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이제부터 'DK'라 부른다)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신준 교수의 『자본』(도서출판 길)(이제부터 '길판'이라 부른다)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제부터 'SS'라 부른다)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하며 이제부터 'BF'라 부른다),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하며 이제부터 'DF2'와 'DF3'로 각각 부른다)을 참조했다. 『Das Kapital』독일어판은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을 참조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김수행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비봉출판사)(이제부터 '비봉판'이라 부른다)과 마토바 아키히로(的場昭弘) 외 4인이 엮고 오석철과 이신철이 번역한 맑스사전(도서출판 b)(이제부터 'MD'라 부른다)를 참조했다. 그 외에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의 출처를 주석으로 처리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103~112쪽에 해당한다.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상품은 철·아마포·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1.1] 이는 상품의 있는 그대로의 현물형태(現物形態, Naturalform)이다. [1.2] 그러나 이런 상품체가 상품이 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사용대상이면서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한에서만이다. [1.3] 그러므로 그것은 현물형태와 가치형태(價値形態, Wertform)라는 이중형태를 갖는 한에서만 상품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상품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1.4]

1.1
(SS) Commodities come into the world in the shape of use values, articles, or goods, such as iron, linen, corn, &c.
(BF) Commodities come into the world in the form of use-values or material goods, such as iron, linen, corn, etc.
(DK) Waren kommen zur Welt in der Form von Gebrauchswerten oder Warenkörpern, als Eisen, Leinwand, Weizen usw.
이전에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원저자의 문장을 일부 떼어내어 괄호([]) 안에 멋대로 표시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수정 번역] 상품은 철·아마포·밀 등과 같은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1.2
(SS) This is their plain, homely, bodily form.
(BF) This is their plain, material goods, such as iron, linen, corn, etc.
(DK) Es ist dies ihre hausbackene Naturalform.
독일어 'hausbacken'은 영어로 'unadventagenous', 'homely' 또는 'dull'을 뜻하며, 한국어로 풀어쓰면 '대담하지 않은', '통속적인' 또는 '(책·일 등이) 단조로운'의 뜻이 있다. 길판의 "있는 그대로의"와 비봉판의 "평범한"도 나쁘지는 않지만, "단조로운"이 좀 더 나아 보인다.
[수정 번역] 그것은 상품의 단조로운 현물형태이다.
1.3
(SS) They are, however, commodities, only because they are something twofold, both objects of utility, and, at the same time, depositories of value.
(BF) However, they are only commodities because they have a dual nature, because they are at the same time objects of utility and bearers of value.
(DK) Sie sind jedoch nur Waren, weil Doppeltes, Gebrauchsgegenstände und zugleich Wertträger.
"nur"는 "Waren"을 수식하고 있으며 "sind"는 "되다"보다는 "이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길판은 "... 한에서만이다"라고 번역했는데, 'weil'은 'because'를 뜻하므로 "...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수정 번역] 그러나 이런 상품체가 단지 상품인 것은 그것이 사용대상이면서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라는 이중성(二重性) 때문이다.
1.4
(SS) They manifest themselves therefore as commodities, or have the form of commodities, only in so far as they have two forms, a physical or natural form, and a value form.
(BF) Therefore they only appear as commodities, or have the form of commodities, in so far as they possess a double form, i.e. natural form and value form.
(DK) Sie erscheinen daher nur als Waren oder besitzen nur die Form von Waren, sofern sie Doppelform besitzen, Naturalform und Wertform.
(비봉판) 그러므로 그것들은 오직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상품이라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길판 번역은 이상하다. "erscheinen daher nur als Waren"과 "besitzen nur die Form"은 "oder"(영어로 'or'를 뜻한다)라는 접속사로 대등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위와 같은 번역은 나올 수 없다. 비봉판도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번역했으며, 심지어 번역 모체인 BF와도 다르다.
[수정 번역] 그러므로 그것은 현물형태와 가치형태라는 이중형태를 갖는 한에서 단지 상품으로 나타나거나 상품의 형태를 취한다.

상품의 가치대상성(價値對象性, Wertgegenständlichkeit), 즉 가치로서의 상품은 어디에서나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퀴클리 부인과는 다르다. [2.1] [2.2] 상품체의 대상성[즉 상품체로서의 상품]은 감각적으로 분명하게 포착되는 데 반해 가치로서의 상품에는 단 한 조각의 자연소재도 들어 있지 않다. [2.3] 그래서 하나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돌리고 뒤집어보아도 그것을 가치물(價値物, Wertding)로서 포착해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품은 그것이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단위의 표현일 때에만 가치가 되며, 따라서 그 가치로서의 성격이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가치로서의 상품(가치대상성)은 오직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해진다. [2.4] 사실 우리도 상품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추적하기 위해 상품의 교환가치 또는 교환관계에서 시작하였다. [2.5] 이제 우리는 다시 이러한 가치의 현상형태로 되돌아가야만 하겠다. [2.6]

2.1
(SS) The reality of the value of commodities differs in this respect from Dame Quickly, that we don’t know "where to have it."
(BF) The objectivity of commodities as values differs from Dame Quickly in the sense that 'a man knows not where to have it'.
(DK) Die Wertgegenständlichkeit der Waren unterscheidet sich dadurch von der Wittib Hurtig, daß man nicht weiß, wo sie zu haben ist.
비봉판에서는 "상품의 가치대상성"을 "상품의 가치로서의 객관적 실재"라고 번역했는데, 길판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깔끔해 보인다. DK에는 길판의 "즉 가치로서의 상품"에 대응하는 구절이 없는데, 이는 길판에서 문장에 임의로 삽입한 구절로 보인다. 이런 부분은 길판 <일러두기>(『자본I-1』, 40-41쪽)에서 언급한 것처럼 <번역자 주>"()"로 처리했어야 했다. 길판은 "Wittib"를 "부인"으로 번역했는데 'Wittib'는 'Witwe'와 동의어로 '과부'란 뜻이다. 비봉판에서는 BF의 "Dame"을 "과부"로 번역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제1부, 3막, 3장의 내용을 읽어보면 퀴클리는 과부가 아니며 버젓이 남편이 있는 여인숙 주인이다 [링크]. 그러므로 비록 "Wittib"가 "과부"란 뜻이라 할지라도 "마담" 내지 "부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 밖에도 SS, BF 그리고 비봉판은 DK의 "wo sie zu haben ist"에 해당하는 부분을 인용구("")로 처리했다.
[재번역] 상품의 가치대상성은 어디에서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퀵클리 부인(독일어로는 후어티히 부인)과 다르다.
2.2
(SS) The value of commodities is the very opposite of the coarse materiality of their substance, not an atom of matter enters into its composition.
(BF) Not an atom of matter enters into the objectivity of commodities as values; in this it is the direct opposite of the coarsely sensuous objectivity of commodities as physical objects.
(DK) Im graden Gegenteil zur sinnlich groben Gegenständlichkeit der Warenkörper geht kein Atom Naturstoff in ihre Wertgegenständlichkeit ein.
길판의 이 문장을 지나치게 의역하거나 혹은 오역했다. 우선 "im Gegenteil zur(zu der) ..."는 영어로 "in the opposite to ..."와 같은 뜻이며, "der sinnlich groben Gegenständlichkeit der Warenkörper"는 "상품체의 감각적이고 거친 대상성"으로 번역할 수 있다. "grob"는 영어로 "coarse"를 뜻하는데, 한국어로 "거친"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길판은 "Wertgegenständlichkeit"를 "가치대상성"이라고 번역했음에도 이 문장에서는 "가치로서의 상품"으로 번역했다. 즉 번역 과정에 일관성이 없다. 또한 "[]"에 기술한 "[즉 상품체로서의 상품]"은 원문에는 없는 표현으로, 길판에서 임의로 첨부한 <번역자 주>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본I-1』의 <일러두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 처리했어야 했다. 참고로 'grade'는 'gerade'와 같은 단어로 영어로는 'straight'를 뜻한다.
[수정 번역] 상품체의 감각적이고 거친 대상성과는 정반대로 상품의 가치대상성에서는 그 어떤 원소도 자연소재를 구성하지 않는다.
2.3
(SS) If, however, we bear in mind that the value of commodities has a purely social reality, and that they acquire this reality only in so far as they are expressions or embodiments of one identical social substance, viz., human labour, it follows as a matter of course, that value can only manifest itself in the social relation of commodity to commodity.
(BF) However, let us remember that comodities possess an objective character as values only in so far as they are all expressions of an identical social substance, human labour, that their objective character as values is therefore purely social.
(DK) Erinnern wir uns jedoch, daß die Waren nur Wertgegenständlichkeit besitzen, sofern sie Ausdrücke derselben gesellschaftlichen Einheit, menschlicher Arbeit, sind, daß ihre Wertgegenständlichkeit also rein gesellschaftlich ist, so versteht sich auch von selbst, daß sie nur im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 von Ware zu Ware erscheinen kann.
"jedoch"는 "however"를 뜻하므로 "그러나"로 번역한다. 길판은 "die Waren nur Wertgegenständlichkeit besitzen"을 "그것이 ... 가치가 되며"라고 번역했는데, 길판 번역의 "가치"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Wertgegenständlichkeit"으로 "가치대상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관성 있다. "그 가치로서의 성격"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sie"로 앞에서 언급한 "Wertgegenständlichkeit"을 뜻한다.
[수정 번역] 그러나 상품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단위의 표현일 때에만 단지 가치대상성을 가지며 가치대상성 역시 순수하게 사회적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것(가치대상성)은 단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2.4
(SS) In fact we started from exchange value, or the exchange relation of commodities, in order to get at the value that lies hidden behind it.
(BF) In fact we started from exchange-value, or the exchange relation of commodities, in order to track down the value that lay hidden within it.
(DK) Wir gingen in der Tat vom Tauschwert oder Austauschverhältnis der Waren aus, um ihrem darin versteckten Wert auf die Spur zu kommen.
(비봉판) 사실 우리는 상품들의 교환가치 또는 교환관계로부터 출발해 상품 속에 숨어 잇는 가치를 찾아냈다.
굳이 "우리도"라는 번역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는"이라고 해도 된다. 덧붙여 비봉판 번역 모체인 BF와 매우 다르다.
2.5
(SS) We must now return to this form under which value first appeared to us.
(BF) We must now return to this form of appearance of value.
(DK) Wir müssen jetzt zu dieser Erscheinungsform des Wertes zurückkehren.
[수정 번역] 이제 우리는 다시 가치의 이러한 현상형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상품이 그 사용가치의 다양한 현물형태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그들 공통의 가치형태—화폐형태(貨幣形態, Geldform)—를 지니고 있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3.1] 그러나 여기에서 수행해야 할 하나의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바가 없는 것으로, 바로 이 화폐형태의 발생과정을 논증하는 것인데, 이는 곧 눈에 띄지 않는 가장 단순한 형태부터 극도로 현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가치관계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표현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3.2] 이 작업을 해냄으로써 우리는 동시에 화폐의 수수께끼도 풀게 될 것이다.

3.1
(SS) Every one knows, if he knows nothing else, that commodities have a value form common to them all, and presenting a marked contrast with the varied bodily forms of their use values. I mean their money form.
(BF) Everyone knows, if nothing else, that commodities have a common value-form which contrasts in the most striking manner with the motley natural forms of their use-values. I refer to the money-form.
(DK) Jedermann weiß, wenn er auch sonst nichts weiß, daß die Waren eine mit den bunten Naturalformen ihrer Gebrauchswerte höchst frappant kontrastierende, gemeinsame Wertform besitzen - die Geldform.
[수정 번역] 다른 것은 몰라도 상품이 그 사용가치의 다채로운 현물형태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하나의 공통된 가치형태—화폐형태(貨幣形態, Geldform)—를 지니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3.2
(SS) Here, however, a task is set us, the performance of which has never yet even been attempted by bourgeois economy, the task of tracing the genesis of this money form, of developing the expression of value implied in the value relation of commodities, from its simplest, almost imperceptible outline, to the dazzling money-form.
(BF) Now, however, we have to perform a task never even attempted by bourgeois economics. That is, we have to show the origin of this money-form, we have to trace the development of the expression of value contained in the value-relation of commodities from its simplest, almost imperceptible outline to the dazzling money-form.
(DK) Hier gilt es jedoch zu leisten, was von der bürgerlichen Ökonomie nicht einmal versucht ward, nämlich die Genesis dieser Geldform nachzuweisen, also die Entwicklung des im Wertverhältnis der Waren enthaltenen Wertausdrucks von seiner einfachsten unscheinbarsten Gestalt bis zur blendenden Geldform zu verfolgen.
(비봉판)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일찍이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수행해야 한다. 즉, 이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밝혀야 한다. 다시 말해, 상품들의 가치관계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표현의 발전을 그 가장 단순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부터 휘황찬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추적해야 한다.
길판과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고, 비봉판은 세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길판은 "Genesis"를 "발생과정"으로 번역했는데, "발생기원", "발생" 혹은 "기원"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길판은 "blendenden"을 "극도로 현란한"이라고 번역했는데, 굳이 "극도로"라는 말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Entwicklung"을 "발전과정"이라고 번역했는데, 그냥 "발전"이라고 번역해도 된다.
[수정 번역] 그러나 여기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것, 즉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논증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의 가장 단순하며 눈에 띄지 않는 형태부터 현란한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가치관계에 담긴 가치표현의 발전을 추적하는 일이다.

가장 단순한 가치관계는 명백히 한 상품이 다른 종류의 한 상품—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과 맺는 가치관계이다. [4.1] 그러므로 두 상품의 가치관계는 한 상품의 가장 단순한 가치표현을 나타내준다. [4.2]

4.1
(SS) The simplest value-relation is evidently that of one commodity to some one other commodity of a different kind.
(BF) The simplest value-relation is evidently that of one commodity to another commodity of a different kind (it does not matter which one).
(DK) Das einfachste Wertverhältnis ist offenbar das Wertverhältnis einer Ware zu einzigen verschiedenartigen Ware, gleichgültig welcher.
길판은 "gleichgültig welcher"에 해당하는 번역을 할 때 하이픈(—)을 "한 상품" 그리고 "과 맺는" 사이에 끼워 넣었는데, 딱히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수정 번역] 가장 단순한 가치관계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명백히 한 상품이 다른 종류의 한 상품과 맺는 가치관계이다.
4.2
(DK) Das Wertverhältnis zweier Waren liefert daher den einfachsten Wertausdruck für eine Ware.
[수정 번역] 그러므로 두 상품의 가치관계는 한 상품의 가장 단순한 가치표현을 나타낸다.

1.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x량의 상품 A=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또는

20엘레의 아마포는 1벌의 웃옷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1) 가치표현의 양극—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따른다. [6.1]

6.1
(SS) Its analysis, therefore, is our real difficulty.
(BF) Our real difficulty, therefore, is to analyse it.
(DK) Ihre Analyse bietet daher die eigentliche Schwierigkeit.
"eigentlich"는 영어로 "real" 또는 "actual"을 뜻한다.
[수정 번역]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여기서 우리가 예를 든 두 종류의 상품인 아마포와 웃옷은 명백히 서로 다른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7.1] 아마포는 웃옷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웃옷은 이 가치표현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전자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후자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표시되고 있다. 즉 그것은 상대적 가치형태(relative Werform)로 존재한다. [7.2] 웃옷은 등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등가형태(等價形態, Äquivalentform)로 존재한다. [7.3]

7.1
(SS) Here two different kinds of commodities (in our example the linen and the coat), evidently play two different parts.
(BF) Here two different kinds of commodities (in our example the linen and the coat) evidently play two different parts.
(DK) Es spielen hier zwei verschiedenartige Waren A und B, in unsrem Beispiel Leinwand und Rock, offenbar zwei verschiedene Rollen.
길판은 "Waren A und B"를 번역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상품 A와 상품 B를 설정하고, 여기에 아마포와 웃옷을 대입하여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를 설명하고 있다. "Waren A und B"를 번역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저자가 기술한 모든 것을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정 번역] 여기에 명백히 서로 다른 두 역할을 하는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상품 A와 B, 즉 우리 예에서는 아마포와 웃옷이 있다.
7.2
(SS) The value of the linen is represented as relative value, or appears in relative form.
(BF) The value of the first commodity is represented as relative value, in other words the commodity is in the relative form of value.
(DK) Der Wert der ersten Ware ist als relativer Wert dargestellt, oder sie befindet sich in relativer Wertform.
(비봉판) 제1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해, 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다.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oder"는 영어로 "or"를 뜻한다. "befinden sich in ..."은 영어로 "to be found in ..." 또는 "to be in ..."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가치형태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수정 번역] 전자[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표현되거나 혹은 상대적 가치형태에 존재한다.
7.3
(SS) The coat officiates as equivalent, or appears in equivalent form.
(BF) The second commodity fulfils the function of equivalent, in other word it is in the equivalent form.
(DK) Die zweite Ware funktioniert als Äquivalent oder befindet sich in Äquivalentform.
(비봉판) 제2상품은 등가(물)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은 등가형태로 있다.
비봉판에서는 "Äquivalentform"을 "등가물"로 번역했다. 그리고 바로 전의 번역비판과 마찬가지로 웃옷의 가치가 등가형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웃옷의 가치는 등가물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치관계식에서 등가형태에 놓여야 한다.
[수정 번역] 후자[웃옷]의 가치는 등가물로 작용하거나 혹은 등가형태에 존재한다.
[추가 부분 #1: 2012년 6월 11일. 구멍 님께서 지적해주신 부분] 7.3에 대한 번역이 나의 번역이 잘못되었다. 구멍 님께서 지적하신대로 번역문에서 '가치'는 빠져야 한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구멍 님께서 지적하신 세부 사항은 아래 댓글을 참조하시오.
[수정 번역 #2] "후자[웃옷]은 등가물로 작용[기능]하거나 혹은 등가형태에 존재한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의존해 있으면서 서로를 제약하는 불가분의 두 계기(Momente)이지만 동시에 동일한 가치표현의 상호배타적이고 대립적인 극단, 즉 가치표현의 양극이다. 이 양극은 가치표현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 두 개의 다른 상품으로 늘 나누어진다. [8.1] 예를 들면 아마포의 가치는 아마포로 표현될 수 없다. [8.2] 20엘레의 아마포=20엘레의 아마포라는 것은 가치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 등식은 20엘레의 아마포가 다름 아닌 20엘레의 아마포, 즉 사용대상으로서의 아마포의 일정량이라는 것만을 말해줄 뿐이다. 따라서 아마포의 가치는 오직 상대적으로만, 즉 다른 종류의 상품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다른 어떤 상품이 그것에 대해 등가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8.3] 반면 이때 등가물로 등장하는 이 다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로 함께 존재할 수 없다. [8.4] 그 상품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다른 상품의 가치표현에 재료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8.5]

8.1
(SS) The relative form and the equivalent form are two intimately connected, mutually dependent and inseparable elements of the expression of value; but, at the same time, are mutually exclusive, antagonistic extremes – i.e., poles of the same expression. They are allotted respectively to the two different commodities brought into relation by that expression.
(BF) The relative form of value and the equivalent form are two inseparable moments, which belong to and mutually condition each other; but the same time, they are mutually exclusive or opposed extremes, i.e. poles of the expression of value. They are always divided up between the different commodities brought into relation with each other by that expression.
(DK) Relative Wertform und Äquivalentform sind zueinander gehörige, sich wechselseitig bedingende, unzertrennliche Momente, aber zugleich einander ausschließende oder entgegengesetzte Extreme, d.h. Pole desselben Wertausdrucks; sie verteilen sich stets auf die verschiedenen Waren, die der Wertausdruck aufeinander bezieht.
(비봉판)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제약하는 불가분의 계기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호 배제하는 또는 상호 대립하는 극단들[즉, 가치표현의 두 극]이다. 이 두 극은 가치표현에 의해 상호관련맺는 상이한 상품들이 맡는다.
길판, 비봉판, SS, BF할 것 없이 모두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그리고 DK의 "Momente"를 SS는 "elements of the expression of value", BF는 "moments", 비봉판과 길판은 "계기"로 번역했다. 문맥상 그리고 의미상 "계기"보다는 고전역학의 "모멘트"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더불어 길판의 "서로 제약하는"은 오역인데, 과거분사형 'bedingende'의 원형인 'bedingen'은 영어로 'to necessiate', 'to cause', 또는 'to presuppose'를 뜻하기 때문이다.
[수정 번역]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필요로 하며 상호 의존적이고 불가분인 모멘트지만, 또한 상호 배타적이며 또는 배제하는 극단, 즉 동일한 가치표현의 극으로, 그것은 항상 가치표현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다른 상품으로 퍼져나간다.
8.2
(DK) Ich kann z.B. den Wert der Leinwand nicht in Leinwand ausdrücken.
[수정 번역] 예를 들면 아마포의 가치는 아마포로 표현되지 않는다.
8.3
(SS) The relative form of the value of the linen presupposes, therefore, the presence of some other commodity – here the coat – under the form of an equivalent.
(BF) The relative form of the value of the linen therefore presupposes that some other commodity confronts it in the equivalent form.
(DK) Die relative Wertform der Leinwand unterstellt daher, daß irgendeine andre Ware sich ihr gegenüber in der Äquivalentform befindet.
[수정 번역] 그러므로 아마포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어떤 다른 상품이 그것에 대해 등가형태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8.4
(DK) Andrerseits, diese andre Ware, die als Äquivalent figuriert, kann sich nicht gleichzeitig in relativer Wertform befinden.
[수정 번역] 반면 이때 등가물로 등장하는 이 다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에 함께 존재할 수 없다.
8.5
(DK) Sie liefert nur dem Wertausdruck andrer Ware das Material.
길판은 'provide'란 뜻을 가진 독일어 동사 'lieferen'을 잘못 번역했다. 물론 그렇다고 의미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수정 번역] 그것은 단지 다른 상품의 가치표현에 재료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즉 20엘레의 아마포가 1벌의 웃옷과 같은 가치라는 표현은 역시 1벌의 웃옷=20엘레의 아마포, 즉 1벌의 웃옷이 20엘레의 아마포와 같은 가치라는 역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웃옷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려면 등식을 뒤바꿔야만 한다. 또한, 그렇게 하면 이제 아마포가 웃옷 대신에 등가물이 된다. [9.1] 그러므로 동일한 상품이 동일한 가치표현에서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9.2] 이 두 형태는 오히려 양극으로 서로를 배제한다.

9.1
(SS) But, in that case, I must reverse the equation, in order to express the value of the coat relatively; and. so soon as I do that the linen becomes the equivalent instead of the coat.
(BF) But in this case I must reverse the equation, in order to express the value of the coat relatively; and, and if I do that, the linen becomes the equivalent instead of the coat.
(DK) Aber so muß ich doch die Gleichung umkehren, um den Wert des Rocks relativ ausdrücken, und sobald ich das tue, wird die Leinwand Äquivalent statt des Rockes.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으며, "anyway"를 뜻하는 "doch"를 번역하지 않았다.
[수정 번역]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웃옷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식을 뒤바꿔야만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아마포는 웃옷 대신에 등가물이 된다.
9.2
(SS) A single commodity cannot, therefore, simultaneously assume, in the same expression of value, both forms.
(BF) The same commodity cannot, therefore, simultaneously appear in both forms in the sample expression of value.
(DK) Dieselbe Ware kann also in demselben Wertausdruck nicht gleichzeitig in beiden Formen auftreten.
길판은 의역 과정 중에 오역했다. "auftreten"은 영어로 "appear"를 뜻하는 동사로 "나타나다"로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 그러므로 동일한 상품이 동일한 가치표현에서 두 가지 형태로 동시에 나타날 수 없다.

이제 어떤 한 상품이 상대적 가치형태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이에 대립되는 등가형태로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가치표현에서 차지하는 그때그때의 우연적인 위치에 달려 있다. 즉 그것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상품인지 아니면 남의 가치를 표현해주는 상품인지에 달려 있다. [10.1]

10.1
(SS) Whether, then, a commodity assumes the relative form, or the opposite equivalent form, depends entirely upon its accidental position in the expression of value – that is, upon whether it is the commodity whose value is being expressed or the commodity in which value is being expressed.
(BF) Whether a community is in the relative form or in its opposite, the equivalent form, entirely depends on its actual position in the expression value. That is, it depends on whether it is the commodity whose value is being expressed, or the commodity in which value is being expressed.
(DK) Ob eine Ware sich nun in relativer Wertform befindet oder in der entgegengesetzten Äquivalentform, hängt ausschließlich ab von ihrer jedesmaligen Stelle im Wertausdruck, d.h. davon, ob sie die Ware ist, deren Wert, oder aber die Ware, worin Wert ausgedrückt wird.
길판과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jedesmaligen"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이 부분은 영어 번역을 따르겠다.
[수정 번역] 어떤 상품이 상대적 가치형태에 존재하느냐 혹은 대립하는 등가형태에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가치표현에 있는 우연한 위치에 달려 있는데, 즉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상품인지 또는 남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상품인지에 달려 있다.

2) 상대적 가치형태


가.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표현이 두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밝혀내려면 먼저 양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가치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11.1] 사람들은 대부분 이와 반대의 길을 택하여 가치관계 속에서 두 상품의 일정량이 서로 등치되는 비율만 바라본다. [11.2] 종류가 다른 두 사물의 크기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이들을 모두 동일한 단위로 환산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단위로 표현했을 때에만 두 사물의 크기는 같은 이름의 크기, 즉 서로 비교될 수 있는 크기가 된다. 17) [11.3]

11.1
(DK) Um herauszufinden, wie der einfache Wertausdruck einer Ware im Wertverhältnis zweier Waren steckt, muß man letzteres zunächst ganz unabhängig von seiner quantitativen Seite betrachten.
"the latter"를 뜻하는 "letzteres"에 대한 번역이 빠져 있다.
[수정 번역]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표현이 두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밝혀내려면 먼저 상품의 양적인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가치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11.2
(DK) Man verfährt meist grade umgekehrt und sieht im Wertverhältnis nur die Proportion, worin bestimmte Quanta zweier Warensorten einander gleichgelten. "bestimmte Quanta zweiner Warensorten"는 "two sorts of comodities"를 뜻하는 것으로, "Warensort"는 "Waren + Sorte"의 합성어, 즉 "sorts of commodities"를 뜻한다. 따라서 길판 번역처럼 "두 상품의 일정량"이라고 번역해도 문제 없지만, 실제로는 "두 상품 종류의 일정량"으로 번역해야 한다.
11.3
SS) It is only as expressions of such a unit that they are of the same denomination, and therefore commensurable.
(BF) Only as expressions of the same unit do they have a common denominator, and are therefore commensurable magnitudes.
(DK) Nur als Ausdrücke derselben Einheit sind sie gleichnamige, daher kommensurable Größen.
여기서 마르크스는 수학적 서술법으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gleichnamige"는 "to have a common denominator" 즉, "공통분모를 가지는"으로 번역해야 한다. "kommensurable"도 영어로는 "commensurable", 한국어로는 "같은 수로 나누어 떨어지는"을 뜻한다. 그러므로 "daher kommensurable Größen"는 "같은 수로 나누어 떨어지는[약분되는] 크기"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수정 번역] 동일한 단위로 표현했을 때에만 사물의 크기는 공통분모, 즉 약분되는 크기를 가진다.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또는 20벌의 웃옷, 아니면 x벌의 웃옷, 그 어느 것이든 간에, 즉 일정량의 아마포가 얼마만큼의 웃옷과 같은 가치를 갖든 간에, 그런 비율은 언제나 그 속에 아마포와 웃옷이 동일한 단위를 통해서 가치를 표현한다는 사실과 이들이 동일한 성질을 가진 물건이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12.1] 다시 말해서 아마포=웃옷이 바로 이들 등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12.2]

12.1
(SS) Whether 20 yards of linen = 1 coat or = 20 coats or = x coats – that is, whether a given quantity of linen is worth few or many coats, every such statement implies that the linen and coats, as magnitudes of value, are expressions of the same unit, things of the same kind.
(BF) Whether 20 yards of linen = 1 coat or = 20 coats or = x coats, i.e. whether a given quantity of linen is worth few or many coats, it is always implied, whatever the proportion, that the linen and the coat, as magnitudes of value, are expressions of the same unit, things of the same nature.
(DK) Ob 20 Ellen Leinwand = 1 Rock oder = 20 oder = x Röcke, d.h., ob ein gegebenes Quantum Leinwand viele oder wenige Röcke wert ist, jede solche Proportion schließt stets ein, daß Leinwand und Röcke als Wertgrößen Ausdrücke derselben Einheit, Dinge von derselben Natur sind.
길판은 "그 어느 것이든 간에"를 중복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daß Leinwand und Röcke als Wertgrößen Ausdrücke derselben Einheit, Dinge von derselben Natur sind" 부분에 명백한 오역이 있는데, "아마포와 웃옷"(einwand und Röcke)이 "가치크기로서"(als Wertgrößen) "동일한 단위의 표현, 즉 "동일한 성질의 사물"(Ausdrücke derselben Einheit)과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야 한다. 덧붙여 길판은 "Ding"을 어떤 때는 "사물", 어떤 때는 "물건" 그리고 어떤 때는 "존재"라고 번역하는데, 일관성이 필요한 듯 하다.
[수정 번역]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또는 20벌의 웃옷, 아니면 x벌의 웃옷, 즉 일정량의 아마포가 얼마만큼의 웃옷과 같은 가치를 갖든 간에, 그런 비율은 모두 아마포와 웃옷이 가치크기로서 동일한 단위의 표현, 즉 동일한 성질의 사물이라는 사실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12.2
(DK) Leinwand = Rock ist die Grundlage der Gleichung.
이 문장에 "다시 말해서"를 뜻하는 구절은 없다. 길판에서 임의로 삽입한 구문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등치된 이들 두 상품이 똑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아마포의 가치만이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포가 웃옷과의 관계를 자신의 ‘등가물’로, 즉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13.1] 이 관계에서 웃옷은 가치의 존재형태, 즉 가치물(價値物, Wertding)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웃옷은 이러한 가치물로서만 아마포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13.2] 한편, 아마포는 여기에서 자신의 가치존재(價値存在, Wertsein)를 전면에 드러내고 독자적인 가치표현을 갖게 되는데, 이는 아마포가 오로지 가치라는 측면에서만 웃옷과의 관계를 등가의 것으로, 즉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13.3] 화학의 예를 들어보면 부티르산(Buttersäure)은 포름산프로필(Propylformat)과 다른 물체이다. 그러나 이 둘은 똑같은 화학적 요소인 탄소(C)·수소(H)·산소(O)로 구성되어 있고 또 동일한 구성비율 C4H8O2로 되어 있다. [13.4] 이제 부티르산을 포름산프로필과 등치시킨다면 이 관계에서 첫째, 포름산프로필은 오직 C4H8O2라는 존재형태로만 간주되고, 둘째, 부티르산 역시 C4H8O2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포름산프로필을 부티르산과 등치시키게 되면 부티르산의 화학적 요소는 물체적 형태와 구별되어 표현되는 셈이다. [13.5]

13.1
(DK) Durch ihre Beziehung auf den Rock als ihr "Äquivalent" oder mit ihr "Austauschbares".
[수정 번역] 자신[아마포]의 "등가물"로서 또는 자신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웃옷과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13.2
(SS) In this relation the coat is the mode of existence of value, is value embodied, for only as such is it the same as the linen.
(BF) In this relation the coat counts as the form of existence of value, as the material embodiment of value, for only as such is it the same as the linen.
(DK) In diesem Verhältnis gilt der Rock als Existenzform von Wert, als Wertding, denn nur als solches ist er dasselbe wie die Leinwand.
(비봉판) 이 관계에서 저고리는 가치의 존재형태[즉, 가치의 물적 형상]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저고리는 오직 그러한 것으로서만 아마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길판과 비봉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비봉판은 "Wertding"을 '"물적 형상"으로 번역했다. 길판 번역이 나아 보인다.
[수정 번역] 이 관계에서 웃옷은 가치의 존재형태, 즉 가치물(價値物, Wertding)로 간주되는데, 웃옷은 그런 가치물로서만 아마포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13.3
(SS) On the other hand, the linen’s own value comes to the front, receives independent expression, for it is only as being value that it is comparable with the coat as a thing of equal value, or exchangeable with the coat.
(BF) On the other hand, the linen's own existence as value comes into view or receives an independent expression, for it is only as value that it can be related to the coat as being equal in value to it, or exchangeable with it.
(DK) Andrerseits kommt das eigne Wertsein der Leinwand zum Vorschein oder erhält einen selbständigen Ausdruck, denn nur als Wert ist sie auf den Rock als Gleichwertiges oder mit ihr Austauschbares bezüglich.
(비봉판) 다른 한편으로, 이 관계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로서의 존재가 독립적인 표현을 얻는다. 왜냐하면, 오직 가치로서만 아마포는 저고리[등가이자 자기와 교환될 수 있는 물건]와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andrerseits"는 "andererseits" (=on the other hand)와 같은 뜻이다. 비봉판은 "Wertsein"을 "가치로서의 존재"라고 번역했는데, 길판 번역이 나아 보인다. "zum Vorschein kommen"는 영어로 "to appear"를 뜻한다. "auf ... bezüglich"는 영어로 "relating to ..."를 뜻한다.
[수정 번역] 한편, (여기에서) 아마포 자신의 가치존재가 나타나거나 또는 독자적인 표현을 갖는데, 오직 가치로서 그것이 자신의 등가물(Gleichwertiges) 혹은 교환물(Austauschbares)인 웃옷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13.4
(DK) Beide bestehn jedoch aus denselben chemischen Substanzen - Kohlenstoff (C), Wasserstoff (H) und Sauerstoff (O), und zwar in gleicher prozentiger Zusammensetzung, nämlich C4H8O2
[수정 번역] 그러나 이 둘은 똑같은 화학적 요소인 탄소(C)·수소(H)·산소(O)로 구성되어 있고 또 동일한 구성비율, 즉 C4H8O2로 되어 있다.
13.5
(DK) Durch die Gleichsetzung des Propylformats mit der Buttersäure wäre also ihre chemische Substanz im Unterschied von ihrer Körperform ausgedrückt.
길판은 "Körperform"을 "물체적 형태"로, 비봉판은 "물적 형태"로 번역했다. 비봉판의 번역이 나아 보인다.

만일 우리가 모든 상품이 가치의 측면에서는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결물이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분석은 상품을 추상적 가치(Wertabstraktion)로 환원시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상품에 대해 그 현물형태와는 다른 어떤 가치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14.1] 그러나 한 상품과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상품의 가치성격은 다른 상품과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 드러나게 된다.

14.1
(SS) If we say that, as values, commodities are mere congelations of human labour, we reduce them by our analysis, it is true, to the abstraction, value; but we ascribe to this value no form apart from their bodily form. It is otherwise in the value relation of one commodity to another.
(BF) If we say that, as values, commodities are simply congealed quantities of human labour, our analysis reduced them, it is true, to the level of abstract value, but does not give them a form of value distinct from their natural forms.
(DK) Sagen wir: als Werte sind die Waren bloße Gallerten menschlicher Arbeit, so reduziert unsre Analyse dieselben auf die Wertabstraktion, gibt ihnen aber keine von ihren Naturalformen verschiedne Wertform.
길판은 "bloße"를 "단순한"으로 번역했는데, "단지"가 옳은 번역이다. 비봉판은 "Gallerten"을 "응고물"이라고 번역했는데, 길판의 "응결물"이 나아 보인다.
[수정 번역] 만일 우리가 가치로서 상품이 단지 인간노동의 응결물이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분석은 상품을 추상적 가치(Wertabstraktion)로 환원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웃옷이 가치물로서 아마포와 등치되면 웃옷 속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도 아마포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과 등치된다. 사실 웃옷을 만드는 재단노동은 아마포를 만드는 방직노동과 서로 다른 구체적 노동이다. 그러나 방직노동과 등치됨으로써 재단노동은 두 가지 노동 모두에서 사실상 같은 성질, 즉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의 성질로 환원된다. 이런 우회적인 경로를 거치면 방직노동 역시 그것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한, 재단노동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것, 즉 추상적 인간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의 독특한 성격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상품을 등가로 표현할 때에만 드러난다. 왜냐하면, 이런 등가적 표현만이 종류가 다른 갖가지 상품 속에 포함된 여러 종류의 노동을 사실상 그들의 공통물인 인간노동 일반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17a) [15.1]

15.1
(SS) It is the expression of equivalence between different sorts of commodities that alone brings into relief the specific character of value-creating labour, and this it does by actually reducing the different varieties of labour embodied in the different kinds of commodities to their common quality of human labour in the abstract.
(BF) It is the only expression of equivalence between different sorts of commodities which brings to view the specific character of value-creating labour, by actually reducing the different kinds of labour embedded in the different kinds of commodity to their common quality of being human labour in general.
(DK) Nur der Äquivalenzausdruck verschiedenartiger Waren bringt den spezifischen Charakter der wertbildenden Arbeit zum Vorschein, indem er die in den verschiedenartigen Waren steckenden, verschiedenartigen Arbeiten tatsächlich auf ihr Gemeinsames reduziert, auf menschliche Arbeit überhaupt.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zum Vorschein bringen"은 "to produce"를 뜻한다. "Äquivalenzausdruck"를 길판은 "등가로 표현"으로, 비봉판은 "등가의 표현"으로 번역했는데, 그냥 "등가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위 DK 문장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수정 번역] 오직 서로 다른 상품의 등가 표현만이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의 독특한 성격을 낳는데, 그것이 상이한 상품에 담긴 상이한 노동을 사실상 그들의 공통물인 인간노동 일반으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포의 가치를 이루는 노동의 특수한 성격에 대한 얘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16.1] 유동적인 상태에 있는 인간의 노동력, 즉 인간노동은 가치를 형성하긴 하지만 가치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응결된 상태, 즉 대상적 형태를 띠었을 때만 가치가 된다. 아마포의 가치를 인간노동의 응결물로서 표현하려면, 그것은 아마포 자체와는 물적으로 다르면서도 동시에 아마포와 그 밖의 모든 상품에 공통된 어떤 ‘대상성’(Gegenständlichkeit)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다.

16.1
(DK) Es genügt indes nicht, den spezifische Charakter der Arbeit auszudrücken, woraus der Wert der Leinwand besteht.
[수정 번역] 그런데 아마포의 가치를 이루는 노동의 특수한 성격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웃옷은 그것이 가치이기 때문에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아마포와 질적으로 동일한 [즉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으로 간주된다. [17.1] 그러므로 여기에서 웃옷은 가치의 모습을 드러내는 물적 존재[즉 가치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적 존재의 역할을 한다. [17.2] 그런데 웃옷이라는 상품체는 단지 하나의 사용가치일 뿐이다. [17.3] 1벌의 웃옷은 임의의 아마포 한 조각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가치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17.4] 이것은 웃옷이 아마포와의 가치관계 속에 있을 때가 가치관계 속에 있지 않을 때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치 사람들이 화려한 제복을 입었을 때가 그것을 입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17.1
(SS) When occupying the position of equivalent in the equation of value, the coat ranks qualitatively as the equal of the linen, as something of the same kind, because it is value.
(BF) When it is in the value-relation with the linen, the coat counts qualitatively as the equal of the linen, it counts as a thing of the same nature, because it is a value.
(DK) Im Wertverhältnis der Leinwand gilt der Rock als ihr qualitativ Gleiches, als Ding von derselben Natur, weil er ein Wert ist.
[수정 번역] 웃옷은 가치이기 때문에,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질적으로 동일한 것, 즉 같은 성질의 것으로 간주된다.
17.2
(SS) In this position it is a thing in which we see nothing but value, or whose palpable bodily form represents value.
(BF) Here it is therefore a thing in which value is manifested, or which represents value in its tangible natural form.
(DK) Er gilt hier daher als ein Ding, worin Wert erscheint oder welches in seiner handgreiflichen Naturalform Wert darstellt.
길판은 여기에서 "Ding"을 "물적 존재"로 번역했다. 그리고 "welches in seiner handgreiflichen Naturalform Wert darstellt"에 해당하는 번역을 잘못했다. 이 구절은 "ein Ding"을 수식하며 "ein Ding"은 "welches ..."라는 관계사절의 주어가 된다.
[수정 번역] 그러므로 여기에서 웃옷은 가치가 드러나는, 즉 가치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물형태로 표현하는 물적 존재로서 간주된다.
17.3
(DK) Nun ist zwar der Rock, der Körper der Rockware, ein bloßer Gebrauchswert.
길판은 "... der Rock, der Körper der Rockware ..."를 단순히 "웃옷이라는 상품체"로 번역했다.
[수정 번역] 그런데 웃옷, 즉 웃옷이라는 상품체는 단지 하나의 사용가치일 뿐이다.
17.4
(SS) A coat as such no more tells us it is value, than does the first piece of linen we take hold of.
(BF) A coat as such no more expresses value than does the first piece of linen we come across.
(DK) Ein Rock drückt ebensowenig Wert aus als das erste beste Stück Leinwand.
(비봉판) 저고리 그 자체가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임의의 아마포 한 조각이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독일어 구문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게 왜 이렇게 해석돼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웃옷의 생산에서는 실제로 인간의 노동력이 재단노동의 형태로 지출되었다. 따라서 웃옷 속에는 인간의 노동이 쌓여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웃옷은 ‘가치의 담지자’(Träger von Wert)이다. 물론 웃옷의 이러한 속성은 그것이 아무리 닳아서 해어진다 하더라도 실밥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18.1] 아마포와의 가치관계에서 웃옷은 다만 이런 측면으로만, 즉 물화(物化)된 가치, 다시 말해 가치체(價値體)로서만 간주된다. 단추를 채운 웃옷의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웃옷 속에서 동족으로서의 아름다운 가치의 혼을 알아차린다. [18.2] 그러나 웃옷이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려면 아마포의 가치가 웃옷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3] 비유하자면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왕으로 모시려면 A에게서 왕은 B라는 육체적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그에게서 왕이란 왕이 바뀔 때마다 얼굴 모양, 머리카락 등이 함께 바뀌어야만 한다. [18.4]

18.1
(SS) In this aspect the coat is a depository of value, but though worn to a thread, it does not let this fact show through.
(BF) From this point of view, the coat is a 'bearer of value', although this property never shows through, even when the coar is at its most threadbare.
(DK) Nach dieser Seite hin ist der Rock "Träger von Wert", obgleich diese seine Eigenschaft selbst durch seine größte Fadenscheinigkeit nicht durchblickt.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수정 번역] 이런 측면에서 웃옷은 ‘가치의 담지자’(Träger von Wert)이지만, 웃옷의 이러한 속성은 그것이 아무리 닳아서 해어진다 하더라도 실밥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18.2
(SS) Sonnenschein판에는 이 문장에 해당하는 번역이 없다.
(BF) Despite its buttoned-up appearance, the linen recognizes in it a splendid kindred soul, the soul of value.
(DK) Trotz seiner zugeknöpften Erscheinung hat die Leinwand in ihm die stammverwandte schöne Wertseele erkannt.
(비봉판) 저고리가 단추를 채우고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속에 있는 아름다운 동류의식[가치라는 동류의식]을 느낀다.
길판은 "die stammverwandte schöne Wertseele"를 "동족으로서의 아름다운 가치의 혼"이라고 번역했지만, 비봉판은 "아름다운 동류의식[가치라는 동류의식]"으로 번역했다. "동류의식이라는 아름다운 가치 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수정 번역] 단추를 채운 웃옷의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아마포는 그 안에서 동류의식이라는 아름다운 가치 혼을 알아채버린다.
18.3
(SS) Sonnenschein판에는 이 문장에 해당하는 번역이 없다.
(BF) Nevertheless, the coat cannot represent value towards the linen unless value, for the latter, simultaneously assumes the form of a coat.
(DK) Der Rock kann ihr gegenüber jedoch nicht Wert darstellen, ohne daß für sie gleichzeitig der Wert die Form eines Rockes annimmt.
[수정 번역] 그러나 웃옷이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려면 아마포의 가치가 그것에 대해 즉시 웃옷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18.4
(SS) A, for instance, cannot be “your majesty” to B, unless at the same time majesty in B’s eyes assumes the bodily form of A, and, what is more, with every new father of the people, changes its features, hair, and many other things besides.
(BF) An individual, A, for instance, cannot be 'your majesty' to another individual, B, unless majesty in B's eyes assumes the physical shape of A, and, moreover, changes facial features, hair and many other things, with every new 'father of his people'.
(DK) So kann sich das Individuum A nicht zum Individuum B als einer Majestät verhalten, ohne daß für A die Majestät zugleich die Leibesgestalt von B annimmt und daher Gesichtszüge, Haare und manches andre noch mit dem jedesmaligen Landesvater wechselt.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수정 번역] 그러므로,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왕으로 모시려면 A에게 왕은 B라는 육체적 형태를 취해야 하므로, 얼굴 모양과 머리카락 등도 매번 왕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웃옷이 아마포의 등가를 이루는 가치관계(價値關係)에서 웃옷의 형태는 가치형태로 간주된다. [19.1] 상품 아마포의 가치가 상품 웃옷의 물체로 [즉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것이다. [19.2] 사용가치로서의 아마포는 ‘웃옷과 같은 것’, 따라서 웃옷과 똑같은 것으로 보인다. [19.3] 그리하여 아마포는 자신의 현물형태와는 다른 가치형태를 획득한다. 아마포의 가치존재는 아마포와 웃옷의 동질성에 따라 나타나는데, 이는 마치 기독교도의 양과 같은 성질이 그와 하느님의 어린 양(예수—옮긴이)과의 동질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과 같다.

19.1
(DK) Im Wertverhältnis, worin der Rock das Äquivalent der Leinwand bildet, gilt also die Rockform als Wertform.
DK 문장에는 "그리하여"로 해석할만한 독일어 단어가 없다.
19.2
(SS) The value of the commodity linen is expressed by the bodily form of the commodity coat, the value of one by the use value of the other.
(BF) The value of the commodity linen is therefore expressed by the physical body of the commodity coat, the value of one by the use-value of the other.
(DK) Der Wert der Ware Leinwand wird daher ausgedrückt im Körper der Ware Rock, der Wert einer Ware im Gebrauchswert der andren.
길판은 "daher"를 해석하지 않았는데, 사실 바로 앞 문장의 "그리하여"가 이 문장에 있어야 한다.
[수정 번역] 그리하여 상품 아마포의 가치가 상품 웃옷의 물체로, 즉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19.3
(SS) As a use value, the linen is something palpably different from the coat; as value, it is the same as the coat, and now has the appearance of a coat.
(BF) As a use-value, the linen is something palpably different from the coat; as value, it is identical with the coat, and therefore looks like the coat.
(DK) Als Gebrauchswert ist die Leinwand ein vom Rock sinnlich verschiednes Ding, als Wert ist sie "Rockgleiches" und sieht daher aus wie ein Rock.
길판의 번역은 이상하다. 문맥을 놓고 따져봤을 때, "sinnlich verschiednes Ding,"와 "als Wert ist" 사이에서 문장을 끊어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 사용가치로서 아마포는 웃옷과 감각적으로 구별되는 물건이지만, 가치로서 아마포는 '웃옷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은 마치 웃옷처럼 보인다.

앞서 상품가치의 분석에서 얘기된 모든 것이 이제는 아마포 자신에 의해서 그것과 다른 상품, 즉 웃옷과의 관계를 통해서 얘기되고 있다. [20.1] 아마포는 단지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인 상품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인간노동이라는 추상적인 성질의 노동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아마포는 웃옷이 자신과 같은 것으로서 가치라는 측면에서 자신과 똑같은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20.2] 자신의 숭고한 가치대상성은 자신의 뻣뻣한 몸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아마포는 자신의 가치가 웃옷의 모습을 띠고 있으며 가치물로서 자신은 웃옷과 쌍둥이처럼 똑같다고 말한다. 덧붙여 얘기한다면, 상품의 언어에는 히브리어 말고도 비교도 쓸 만한 여러 방언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 ‘Wertsein’(가치존재)이라는 말은, 라틴어계의 동사 ‘valere’, ‘valer’, ‘valoir’ 따위보다는 못하지만, 상품 B를 상품 A와 등치시키는 일 자체가 상품 A 자신의 가치표현이라는 점을 적절히 표현해준다. 파리의 가치는 미사 한 번의 가치와 같다(Paris vaut bien une messe)! [20.3] [20.4]

20.1
(SS) We see, then, all that our analysis of the value of commodities has already told us, is told us by the linen itself, so soon as it comes into communication with another commodity, the coat.
(BF) We see, then, that everything our analysis of the value of commodities told us is repeated by the linen itself, as soon as it enters into association with another commodity, the coat.
(DK) Man sieht, alles, was uns die Analyse des Warenwerts vorher sagte, sagt die Leinwand selbst, sobald sie in Umgang mit andrer Ware, dem Rock, tritt.
길판은 "as soon as"에 해당하는 "sobald"를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수정 번역] 주지하다시피, 이전에 상품가치의 분석에서 얘기된 모든 것을 아마포 자신이 다른 상품, 즉 웃옷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언급하고 있다.
20.2
(SS) In order to tell us that its own value is created by labour in its abstract character of human labour, it says that the coat, in so far as it is worth as much as the linen, and therefore is value, consists of the same labour as the linen.
(BF) In order to tell us that labour creates its own value in its abstract quality of being human labour, it says that the coat, in so far as it counts as its equal, i.e. is value, consists of the same labour as it does itself.
(DK) Um zu sagen, daß die Arbeit in der abstrakten Eigenschaft menschlicher Arbeit ihren eignen Wert bildet, sagt sie, daß der Rock, soweit er ihr gleichgilt, also Wert ist, aus derselben Arbeit besteht wie die Leinwand.
길판은 영어로 "in so far as"에 해당하는 독일어 "soweit"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리고 "die Arbeit in der abstrakten Eigenschaft menschlicher Arbeit"는 "인간노동의 추상적 성질에서 노동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 인간노동의 추상적 성질에서 노동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형성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아마포는 웃옷이 동등하다고 간주되는 한에서, 즉 가치일 경우에만 그것은 자신과 동일한 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20.3
(SS) The German “Wertsein,” to be worth, for instance, expresses in a less striking manner than the Romance verbs “valere,” “valer,” “valoir,” that the equating of commodity B to commodity A, is commodity A’s own mode of expressing its value.
(BF) The German word 'Werstein' (to be worth), for instance, brings out less strikingly than the Romance ver, 'valere', 'valer', 'valoir', that equating of commodity B with commodity A is the expression of value proper to commodity A.
(DK) Das deutsche "Wertsein" drückt z.B. minder schlagend aus als das romanische Zeitwort valere, valer, valoir, daß Gleichsetzung der Ware B mit der Ware der eigne Wertausdruck der Ware A ist.
(비봉판) 예를 들어, 상품 B를 상품 A에 등치하는 것이 상품 A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타냄에 있어 독일어의 'Wertsein'(가치가 있다)은 라틴어 계통의 동사 'Valere', Valer', 'Valoir'보다 적절하지 못하다.
길판은 이 부분을 오역했다. "daß Gleichsetzung ... der Ware A ist"는 "das romanische Zeitwort valere, valer, valoir"를 수식하는 구절이다. 그리고 "drückt ... minder schlagend aus als ~"는 "~보다 덜 와닿게 표현한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즉, 마르크스는 이 문장에서 ‘Wertsein’이 상품어로서 앞에서 나열한 라틴어계 동사보다 그다지 좋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비봉판이 길판보다 제대로 된 번역을 했다.
[수정 번역] 예를 들어 독일어 ‘Wertsein’(가치존재)는 상품 B를 상품 A의 특정 가치표현에 등치시킨다는 뜻의 라틴어계 동사 ‘valere’, ‘valer’, ‘valoir’보다는 덜 와닿게 표현한다.
20.4
MEW 주석 23번을 보면, 이 말은 1593년 앙리 4세가 국가정책적인 이익을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어떤 맥락에서 이 문장이 인용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가 된다. 바꾸어 말해서 상품 B의 몸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이 된다. 18) [21.1] 상품 A는 상품 B와의 관계를 가치체로 [즉 인간노동의 물상화(物象化, Materiatur)로] 설정함으로써 사용가치 B를 상품 A 자신의 가치표현의 재료로 삼는다. [21.2] 따라서 사용가치로서의 상품 B에 표현되어 있는 상품 A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형태를 취한다.

21.1
(DK) Vermittelst des Wertverhältnisses wird also die Naturalform der Ware B zur Wertform der Ware A oder der Körper der Ware B zum Wertspiegel der Ware A.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수정 번역] 그리하여 이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가 되며, 또는 상품 B의 몸체는 상품 A의 가치의 거울이 된다.
21.2
(SS) By putting itself in relation with commodity B, as value in propriâ personâ, as the matter of which human labour is made up, the commodity A converts the value in use, B, into the substance in which to express its, A’s, own value.
(BF) Commodity A, then in entering into a relation with commodity B as an object of value, as a materialization of human labour, makes the use-value B into the material through which its own value is expressed.
(DK) Indem sich die Ware A auf die Ware B als Wertkörper bezieht, als Materiatur menschlicher Arbeit, macht sie den Gebrauchswert B zum Material ihres eignen Wertausdrucks.
길판은 "Materiatur"를 "물화"로 번역했는데, 여기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가 "material"이므로 비봉판의 번역 "체현물"이 타당하다고 본다.
[수정 번역] 상품 A는 상품 B와의 관계를 가치체, 즉 체현물(Materiatur)로 놓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표현의 재료로 삼는다.

나. 상대적 가치형태의 양적 규정성


가치를 표현하는 상품은 모두 15부셸의 밀, 100파운드의 커피 등과 같이 일정한 양의 사용대상들이다. 이 일정한 양의 상품들은 일정량의 인간노동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가치형태는 가치 일반뿐만 아니라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 즉 가치크기도 표현해야만 한다. 따라서 상품 B에 대한 상품 A의 가치관계, 즉 웃옷에 대한 아마포의 가치관계에서 웃옷은 가치체 일반으로서 아마포와 질적으로 등치될 뿐만 아니라 일정량의 아마포[즉 예를 들어 20엘레의 아마포]는 일정량의 가치체나 등가물[즉 예를 들어 1벌의 웃옷]과도 등치된다. [22.1]

22.1
(DK) Im Wertverhältnis der Ware A zur Ware B, der Leinwand zum Rocke, wird daher die Warenart Rock nicht nur als Wertkörper überhaupt der Leinwand qualitativ gleichgesetzt, sondern einem bestimmten Leinwandquantum, z.B. 20 Ellen Leinwand, ein bestimmtes Quantum des Wertkörpers oder Äquivalents, z.B. 1 Rock.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지만, 길판은 "상품 종류"라는 뜻의 "Warenart"를 번역하지 않았다.
[수정 번역] 상품 B에 대한 상품 A의 가치관계, 즉 웃옷에 대한 아마포의 가치관계에서 상품종류인 웃옷은 가치체 일반으로서 아마포와 질적으로 등치될 뿐만 아니라 일정량의 아마포, 예를 들어 20 엘레의 아마포는 일정량의 가치체나 등가물, 예를 들면 1벌의 웃옷과도 등치된다.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또는 20엘레의 아마포는 웃옷 1벌의 가치가 있다’라는 등식은 웃옷 1벌에 아마포 20엘레와 동일한 양의 가치실체가 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두 상품 양이 같은 양의 노동[또는 같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23.1] 그러나 20엘레의 아마포나 1벌의 웃옷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은 방직노동이나 재단노동의 생산력이 변동함에 따라 변한다. 이제 그러한 변동이 가치크기의 상대적 표현에 끼치는 영향을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23.1
(DK) Die Gleichung: "20 Ellen Leinwand = 1 Rock oder: 20 Ellen Leinwand sind 1 Rock wert" setzt voraus, daß in 1 Rock gerade so viel Wertsubstanz steckt als in 20 Ellen Leinwand, daß beide Warenquanta also gleich viel Arbeit kosten oder gleich große Arbeitszeit.
원문에 없는 괄호([])를 번역과정에서 번역자가 임의로 사용했다.

① 아마포의 가치는 변동하는데 19) 웃옷의 가치는 불변인 경우. 예를 들어 토지의 비옥도가 감소하여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면 아마포의 가치 역시 2배로 커질 것이다. 그러면 이제 1벌의 웃옷에는 20엘레의 아마포에 비해 노동시간이 절반밖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대신 20엘레의 아마포=2벌의 웃옷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직기의 개량으로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아마포의 가치 역시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이제 20엘레의 아마포=1/2벌의 웃옷이 될 것이다. 상품 A의 상대적 가치, 즉 상품 B로 표현된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의 가치가 불변일 경우 상품 A의 가치에 정비례하여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② 아마포의 가치는 불변인데 웃옷의 가치가 변동할 경우. 예를 들어 양털깎기가 여의치 않아서 웃옷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면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 대신 20엘레의 아마포=1/2벌의 웃옷이 될 것이다. 반면 웃옷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그때는 20엘레의 아마포=2벌의 웃옷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가치가 불변일 경우 상품 B로 표현되는 상품 A의 상대적 가치는 상품 B의 가치에 반비례하여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①과 ②의 여러 경우를 비교해보면 상대적 가치의 크기가 똑같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 원인은 정반대일 수가 있다. 즉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이라는 등식이 ㉠ 아마포의 가치가 2배로 증가하거나 웃옷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들 때는 20엘레의 아마포=2벌의 웃옷이라는 등식이 되고, ㉡ 아마포의 가치가 절반으로 줄거나 웃옷의 가치가 2배로 늘어났을 때는 20엘레의 아마포=1/2벌의 웃옷이라는 등식이 된다.




③ 웃옷과 아마포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양이 같은 방향, 같은 비율로 동시에 변동할 경우. 이 경우에는 그것들의 가치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20엘레의 아마포=1벌의 웃옷은 여전히 그대로 변하지 않는다. 이것들의 가치변동은 가치가 불변인 제3의 상품과 비교해보아야 비로소 드러난다. 모든 상품의 가치가 동시에 같은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할 경우 그 상품들의 상대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품들의 실제 가치변동은 같은 시간 동안에 생산되는 상품량이 일반적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드러나게 될 것이다.




④ 웃옷과 아마포 각각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따라서 각 상품의 가치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변동하면서 그 비율이 불균등한 경우 또는 그 방향이 반대일 경우 등. 있을 수 있는 이런 모든 경우의 조합(Kombination)이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①, ②, ③의 경우를 응용함으로써 간단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가치크기의 실제 변동은 가치크기의 상대적 표현이나 상대적 가치의 크기에 그대로 남김 없이 반영되지 않는다. 어느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그 상품의 가치가 변하지 않을 경우에도 변동할 수 있다. 또 그 상품의 가치가 변동할 경우에도 그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끝으로 상품의 가치크기와 이 가치크기의 상대적 표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변동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20) [29.1]

29.1
DK) Ihr relativer Wert kann konstant bleiben, obgleich ihr Wert wechselt, und endlich brauchen gleichzeitige Wechsel in ihrer Wertgröße und im relativen Ausdruck dieser Wertgröße sich keineswegs zu decken.
길판은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수정 번역] 상품의 가치가 변동할 경우에도 그 상품의 상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으며, 끝으로 상품의 가치크기와 이 가치크기의 상대적 표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변동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주석>


17) 베일리(S. Bailey)처럼 가치형태의 분석에 몰두해온 몇 안 되는 경제학자들이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첫째, 그들이 가치형태와 가치를 혼동했기 때문이고, 둘째, 그들이 현장에서 움직이는 실천적 부르주아들의 일상적 사고의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양적 규정성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양을 다루는 것이 ... 가치이다." ("The command of quantity ... constitutes value.") (베일리, 『화폐와 그 가치변동』, 런던, 1837, 11쪽).




17a) 제2판의 주: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이후, 가치의 성질을 간파한 최초의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한 프랭클린(Frankl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업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노동을 다른 노동과 교환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물건의 가치는 노동을 통해서 가장 올바르게 평가된다.” ("Trade in general being nothing else but the exchange of labour for labour, the value of all things is ... most justly measured by labour.") (프랭클린, 『프랭클린 저작집』, 스파크스[Sparks] 엮음, 보스턴, 1836, 제2권, 267쪽). 프랭클린은 그가 모든 물건의 가치를 ‘노동을 통해’ 평가함으로써 교환되는 노동들 사이의 차이를 배제하였고, 그럼으로써 이들 노동을 동등한 인간노동으로 환원시켰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떤 노동’이라고 말하고 다음에는 ‘다른 노동’이라고 말하며, 마지막에는 모든 물건의 가치의 실체로서 더 이상의 아무런 형용사도 없이 그냥 ‘노동’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 있다]

N2.1
길판은 주석문을 번역할 때, 영어로 된 원문을 제대로 참조하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길판은 “상업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노동을 다른 노동과 교환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물건의 가치는 노동을 통해서 가장 올바르게 평가된다.”로 DK에 나와 있는 문장을 그대로 번역했지만, 실제 원문(SS와 BF에 나와 있다)은 다음과 같다. "Trade in general being nothing else but the exchange of labour for labour, the value of all things is ... most justly measured by labour." 즉 "all thing is"와 "most justly measured by labour" 사이에 “…"이 있다. 따라서 "모든 물건의 가치는”과 "노동을 통해서 가장 올바르게 평가된다” 사이에 "…”를 추가로 넣어야 한다. 그리고 번역도 "가장 올바르게 평가된다"보다는 "가장 정당하게 평가된다"로 바꿔야 한다.
"프랭클린은 그가 모든 물건의 … 그냥 ‘노동’이라고만 말하고 있다"를 다음과 같이 수정 번역할 수 있다.
(DK) Franklin ist sich nicht bewußt, daß, indem er den Wert aller Dinge "in Arbeit" schätzt, er von der Verschiedenheit der ausgetauschten Arbeiten abstrahiert - und sie so auf gleiche menschliche Arbeit reduziert. Was er nicht weiß, sagt er jedoch. Er spricht erst von "der einen Arbeit", dann "von der andren Arbeit", schließlich von "Arbeit" ohne weitere Bezeichnung als Substanz des Werts aller Dinge.
[수정 번역] 프랭클린 자신은 사물의 가치를 "노동으로" 평가함으로써, 교환되는 노동 사이의 차이를 배제했다는 것 - 그리하여 동등한 인간노동으로 환원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의식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떤 노동"이라고 말하고 다음에는 "다른 노동"이라고 말하며, 마지막에는 모든 사물의 가치의 실체로서 더이상 수식 없이 "노동"에 관해 말하고 있다.

18)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도 상품과 같다. 인간은 거울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나다”(Ich bin ich)라고 하는 피히테(Fichte)류의 철학자로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일단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본다. 갑이라는 인간은 을이라는 인간을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비로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갑에게는 을 전체가, 즉 머리카락과 살갗으로 이루어진 을의 육체적인 모습 그대로가 인간이라는 종족의 현상형태로 간주된다. [설명 있다]

N3.1
(SS) In a sort of way, it is with man as with commodities. Since he comes into the world neither with a looking glass in his hand, nor as a Fichtian philosopher, to whom “I am I” is sufficient, man first sees and recognises himself in other men. Peter only establishes his own identity as a man by first comparing himself with Paul as being of like kind. And thereby Paul, just as he stands in his Pauline personality, becomes to Peter the type of the genus homo.
(BF) In a certain sense, a man is the same situation as a commodity. As he neither enters into the world in possession of a mirror, nor as Fichtean philosopher who can say 'I am I', a man first sees and recognizes himself in another man. Peter only relates to himself as a man through his relation to another man, Paul, in whom recognizes his likeness. With this, however, Paul also becomes from head to toe, in his physical form as Paul, the form of appearance of the species man for Peter.
(DK) In gewisser Art geht's dem Menschen wie der Ware. Da er weder mit einem Spiegel auf die Welt kommt noch als Fichtescher Philosoph: Ich bin ich, bespiegelt sich der Mensch zuerst in einem andren Menschen. Erst durch die Beziehung auf den Menschen Paul als seinesgleichen bezieht sich der Mensch Peter auf sich selbst als Mensch. Damit gilt ihm aber auch der Paul mit Haut und Haaren, in seiner paulinischen Leiblichkeit, als Erscheinungsform des Genus Mensch.
길판의 번역은 매우 이상하다. 우선 "bespiegelt sich ... in einem andren Menschen"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비춰본다"로 번역하면 된다. 굳이 길판처럼 길게 늘일 이유가 없다. 길판은 "Paul"을 "을"로 "Peter"를 "갑"으로 번역했는데, 그냥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 즉 "바울"과 "베드로"로 번역하면 된다. 그리고 길판은 "durch die Beziehung auf den Menschen Paul als seinesgleichen"를 "을이라는 인간을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설정함으로써"라고 번역했는데, 틀린 번역이다. "seinesgleichen"은 "자신을 닮은"이란 뜻이며, "durch die Beziehung auf ..."는 "...과의 관계를 통해서"란 뜻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되는 바울이라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마지막 문장은 정말 이상한데, "der Paul mit Haut und Haaren, in seiner paulinischen Leiblichkeit"은 "그들의 바울과 같은 육체 안에서 온전한 육체를 가진 바울은"이라고 번역해야 하며, "갑에게는 을 전체가"에 대한 문장은 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수정 번역]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상품과 같다. 인간은 거울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나다”(Ich bin ich)라고 하는 피히테(Fichte)류의 철학자로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일단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본다. 단지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되는 바울이라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베드로는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바울과 같은 육체 안에서 온전한 육체를 가진 바울은 인간 종의 현상형태로서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관계를 맺는다.

19) 여기에서 ‘가치’라는 표현은 이미 앞서 여러 곳에서 그러했듯이 양적으로 규정된 가치의 의미, 즉 가치크기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20) 제2판의 주: 가치크기와 그 상대적 표현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를 속류 경제학자들은 잘 알려진 그 교묘한 방법으로 이용해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A에 지출되는 노동이 감소하지 않더라도 A와 교환되는 B의 가치가 등귀함으로써 A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사실이 일단 인정되면, 당신들의 일반적 가치원리는 붕괴된다. … 만일 A의 가치가 B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등귀하여 B의 가치가 A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 인정된다면, 한 상품의 가치가 언제나 그 상품에 체화된 노동량으로 규정된다는 리카도의 대명제의 토대는 와해되어버린다. 왜냐하면 A의 비용상의 어떤 변동이 그것과 교환되는 B의 관계에서 A 자체의 가치를 변동시킬 뿐만 아니라, B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 전혀 변동이 없는데도 A의 가치에 대한 B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변동시킨다면, 한 물품에 지출된 노동량이 그 가치를 규제한다는 학설뿐만 아니라 한 물품의 생산비가 그 가치를 규제한다고 하는 학설도 함께 붕괴되기 때문이다” ("Once admit that A falls, because B, with which it is exchanged, rises, while no less labour is bestowed in the meantime on A, and your general principle of value falls to the ground ... If he [Ricardo] allowed that when A rises in value relatively to B, B falls in value relatively to A, he cut away the ground on which he rested his grand proposition, that the value of a commodity is ever determined by the labour embodied in it, for if a change in the cost of A alters not only its own value in relation to B, for which it is exchanged, but also the value of B relatively to that of A, though no change has taken place in the quantity of labour to produce B, then not only the doctrine falls to the ground which asserts that the quantity of labour bestowed on an article regulates its value, but also that which affirms the cost of an article to regulate its value") (브로드허스트[J. Broadhurst], 『경제학』, 런던, 1842, 11•14쪽).
브로드허스트는 같은 논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20, 10/50, 10/100 등의 분수를 한 번 생각해보라. 10이라는 수는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비례적인 크기, 즉 20, 50, 100이라는 분모에 대한 그 상대적인 크기는 계속 감소한다. 그리하여 어떤 정수, 가령 10의 크기는 그 속에 포함된 1이라는 단위 수의 ‘규제’를 받는다는 대원칙이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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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95~102쪽에 해당한다.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
제2절 상품에 나타난 노동의 이중성


처음에는 상품이 우리에게 양면(兩面)적인 것(Zwieschlächtiges, twofold natures), 즉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서 나타났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노동도 그것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 이미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특징을 지니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1] 상품에 포함된 노동의 이러한 이중적 성질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은 내가 처음이다. 12) 이 점은 경제학의 이해에서 결정적인 도약점(跳躍占, Springpunkt)이므로 여기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둘 필요가 있다.

1.1
(SS) Later on, we saw also that labour, too, possesses the same twofold nature; for, so far as it finds expression in value, it does not possess the same characteristics that belong to it as a creator of use values.
(BF) Later on it was seen that labour, too, has a dual character: in so far as it finds its expression in value, it no longer possesses the same characteristics as when it is the creator of use-values.
(DK) Später zeigte sich, daß auch die Arbeit, soweit sie im Wert ausgedrückt ist, nicht mehr dieselben Merkmale besitzt, die ihr als Erzeugerin von Gebrauchswerten zukommen.
중요해 보이지는 않지만, 강 교수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DK는 없는 '그런데'라는 표현을 번역 과정에서 추가했다. 그리고 영어로 "no longer"에 해당하는 표현인 독일어 "nicht mehr"를 "이미 ... 않다"라고 번역했다. 뉘앙스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을 "더이상 ... 않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지 않았겠느냐는 판단이 든다. 더불어 "soweit sie im Wert ausgedrückt ist"를 "노동도 그것이 가치로 표현되는 경우"로 번역했는데, 'soweit'는 영어로 'so far as/in so far as'로 번역할 수 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중에, 노동이 가치로 표현되는 한 더 이상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특징을 지니지 않게 됨이 드러났다."

2개의 상품, 즉 1벌의 웃옷과 10엘레(Elle: 독일에서 쓰는 길이의 단위. 약 60센티미터에 해당한다—옮긴이)의 아마포를 예로 들어보자. 그리고 전자는 후자에 비해 2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자. 즉 10엘레의 아마포=W라면, 1벌의 웃옷=2W라고 하자.




웃옷은 어떤 특수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이다. 그것을 생산하려면 특정 종류의 생산활동이 필요하다. 이 활동은 그 목적·작업방식·대상·수단·결과 등에 따라서 규정된다. 이처럼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즉 그 생산물이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을 우리는 간단히 유용노동(有用勞動, nützliche Arbeit)이라고 한다. [3.1] 이런 관점에서 노동은 항상 그 유용성과 관련되어 고찰된다.

3.1
(SS) The labour, whose utility is thus represented by the value in use of its product, or which manifests itself by making its product a use value, we call useful labour.
(BF) We use the abbreviated expression 'useful labour' for labour whose utility is represented by the use-value of its product, or by the fact that its product is a use-value.
(DK) Die Arbeit, deren Nützlichkeit sich so im Gebrauchswert ihres Produkts oder darin darstellt, daß ihr Produkt ein Gebrauchswert ist, nennen wir kurzweg nützliche Arbeit.
강 교수 번역에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될 수 있으면 독일어 원전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예를 들면, 강 교수는 "deren Nützlichkeit sich so im Gebrauchswert ihres Produkts"를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으로 번역했는데, 여기에는 '표현되는'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독일어가 없다. 아마도 편의상 의역을 한 것 같다. 하지만 '표현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의미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 교수는 "darin darstellt, daß ihr Produkt ein Gebrauchswert ist"를 하나로 합쳐도 될 것을 굳이 괄호([]) 안에 따로 적고 있는데, 이는 마르크스가 부연 설명을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또한, 강 교수는 "nennen wir kurzweg nützliche Arbeit"를 "우리는 간단히 유용노동이라고 한다"라고 번역했는데, 독일어 'nennen'에 해당하는 부분을 완전히 번역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해석에 큰 문제는 없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유용성이 생산물의 사용가치에 있고 또는 그 생산물이 그 안에서 사용가치임을 나타내는 노동을 우리는 간단히 유용노동이라고 부른다."

웃옷과 아마포가 질적으로 다른 사용가치이듯이, 그것들의 현존재(現存在, Dasein)를 매개하는 노동 또한 질적으로 서로 다른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이다. [4.1] 만약 이들 물품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사용가치가 아니고 따라서 질적으로 서로 다른 유용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아예 상품으로 서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웃옷과 웃옷이 서로 교환되지 않듯이, 사용가치도 동일한 가치가 서로 교환되지는 않는다.

4.1
(SS) As the coat and the linen are two qualitatively different use values, so also are the two forms of labour that produce them, tailoring and weaving.
(BF) As the coat and the linen are qualitatively different use-values, so also are the forms of labour through which their existence is mediated — tailoring and weaving.
(DK) Wie Rock und Leinwand qualitativ verschiedne Gebrauchswerte, so sind die ihr Dasein vermittelnden Arbeiten qualitativ verschieden — Schneiderei und Weberei.
'verschiedne'는 'verschieden(=different)'와 같다.

온갖 다양한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들에는 똑같이 온갖 다양한 유용노동이 나타나 있는데 이들은 사회적 분업을 통해서 속(屬)·종(種)·과(科)·아종(亞種)·변종(變種)들로 분류된다. [5.1] 이러한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거꾸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5.2] 고대 인도의 공동체에서는 사회적 분업이 존재했지만, 생산물이 상품으로 되지 않았다. 또는 좀 더 최근의 예를 든다면, 모든 공장에서 노동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이 분할이 각 노동자의 개별 생산물 사이의 교환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 [5.3] 자립적이고 서로 독립해 있는 사회적 노동의 생산물만이 서로 상품으로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5.1
(SS) To all the different varieties of values in use there correspond as many different kinds of useful labour, classified according to the order, genus, species, and variety to which they belong in the social division of labour.
(BF) The totality of heterogeneous use-values or physical commodities reflects a totality of similarly heterogeneous forms of useful labour, which differ in order, genus, species and variety: in short, a social division of labour.
(DK) In der Gesamtheit der verschiedenartigen Gebrauchswerte oder Warenkörper erscheint eine Gesamtheit ebenso mannigfaltiger, nach Gattung, Art, Familie, Unterart, Varietät verschiedner nützlicher Arbeiten - eine gesellschaftliche Teilung der Arbeit.
'사회적 분업'을 강조하고자 한 마르크스의 의도를 따른다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온갖 다양한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에는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한 유용노동이 속(屬)·종(種)·과(科)·아종(亞種)·변종(變種)으로 따라 나타나는데, 즉 사회적 분업이다."
5.2
(SS) This division of labour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production of commodities, but it does not follow, conversely, that the production of commodities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division of labour.
(BF) This division of labour is a necessary condition for commodity production, although the converse does not hold; commodity production is not a necessary condition for the social division of labour.
(DK) Sie ist Existenzbedingung der Warenproduktion, obgleich Warenproduktion nicht umgekehrt die Existenzbedingung gesellschaftlicher Arbeitsteilung.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의 필요조건이지만, 거꾸로 상품생산이 사회적 분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5.3
(SS) Or, to take an example nearer home, in every factory the labour is divided according to a system, but this division is not brought about by the operatives mutually exchanging their individual products.
(BF) Or, to take an example nearer home, labour is systematically divided in every factory, but the workers do not bring about this division by exchanging their individual products.
(DK) Oder, ein näher liegendes Beispiel, in jeder Fabrik ist die Arbeit systematisch geteilt, aber diese Teilung nicht dadurch vermittelt, daß die Arbeiter ihre individuellen Produkte austauschen.
강 교수는 "dardurch vermittelt"를 '이어져'라고 번역했는데, '일어나지(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또는 좀 더 최근의 예를 든다면, 모든 공장에서 노동은 체계적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이 분할이 각 노동자의 개별 생산물 사이의 교환으로 일어나지는 않다."

이리하여 우리는 모든 상품의 사용가치에 일정한 합목적적(合目的的)인 생산활동 또는 유용노동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았다. [6.1] 각각의 사용가치는 그 속에 질적으로 서로 다른 유용노동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상품으로서 만날 수 없다. [6.2]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띠는 사회[즉 상품생산자의 사회]에서는 이들 유용노동의 질적인 차이가 자립적인 생산자의 개인사업으로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되다가 하나의 복합적인 체계로 [즉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 [6.3]

6.1
(SS) To resume, then: In the use value of each commodity there is contained useful labour, i.e., productive activity of a definite kind and exercised with a definite aim.
(BF) To sum up, then: the use-value of every commodity contains useful labour, i.e. productive activity of a definite kind, carried on with a definite aim.
(DK) Man hat also gesehn: in dem Gebrauchswert jeder Ware steckt eine bestimmte zweckmäßig produktive Tätigkeit oder nützliche Arbeit.
강 교수는 'zweckmäßig'를 거의 예외 없이 '합목적적'으로 번역했으며, 영어 번역본에서도 (적어도 내가 확인한 부분에서는) "exercised with a definite aim"으로 번역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모든 상품의 사용가치에 일정한 합목적적 생산활동 또는 유용노동이 들어 있는 것을 봤다."
6.2
(SS) Use values cannot confront each other as commodities, unless the useful labour embodied in them is qualitatively different in each of them.
(BF) Use-values cannot confront each other as commodities unless the useful labour contained in them is qualitatively different in each case.
(DK) Gebrauchswerte können sich nicht als Waren gegenübertreten, wenn nicht qualitativ verschiedne nützliche Arbeiten in ihnen stecken.
6.3
(SS) In a community, the produce of which in general takes the form of commodities, i.e., in a community of commodity producers, this qualitative difference between the useful forms of labour that are carried on independently of individual producers, each on their own account, develops into a complex system, a social division of labour.
(BF) In a society whose products generally assume the form of commodities, i.e. in a society of commodity producers, this qualitative difference between the useful forms of labour which are carried on independently and privately by individual producers develops into a complex system, a social division of labor.
(DK) In einer Gesellschaft, deren Produkte allgemein die Form der Ware annehmen, d.h. in einer Gesellschaft von Warenproduzenten, entwickelt sich dieser qualitative Unterschied der nützlichen Arbeiten, welche unabhängig voneinander als Privatgeschäfte selbständiger Produzenten betrieben werden, zu einem vielgliedrigen System, zu einer gesellschaftlichen Teilung der Arbeit.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될 것을 굳이 괄호([]) 안에 따로 표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 형태를 띠는 사회, 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자립적 생산자의 개인사업으로서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이들 유용노동의 질적 차이가 복합적인 체계, 즉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

웃옷을 입는 사람이 재단사 자신이건 그의 고객이건 상관없이 언제나 웃옷은 사용가치로 작용한다. [7.1] 마찬가지로 재단노동이 특수한 직업이 되어 사회적 분업의 자립적인 한 부분을 이룬다 해도 웃옷과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의 관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7.2] 웃옷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은 누군가가 재단사로 되기 수천 년 전부터 벌써 웃옷을 만들어왔다. [7.3] 그러나 웃옷이나 아마포 등 천연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은 모든 소재적 부의 요소의 현존재(現存在)는 늘 특수한 자연소재를 특수한 인간 욕망에 맞추려는 특수한 합목적적 생산활동을 통해 매개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7.4] 그런 까닭에 사용가치를 낳는 어머니로서 [즉 유용노동으로서] 노동은 그 사회형태가 무엇이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그리하여 인간의 생활을 매개하기 위한 영원한 자연필연성(自然必然性, Naturnotwendigkeit)이다. [7.5]

7.1
(SS) Anyhow, whether the coat be worn by the tailor or by his customer, in either case it operates as a use value.
(BF) It is moreover a matter of indifference whether the coat is worn by the tailor or by his customer. In both cases it acts as a use-value.
(DK) Dem Rock ist es übrigens gleichgültig, ob er vom Schneider oder vom Kunden des Schneiders getragen wird. In beiden Fällen wirkt er als Gebrauchswert.
DK의 두 문장을 강 교수와 SS는 한 문장으로 번역했다. 좀 밋밋하기는 하지만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웃옷을 재단사가 입든 혹은 손님이 입든 상관없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웃옷은 사용가치로 작용한다."
7.2
(SS) Nor is the relation between the coat and the labour that produced it altered by the circumstance that tailoring may have become a special trade, an independent branch of the social division of labour.
(BF) So, too, the relation between the coat and the labour that produced it is not in itself altered when tailoring becomes a special trade, an independent branche of the social division of labour.
(DK) Ebensowenig ist das Verhältnis zwischen dem Rock und der ihn produzierenden Arbeit an und für sich dadurch verändert, daß die Schneiderei besondre Profession wird, selbständiges Glied der gesellschaftlichen Teilung der Arbeit.
어떤 것이 더 좋은 번역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번역한 것이 독일어/영어 어순에 더 잘 맞는다고 믿고 싶다. "웃옷과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의 관계는 재단노동이 사회적 분업의 자립적 한 부분인 특수한 직업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7.3
(SS) Wherever the want of clothing forced them to it, the human race made clothes for thousands of years, without a single man becoming a tailor.
(BF) Men made clothes for thousands of years, under the compulsion of the need for chlothing, without a single man ever becoming a tailor.
(DK) Wo ihn das Kleidungsbedürfnis zwang, hat der Mensch jahrtausendelang geschneidert, bevor aus einem Menschen ein Schneider ward.
"옷옷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곳"에 해당하는 DK 문장 "Wo ihn das Kleidungsbedürfnis zwang"에는 반어적 표현법이 없다. 그리고 강 교수는 'Mensch'를 '사람'으로 번역했는데, '인류'가 적당하다고 보지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웃옷을 입어야만 하는 곳에서 인류는 누군가 재단사가 되기 수천 년 전에 웃옷을 만들었다."
7.4
(SS) But coats and linen, like every other element of material wealth that is not the spontaneous produce of Nature, must invariably owe their existence to a special productive activity, exercised with a definite aim, an activity that appropriates particular nature-given materials to particular human wants.
(BF) But the existence of coats, of linen, of every element of material wealth not provided in advance by nature, had always to be mediated through a specific productive activity appropriate to its purpose, a productive activity that assimilated particular natural materials to particular human requirements.
(DK) Aber das Dasein von Rock, Leinwand, jedem nicht von Natur vorhandnen Element des stofflichen Reichtums, mußte immer vermittelt sein durch eine spezielle, zweckmäßig produktive Tätigkeit, die besondere Naturstoffe besondren menschlichen Bedürfnissen assimiliert.
"... mußte immer vermittelt ...."를 "... 않으면 안 되었다"고 표현할 이유가 없는데도, 강 교수는 그렇게 번역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웃옷, 아마포 등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모든 소재적 부의 요소의 존재는 늘 특수한 자연소재를 특수한 인간 욕망에 맞추려는 특수한 합목적적 생산활동을 통해 매개 되어야만 한다."
7.5
(SS) So far therefore as labour is a creator of use value, is useful labour, it is a necessary condition, independent of all forms of society, for the existence of the human race; it is an eternal nature-imposed necessity, without which there can be no material exchanges between man and Nature, and therefore no life.
(BF) Labour, then, as the creator of use-values, as useful labour, is a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which is independent of all forms of society; it is an eternal natural necessity which mediates the metabolism between man and nature, and therefore human life itself.
(DK) Als Bildnerin von Gebrauchswerten, als nützliche Arbeit, ist die Arbeit daher eine von allen Gesellschaftsformen unabhängige Existenzbedingung des Menschen, ewige Naturnotwendigkeit, um den Stoffwechsel zwischen Mensch und Natur, also das menschliche Leben zu vermitteln.
강 교수는 'Bildnerin'을 (대자연 어머니 즉, 가이아를 가리키는) '어머니'로 번역했으며, SS와 DK는 'creator', 즉 '창조자'로 번역했다. 그리고 "von allen Gesellschaftsformen unabhängige"을 "그 사회형태가 무엇이든 그것과는 무관하게"라고 아주 길게 번역했다. 이것 말고도 짚을 게 더 있지만, 그냥 재번역하자. "그러므로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 즉 유용노동으로서 노동은 모든 사회형태와 무관한 인간의 존재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즉 인간생활을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필연성이다."

사용가치인 웃옷이나 아마포 등의 상품체들은 자연소재와 노동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물이다. 웃옷이나 아마포 등에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유용노동을 모조리 제거해버리면 거기에는 언제나 인간의 도움 없이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물적 기초만이 남는다. [8.1] 생산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연 그 자체의 방식에 따르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단지 소재의 형태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13) [8.2] 뿐만 아니라 이 형태를 변경하는 노동 그 자체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노동이 그것을 통해 생산되는 사용가치나 소재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가 말했듯이, 노동은 소재적 부의 아버지이고 땅은 그 어머니이다. [8.3]

8.1
(SS) If we take away the useful labour expended upon them, a material substratum is always left, which is furnished by Nature without the help of man.
(BF) If we subtract the total amount of useful labour of different kinds which is contained in the coat, the linen, etc., a material substratum is always left.
(DK) Zieht man die Gesamtsumme aller verschiednen nützlichen Arbeiten ab, die in Rock, Leinwand usw. stecken, so bleibt stets ein materielles Substrat zurück, das ohne Zutun des Menschen von Natur vorhanden ist.
간결하게 번역하자. "웃옷, 아마포 등에 들어 있는 모든 유용노동을 모조리 제거하면, 그 뒤에는 언제나 인간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물적 기초만이 남는다."
8.2
(SS) The latter can work only as Nature does, that is by changing the form of matter.
(BF) When man engages in production, he can only proceed as nature does herself, i.e. he can only change the form of the materials.
(DK) Der Mensch kann in seiner Produktion nur verfahren, wie die Natur selbst, d.h. nur die Formen der Stoffe ändern.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단지 생산과정에서 자연 그 자체를 따라서 할 수밖에 없는데 즉, 소재 형태를 바꾸는 것뿐이다."
8.3
윌리엄 페티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Labour is the father of material wealth, the earth is its mother." 『A treatise of Taxes and Contributions』, published anonymously by William Petty, London, 1667, p. 47.

여기서 이제 사용대상으로서의 상품에서 가치로서의 상품으로 넘어가 보자.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웃옷은 아마포에 견주어 2배의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양적인 차이일 뿐이며, 그 차이는 아직 우리의 당면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일 1벌의 웃옷이 지니는 가치가 10엘레의 아마포가 지니는 가치의 2배라면 20엘레의 아마포가 1벌의 웃옷과 같은 가치크기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가치로서의 웃옷과 아마포는 모두 동일한 실체를 지닌 물품이고, 동일한 노동의 객관적 표현이다. 그러나 재단노동(裁斷勞動)과 방직노동(紡織勞動)은 질적으로 다른 노동이다. 물론 동일한 사람이 번갈아가며 재단도 하고 아마포도 짜는 사회상태도 있다. 이러한 사회상태에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동방식은 다만 한 개인의 노동의 변형일 뿐이며 아직 서로 다른 두 개인의 특수하고 고정된 기능이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마치 한 재단공이 오늘 만드는 웃옷과 내일 만드는 바지를 동일한 개인노동의 변형으로 간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9.1] 또 우리가 금방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수요의 방향이 바뀌는 데 따라서 인간노동의 일정 부분이 어떤 때는 재단노동이라는 형태로, 어떤 때는 방직노동이라는 형태로 번갈아가며 공급된다. [9.2] 물론 이와 같은 노동의 형태 변화가 아무런 마찰 없이 진행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어쨌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9.3] 이 생산활동의 규정성(Bestimmtheit), 즉 노동의 유용한 성격을 무시한다면, 생산활동에서 남는 것은 그것이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라는 점뿐이다. [9.4]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생산활동이긴 하지만 모두 인간의 두뇌·근육·신경·손 등의 생산적 지출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양자는 모두 인간노동이다. 이것들은 다만 인간노동력을 지출하는 2개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이다. 물론 여러 가지 형태로 노동력이 지출되려면 인간노동력 그 자체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는 단지 인간노동을, 즉 인간노동 일반의 지출만을 나타낸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장군이나 은행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반해 그냥 인간은 매우 평범한 역할만을 하는데 (장군이나 은행가 같은 직위를 얻으면 인간은 중요해지지만, 직위에서 떠난 그냥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지위는 특수한 유용적 노동의 성격을, 직위가 없는 단순한 인간은 인간노동 일반을 뜻하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직위는 아무나 가질 수 없지만[특수], 인간은 누구나가 똑같이 인간이다[일반]. —옮긴이) 14) 인간노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9.5] 인간노동 일반이란 특별하게 발달하지 않은 보통사람이 누구나 평균적으로 자신의 육체 속에 갖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의 지출이다. [9.6] 물론 단순한 평균노동(平均勞動, einfache Durchschnittsarbeit)도 나라가 다르고 문화수준이 다르면 그 성격이 달라진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사회에서 그것은 일정한 것이다. [9.7] 복잡노동(複雜勞動, kompliziertere Arbeit)은 그저 단순노동(單純勞動, einfache Arbeit)이 제곱된 것 또는 배가된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따라서 적은 양의 복잡노동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과 같다. [9.8] 실제로 이런 환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보고 있다. [9.9] 어떤 상품이 아무리 복잡한 노동의 생산물이라 해도 그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단순노동의 생산물과 동일하게 등치시키고, 따라서 그 가치 자체는 단순노동의 일정한 양을 나타낼 뿐이다. 15) 갖가지 노동을 그 도량단위인 단순노동으로 환산해내는 여러 비율은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생산자들의 배후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생산자들에게는 그것이 관습에 의해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9.10] 지금부터는 모든 종류의 노동력을 곧바로 단순노동력으로 간주하겠는데, 이것은 환산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일 뿐이다. [9.11]

9.1
(SS) There are, however, states of society in which one and the same man does tailoring and weaving alternately, in which case these two forms of labour are mere modifications of the labour of the same individual, and not special and fixed functions of different persons, just as the coat which our tailor makes one day, and the trousers which he makes another day, imply only a variation in the labour of one and the same individual.
(BF) There are, however, states of society in which the same man alternately makes clothes and weaves. In this case, these two different modes of labour are only modifications of the labour of the same individual and not yet fixed functions peculiar to different individuals, just as the coat our tailor makes today, and the pair of trousers he makes tomorrow, require him only to vary his own individual labour.
(DK) Es gibt jedoch Gesellschaftszustände, worin derselbe Mensch abwechselnd schneidert und webt, diese beiden verschiednen Arbeitsweisen daher nur Modifikationen der Arbeit desselben Individuums und noch nicht besondre feste Funktionen verschiedner Individuen sind, ganz wie der Rock, den unser Schneider heute, und die Hosen, die er morgen macht, nur Variationen derselben individuellen Arbeit voraussetzen.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세 문장으로,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강 교수는 영어로 'however'을 뜻하는 독일어 'jedoch'를 '물론'이라고 번역했으며 영어로 'therefore' 혹은 'thus'에 해당하는 'daher'는 번역하지 않았다. "diese beiden verschiednen Arbeitsweisen"은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동방식"으로 번역했는데, 직역하면 "이런 다양한 노동방식"이지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마찬가지로 "verschiedner Individuen"을 "서로 다른 두 개인"이라 번역한 것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강 교수는 영어로 'require'을 뜻하는 'voraussetzen'을 '간주하는'으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오역이다. "필요로 하는"으로 번역해야 한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번갈아가며 재단도 하고 아마포도 짜는 사회상태가 있고, 따라서 이런 다양한 노동방식은 다만 한 개인의 노동이 변하는 것일 뿐이며 아직은 서로 다른 개인에게 특수하고 고정된 기능은 아닌데, 마치 우리의 재단공이 오늘 만드는 웃옷과 내일 만드는 바지가 단지 개인노동의 변형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9.2
(SS) Moreover, we see at a glance that, in our capitalist society, a given portion of human labour is, in accordance with the varying demand, at one time supplied in the form of tailoring, at another in the form of weaving.
(BF) Moreover, we can see at a glance that in our capitalist society a given portion of labour is supplied alternatively in the form of tailoring and in the form of weaving, in accordance with changes in the direction of the demand for labour.
(DK) Der Augenschein lehrt ferner, daß in unsrer kapitalistischen Gesellschaft, je nach der wechselnden Richtung der Arbeitsnachfrage, eine gegebene Portion menschlicher Arbeit abwechselnd in der Form von Schneiderei oder in der Form von Weberei zugeführt wird.
DK의 "Der Augenschein lehrt ferner, ..."을 영어 번역본은 "Moreover, we (can) see at a glance that ..."으로 표현했고, 강 교수는 "또 우리가 금방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로 나타냈다. 이것을 구글 번역기로 분석하면 "The inspection further teaches that ..."인데, 독일어로 직역하면 "또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 알 수 있다 / 또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안 선다.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또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수요의 방향이 바뀌는 데 따라서 인간노동의 일정 부분이 재단노동의 형태 또는 방직노동의 형태로 번갈아가며 공급된다는 사실이다."
9.3
(SS) This change may possibly not take place without friction, but take place it must. // Productive activity, if we leave out of sight its special form, …
(BF) This change in the form of labour may well not take place without friction, but it must take place. // If we leave aside the determinate quality of productive activity, …
(DK) Dieser Formwechsel der Arbeit mag nicht ohne Friktion abgehn, aber er muß gehn. Sieht man ab von der Bestimmtheit der produktiven Tätigkeit und daher vom nützlichen Charakter der Arbeit, ...
SS와 BF는 이 부분에서 단락을 나눴지만, DK와 강 교수 번역은 단락을 나누지 않았다. '//'이 SS와 BF에서 임의로 단락을 나눈 부분이다.
9.4
(SS) Productive activity, if we leave out of sight its special form, viz., the useful character of the labour, is nothing but the expenditure of human labour power.
(BF) If we leave aside the determinate quality of productive activity, and therefore the useful character of the labour, what remain is its quality of being an expenditure of human labour-power.
(DK) Sieht man ab von der Bestimmtheit der produktiven Tätigkeit und daher vom nützlichen Charakter der Arbeit, so bleibt das an ihr, daß sie eine Verausgabung menschlicher Arbeitskraft ist.
"... 점뿐이다"라고 번역해도 상관없지만, 굳이 이렇게 번역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9.5
(SS) And just as in society, a general or a banker plays a great part, but mere man, on the other hand, a very shabby part, so here with mere human labour.
(BF) And just as, in civil society, a general or a banker plays a great part but man as such plays a very mean part, so, here too, the same is true of human labour.
(DK) Wie nun in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ein General oder Bankier eine große, der Mensch schlechthin dagegen eine sehr schäbige Rolle spielt, so steht es auch hier mit der menschlichen Arbeit.
강 교수의 <역자 주>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구절을 Sonnenschein 판에서 먼저 확인했으나, MIA는 엉뚱한 부분을 링크로 걸어놓았다(MIA가 링크로 연결해 놓은 헤겔 『법철학』 구절은 제244절에 해당한다) [링크]. 마르크스가 참조한 구절을 가리키는 제대로 된 링크는 다음과 같다 [링크]. 더불어, 헤겔 『법철학』 원본의 250쪽에 있는 제190절을 번역했다.

a. Die Art des Bedürfnisses und der Befriedigung

Das Tier hat einen beschränkten Kreis von Mitteln und Weisen der Befriedigung seiner gleichfalls beschränkten Bedürfnisse. Der Mensch beweist auch in dieser Abhängigkeit zugleich sein Hinausgehen über dieselbe und seine Allgemeinheit, zunächst durch die Vervielfältigung der Bedürfnisse und Mittel und dann durch Zerlegung und Unterscheidung des konkreten Bedürfnisses in einzelne Teile und Seiten, welche verschiedene partikularisierte, damit abstraktere Bedürfnisse werden.

Im Rechte ist der Gegenstand die Person, im moralischen Standpunkt das Subjekt, in der Familie das Familienglied, in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überhaupt der Bürger (als bourgeois) – hier auf dem Standpunkte der Bedürfnisse (vgl. § 123 Anm.) ist es das Konkretum der Vorstellung, das man Mensch nennt; es ist also erst hier und auch eigentlich nur hier vom Menschen in diesem Sinne die Rede.

a. 욕구와 충족의 양식

동물은 제한된 욕구(Bedürfnisse)를 충족(Befriedigung)하기 위한 동일하게 제한된 방법(Weise)과 수단(Mittel)을 가지고 있다. 인간 역시 이러한 의존성(Abhängigkeit)에 놓여 있음에도 이것에 대한 초탈(Hinausgehen über dieselbe)과 그것[초탈]의 보편성(Allgemeinheit)을 동시에 나타내는데, 첫째, 욕구와 수단의 배가(Vervielfältigung)를 통해서, 그다음에는 구체적 욕구를 다양하게 특화해 추상화한 개개의 부분과 측면으로 세분화(Zerlegung und Unterscheidung)해서 나타낸다.

[추상]법에서 대상(Gegenstand)은 인격(Person)이고, 도덕적 입장에서는 주체(Subjekt)이며 가족에서는 가족 구성원(Familienglied)이며 부르주아 사회(bürgerlichen Gesellschaft) 일반에서는 시민(Bürger)(또는 부르주아)이다—여기서 욕구의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123 주해 참조) 그것[대상]은 인간이라 불리는 표상(Vorstellung)의 구체화(Konkretum)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인간을 언급하는 것은 처음이며 또한 실제로 여기에서는 적절하게 유일한 때이다.

참고로 BF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이 있다.

Hegel says here: 'In civil society as a whole, at the standpoint of needs, what we have before us is the composite idea which we call man. Thus this is the first time, and indeed the only time, to speak of man in this sense' (Hegel's Philosophy of Rght, tr. T. M. Knox, Oxford, 1952, p. 127).
9.6
(SS) It is the expenditure of simple labour power, i.e., of the labour power which, on an average, apart from any special development, exists in the organism of every ordinary individual.
(BF) It is the expenditure of simple labour-power, i.e. of the labour-power possessed in his bodily organism by every ordinary man, on the average, without being developed in any special way.
(DK) Sie ist Verausgabung einfacher Arbeitskraft, die im Durchschnitt jeder gewöhnliche Mensch, ohne besondere Entwicklung, in seinem leiblichen Organismus besitzt.
DK에서는 "단순 노동력 지출"을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발달하지 않은 보통사람이 자기 육체 안에 평균적으로 가진 것이 바로 단순 노동력 지출이다."
9.7
(SS) Simple average labour, it is true, varies in character in different countries and at different times, but in a particular society it is given.
(BF) Simple average labour, it is true, varies in character in different countries and at different cultural epoches, but in a particular society it is given.
(DK) Die einfache Durchschnittsarbeit selbst wechselt zwar in verschiednen Ländern und Kulturepochen ihren Charakter, ist aber in einer vorhandnen Gesellschaft gegeben.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강 교수는 'Kulturepoche'를 '문화수준'으로 번역했지만, 문맥상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에서 시대[혹은 시간]에 따른 문화의 발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ist ... in einer vorhandnen Gesellschaft gegeben"에 대해서도 SS와 BF는 "in particular society it is given"이라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사회에서 그것은 일정한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 알려졌다/주어졌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하나 헷갈리는 것은 자본론 전체에서 'vorhandnen'이 계속 나오는데, 독일어 사전에서 이와 유사한 단어는 오직 'vorhanden'으로 영어로는 'existing'을 뜻한다. 그런데 독일어 유의어 사전을 찾아보면 'vorhandnen'과 유사한 뜻으로 'von allem', 영어로는 'particularly‘라는 단어를 찾아준다 [링크]. 어떤 해석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영어 번역[SS와 BF 모두 'particular'로 번역했다]을 따르기로 한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단순 평균노동 그 자체도 나라가 다르고 [같은 나라에서도] 문화수준[혹은 문화의 시대]이 다르면 그 성격은 변하지만, 특정 사회에서는 알려졌다."
9.8
(SS) Skilled labour counts only as simple labour intensified, or rather, as multiplied simple labour, a given quantity of skilled being considered equal to a greater quantity of simple labour.
(BF) More complex labour counts only as intensified, or rather multiplied simple labour, so that a smaller quantity of complex labour s considered equal to a larger quantity of simple labour.
(DK) Kompliziertere Arbeit gilt nur als potenzierte oder vielmehr multiplizierte einfache Arbeit, so daß ein kleineres Quantum komplizierter Arbeit gleich einem größeren Quantum einfacher Arbeit.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강 교수는 'als'와 'vielmehr'의 뜻이 같다고 보고 하나로 합쳐서 번역했지만, 따로 번역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복잡노동은 단지 제곱 되거나 혹은 그저 배가된 단순노동으로 간주될 뿐이므로, 적은 양의 복잡노동은 더 많은 양의 단순노동과 같다."
9.9
(SS) Experience shows that this reduction is constantly being made.
(BF) Experience shows that this reduction is constantly being made.
(DK) Daß diese Reduktion beständig vorgeht, zeigt die Erfahrung.
강 교수의 한국어 번역은 이상하다. "경험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아는 것"이 올바른 어법이다. 그리고 '실제로'란 표현도 독일어 문장 안에는 없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환산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9.10
(SS) The different proportions in which different sorts of labour are reduced to unskilled labour as their standard, are established by a social process that goes on behind the backs of the producers, and, consequently, appear to be fixed by custom.
(BF) The various proportions in which different kinds of labour are reduced to simple labour as their unit of measurement are established by a social process that goes on behind the backs of the producers; these proportions therefore appear to the producers to have been handed down by tradition.
(DK) Die verschiednen Proportionen, worin verschiedne Arbeitsarten auf einfache Arbeit als ihre Maßeinheit reduziert sind, werden durch einen gesellschaftlichen Prozeß hinter dem Rücken der Produzenten festgesetzt und scheinen ihnen daher durch das Herkommen gegeben.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그리고 "scheinen ... gegeben"은 영어로 "seem to be given"와 비슷한 뜻이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갖가지 노동을 그 도량단위인 단순노동으로 환산하는 다른[여러 가지] 비율은 생산자의 배후에서 사회적 과정으로 결정되므로, 이것은 생산자에게 관습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9.11
(SS) For simplicity’s sake we shall henceforth account every kind of labour to be unskilled, simple labour; by this we do no more than save ourselves the trouble of making the reduction.
(BF) In the interests of simplification, we shall henceforce view every form of labour-power, directly as simple labour-power; by this we shall simply be saving ourselves the trouble making the reduction.
(DK) Der Vereinfachung halber gilt uns im Folgenden jede Art Arbeitskraft unmittelbar für einfache Arbeitskraft, wodurch nur die Mühe der Reduktion erspart wird.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강 교수는 이 부분을 너무 성의 없이 번역한 것 같다. "명료함을 위해 앞으로는 갖가지 노동력을 곧바로 단순노동력으로 간주할 텐데, 이는 단순히 환산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리하여 가치로서의 웃옷과 아마포에서는 그 사용가치의 차이가 배제되듯이 이러한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에서도 그 유용형태의 차이, 즉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의 차이는 배제된다. [10.1] 사용가치로서의 웃옷과 아마포는 목적이 정해진 생산활동과 직물 및 실 사이의 결합물이다. 반면 가치로서의 웃옷과 아마포는 단지 동질의 노동이 응결된 것일 뿐이며, 또한 그것들의 가치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도 마찬가지로 직물이나 실에 대한 생산적 행동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노동력의 지출로서만 간주된다. [10.2]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이 사용가치로서의 웃옷이나 아마포의 형성요소(形成要素, Bilsungselemente)가 되는 것은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의 질(質)이 서로 다른 데 근거한 것이다. 반면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이 웃옷과 아마포 가치의 실체가 되는 것은 오로지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의 특수한 질이 배제되어 양자가 동일한 질, 곧 인간노동이라는 질을 지니고 있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10.3]

10.1
(SS) Just as, therefore, in viewing the coat and linen as values, we abstract from their different use values, so it is with the labour represented by those values: we disregard the difference between its useful forms, weaving and tailoring.
(BF) Just as, in viewing the coat and the linen as values, we abstract from their different use-values, so, in the case of the labour represented by those values, do we disregard the difference between its useful values, tailoring and weaving.
(DK) Wie also in den Werten Rock und Leinwand von dem Unterschied ihrer Gebrauchswerte abstrahiert ist, so in den Arbeiten, die sich in diesen Werten darstellen, von dem Unterschied ihrer nützlichen Formen, der Schneiderei und Weberei.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로서 웃옷과 아마포에서 그 사용가치의 차이가 배제되듯이, 이러한 가치로 대변되는 노동에서도 그 유용형태의 차이, 즉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의 차이는 배제된다."
10.2
(SS) As the use values, coat and linen, are combinations of special productive activities with cloth and yarn, while the values, coat and linen, are, on the other hand, mere homogeneous congelations of undifferentiated labour, so the labour embodied in these latter values does not count by virtue of its productive relation to cloth and yarn, but only as being expenditure of human labour power.
(BF) The use-values coat and linen are combinations of, and, on the other, productive activity with a definite purpose, and, on the other, cloth and yarn; the values coat and linen, however, are merely congealed quantities of homogenous labour. In the same way, the labour contained in these values does not count by virtue of its productive relation to cloth and yarn, but only as being expenditure of human labor-power.
(DK) Wie die Gebrauchswerte Rock und Leinwand Verbindungen zweckbestimmter, produktiver Tätigkeiten mit Tuch und Garn sind, die Werte Rock und Leinwand dagegen bloße gleichartige Arbeitsgallerten, so gelten auch die in diesen Werten enthaltenen Arbeiten nicht durch ihr produktives Verhalten zu Tuch und Garn, sondern nur als Verausgabungen menschlicher Arbeitskraft.
DK의 한 문장을 BF와 강 교수는 다른 방식으로 두 문장으로 나눴다. 예를 들면 BF는 "... merely congealed quantities of homogenous labour. In the same way, …"로 문장을 나눠 번역했으며, 강 교수는 "… 직물 및 실 사이의 결합물이다. 반면 가치로서의 웃옷과 아마포는 …"으로 문장을 나눠 번역했다.
10.3
(SS) Tailoring and weaving are necessary factors in the creation of the use values, coat and linen, precisely because these two kinds of labour are of different qualities; but only in so far as abstraction is made from their special qualities, only in so far as both possess the same quality of being human labour, do tailoring and weaving form the substance of the values of the same articles.
(BF) Tailoring and weaving are the formative elements in the use-values coat and linen, precisely because these two kinds of labour are of different qualities; but only in so far as abstraction is made from their particular qualities, only in so far as both possess the same quantity of being human labour, do tailoring and weaving form the substance of the values of the two articles mentioned.
(DK) Bildungselemente der Gebrauchswerte Rock und Leinwand sind Schneiderei und Weberei eben durch ihre verschiednen Qualitäten; Substanz des Rockwerts und Leinwandwerts sind sie nur, soweit von ihrer besondren Qualität abstrahiert und beide gleiche Qualität besitzen, die Qualität menschlicher Arbeit.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그러나 웃옷과 아마포는 가치 일반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크기를 갖는 가치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웃옷 1벌은 10엘레의 아마포에 비해 2배의 가치가 있다. [11.1] 이들의 이러한 가치크기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아마포는 웃옷에 비하여 절반의 노동밖에 들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웃옷의 생산에는 아마포의 생산에 비하여 2배의 시간 동안 노동력이 지출되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11.1
(SS) Coats and linen, however, are not merely values, but values of definite magnitude, and according to our assumption, the coat is worth twice as much as the ten yards of linen.
(BF) Coat and linen, however, are not merely values in general, but values of definite magnitude, and, following our assumption, the coat is worth twice as much as the 10 yards of linen.
(DK) Rock und Leinwand sind aber nicht nur Werte überhaupt, sondern Werte von bestimmter Größe, und nach unsrer Unterstellung ist der Rock doppelt soviel wert als 10 Ellen Leinwand.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웃옷과 아마포는 가치 일반일 뿐만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진 가치이며, 우리의 가정에 따르면 웃옷 1벌은 10엘레의 아마포에 비해 2배의 가치가 있다."

요컨대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은 사용가치와 관련해서는 질적인 의미만 인정되지만, 가치크기와 관련해서는 이미 다른 어떠한 질도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노동으로 환원되어 양적인 의미만 인정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노동의 방법과 내용(Wie und Was)이 문제가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양(Wieviel), 즉 시간의 길이가 문제가 된다. 한 상품의 가치크기는 그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상품들은 일정한 비율 아래에서는 늘 같은 크기의 가치이어야 한다.




가령 웃옷 1벌의 생산에 필요한 모든 유용노동의 생산력이 변하지 않는다면 웃옷의 가치크기는 웃옷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커진다. 만약 1벌의 웃옷이 x노동일(Arbeitstag)을 나타낸다면 2벌은 2x의 노동일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웃옷 1벌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2배로 늘어나거나 반으로 줄어드는 경우를 보자. 앞의 경우에는 1벌의 웃옷이 이전의 2벌과 같은 크기의 가치를 가지며, 뒤의 경우에는 2벌이 이전의 1벌과 같은 크기의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웃옷은 변함없이 똑같은 유용성이 있고 웃옷에 들어 있는 유용노동의 질도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13.1] 단지 웃옷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은 변하였다.

13.1
(SS) In the first case one coat is worth as much as two coats were before; in the second case, two coats are only worth as much as one was before, although in both cases one coat renders the same service as before, and the useful labour embodied in it remains of the same quality.
(BF) In the first case, one coat is worth as much as two coats were before; in the second case two coats are only worth as much as one was before, although in both cases one coat performs the same service, and the useful labour contained in it remains of the same quality.
(DK) Im ersten Fall hat ein Rock soviel Wert als vorher zwei Röcke, im letztern Fall haben zwei Röcke nur soviel Wert als vorher einer, obgleich in beiden Fällen ein Rock nach wie vor dieselben Dienste leistet und die in ihm enthaltene nützliche Arbeit nach wie vor von derselben Güte bleibt.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더 많은 양의 사용가치는 그 자체로 더 많은 소재적 부를 이룬다. 2벌의 웃옷은 1벌보다 큰 소재적 부이다. 2벌은 두 사람이 입을 수 있지만 1벌은 한 사람밖에 입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소재적 부의 양이 증가하는데도 그 가치크기는 그에 상응하여 오히려 감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상반된 변화는 노동의 이중적 성격(zwieschlächtigen Charakter der Arbeit)에서 비롯된다. 생산력은 물론 언제나 구체적이고 유용한 노동의 생산력이고, 사실상 주어진 시간 안에서의 합목적적 생산활동의 작용 정도만을 규정한다. [14.1] 그런 까닭에 유용노동은 생산력의 상승 또는 저하에 비례하여 더욱 풍부한 또는 더욱 빈약한 생산물의 원천이 된다. [14.2] 반면 생산력의 변동은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 그 자체에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생산력은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에 속하므로 노동에서 구체적인 유용형태가 제거되어버리고 나면 이미 노동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14.3] 그래서 동일한 노동은 생산력이 아무리 변해도 같은 시간 동안에는 늘 같은 크기를 산출한다. 그러나 이 노동은 같은 시간 동안에 서로 다른 양의 사용가치를 산출한다. 즉 생산력이 높아지면 좀 더 많은 사용가치를 산출하고 생산력이 낮아지면 좀 더 적은 사용가치를 산출한다. [14.4] 그러므로 노동의 산출능력을 증대시키고 따라서 노동에 의해 제공되는 사용가치의 양을 증대시키는 생산력의 변동 바로 그것이 이 증대된 사용가치 총량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총계를 단축시킬 때는 이 증대된 사용가치 총량의 가치크기는 감소한다. 그 역의 경우에는 반대가 된다. [14.5]

14.1
(SS) Productive power has reference, of course, only to labour of some useful concrete form, the efficacy of any special productive activity during a given time being dependent on its productiveness.
(BF) By 'productivity‘ of course, we always mean the productivity of concrete useful labour; in realty this determines only the degree of effectiveness of productive activity directed towards a given purpose within a given period of time.
(DK) Produktivkraft ist natürlich stets Produktivkraft nützlicher, konkreter Arbeit und bestimmt in der Tat nur den Wirkungsgrad zweckmäßiger produktiver Tätigkeit in gegebnem Zeitraum.
강 교수는 "den Wirkungsgrad zweckmäßiger produktiver Tätigkeit"을 "합목적적 생산활동의 작용 정도"라고 번역했는데 'Wirkungsgrad'는 영어로 '(degree of) effectiveness'를 뜻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번역해야 한다. "합목적적 생산활동의 유효성 정도"
14.2
(SS) Useful labour becomes, therefore, a more or less abundant source of products, in proportion to the rise or fall of its productiveness.
(BF) Useful labour becomes, therefore, a more or less abundant source of products in direct proportion as its productivity rises or falls.
(DK) Die nützliche Arbeit wird daher reichere oder dürftigere Produktenquelle im direkten Verhältnis zum Steigen oder Fallen ihrer Produktivkraft.
강 교수와 SS는 'direckten'을 번역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유용노동은 생산력의 상승 또는 저하에 직접 비례하여 더욱 풍부한 또는 더욱 빈약한 생산물의 원천이 된다."
14.3
(SS) Since productive power is an attribute of the concrete useful forms of labour, of course it can no longer have any bearing on that labour, so soon as we make abstraction from those concrete useful forms.
(BF) As productivity is an attribute of labour in its concrete useful form, it naturally ceases to have any bearing on that labour as soon as we abstract from its concrete useful form.
(DK) Da die Produktivkraft der konkreten nützlichen Form der Arbeit angehört, kann sie natürlich die Arbeit nicht mehr berühren, sobald von ihrer konkreten nützlichen Form abstrahiert wird.
강 교수는 영어로 "as soon as ..."에 해당하는 sobald를 "... 하면"으로 번역했다. "von ihrer konkreten nützlichen Form abstrahiert wird"에서 "구체적인 유용형태(ihrer konkreten nützlichen Form)"가 없어지는 것은 문맥상 '노동력(Produktivkraft)'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일어 동사 'berühren'는 영어로 'touch' 즉, '관계를 맺다'를 뜻하는데, 강 교수는 '영향을 미친다'로 번역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력은 노동의 구체적 유용형태에 속하므로 (생산력에서) 구체적인 유용형태가 제거되자마자 그것은 노동과 더이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14.4
(SS) But it will yield, during equal periods of time, different quantities of values in use; more, if the productive power rise, fewer, if it fall.
(BF) But it provides different quantities of use-values during equal periods of time; more, if productivity rise; fewer, if it falls.
(DK) Aber sie liefert in demselben Zeitraum verschiedene Quanta Gebrauchswerte, mehr, wenn die Produktivkraft steigt, weniger, wenn sie sinkt.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그러나 이 노동은 같은 시간 동안에 서로 다른 양의 사용가치를 산출하는데, 생산력이 커지면 좀 더 많은 사용가치를 산출하고, 생산력이 낮아지면 좀 더 적은 사용가치를 산출한다."
14.5
(SS) The same change in productive power, which increases the fruitfulness of labour, and, in consequence, the quantity of use values produced by that labour, will diminish the total value of this increased quantity of use values, provided such change shorten the total labour time necessary for their production; and vice versâ.
(BF) For this reason, the same change in productivity which increases the fruitfulness of labour, and therefore the amount of use-values produced by it, also brings about a reduction in the value of this increased total amount, if it cuts down the total amount of labour-time necessary to produce the use-values. The converse also holds.
Derselbe Wechsel der Produktivkraft, der die Fruchtbarkeit der Arbeit und daher die Masse der von ihr gelieferten Gebrauchswerte vermehrt, vermindert also die Wertgröße dieser vermehrten Gesamtmasse, wenn er die Summe der zu ihrer Produktion notwendigen Arbeitszeit abkürzt. Ebenso umgekehrt.
강 교수의 번역은 어딘가 이상하다. DK가 특별히 강조 구문이 아님에도 번역은 "생산력 변동"을 강조하는 그런 식으로 해놨다. 어쨌든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 생산성과 곧이어 노동이 제공하는 사용가치 양을 증가시키는 생산력의 이러한 변동은 만일 그것이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총계를 단축할 때면 이 증대된 총량의 가치크기를 감소시키며, 그 역은 반대가 된다."

모든 노동은 한편으로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일한 인간노동 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을 통해서 그것은 상품가치를 형성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모든 노동은 특수한 목적이 정해진 형태로서의 인간노동력의 지출이고, 이 구체적인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을 통해서 그 노동은 사용가치를 생산한다. 16) [15.1]

15.1
(SS) On the other hand, all labour is the expenditure of human labour power in a special form and with a definite aim, and in this, its character of concrete useful labour, it produces use values.
(BF) On the other hand, all labour is an expenditure of human labour-power in a particular form and with a definite aim, and it is in this quality of being concrete useful labour that it produces use-values.
(DK) Alle Arbeit ist andrerseits Verausgabung menschlicher Arbeitskraft in besondrer zweckbestimmter Form, und in dieser Eigenschaft konkreter nützlicher Arbeit produziert sie Gebrauchswerte.

<주석>

12) 앞의 책. 12~13쪽 이하.




13) "Tutti i fenomeni dell’universo, sieno essi prodotti della mano dell’uomo, ovvero delle universali leggi della fisica, non ci danno idea di attuale creazione, ma unicamente di una modificazione della materia. Accostare e separare sono gli unici elementi che l’ingegno umano ritrova analizzando l’idea della riproduzione: e tanto e riproduzione di valore (value in use, although Verri in this passage of his controversy with the Physiocrats is not himself quite certain of the kind of value he is speaking of) e di ricchezze se la terra, l’aria e l’acqua ne’ campi si trasmutino in grano, come se colla mano dell’uomo il glutine di un insetto si trasmuti in velluto ovvero alcuni pezzetti di metalio si organizzino a formare una ripetizione."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졌든 물리학의 일반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졌든, 사실 창조라기보다는 다만 소재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결합과 분리는 인간정신이 재생산이라는 표상(Vorstellung)의 분석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찾아내는 유일한 요소이다. 이것은 가치(사용가치를 말한다. 그러나 중농주의자들과의 이 논쟁에서 베리는 자기가 어떤 종류의 가치를 말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나 부의 재생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토지나 공기와 물이 밭에서 곡식으로 바뀌는 경우이건 누에의 배설물이 인간의 손에 의해 명주실로 바뀌는 경우이건, 또는 몇 개의 작은 금속조각이 모여 시각을 알리는 시계로 조립되는 경우이건 이것은 언제나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베리[Pietro Verri], 『경제학 고찰』(Meditazioni sulla Economia Politica), 초판, 1771, 쿠스토디(Custodi) 엮음. 『이탈리아 경제학 고전 전집』(Custodi’s edition of the Italian Economists), 근세편(Parte Moderna), 제15권, 21~22쪽).




14) 헤겔(G. W. F. Hegel), 『법철학』(Philosophie des Rechts), 베를린, 1840, 250쪽, 제190절 참조.




15) 독자가 주의해야 할 점은,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1노동일(Arbeitstag)에 대하여 노동자가 받는 임금(Arbeitslohn)이나 가치가 아니라 그의 노동일이 대상화된 상품가치라는 사실이다. 임금이라는 범주는 이 단계의 서술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16) 제2판의 주: "오직 노동만이 모든 시대에 모든 상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 진정한 척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같은 양의 노동은 언제 어디서든지 노동자 자신에게 동일한 가치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건강이나 체력 또는 활동이 정상상태이고, 또 그가 갖고 있는 숙련이 평균 수준을 유지할 때, 그는 늘 자신의 휴식•자유•행복을 똑같은(노동이 이루어진 만큼-옮긴이) 양으로 희생시켜야만 한다." ("Equal quantities of labour must at all times and in all places have the same value for the labourer. In his normal state of health, strength, and activity, and with the average degree of skill that he may possess, he must always give up the same portion of his rest his freedom, and his happiness.") (애덤 스미스, 『국부론』, 제1편, 제5장[104~105쪽]). 스미스는 여기에서(모든 곳에서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량에 의한 가치의 규정을 노동가치에 의한 상품가치의 규정과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같은 양의 노동은 언제나 같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또 상품의 가치로 나타나는 한, 노동은 노동력의 지출로 간주될 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리지만 다시 그 지출을 휴식이나 자유 또는 행복의 희생으로만 생각하고 정상적인 생명활동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근대적인 임노동자를 눈으로 보면서도 그렇게 하였다. — 주9에서 인용한 애덤 스미스의 익명의 선배는 훨씬 더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이 1주일 동안 생활필수품을 만들었다. ... 그리고 그와 물건을 교환하려는 사람이 가장 정확하게 그것의 등가물을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똑같은 노동과 시간을 들인 물건이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 말고는 없다. 사실 이것은 일정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에 소비한 노동과 같은 시간 동안 다른 물건에 소비한 다른 사람의 노동을 맞바꾸는 것을 뜻한다." ("one man has employed himself a week in providing this necessary of life ... and he that gives him some other in exchange cannot make a better estimate of what is a proper equivalent, than by computing what cost him just as much labour and time which in effect is no more than exchanging one man’s labour in one thing for a time certain, for another man’s labour in another thing for the same time.") (『금리 일반,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39쪽), {제4판의 주: 영어는 여기에서 고려하는 노동의 두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말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가치를 만들어내고 질적으로 규정되는 노동은 'work'로 'labour'와는 구별되고, 가치를 만들어내고 양적으로 측정되는 노동은 'labour'로 'work'와 다시 구별된다. — 영어판의 14쪽 주를 보라. — 엥겔스} [N6.1]

N6.1
BF에는 엥겔스의 주석에 대한 코멘트가 나와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엥겔스의 말이 항상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능한 엥겔스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Unfortunately, English usage does not always correspond to Engel's distinction. We have tried to adopt it where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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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87~95쪽에 해당한다.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
제1절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실체·가치크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집적' 1) 으로 나타나고, 하나하나의 상품(商品, Ware)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부터 시작한다.



상품은 우선 외적 대상으로, 그 속성을 통해 인간의 여러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물적 존재(Ding)이다. 이 욕망의 성질이 무엇인지는, 즉 이 욕망이 뱃속(생리적인 욕구—옮긴이)에서 나온 것인지 머릿속(정신적인 욕구—옮긴이)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은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2) 또 그 물적 존재가 생활수단, 즉 향유의 대상으로서 직접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가 아니면 생산수단으로서 간접적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가도 여기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종이 따위의 모든 유용물은 질과 양이라는 이중의 관점에서 각각 고찰될 수 있다. [3.1] 이들 각각의 물적 존재는 많은 속성을 갖춘 하나의 전체(Ganze)이며, 따라서 여러 방면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 여러 방면, 즉 물적 존재의 다양한 용도를 발견해내는 것은 역사의 업적에 해당한다. 3) 이 유용물(有用物)들의 양(量)을 측정하는 사회적 척도를 찾아내는 일도 역시 그러하다. [3.2] 상품의 척도가 다양해진 이유는 한편으로는 측정해야 할 대상의 본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관습 때문이다.

3.1
(SS) Every useful thing, as iron, paper, &c., may be looked at from the two points of view of quality and quantity.
(BF) Every useful thing, for example, iron, paper, etc., may be looked ad from the two points of view of quality and quantity.
(DK) Jedes nützliche Ding, wie Eisen, Papier usw., ist unter doppelten Gesichtspunkt zu betrachten, nach Qualität und Quantität.
DK의 'doppelten Gesichtspunkt'를 SS와 BF에서는 'two points of view', 강 교수는 '이중의 관점'으로 번역했다.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two points of view'는 한국어로 풀이하면 '두 가지 관점'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내가 보기에 '두 가지 관점'과 '이중의 관점'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즉, '두 가지 관점'은 따로 떼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이며 그것이 중첩되는지 혹은 시공간적으로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지 여부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중의 관점'은 서로 중첩되어 동시에 나타나는 어떤 '관점'을 뜻하며 둘 사이에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문장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 해석일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지만, 상황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3.2
(SS) So also is the establishment of socially-recognized standards of measure for the quantities of these useful objects.
(BF) So also is the invention of socially recognized standards of measurement for the quantities of these useful objects.
(DK) So die Findung gesellschaftlicher Maße für die Quantität der nützlichen Dinge.
DK의 ‘Findung’을 SS는 ‘establishment’, BF는 ‘invention’, 그리고 강 교수는 ‘찾다’라고 번역했다.

어떤 한 물적 존재의 유용성은 그 물적 존재를 사용가치(使用價値, Gebrauchswert)로 만든다. 4) 그러나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 유용성은 상품체(商品體, Warenkörper)의 속성에 따라 제약되며, 따라서 상품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4.1] 그러므로 철·밀·다이아몬드 같은 상품체는 그 자체로서 사용가치 또는 재화(財貨)이다. [4.2] 상품체의 이러한 성격은 그 유용성을 얻기 위해 인간이 소비한 노동의 양이 얼마 인지와는 무관하다. 사용가치를 고찰할 때는 언제나 몇 개의 시계, 몇 엘레의 배, 몇 톤의 철 따위와 같이 그 양적인 규정성(規定性, Bestimmtheit: 항상 일정한 양적 단위로 표현된다는 뜻—옮긴이)이 전제된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독자적인 하나의 교과목, 즉 상품학(商品學, Warenkunde)의 소재를 제공한다. 5) 사용가치는 오로지 사용되거나 소비됨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부의 소재적 내용을 구성한다. 또한, 사용가치는 우리가 고찰하게 될 사회형태에서 교환가치(Tauschwert)의 소재적 담지자가 된다. [4.3]

4.1
(SS) Being limited by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e commodity, it has no existence apart from that commodity.
(BF) It is conditioned by the physical properties of the commodity, and has no existence apart from the latter.
(DK) Durch die Eigenschaften des Warenkörpers bedingt, existiert sie nicht ohne denselben.
좀 더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 유용성은 상품체 속성에 따라 제약되므로 상품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번역하고 보니 별 차이는 없어 보인다.
4.2
(SS) A commodity, such as iron, corn, or a diamond, is therefore, so far as it is a material thing, a use value, something useful.
(BF) It is therefore the physical body of the commodity itself, for instance, iron, corn, a diamond, which is the use-value or useful thing.
(DK) Der Warenkörper selbst, wie Eisen, Weizen, Diamant usw., ist daher ein Gebrauchswert oder Gut.
DK의 'Gut'를 SS는 ‘something useful’, BF는 ‘useful thing’, 그리고 강 교수는 '재화'로 번역했다.
4.3
지금까지 내가 찾은 바에 따르면, 강 교수는 Träger에 대한 부분을 독일어 초판 서문을 제외하고는 전부 ‘담지자’로 번역했다. 독일어 초판 서문에서는 '담당자'로 번역했다.

교환가치는 우선 양적 관계, 즉 어떤 하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나며 6) 이 비율은 때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그러므로 교환가치는 우연적이고도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에 들어 있는 내재적인 교환가치, 곧 내재적 가치(valeur intrinsèque)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形容矛盾, contradicto in adjecto)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7) [5.1]

5.1
DK에서는 이 문장 앞에 주석 7)이 달려 있다. 즉,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 "… 이 비율은 때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7)"

어떤 하나의 상품, 예를 들어 1쿼터의 밀은 x량의 구두약, y량의 비단, z량의 금 따위의 상품, 요컨대 다른 여러 상품과 제각기 다른 비율로 교환된다. 따라서 밀은 하나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수많은 교환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x량의 구두약이나 y량의 비단 또는 z량의 금 등도 각각 1쿼터의 밀의 교환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x량의 구두약이나 y량의 비단 또는 z량의 금 등은 서로 대체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서로 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라야만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같은 상품에 적용되는 여러 교환가치는 모두 동일한 어떤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둘째, 교환가치는 일반적으로 교환가치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다른 어떤 내용물의 표현양식이자 '현상형태'일 수 있다. [6.1]

6.1
(SS) Therefore, first: the valid exchange values of a given commodity express something equal; secondly, exchange value, generally, is only the mode of expression, the phenomenal form, of something contained in it, yet distinguishable from it.
(BF) It follows from this that, firstly, the valid exchange-values of a particular commodity express something equal, and secondly, exchange-value cannot be anything other than the mode of expression, the ‘form of appearance’, of a content distinguishable from it.
(DK) Es folgt daher erstens: Die gültigen Tauschwerte derselben Ware drücken ein Gleiches aus. Zweitens aber: Der Tauschwert kann überhaupt nur die Ausdrucksweise, die "Erscheinungsform" eines von ihm unterscheidbaren Gehalts sein.
앞의 두 문장에 해당하는 주석이다. 특별한 뜻은 없고, 이 부분은 그냥 독일어 및 다른 영어 번역과 같이 기록해봤다.
[추가 부분 #1: grainydays 님께서 지적해주신 부분]: [6.1]에 해당하는 부분, 특히 강 교수가 번역한 "'교환가치는 일반적으로 교환가치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다른 어떤 내용물의 표현양식이자 '현상형태'일 수 있다"에 대한 DK 원본 "Der Tauschwert kann überhaupt nur die Ausdrucksweise, die "Erscheinungsform" eines von ihm unterscheidbaren Gehalts sein"에 대한 강 교수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 "'현상형태'일 수 있다"를 "'현상형태'일 수밖에 없다"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이는 독일어 문장 안에 영어로는 "only … at all"에 해당하는 "nur … überhaupt"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SS에서는 "only … , yet …" 그리고 BF에서는 "cannot be anything other than …"이란 표현으로 번역되었으며, 이것은 『자본론』의 일본어 번역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강 교수의 번역은 "이러이러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可能性)'의 측면을 말해줄 뿐이지만, 제대로 된 번역은 마르크스가 말하고 싶었던 "반드시 이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성(當爲性)', 즉 교환가치의 필연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2개의 상품, 예를 들어 밀과 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들의 교환비율은 그 크기가 얼마이건 언제나 일정한 양의 밀과 얼마만큼의 철이 등치 된다는 등식, 예를 들어 1쿼터의 밀=a첸트너(Zentner: 100파운드, 즉 50킬로그램을 나타내는 중량단위—옮긴이)의 철로 표현될 수 있다. 이 등식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것은 2개의 서로 다른 물적 존재, 곧 1쿼터의 밀과 a첸트너의 철 속에는 양자에 공통된 어떤 것이 같은 크기로 들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어떤 제3의 것과 동등한데, 이 제3의 것은 그 자체로서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모두, 교환가치인 한에서는, 이 제3의 것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한 기하학적 예를 들어보면 이것은 분명해진다. 온갖 다각형의 면적을 측정하여 서로 비교하기 위해 우리는 그 다각형을 몇 개의 삼각형으로 분해한다. 그리고 삼각형 자신의 면적은 외견상의 모양과는 전혀 다른 표현으로, 즉 밑변x높이의 1/2로 환원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교환가치도 그 양을 표시해줄 수 있는 어떤 공통물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 [8.1]

8.1
(SS) In the same way the exchange values of commodities must be capable of being expressed in terms of something common to them all, of which thing they represent a greater or less quantity.
(BF) In the same way the exchange values of commodities must be reduced to a common elements, of which they represent a greater or a lesser quantity.
(DK) Ebenso sind die Tauschwerte der Waren zu reduzieren auf ein Gemeinsames, wovon sie ein Mehr oder Minder darstellen.
DK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품의 교환가치는 대체로 그 양을 나타내는 어떤 공통물로 환원되어야만 한다."

이 공통물은 상품의 기하학적·물리학적·화학적 또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자연적인 속성일 수가 없다. 상품의 물체적 속성은 일반적으로 상품을 유용하게 하고 따라서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경우에만 고려되는 것이다. 반면 상품들 간의 교환관계는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를 사상(捨象, Abstraktion)해버림으로써 비로소 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9.1] 교환관계 내에서는 어느 하나의 사용가치란 그저 적당한 비율로 존재하기만 하면 그 밖의 다른 사용가치와 똑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또는 옛날에 바번(Barbon)이 말했듯이,

어떤 상품이든 교환가치의 크기가 같다면 이들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갖고 있는 여러 물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8)

사용가치라는 면에서 각 상품은 일단 질(質)적인 차이를 통해서 구별되지만, 교환가치라는 측면에서는 오로지 양(量)적인 차이를 통해서만 서로 구별되며, 이 경우 거기에는 사용가치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9.1
(SS) But the exchange of commodities is evidently an act characterised by a total abstraction from use value.
(BF) But clearly, the exchange relation of commodities is characterized precisely by its abstraction from their use-values.
(DK) Andererseits aber ist es grade die Abstraktion von ihren Gebrauchswerten, was das Austauschverhältnis der Waren augenscheinlich charakterisiert.
SS를 BF 및 강 교수 번역과 비교했을 때, 번역이 매끄럽지 않다. 그리고 DK의 'grade'는 현대 독일어에서는 'gerade'로 표현되는 것으로 영어로는 'precisely'를 뜻한다.

이제 상품체에서 사용가치를 제외시켜버리면 거기에 남는 것은 단 하나의 속성, 곧 노동생산물(勞動生産物, Arbeitsprodukt)이라는 속성뿐이다. 그러나 이 노동생산물도 이미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로 변화되어 있다. 노동생산물에서 사용가치를 배제해버리면, 그 노동생산물을 사용가치로 만드는 물적인 여러 성분이나 형태도 함께 배제되어버린다. 그것은 이미 책상이나 집 또는 실 등과 같은 유용한 물건이 아니다. 노동생산물의 감각적인 성질들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또한, 그것은 이미 가구노동이나 건축노동 또는 방적노동 등과 같은 일정한 생산적 노동의 산물도 아니다. 노동생산물의 유용한 성격과 더불어 노동생산물에 표현되어 있는 노동의 유용한 성격도 사라지고, 그와 함께 또한 이들 노동의 갖가지 구체적인 형태도 사라진다. 그것들은 이미 서로 구별되지 않는, 즉 모두가 동등한 인간노동인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10.1]

10.1
(SS) Along with the useful qualities of the products themselves, we put out of sight both the useful character of the various kinds of labour embodied in them, and the concrete forms of that labour; there is nothing left but what is common to them all; all are reduced to one and the same sort of labour, human labour in the abstract.
(BF) With the disappearance of the useful character of the products of labour, the useful character of the kinds of labour embodied in them also disappears; this in turn entails the disappearance of the different concrete forms of labour. They can no longer be distinguished, but are all together reduced to the same kind of labour, human labour in the abstract.
(DK) Mit dem nützlichen Charakter der Arbeitsprodukte verschwindet der nützlicher Charakter der in ihnen dargestellten Arbeiten, es verschwinden also auch die verschiedenen konkreten Formen dieser Arbeiten, sie unterscheiden sich nicht länger, sondern sind allzusamt reduziert auf gleiche menschliche Arbeit, abstrakt menschliche Arbeit.
DK에서 한 문장으로 나타낸 것을 영어 번역과 강 교수 번역은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이를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 생산물의 유용한 성격과 더불어 그 안에 내재한 노동의 유용한 성격도 사라지고, 이러한 노동의 구체적인 형태도 또한 사라지며, 그것은 더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 모두가 동일한 인간노동인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한다."

그러면 이제 이들 노동생산물에 남아 있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들 노동생산물에 남아 있는 것은 허깨비 같은 동일한 대상성(對象性, Geständlichkeit), 곧 무차별한 인간노동의 응결물(凝結物), 다시 말해 지출된 인간노동의 단순한—그 지출형태와는 무관한—응결물뿐이다. 이들 응결물은 그저 그것들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지출되었고 인간의 노동이 거기에 쌓여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11.1] 바로 이런 공통된 사회적 실체가 응결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이들 응결물은 바로 가치(價値, Werte), 즉 상품가치(商品價値, Warenwerte)이다. [11.2]

11.1
(SS) All that these things now tell us is, that human labour power has been expended in their production, that human labour is embodied in them.
(BF) All these things now tell us is that human labour-power has been expended to produce them, human habour is accumulated in them.
(DK) Diese Dinge stellen nur noch dar, daß in ihrer Produktion menschliche Arbeitskraft verausgabt, menschliche Arbeit aufgehäuft ist.
BF 그리고 SS와 비교했을 때, 강 교수 번역이 더 나아 보인다.
11.2
(SS) When looked at as crystals of this social substance, common to them all, they are – Values.
(BF) As crystals of this social substance, which is common to them all, they are values – commodity values.
(DK) Als Kristalle dieser ihnen gemeinschaftlichen Substanz sind sie Werte - Warenwerte.
아무리 해석해봐도 'common'이나 '공통된'에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는 이 문장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이해의 편의를 위해 마르크스가 쓰지 않은 'common‘ 혹은 '공통된'이란 표현을 번역본 안에 사용하고 있다. 물론 독일어로 'gemein'이 'common'이란 뜻을 나타내긴 하지만, 합성어 'gemeinschaftlichen'이 'social'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위 표현을 따로 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BF와 강 교수는 'Warenwerke'를 각각 '상품가치'와 'commodity values'로 번역했지만, SS는 'Values'로 번역했다.

상품의 교환관계 그 자체에서만 본다면 상품의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12.1] 그리고 실제로 노동생산물에서 사용가치를 배제해버리면, 우리는 방금 얘기했던 노동생산물의 가치를 얻게 된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관계 또는 교환가치에 나타나는 공통요소는 상품의 가치이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교환가치가 상품가치의 필연적인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임을 알게 되겠지만, 우선은 이런 형태와 무관하게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2.2]

12.1
(SS) We have seen that when commodities are exchanged, their exchange value manifests itself as something totally independent of their use value.
(BF) We have seen that when commodities are in the relations of exchange, their exchange-value manifests itself as something totally independent of their use-value.
(DK) Im Austauschverhältnis der Waren selbst erschien uns ihr Tauschwert als etwas von ihren Gebrauchswerten durchaus Unabhängiges.
DK에는 "우리는 이미 보았다" 또는 "We have seen that …"에 해당하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저 표현을 넣은 것 같지만, 좀 이상하다. 어쨌든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상품의 교환 관계 그 자체에서 교환가치는 마치 사용가치와 무관한 것처럼 나타난다."
12.2
(SS) The progress of our investigation will show that exchange value is the only form in which the value of commodities can manifest itself or be expressed. For the present, however, we have to consider the nature of value independently of this, its form.
(BF) The progress of the investigation will lead use back to exchange-value as the necessary mode of expression, or form of appearance, of value. For the present, however, we must consider the nature of value independently of its form of appearance.
(DK) Der Fortgang der Untersuchung wird uns zurückführen zum Tauschwert als der notwendigen Ausdrucksweise oder Erscheinungsform des Werts, welcher zunächst jedoch unabhängig von dieser Form zu betrachten ist.
SS와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 번역했다.

어떤 사용가치 또는 재화가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추상적인 인간노동이 그 속에 대상화(對象化, vergegenständlicht) 또는 체화(體化, materialisiert)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되는가? 그것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 즉 노동의 양으로 측정된다. 노동의 양 그 자체는 노동이 지속된 시간으로 측정되고, 노동시간은 다시 1시간이라든가 하루라든가 하는 일정한 단위를 그 척도로 삼는다.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동안에 지출된 노동량에 따라 정해진다면 게으르고 숙련이 낮은 사람일수록 상품을 생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상품은 그만큼 가치가 더 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일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상품세계의 가치로 나타나는 사회의 전체 노동력은 무수히 많은 개별 노동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두 똑같은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된다. 각 개별 노동력이 이처럼 모두 동일한 인간노동력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이들 각각의 개별 노동력이 모두 사회적 평균노동력이라는 성격을 띠고, 또한 바로 그런 사회적 평균노동력으로 작용하며, 그리하여 어떤 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도 오로지 평균적으로 필요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이 소요되어야 한다. [14.1]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정상적인 사회적 생산조건 아래에서 그 사회의 평균적인 숙련과 노동강도로써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요구되는 노동시간이다. [14.2]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증기 직기가 도입됨으로써 일정한 양의 실로 베를 짜는 데 소요되는 노동이 예전에 비해 대략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영국의 수직공(手織工: 증기 직기를 사용하지 않는 노동자—옮긴이)들은 베를 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이제 그들의 개별 노동시간의 생산물은 사회적 노동시간의 절반만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그 가치도 이전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져 버렸다.


14.1
(SS) Each of these units is the same as any other, so far as it has the character of the average labour power of society, and takes effect as such; that is, so far as it requires for producing a commodity, no more time than is needed on an average, no more than is socially necessary.
(BF) Each of these units is the same as any other, to the extent that it has the character of a socially average unit of labour-power and acts as such, i.e. only needs, in order to produce a commodity, the labour time which I necessary on an average, or in other words is socially necessary.
(DK) Jede dieser individuellen Arbeitskräfte ist dieselbe menschliche Arbeitskraft wie die andere, soweit sie den Charakter einer gesellschaftlichen Durchschnitts-Arbeitskraft besitzt und als solche gesellschaftliche Durchschnitts-Arbeitskraft wirkt, also in der Produktion einer Ware auch nur die im Durchschnitt notwendige oder 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braucht.
강 교수 번역은 의역이 지나치게 강한 것 같은데, 직역을 좀 섞어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개별 노동력이 사회적 평균노동력의 특징을 띠고 있고 사회적 평균노동력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며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평균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한, 이러한 개별 노동력 각각은 서로 간에 동일한 인간 노동력이다."
14.2
(SS) The labour time socially necessary is that required to produce an article under the normal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with the average degree of skill and intensity prevalent at the time.
(BF) Socially necessary labour-time is the labour-time required to produce any use-value under the conditions of productin normal for a given socienty and with the average degree of skill and intensity of labour prevalent in that society.
(DK) 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ist Arbeitszeit, erheischt, um irgendeinen Gebrauchswert mit den vorhandenen gesellschaftlich-normalen Produktionsbedingungen und dem gesellschaftlichen Durchschnittsgrad von Geschick und Intensität der Arbeit darzustellen.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사회적으로 정상인 생산조건과 평균적인 숙련도 및 노동 강도가 주어졌을 때 사용가치를 생산하는데 요구되는 노동시간이다."

그래서 어떤 사용가치의 가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 사용가치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뿐이다. 9) [15.1]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하나의 상품을 그것이 속한 종류의 평균표본으로 간주한다. 10) 따라서 같은 크기의 노동량이 포함된 상품들, 또는 같은 노동시간에 생산될 수 있는 상품들은 같은 크기의 가치를 갖는다. 한 상품의 가치와 다른 상품의 가치 사이의 비율은 한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과 다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사이의 비율과 같다.

가치로서의 상품은 그저 일정한 양의 응결된 노동시간일 뿐이다. 11) [15.2]

15.1
(SS) We see then that that which determines the magnitude of the value of any article is the amount of labour socially necessary, or the labour time socially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BF) What exclusively determines the magnitude of the value of any article is therefore the amount of labour socially necessary, or the labour-time socially necessary for its production.
(DK) Es ist also nur das Quantum gesellschaftlich notwendiger Arbeit oder die zur Herstellung eines Gebrauchswerts gesellschaftlich notwendige Arbeitszeit, welche seine Wertgröße bestimmt.
강 교수 번역과는 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어쨌든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서 사용가치의 가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또는 사용가치 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15.2
(SS) The value of one commodity is to the value of any other, as the labour time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the one is to that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the other. "As values, all commodities are only definite masses of congealed labour time."
(BF) The value of a commodity is related to the value of any other commodity as the labour-time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the one is related to the labour-time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the other. 'As exchange-values, all commodities are merely definite quantities of congealed labour-time.'
(DK) Der Wert einer Ware verhält sich zum Wert jeder andren Ware wie die zur Produktion der einen notwendige Arbeitszeit zu der für die Produktion der andren notwendigen Arbeitszeit. "Als Werte sind alle Waren nur bestimmte Maße festgeronnener Arbeitszeit."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단락으로 나눴다.

그러므로 만약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상품의 가치 크기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생산력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라 이 노동시간도 변한다. 노동생산력은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숙련 수준, 과학과 그 기술적 응용 가능성의 발전수준, 생산과정의 사회적 결합 정도,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그리고 갖가지 자연적 조건 등이 중요한 요인들이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노동이라 해도 풍년에는 8부셸(bushel: 영국의 곡물량 척도로, 약 36리터가 조금 넘는 부피를 나타낸다—옮긴이)의 밀로 표시되던 것이 흉년에는 겨우 4부셸의 밀로 표시된다. 같은 양의 노동으로 부광(富鑛)에서는 빈광(貧鑛)에서보다 더 많은 금속을 산출한다. 다이아몬드는 지표에 나와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는 데 평균적으로 많은 노동시간이 든다. 그런 까닭에 다이아몬드는 작은 크기로도 많은 노동을 표시한다. 제이콥(Jacob)은 금에 대하여, 일찍이 그 가치가 제대로 지불된 적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다이아몬드의 경우 그것은 더욱 그러하다. 에슈베게(Eschwege)에 따르면, 브라질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1823년을 기준으로 과거 80년 동안 산출한 총생산액은 브라질의 사탕농장이나 커피농장에서 1년 반 동안 산출한 평균생산물의 가격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실제 다이아몬드의 생산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이 들었고 따라서 더 많은 가치를 나타내야 하는데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16.1] 다이아몬드 광산이 부광이면 부광일수록 동일한 노동량은 더 많은 다이아몬드를 나타내고, 그만큼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만약 아주 적은 노동량으로 석탄을 다이아몬드로 바꿀 수 있다면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벽돌의 가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노동생산력이 높을수록 어떤 물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그만큼 작고 또 그 물품에 응결되어 있는 노동량도 그만큼 작으며 따라서 그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거꾸로 노동생산력이 낮을수록 어떤 물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그만큼 길고 따라서 물품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16.2] 따라서 한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 상품에 실현된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그 노동생산력에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


16.1
SS) According to Eschwege, the total produce of the Brazilian diamond mines for the eighty years, ending in 1823, had not realised the price of one-and-a-half years’ average produce of the sugar and coffee plantations of the same country, although the diamonds cost much more labour, and therefore represented more value.
(BF) According to Eschwerge, the total produce of the Brazilian diamond mines for the eighty years ending in 1823 still did not amount to the proce of 1 1/2 years' avergae produce of the sugar and coffee plantations of the same country, although the diamonds represented much more labour, therefore more value.
(DK) Nach Eschwege hatte 1823 die achtzigjährige Gesamtausbeute der brasilischen Diamantgruben noch nicht den Preis des 11/2jährigen Durchschnittsprodukts der brasilischen Zucker oder Kaffeepflanzungen erreicht, obgleich sie viel mehr Arbeit darstellte, also mehr Wert.
강 교수 번역은 DK, SS 및 BF와 비교했을 때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DK에서 나타나는 것보다도 더욱 당위적이며 단정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obgleich sie viel mehr Arbeit darstellte, also mehr Wert"를 적절하게 해석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다이아몬드 생산에는 더 많은 노동력이 들어 있고 더 많은 가치가 나타남에도 그렇다."
16.2
(SS) In general, the greater the productiveness of labour, the less is the labour time required for the production of an article, the less is the amount of labour crystallised in that article, and the less is its value; and vice versâ, the less the productiveness of labour, the greater is the labour time required for the production of an article, and the greater is its value.
(BF) In general, the greater the productivity of labour, the less the labour-time required to produce an article, the less the mass of labour crystallized in that article, and the less its value. Inversely, the less the productivity of labour, the greater the labour-time necessary to produce an article, and the greater its valeue.
(DK) Allgemein: Je größer die Produktivkraft der Arbeit, desto kleiner die zur Herstellung eines Artikels erheischte Arbeitszeit, desto kleiner die in ihm kristallisierte Arbeitsmasse, desto kleiner sein Wert. Umgekehrt, je kleiner die Produktivkraft der Arbeit, desto größer die zur Herstellung eines Artikels notwendige Arbeitszeit, desto größer sein Wert.
DK에서 두 문장으로 나타난 표현을 SS에서는 한 문장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강 교수는 'Artikels'을 물품으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책 전반에서 'Ware'를 '상품'으로 'Artikel'을 '물품'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사실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영어 번역에서도 'commodity'와 'article'은 같은 의미로 계속 번갈아가면서 사용되는데, 이것을 굳이 '상품' 혹은 '물품'으로 따로 번역할 필요없이 '상품'으로 일괄 번역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 참고로 'article'은 '
one of a class of artifacts'란 뜻이며, 'commodity'는 'articles of commerce'란 뜻이다.

어떤 물적 존재는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가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그 물적 존재의 효용이 노동에 의해 매개(vermittelt)되어 있지 않은 경우다. 예를 들면 공기나 처녀지, 천연의 초원이나 야생의 수목 따위가 그러하다. 어떤 물적 존재는 상품이 아니면서도 유용한 것일 수 있으며 또한 인간노동의 산물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생산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드는 것이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단지 타인을 위해서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중세의 농민은 영주에게 바치기 위해 세곡(稅穀)을 생산했고, 성직자를 위해 십일조 곡물을 생산했다. 그러나 세곡과 십일조 곡물은 모두 타인을 위해 생산된 것이면서도 상품이 되지는 못했다. 상품이 되려면 생산물은 교환을 통해 그것이 사용가치로써 쓰일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아가야만 한다.} 11a) 마지막으로 어떤 물적 존재도 사용대상이 되지 않고서는 가치가 될 수 없다. 만일 어떤 물적 존재가 쓸모가 없다면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도 쓸모없는 것이고 또한 노동으로 인정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가치를 이루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석>

1) 카를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베를린, 1859, 3쪽(MEW Bd. 13, 15쪽).



2) "욕구(desire, Verlangen)는 욕망(want, Bedürfnis)을 포함한다. 욕망은 육체에 배고픔이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에도 당연히 나타나는 갈증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적 존재는 정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점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 (“Desire implies want, it is the appetite of the mind, and as natural as hunger to the body … The greatest number (of things) have their value from supplying the wants of the mind.”) (바번[Nicholas Barbon], 『새 화폐의 무게를 줄이는 문제에 대한 고찰』, 런던, 1696, 2~3쪽).



3) "물적 존재들은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속성처럼 어디에서나 똑같이 작용하는 내재적인 속성(intrinsick vertue: 이것은 사용가치를 나타내는 바번의 독특한 용어이다)을 지니고 있다." (“Things have an intrinsick value which in all places have the same vertue; as the loadstone to attract iron.”) (같은 책, 6쪽). 철을 끌어당기는 자석의 속성은 그 속성을 매개로 한 자석의 극성을 발견한 뒤에야 비로서 유용해졌다.



4) "모든 물적 존재의 자연적 가치(natural worth)는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인간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기에 적합하다는 점에 있다."(“The natural worth of anything consists in its fitness to supply the necessities, or serve the conveniencies of human life.”) (로크[John Locke], 「이자율 인하의 결과에 관한 몇 가지 고찰」, 1691, 『저작집』 제2권, 런던, 1777, 28쪽). 17세기 영국 저술가들의 글에서는 사용가치(使用價値, Gebrauchswert)를 뜻하는 '가치'(worth)라는 말과 교환가치(交換價値, Tauschwert)를 뜻하는 '가치'(value)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것은 직접적인 것은 튜튼어(Teutonic word)로 표현하고 반성적인 것은 라틴어(Romance word)로 표현하곤 하던 영어의 정신에 전적으로 따른 것이다.

N4.1
'튜튼어'란 표현을 독일어 원전에서는 'germanisch'로 나타냈으며, '라틴어'는 'romanish'로 기술했다. 강 교수가 번역한 '튜튼어'와 '라틴어'란 표현은 '영어판'에서 사용된 번역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5)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구매자로서 상품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가설(ficto juris)이 지배한다.

N5.1
(SS) In bourgeois societies the economic fictio juris prevails, that every one, as a buyer, possesses an encyclopedic knowledge of commodities.
(BF) In brougeois society the legal fiction prevails that each person, as a buyer, has an encyclopedic knowledge of commodities.
(DK) In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herrscht die fictio juris, daß jeder Mensch als Warenkäufer eine enzyklopädische Warenkenntnis besitzt.
독일어 'enzyklopädisches'는 영어로 'encyclopedic (영어로 풀이하면 broad in scope or content)'을 뜻하는데, 이것을 강 교수는 '완전한'이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번역은 '해박한'이 맞다.

6) "가치는 한 물건과 다른 물건, 어떤 생산물의 일정량과 다른 생산물의 일정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환비율이다." (“La valeur consiste dans le rapport d’échange qui se trouve entre telle chose et telle autre entre telle mesure d’une production et telle mesure d’une autre.“) (르 트론[Le Trosne], 「사회적 이해에 대하여」, 『중농학파』, 데르[Daire] 엮음, 파리, 1846, 889쪽).



7) "내재적인 교환가치(intrinsick value)를 가진 것은 어디에도 없다."(“Nothing can have an intrinsick value.”) (바번, 앞의 책 6쪽). 또는 버틀러(Butler)가 말했듯이 "물건의 가치는 그것이 자신의 대가로 가져올 수 있는 바로 그 크기이다."



8) "… 100파운드스털링의 가치가 있는 납이나 철은 100파운드스털링의 가치가 있는 금이나 은과 똑같은 크기의 교환가치를 갖고 있다." ("One sort of wares are as good as another, if the value be equal. There is no difference or distinction in things of equal value ... One hundred pounds worth of lead or iron, is of as great a value as one hundred pounds worth of silver and gold.") (바번, 앞의 책, 53~57쪽).



9) 제2판의 주: "The value of them (the necessaries of life) when they are exchanged the one for another, is regulated by the quantity of labour necessarily required, and commonly taken in producing them." (사용대상, 즉 생필품이 서로 교환될 때, 그것들의 가치는 그 생산에 반드시 필요하고 통상 소요되는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금리 일반, 특히 공채이자에 관한 고찰』, 런던, 36•37쪽). 18세기에 간행된 이 주목할 만한 익명의 저서에는 간행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이 책은 조지 2세 치하인 1739년이나 1740년경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 "같은 종류의 생산물은 모두 본래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 것이므로 그 가격은 개별적인 조건들과 무관하게 한꺼번에 일반적으로 결정된다." (“Toutes les productions d’un même genre ne forment proprement qu’une masse, dont le prix se détermine en général et sans égard aux circonstances particulières.“) (르 트론, 앞의 글, 893쪽).



11) 카를 마르크스, 앞의 책, 6쪽



* 제1판에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덧붙여 있다. "우리는 이제 가치의 실체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이다. 우리는 가치크기척도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시간이다. 가치의 형태, 이것이야말로 가치교환가치라는 도장을 찍어주지만 이 형태를 분석하는 것은 이제부터 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먼저 그전에 이미 발견된 가치의 여러 성격을 조금 더 상세하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11a) {제4판의 주: 내가 괄호 안에 이 문구를 써넣은 것은 마르크스가 생산자 이외의 사람에 의해 소비된 생산물은 모두 상품으로 간주했다는 오해가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이다.-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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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76~84쪽에 해당한다.



제4판에 부쳐

제4판에서 나는 주석과 본문을 되도록이면 최종적으로 확정하고자 하였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는 간단히 얘기해두고자 한다.



프랑스어판과 마르크스의 자필 지시서를 다시 한 번 더 비교해본 다음 나는 프랑스어판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독일어 원본에 보충하였다. 그렇게 보충된 부분은 80쪽(제3판, 88쪽), 458~460쪽(제3판, 509쪽~510쪽), 547~551쪽(제3판, 600쪽), 591~593쪽(제3판, 644쪽), 596쪽(제3판, 648쪽)의 주 79 등이다. 8) 마찬가지로 나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의 예를 따라 광산노동자에 대한 기다란 주석을 본문에 삽입하였다(제4판, 461~467쪽). 9) 그 밖의 사소한 수정들은 순전히 기술적인 것들이다.



그 밖에 나는 몇 군데 해설 내용을 담은 보주(補註)를 삽입했는데, 이것은 특히 역사적 조건의 변화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그렇게 하였다. 이들 보주에는 모두 * 표시를 하고 내 이름의 첫 글자나 "D.H."를 적어 넣었다. 10)



그 사이에 출간된 영어판 때문에 많은 인용문을 완전히 새롭게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 영어판을 위해서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너(Eleanor)는 모든 인용문을 원문과 대조하는 수고를 해주었고, 그 덕분에 영어판에서는 전체 인용문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원전에서 인용한 부분이 독일어로부터 재번역되지 않고 영어 원문 그 자체가 실리게 되었다. [4.1] 그래서 제4판에서는 이들 영어 원문을 대조하는 것이 내게 큰일이었다. 그 결과 갖가지 사소한 오류들이 발견되었다. 페이지에 대한 지시가 틀린 것은, 일부는 노트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 적은 것이고, 일부는 판이 세 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식 때문이었다. 인용부호나 생략부호가 틀린 것도 있었는데 이는 발췌 노트에서 인용한 양이 많을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오류들이다. 여기저기에서 적절하지 못한 번역용어들도 발견되었다. 1843~45년 파리 시절의 낡은 노트에서 인용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마르크스가 아직 영어를 몰라서 영국 경제학자들의 책을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중번역 과정에서 발음에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 경우가 있었고—예를 들어 스튜어트(Steuart)·유어(Ure) 등과 같이—이런 부분들은 이제 영어 원문을 직접 이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이와 마찬가지의 사소하게 부정확하거나 소홀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제 이 제4판을 예전 판들과 비교해보면 이런 힘든 교열과정이 있었음에도 그것 때문에 이 책의 내용 가운데에 변화된 것이 있었다고는 전혀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단 하나,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에게서 인용한 부분(제4판, 562쪽, 주 47) 11) 만은 그 원본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썼던 것 같다. [4.2] 그 밖의 모든 인용문은 완전한 증거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거나 아니면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확한 현실을 통해서 자신의 증거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4.3]

4.1.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강 교수는 마르크스의 막내딸 Eleanor Marx를 '엘리너 마르크스'라 부르고 있다. 영어식으로는 그런 식으로 호명하겠지만, 독일어 방식으로 부른다면 '엘레아노르' 혹은 ;엘레아노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역시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냥 강 교수가 독일어 원문에 충실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한 번 짚어본 것이다.
4.2.
마르크스는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니다. 페이지를 잘못 기재한 것이다. 37쪽 대신 36쪽이라고 기재했음을 나중에 알아냈다. 물론 강 교수는 독일어원본만(!) 번역했다고 했으므로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4.3.
(SS) All the other quotations retain their cogency in full, or have enhanced it due to their present exact form.
(BF) All the other quotations retain their cogency in full, or have had their cogency enhanced by being put into their present exact form.
(DK) Alle andern behalten ihre volle Beweiskraft oder verstärken sie in der jetzigen exakten Form.
DK를 참조하면 "그 밖의 모든 인용문들은 설득력(혹은 타당성)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거나 혹은 (현실을 반영하는?) 현재의 정확한 형태에서 (자신의) 설득력을 강화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데, 강 교수 번역과 비슷한가? 잘 모르겠다. DK의 'in der jetzigen exakten Form'에 대해서 SS는 'due to their present exact form', BF는 'by being put into their present exact form', 그리고 강 교수는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확한 현실을 통해서'라는 다른 번역을 내놓았다. 솔직히 누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오래된 한 옛날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가 알기로는 마르크스의 인용문이 올바른 것인지 의심을 받은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그런데 이 의심이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떠돌아다니고 있어서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가 없다.



1872년 3월 7일 베를린에서 발간되는 독일 공장주협회 기관지 『콘코르디아』(Concordia)에 「카를 마르크스는 어떤 방식으로 인용하는가」라는 익명의 글 한 편이 실렸다. 이 글은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을 모두 써가면서 1863년 4월 16일 글래드스턴(Gladstone)의 예산연설(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을 가리킨다-옮긴이]의 창립선언문12)에도 인용되어 있으며, 『자본』 제1권 제4판, 617쪽과 제3판, 670~671쪽13)에 실려 있다)에 대한 인용이 날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용문 속에 나오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이런 부와 권력의 증가는 …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해당되고 있다"는 말은 핸서드(Hansard)의 (반[半]공식적인) 속기록에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1] "이 문장은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거기에는 그것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굵은 글씨로) "마르크스는 이 문장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위조하여 덧붙인 것이다!"

7.1.
(SS) It was here asserted, with an effervescence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that the quotation from Gladstone’s Budget Speech of April 16, 1863 (in the Inaugural Add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1864, and repeated in "Capital," Vol. I, p. 617, 4th edition; p. 671, 3rd edition) [present edition, p. 610], had been falsified; that not a single word of the sentence: "this intoxicating augmentation of wealth and power ... is ... entirely confined to classes of property" was to be found in the (semi-official) stenographic report in Hansard.
(BF) It was asserted there, with an excessive display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that the quotation from Gladstone’s Budget Speech of 16 April 1863 (in the Inaugural Add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1864, and repeated in Capital, Vol. 1, pp. 805-6) had been falsified; that not a single word of the sentence: 'this intoxicating augmentation of wealth and power … is … entirely confined to classes of property' was to be found in the (semi-official) stenographic report in Hansard.
(DK) Hier wurde mit überreichlichem Aufwand von sittlicher Entrüstung und von unparlamentarischen Ausdrücken behauptet, das Zitat aus Gladstones Budgetrede vom 16. April 1863 (in der Inauguraladresse der Internationalen Arbeiterassoziation von 1864 und wiederholt im "Kapital", I, S. 617, vierter Aufl., Seite 670-671, dritte Aufl. ) sei gefälscht. Der Satz: "Diese berauschende Vermehrung von Reichtum und Macht ... ist ganz und gar auf die besitzenden Klassen beschränkt", stehe mit keinem Wort im (quasioffiziellen) stenographischen Bericht von Hansard.
SS와 BF는 DK의 두 문장을 (형식적으로는) 한 문장으로 연결했다. DK의 'mit überreichlichem Aufwand von sittlicher Entrüstung und von unparlamentarischen Ausdrücken'라는 표현을 SS는 'with an effervescence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BF는 'with an excessive display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그리고 강 교수는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을 모두 써가면서'라고 번역했다. 아무리 해도 강 교수 같은 번역은 안 나오는데, 잘 모르겠다. 굳이 번역하면 '도덕적 분개와 비공식적인 언어의 과도한 표현'인데, 이걸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이 글이 실린 『콘코르디아』 해당 호를 그 해 5월에 받아본 마르크스는 6월 1일 『폴크스슈타트』(Volksstaat)를 통해서 익명의 필자에게 답변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인용한 잡지가 어떤 것이었는 것이 기억해내지 못해서 단지 똑같은 인용문이 실린 다른 두 개의 영국 서적을 명시한 다음 다시 『타임스』(Times)의 보도를 인용하였다. 그 보도에 따르면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부에 관한 문제의 진상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이런 현기증이 날 정도의 엄청난 부와 권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것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유복한 계급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우려와 아픔을 안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아무것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부와 권력의 증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정확한 보고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글래드스턴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고통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또한 그것은 바로 사실이기도 하다고, 즉 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엄청난 권력과 부의 증가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반공식적인 핸서드의 속기록과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중에 다시 정정된 속기록판을 통해서 글래드스턴은 약삭빠르게도 영국 재무장관의 입에서 나온 얘기로는 위험한 부분을 삭제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영국 의회의 오래된 전통에 따른 것으로, 베벨과 논쟁하던 라스커가 지어낸 날조와는 전혀 내용이 다른 것이다."



익명의 인물은 더욱 격분하였다. 『콘코르디아』 7월 4일 치의 답변에서 그는 2차 자료에 대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소극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암시적인 얘기를 늘어놓았다. 즉 의회연설은 속기록에 따라 인용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과 『타임스』의 보도(여기에 '허위로 덧붙인'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와 핸서드의 속기록(여기에는 그 덧붙인 문장이 없다)은 '실질적으로 완전히 일치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타임스』의 보도 내용 안에는 '창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그 악명 높은 구절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그 『타임스』의 보도가 자신이 얘기한 그 '정반대'의 내용과 함께 바로 그 ‘악명 높은 구절’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 이 익명의 인물은 자신이 암초에 걸렸으며 단지 새로운 구실 거리를 통해서만 자신이 구출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막 보여준 바와 같이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가득 찬 그의 논문에 온갖 쓰레기 같은 험담, 예를 들어 '악의'(mala fides), '파렴치함', '허위진술', '그 거짓 인용', '뻔뻔스러운 거짓말', '완전히 날조된 인용', '이 날조', '뻔한 비열함' 등과 같은 단어들을 채워 넣었다. 또한, 그는 쟁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음 논문에서 글래드스턴이 말한 내용들이 우리('거짓말쟁이'가 아닌 익명의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논의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런 엉뚱한 견해가 마치 이 문제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가 말한 다음 논문은 『콘코르디아』 7월 11일 치에 실려 있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8월 7일 치 『폴크스슈타트』를 통해 답변을 했는데 이번에는 문제가 된 부분과 관련된 1863년 4월 17일 자 『모닝 스타』(Morning Star)와 『모닝 애드버타이저』(Morning Advertiser)의 보도를 소개하였다. 두 신문 모두에 따르면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되어 있다. 즉 그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이 부와 권력의 증가가 만일 실질적으로 유복한 계급(classes in easy circumstances)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생각될 경우 이것을 우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데, 그럼에도 이러한 부의 증가 현상은 사실상 유산계급에만 한정되어 나타나고 있다(entirely confined to classes possessed of property)고 그는 말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두 신문의 보도도 바로 그 ‘허위로 덧붙여졌다’는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여기에 마르크스는 『타임스』와 핸서드 속기록의 본문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고 있다. 즉 다음 날 아침에 발간된 별개의 세 신문에 똑같이 실린 보도 내용을 통해서 실제로 얘기되었다고 확인된 문장이 잘 알려진 '관례'에 따라 교열을 받은 핸서드의 속기록에서는 빠져 있으며,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글래드스턴이 그 부분을 '나중에 슬쩍 훔쳐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 익명의 인물과 더 이상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익명의 인물도 그것으로 만족한 듯 보였고, 마르크스도 최소한 그 뒤로는 『콘코르디아』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이것으로 사건은 끝나고 묻혀버린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뒤에도 한 두 번 케임브리지 대학(the University of Cambridge)과 교류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마르크스가 『자본』 속에서 저질렀다는 범죄, 즉 집필과 관련된 그 엄청난 범죄에 대한 은밀한 소문이 들려오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보아도 그 이상 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 여덟 달 뒤인 1883년 11월 29일 자 『타임스』에 케임브리지(Cambridge)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로부터 배달된 편지가 한 통 실렸다. 발신자는 세들리 테일러(Sedly Taylor)로 되어 있었는데, 극히 온건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던 이 인간이 뜻밖에도 이 편지에서 케임브리지의 풍문은 물론 『콘코르디아』의 익명의 인물에 대해서도 그 내막을 우리에게 드디어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매우 특이하게 생각되는 것은 … 창립선언문 속에 글래드스턴의 연설을 그대로 옮겨 넣은 그 나쁜 짓을 폭로한 것이 … 브렌타노(Brentano) 교수(당시에는 브레슬라우[Breslau]에 있었고 지금은 스트라스부르[Strassburg]에 있다)였다는 것이다. 그 인용문을 변호하려고 했던 … 카를 마르크스는 브렌타노의 능숙한 공격에 몰려 곧바로 궁지에 빠지게 되자 교활하게도 글래드스턴이 1863년 4월 7일 자 『타임스』에 보도된 자신의 연설 내용 가운데 영국 재무장관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발언 부분은 핸서드의 속기록이 발간되기 전에 서둘러 삭제해버렸다고 주장하였다. 브렌타노가 두 원문을 꼼꼼하게 대조함으로써 마르크스가 교활한 발췌를 통해 바꿔치기해버린 글래드스턴 인용문의 의미가 이들 『타임스』와 핸서드의 속기록 모두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자 마르크스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진상이었다! 그리고 브렌타노가 『콘코르디아』를 통해서 벌린 이 익명의 싸움은 케임브리지 생산협동조합의 환상에 찬란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 독일 공장주협회의 성 게오르크(Sankt Georg: 용을 퇴치한 전설로 유명한 기독교의 성자-옮긴이)는 '능숙한 공격'으로 이처럼 칼을 휘둘렀고, 지옥의 용 마르크스는 '곧바로 궁지'에 빠져 그의 발아래에서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이 무용담은 우리의 성 게오르크가 저지른 술책을 은폐하는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이미 '덧붙인 거짓말'이나 '날조'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활하게 발췌된 인용'이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전체적인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렸으며 왜 그것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성 게오르크와 그의 케임브리지 앞잡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16.1]

16.1.
(SS) The whole issue was shifted, and St. George and his Cambridge squire very well knew why.
(BF) The whole issue was shifted, and St. George and his Cambridge shield-bearer were very well aware why they had done this.
(DK) Die ganze Frage war verschoben, und Sankt Georg und sein Cambridger Schildknappe wußten sehr genau weshalb.
DK의 'Schildknappe'는 영어로 'squire', 한국어로는 '기사(騎士)의 종자(從者)'를 뜻한다. 강 교수는 '앞잡이'로 번역했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타임스』가 게재를 거절했기 때문에 1884년 2월 월간지 『투데이』(To-Day)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밝혔다. 엘리너는 여기에서 원래 문제가 된 단 하나의 쟁점, 즉 마르크스가 그 문장을 '허위로 덧붙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대하여 세들리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마르크스와 브렌타노 사이의 논쟁에서 "어떤 문장이 글래드스턴의 연설에 실제로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내가 보기에 "그 인용문이 글래드스턴이 말하려고 했던 의미를 그대로 살리려고 했느냐 아니면 그것을 왜곡하려 했느냐의 문제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 다음 그는 『타임스』의 보도가 "사실상 말의 내용에서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수긍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내용을 정확하게, 즉 글래드스턴이 말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 바로 그것이 글래드스턴이 정말로 말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투데이』, 1884년 3월). 여기에서 가장 우스운 것은 이 케임브리지의 소인배가 연설문의 인용을 이제는, 익명의 브렌타노가 '관례'라고 존중했던 핸서드 속기록이 아니라 똑같은 브렌타노가 '틀림없이 잘못 씌어졌다'고 지적했던 바로 그 『타임스』의 보도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문제가 된 그 문장이 빠져 있는 것은 바로 핸서드 속기록인데 말이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이 주장을 『투데이』 같은 호 안에서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먼저 테일러가 1872년의 논쟁을 모두 읽었을 경우 그는 사실을 '허위로' '덧붙였을'뿐만 아니라 '삭제해' 버리기까지 한 셈이다. 그렇지 않고 그가 이 논쟁을 읽지 않았다면 그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확실한 것은 마르크스가 '허위로 덧붙였다'고 주장한 브렌타노의 고발에 대해서 그가 단 한 순간도 지지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이제 마르크스가 무엇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구절을 하나 숨겨버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은 창립선언문의 5쪽에 이른바 '허위로 덧붙여졌다'고 언급되는 바로 그 구절 몇 줄 앞에 인용되어 있다. 또한, 글래드스턴의 연설에서 드러나는 모순에 관해서 말한다면, 『자본』 618쪽(제3판, 672쪽)의 주 105 15) 에서 '1863년과 1864년 글래드스턴의 예산연설에서 계속 드러나는 모순들'에 대해서 얘기한 사람은 바로 마르크스가 아닌가! 마르크스는 단지 이들 모순을 세들리 테일러처럼 자유주의적인 태평스러움으로 해소해버리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엘리너 마르크스가 밝힌 답변의 결론을 요약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반대로 마르크스는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조금도 무엇을 허위로 덧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분명하게 얘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핸서드 속기록에서 누락되어버린 어떤 구절을 망각되지 않도록 되살려놓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세들리 테일러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20년 동안 이 두 큰 나라에 걸쳐서 교수 일당이 벌여온 음모가 거둔 전체적인 성과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해서 그 정직성을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는 것과 그 이후로 세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논쟁적 저작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또한 브렌타노는 핸서드 속기록의 완전무결성에 대한 교황적 권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1890년 6월 25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주석>
 

8) 이 책의 130, 517~519, 610~613, 655~657, 660쪽을 볼 것.
9) 이 책의 519~525쪽을 볼 것.
10) 이 책에서는 { }로 묶고 '엥겔스'(원문에는 F.E.로 되어 있다-옮긴이)라고 표기하였다.
11) 이 책의 625쪽을 볼 것.
12) MEW판 16권, 3~13권을 볼 것.
13) 이 책의 680/681쪽을 볼 것.
14) 이 책의 682쪽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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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70~75쪽에 해당한다.



영어판 서문

『자본』의 영어판 발간에는 별다른 해명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이론이 영국과 미국에서 정기간행물이나 최신 저작들을 통해서 공격을 받거나 옹호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대로 설명되거나 오해받기도 하는 등 온갖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어판이 왜 지금까지 미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직후 이 책의 영어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 이 책의 번역을 떠맡겠다고 나선 사람은 마르크스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이 책에 대해서 아마 어느 누구보다 정통한다고 생각되는 새뮤얼 무어(Samuel Moore)였다. 실로 그 영어판의 발간은 마르크스 유고에 대한 유언 집행자 모두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2.1] 나는 초고와 원본을 비교하여 수정된 부분 가운데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제시해주는 일을 맡기로 하였다. 그런데 무어가 자신의 직업적인 일에 쫓겨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만큼 빠른 속도로 번역을 마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을 때 이번에는 에이블링(Dr. Aveling)이 이 일의 일부를 떠맡겠다고 제안하였고, 우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막내딸 에이블링 부인이 인용문들을 맡아서 영국의 저자들이나 청서(淸書)에서 발췌하여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옮겨놓은 부분을 모두 원문 그대로 복원하는 일을 맡기로 하였다. [2.2]

2.1.
(SS) When, soon after the author's death in 1883, it became evident that an English edition of the work was really required, Mr. Samuel Moore, for many years a friend of Marx and of the present writer, and than whom, perhaps, no one is more conversant with the book itself, consented to undertake the translation which the literary executors of Marx were anxious to lay before the public.
(BF) When, soon after the author’s death in 1883, it became evident that an English edition of the work was really required, Mr Samuel Moore, for many years a friend of Marx and of the present writer, and than whom, perhaps, no one is more conversant with the book itself, consented to undertake the translation which the literary executors of Marx were anxious to lay before the public.
(DK) Als es, bald nach dem Tode des Verfassers im Jahre 1883, klar wurde, daß eine englische Ausgabe des Werkes wirklich benötigt wurde, erklärte sich Herr Samuel Moore, ein langjähriger Freund Marx' und des Schreibers dieser Zeilen, und mit dem Buch selbst vertrauter vielleicht als irgend jemand, dazu bereit, die Übersetzung zu übernehmen, die es die literarischen Testamentsvollstrecker von Marx drängte, der Öffentlichkeit vorzulegen.
SS, BF, DK의 한 문장을 강 교수는 이 문장과 앞의 문장 두 개로 나눴다.
2.2.
(SS) This has been done throughout, with but a few unavoidable exceptions.
(BF) This has been done throughout, with but a few unavoidable exceptions.
(DK) Das ist durchgängig geschehen bis auf einige unvermeidbare Ausnahmen.
이 문장 다음에 SS, BF, DK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더 있지만, 강 교수는 번역하지 않았다. 번역의 노고는 위로하지만 저자가 쓴 단 한 문장 단 한 단어라도 절대로 빼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작업은, 몇몇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 전반을 거쳐 샅샅이 이루어졌다."

이 책 가운데 다음 부분은 에이블링이 번역한 것이다. ① 제10장(노동일)과 제11장(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② 제6편(임금, 제19장~제22장) ③ 제24장 제4절(갖가지 사정)부터 이 책의 끝 부분까지—여기에는 제24장의 마지막 부분과 제25장 그리고 제8편 전체(제26장~제33장)가 해당된다. ④ 두 개의 저자 서문, 나머지 부분은 모두 무어가 번역하였다. [3.1] 따라서 번역자들은 각자 자신이 담당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지만, 나는 이 책 전체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3.1.
강 교수가 빠뜨린 부분이다. 물론 독일어판에는 없으니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엥겔스가 영어판에서는 (자신의 임의대로? 아니면 마르크스가 지시한 대로?) 독일어판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엥겔스는 『자본론』의 영어판을 독일어와는 다르게 구성을 바꿨는데, 4장의 세 개 절과 24장의 일곱 개 절을 독립된 장으로 나눴고 본원 축적에 대한 부분을 8편으로 만들었다. 독일어판과 영어판의 목차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독일어판 1-3장=영어판 1-3장, 독일어판 4장=영어판 4-6장, 독일어판 5-23장=7-25장, 독일어판 24장=영어판 26-32장, 독일어판 25장=영어판 33장, 독일어판 7편=영어판 7-8편.

줄곧 우리 작업의 대본이 된 것은 독일어 제3판이었는데 이것은 마르크스가 남겨둔 메모의 도움을 받아 1883년에 내가 편집한 것으로, 그 메모에는 제2판의 본문 가운데 1873년에 출간된 프랑스어판에 맞추어 바꾸어야 할 부분이 표시되어 있었다. 6) 제2판의 본문에 표시된 이들 수정사항은 마르크스가 영어판 번역을 위해서 자필로 표시해둔 수정사항과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었는데, 원래 이 영어판 번역은 10년 전 미국에서 출판하기로 계획했다가 무엇보다 제대로 된 번역자를 찾을 수 없어서 포기했던 것이었다. 영어 번역을 위한 이 수고(手稿)는 우리의 오랜 친구인 뉴저지 주 호브켄에 사는 조르게(F. A. Sorge)가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이 수고는 프랑스어판에서 몇 가지를 더 발췌하여 삽입하도록 지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제3판을 위한 최근의 지시사항들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특별히 우리에게 난점을 해결해준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어려운 부분에서 프랑스어판 본문이 참고가 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번역을 위해서 원문의 전체적인 의미 가운데 뭔가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경우 마르크스 자신이 무엇을 희생시키려 했을지를 판단하는 근거로만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독자들을 위해서 제거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어려움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몇몇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의미와는 물론 경제학에서 통상 사용되는 의미와도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모든 학문의 새로운 견해는 이 학문에서 사용되던 전문용어들의 혁명을 포함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화학이다. 화학에서는 대략 20년마다 전체 용어가 완전히 바뀌고 유기화합물 가운데 이름이 계속 변해오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경제학은 지금까지 대체로 상공업부문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왔으며, 그 결과 그런 용어들로 표현되는 생각들이 갖는 좁은 한계에 스스로 갇혀왔다는 점을 완전히 간과해왔다. 그래서 고전파 경제학도 그들이 이미 이윤과 지대가 생산물 가운데 노동자가 자신의 기업가(기업가는 불불[不拂, unbezahlt] 부분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소유자는 아니지만, 그것을 최초로 취득하는 자이다)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불 부분의 일부, 즉 그것의 조각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윤과 지대의 일상적인 개념의 한계를 한 번도 뛰어넘지 못했고, 또한 생산물 가운데 이 불불 부분(마르크스는 이것을 잉여가치라고 일컬었다)을 하나의 전체로서 한 번도 포괄적으로 고찰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결국 이들의 원천과 본질은 물론 가치나 나중에 배분되는 법칙에 대해서도 전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5.1] 이와 비슷하게 농업이나 수공업이 아닌 모든 산업도 매뉴팩처(Manufacture)라는 용어와 아무런 구분 없이 함께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경제사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커다란 시기, 즉 수공업노동의 분화에 기초한 원래의 매뉴팩처 시기와 기계에 기초한 근대산업 시기 사이의 구별이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근대 자본주의 생산을 인류의 경제사에서 하나의 단순한 발전단계로 간주하는 이론은, 이 생산양식을 결코 소멸하지 않는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저술가들이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과는 전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5.1.
(SS) Thus, though perfectly aware that both profits and rent are but sub-divisions, fragments of that unpaid part of the product which the labourer has to supply to his employer (its first appropriator, though not its ultimate exclusive owner), yet even classical Political Economy never went beyond the received notions of profits and rents, never examined this unpaid part of the product (called by Marx surplus-product) in its integrity as a whole, and therefore never arrived at a clear comprehension, either of its origin and nature, or of the laws that regulate the subsequent distribution of its value.
(BF) Thus, though perfectly aware that both profits and rent are but sub-divisions, fragment of that unpaid part of the product which the labourer has to supply to his employer (its first appropriator, though not its ultimate exclusive owner), yet even classical political economy never went beyond the received notions of profits and rents, never examined this unpaid part of the product (called by Marx surplus product) in its integrity as a whole, and therefore never arrived at a clear comprehension, either of its origin and nature, or of the laws that regulate the subsequent distribution of its value.
(DK) So ist selbst die klassische politische Ökonomie, obgleich sie sich vollkommen bewußt war, daß sowohl Profit wie Rente nur Unterabteilungen, Stücke jenes unbezahlten Teils des Produkts sind, das der Arbeiter seinem Unternehmer(dessen erstem Aneigner, obgleich nicht letztem, ausschließlichem Besitzer) liefern muß, doch niemals über die üblichen Begriffe von Profit und Rente hinausgegangen, hat sie niemals diesen unbezahlten Teil des Produkts(von Marx Mehrprodukt genannt) in seiner Gesamtheit als ein Ganzes untersucht und ist deshalb niemals zu einem klaren Verständnis gekommen weder seines Ursprungs und seiner Natur, noch auch der Gesetze, die die nachträgliche Verteilung seines Werts regeln.
문장이 너무 길어 번역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강 교수의 번역은 뭔가 문제가 있다. 특히 'Mehrprodukt'은 ‘잉여생산물’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Verteilung seines Werts'를 '가치의 분배'가 아니라 '가치나 … 분배'라고 번역했다. "그리하여 고전파 정치경제학도, 이윤과 지대 둘 다 노동자가 고용주(불불 부분의 궁극적 소유자는 아니지만, 최초 수혜자)에게 제공해야만 하는 생산물의 불불 부분의 조각들이라는 일부분임을 완벽히 알고 있음에도, 결코 이윤과 지대의 일상적 개념을 뛰어넘지 않았고, 이런 생산물의 불불 부분(마르크스가 잉여생산물이라고 부른 것)을 전체로서 포괄적으로 조사한 적도 없으며, 그래서 그 기원과 본질을 물론 가치의 뒤이은 분배를 조절하는 법칙에 대해서도 명확히 이해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의 인용방식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여둘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대부분의 경우 마르크스의 인용도 보통의 방식대로 본문에서 제기된 주장에 대해 문서적인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 저술가들을 인용한 많은 부분에서는 어떤 하나의 견해가 언제 어디에서 그리고 누구에 의해 처음 명시적으로 주장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런 인용은 인용된 견해가 해당 시기에 지배적이던 사회적 생산 및 교환 조건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표현했는지 그 중요성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마르크스가 그 견해들을 인정하는지 여부나 그 견해가 일반적인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들 인용은 경제학의 역사로부터 발췌한 주석으로서 본문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번역한 것은 전체 저작의 제1권에 해당할 뿐이다. 그러나 이 제1권은 상당 부분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결된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독립된 저작으로 간주되어왔다. 1885년에 내가 독일어로 출간한 제2권은 제3권이 없이는 전적으로 불완전한 것인데, 제3권은 1887년 말까지도 출간될 가능성이 없다. 제2권과 제3권의 영어판 준비는 제3권의 독일어 원본이 출간되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자본』은 유럽 대륙에서 종종 ‘노동자 계급의 성서’라고 불린다. 이 저작에서 얻어진 결론들이 독일과 스위스는 물론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위대한 노동계급운동의 기본원칙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으며 또한 모든 나라의 노동 계급이 이들 결론이야말로 바로 자신들의 상태와 열망을 가장 잘 표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이 운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8.1] 그리고 영국에서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지금 이 순간 사회주의 운동—노동자 계급 못지않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확산되고 있는—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상태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불가항력적인 국가적 필요 때문에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 급속하게 다가오고 있다. 생산과 시장이 끊임없이 급속하게 확대되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영국 산업체계의 움직임이 정지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자유무역은 그 밑천이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맨체스터(Manchester)에서까지도 왕년의 이 경제적 복음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7) 급속하게 발전한 외국의 산업은 도처에서, 즉 보호관세 지역과 중립적 시장은 물론 심지어 영국의 국내시장에서까지도 영국의 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8.2] 생산력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시장의 확대는 기껏해야 산술급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1825년부터 1867년까지 10년을 주기로 침체, 호황, 과잉생산, 위기를 반복적으로 거쳐 가던 순환은 이제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를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의 절망적인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한 것일 뿐으로 보인다. 고대하는 호황의 시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호황기의 징조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그것은 언제나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는 동안 겨울철이 다가올 때마다 '실업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실업자 수는 해마다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 이 문제에 답변을 제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실업자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시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경제상태와 경제사에 대한 평생의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전 이론을 수립하고 이 연구를 통해 최소한 유럽에서 영국이야말로 불가항력적인 사회혁명이 전적으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을 얻은 이 인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영국의 지배 계급이 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혁명에 대하여 ‘노예제 옹호 반란’(proslavery rebellion)도 없이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1886년 11월 5일
프리드리히 엥겔스


8.1.
(SS) “Das Kapital” is often called, on the Continent, “the Bible of the working class.” That the conclusions arrived at in this work are daily more and more becoming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great working-class movement, not only in Germany and Switzerland, but in France, in Holland and Belgium, in America, and even in Italy and Spain, that everywhere the working class more and more recognises, in these conclusions, the most adequate expression of its condition and of its aspirations, nobody acquainted with that movement will deny.
(BF) Capital is often called, on the Continent, ‘the Bible of the working class’. That the conclusions arrived at in this work are daily more and more becoming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great working-class movement, not only in Germany and Switzerland, but in France, in Holland and Belgium, in America, and even in Italy and Spain, that everywhere the working class more and more recognizes, in these conclusions, the most adequate expression of its condition and of its aspirations, nobody acquainted with that movement will deny.
(DK) "Das Kapital" wird auf dem Kontinent oft "die Bibel der Arbeiterklasse" genannt. Daß die in diesem Werk gewonnenen Schlußfolgerungen täglich mehr und mehr zu grundlegenden Prinzipien der großen Bewegung der Arbeiterklasse werden, nicht nur in Deutschland und der Schweiz, sondern auch in Frankreich, in Holland und Belgien, in Amerika und selbst in Italien und Spanien; daß überall die Arbeiterklasse in diesen Schlußfolgerungen mehr und mehr den angemessensten Ausdruck ihrer Lage und ihrer Bestrebungen anerkennt, das wird niemand leugnen, der mit dieser Bewegung vertraut ist.
이 문장도 상당히 긴 편인데, 누구의 번역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 번역은 다음과 같다. "『자본론』은 유럽 대륙에서 흔히 ‘노동자 계급의 성서’라고 불린다. 이 저작에서 도달한 결론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독일과 스위스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심지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위대한 노동자 계급운동의 기본 원칙들이 되어가고 있으며, 곳곳에서 노동자 계급이 점점 자신의 상태와 열망에 대한 가장 적당한 표현을 이러한 결론들에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 운동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8.2.
(SS) Foreign industry, rapidly developing, stares English production in the face everywhere, not only in protected, but also in neutral markets, and even on this side of the Channel.
(BF) Foreign industry, rapidly developing, stares English production in the face everywhere, not only in protected, but also in neutral markets, and even on this side of the Channel.
(DK) Die sich schnell entwickelnde ausländische Industrie starrt der englischen Produktion überall ins Gesicht, nicht nur auf zollgeschützten, sondern auch auf neutralen Märkten und sogar diesseits des Kanals.
번역상의 차이일 뿐이겠지만, 강 교수는 '노려보고 있다'라고 번역했는데, SS, BF, DK는 '목전에 다가오다' 혹은 '눈 앞에 있다' 정도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의미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주석>
 

6)『자본. 카를 마르크스』(Le Capital. Par Karl Marx), 루아(M. J. Roy) 옮김, 저자 완전 교열, 파리, 라샤트르(Lachâtre) 간행. 이 번역본에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독일어 제2판을 상당히 수정 보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7) 오늘 오후에 맨체스터 상업회의소의 4분기 회의에서는 자유무역 문제를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음과 같은 취지의 결의안이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자유무역에 대한 영국의 사례를 본받아 따르기를 40년간이나 기다려왔으나 그것은 허사였다. 그래서 우리 회의소는 이제 이런 관점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결의안은 찬성 21표, 반대 22표의 단 한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 1886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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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66~69쪽에 해당한다.



제3판에 부쳐

마르크스는 이 제3판의 인쇄를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의 적들까지도 그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는 이 뛰어난 사상가는 1883년 3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나는 40년 동안 가장 훌륭하고 믿음직했던 친구를, 그리고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빚을 진 친구를 잃었으며 이제 나에게는 이 제3판의 출간과 아직 초고상태로 남겨진 제2권의 출간을 담당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이제 나는 여기에서 그 첫 번째 의무인 제3판의 출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원래 제1권의 본문을 대부분 고쳐 쓰는 것은 물론 많은 이론적 부분들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고 새롭게 덧붙이고 또한 역사적인 자료나 통계적인 자료를 최근의 것들로 보완할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세가 계속 좋지 않았던 데다 제2권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 때문에 그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단지 꼭 필요한 부분들만이 수정되었고 그 사이에 출간된 프랑스어판(Le Capital. Par Karl Marx, Paris, Lachâtre, 1873)에 이미 새롭게 추가된 부분들만 덧붙여졌을 뿐이다.



그가 남긴 유고 속에는 군데군데 수정을 가하고 프랑스어판을 참고하라고 지시해둔 독일어판이 한 권 있었고 그가 해당되는 부분을 자세하게 표시해둔 프랑스어판도 한 권 있었다. 이렇게 수정되고 첨가된 부분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책의 마지막 부분, 즉 '자본의 축적과정' 편에 대한 것들이었다. 제2판에서 이편의 앞부분은 완전히 새롭게 고쳐 쓴데 반해 이편은 원래의 초고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문체에서 이편은 훨씬 생생하고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덜 다듬어지고 영어식의 특유한 말투가 뒤섞인 채로 있었으며 군데군데 불분명한 부분도 많았다. 그리하여 논리적인 전개과정에서도 군데군데 빈틈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이는 논리전개에서 중요한 몇몇 계기가 단지 암시되는 데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스스로 여러 절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는데, 이렇게 수정된 부분들과 마르크스 스스로 여러 곳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암시들을 통해서 나는 영어식의 기술적인 표현과 말투를 어느 정도까지 없애버려도 될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만일 마르크스가 살아 있었다면 추가된 부분과 보완된 부분도 좀 더 손을 보았을 것이고 매끄러운 프랑스어도 그 자신의 간결한 독일어로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부분을 원래의 본문에 최대한 적합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제3판에서는 마르크스 자신이 수정하려고 했다는 것을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을 말고는 하나도 수정되지 않았다. 독일 경제학자들이 흔히 잘 사용하는 항간의 은어들, 즉 예를 들어 현금을 지불하는 대신 타인으로 하여금 노동을 제공하도록 하는 사람을 노동수여자(Arbeitgeber), 이 사람에게 임금의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빼앗기는 사람을 노동수취자(Arbeitnehmer)이라고 일컫는 그런 조리에도 닿지도 않는 용어들을 『자본』에 끌어들이는 일 따위는 내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에서도 노동(travail)은 일상생활에서 '일'(Beschäftigung)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만일 자본가를 donneur de travail(노동수여자), 노동자를 receveur de travail(노동수취자)라고 부르려는 경제학자가 있다면 프랑스 사람들은 당연히 그 사람을 돌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문 속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는 영국의 화폐단위나 도량형단위도 나는 독일의 최근 화폐단위나 도량형단위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7.1] 초판이 발간될 당시 독일에는 일 년 365일만큼이나 제각각인 도량형단위들이 있었고, 게다가 화폐단위로는 두 종류의 마르크(Mark)(당시 제국마르크는 1830년대 말에 그것을 창안한 죄트베르[Adolf Soetbeer]의 머릿속에서만 통용되고 있었다)와 두 종류의 굴덴(Gulden) 그리고 최소한 세 종류의 탈러(Taler)가 있었으며, 탈러 가운데 하나는 '노이에 츠바이드리텔(neue Zweidrittel: '새로운 '3분의 2'라는 뜻-옮긴이)을 단위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7.2.] 자연과학에서는 미터법이, 그리고 세계시장에서는 영국의 도량형단위들이 통용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 사례를 거의 영국의 산업상황에 의존해야만 했던 이 책으로서는 영국의 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세계시장에서 쓰이는 도량형단위가 오늘날에도 별로 변함이 없고 특히 핵심적인 산업들—철과 면화—에서는 영국의 도량형단위들이 거의 전적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7.1.
(SS) Nor have I taken the liberty to convert the English coins and moneys, measures and weights used throughout the text to their new-German equivalents.
(BF) Nor have I taken the liberty of converting the English coins and money, weights and measures used throughout the text in their new German equivalents.
(DK) Ebensowenig habe ich mir erlaubt, das im Text durchweg gebrauchte englische Geld, Maß und Gewicht auf seine neudeutschen Äquivalente zu reduzieren.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본문 전체에 사용한 영국 화폐와 도량형을 최근 독일 것으로 바꾸는 것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을 의역하면 "나는 본문 전체에 사용한 영국 화폐와 도량형을 최근 독일 것으로 바꾸지 않았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강 교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지 않다.
7.2.
(SS)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measures and weight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Besides there were two kinds of marks (the Reichsmark existed at the time only in the imagination of Soetbeer, who had invented it in the late thirties), two kinds of gulden and at least three kinds of taler, including one called neues Zweidrittel. In the natural sciences the metric system prevailed, in the world market — English measures and weights.
(BF)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weights and measure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Apart from this, there two kinds of mark (the Reichsmark only existed in the time in the imagination of Soetbeer, who had invented it in the late thirsties), two kinds of guilder, and at least three kinds of thaler, including one called the neues Zweidrittel.
(DK) Als die erste Auflage erschien, gab es in Deutschland so viel Arten von Maß und Gewicht wie Tage im Jahr, dazu zweierlei Mark (die Reichsmark galt damals nur im Kopf Soetbeers, der sie Ende der dreißiger Jahre erfunden), zweierlei Gulden und mindestens dreierlei Taler, darunter einer, dessen Einheit das "neue Zweidrittel" war.
DK의 한 문장을 SS와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마지막으로 일반에 거의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은 마르크스의 인용방식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여두고자 한다. 순수한 사실에 대한 언급이나 서술의 경우 인용은, 예를 들어 영국의 청서(淸書)에서 인용한 내용과 같은 것은 말 그대로 단적인 예증으로 사용된 것이다. [8.1]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론적 견해들을 인용한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경우의 인용은 논리적인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제사상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처음에 명시적으로 얘기되었는지에 대한 것만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된 경제학적인 견해가 역사에서 의의가 있는 것인지, 또한 그것이 당시의 경제적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절한 이론적 표현인지의 여부일 뿐이다. [8.2] 그러나 이런 생각이 마르크스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어떤 의미가 있는지의 여부나 그것이 이미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는지의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 인용은 본문에 대한 그때그때의 주석으로서 경제학의 역사에서 단지 빌려 온 것들에 지나지 않으며, 경제학 이론에서 몇몇 중요한 진보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를 밝혀주고 있을 뿐이다. [8.3] 그리고 이들 인용은 학문의 역사가 지금까지 편파적이고 거의 고의적인 무지함에 의해서만 기술되어온 그런 학문의 경우(바로 경제학을 가리킨다-옮긴이) 특히 매우 필요한 것이다. [8.4] 그래서 독자들은 이제 제2판의 후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 마르크스가 거의 전적으로 독일의 경제학자들만 인용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8.1.
(SS) When the first edition appeared there were as many kinds of measures and weights in Germany as there are days in the year.
(BF) When they are pure statements of fact or descriptions, the quotations, from the English Blue Books, for example, serve of course as simple documentary proof.
(DK) Bei rein tatsächlichen Angaben und Schilderungen dienen die Zitate, z.B. aus den englischen Blaubüchern, selbstredend als einfache Belegstellen.
강 교수는 '단적인 예증'이라고 번역했는데, SS, BF, DK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다. 다만 'simple references'에 대응하는 'einfache Belegstellen'만 있을 뿐이다. 'einfache'의 원형은 'einfach'로 'simple'이란 뜻의 형용사다. 'Belegstellen'의 원형은 'Belegstelle'로 'reference'를 뜻하는 명사다. 그러므로 제대로 번역하면 '단순한 참조'가 정확하다.
8.2.
(SS) Here the only consideration is that the economic conception in question must be of some significance to the history of science, that it is the more or less adequate theoretical expression of the economic situation of its time.
(BF) Here the only consideration is that the economic conception in question must be of some significance to the history of the science, that it is the more or less adequate theoretical expression of the economic situation of its time.
(DK) Wobei es nur darauf ankommt, daß die fragliche ökonomische Vorstellung für die Geschichte der Wissenschaft Bedeutung hat, daß sie der mehr oder weniger adäquate theoretische Ausdruck der ökonomischen Lage ihrer Zeit ist.
강 교수는 'es nur darauf ankommt'를 '중요한 것은'이라고 번역했는데,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이라고 서술하는 게 옳다. 'Vorstellung'은 'idea'를 뜻한다. 강 교수는 'die Geschichte der Wissenschaft'를 그냥 '역사'라고 번역했다. '학문(혹은 과학)의 역사'가 옳은 표현이다. 수정 번역해보자. "여기서 단지 고려해야 할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제학적 견해가 학문(혹은 과학)의 역사에 중요성을 가졌는지 이며, 대체로 당시의 경제 상황에 적절한 이론적 수사(修辭)였는지 여부이다."
8.3.
(SS) Hence these quotations are only a running commentary to the text, a commentary borrowed from the history of economic science, and establish the dates and originators of certain of the more important advances in economic theory.
(BF) Hence these quotations are only a running commentary to the text, a commentary borrowed from the history of economic science. They establish the dates and originators of certain of the more important advances in economic theory.
(DK) Zitate bilden also nur einen der Geschichte der ökonomischen Wissenschaft entlehnten laufenden Kommentar zum Text und stellen die einzelnen wichtigeren Fortschritte der ökonomischen Theorie nach Datum und Urheber fest.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눠서 번역했다. 강 교수의 번역을 다시 번역했다. "그러므로 이들 인용문은 단지 본문에 대한 현재의 주석으로부터 차용(借用)한 경제학의 역사 중 하나이며, 경제학적 이론의 개별적인 중요한 진보가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를 밝힌다."
8.4.
(SS) And that was a very necessary thing in a science whose historians have so far distinguished themselves only by tendentious ignorance characteristic of careerists.
(BF) And that was a very necessary thing in a science whose historians have so far distinguished themselves only by the tendentious ignorance characteristic of place-hunters.
(DK) Und das war sehr nötig in einer Wissenschaft, deren Geschichtschreiber bisher nur durch tendenziöse, fast streberhafte Unwissenheit sich auszeichnen.
DK의 'Wissenschaft, deren Geschichtschreiber …'를 강 교수는 '학문의 역사'라고 번역했는데, 'Geschichtschreiber'(Geschichtsschreiber를 잘못 표기한 것 같다)는 'historian 혹은 historiographer(역사학자 혹은 학자)'를 뜻하므로 '역사가의 학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으며, 이는 결국 '경제학자의 학문'을 가리킨다. 다시 번역해보자. "그리고 그것(인용)은 지금까지 자신을 멍청이와 같은 고의적 무지함으로 구분 지었던 역사학자의 학문에 매우 필요한 것이다."

제2권은 아마 1884년 중에 발간될 수 있을 것이다.

1883년 11월 7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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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 (1) (2) (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62~65쪽에 해당한다.



프랑스어판 서문

모리스 라 샤트르 선생에게

친애하는 선생,

자본의 번역을 정기적인 분책으로 나누어 출판하겠다는 선생의 생각을 저는 크게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런 형태가 되면 노동자들은 이 저작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테고, 바로 그런 생각은 내가 보기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생의 아이디어가 갖는 동전의 밝은 앞면에 불과하고 거기에는 또 다른 어두운 뒷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사용한 연구방법—아직 경제적인 문제들에는 적용된 적이 없는—은 처음 몇 장을 읽어나가는 데서 상당한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이 책은 시원시원하게 곧장 읽어나가기 어렵게 되어 있는데, 바로 이 때문에 언제나 결론에 대해서 조바심을 내고 일반적인 원리와 자신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들 사이의 관련을 빨리 알아내고자 하는 성향을 지닌 프랑스 대중은 이 책의 앞부분만 읽고는 더 이상 읽기를 중단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점에 대하여 나로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미리 이 점을 알리고 각오를 다지게끔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하는 데에는 평탄한 길이 없으며,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어 기어 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습니다. [1.1]

1872년 3월 18일, 런던
마르크스

1.1.
(SS) To the citizen Maurice Lachâtre

Dear Citizen,

I applaud your idea of publishing the translation of “Das Kapital” as a serial. In this form the book will be more accessible to the working class, a consideration which to me outweighs everything else.

That is the good side of your suggestion, but here is the reverse of the medal: the method of analysis which I have employed, and which had not previously been applied to economic subjects, makes the reading of the first chapters rather arduous, and it is to be feared that the French public, always impatient to come to a conclusion, eager to know the connexion between general principles and the immediate questions that have aroused their passions, may be disheartened because they will be unable to move on at once.

That is a disadvantage I am powerless to overcome, unless it be by forewarning and forearming those readers who zealously seek the truth. There is no royal road to science, and only those who do not dread the fatiguing climb of its steep paths have a chance of gaining its luminous summits.

Believe me, dear citizen,
Your devoted,
Karl Marx
London, March 18, 1872
(DK) An den Bürger Maurice La Châtre

Werter Bürger!

Ich begrüße Ihre Idee, die Übersetzung des "Kapitals" in periodischen Lieferungen herauszubringen. In dieser Form wird das Werk der Arbeiterklasse leichter zugänglich sein, und diese Erwägung ist für mich wichtiger als alle anderen.

Das ist die Vorderseite Ihrer Medaille, aber hier ist auch die Kehrseite: Die Untersuchungsmethode, deren ich mich bedient habe und die auf ökonomische Probleme noch nicht angewandt wurde, macht die Lektüre der ersten Kapitel ziemlich schwierig, und es ist zu befürchten, daß das französische Publikum, stets ungeduldig nach dem Ergebnis und begierig, den Zusammenhang zwischen den allgemeinen Grundsätzen und den Fragen zu erkennen, die es unmittelbar bewegen, sich abschrecken läßt, weil es nicht sofort weiter vordringen kann.

Das ist ein Nachteil, gegen den ich nichts weiter unternehmen kann, als die nach Wahrheit strebenden Leser von vornherein darauf hinzuweisen und gefaßt zu machen. Es gibt keine Landstraße für die Wissenschaft, und nur diejenigen haben, Aussicht, ihre lichten Höhen zu erreichen, die die Mühe nicht scheuen, ihre steilen Pfade zu erklimmen.
Karl Marx



프랑스어판 후기

독자들에게

루아(J. Roy)는 직역에 가까울 정도로 최대한 엄밀하게 번역하고자 노력했으며, 자신의 이런 과제를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그의 성실성 때문에 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본문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수정작업은 분책이 발간될 때마다 그때그때 이루어져야 했고 그래서 한결같은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으며 문체의 통일도 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일단 이 수정작업에 착수하고 나자 그것의 원본에 해당하는 독일어본(제2판)에 대해서도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즉 어떤 곳은 설명을 단순화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설명을 보충하기도 했으며 역사적인 자료나 통계자료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 비판적인 주석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 프랑스어판은 비록 문장에는 결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독일어 원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학문적 가치가 있으며 독일어에 능통한 독자들도 참고할만한 것이다.

이제 독일어 제2판의 후기 가운데 독일에서의 경제학의 발전과 이 저작에서 사용된 방법에 대한 부분을 아래에서 옮겨두고자 한다. 5) [2.1]

1875년 4월 28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2.1.
(SS) To the reader

Mr. J. Roy set himself the task of producing a version that would be as exact and even literal as possible, and has scrupulously fulfilled it. But his very scrupulosity has compelled me to modify his text, with a view to rendering it more intelligible to the reader. These alterations, introduced from day to day, as the book was published in parts, were not made with equal care and were bound to result in a lack of harmony in style.

Having once undertaken this work of revision, I was led to apply it also to the basic original text (the second German edition), to simplify some arguments, to complete others, to give additional historical or statistical material, to add critical suggestions, etc. Hence, whatever the literary defects of this French edition may be, it possesses a scientific value independent of the original and should be consulted even by readers familiar with German.

Below I give the passages in the Afterword to the second German edition which treat of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Economy in Germany and the method employed in the present work.
Karl Marx
London, April 28, 1875

(DK) An den Leser

Herr J. Roy hat es unternommen, eine so genaue und selbst wörtliche Übersetzung wie möglich zu geben ; er hat seine Aufgabe peinlich genau erfüllt. Aber gerade seine peinliche Genauigkeit hat mich gezwungen, die <32> Fassung zu ändern, um sie dem Leser zugänglicher zu machen. Diese Änderungen, die von Tag zu Tag gemacht wurden, da das Buch in Lieferungen erschien, sind mit ungleicher Sorgfalt ausgeführt worden und mußten Stilungleichheiten hervorrufen.

Nachdem ich mich dieser Revisionsarbeit einmal unterzogen hatte, bin ich dazu gekommen, sie auch auf den zugrunde gelegten Originaltext anzuwenden (die zweite deutsche Ausgabe), einige Erörterungen zu vereinfachen, andre zu vervollständigen, ergänzendes historisches oder statistisches Material zu geben, kritische Bemerkungen hinzuzufügen etc. Welches auch die literarischen Mängel dieser französischen Ausgabe sein mögen, sie besitzt einen wissenschaftlichen Wert unabhängig vom Original und sollte selbst von Lesern herangezogen werden, die der deutschen Sprache mächtig sind.

Ich gebe weiter unten die Stellen des Nachworts zur zweiten deutschen Ausgabe, die sich mit der Entwicklung der politischen Ökonomie in Deutschland und der in diesem Werk angewandten Methode befassen.

London, 28. April 1875
Karl Marx

<주석>

5) 이 책(MEW를 가리킨다-옮긴이)의 19~28쪽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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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50~61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제2판 후기

먼저 초판의 독자들을 위해서 나는 제2판에서 수정된 점들을 알려 드리고자 한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부분으로는 책의 차례가 좀 더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제2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주(註)는 모두 제2판의 주라는 점을 따로 표시하였다. 본문에서 수정된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제1장 제1절에서는 교환가치를 나타내는 등식들의 분석을 통한 가치의 추론과정을 과학적으로 더욱 엄밀하게 수행했으며, 초판에서는 그저 암시하는 것으로만 그쳤던 가치실체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한 가치크기의 결정 간의 관련도 더욱 명시적으로 서술하였다. [2.1]   제1장 제3절 「가치형태」는 완전히 새롭게 고쳐 썼는데 그것은 초판에서 이 부분이 중복해서 서술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했던 부분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여두자면, 이 중복 서술된 부분은 하노버에 사는 나의 친구 쿠겔만(L. Kugelmann) 박사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1867년 봄 내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함부르크(Hamburg)에서 1차 교정지가 도착했는데, 그는 나에게 대다수 독자들을 위해서는 가치형태에 관한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추가해설이 필요하다고 설득하였다. ―제1장의 마지막 절인 「상품의 물신성」은 대부분 다시 고쳐 썼다. 제3장 제1절 「가치척도」는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는데, 이는 이 부분이 초판에서는 『경제학 비판』(베를린, 1859년)에서 이미 다루어진 설명을 참고하도록 하고 소홀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제7장, 특히 제2절 부분은 꽤 많이 수정되었다.

2.1.
(SS) In Chapter I, Section 1, the derivation of value from an analysis of the equations by which every exchange-value is expressed has been carried out with greater scientific strictness; likewise the connexion between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magnitude of value by socially necessary labour-time, which was only alluded to in the first edition, is now expressly emphasised.
(BF) In Chapter 1, Section 1, the derivation of value by analysis of the equations in which every exchange-value is expressed has been carried out with greater scientific strictness; similarly, the connection between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magnitude of value by the labour-time socially necessary, which was alluded to in the first edition, is now expressly emphasized.
(DK) Kapitel I, 1 ist die Ableitung des Werts durch Analyse der Gleichungen, worin sich jeder Tauschwert ausdrückt, wissenschaftlich strenger durchgeführt, ebenso der in der ersten Ausgabe nur angedeutete Zusammenhang zwischen der Wertsubstanz und der Bestimmung der Wertgröße durch gesellschaftlich-notwendige Arbeitszeit ausdrücklich hervorgehoben.
DK의 'ausdrücklich hervorgehoben'을 강 교수는 '더욱 명시적으로 서술했다'라고 번역했고, SS와 BF에서는 'now expressly emphasized'로 번역했다. 'ausdrücklich'는 'expressly(명시적으로, 특별히)', 'hervorgehoben'은 'stressed(강조된)'를 뜻한다. '명시적으로'와 '특별히'는 같은 뜻이지만, '특별히'로 표현하는 게 더 명료해 보인다. 따라서 '특별히 강조되었다'로 나타낼 수 있다.

단지 표현을 다듬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 곳곳의 본문 수정을 일일이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수정은 책 전체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파리에서 발간된 프랑스어 번역본을 수정하면서 독일어 원본 가운데 많은 부분이 때로는 좀 더 엄격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고 때로는 표현을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으며 또 때로는 몇몇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3.1]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책이 매진되어 1872년 1월에는 제2판의 인쇄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1871년 가을이었는데, 이때 나는 다른 긴급한 여러 일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3.1.
(SS) Nevertheless I find now, on revising the French translation appearing in Paris, that several parts of the German original stand in need of rather thorough remoulding, other parts require rather heavy stylistic editing, and still others painstaking elimination of occasional slips.
(BF) Nevertheless, I find now, on revising the French translation which is appearing in Paris, that several parts of the German original stand in need of a rather thorough re-working, while other parts require rather heavier stylistic editing, and still others require the painstaking elimination of occasional slips.
(DK) Dennoch finde ich jetzt bei Revision der zu Paris erscheinenden französischen Übersetzung, daß manche Teile des deutschen Originals hier mehr durchgreifende Umarbeitung, dort größere stilistische Korrektur oder auch sorgfältigere Beseitigung gelegentlicher Versehn erheischt hätten.
강 교수는 '때로는 엄격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고, 때로는 … 때로는 …'이란 표현을 썼는데, SS, BF, DK에서는 그런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Beseitigung'은 'elimination 혹은 removal (제거)'이란 뜻으로 '바로잡음'은 오역이다. 전반적으로는 강 교수 번역이 SS와 BF보다 나아 보이지만, 강 교수 번역도 깔끔하지는 않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파리에서 발간될 프랑스어 번역본을 수정하면서 독일어 원본의 몇몇 부분은 면밀한 개정작업이 필요하지만, 다른 부분은 표현을 세심하게 다듬거나 혹은 몇몇 잘못된 부분을 없애는 등의 엄청난 수고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자본』(Das Kapital)에 대한 이해가 독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급속하게 확산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 작업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빈(Wien)의 공장주인 마이어(Sigmund Mayer)가 보불 전쟁(the Franco-Prussian War) 기간 동안에 출간한 소책자(Die Sociale Frage in Wien, Vienna, 1871) 안에서 독일적인 유산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이론적 감각이 독일의 이른바 식자 계급에게서는 완전히 소멸해버린 반면 독일의 노동자 계급에서는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고 생각된다. [4.1]

4.1.
(SS) Herr Mayer, a Vienna manufacturer, who in economic matters represents the bourgeois point of view, in a pamphlet published during the Franco-German War aptly expounded the idea that the great capacity for theory, which used to be considered a hereditary German possession, had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amongst the so-called educated classes in Germany, but that amongst its working class, on the contrary, that capacity was celebrating its revival.
(BF) A man who in economic matters represents the bourgeois standpoint, the Viennese manufacturer Herr Mayer, in a pamphlet published during the Franco-German War, aptly expounded the idea that the great capacity for theory, which used to be considered a hereditary German attribute, had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amongst the so-called educated classes in Germany, but that amongst the working class, on the contrary, it was enjoying a revival.
(DK) Ein Mann, ökonomisch auf dem Bourgeoisstandpunkt, Herr Mayer, Wiener Fabrikant, tat in einer während des deutsch-französischen Kriegs veröffentlichten Broschüre treffend dar, daß der große theoretische Sinn, der als deutsches Erbgut galt, den sog. gebildeten Klassen Deutschlands durchaus abhanden gekommen ist, dagegen in seiner Arbeiterklasse neu auflebt.
SS와 BF 번역은 난잡한 느낌이다. 강 교수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깔끔하지만, 그럼에도 다소 장황하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적으로 부르주아의 입장에 서 있는 빈(Wien)의 공장주(工場主) 마이어 씨가 보불 전쟁(the Franco-Prussian War) 기간에 출판한 소책자에는 독일의 유산으로 간주되는 위대한 이론적 감각이 소위 독일의 식자 계급에서는 완전히 소멸했지만 노동자 계급에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고 적절히 제시되어 있다."

독일에서 경제학은 지금 이 시간까지 외래 학문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구스타프 폰 귈리히(Gustav von Gülich)는 『주요 무역국가의 상업·공업·농업의 역사(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nd des Ackerbaus, &c..)』, 특히 1830년에 출간한 제1권과 제2권에서 우리나라(독일-옮긴이)에서 자본주의적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조건들을 거의 대부분 설명하였다. [5.1]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학의 현실적인 토대가 결여되어 있었다. 경제학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완제품 상태로 수입되었다. 그래서 독일의 경제학 교수들은 언제나 배우는 입장에 머물러 있었다. 외국의 현실에 입각한 이론적 표현들은 이들에 의한 하나의 교의집(敎義集)으로 변해버렸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소(小)부르주아적 세계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곡해되었던 것이다. [5.2] 이들은 피할 수 없는 학문적 무력감과 사실상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서 모두 다 아는 교수인 척해야 하는 양심의 가책을 은폐하기 위하여 현란한 문헌사적 학식을 둘러대거나 이른바 재정학(Kameralwissenschaften: 독일의 중상주의 경제학-옮긴이)―청운의 꿈을 품은(hoffnungsvoll) 2) 독일의 관료 지망생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연옥(煉獄)의 불길과도 같은 복잡한 지식들의 혼합물―에서 빌려 온 낯선 자료들을 혼합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하곤 하였다. [5.3]

5.1.
(SS) Gustav von Gülich in his "Historical description of Commerce, Industry," &c., especially in the two first volumes published in 1830, has examined at length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in Germany,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consequently the development, in that country, of modern bourgeois society.
(BF) In his 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sw., especially in the first two volumes, published in 1830, Gustav von Gülich has already examined, for the most part,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in Germany, and consequently of the construction there of modern bourgeois society.
(DK) Gustav von Gülich hat in "Geschichtliche Darstellung des Handels, der Gewerbe usw.", namentlich in den 1830 herausgegebnen zwei ersten Bänden seines Werkes, großenteils schon die historischen Umstände erörtert, welche 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 bei uns hemmten, daher auch den Aufbau der modernen bürgerlichen Gesellschaft.
DK에서 'die historischen Umstände … , welche 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 bei uns hemmten, daher auch den Aufbau der modernen bürgerlichen Gesellschaft'에 해당하는 부분을 SS에서는 'the historical circumstances that prevented, in Germany,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and consequently the development, in that country, of modern bourgeois society'로 번역했으며 (BF도 비슷하다), 강 교수는 '자본주의적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조건들'로 번역하고 있다.
우선, 강 교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혹은 생산방식)의 발달(die Entwicklung der kapitalistischen Produktionsweise)'을 '자본주의적 발달'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Produktionsweise'는 'Produktions (productions) + Weise (way)'의 합성어로 '생산양식' 혹은 '생산방식'을 뜻한다. 사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자본주의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을 가진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 구조"를 뜻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주의 경제 구조 아래에서 생산방식·생산관계·교환관계라는 경제적 토대 등의 하부구조뿐만 아니라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설령 번역이 '생산방식'을 뜻한다고 해도, '자본주의적 발달'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느냐란 생각이 든다. 단순한 오역인지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신념을 따랐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강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히 오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과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은 같이 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이 선행해야만 근대 부르주아 사회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출현은 그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 강 교수의 번역은 다음처럼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독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달의 저해와 결과적으로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발달을 가로막았던 역사적 상황"
5.2.
(SS) The theoretical expression of a foreign reality was turned, in their hands, into a collection of dogmas, interpreted by them in terms of the petty trading world around them, and therefore misinterpreted.
(BF) The theoretical expression of a alien reality turned in their hands into a collection of dogmas, interpreted by them in the sense of the petty-bourgeois world surrounding them, and therefore misinterpreted.
(DK) Der theoretische Ausdruck einer fremden Wirklichkeit verwandelte sich unter ihrer Hand in eine Dogmensammlung, von ihnen gedeutet im Sinn der sie umgebenden kleinbürgerlichen Welt, also mißdeutet.
SS, BF 그리고 DK에서는 바로 앞의 문장과 이 문장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DK의 'der sie umgebenden kleinbürgerlichen Welt'를 SS는 'the petty trading world around them', BF에서는 'the petty-bourgeois world surrounding them', 강 교수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소(小)부르주아적 세계'라고 번역했다. 'kleinbürgerlichen'은 klein + bürgerlichen'의 합성어로 'klein'은 'petite'란 뜻이고 'bürgerlichen'의 원형은 'bourgeois'를 뜻하는 'bürgerlich'라는 형용사로 '소(小)부르주아'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5.3.
(SS) The feeling of scientific impotence, a feeling not wholly to be repressed, and the uneasy consciousness of having to touch a subject in reality foreign to them, was but imperfectly concealed, either under a parade of literary and historical erudition, or by an admixture of extraneous material, borrowed from the so-called "Kameral" sciences, a medley of smatterings, through whose purgatory the hopeful candidate for the German bureaucracy has to pass.
(BF) The feeling of scientific impotence, a feeling which could not entirely be suppressed, and the uneasy awareness that they had to master an area in fact entirely foreign to them, was only imperfectly concealed beneath a parade of literary and historical erudition, or by an admixture of extraneous material borrowed from the so-called cameral science, a medley of smatterings through whose purgatory the hopeful candidate for the German bureaucracy has to pass.
(DK) Das nicht ganz unterdrückbare Gefühl wissenschaftlicher Ohnmacht und das unheimliche Gewissen, auf einem in der Tat fremdartigen Gebiet schulmeistern zu müssen, suchte man zu verstecken unter dem Prunk literarhistorischer Gelehrsamkeit oder durch Beimischung fremden Stoffes, entlehnt den sog. Kameralwissenschaften, einem Mischmasch von Kenntnissen, deren Fegfeuer der hoffnungsvolle Kandidat deutscher Bürokratie zu bestehn hat.
DK의 'und das unheimliche Gewissen, auf einem in der Tat fremdartigen Gebiet schulmeistern zu müssen'을 SS는 'the uneasy consciousness of having to touch a subject in reality foreign to them'으로, BF는 'the uneasy awareness that they had to master an area in fact entirely foreign to them'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Gewissen'은 'conscience(양심 혹은 도의심)'란 단어로써 'das unheimliche Gewissen'은 '불편한 양심(혹은 도의심)'을 뜻하는데, SS와 BF에서 각각 사용한 'consciousness'와 'awareness'는 'conscience'로 바꿔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auf … schulmeistern zu müssen'은 SS와 BF에서는 having to lecture on …'이라고 번역했는데, 'schulmeistern'은 'Schule + meistern'의 합성어로 보인다. 'Schulmeister는 '(남자)교사'를 뜻하는데, 그렇다면 'schulmeistern'은 '(학교에서 선생이) 가르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의 독일어 원문은 "사실상 그들에게는 낯선 영역을 가르쳐야만 한다는 편치 않은 양심"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강 교수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잉 해석했다.

1848년 이후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급속히 발전했고 오늘날에는 이미 전성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6.1] 그러나 우리의 전문가들에게 운명은 여전히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이 경제학을 편견 없이 연구할 수 있었던 당시 독일의 현실에는 근대적인 경제적 관계가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근대적인 경제적 관계가 이제 현실화하자 부르주아적 시각에서는 그들의 편견 없는 연구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것인 한, 즉 다시 말해서 그것이 자본주의적 질서를 역사적으로 잠깐 거쳐 가는 하나의 발전단계로서가 아니라 거꾸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사회적 생산의 형태로서 이해되는 한, 그것이 과학으로 남을 수 있는 경우란 오직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단지 분산된 형태로만 나타나고 있는 동안뿐이다. [6.2]

6.1.
(SS) Since 1848 capitalist production has developed rapidly in Germany, and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
(BF) Since 1848 capitalist production has developed rapidly in Germany, and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
(DK) Seit 1848 hat sich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 rasch in Deutschland entwickelt und treibt heutzutage bereits ihre Schwindelblüte.
DK의 'treibt heutzutage bereits ihre Schwindelblüte'를 SS와 BF는 'at the present time it is in the full bloom of speculation and swindling'으로, 강 교수는 '오늘날에는 이미 전성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번역했는데 'speculation'은 '투기(投機)'를, 'swindling'은 ‘사기(詐欺)’를 뜻한다. 따라서 SS와 BF의 번역은 한국어로 '투기와 사기로 가득하다'라고 해석된다. DK의 'Schwindelblüte'는 'Schwindel + blüte'의 합성어로 중의적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izzy bloom' 혹은 'the bloom of swindling'인데, 맥락을 따져본다면 '만개(滿開)하다' 혹은 '번성하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6.2.
(SS) In so far as Political Economy remains within that horizon, in so far, i.e., as the capitalist regime is looked upon as the absolutely final form of social production, instead of as a passing historical phase of its evolution, Political Economy can remain a science only so long as the class struggle is latent or manifests itself only in isolated and sporadic phenomena.
(BF) In so far as political economy is bourgeois, i.e. in so far as it views the capitalist order as the absolute and ultimate form of social production, instead of as a historically transient stage of development, it can only remain a science while the class struggle remains latent or manifests itself only in isolated and sporadic phenomena.
(DK) Soweit sie bürgerlich ist, d.h. die kapitalistische Ordnung statt als geschichtlich vorübergehende Entwicklungsstufe, umgekehrt als absolute und letzte Gestalt der gesellschaftlichen Produktion auffaßt, kann die politische Ökonomie nur Wissenschaft bleiben, solange der Klassenkampf latent bleibt oder sich in nur vereinzelten Erscheinungen offenbart.
DK의 'Erscheinungen'은 'appearance'란 뜻으로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을 비교했을 때, 강 교수의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vereinzelten'의 원형인 'vereinzelt'는 'isolated'와 'scattered' 모두를 뜻한다. 그래서 강 교수는 두 가지 뜻을 함께 표현한 것 같다. 독일어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자본주의적 질서가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이해되는 한, 정치경제학은 계급 투쟁이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거나 또는 고립되고 분산된 형태로 나타날 때만 단지 과학으로 남아 있다."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덜 발달한 시기에 나타났다. 그 경제학의 최후의 위대한 대표자인 리카도(David Richardo)는 결국 계급 간 이해의 대립, 즉 임금과 이윤 간의 대립과 지대 간의 대립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를 자기 연구의 도약점으로 삼아 이 대립을 소박하게 사회적 자연법칙으로 파악하였다. [7.1]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는 또한 부르주아 경제학이 더 이상 뛰어넘을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도달한 것이기도 하였다. [7.2] 리카도가 아직 살아 있던 시기에 이미 리카도의 이론에 반대하여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시스몽디(Jean Charles Léonard Simonde de Sismondi)라는 사람에 의해 제기되었다. 3) [7.3]

7.1.
(SS) Its last great representative, Ricardo, in the end, consciously makes the antagonism of class interests, of wages and profits, of profits and rent, the starting point of his investigations, naively taking this antagonism for a social law of Nature.
(BF) Richardo, ultimately (and consciously) made the antagonism of class interests, of wages and profits, of profits and rent, the starting-point of his investigations, naively taking this antagonism for a social law of nature.
(DK) Ihr letzter großer Repräsentant, Ricardo, macht endlich bewußt den Gegensatz der Klasseninteressen, des Arbeitslohns und des Profits, des Profits und der Grundrente, zum Springpunkt seiner Forschungen, indem er diesen Gegensatz naiv als gesellschaftliches Naturgesetz auffaßt.
강 교수가 '리카도가 대립을 의식해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라고 번역한 부분을 SS와 BF '리카도는 대립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상의 차이는 'bewußt'를 풀이한 방식 때문인 것 같은데, 'bewußt'는 'conscious'란 형용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consciously'라는 부사로도 쓰인다. 그런데 DK에서 'bewußt'는 부사로 쓰였다. 따라서 강 교수의 번역을 수정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정치경제학의) 마지막 위대한 대표자인 리카도는 마침내 의식적으로 계급 이해의 대립, 즉 임금과 이윤 그리고 이윤과 지대의 대립을 자기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순진하게도 이러한 대립을 사회적인 자연법칙으로 간주했다."
7.2.
(DK) Damit war aber auch die bürgerliche Wissenschaft der Ökonomie bei ihrer unüberschreitbaren Schranke angelangt.
독일어 원본에는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다.
7.3.
(SS) Already in the lifetime of Ricardo, and in opposition to him, it was met by criticism, in the person of Sismondi.
(BF) Already in Richardo’s lifetime, and in opposition to him, it was met by criticism in the person of Sismondi.
(DK) Noch bei Lebzeiten Ricardos und im Gegensatz zu ihm trat ihr in der Person Sismondis die Kritik gegenüber.
DK의 'in der Person Sismondis'에 대응하는 번역으로 SS와 BF는 'in the person of Sismondi'라고 표현했다. 'in the person of …'은 '…의 자격으로' 또는 '…을 대표[대신]하여'를 뜻하는데, 사실 DK의 'in der Person Sismondis'는 '시스몽디라는 사람에게서'로 해석한다. 따라서 SS와 DK의 번역은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강 교수의 번역도 깔끔한 것은 아니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미 리카도가 살아 있을 당시에 시스몽디란 사람이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비판을 제기했다."

뒤이은 시기인 1820~30년대는 영국의 경제학 영역에서 학문적인 활기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리카도의 이론이 대중화되면서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고 또한 리카도 이론이 기존의 고전파 이론과 투쟁을 벌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8.1] 그리하여 현란한 시합들이 벌어졌다. 이 시기에 벌어진 일들은 유럽 대륙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 논쟁이 평론지나 시사적인 소책자 그리고 팸플릿 등을 통해 산재된 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들 논쟁은 별다른 편견 없이 솔직한 형태로 이루어졌는데―물론 리카도의 이론이 가끔씩 이미 부르주아 경제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사용된 적도 있긴 하지만―이는 당시의 시대상황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8.2] 즉 한편으로는 대(大)공업 자체가 이제 막 자신의 유년기를 겨우 벗어나고 있었을 뿐인데, 이는 대공업이 1825년의 위기를 계기로 해서야 비로소 근대적인 형태의 주기적 순환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투쟁이 다른 사회적 갈등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는데, 이들 갈등이란 크게 두 가지였다. [8.3] 하나는 정치적 갈등으로 신성동맹(the Holy Alliance)을 둘러싸고 모여 있던 정부 및 봉건귀족들과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되던 인민 대중 사이의 갈등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갈등으로 산업자본과 토지소유 귀족들 사이의 갈등이었는데 이 갈등은 프랑스에서는 분할지 소유와 대토지 소유 간의 갈등 때문에 배후에 감춰져 있었지만, 영국에서는 곡물법(the Corn Laws) 이후 바깥으로 터져 나오고 말았던 것이다. [8.4] 이 무렵 영국의 경제학 문헌들을 보면 마치 프랑스에서 케네(François Quesnays) 사후(死後)에 밀어닥쳤던 경제적인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대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늦여름의 따스한 날씨가 봄을 연상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것이었다. 1830년이 되면서 이제 결정적인 위기가 밀어닥쳤다.

8.1.
(SS) It was the time as well of the vulgarising and extending of Ricardo’s theory, as of the contest of that theory with the old school.
(BF) It was the period of vulgarizing and the extending of Richardo’s theory, and of the contest of that theory with the old school.
(DK) Es war die Periode wie der Vulgarisierung und Ausbreitung der Ricardosche Theorie, so ihres Kampfes mit der alten Schule.
강 교수는 번역은 깔끔하지 않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기는 리카도의 이론이 대중화되고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으며, 고전학파와의 논쟁이 벌어진 시기였다."
8.2.
SS, BF 그리고 DK에는 '솔직한'이란 표현이 없다.
8.3.
"이들 갈등이란 크게 두 가지였다."는 강 교수가 임의로 삽입한 문장이다.
8.4.
(SS) On the other hand, the class struggle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forced into the background, politically by the discord between the governments and the feudal aristocracy gathered around the Holy Alliance on the one hand, and the popular masses, led by the bourgeoisie, on the other; economically by the quarrel between industrial capital and aristocratic landed property - a quarrel that in France was concealed by the opposition between small and large landed property, and that in England broke out openly after the Corn Laws.
(BF) On the other hand, the class struggle between capital and labour was forced into the background, politically by the discord between the governments and the feudal aristocracy gathered around the Holy Alliance, assembled in one camp, and the mass of the people, led by the bourgeoisie, in the other camp, and economically by the quarrel between industrial capital and aristocratic landed property. This latter quarrel was concealed in France by the antagonism between small-scale, fragmented property and big landownership, but in England it broke out openly after the passing of the Corn Laws.
(DK) Andrerseits blieb der Klassenkampf zwischen Kapital und Arbeit in den Hintergrund gedrängt, politisch durch den Zwist zwischen den um die Heilige Allianz gescharten Regierungen und Feudalen und der von der Bourgeoisie geführten Volksmasse, ökonomisch durch den Hader des industriellen Kapitals mit dem aristokratischen Grundeigentum, der sich in Frankreich hinter dem Gegensatz von Parzelleneigentum und großem Grundbesitz verbarg, in England seit den Korngesetzen offen ausbrach.
DK와 SS는 한 문장으로 서술했고, 강 교수의 번역과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이 문장과 그다음 문장은 원래 하나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 투쟁은 뒷전으로 밀려났는데, 정치적으로는 정부와 봉건 귀족이 모인 신성 동맹과 부르주아가 이끄는 인민 대중 사이의 갈등이었고, 경제적으로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분할지 소유와 대토지 소유 간의 대립으로 은폐된 산업 자본과 귀족적 토지 소유 사이의 분쟁이었는데, 영국에서는 곡물법 제정 이후 (그러한 분쟁)이 공개적으로 발생했다."

부르주아들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정권을 획득하였다. 그때부터 계급투쟁은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점차 뚜렷하고 급박한 형태를 띠어갔다. 그리고 계급투쟁은 과학적 부르주아 경제학의 종언을 고하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정리(Theorem)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자본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자본에 편리한가 불편한가, 자본이 허락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되었다. [9.1] 사심 없는 연구 대신 돈벌이를 위한 논쟁이 자리를 잡았고, 편견 없는 연구 대신 비양심적이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변론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9.2] 그러나 공장주 코브던(Cobden)과 브라이트(Bright)가 선봉에 섰던 곡물법 반대동맹이 날림으로 만들어 시중에 배포한 조잡한 소책자까지만 해도 토지소유귀족들에 대한 그들의 반론 속에는 비록 전혀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역사적인 흥미 정도는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아직 남아 있었다. [9.3] 그러나 로버트 필(Robert Peel) 이후 자유무역입법은 이런 마지막 양념조차도 속류 경제학으로 완전히 지워버리고 말았다. [9.4]

9.1.
(SS) It was thenceforth no longer a question, whether this theorem or that was true, but whether it was useful to capital or harmful, expedient or inexpedient, politically dangerous or not.
(BF) It was thenceforth no longer a question whether this or that theorem was true, but whether it was useful to capital or harmful, expedient or inexpedient, in accordance with police regulations or contrary to them.
(DK) Es handelte sich jetzt nicht mehr darum, ob dies oder jenes Theorem wahr sei, sondern ob es dem Kapital nützlich oder schädlich, bequem oder unbequem, ob polizeiwidrig oder nicht.
'polizeiwidrig'는 'illegal'이란 뜻이므로 '자본이 허락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고 서술한 강 교수의 번역은 '정치적으로 불법이냐 아니냐 (혹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냐)'라고 수정해야 한다.
9.2.
(SS) In place of disinterested inquirers, there were hired prize fighters; in place of genuine scientific research, the bad conscience and the evil intent of apologetic.
(BF) In place of disinterested inquirers, there stepped hired prize-fighters; in plate of genuine scientific research, the bad conscience and evil intent of apologetics.
(DK) An die Stelle uneigennütziger Forschung trat bezahlte Klopffechterei, an die Stelle unbefangner wissenschaftlicher Untersuchung das böse Gewissen und die schlechte Absicht der Apologetik.
SS와 BF는 'uneigennütziger Forschung'을 'disinterested inquirers'로 번역했다. 'Forschung'은 'research(연구)'를 뜻하므로 사람 혹은 직책을 뜻하지는 않는다. SS와 BF는 'Klopffechterei'를 'prize-fighters'로, 강 교수는 '돈벌이를 위한 논쟁의 자리'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원래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지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prize-fight'는 '맨손으로 대결하는 프로 권투 경기'를 뜻한다.
9.3.
(SS) Still, even the obtrusive pamphlets with which the Anti-Corn Law League, led by the manufacturers Cobden and Bright, deluged the world, have a historic interest, if no scientific one, on account of their polemic against the landed aristocracy.
(BF) Still, even the importunate pamphlets with which the Anti-Corn Law Leagues, led by the manufactures Cobden and Bright, deluged the world offer a historical interest, if no scientific one, on account of their polemic against the landed aristocracy.
(DK) “Indes selbst die zudringlichen Traktätchen, welche die Anti-Corn-Law League, mit den Fabrikanten Cobden und Bright an der Spitze, in die Welt schleuderte, boten, wenn kein wissenschaftliches, doch ein historisches Interesse durch ihre Polemik gegen die grundeigentümliche Aristokratie.
DK에서는 '날림으로 만들어', '조잡한' 등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공장주 코브던과 브라이트가 이끈 곡물법 반대동맹이 시중에 배포한 공격적인 소책자는, 과학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토지소유 귀족들을 향한 반론에 대해서는 역사적 흥미를 제공한다."
9.4.
(SS) But since then the Free Trade legislation, inaugurated by Sir Robert Peel, has deprived vulgar economy of this its last sting.
(BF) But since then the free-trade legislation inaugurated by Sir Robert Peel has deprived vulgar economics even of this, last sting.
(DK) Auch diesen letzten Stachel zog die Freihandelsgesetzgebung seit Sir Robert Peel der Vulgärökonomie aus.
강 교수는 'Stachel'을 '양념'으로 번역했는데, '신랄함'이 옳은 표현이다. 덧붙여 SS 그리고 BF의 번역과 강 교수의 번역 사이에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보이는데, SS와 BF는 "그러나 그 이후 로버트 필 경에 의해 상정된(inaugurated) 자유무역입법은 속류 경제학에서 이런 마지막 신랄함 조차도 완전히 없애버렸다"이다. 그런데 독일어 원문을 따른다면 강 교수의 번역이 타당해 보인다. 강 교수의 번역을 토대로 수정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로버트 필 경 이후에 자유무역입법은 이런 마지막 신랄함조차도 속류 경제학에서 완전히 없애버렸다."

1848년 유럽 대륙의 혁명은 영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아직 과학적인 의의를 주장하고 지배계급의 단순한 궤변가나 앞잡이 노릇 이상을 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자본의 경제학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프롤레타리아들의 요구와 조화시켜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가장 잘 대표되는 얼빠진 혼합주의(Synkretismus)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이자 평론가인 체르니셰프스키(Nikolay Tschernyschewski)가 자신의 책 『밀의 경제학 개요(Outlines of Political Economy According to Mill)』에서 이미 탁월하게 해명하였듯이 바로 "부르주아" 경제학의 파산선언이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이미 역사적인 투쟁을 통해서 그것의 적대적인 성격이 요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야 성숙해졌고 이때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는 벌써 독일의 부르주아들보다 훨씬 더 분명한 이론적 계급의식을 갖추고 있었다. [11.1] 그래서 독일에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이 과학으로서 가능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자마자 곧바로 다시 불가능해져 버렸던 것이다.

11.1.
(SS) In Germany, therefore,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came to a head, after its antagonistic character had already, in France and England, shown itself in a fierce strife of classes. And meanwhile, moreover, the German proletariat had attained a much more clear class-consciousness than the German bourgeoisie.
(BF) In Germany, therefore,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came to maturity after its antagonistic character had already been revealed, with much sound and fury, by the historical struggles which took place in France and England. Moreover, the German proletariat had in the meantime already attained a far clearer theoretical awareness than the German bourgeoisie.
(DK) In Deutschland kam also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 zur Reife, nachdem ihr antagonistischer Charakter sich in Frankreich und England schon durch geschichtliche Kämpfe geräuschvoll offenbart hatte, während das deutsche Proletariat bereits ein viel entschiedneres theoretisches Klassenbewußtsein besaß als die deutsche Bourgeoisie.
SS와 BF는 DK의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눴다. 강 교수 번역이 SS와 BF보다 명료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대변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교활하고 돈벌이를 즐기며 실리적인 무리로, 이들은 속류 경제학의 옹호론자 가운데 가장 천박하고 바로 그래서 가장 성공한 바스티아((Claude-)Frédéric Bastiat)의 깃발 아래 몰려들었다. 다른 하나는 교수로서의 학문적인 품위를 과시하려는 무리로, 이들은 존 스튜어트 밀을 추종하면서 서로 합칠 수 없는 것을 합치려고 노력하였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고전파 시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몰락하던 시기에도 독일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 학생으로서, 즉 그것의 모방자이자 추종자로서 외국 도매상인의 소매상 역할에만 머물러 있었다.



독일 사회의 이런 독특한 역사적 발전과정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어떠한 독창적인 발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대한 비판까지도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 그런 비판이 어떤 계급을 대변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계급,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변혁과 계급의 궁극적인 철폐를 자신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독일 부르주아들의 박식하면서도 동시에 무식하기도 한 대변자들은 내 초기 저작들에 대해서 그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 수법으로 『자본』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일단 묵살해버리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런 수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내 책에 대한 비판을 한다는 핑계로 "부르주아적 의식을 진정시키기 위한" 처방전을 쓰기도 했지만 이도 또한 노동자신문에서―『폴크스슈타트』(Volksstaat: ‘인민의 국가’라는 뜻-옮긴이)에 실린 요제프 디츠켄(Joseph Dietzgen)의 논문을 보다―그들을 능가하는 투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들 투사에 대한 답변을 아직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4) [14.1]

14.1.
(SS) As soon as they found that these tactics no longer fitted in with the conditions of the time, they wrote, under pretence of criticising my book, prescriptions “for the tranquillisation of the bourgeois mind.” But they found in the workers’ press — see, e.g., Joseph Dietzgen’s articles in the Volksstaat — antagonists stronger than themselves, to whom (down to this very day) they owe a reply.
(BF) As soon as they found that these tactics no longer fitted the conditions of the time, they wrote prescriptions ‘for tranquillizing the bourgeois mind’, on the pretext of criticizing my book. But they found in the workers’ press — see for example Joseph Dietzgen’s articles in the Volksstaat — chapions stronger than themselves, to whom they still owe a reply even now.
(DK) Sobald diese Taktik nicht länger den Zeitverhältnissen entsprach, schrieben sie, unter dem Vorwand, mein Buch zu kritisieren, Anweise "Zur Beruhigung des bürgerlichen Bewußtseins", fanden aber in der Arbeiterpresse - sieh z.B. Joseph Dietzgens Aufsätze im "Volksstaat" - überlegene Kämpen, denen sie die Antwort bis heute schuldig.
DK와 강 교수 번역은 한 문장이지만, SS와 BF는 한 문장을 두 문장으로 나눴다.

『자본』의 우수한 러시아어판이 1872년 봄 페테르부르크에서 발간되었다. 3,000부를 발행한 이 판은 지금 벌써 거의 매진되었다. 이미 1871년 키예프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 지베르(N. Sieber)는 그의 저서 『리카도의 가치 및 화폐 이론(David Richardo’s Theory of Value and of Capital)』에서 가치·화폐·자본에 관한 내 이론이 본질적으로 스미스와 리카도 이론의 필연적인 발전이라고 논증하였다. 그의 이 훌륭한 책을 서유럽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거기에서 순수한 이론적 입장이 일관되게 견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게 될 것이다.



『자본』에서 사용된 방법은 아직 거의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은데, 이는 이 책에 대한 해석들이 제각기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6.1]

16.1.
(SS) That the method employed in “Das Kapital” has been little understood, is shown by the various conceptions, contradictory one to another, that have been formed of it.
(BF) That the method employed in Capital has been little understood is shown by the various mutually contradictory conceptions that have been formed it.
(DK) Die im "Kapital" angewandte Methode ist wenig verstanden worden, wie schon die einander widersprechenden Auffassungen derselben beweisen.
'Auffassungen'을 SS와 BF에서는 'conceptions', 강 교수는 '해석'이라고 표현했다. 'Auffassungen'은 'Auffassung'의 복수형으로써 'opinion' 혹은 'view'를 뜻한다. (물론 'conception'이란 뜻도 있다.) 맥락 상 'opinion' 혹은 'view'가 타당해 보인다.

즉 파리에서 발간되는 『실증주의 평론』은 한편으로는 내가 경제학을 형이상학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한번 들어보라!―내가 미래의 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리법(콩드류의?)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비난한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지베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고유한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방법은 영국의 모든 학파가 사용하는 연역적인 방법으로, 이 방법의 장점과 단점은 최고의 이론경제학자들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블로크(M. Block)―「독일의 사회주의 이론가들, 『이코노미스트』지 1872년 7월•8월호에서 발췌」―는 내 방법이 분석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발하고 있다.

이 저작을 통해서 마르크스는 가장 뛰어난 분석적 사상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독일의 비평가들은 내 책에 대해 헤겔적 궤변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런데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는 『유럽 통신(Vyestnik Evropy)』에 실린 한 논문(1872년 5월호, 427~436쪽)에서는 『자본』의 방법만을 다루면서 내 연구방법(Forschungsmethode)은 매우 실재론적(realistisch)인 반면 내 서술방법(Darstellungsmethode)은 불행하게도 독일변증법적(deutsch-dialektisch)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서술형태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얼핏 보아 마르크스는 위대한 관념철학자이다. 그것도 그 말이 독일어에서 함축하고 있는 나쁜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는 경제학적 비판에 종사한 자신의 모든 선배들에 비해서 훨씬 더 실재론자(Realist)이다. … 우리는 그를 결코 관념론자(Idealist)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이 필자(카우프만[I. I. Kaufmann])에 대해서 그가 행한 비평 가운데 몇 군데를 발췌하는 것 이상으로 답변을 해줄 수는 없지만, 이 발췌문들은 러시아어 원본을 구할 수 없는 많은 독자들에게 아마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필자는 내가 나의 유물론적 방법의 토대를 설명한 『경제학 비판』(베를린, 1859년)의 내 서문(IV~VII쪽; MEW Bd. 13, 8~10쪽)을 인용하면서 계속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현상들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칙은 그 현상들이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취하고 일정한 시기에 관찰될 수 있는 관련을 맺을 경우에만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법칙이 아니다. [21.1] 그에게서 더욱 중요한 법칙은 이들 현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법칙, 다시 말해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하나의 관련체계에서 다른 관련체계로 이행하는 법칙이다. 그는 먼저 이 법칙을 찾아낸 다음, 이 법칙이 사회생활을 통해서 보여주는 각종 결과를 상세하게 연구한다. … 그럼으로써 마르크스가 가장 힘들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엄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일정한 사회적 관계질서의 필연성을 논증하고 자신의 논증을 받쳐줄 출발점과 주요 거점으로 사용될 수 있는 사실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성해내는 일이다. [21.2.] 이 일은 그가 현재 질서의 필연성과,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사람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이 질서가 다른 질서로 이행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논증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완전히 달성된다. [21.3.] 마르크스는 사회운동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즉 인간의 의지나 의식 그리고 의도와는 무관한, 아니 오히려 이들 의지나 의식·의도를 규정하는 그런 법칙이 지배하는 과정으로 간주하였다. … 만일 의식적인 요소가 문화사에서 이처럼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문화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은 다른 어느 것들보다도 더욱 의식의 어떤 형태나 결과들을 자신의 토대로 삼을 수 없을 것이 당연한 일이다. [21.4] 다시 말해서 비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뿐일 것이다. 그리하여 비판은 하나의 사실을 관념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실들과 비교 대조하는 것에만 국한될 것이다. 이제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두 개의 사실을 가능한 한 자세히 연구하여 사실상 하나의 사실이 다른 사실에 대해서 갖가지 발전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며, 특히 각 질서들의 연쇄, 즉 발전단계들이 서로 고리를 이루면서 이어지는 연쇄를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21.5] 그러나 경제생활의 일반법칙은 똑같은 것이고 그것이 현재에 적용되든 과거에 적용되든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그것을 부정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러한 추상적인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 오히려 그 반대로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시기에는 저마다 독자적인 법칙이 있다. … 생명은 일정한 발전시기를 경과하고 나면, 즉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고 나면 곧바로 다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21.6] 요컨대 경제생활은 생물학이라는 다른 영역에서의 발전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1.7] … 과거의 경제학자들도 경제법칙을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과 비교하였지만, 그들은 경제법칙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였다. … 현상을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하면 사회적 유기체들은 식물이나 동물의 유기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그렇다, 똑같은 하나의 현상도 각 유기체들의 전체 구조의 차이, 각 구성기관의 차이, 각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는 조건의 차이 등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인구법칙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부인한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모든 발전단계마다 독자적인 인구법칙이 있다고 단언한다. … 생산력 발전의 차이에 따라서 제반 사회적 관계는 물론 그것을 규정하는 법칙들도 변화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연구하고 해명한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경제생활에 대한 모든 세밀한 연구가 가져야 할 목표를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정식화했을 뿐이다. [21.8] … 그런 연구의 과학적인 가치는 하나의 주어진 사회적 유기체가 탄생하여 유지, 발전하다가 더욱 고도의 다른 유기체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규정하는 특수한 법칙을 해명하는 데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책은 사실상 바로 그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책이다. [21.9]

21.1.
(SS) and not only is that law of moment to him, which governs these phenomena, in so far as they have a definite form and mutual connexion within a given historical period.
(BF) and it is not only the law which governs these phenomena, in so far as they have a definite form and mutual connection within a given historical period, that is important to him.
(DK) Und ihm ist nicht nur das Gesetz wichtig, das sie beherrscht, soweit sie eine fertige Form haben und in einem Zusammenhang stehn, wie er in einer gegebnen Zeitperiode beobachtet wird.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SS와 BF를 참조해 DK를  직역했다. "(그러나) 이 현상이 주어진 어떤 기간 내에서 완성된 형태와 상호 관련을 가지는 한, 이들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만이 단지 그(마르크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번역도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다. SS와 BF는 'a given historical period'라는 표현을 썼는데, DK에서는 'in einer gegebnen Zeitperiode'로 서술되어 있다.
21.2.
(SS) Consequently, Marx only troubles himself about one thing: to show, by rigid scientific investigation, the necessity of successive determinate orders of social conditions, and to establish, as impartially as possible, the facts that serve him for fundamental starting-points.
(BF) Consequently, Marx only concerns himself with one thing: to show, by an exact scientific investigation, the necessity of successive determinate orders of social relations, and to establish, as impeccably as possible, the fact from which he starts out and on which he depends.
(DK) Demzufolge bemüht sich Marx nur um eins: durch genaue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 die Notwendigkeit bestimmter Ordnungen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 nachzuweisen und soviel als möglich untadelhaft die Tatsachen zu konstatieren, die ihm zu Ausgangs- und Stützpunkten dienen.
세 번역이 DK와 비교했을 때 조금씩 상이하다. 그나마 강 교수의 번역이 좀 낫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적 관계 질서에 대한 필연성'에 해당하는 구문은 'die Notwendigkeit bestimmter Ordnungen der gesellschaftlichen Verhältnisse'이고, '논증하는 것’은 'nachzuweisen', '출발 지점과 토대로 사용한 사실들'은 'die Tatsachen …, die ihm zu Ausgangs- und Stützpunkten dienen', '가능한 나무랄 데 없이'는 'soviel als möglich untadelhaft'이다. DK의 ‘konstatieren'은 'notice'를 뜻한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오직 한 가지에 대해 노력한다: 정확한 과학적 연구로 어떤 사회적 관계 질서에 대한 필연성을 논증하는 것 그리고 출발 지점과 토대로 사용한 사실을 가능한 나무랄 데 없이 알아차리는 것."
21.3.
(SS) For this it is quite enough, if he proves, at the same time, both the necessity of the present order of things, and the necessity of another order into which the first must inevitably pass over; and this all the same, whether men believe or do not believe it, whether they are conscious or unconscious of it.
(BF) For this it is quite enough, if he proves, at the same time, both the necessity of the present order of things, and the necessity of another order into which the first must inevitably pass over; and it is a matter of indifference whether men believe or do not believe it, whether they are conscious of it or not.
(DK) Hierzu ist vollständig hinreichend, wenn er mit der Notwendigkeit der gegenwärtigen Ordnung zugleich die Notwendigkeit einer andren Ordnung nachweist, worin die erste unvermeidlich übergehn muß, ganz gleichgültig, ob die Menschen das glauben oder nicht glauben, ob sie sich dessen bewußt oder nicht bewußt sind.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깔끔하지 못하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혹은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만일 그가 현재 질서의 필연성과 동시에 이 질서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다른 질서의 필연성을 논증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만족스럽다."
21.4.
(SS) If in the history of civilisation the conscious element plays a part so subordinate, then it is self-evident that a critical inquiry whose subject-matter is civilisation, can, less than anything else, have for its basis any form of, or any result of, consciousness.
(BF) If the conscious elements plays such a subordinate part in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t is self-evident that a critique whose object is civilization itself can, less than anything else, have for its basis any form or any result of consciousness.
(DK) Wenn das bewußte Element in der Kulturgeschichte eine so untergeordnete Rolle spielt, dann versteht es sich von selbst, daß die Kritik, deren Gegenstand die Kultur selbst ist, weniger als irgend etwas andres, irgendeine Form oder irgendein Resultat des Bewußtseins zur Grundlage haben kann.
SS, D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간결하지 않다.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의식적인 요소가 문명사에서 이처럼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면, 문명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이 다른 무엇보다도 의식의 형태나 결과를 그 토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21.5.
(SS) For this inquiry, the one thing of moment is, that both facts be investigated as accurately as possible, and that they actually form, each with respect to the other, different momenta of an evolution; but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rigid analysis of the series of successions, of the sequences and concatenations in which the different stages of such an evolution present themselves.
(BF) The only things of importance for this inquiry are that the facts be investigated as accurately as possible, and that they actually form different aspects of development, vis-à-vis each other. But most important of all is the precise analysis of the series of successions, of the sequences and links within which the different stages of development present themselves.
(DK) Für sie ist es nur wichtig, daß beide Tatsachen möglichst genau untersucht werden und wirklich die eine gegenüber der andren verschiedene Entwicklungsmomente bilden, vor allem aber wichtig, daß nicht minder genau die Serie der Ordnungen erforscht wird, die Aufeinanderfolge und Verbindung, worin die Entwicklungsstufen erscheinen.
DK에서 하나로 구성된 문장을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DK의 'beide Tatsachen (both factors)'을 BF는 'the facts'라고 번역했다. 'wirklich die eine gegenüber der andren verschiedene Entwicklungsmomente bilden'은 번역하면 '사실상 다른 사실에 대해서 갖가지 발전계기를 형성하는 하고 있는'이란 뜻인데, BF는 'they actually form different aspects of development'라고 서술했다. 결론적으로 BF가 다른 두 번역과 비교해서 이상하다.
21.6.
(SS) As soon as society has outlived a given period of development, and is passing over from one given stage to another, it begins to be subject also to other laws.
(BF) As soon as life has passed through a given period of development, and is passing over from one given stage to another, it begins to be subject also to other laws.
(DK) Sobald das Leben eine gegebene Entwicklungsperiode überlebt hat, aus einem gegebnen Stadium in ein andres übertritt, beginnt es auch durch andre Gesetze gelenkt zu werden.
DK의 'Leben'을 SS는 'society'라고 번역했다. 물론 문맥상 'society'도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Leben'의 본뜻인 'life'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 모두 전반적으로 매끄럽지 못 한데, DK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이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는 것으로 주어진 발전의 시기를 거치자마자, 그것은 또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21.7.
(SS) In a word, economic life offers us a phenomenon analogous to the history of evolution in other branches of biology.
(BF) In short, economic life offers us a phenomenon analogous to the history of evolution in other branches of biology.
(DK) Mit einem Wort, das ökonomische Leben bietet uns eine der Entwicklungsgeschichte auf andren Gebieten der Biologie analoge Erscheinung.
강 교수의 번역은 틀렸다. 강 교수의 과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했겠지만, 마르크스가 과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 특히 진화론에 관심이 많아서 찰스 다윈과 만나려고 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식으로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 교수가 '발전사'라고 풀이한 ‘Entwicklungsgeschichte’는 'evolution(진화)'로 해석해야 한다. DK를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요컨대 경제생활은 생물학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보이는 진화의 역사와 비슷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1.8.
(SS) Whilst Marx sets himself the task of following and explaining from this point of view the economic system established by the sway of capital, he is only formulating, in a strictly scientific manner, the aim that every accurate investigation into economic life must have.
(BF) While Marx sets himself the task of following and explaining the capitalist economic order from this point of view, he is only formulating, in a strictly scientific manner, the aim that every accurate investigation into economic life must have.
(DK) Indem sich Marx das Ziel stellt, von diesem Gesichtspunkt aus die kapitalistische Wirtschaftsordnung zu erforschen und zu erklären, formuliert er nur streng wissenschaftlich das Ziel, welches jede genaue Untersuchung des ökonomischen Lebens haben muß
DK의 'enforschen'은 'to explore' 혹은 'to investigate'란 뜻으로 쓰이는데, SS와 BF는 'follow'로 번역했다. 'follow'는 일반적으로 '따르다'란 뜻으로 쓰이지만,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다[지켜보다]'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21.9.
(DK) Und diesen Wert hat in der Tat das Buch von Marx.
깔끔하게 번역해보자. "그리고 이것이 마르크스 책의 가치다."

이 필자는 그가 나의 참된 방법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을 참으로 정확하게 묘사했으며 또한 그 방법을 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적절하게 서술하였는데, 그가 서술한 바로 이것이 변증법적 방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22.1]

22.1.
(SS) Whilst the writer pictures what he takes to be actually my method, in this striking and [as far as concerns my own application of it] generous way, what else is he picturing but the dialectic method?
(BF) Here the reviewer pictures what he takes to be my own actual method, in a striking and, as far as concerns my own application of it, generous way. But what else is he depicting but the dialectical method?
(DK) Indem der Herr Verfasser das, was er meine wirkliche Methode nennt, so treffend und, soweit meine persönliche Anwendung derselben in Betracht kommt, so wohlwollend schildert, was andres hat er geschildert als die dialektische Methode?
DK의 한 문장을 BF는 두 문장으로 나눴다.

물론 서술방법은 형식적으로 연구방법과 구분되어야 한다. 연구는 소재를 자세히 검토하고 그것의 갖가지 발전형태를 분석하여 그 내적 연관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 작업을 모두 마친 뒤에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이 서술될 수 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이제 소재의 생생한 모습에 관념이 반영된다면 그 생생한 모습은 하나의 선험적 구성과 관련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근본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이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붙인 이념(Idee)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독립된 주체(Subjekt)로 전화했을 뿐만 아니라 곧바로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적인 것들은 이 사유과정이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4.1] 그러나 거꾸로 나에게서 관념적인 것(Ideelle)은 단지 인간의 머릿속에서 전환되고 번역된 물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24.2]

24.1.
(SS) To Hegel, the life process of the human brain, i.e., the process of thinking, which, under the name of "the Idea," he even transforms into an independent subject, is the demiurgos of the real world, and the real world is only the external, phenomenal form of "the Idea."
(BF) For Hegel, the process of thinking, which he even transforms into an independent subject, is the creator of the real world, and the real world is only the external appearance of the idea.
(DK) Für Hegel ist der Denkprozeß, den er sogar unter dem Namen Idee in ein selbständiges Subjekt verwandelt, der Demiurg des wirklichen, das nur seine äußere Erscheinung bildet.
DK의 'Demiurg'를 SS에서는 'demiurgos', BF에서는 'creator'로 번역했다. 플라톤 철학의 '조물주'를 뜻하므로 'demiurgos'가 좋아 보이지만, 의미상으로는 'creator'를 쓰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더불어 DK에서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강 교수는 앞의 문장과 지금 문장 두 개로 분리했다. 그리고 강 교수는 'Idee'를 '이념'으로 번역했는데, 지금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Idee'는 '이데', '이데아' 혹은 '관념'으로 번역해야 한다. DK를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관념이란 이름 아래에서 독립된 주체로 전화(轉化)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며, 관념의 외적 현상이다."
[24.1 추가 #1] 내가 'Idee'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강 교수의 '이념'이라는 번역이 맞다. "헤겔에게서 사유과정은 그가 이념이란 이름 아래에서 독립된 주체로 전화(轉化)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것들의 조물주이기도 하며, 관념의 외적 현상이다."
24.2.
(SS) With me, on the contrary, the ideal is nothing else than the material world reflected by the human mind, and translated into forms of thought.
(BF) With me the reverse is true: the ideal is nothing but the material world reflected in the mind of man, and translated into forms of thought.
(DF) Bei mir ist umgekehrt das Ideelle nichts andres als das im Menschenkopf umgesetzte und übersetzte Materielle.

헤겔 변증법의 신비적인 측면에 대해서 나는 약 30년 전, 그것이 아직 유행하고 있을 당시에 이미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자본』 제1권을 집필하고 있는 바로 지금은 독일의 식자층 사이에서 큰소리깨나 치는 돼먹지 않게 시건방지고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이 헤겔을 마치 "죽은 개"처럼―레싱(Lessing, Gotthold Ephraim: 독일의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옮긴이) 시대에 대담한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이 스피노자(Spinoza)에 대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다루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공개적으로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천명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고의적으로 여러 곳에서 그의 고유한 표현방식들을 따라 사용하기도 하였다. 변증법은 헤겔에게서 비록 신비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신비화 때문에 헤겔이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이고 의식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데 실패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변증법은 단지 그에게서 거꾸로 서 있었을 뿐이다. 우리가 그의 변증법에서 신비화된 외피 속에 감추어진 합리적인 핵심을 찾아내려면 우리는 그것을 도로 뒤집어야만 한다.



독일에서는 이 신비화된 형태의 변증법이 유행했는데 이는 그것이 현존하는 것들을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26.1] 합리적인 형태의 변증법은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교의를 대변하는 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그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속에 그것의 부정과 그것의 필연적인 몰락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성하는 모든 형태를 운동의 흐름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언제나 그것들을 일시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변증법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화를 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며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26.2]

26.1.
(SS) In its mystified form, dialectic became the fashion in Germany, because it seemed to transfigure and to glorify the existing state of things.
(BF) In its mystified form, the dialectic became the fashion in Germany, because it seemed to transfigure and glorify what exists.
(DK) In ihrer mystifizierten Form ward die Dialektik deutsche Mode, weil sie das Bestehende zu verklären schien.
'verklären'을 SS와 BF에서는 'transfigure and glorify'로 중복으로 표현했는데, 사실 'verklären'은 두 가지를 다 뜻한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거룩하게 하기(혹은 미화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신비화된 형태로 유행했다."
26.2.
(SS) In its rational form it is a scandal and abomination to bourgeoisdom and its doctrinaire professors, because it includes in its comprehension and affirmative recognition of the existing state of things, at the same time also, the recognition of the negation of that state, of its inevitable breaking up; because it regards every historically developed social form as in fluid movement, and therefore takes into account its transient nature not less than its momentary existence; because it lets nothing impose upon it, and is in its essence critical and revolutionary.
(BF) In its rational form it is a scandal and an abomination to the bourgeoisie and its doctrinaire spokesmen, because it includes in its positive understanding of what exists a simultaneous recognition of its negation, its inevitable destruction; because it regards every historically developed form as being in a fluid state, in motion, and therefore grasp its transient aspect as well; and because it does not let itself be impressed by anything, being in its very essence critical and revolutionary.
(DK) In ihrer rationellen Gestalt ist sie dem Bürgertum und seinen doktrinären Wortführern ein Ärgernis und ein Greuel, weil sie in dem positiven Verständnis des Bestehenden zugleich auch das Verständnis seiner Negation, seines notwendigen Untergangs einschließt, jede gewordne Form im Flusse der Bewegung, also auch nach ihrer vergänglichen Seite auffaßt, sich durch nichts imponieren läßt, ihrem Wesen nach kritisch und revolutionär ist.
강 교수는 DK의 한 문장을 세 문장으로 불리했으며, 'ein Ärgernis und ein Greuel'에 해당하는 부분을 '분노와 공포'라고 번역했는데, 'Ärgernis'는 영어로 'outrage(격노)'이고 'Greuel(Gräuel)'은 'horror'와 'abomination'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SS, BF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은 모두 적당해 보인다.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합리적 형태로서 변증법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이론적 대변자에게는 분노와 공포의 대상인데, 변증법이 현존하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과 필연적 몰락에 대한 즉각적 인지를 함의하고 있으며, 모든 역사적으로 발전된 형태를 유동적인 움직임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시적인 형태로 파악하고 있으며, 변증법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감화받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판적이고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가득 찬 운동은 근대산업이 겪는 주기적인 순환의 부침을 통해서 실천적인 부르주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부침의 절정이 바로 일반적 위기(Krise)이다. 이 일반적 위기는 아직 예비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긴 하지만 다시 진행 중이며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매우 높은 강도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신성 프로이센 독일제국의 벼락부자들에게도 변증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1873년 1월 24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주석>

2) 제3판과 제4판에서는 "절망에 빠진"(hoffnungslos)으로 되어 있다.



3) 내 저작 『경제학 비판』 39쪽을 볼 것(MEW Bd. 13, 46쪽)



4) 독일 속류 경제학의 멍청한 떠벌이들은 내 저작의 문체와 서술방식을 문제 삼아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집필 상의 결함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람들과 그들의 독자들에게 약간의 도움이나 흥미라도 제공해주기 위해 여기에서 영국 사람들과 러시아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를 각각 하나씩만 인용해보고자 한다. 내 견해에 대하여 철저하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 ‘토요 평론’이라는 뜻-옮긴이)는 독일어 초판에 대해서 이 책의 서술이 "극히 무미건조한 경제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독특한 흥미를 끌어내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1872년 4월 20일자 『상트페테르부르크』 신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서술은 몇몇 특별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명료하게 씌어졌으며, 다루고 있는 것들이 매우 고도의 과학적인 대상들인데도 놀라울 정도의 현실감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 보통사람들이 읽으면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모호하고 무미건조한 말투를 사용하여 책을 쓰는 … 많은 독일 학자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족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띤 독일 교수들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종류와는 완전히 또 다른 형태의 머리를 빠개는 고통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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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43~49쪽에 해당한다.
 



제1판 서문 [1.1]

여기에 제1권으로 출간되는 이 저작은 내가 1859년에 출간한 『경제학 비판(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속편에 해당한다. [1.2] 전편과 이 속편 사이에 오랜 공백이 있었던 까닭은 몇 년 동안 계속된 병으로 내가 작업을 중간에 여러 번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1.1.
1867년 출간된 자본론 제1권 독일어판에 대한 「서문(Preface to the First German Edition)」이다.
1.2.
'경제학 비판'이라고 번역한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옳은 번역이라고 본다. 실제로 SS와 BF에서는 『A Contribution to the Criticism of Political Economy』라고 번역했다. 정의상 정치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경제학과 법학 그리고 정치학에 기원을 둔 학제적인 연구 분야'를 지칭하며, 정치 기관과 정치 환경이 시장 행동 양태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 교수가 '정치경제학'을 '경제학'이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상의 편리함이라기보다는 『자본론』을 오로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국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비평에 대에 대해 EM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번역사를 참조하면 … 경제학이 맞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학의 원어가 political economy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오히려 [경제학=주류], [정치경제학=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라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편의 내용은 이 책의 제1장에 요약되어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앞뒤 저작들 사이의 맥락을 완전하게 이어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서술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는 전편에서 단지 암시하는 데 그쳤던 많은 부분을 이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으며, 반대로 전편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던 것을 이 속편에서는 단지 암시하는 정도만으로 그치기도 하였다. [2.1] 물론 가치이론과 화폐이론의 역사를 다룬 절은 이 속편에서 완전히 생략하였다. 그렇지만 전편을 읽어본 독자는 제1장의 각주에서 이들 이론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
(SS)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st,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BF)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e,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DK)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 sind viele früher nur angedeuteten Punkte hier weiter entwickelt, während umgekehrt dort ausführlich Entwickeltes hier nur angedeutet wird.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를 강 교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로, SS와 BF는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으로 번역했다. 의미상 큰 차이는 없겠지만, 독일어 원본을 따른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허락하는 한'이 적당해 보인다.

어떤 학문에서든 언제나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3.1] 그래서 이 책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의 분석을 다루는 절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나는 가치실체(Wertsubstanz)와 가치크기(Wertgröße)는 되도록 평이하게 분석하였다. 1) [3.2] 가치형태는 화폐형태(Geldform)를 완성된 모습으로 가지며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3.3]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Menschengeist)은 2천 년 이상이 지나도록 이것을 해명하는 데 실패하였다. [3.4]

3.1.
(SS) Every beginning is difficult, hold in all sciences.
(BF) Beginnings are always difficult in all sciences.
(DK) Aller Anfang ist schwer, gilt in jeder Wissenschaft.
'Wissenschaft'는 일반적으로 'science(과학)'와 'scholarship(학문)'을 뜻한다. SS와 BF에서는 'Wissenschaft'를 전부 'scienc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이에 해당하는 말을 거의 모두 '학문'으로 번역했으며, 일부에서만 '과학'으로 번역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scientific'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적인' 혹은 '과학의'란 말로 번역했다.) 현대 독일어에서는 '자연과학'을 뜻하는 말로 'Naturalwissenschaft'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대 독일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강 교수가 'Wissenschaft'를 '학문'으로 번역한 것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언어 사용의 시대적 혹은 역사적 맥락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이 학문의 영역에서 독립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특히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 과학은 개별적 학문으로서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더불어 마르크스는 자신의 자본에 대한 분석 및 연구는 일반적인 속류 경제학자의 연구와는 다르게 객관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자본론』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에 빗대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Wissenschaft'는 '학문'이 아닌 '과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science'란 단어가 '과학'뿐만 아니라 '학문'이라는 포괄적 의미 또한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술과 서신(書信) 여러 곳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 연구에 빗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가 제안한 것과 같이 '학문'보다는 '과학'이라고 번역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2.
(SS) That which concerns more especially the analysis of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I have, as much as it was possible, popularised.
(BF) I have popularized the passages concerning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as much as possible.
(DK) Was nun näher die Analyse der Wertsubstanz und der Wertgröße betrifft, so habe ich sie möglichst popularisiert.
DK의 'möglichst'는 'as possible'을 뜻하는 부사로, SS와 BF에서는 각각 'as much as it was possible'과 'as much as possible'이다. 강 교수는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으로 번역했는데, DK에는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3.3.
(SS)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elementary and simple.
(BF)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simple and slight in content.
(DK)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강 교수가 번역한 '완성된'은 영어판에서는 'developed(발전된)'로 번역되어 있다. 사실 '완성'과 '발전'은 둘 다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완성'은 '더는 변화가 불가능함'을 뜻하는 반면에 '발전'은 '앞으로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가치형태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단 화폐형태로 나타나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분명히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 교수의 번역은 좀 이상하다. 더불어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란 번역도 영어판 번역과는 다르다. 영어판 번역은 "매우 단순한 형태이고 내용도 빈약하다"이다. '아예 없는 것'과 '빈약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sunanugi님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MEW판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MEW 참조). 일단 평범하게 독해를 하면 "가치형태는, 그것의 다 된 모습이 화폐형태인데, 아주 내용이 없고 단순하다."이다. 독일어 형용사 'fertig'는 '완성된'이라고 번역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서구어끼리의 일차적 의미 연관 상 영어 ready에 해당한다. "밥이/준비가 다 되었다/끝났다" 할 때의 그런 느낌이다. 한국어의 '완성된'에 해당하는 독일어 형용사나 과거분사는 'fertig' 말고 많이 있다. 예컨대, 'vollendet'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 기준으로는 오히려 간결하게 옮기지 못한 게 문제인 것 같다.
3.4.
영어판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DK도 확인해본 결과 두 단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 교수가 번역과정에서 임의로 한 단락을 두 단락으로 분리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보다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다른 가치형태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적어도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4.1] 왜 그럴까? 그것은 완성된 신체를 연구하는 것이 그 신체의 세포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적 형태에 대한 분석에서는 현미경이나 화학적인 시약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4.2] 거기에서는 이런 것들 대신에 추상화할 수 있는 힘(Abstraktionskraft)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그 경제적인 세포형태에 해당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 형태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사소한 것만 문제 삼는 듯이 보일 것이다. 실제로 거기에서는 매우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인 해부에서 매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4.3]

4.1.
(SS)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for more than 2,000 years sought in vain to get to the bottom of it all, whilst on the other hand, to the successful analysis of much more composite and complex forms,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BF)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sought in vain for more than 2,000 years to get to the bottom of it, whil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to a successful analysis of forms which are much richer in content and more complex.
(DK) Dennoch hat der Menschengeist sie seit mehr als 2.000 Jahren vergeblich zu ergründen gesucht, während andrerseits die Analyse viel inhaltsvollerer und komplizierterer Formen wenigstens annähernd gelang.
바로 앞 단락의 마지막 문장과 이 단락의 첫 문장은 DK에서는 하나로 연결된 문장이다. 강 교수는 하나의 문장을 번역의 편의를 위해 두 문장으로 나누었고, 그것도 모자라 개별 단락으로 나눠버렸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번역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랬겠지만, 이런 식의 자의적 구성 변경은 저자(마르크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왜곡 혹은 희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할 때는 반드시 하나의 문장은 하나로, 하나의 단락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하나의 단락으로 번역해야 한다.
영어판을 기준으로 다시 번역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은 2000년 이상 동안 그 모든 것(혹은 그것)의 진상을 밝히려고 헛되이 노력해 왔지만, 매우 혼합되고 복잡한 형태(혹은 내용상으로 풍부하고 훨씬 더 복잡한 것)에 대한 성공적인 분석에는 최소한 접근해왔다."
4.2.
영어판에서는 '화학적 시약들'을 'chemical reagents'라고 번역했다. 우리말로도 '화학 약품' 내지 '화학 시약'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4.3.
(SS)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they are of the same order as those dealt with in microscopic anatomy.
(BF)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so similarly does microscopic anatomy.
(DK) Es handelt sich dabei in der Tat um Spitzfindigkeiten, aber nur so, wie es sich in der mikrologischen Anatomie darum handelt.
DK의 'Spitzfindingkeiten'을 SS와 BF에서는 'minutia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사소한' 혹은 '사소한 것'으로 번역했다. 물론 'minutiae'가 '사소한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상세한 것'이란 뜻도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서문과 그의 다른 서신(書信)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자주 언급했는데, 『자본』의 「독일어 초판 서문」에서도 현미경을 통한 세포 관찰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 단락을 전부 읽어봤을 때, 'minutiae'는 의미상 '상세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의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가 그것을 반증하는데, 우리가 미시적인 해부의 방법론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자 할 때, 그것은 사소한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것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도 잘못 번역되었다. EM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자본 혹은 상품 연구를 '현미경을 이용한 세포 연구'에 비유한 마르크스의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microscopic anatomy'는 ‘미시적 해부’가 아니라 '현미경 해부학' 혹은 '미세해부학(微細解剖學)'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 참고로, 미세해부학은 오늘날의 조직학(histology)이며 일반적 의미의 해부학은 육안 해부학(gross anatomy)이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오늘날 『자본론』을 집필했다면 microscopic anatomy보다는 histology를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다. 현대에는 전자현미경이 있으니 electron microscopy를 대신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더불어 sunanugi님께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영어 'minutiae'에 해당하는 독일어본의 단어는 'Spitzfindigkeiten'이다. 'Spitzfindigkeiten'는 복수이고 단수가 'Spitzfindigkeit'인데, 오늘날 영어로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본 결과 'subtlety'라고 나온다. 에디숑 소시알판의 불어본에서도 영어 'subtlety'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subtilité'로 되어 있다. 형태론상 명사 'Spitzfindigkeit'는 형용사 'spitzfindig'에서 파생된 추상명사인데, 그 의미의 성분은 "Spitz(뾰족한 끝) + find(동사 finden의 어간; '찾다'의 뜻) + ig(형용사 만드는 어미)"이다. 그러니까 'spitzfindig'란 단어는 그 일차적 의미가 '디테일한 것들 찾아내는'이란 뜻인데, 용법은 부정적인 의미로 쓸 수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문맥상 판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사학적으로 'Spitzfindigkeit'는 (DK에서) 다음 문장의 'Schwerverständlichkeit(이해하기 어려움)'이란 단어와 미묘하게 상응하고 있는데, BF 번역은, 엥겔스의 권위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어휘 선택 등에 있어서 너무 자주 SS를 그냥 따른다는 게 일반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하고는 이 책이 어렵다는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또 그럼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자 하는 그런 독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연과정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그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와 가장 덜 교란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또한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보장된 조건에서 그것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다. [6.1]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Producktionsverhältnisse) 그리고 교환관계(Verkehrsverhältnisse)이다. 그것들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장소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이론적 논의에서 주로 영국의 사례들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독일의 독자들이 영국의 산업노동자와 농업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바리새인처럼 경멸을 보내거나 독일에서는 사태가 그렇게 악화되어 있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만 한다. [6.2]  "바로 당신 자신에 관한 이야기요(De te fabula narratur)!" [6.3]

6.1.
(SS)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physical phenomena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typical form and most free from disturbing influence,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that assure the occurrence of the phenomenon in its normality.
(BF)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natural processes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significant form, and are least affected by disturbing influences,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which ensure that the process will occur in its pure state.
(DK) Der Physiker beobachtet Naturprozesse entweder dort, wo sie in der prägnantesten Form und von störenden Einflüssen mindest getrübt erscheinen, oder, wo möglich, macht er Experimente unter Bedingungen, welche den reinen Vorgang des Prozesses sichern.
SS, BF와 강 교수의 번역은 간결하지도 않을뿐더러 완전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번역했다. "물리학자는 매우 간결하고 교란받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거나, 가능하다면 그러한 현상이 순수하게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에서 실험한다."
6.2.
(SS)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labourers, or in optimist fashion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BF)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pharisaically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workers, or optimistically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DK) Sollte jedoch der deutsche Laser pharisäisch die Achseln zucken über die Zustände der englischen Industrie- und Ackerbauarbeiter oder sich optimistisch dabei beruhigen, daß in Deutschland die Sachen noch lange nicht so schlimm stehn,
SS, BF 그리고 DK 어디에서도 독일 독자가 영국 노동자를 비난하거나 경멸한다는 표현은 없다. SS와 BF는 'shrugs his shoulders at' 그리고 DK는 'die Achseln zucken über'라는 '어깨를 으쓱한다'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깨를 으쓱할 때는 잘 모르거나 혹은 젠체할 때다. 하지만 타인을 비난할 때 어깨를 으쓱하지는 않는다. SS, BF 그리고 DK의 이 문장은, 마르크스가 영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독일 독자와 설령 알고 있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일 독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은 "당시 독일인이 영국 노동자를 우습게 봤다"라는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만일 독일 독자가 영국의 산업 노동자와 농업 노동자에 대해 (동정하거나 혹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바리새인처럼 어깨를 으쓱하거나, 혹은 독일의 상황은 당분간 나쁘지 않다며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6.3.
B.C. 65~8년 사이에 활동했던 로마 출신의 시인 호라티우스(영어로는 Horace, 라틴어로는 Horatius)의 작품에서 인용했다. (Satires, Bk I, Satire 1).

본질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법칙 그 자체, 즉 철칙(鐵則)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 관철되어나가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7.1] 산업적인 선진국은 산업적인 후진국에게 언젠가 그들이 도달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7.1.
(SS)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orking with iron necessity towards inevitable results.
(BF)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inning their way through and working themselves out with iron necessity.
(DK) Es handelt sich um diese Gesetze selbst, um diese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 und sich durchsetzenden Tendenzen.
DK의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을 SS는 working with iron necessity'로 BF는 'working out with iron necessity'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철칙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라고 번역했는데, 이런 식의 독일어(혹은 영어 표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용례(用例)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쳐두기로 하자. 우리나라(독일-옮긴이)에서 완전한 형태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 즉 예를 들어 제대로 된 공장의 경우 그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공장법(the Factory Acts)이라는 균형추(均衡錘)가 없기 때문이다. [8.1]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우리는, 나머지 서유럽 대륙 전체와 꼭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이 빚어내는 고통은 물론 그 발전이 더딘 데에서 비롯되는 고통까지도 함께 겪고 있다. 근대적인 해악들과 함께 많은 전통적인 해악들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데, 이런 전통적인 해악들은 낡은 생산양식의 잔재로부터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이런 낡은 생산양식에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정치적 관계들까지도 함께 붙어 있다. [8.2] 우리는 살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죽은 것으로부터도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사로잡도다(Le mort saisit le vif)!"

8.1.
(SS) But apart from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is fully naturalised among the German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 the condition of things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wanting.
(BF) But in any case, and apart from all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has made itself fully at home amongst u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ly so called, the situation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absent.
(DK) Aber abgesehn hiervon. Wo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 völlig bei uns eingebürgert ist, z.B. in den eigentlichen Fabriken, sind die Zustände viel schlechter als in England, weil das Gegengewicht der Fabrikgesetze fehlt.
DK, SS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에서 두 문장으로 되어 있는 표현을 BF에서는 한 문장으로 나타냈다. 문장을 합쳐서 자연스럽게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제쳐놓기로 하자.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자리 잡은 곳, 즉 실제 공장에서 상황은 영국보다 나쁜데, 왜냐하면 공장법이라는 균형추가 없기 때문이다."
8.2.
(SS) Alongside the modern evils,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oppress u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ntiquat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inevitable train of social and political anachronisms.
(BF) Alongside the modern evils, we are oppressed by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rchaic and outmod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accompanying train of anachronistic social and political relations.
(DK) Neben den modernen Notständen drückt uns eine ganze Reihe vererbter Notstände, entspringend aus der Fortvegetation altertümlicher, überlebter Produktionsweisen, mit ihrem Gefolg von zeitwidrigen gesellschaftlichen und politischen Verhältnissen.
DK의 'Fortvegetation'을 SS와 BF는 'passive survival'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잔재'로 번역했다. 'Fort'는 '성(혹은 성채, castle)'이란 뜻이고 'vegetation'은 '숲'이란 뜻인데, 둘을 합치면 '숲의 성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으로만 보면 '(수동적) 잔재(혹은 생존)' 등의 해석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사전을 찾아봐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영국의 사회통계와 비교해볼 때, 독일과 나머지 서유럽 대륙의 사회통계는 매우 빈약하다. 그렇지만 이들 빈약한 통계도 마치 베일 속에 감추어진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의 암시는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 [9.1]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 사태의 진실을 조사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이런 조사를 수행하는 데서 필요한 인력, 즉 영국의 공장감독관, 또는 '공중위생' 상태를 보고하는 전문의사들 그리고 부녀자·아동에 대한 착취상태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전문위원들처럼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9.2] 페르세우스(Perseus)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모자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괴물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서 그 모자로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9.1.
(SS)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 head behind it.
(BF)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s head behind it.
(DK) Dennoch lüftet sie den Schleier grade genug, um hinter demselben ein Medusenhaupt ahnen zu lassen.
마르크스는 바로 앞 문장에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조사한 내용을 담은) 통계의 빈약한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는 빈약한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처참한 현실을 알 수 있다고 긍정하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하면 우리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SS와 BF는 DK의 'Dennoch'를 'But'으로 번역했는데, 'Dennoch'는 'nevertheless'를 뜻한다. 그러므로 문맥의 흐름을 통해 파악해본다면, 영어 번역은 접속사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Nevertheless'를 사용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에도 알맞아 보인다.
9.2.
(SS) We should be appalled at the state of things at home,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appointed periodically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as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the English factory-inspectors, her medical reporter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housing and food.
(BF) We should be appalled at our own circumstances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periodically appointed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ere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England’s factory inspectors, her medical report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conditions of housing and nourishment, and so on.
(DK) Wir würden vor unsren eignen Zuständen erschrecken, wenn unsre Regierungen und Parlamente, wie in England, periodische Untersuchungskommissionen über die ökonomischen Verhältnisse bestallten, wenn diese Kommissionen mit derselben Machtvollkommenheit, wie in England, zur Erforschung der Wahrheit ausgerüstet würden, wenn es gelänge, zu diesem Behuf ebenso sachverständige,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 zu finden, wie die Fabrikinspektoren Englands sind,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 über "Public Health" (Öffentliche Gesundheit), seine Untersuchungskommissäre über die Exploitation der Weiber und Kinder, über Wohnungs- und Nahrungszustände usw.
DK의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를 BF는 'her medical reports'라고 번역했는데, SS처럼 'reporters'로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강 교수의 '전문의사'란 번역도 너무 앞서나갔다. (물론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의료(혹은 보건의료) 보고자'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다.
DK의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를 SS와 BF는 '(men)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로, 강 교수는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로 번역했다. 'partisanship'은 '당파성'이란 뜻이고 'respect of persons'는 '특별 대우' 혹은 '편파적인 대우'란 뜻인데, 영어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DK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동떨어진 느낌이다. 대신 각각 'impartial'과 'ruthless'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그리고 DK의 'erschrecken'을 강 교수는 '깜짝 놀라다'라고 번역했는데, 'erschrecken'은 'frighten'을 뜻하므로, '깜짝 놀라 무서워하다(혹은 두려워하다)'로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의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립하고, 이 위원회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및 의회와) 동일한 전권을 갖추고 있으며,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대한 의료 보고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착취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위원처럼 공명정대하고 엄정하며 이 목적에 걸맞은 능력 있는 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혹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섬뜩해할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이 유럽의 중간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듯이 19세기 미국의 내전(the American Civil War, 한국에서 남북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을 가리킨다. 정확한 용어로는 미국내전이다-옮긴이)은 유럽의 노동자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 변혁과정이 계속 진행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0.1]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그것은 분명히 유럽 대륙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그러한 변혁과정은 영국에서보다 더 야만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고 더 인간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는 각 나라들에서 노동자 계급 자신의 발전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10.2]

10.1.
(SS) In England the process of social disintegration is palpable.
(BF) In England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is palpably evident.
(DK) In England ist der Umwälzungsprozeß mit Händen greifbar.
취향의 차이겠지만 '불을 보듯 뻔한'보다는 '명백한'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강 교수의 표현도 괜찮다.
10.2.
SS, BF 그리고 DK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강 교수에서는 번역본에서는 두 단락이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다른 더욱 숭고한 동기가 아니더라도 바로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법적인 장애요인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11.1]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꽤 많은 부분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장입법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그것의 성과에 대한 서술에 할애하였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또 그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설사 자신의 운동에 대한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도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혀내는 데 있다—그 사회는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생략하고 건너뛸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을 법령으로 제거할 수도 없다. 단지 그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산고(産苦)를 단축하고 완화하는 것뿐이다. [11.2]

11.1.
(SS) Apart from higher motives, therefore, their own most important interests dictate to the classes that are for the nonce the ruling ones, the removal of all legally removable hindrances to the fre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BF) Apart from any higher motives, then, the most basic interests of the present ruling classes dictate to them that they clear out of the way all the legally removable obstacles to th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DK) Von höheren Motiven abgesehn, gebietet also den jetzt herrschenden Klassen ihr eigenstes Interesse die Wegräumung aller gesetzlich kontrollierbaren Hindernisse, welche die Entwicklung der Arbeiterklasse hemmen.
DK의 'kontrollierbaren'은 'controlled(관리할 수 있는)'란 뜻인데, SS와 BF는 'removable'로 번역했고, 강 교수는 아예 번역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포함해서 직역하여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숭고한 동기와는 별개로 오늘날 지배 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그들(지배 계급)에게 노동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적으로 제거 가능한 모든 요소를 완전히 없애도록 강제한다."
11.2.
(SS) And even when a society has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 of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lay bare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clear by bold leaps, nor remove by legal enactments, the obstacles offered by the successive phases of its normal development.
(BF) Even when a society has begun to track down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reveal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leap over the natural phases of its development nor remove them by decree.
(DK) Auch wenn eine Gesellschaft dem Naturgesetz ihrer Bewegung auf die Spur gekommen ist - und es ist der letzte Endzweck dieses Werks, das ökonomische Bewegungsgesetz der modernen Gesellschaft zu enthüllen -, kann sie naturgemäße Entwicklungsphasen weder überspringen noch wegdekretieren.
DK의 'auf die Spur gekommen ist'를 강 교수의 '발견했다 하더라도'로, SS는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로 BF에서는 'has begun to track down'으로 번역했다.

만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자본가와 토지소유자를 결코 장밋빛으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문제로 삼는 것은 단지 그들이 갖가지 경제적 범주들의 인격체라는 점에서만, 즉 특정한 계급관계와 계급이해의 담당자라는 점에서만 그러하다. [12.1]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경제적 사회구성체(ökonomischen Gesellschaftsformation)의 발전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각 개인은 그들이 설사 주관적으로는(subjektiv)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는(sozial) 사회적 관계의 피조물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들 개인의 책임은 적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12.1.
(SS) But here individuals are dealt with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embodiment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class-interests.
(BF) But individuals are dealt with here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the bearer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interests.
(DK) Aber es handelt sich hier um die Personen nur, soweit sie die Personifikation ökonomischer Kategorien sind, Träger von bestimmten Klassenverhältnissen und Interessen.
DK의 'Personen'을 SS와 BF에서는 'personification'으로, 'Träger'는 SS와 BF에서는 각각 'embodiments'와 ‘bearer’로 번역했다. 'Träger'의 경우에는 '담당자'라는 말보다는 철학용어인 '담지자(擔持者)'가 문맥상 낫다고 본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 적들은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만나게 되는 그런 적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인간의 가슴에 가장 격렬하고 가장 편협하며 가장 악의에 찬 감정, 즉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을 싸움터로 불러냄으로써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다. [13.1] 예를 들어 영국 국교회(English Established Church)는 자신들의 신앙 39개조 가운데 38개조에 대한 공격을 용인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화폐 수입 39분의 1(1/39)에 대한 공격은 용인하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무신론까지도 전통적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차라리 더 가벼운 죄에 해당한다. [13.2]

13.1.
(SS)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s it deals with, summons as foes into the field of battle the most violent, mean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BF)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 it deals with summons into the fray on the opposing side the most violent, sordid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DK) Die eigentümliche Natur des Stoffes, den sie behandelt, ruft wider sie die heftigsten, kleinlichsten und gehässigsten Leidenschaften der menschlichen Brust, die Furien des Privatinteresses, auf den Kampfplatz.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정치 경제학)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은 인간 가슴의 가장 난폭하고 비열하며 악의로 가득한 감정인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을 반대편 전장으로 소환한다." 번역의 용이함을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강 교수는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막는다'란 말을 덧붙였다.
13.2.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는 단락을 나눠버렸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예를 들어 우리는 몇 주일 전에 발표된 청서(淸書) 『산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재외사절 통신문집(Correspondence with Her Majesty’s Missions Abroad, regarding Industrial Questions and Trades’ Unions)』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통신문들에서 영국 국왕의 재외사절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도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 노동 간의 기존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며, 이런 경향은 이제 불가피하다는 점을 숨김없이 얘기하고 있다. [14.1] 동시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미국의 부통령 웨이드(Wade)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 자본관계와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천명하였다. [14.2]

14.1.
(SS)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there declare in so many words that in Germany, in France, to be brief, in all the civilis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BF) There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declare in plain language in that in Germany, in France, in short in all the civiliz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a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DK) Die auswärtigen Vertreter der englischen Krone sprechen es hier mit dürren Worten aus, daß in Deutschland, Frankreich, kurz allen Kulturstaaten des europäischen Kontinents, eine Umwandlung der bestehenden Verhältnisse von Kapital und Arbeit ebenso fühlbar und ebenso unvermeidlich ist als in England.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왕조의 재외사절들은 독일과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 간의 기존 관계의 근본적 변화(radical change)가 명백하고(evident) 피할 수 없음을(inevitable) 노골적으로(in so many words 혹은 in plain language) 단언(혹은 얘기)한다."
14.2.
SS, BF 그리고 DK에서 한 단락으로 연결된 문장을,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임의로 단락을 나눴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징후이며 자포(紫袍: 군주의 의복-옮긴이)나 흑의(黑衣: 승려의 법의-옮긴이)로는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징후들이 당장 내일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현재의 사회가 완전히 응고되어버린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점을 지배계급 내에서조차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5.1]

15.1.
(SS) They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a foreboding is dawn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is constantly changing.
(BF) They do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the foreboding is emerg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constantly engaged in a process of change.
(DK) Sie zeigen, wie selbst in den herrschenden Klassen die Ahnung aufdämmert, daß die jetzige Gesellschaft kein fester Kristall, sondern ein umwandlungsfähiger und beständig im Prozeß der Umwandlung begriffener Organismus ist.
영어 번역을 기준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들은 현재 사회가 응고된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것(영어 번역에서는 유기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전조(foreboding)가 지배 계급 내에서조차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 저작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Zirkulationsprozeß des Kapitals, 제2책)과 총과정의 형태(Gestaltungen des Gesammtprozesses, 제3책)를 그리고 마지막 제3권(제4책)은 학설사(Geschichte der Theorie)를 다루게 될 것이다.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의견도 나는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이 갖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피렌체인(단테-옮긴이)의 좌우명이 내 대답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1867년 7월 25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주석>

1) 내가 보기에 이것은 라살레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자신의 책에서 슐체-델리치(Schultze-Delitzsch)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 주제(가치실체와 가치크기-옮긴이)를 다른 내 글의 "핵심적인 진수"를 설명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거기에는 그가 나를 아주 잘못 이해한 부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라살레는 경제문제를 다룬 그의 모든 이론적인 저작에서, 즉 예를 들어 자본의 역사적 성격이나 생산양식 및 생산관계 사이의 관련을 다룬 등등의 글 속에서 내 저작 가운데 상당 부분을, 심지어는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들까지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빌려 쓰면서 아무런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가 선전 목적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그가 수행한 작업들의 자세한 내용이나 그것들이 사용된 방식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N1.1]

N1.1.
(SS) This is the more necessary, as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subject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e.g., those on the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xion between the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c., &c., eve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here, of course, not speaking of his detailed working 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ith which I have nothing to do.
(BF) This is more necessary, in that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matter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for example those on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ction between the rela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etc., etc., even dow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of course not speaking here of his detailed working-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hich I have nothing to do with.
(DK) Es schien dies um so nötiger, als selbst der Abschnitt von F. Lassalles Schrift gegen Schulze-Delitzsch, worin er "die geistige Quintessenz" meiner Entwicklung über jene Themata zu geben erklärt, bedeutende Mißverständnisse enthält. En passant. Wenn F. Lassalle die sämtlichen allgemeinen theoretischen Sätze seiner ökonomischen Arbeiten, z.B. über den historischen Charakter des Kapitals, über den Zusammenhang zwischen Produktionsverhältnissen und Produktionsweise usw. usw. fast wörtlich, bis auf die von mir geschaffene Terminologie hinab, aus meinen Schriften entlehnt hat, und zwar ohne Quellenangabe, so war dies Verfahren wohl durch Propagandarücksichten bestimmt. Ich spreche natürlich nicht von seinen Detailausführungen und Nutzanwendungen, mit denen ich nichts zu tun hab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이 주제들에 대한 내 설명의 지적 전형(intellectual quintessence)을 슐체-델리치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에 담았다고 고백한 책에 중요한 실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필요하다. 만일 페르디난드 라살레가 사전 동의도 없이 그의 경제학적 연구에 담겨 있는 모든 일반 이론적 서술들(propositions)을 사전 동의도 없이 나의 저작에서, 예를 들자면 자본의 역사적 성경, 생산과 생산양식의 관계 사이의 연결에 관한 것 등등, 내가 만들어낸 용어까지 포함하여 문헌적으로 빌렸다면, 아마도 선전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이들 서술에 대한 그의 세부적인 작업이나 적용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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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선생이 『자본』을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다고 한다.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두 가지 영어판과 모 선생의 번역을 구글 번역기와 독일어 사전의 도움을 받아 독일어 원본과 일일이 비교·확인했다. 그 결과물을 여기다 올리고자 한다. 사실 나도 내가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른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여기다 글을 올리면 누군가 언젠가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주겠지?

어쨌든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순전히 영어도 공부하고, 독일어도 공부하고, 자본론도 공부하고, 번역 방법도 공부하고, 시간도 보내고 등등 ... 이유를 따지자면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혹은 '마르크스 철학'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 일반 독자다. 일반 독자가 이런 멍청한 (혹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으니 다들 동정의 눈길을 ... (응?)

『Das Kapital』 Band I, Band II, 그리고 Band III와, Sonnenschein판 『Capital』(엥겔스가 번역을 총지휘한 것) vol. I, vol. II, 그리고, vol. III, 그리고 펭권출판사(Penguin Classics)의 『Capital』(Ben Fowkes와 David Fernbach의 재번역판), 그리고 『자본』 한국어 번역판을 비교 분석할 생각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도 정말 크다)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자.

그런데 저작권법 위반으로 설마 고소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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