떠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남자와 여자의 결함으로 원죄가 대물림하는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지만, 네 번째는 남자 없이 성모 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으로 그 자체로 원죄가 끊기는 대격변이다. 그런데 그 어떤 성적 결합 없이 삿갓조개에서 흰뺨기러기가 태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원죄 없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예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6] 우리의 제럴드 신부가 갑각류의 유성생식을 알았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당대의 지적 수준에서 [그것도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시대에서] 이런 식의 해석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제럴드 신부의 주장은 당대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년)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및 과학에 조예가 깊었던 가톨릭교 성인인 대(大) 알베르투스 (Saint Albertus Magnus, 1193? 또는 1206?~1280) 등의 인물에게 조롱과 비판을 받긴 했지만 [7], 그의 주장이 이후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특히, 흰뺨기러기가 조개삿갓에서 발생한다는 굳건한 믿음은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광야에서 금식하고 시험받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살리기 위하여 단식과 속죄를 하는 종교적 절기인 사순절(Lent, 四旬節)에 행해진 단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과는 달리,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사순절을 매우 엄격하게 지켰는데, 하루에 한 끼, 저녁은 먹되 채소는 가능하며, 생선과 달걀을 제외한 육류는 먹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후대에는 이러한 엄격함이 어느 정도 완화되긴 했지만, 적어도 성직자나 수도승 집단 안에서는 이러한 엄격함이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런데 흰뺨기러기가 조개삿갓에서 태어난다는 주장은 바로 이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제럴드 부주교의 주장을 계기로 당시 교황의 권위가 덜 미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성직자 사이에서는 조개삿갓에서 태어난 흰뺨기러기는 조류가 아니라는 [세속적이며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이 팽배했고, 사순절에는 돼지, 소고기, 양고기, 가금류 등을 먹지만 않으면 되므로, “흰뺨기러기는 가금류도 생선도 아니다”라는 당대의 상식 아닌 상식을 근거로 이들 지역의 성직자는 사순절에도 태연하게 육류인 흰뺨기러기를 섭취했다. 이에 격분한 교황 이노센트 3세(Pope Innocent III)는 “사순절 동안 흰뺨기러기 섭취를 금지한다”는 교황령을 1215년에 공표한 적도 있었다 [7].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흰뺨기러기의 조개삿갓 기원설”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기각되기 시작했지만, 그 가설에 대한 과학적 권위는 영국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가 설립되었어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심지어, 왕립학회의 초대 회장이었던 로버트 모레이 경(Sir Robert Moray)이 학회 공식 모임에서 “자신은 조개삿갓의 껍질 안에서 흰뺨기러기를 닮은 생명체를 발견했으며, 흰뺨기러기는 조개삿갓의 변태(metamorphosis, 變態)로 탄생한다”라고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7]. 결국, 이러한 믿음은 호기심 많은 일단의 박물학자 집단이 조개삿갓의 해부학적 구조를 세심히 밝히면서, 조개삿갓의 구조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흰뺨기러기와 별로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급격히 힘을 잃었으며, 나중에 흰뺨기러기의 계절성 이동이 자세히 연구되면서 “barnacle goose가 goose barnacle에서 태어난다”는 주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생명관 ― 반 헬몬트 그리고 슈밤머담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라틴어로 재번역되면서 서유럽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당시 그리스에 거주하고 있었던 많은 학자가 이탈리아 등지로 대거 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촉발된 14~17세기 있었던 르네상스(Renaissance)의 영향으로 유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로마 제국의 실용성과 중세라는 [그리스 문화의 처지에서 보면] 암흑기로 한동안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의 흔적이 중세의 시작을 있게 했던 비잔틴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재발견됨으로써 유럽은 중세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근대로 향하는 여정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르네상스의 영향을 실로 지대했으며, 과학도 르네상스의 은총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사고방식이 단번에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학이 [또는 과학적 관찰이] 진보와 변혁의 대표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기저에 깔린 도그마(dogma)는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때론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하지만 변화의 흐름은 알 수 없는 방향에서 감지되기 마련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학자이자, 생리학자이자 의사인 얀 밥티스타 반 헬몬트(Jan Baptista van Helmont, 1579~1644년)는 화학 분야와 관련된 많은 발견과 그리스어 chaos에서 유래한 ‘gas’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연발생”을 입증한(?) 실험을 기록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10]. “입증한”이란 단어를 썼다고 해서 혼동하진 말길 바란다. 중요한 것은 “입증했음”을 “기록”만 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의 실험노트에 기록한 방법으로 자연발생을 입증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실험 노트에 기재된 “자연발생”을 재현하는 방법은 약간 오컬트적인 분위기[라고 쓰며 사기라고 읽는]가 풍기긴 하지만, 그래도 레시피는 꽤 상세히 적어놨다. 예를 들어, 쥐는 “흙을 묻힌 천 조각에 밀알을 넣고 21일간 보관하면” 만들 수 있으며, 전갈은 “벽돌 두 장 사이에 [허브의 한 종류인] 바질(basil)을 넣고 햇빛을 쪼이면” 만들 수 있다 [10]. 어쨌거나 그의 실험 노트에 적힌 내용이며, 자신은 이 방법으로 죄와 전갈 등을 만들었다고 “실험 노트”에 적어놨다. 뭔가 냄새가 풍기긴 하지만, 이 노트 덕분에 그는 나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연발생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첫 인물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그림 5. (왼쪽) 슈밤머담의 1669년 저술인 『곤충의 자연사(Historia Insectorum Generalis 또는 The Natural History of Insects)』에 수록된 모기의 삽화. (오른쪽) 슈밤머담이 개구리 뒷다리 근육에서 신경 섬유를 추출할 때 사용한 실험 도구 [출처: Wikipedia].



자연발생설을 실험적(?)으로 지지한 반 헬몬트와는 달리, 자연발생설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람이 있었다. 17세기의 네덜란드 자연철학자인 얀 슈밤머담(Jan Swammerdam, 1637~1680년)은 곤충 해부를 통해 곤충에는 알, 애벌레, 번데기, 성체와 같은 다양한 생활 형태가 있음을 발견했으며, 그의 전문 분야는 아니었지만 동물 해부학 분야에 [특히, 실험적 기법에서]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고 알려졌다 [8] [그림 5]. 이것 이외에도 그는 해부와 현미경을 통한 관찰로 생명 현상에 관한 많은 것을 관찰했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당시까지 [기독교 성직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받아들였던 자연발생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그의 반(反) 자연발생적 입장은 그가 이룩한 과학적 관찰을 토대로 형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발생을 부정하는 그의 지론은 오로지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했는데, 자연발생설은 그에게 “임의성과 무계획성을 대표하며 신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 무신론적 의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8].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유럽의 박물학자/자연철학자 대부분이 그랬듯이 “자연을 연구하는 행위”는 “신의 위대함을 밝히는 과정”이며, 특히 그에게 과학의 목적은 경건함 그 자체였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신앙심이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이유가 되었다면, 과학을 그만둔 이유도 순전히 그의 신앙심에서 비롯했다 [8].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며 실제로도 그가 과학 연구를 그만뒀는지 의문이지만] 말년에 그는 벨기에 북부 출신의 신비주의자이자 종말론자인 앙트와네트 부르귀뇽(Antoinette Bourignon)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1675년 [공식적으로는] 연구를 그만두고 오로지 영적∙종교적 문제에 헌신했다고 알려졌다 [8, 9].


맺음말


지금까지 중세 기독교 사상에서 나타나는 생명 발생에 관한 이론과 에피소드 그리고 중세 일부 시기에 몇몇 자연철학자가 제기한 생명관에 대해 살펴봤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도 가장 우세한 이론은 “자연발생설”이었지만, 르네상스로 접어들면서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주장에는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르네상스를 지나 세상 사람들이 [전혀 혁명처럼 보이지 않는] 과학혁명의 시기라 일컫는 때를 지나면서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자연발생설이 실험적으로 어떻게 기각되는지를 살피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Augustine of Hippo. Wikipedia. [링크]
[2] 3세기 초 마니가 조로아스터교에 기독교, 불교 및 바빌로니아의 원시 신앙을 가미하여 만든 자연 종교의 하나. 선은 광명이고 악은 암흑이라는 이원설을 제창하고 채식(菜食), 불음(不淫), 단식(斷食), 정신(淨身), 예배 따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마니의 처형과 함께 페르시아에서는 박해를 받았으나, 지중해와 중국에까지 퍼져 14세기까지 번성하였다. [출처: 네이버 사전] [자세한 내용은 Wikipedia의 마니교(Manichaeism)를 참조하시오.]
[3] Lavallee L. 1989. Augustine on the Creation Days.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32: 457-464. [링크]
[4] 『De Civitate Dei contra Paganos (The City of God)』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University of Virginia Library. [링크]
[5] 『De Genesi ad litteram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Holy Cross. [링크]
[6] Giraldus Cambrensis (1188). Topographia Hiberniae. [링크]
[7] 『Diversion of a Naturalist』. 「XIV. The History of the Barnacle and the Goose」. Sir Edwin Ray Lankester. Ayer Publishing. 1915. pp. 118–119. [링크]
[8] Jan Swammerdam. Wikipedia. [링크]
[9] Antoinette Bourignon. Wikipedia. [링크]
[10] Jan Baptist van Helmont. Wikipedia. [링크]
[11] Barnacle goose. Wikipedia. [링크]
[12] Goose barnacle. Wikipedia. [링크]
[13]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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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 발생에 관한 담론(談論)은 17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묘한 변화가 일부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설명에 첨삭(添削)하거나 가벼운 반론(反論)을 제기하는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인도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관찰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자세로 임했던 똑똑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자연발생설”을 받아들였으니, 고대 그리스와 비교했을 때 철학적으로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한 고대 로마인도 별수 없었을 게다. 물론, 당시 고대 로마인 중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문헌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위키피디아(Wikipedia) “자연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에서 다루고 있는 고대 로마 제국 시기 문헌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통념(通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



 

그림 1. (왼쪽) 비트루비우스가 자신의 책 『건축론』을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주제로 1864년에 제작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390년경에 양피지(羊皮紙)로 제작된 『건축론』의 필사본(筆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며 기술자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 BC 80?~ BC 15?)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의 역작인 『건축론(de Architectura)』은 고대 로마 시대 이전까지 있었던 다양한 건축 기법을 총망라했다고 알려졌다 [17] [그림 1, 왼쪽]. 생명체 발생 이론의 변천사를 다루는 글에서 건축학의 고전을 다루는 게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제6권 제4장 제1절에는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 [그림 1, 오른쪽]. 원래대로라면 독자의 수고를 덜기 위해 영어 원문을 번역하는 게 글쓴이의 도리(?)지만, 번역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영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도 재미로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번역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필자의 실력 또한 변변치 않으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글에서 인용한 고대 로마 시대 작품은 인터넷상에 그 전문(全文)이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I shall now describe how the different sorts of buildings are placed as regards their aspects. Winter triclinia (주: 고대 로마의 3면에 눕는 안락의자가 붙은 식탁이 있는 식당) and baths are to face the winter west, because the afternoon light is wanted in them; and not less so because the setting sun casts its rays upon them, and but its heat warms the aspect towards the evening hours. Bed chambers (주: 로마의 주택의 침실) and libraries should be towards the east, for their purposes require the morning light: in libraries the books are in this aspect preserved from decay;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에서 굵은 글씨체로 표시한 “Bed chambers …… preserved from decay”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자. 여기에서 비트루비우스는 책의 부패(腐敗) 방지를 위해 “침실과 도서관은 아침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창문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지어야 한다”고 기술(記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햇볕이 잘 들어오는 건물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잘 자라지 않는다. 햇볕 이외에 건물의 환기 여부도 미생물의 증식을 사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건물 내부의 눅눅함을 지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건물 내부로 햇볕이 얼마나 잘 들어오느냐”일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사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게다가, 당시 문서 대부분이 파피루스(papyrus)나 양피지(羊皮紙) 등과 같은 썩기 쉬운 재질(才質)로 만들어졌음을 고려한다면 도서관 건립 시 이런 점이 매우 중요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남쪽과 서쪽을 향하는 건물은 습한 바람이 생성하는 벌레와 그것이 불어넣는 눅눅함(damp)으로 손상된다”고 서술한 점에서 이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습한 바람의 건물 내 유입으로 말미암은 습도 상승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벌레를 생성한다”는 생각은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당연하게 여긴 고대인의 전형적 발상이다. 게다가, 이 바람은 “벌레를 생성케 하는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책에 곰팡이가 피게 한다(make the books mouldy). 이러한 사고방식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비추어 살펴보자. 내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무조건 멍청하고 무지한 내 책임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사물이 물, 불, 바람(공기), 흙(대지)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인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천구(天球)의 움직임을 설명할 목적으로 아이테르(aither)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생명체의 발생은 오로지 4원소만으로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발생론(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제3권 제11편에 나와 있는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3].


 Animals and plants come into being in earth and in liquid because there is water in earth, and air in water, and in all air is vital heat so that in a sense all things are full of soul. Therefore living things form quickly whenever this air and vital heat are enclosed in anything. When they are so enclosed, the corporeal liquids being heated, there arises as it were a frothy bubble. …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따르면 동물과 식물은 흙(땅)과 액체(아마도 물)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흙에 물이 있고, 물에는 공기가 있으며, 공기에는 생체열(vital heat, 生體熱)이 있으므로, 모든 사물은 영혼(즉, 프네우마[pneuma])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공기’는 모든 기체를 포괄하는 단어이므로 바람은 공기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따르면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실체는 상반된 성질을 가진 4원소―흙은 냉기(冷氣)와 건조(乾燥), 물은 냉기와 습기(濕氣), 공기는 열(熱)과 습기, 불은 열과 건조―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4]. 따라서 비트루비우스가 언급한 “습한 바람”, 즉 “습한 공기” 안에는 생체열이 있으므로, 고대인의 관점에서 곰팡이 같은 생명체는 최적의 조건만 주어진다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 관점은 철학 그 자체로는 의미 있다 할지라도 과학적으로는 황당무계하다. 하지만 비트루비우스를 비롯한 고대 로마인이 알고 있는 상식은 오늘날 우리와 같지 않다. 그러니, “습한 바람이 자연적으로 벌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의 기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어



  

그림 2. 여러 가지 종류의 장어. (왼쪽) 곰치(moray eel, 곰치). 곰치도 장어의 한 종류다. (가운데) 아메리카 장어의 치어(稚魚). (오른쪽) 정원 뱀장어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유명한 박물학자를 살피기 전에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훑어보자.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에서도 소개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특히 해양동물에 관한 관찰 기록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순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몇몇 하등동물과 일부 동물에 대해서는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그의 이런 이중적 태도가 나타난 데에는 이들 동물에 대한 어떤 선입견과 아무리 꼼꼼하게 살폈다 하더라도 있을 수밖에 없는 관찰의 미진(未盡)함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룰 주인공은 바로 장어(eel)이다 [그림 2].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나와 있는 장어에 관한 설명을 살펴보자 [5].


All male fishes are supplied with milt, excepting the eel: with the eel, the male is devoid of milt, and the female of spawn. The mullet goes up from the sea to marshes and rivers; the eels, on the contrary, make their way down from the marshes and rivers to the sea.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수컷 물고기에 어백(milt, 魚白), 다시 말하면 정액(精液)이 있다면서, 장어만은 예외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수컷 장어는 정액이 없으며, 암컷 장어는 알을 낳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장어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신의 장난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 길”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에서 사는 장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무리 봐도 이해하긴 어렵고,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한 채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철학적 입장을 고려했을 때에도 갑자기 신을 우뚝 세우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장어가 땅에서 솟아나길 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6편 일부를 살펴보자 [6].


There is no doubt, then, that they proceed neither from pairing nor from an egg. Some writers, however, are of opinion that they generate their kind, because in some eels little worms are found, from which they suppose that eels are derived. But this opinion is not founded on fact. Eels are derived from the so-called 'earth's guts' that grow spontaneously in mud and in humid ground; in fact, eels have at times been seen to emerge out of such earthworms, and on other occasions have been rendered visible when the earthworms were laid open by either scraping or cutting.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장어 탄생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 발생으로 장어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우리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에서 해답을 찾았다. 위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장어가 진흙이나 축축한 땅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지구의 내장(earth’s guts)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내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곧바로 지렁이(earthworm)가 언급되는 걸로 봐선 “지구의 내장”이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環形動物)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처럼 생긴 어떤 동물에서 나타난다고 봤으며, 간혹 잘린 나뭇가지(cutting: ‘cut’의 원래 의미는 ‘자르다’이지만 ‘cutting’에는 ‘나뭇가지’란 뜻도 있다)나 어떤 물체의 부스러기(scraping: ‘scrape’은 ‘긁다’란 뜻으로 사용되지만 ‘scraping’에는 ‘부스러기’란 뜻도 있다) 등으로 땅을 파서 지렁이를 땅 바깥으로 드러내면 장어의 모습이 보였다는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목격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봤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 같은 동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을까?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어린 장어나 장어의 치어(稚魚)는 매우 가는 모양새 때문에 지렁이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면 “아, 저건 지렁이야!”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어린 장어가 지렁이와 혼동될 정도로 그렇게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가? 어린 장어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필자로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둘째, 장어는 바다나 강의 얕은 물가에 있는 모래 더미나 진흙 속 또는 바위틈에서 주로 서식한다 [18]. 지렁이는 어떨까? 지렁이의 서식지는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습기가 충분한 토양에서 산다고 알려졌다 [19]. 따라서 모양도 길쭉하니 얼추 비슷한 서로 다른 두 동물이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장어는 지렁이에서 비롯한다”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문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다.


장어의 발생에 관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잘못된 설명을 내놓은 아리스토텔레스라 할지라도, 장어의 독특한 습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숭어(mullet)는 바다에서 습지(marsh, 濕地)와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장어는 습지와 강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란 문구가 있는 걸로 봐선, 그는 장어의 이동 습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5].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장어의 회귀성(回歸性)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장어에겐 담수(淡水)에서 자라 적도 근처의 심해(深海)에서 산란하고, 부화한 치어가 담수로 다시 돌아와 산란기 전까지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 [18]. 따라서 이런 장어의 신비로운 특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대로 된 장어의 생활사를 관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장어의 발생에 관해 엉뚱한 해석을 내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대(大) 플리니우스 그리고 장어



 

그림 3. (왼쪽) 대(大) 플리니우스. 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에 제작된 플리니우스의 초상화도 실제 그의 모습은 아니며 누군가가 상상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669년에 제작된 『박물지』 제1권의 사본(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조카인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AD 61~AD 112)와 구별하기 위해 훗날 대(大) 플리니우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 AD 23~AD 79)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궁금한 게 많았던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의 명문가였던 플리니우스 씨족에서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학구적인 사람으로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다고 알려졌다. 다만, 철학적인 소양은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런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말자.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부분이니까 말이다. 여담이지만, 대 플리니우스는 서기 79년경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Pompeii)를 하루 만에 멸망의 길로 인도한 베수비오(Vesuvio) 화산 폭발 당시 미세노(Miseno) 함대 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7]. 매우 근면했다고 알려진 그답게 (그리고 로마 제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투철한 시민 정신으로 무장한 채) 그는 화산 폭발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폼페이 시민의 탈출을 열심히 돕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구조 작업 중에 화산이 뿜어낸 유독 가스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다 [7]. 또 하나 여담이지만, 당시 황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황제 티투스(Titus Flavius Caesar Vespasianus Augustus, AD 39~AD 81)도 이 엄청난 재앙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재위 2년 만에 과로로 죽었다. 그의 동생인 다음 황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Caesar Domitianus Augustus, AD 51~AD 96)가 독살로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 [8].


플리니우스는 매우 박식하고 지식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대중적 백과사전을 집필하고자 하는 욕구도 매우 강했다. 그 결과가 바로 우주론, 천문학, 지리학, 인류학, 생물학, 식물학, 광물학 등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다룬 (아마도 유럽 최초의 대중적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자연사(Historia Naturalis)』라고 할 수 있다 [9].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몇몇 주제는 적어도 당대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관점에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의 책에 나와 있는 우주론과 천문학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그 어떤 수학자나 철학자에게 자문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적 견해와도 매우 동떨어졌다. 게다가, 이 책은 플리니우스의 염원대로 “대중적이며 종합적인 대백과사전”을 지향(指向)했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넓었지만, 내용의 깊이 또한 매우 가볍고 피상적이었다 [10].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매우 많은 것을 다루었고 훗날 중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나의 관심사인 “생명 발생 이론의 변천사”에 관한 조사를 전개하는 데도 중요하다. 특히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플리니우스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장어의 생활사를 서술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덕후에겐 덕후의 즐거움이란 게 있지 않은가? 나에게 즐거운 덕질을 안겨준 대 플리니우스에게 진심으로 경의(敬意)를 표한다. 이제 플리니우스의 시점에서 장어를 바라볼 차례인데, 『박물지』 제9권 『어류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제74장 「어류의 발생(The Generation of Fishes)」을 살펴보자 [11].


Eels, again, rub themselves against rocks, upon which, the particles which they thus scrape from off their bodies come to life, such being their only means of reproduction.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과는 별개로, 같은 책 제38장에 나와 있는 장어의 생활사에 관한 묘사는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크게 다르진 않다 [12]. 하지만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어는 지렁이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떠올렸을 때, “장어는 자신의 몸을 바위에 문질러 장어가 될 입자를 몸에서 떼어낸다”는 플리니우스의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와는 구별되는 독창성이 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의 이런 해석은 근거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13]. 아리스토텔레스도 당대의 상황적 한계로 많은 그가 관찰한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있었지만, 플리니우스는 그것과 더불어 해석에서도 좀 뜬금없는 부분이 있다. 지금처럼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어에 관한 두 박물학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일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무리를 짓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플리니우스는 장어의 발생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과연 알고 있었을까?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몇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고대 로마인은 그리스 철학이 유약(幼弱)하고 퇴폐적이라고 생각했다 [20]. (물론,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등감 또한 상당했다.) 따라서 전형적인 로마 지식인 플리니우스가 직접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가 『자연사』를 집필할 때, 수많은 조수를 동원해 당시 존재했던 엄청난 양의 문헌을 조사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직접 섭렵하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그의 조수가 정리해놓은 내용을 살펴봤을 가능성도 있다 [9]. 따라서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장어의 발생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플리니우스 그리고 자연발생


장어를 포함한 일부 사례를 제외한다면 플리니우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믿고 있다. 『자연사』에서 장어의 발생을 설명하는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홍합, 가리비, 굴에 관한 그의 의견을 살펴보자 [11].


Mussels, also, and scallops are produced in the sand by 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 Those which have a harder shell, such as the murex and the purple, are formed from a viscous fluid like saliva, just as gnats are produced from liquids turned sour, and the fish called the apua, "from the foam of the sea when warm, after the fall of a shower. …… Those fish, again, which are covered with a stony coat, such as the oyster, are produced from mud in a putrid state, or else from the foam that has collected around ships which have been lying for a long time in the same position, about posts driven into the earth, and more especially around logs of wood. It has been discovered, of late years, in the oyster—Beds, that the animal discharges an impregnating liquid, which has the appearance of milk.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그림 4. (왼쪽) 홍합(mussel, 紅蛤) [출처: 위키피디아]. (가운데) 가리비(scallop)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굴(oyster) [출처: 위키피디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필자는 이 사진을 보고 “소주 한잔하면 정말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플리니우스는 홍합(mussel, 紅蛤)과 가리비(scallop)처럼 딱딱한 껍질을 가진 해양생물은 자연의 자발적 작용(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으로 모래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림 4]. 그리고 굴(oyster)은 부패한 진흙이나 한 지역에 오랫동안 정박해 있는 배(주: 이런 배는 주로 난파선이다)와 (아마도 부두 선착장을 지지하기 위해 바닷속에 박아 둔) 통나무 주변으로 모여든 거품에서 굴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인가! 플리니우스는 이 모습을 보고 이런 곳에서 굴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플리니우스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부패한 진흙, 난파선, 그리고 바닷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는 통나무가 바로 굴과 같은 어패류가 산란하며 군집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플리니우스가 장어를 비롯한 몇몇 동물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주장을 펼쳤지만, 이 단락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지지하는 견해에 서 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멸치 그리고 아테나이우스의 멸치


나우크라티스(Naucratis)의 아테나이우스(Athenaeus)는 서기 2~3세기 사이 고대 로마 제정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 출신의 수사학자이자 문법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저작 가운데 『데이프노소피스타이(Deipnosophistae)』라는 작품, 우리말로 풀어쓰면 “식탁 대화의 명인(名人)”이나 “식탁 대화의 철학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책은 꽤 유명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거나 알려진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필자도 이 책의 이름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접한 터라 실상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도 소개까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은 철학자 사이의 잡담이라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와 관련된 다양한 화제―주로 식사와 관련된 것이지만, 음악, 미술, 노래, 오락, 창녀, 사치와 관련된 내용도 다룬다―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작품 안에서 무려 거의 8백 명의 작가와 2천5백 가지의 작품이 이 책에서 언급되었다고 알려졌다 [14]. 이 가운데 여러 가지 물고기와 관련된 잡담을 주고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15].


But of the anchovies (주: 멸치류 물고기) there are many kinds, and the one which is called aphritis is not produced from roe, as Aristotle says, but from a foam which floats upon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which collects in quantities when there have been heavy rains.



그림 5. 혹시라도 멸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넣은 …… [출처: 위키피디아]



이 부분에서 화자(話者)는 “다양한 종류의 멸치류 물고기 가운데 아프라이티스(aphritis: 필자도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라 불리는 멸치류 물고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알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대신 수면을 떠다니며 폭우가 내릴 때 다량으로 모이는 거품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다 [그림 5]. 식탁에서 일어난 대화 형식을 빌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멸치가 거품에서 태어나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혹시 다른 부분에 이것과 관련된 언급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장에서만큼은 그 어떤 근거도 나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멸치의 발생을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5편을 살펴보자 [16].


The ordinary fry(주: 치어[稚魚]) is the normal issue of parent fishes: the so-called gudgeon-fry of small insignificant gudgeon-like fish that burrow under the ground. From the Phaleric fry comes the membras, from the membras the trichis, from the trichis the trichias, and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to wit from that found in the harbour of Athens, comes what is called the encrasicholus, or anchovy. There is another fry, derived from the maenis and the mullet.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저런 치어가 이런저런 물고기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하는데, 마지막 부분인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 the encrasicholus, or anchovy”에서 멸치류 물고기는 아테네 항에서 발견되는 특정 종류의 치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보기엔 물고기에서 물고기가 발생하는 게 거품에서 멸치가 발생하는 자연발생적 관점보다 훨씬 이치에 맞지만,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에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적어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부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묘사가 오늘날의 과학에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보다 말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을 살펴봤다.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이 가졌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음번에는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의 생명체 발생에 관한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de Architectura (On Architecture)』 Book VI, Chapter 4, Section 1. Marcus Vitruvius Pollio / translated by Joseph Gwilt. [링크]
[3]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On the Generation of Animals)』 Book III, Part 11. Aristoteles / translated by Arthur Platt. [링크]
[4]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50쪽.
[5]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VI. Part 14. Aristoteles / translated by D'Arcy Wentworth Thompson. [링크]
[6] Ibid. Book IV, Part 16. [링크]
[7] Gaius Plinius Secundus. Wikipedia. [링크]
[8] Titus. Wikipedia. [링크]
[9]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238~240쪽.
[10] 같은 책. 241~242쪽.
[11] 『Historia Naturalis (Natural History)』. Book IX, 『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Chapter 74, 「The Generation of Fishes」. Gaius Plinius Secundus / translated by John Bostock and Henry Thomas Riley. [링크]
[12] Ibid. Chapter 38, 「The Generation of Fishes」. [링크]
[13] Ibid. Chapter 74. See Note 20. [링크]
[14] Athenaeus. Wikipedia. [링크]
[15] 『Deipnosophistae』 Volume I, Book VII. Athenaeus of Naucratis / translated by Henry G. Bohn. p. 447. [링크]
[16]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6, Part 15. [링크]
[17] Marcus Vitruvius Pollio. Wikipedia. [링크]
[18] Eel. Wikipedia. [링크]
[19] Earthworm. Wikipedia. [링크]
[20]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375~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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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에 대한 보충으로써,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 놓은 『The TalkOrigins Archive』에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의 역사(History of Animals)』 발췌 부분이 있어서 이를 내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다.


다음은 『동물의 역사』에서 몇몇 종류의 동물이 원소(흙, 물, 공기, 불)와 질료 안에 담긴 영혼으로 직접 발생할 수 있다는 언급이 담겨 있는 문장이다.


So with animals, some spring from parent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whilst others grow spontaneously and not from kindred stock; and of these instances of spontaneous generation some come from putrefying earth or vegetable matter, as is the case with a number of insects, while others are spontaneously generated in the inside of animals out of the secretions of their several organs. ― 539a18-26

As a general rule, then, all testaceans grow by spontaneous generation in mud, differing from one anoth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material; oysters growing in slime, and cockles and the other testaceans above mentioned on sandy bottoms; and in the hollows of the rocks the ascidian and the barnacle, and common sorts, such as the limpet and the nerites. ― 547b18-22

Other insects are not derived from living parentage, but are generated spontaneously: some out of dew falling on leaves, ordinarily in spring-time, but not seldom in winter when there has been a stretch of fair weather and southerly winds; others grow in decaying mud or dung; others in timber, green or dry; some in the hair of animals; some in the flesh of animals; some in excrements: and some from excrement after it has been voided, and some from excrement yet within the living animal, like the helminthes or intestinal worms. ― 551a1-10

A creature is also found in wax long laid by, just as in wood, and it is the smallest of animalcules and is white in colour, and is designated the acari or mite. In books also other animalcules are found, some resembling the grubs found in garments, and some resembling tailless scorpions, but very small. As a general rule we may state that such animalcules are found in practically anything, both in dry things that are becoming moist and in moist things that are drying, provided they contain the conditions of life. ― 557b1-13

Some writers actually aver that mullet all grow spontaneously. In this assertion they are mistaken, for the female of the fish is found provided with spawn, and the male with milt. However, there is a species of mullet that grows spontaneously out of mud and sand. From the facts above enumerated it is quite proved that certain fishes come spontaneously into existence, not being derived from eggs or from copulation. Such fish as are neither oviparous nor viviparous arise all from one of two sources, from mud, or from sand and from decayed matter that rises thence as a scum; for instance, the so-called froth of the small fry comes out of sandy ground. This fry is incapable of growth and of propagating its kind; after living for a while it dies away and another creature takes its place, and so, with short intervals excepted, it may be said to last the whole year through. ― 569a21-569b3


그는 『동물 발생론(On the Generation of Animals)』의 제3권 11장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All those which do not bud off or 'spawn' are spontaneously generated. Now all things formed in this way, whether in earth or water, manifestly come into being in connexion with putrefaction and an admixture of rain-water. For as the sweet is separated off into the matter which is forming, the residue of the mixture takes such a form. Nothing comes into being by putrefying, but by concocting; putrefaction and the thing putrefied is only a residue of that which is concocted. For nothing comes into being out of the whole of anything, any more than in the products of art; if it did art would have nothing to do, but as it is in the one case art removes the useless material, in the other Nature does so. Animals and plants come into being in earth and in liquid because there is water in earth, and air in water, and in all air is vital heat so that in a sense all things are full of soul. Therefore living things form quickly whenever this air and vital heat are enclosed in anything. When they are so enclosed, the corporeal liquids being heated, there arises as it were a frothy bubble. Whether what is forming is to be more or less honourable in kind depends on the embracing of the psychical principle; this again depends on the medium in which the generation takes place and the material which is included.


자세한 사항은 앞에서 언급한 『The TalkOrigins Archive』의 「Spontaneous Generation and the Origin of Life」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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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론(spontaneous generation theory, 自然發生論)은 어떤 생명체가 같은 종(species, 種)의 생명체가 아니라 비(非)생명체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 수 있다. “벼룩(flea)은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구더기(maggot)는 썩은 고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것과 유사한 이론으로 이형 발생론(heterogenesis, xenogenesis 또는 unequivocal generation, 異形發生論)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생명체가 전혀 다른 생명체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촌충(tapeworm, 寸衷)은 돼지나 인간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발생론이 생명체의 비생명체 기원 가능성을 주장하고, 이형 발생론은 어떤 생명체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의 발생이 가능함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이론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지만, 두 주장 모두 오늘날 유전 법칙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형 발생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내놓은 예는 오늘날 기생-숙주 관계(parasite-host relation, 寄生宿主關係)의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부분은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19세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자연발생론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한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그의 생물학은 그의 선배 철학자의 이론과 고대부터 전해진 신화를 규합하고 확장한 작업이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 연구는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전 유럽을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 [1]. 마치, 천문학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있었다면 생물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이 있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이론은 점차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들어서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1859년 출간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과 1861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생명의 자연발생을 부정하는 유명한 실험으로 말미암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은 극히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과학 체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1, 2].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생물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명체, 특히 동물, 그 가운데에서도 해양 동물 연구에 많은 힘을 쏟아 부었다. 그의 이런 노력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동물 연구를 포함한 생명체 관련 저작은 현존하는 그의 저작 가운데 무려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 어떤 동기로, 생명체 연구에 관심을 뒀는지 불분명하다. 그의 부친이 내과 의사였기 때문에 그가 생물 연구에 관심을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4], 결정적 동기는 아마도 자신의 철학을 뒷받침할만한 실체적 근거를 찾으려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형상(形相)과 목적인(目的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예증할 어떤 증거나 뒷받침을 생명체와 그것의 일부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특히, 『동물 부분론(On the Part of Animal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물과 인간은 본질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인체 구조에 관한 지식 확장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자연이 우연한 산물이라는 관념을 물리칠 좋은 기회다”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자연과학의 목적과 정당성은 어떤 현상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으며, 자연에 의한 것이든 기술(技術)에 의한 것이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설명을 위해 네 가지 요인―(a) 사물의 질료(質料), (b) 사물의 형상(形相), (c) 사물의 운동인(運動因) 또는 작용인(作用因), 그리고 사물의 목적인(目的因)―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5]. 탁자를 예로 들어보자. 테이블은 나무와 같은 그 무언가(즉, 질료)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탁자는 특정 형태(즉, 형상)을 띠고 있다. 더불어, 탁자는 목수와 같은 기술자(즉, 운동인)가 만든다. 마지막으로, 목수가 탁자를 만들 때에는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든다(목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철학적 원리를 적용했다. 인간의 생식 작용(生植作用)을 예로 들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의 질료가 어머니로부터 제공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인간 종(species, 種)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하는 특성이다. 운동인은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의 목적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이성적 직립 동물”이 되기 위한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완전한 성인(成人)이 되는 것이다 [5]. 이것은 단지 인간의 생식작용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탄생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1) 어떤 것으로 구성되고, (2) 어떤 것의 작용 때문에 만들어지며, (3) 반드시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어떤 유기체를 구성하는 것은 질료이며, 만드는 것은 형상과 운동인(또는 작용인)이며,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그 생명체의 성장이 추구하는 목적인이다 [6].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생명체는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질료는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관이며 형상은 모든 기관을 통일된 유기적 전체로 엮어주는 원리이다. 이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영혼(pneuma, 靈魂)이며 이것은 섭생, 번식, 성장, 감각 작용, 운동 등과 같은 생명체의 기본 특징을 결정하는 제일 원인이라고 믿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어떤 종류의 영혼을 갖느냐에 따라 생명체의 기능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는 위계질서(位階秩序)로 배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은 섭생의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번식할 수 있으며, 동물은 감각의 영혼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다 [6].


인간은 여기에 이성이라는 영혼이 하나 더 추가된다. 즉, 식물이 가진 섭생의 영혼과 동물이 가진 감각의 영혼과 더불어 인간은 신이 가진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더욱 높은 수준의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영혼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생명체와 달리 상위 계층에 설 수 있게 되었다 [6, 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유기 물질의 현신(現身)인 영혼이 한낱 형상에 불과하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죽어 그 육신이 해체되면 영혼도 마찬가지로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6].


이런 상황에서 영혼을 자손에게 전하는 방법은 생명 발생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손은 부모 신체 전부에서 비롯된다”는 판게네시스(pangenesis) 이론을 비판하면서 영혼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원리를 설명했다 [8]. 그는 암수 양성의 존재가 (작용인과 결합한) 형상과 (형상인이 작용하는 대상인) 질료 사이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는데,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은 암컷이 월경할 때 발생하는 혈액으로 질료를 공급한다. 여기에 수컷의 정자가 자신의 형상을 월경의 혈액에 새기는 운동인으로 생명체가 탄생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 안에 질료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6, 9].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인식은 자연발생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생명 발생에 대한 인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생명체의 등급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형상과 질료 그리고 운동인으로 영혼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등동물은 다른 방식의 발생 과정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생물 연구 결정체인 『동물의 역사(The History of Animals)』의 제5권 1편에 나와 있는 다음 문구를 살펴보자 [1]. 아래 인용문은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것으로 번역은 필자가 임의로 한 것이다.


이제 식물과 동물의 공통적인 한 가지 속성이 있다. 몇몇 식물은 씨앗에서 발생하지만, 다른 식물은 씨앗과 비슷한 몇 가지 기본 원리(elemental principle)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후자 가운데 몇몇은 흙에서 양분을 얻지만, 다른 것은 식물학에 관한 나의 논문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다른 식물 안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동물에서도 몇몇 동물은 종류에 따라 부모에서 태어나지만, 몇몇은 동족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자연 발생의 사례 가운데 몇몇은 수많은 곤충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부패한 흙이나 식물성 물질에서 기인하지만, 다른 것은 동물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Now there is one property that animals are found to have in common with plants. For some plants are generated from the seed of plants, whilst other plants are self-generated through the formation of some elemental principle similar to a seed; and of these latter plants some derive their nutriment from the ground, whilst others grow inside other plants, as is mentioned, by the way, in my treatise on Botany. So with animals, some spring from parent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whilst others grow spontaneously and not from kindred stock; and of these instances of spontaneous generation some come from putrefying earth or vegetable matter, as is the case with a number of insects, while others are spontaneously generated in the inside of animals out of the secretions of their several organs.
― 톰프슨(D'Arcy Wentworth Thompson)의 번역의 1910년도 번역 [1]. (강조는 필자가 임의로 처리한 것임).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곤충과 같은 하등동물은 흙이나 부패한 물질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그의 책에서 언급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질료와 형상 그리고 운동인으로 비롯된 씨앗을 통한 영혼의 흐름으로 생명이 탄생한다고 봤지만, 곤충 등의 하등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인식한 점에서 매우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하등동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공기 안에 담긴 생체열(vital heat, 또는 호흡열)이 흙과 같은 어떤 질료 안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 그렇다면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전히 그의 관점에서)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의 발생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조사 방법과 관찰 대상의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체 연구를 위해 스스로 관찰을 많이 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소아시아 연안 레스보스(Lesbos) 섬에서 지냈을 때에는 해양동물을 주로 관찰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자료 수집 과정에서 제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탐험가, 농부, 어부의 보고 및 풍문에도 의존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연구를 위해 선배 철학자의 저술과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여러 가지 구전(口傳)도 많이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4, 10].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용한 자료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자신이 관찰한 사물이나 내용조차도 회의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알려졌다 [10].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회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알려졌다 [10]. 게다가 그의 관찰 대상이 주로 해양생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곤충과 같은 매우 작은 생명체를 신경 쓰기엔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평소 품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관찰한 대상 이외에 그가 소홀히 했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당대의 상식에 비추었을 때,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생각은 한 편으로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우리는 『동물의 발생론(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그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진딧물은 식물에 맺힌 이슬에서 발생하며, 파리는 썩은 고기에서 발생하고, 쥐는 더러운 건초 더미에서 발생하며, 악어는 호수 밑바닥의 썩은 통나무에서 발생한다” [1].


이런 식으로, 그가 자세히 관찰한 것과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을 포함한 존재 이외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자연발생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업적과 함께 한동안 (적어도 그의 생명체 연구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 없이 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창조 교리와 맞물려) 무려 2천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유럽 전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맺음말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발생에 관한 이론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 나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Abiogenesis. Wikipedia. [링크]
[3]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60쪽.
[4]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115~116쪽.
[5] 『그리스 과학 사상사』 148쪽.
[6]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8~119쪽.
[7] 『그리스 과학 사상사』 168쪽.
[8] 같은 책. 165쪽.
[9] 같은 책. 166쪽.
[10]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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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대략적 유추 정도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이나 고대 현생 인류 유적에서 매장(埋葬)이나 샤머니즘(shamanism)적 풍습이 자주 관찰된다. 매장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샤머니즘”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경외(敬畏)가 있었단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라면 막연할지라도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물음” 정도는 품고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지만, 근거는 없다. 물론 누군가 이런 부분에 관해 연구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하지만 고대 여러 종교의 창세신화(創世神話)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내용으로 미루어본다면 세상의 시작이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선사 시대부터 누적된 인간 사고의 산물(産物)이라 결론지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종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재미없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신이 모든 것을 이룩해 놓았으니 인간이 할 일이라곤 고작 “신에게 여쭙는 것”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 선에서 끝난다면 정말로 싱거울뿐더러 정말로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그 신은 과연 누가 창조했느냐는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그렇다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신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오로지 자연법칙으로 설명하는 것뿐인데, 시쳇말로 이것을 과학적 추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과거에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티끌 축에도 못 끼겠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추론이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실, 이런 추론의 주목적은 “세상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며 “생명의 기원” 또는 “생명의 발생”은 솔직히 말해 덤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이 유치함 그 자체이지만, 그래도 이들 대부분이 전능하신 신의 힘을 빌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1) ―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7세기 무렵 밀레투스(Miletus) 출신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B.C. 546?)는 “물이 만물의 근본 물질”이라고 주장한 탈레스(Thales, ?~?)의 제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스승과는 달리,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 第一實體)에서 비롯되었지만 물은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도 아니며, 제일 실체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은 채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주장했다 [A1]. 그는 독특하게도 “여러 세계”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마치 현대 물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 다우주 이론(multi-universe theory, 多宇宙理論)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가 언급한 “여러 세계”가 그가 알고 있는 곳 이외의 지구 위 다른 세상인지, 다른 우주의 다른 세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여러 세계”를 주장한 고대 철학자가 아낙시만드로스가 유일한지도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철학 전공도 아니며, 철학에 대해서는 전병(煎餠)이나 마찬가지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정의(正義)가 제일 실체라고 주장하면서, “사물이 정해진 대로 다시 한 번 발생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사물이 시간 순서에 따라 부정의(不正義)를 서로 상쇄하거나 서로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1]. 그가 언급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철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많은 철학자가 이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이미 알려진 다른 실체이자 요소인 불, 물, 흙, 공기 등의 요소가 서로 대립하면서 존재하는 가운데 아낙시만드로스의 “정의”는 이들을 중재하는 “중립자”의 역할에 서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그는 세계가 종교 일반에서 주장하는 대로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영원한 운동 속에서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A2]. “대립과 투쟁” 그리고 “생성과 소멸”. 언뜻 “진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고는 이러한 “진화적 관점”이 어느 정도 투영(投影)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태양의 영향을 받은 습지에서 생명체가 처음 발생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습기가 태양의 열기로 증발하듯이 생명체 또한 습한 요소에서 발생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A2, B1]. 태양으로 상징되는 불과 습지로 대변되는 물과 흙의 만남이 어떻게 해서 생명체를 빚어냈는지에 관한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본래부터 존재했던 실체인 물, 불, 흙이 한데 어우러져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체가 “땅”에서 생성되었다는 설명은 “신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전지전능보다는 그나마 합리적 모양새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아낙시만드로스만의 독창적인 생각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건만 맞으면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 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적 시각은 당대에는 일종의 상식이었으며, 이것은 19세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B1, 1]. 따라서 “신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꽤 흥미롭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고기 같은 생명체에서 인간이 비롯했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을 낳은 후보 물고기로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를 지목했다 [B1, 2]. 고대 창세신화를 비롯해 아주 먼 과거에는 “물”과 생명의 탄생을 자주 연관 지었으니 “인간이 물고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많고 많은 물고기 가운데 하필이면 활상어를 지목했을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료가 분명치 않지만 몇몇 사람은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양 생물에 관해 어느 정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A2, B1]. 특히,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46?~120?)의 『도덕론(Moralia)』 제8권에 포함된 「식탁 대화집(Table-talk)」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인간은 상어의 일종인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아낙시만드로스는 활상어를 포함한 일부 상어의 새끼가 인간처럼 탯줄을 통해 태반상 조직 또는 유사 태반 조직(pseudo-placental tissue)에 연결되어 어미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B1].


바로 여기에 아낙시만드로스 주장의 핵심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보기에 인간은 출생 후 자립하기 전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 물론, 다른 생명체도 성체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양육 기간을 비교한다면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짧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오랜 양육 기간”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고 판단했다 [A2, B2].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습기 또는 물을 머금은 습지에서 기원했다고 가정했을 때, 평소에도 하나의 완전한 독립체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생명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데 족보(族譜)도 없는 물고기가 인간을 보살폈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의 논리로 판단했을 때 유사 태반을 가진 활상어가 인간이 하나의 독립적인 종(species, 種)으로 설 수 있게 한 가장 그럴싸한 생명체다. 이것이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2) ― 아낙시메네스


밀레투스 출신 또 다른 철학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B.C. 528?)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 자신만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와는 다르게, 제일 실체는 공기(air, 空氣)이며, “영혼은 공기이고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며, 공기가 응축하면 처음에 물이 되고, 더욱 응축하면 흙이 되며, 마지막에는 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A3].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탈레스는 제일 실체가 물이며 아낙시만드로스는 제일 실체가 “정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는 그의 선배 철학자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게다가 “공기”의 양적 차이가 물질 간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단정하는데, 실제로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최대 장점은 세상 만물의 차이를 오로지 공기의 응축(凝縮) 정도에 따른 양적 차이로 설명하는 데 있다 [A3]. 공기의 양적 차이는 물질의 차이를 규정하며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물질은 소멸하여 공기로 환원되며, 공기가 다시 응축하면 새로운 물질을 형성한다. 바로 이것이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을까? 앞에서 아낙시메네스는 “영혼은 공기다”라고 주장했으며, 여기에 “공기로 이루어진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도 숨과 공기가 전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란 말도 덧붙였다 [A3, C1].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순히 “공기의 응축”으로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공기의 응축을 통한 물질의 변화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미더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낙시메네스는 여기에 흙과 물의 혼합물인 원시 육상 점액(primordial terrestrial sli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적용했으며, 이로도 모자랐는지 원시 육상 점액이 “태양의 열기”와 결합해야만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그럼에도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이 아낙시만드로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며,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과학적 추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유치한 것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B.C. 500?)가 세상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뒀다는 문헌적 기록을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들은 자연의 탐구보다는 사물의 원리에 대해 주로 관심을 쏟았던 모양이다 [B3].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는 종교적 신념과 실천으로 결속된 신비주의 집단에 가까웠다. 아니, 말 그대로 오르페우스교적 교리를 따르는 신비주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不滅)과 윤회(輪廻)를 믿었으며 특정 음식에 대한 금식 등과 같은 금기 사항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으며, 최초의 근원을 질료적 실체에서 찾은 밀레투스 학파와 달리 그들은 모든 사물의 원리를 수(number, 數)에서 찾으려고 했다 [B3].


이와는 달리, 피타고라스학파의 열렬한 비판자인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B.C. 560?~B.C. 478?)는 만물이 흙과 물로 만들어졌으며 [A4], 인간의 출현 시기는 흙의 유동 단계와 땅의 형성 사이의 전이 기간(transitional period, 轉移期間) 사이라고 주장했다 [3]. 하지만 그 역시도 태양의 영향 아래에서 어떤 조건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식물과 동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자연 발생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A4, 3].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B.C. 430?)는 그는 고대부터 막연히 인식되었던 만물의 구성 실체인 흙, 공기, 불, 물의 개념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A5]. 또한, 그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물잔에 줄을 달아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원심력을 입증하는 한 가지 사례를 발견했으며, 식물에도 암수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5]. 이런 면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오늘날의 과학자에 가깝다. 게다가, 그는 생명체의 자연 발생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자연 발생설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진화론과 비슷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자체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3].


우선 그의 철학적 면모를 한 번 들여다보자.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4원소라고 부르는) 흙, 공기, 불, 물의 각 원소는 영원히 지속하지만 각기 다른 비율로 혼합해 만물을 구성하며, 그 결과로 우리가 세계에서 두루 목격하는 변화하는 복합적 실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 원소의 상호작용에 결합을 상징하는 “사랑”과 분리를 나타내는 “다툼”이 관여하여 “우연과 필연”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 [A6]. 여기서 “우연과 필연”에 주목하자. 이것은 그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엠페도클레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견해는 오늘날 진화론과 일정 부분 공유하는 점이 있다. 특히, 적자생존과 끊임없는 변화는 두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엠페도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이 세상에 무수한 종의 생명체가 온갖 형태로 널리 퍼져 있었다. 목 없는 머리, 어깨 없는 팔, 이마 없는 눈, 서로 떨어진 팔과 다리 등등. 서로 합쳐지길 바라는 이런 기괴한 생명체는 우연히 만날 때마다 서로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셀 수 없이 많은 손을 가진 생명체, 황소의 얼굴과 인간의 몸을 가진 생명체, 남성과 여성이 결합되었으나 불임인 자웅동체(雌雄同體)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가 과거 어느 순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A6, C2]. 이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적 조합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성공적이지 못한 형태는 번식에 실패해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이었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 500?~B.C. 428?)는 아낙시메네스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아낙사고라스는 공기에는 식물의 씨앗이, 에테르(ether)에는 동물의 씨앗이 존재했다는 정도다 [3]. 더불어, 아낙사고라스에게 있어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은 정신(nous)으로, 오로지 정신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생명체가 된다. 따라서 정신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과 동물은 아무 차이가 없으며, 이들을 구분 짓는 요인은 그들의 신체적 차이일 뿐이다 [A7].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제시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이론을 살펴봤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A1]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63~64쪽.
[A2] 같은 책. 65쪽.
[A3] 같은 책. 66쪽.
[A4] 같은 책. 81쪽.
[A5] 같은 책. 100~101쪽.
[A6] 같은 책. 102쪽.
[A7] 같은 책. 111~112쪽.
[B1] 『그리스 과학사상사: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36쪽.
[B2] 같은 책. 37쪽.
[B3] 같은 책. 45~46쪽.
[C1] 『왜 하필이면 그리스에서 과학이 탄생했을까(Eureka! The Birth of Science)』 앤드류 그레고리(Andrew Gregory) 지음 / 김상락 옮김. 몸과마음. 2003년. 135~136쪽.
[C2] 같은 책. 135~136쪽.
[1] “spontaneous generation”을 한국어로는 비슷한 뜻으로 해석되는 “abiogenesis”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전자는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오늘날에는 폐기된 이론이지만, 후자는 “오늘날 생명체가 있기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생명체의 우연한 출현이 있었다”는 현대 생물학 이론이다.
[2] Anaximander. Wikipedia. [링크]
[3]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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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아시아노트 님( @noteasia )과 대화하던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긴다. 대화의 시작은 트위터 하늘타리 님( @skytary )이 작성한 아래 트윗을 누군가 리트윗(retweet)하면서 부터이다.



하늘타리 님의 멘션을 읽다보니, 맥락과는 전혀 관련없는 개드립(?) 수준의 단문이 하나 떠올라 바로 트윗에 끄적거렸고 곧바로 아시아노트 님께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몇 차례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멘델과 바인베르크가 언급되었다.



바인베르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잠깐 (정말 잠깐이다 -_-) 언급되는 그 유명한 하디-바인베르크 법칙(Hardy-Weinberg principle)을 독립적으로 발견한 독일 출신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빌헬름 바인베르크의 일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구글링을 한 결과 온통 하디-바인베르크 법칙만 나올 뿐 그의 일생을 연구한 결과물은 하나도 걸려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나의 검색 능력이 정말 후져서 못 찾았을 수도 있다 -_-;) 그런데 Wikipedia에 아래와 같은 의미심장한 문구가 떡하니 있었다. 잠시 인용해보자 [Wilhelm Weinberg]. 참고로 굵은 글씨체는 내가 임의로 처리한 것이다.


Dr. Wilhelm Weinberg (Stuttgart, December 25, 1862 – Tübingen, November 27, 1937) was a German half-Jewish physician and obstetrician-gynecologist, practicing in Stuttgart, who in a 1908 paper (Jahresheft des Vereins für vaterländische Naturkunde in Württemberg (Annals of the Society of the National Natural History in Württemberg) published in German, expressed the concept that would later come to be known as the Hardy-Weinberg principle. 

Weinberg is also credited as the first to explain the effect of ascertainment bias on observations in genetics.
Weinberg developed the principle of genetic equilibrium independently of British mathematician G.H. Hardy. He delivered an exposition of his ideas in a lecture on January 13, 1908, before the Verein für vaterländische Naturkunde in Württemberg (Society for the Natural History of the Fatherland in Württemberg), about six months before Hardy's paper was published in English. His lecture was printed later that year in the society's yearbook.
Weinberg's contributions were unrecognized in the English speaking world for more than 35 years. Curt Stern, a German scientist who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before World War II, pointed out in a brief paper in Science that Weinberg's exposition was both earlier and more comprehensive than Hardy's. [1] Before 1943, the concepts in genetic equilibrium that are known today as the Hardy-Weinberg principle had been known as "Hardy's law" or "Hardy's formula" in English language texts.
James F. Crow writes: “Why was Weinberg’s paper, published the same year as Hardy’s, neglected for 35 years? The reason, I am sure, is that he wrote in German. At the time, genetics was largely dominated by English speakers and, sadly, work in other languages was often ignored.” [2]


이 글을 읽으면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연구라도 당대 주류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결론은 .... 영어공부 열심히 합시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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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과학철학에 부쩍 관심이 생겨 책 하나 붙들고 열공(이라 쓰고 건성으로 읽는)하고 있다. 박영태 외 18인이 지은 『과학철학—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창비)이라는 책인데, 나 같은 초심자한테는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나를 완전 초심자라고는 부를 수 없지만, 과학철학과 관련된 대부분 이론은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근본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초심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근본도 없는 내가 공부한답시고 발췌한 것이다. (타이핑은 내가 했으니 100% 내가 안 썼다고 할 수도 없군.) 다만 책의 내용에 근본도 없는 내 생각을 100% 내 마음대로 덧붙여 썼으니 혹시라도 이 글에서 도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포기하시라. (그렇다면 글은 도대체 왜 쓴 거냐.)


철학자가 이르기를 과학철학은 과학의 메타이론이라고 한다. 여기서 메타이론은 “어떤 이론의 구조나 그 이론 속의 용어 및 개념 따위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이론”을 가리킨다. 내가 알고 쓴 것은 아니고, 위대하고 똑똑하신 네이버 백과사전께서 그리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렇다고 하자. 어쨌든, 메타이론인 과학철학은, 철학 일반이 이성의 토대와 원리를 분석하는 것처럼 또는 사회과학이 사회 전반을 분석하고 그 원리를 연구하는 것처럼, 과학의 토대와 원리를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반성(反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에 규범과 방향을 제시하고 과학을 선도하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호서대 디지털문화예술학부 교수인 김국태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과학철학이 과학에 “규범과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데, “과학을 선도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과학을 선도한다는 것인가? 혹시 베이컨, 데카르트 등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나 방법론을 말하는 것인가?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나오겠지. 안 나오면 이 책을 불태워 버리겠다. 어쨌든 과학철학자 가라사대, “근대 과학철학은 고대 및 중세 과학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근대 과학에 대한 반성 작업으로 출발했다”.


근대 과학은 16-18세기 무렵에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광범위한 지적 전환기 시기에서 시작했다. 사실 과학혁명이란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근대사 교수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그의 저서 『근대 과학의 탄생(The Origins of Modern Science)』(1946)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비 서양권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대 과학의 보편성에 주목해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과학혁명은 산업혁명을 본떠서 만든 신조어(?)지만, 학문적 용어로 사용될 만큼 엄밀한 내용과 정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는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라 보지만) 과학혁명이란 용어에 학문적 의미가 있으려면 근대 과학 성립에 대한 요소 분석이 필요한데, 이런 측면에서 과학혁명에 넓은 의미의 일반명사로서 학문적 보편성을 부여한 사람은 단연 토마스 쿤(Thomas Kuh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과학혁명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패러다임의 전환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고 규정하는데, 하도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도 안 난다. 조만간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나겠지?


다시 본 내용으로 돌아와서! 과학혁명이라고 해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나 1차 세계대전 후 발생한 독일 혁명처럼 (설령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시대적 대전환 또는 대격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혁명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세상 좋아졌구나” 정도? 산업혁명이야 그 자체로 생산력 향상과 시장 확대라는 실체적 현상이 수반되어 “세상 좋아졌다”란 인식도 들게 하지만, 과학혁명(혹은 과학 발전)은 기껏해야 당대 지식인 사이에서나 의미 있는 것이었다. 굳이 역사학자가 이 시기를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마치 석기시대 농업혁명과 근대 산업혁명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래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뜻하지만, 솔직히 이 시기에 어떤 급격한 단절이 있었냐 하고 반문한다면 그런 것도 아니다. 뭐 이런 쓸데 없이 물고 늘어지기는 그만 하고 과학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 나도 밑천이 자꾸 떨어져 간다.


아무튼, 소위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몇 가지 엄청난(?) 지적 대전환이 일어났는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이 자연철학자가 그 찬란한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전부 우주론/천체이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체계화된 근대 과학은 고대 및 중세 과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설명 및 설득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인에게 제공했으며, 과학(혹은 자연철학)이 과거 풀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해결했다. 물론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자기 인생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으니, 세상만사 온갖 흑역사의 아픔이라. 비꼬자고 이런 말 하는 것은 아니다. 후다닥.


프랑스 과학사가 꼬이레(A. Koyré, 1892-1964)란 인간은 근대 과학의 발생과 부흥의 역사성공한 수학적 법칙의 누적으로 본 반면, 자연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과학 발전에 무용지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잠시 꼬이레가 주장하는 과학혁명의 시기가 언제인지 살펴보자. 꼬이레는 종교 전쟁 기간이었던 1541-1648년 사이에 일어난 과학계의 급격한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당시 종교 전쟁은 영국-스페인 전쟁(1588), 독일 30년 전쟁(1618-1648), 프랑스 위그노 전쟁(1562-1598), 네덜란드 독립 전쟁 등을 들 수 있는데, 광범위한 종교 전쟁이 끝난 1964년은 갈릴레오가 죽은 지 6년이 되었고, 데카르트가 사망하기 2년 전이었으며, 당시 뉴턴은 6살이었다. 꼬이레는 그가 과학혁명이라고 설정한 시기 중에서 1543년과 1687년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시기라 평했는데, 왜냐하면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베실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가 출판되었고, 1687년에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꼬아레는 지식의 누적(특히 수학적 지식의 누적)이 근대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근대 과학이 과거에 비해 지식의 양적 증가가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의 누적이라는 양적 기준만으로 근대 과학을 평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지식은 필연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한 지식이 누적된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혹은 학문) 발전의 실체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근대 과학 진정한 의미는 지식의 양이나 우수한 설명 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을 가능케 한 새로운 사고방식에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과학(또는 학문)은 자연과 진리에 대한 일정한 관념과 방법적 규범을 토대로 하며, 나아가 사회규범, 정치상황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요인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과학의 토대와 배경을 이루는 조건을 쿤은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새로운 과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토대로 성립하며 새로운 과학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패러다임의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서로 다른 시기에 관측한 여러 가지 현상도 해석 방식이나 관점, 즉 패러다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데, 코페르니쿠스 이전과 이후의 천체 이론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근대 과학은 자연과 진리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의 혁신이라는 과정을 통해 생성 및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대 및 중세 과학과 차별되는 근대 과학만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계적 자연관, 철저한 경험적 방법, 수학적 서술 등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자연을 마치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시계처럼 일정한 원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작동되는 자동 기계로 보는 “기계적 자연관”이다. 이런 해석 방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주의자와 원자론자에 의해 먼저 전승되었다. 그러다가 16-17세기 중세를 지배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 토대를 둔 중세 과학이 그 신뢰를 상실해가면서 과학자 사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받아들인 자연철학자는 세계를 기계적 세계(Machina Mundi)로 봤으며, 아직 신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이 창조한 완벽한 세상을 기계에 빗대어 설명하려 한) 기계적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를 수학자, 기하학자 또는 건축가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과학자가 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진다. 바로 자연에 담긴 어떤 수학적 원리(그것이 기하학이든 대수든 상관없이)를 찾아내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을 어떤 실체적 원리에 따라 운행되거나 특정한 정신적 가치나 목적을 지향하는 유기체적 존재로 여겼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해놓은 방법적 지침에 따라 자연 현상을 실체적 원리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을 과학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유일신 하나님이 지배하는 중세에서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관의 권위가 위협받기 시작한 이후, 자연 탐구 기준과 대상은 바뀌었다. (물론 코페르니쿠스 이론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천체가 하루아침에 기각된 것은 아니었는데,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발상의 전환이란 측면에서는 참신했지만, 오히려 천체 현상 자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수백 년간 보완되고 지속한 권위 있는 이론보다 나은 점은 별로 없었다.) 자연철학자가 탐구해야 할 대상은 어떤 정신적 가치나 신이 정해놓은 목적이 아니라 바로 자연에 산재하는 어떤 물리적 대상(즉 정량 가능한 시간, 공간, 속도, 질량 등) 바로 그 자체였다.


데카르트에 와서 기계론적 자연관은 절정에 달한다. 특히 그의 우주론은 새로운 기계론적 사고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우주에서 물질세계의 모든 현상은 무한동질적으로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오직 충돌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물질 입자와 그것의 이합집산 결과로만 설명되며 이것은 생명체에도 그대도 적용된다. 그의 우주(또는 자연)에서 세상 만물은 오로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그 메커니즘에 대해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부품 또는 기계와 같다. 결과적으로 그의 우주에서는 중세 과학자가 생각했던 (혹은 믿었던) 어떤 관념적 원리나 가치 또는 특권적 지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데익스테르하위스(E. J. Dijksterhuis)는 근대 과학의 여정을 ‘세계상의 기계화’(Die Mechanisierung des Weltbildes)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세계상의 기계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수학적 응용, 즉 단순히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며, 기존 연구 지침이나 방법적 관습, 즉 기존 패러다임을 폐기하는 지적 전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당대 자연철학자의 새로운 과학적 연구 방법은 자연에 관한 어떤 실체적 특성이나 원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며, 경험과 실험에 의한 사실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철저히 검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뉴턴은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을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소개하는데, 자연과학이 더는 실체적 특성이나 본질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적 사실과 그것을 서술하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을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판단했을 때 근대 과학혁명은 결과적으로 성공 그 자체였으며, 새로운 과학 방식과 이론적 결과는 이루 다른 모든 과학분야의 혁신모델로 인식되었다(라고 과학철학자가 주장한다). 더불어 새로운 과학의 사고방식은 자연과학 일반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합리적 사고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 과학철학은 새로운 과학에 대한 이해와 정당화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신화적 사고로부터 논리적 사고로 변화한 인간의 사유 방식과 세계관에 대한 응답이었다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로크, 흄, 버클리, 칸트 등의 근대 철학은 바로 변화된 지적 환경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정당성을 확인하는 메타과학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사고 방법과 성과는 철학적 탐구의 핵심 대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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