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관련'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2.11.07 투명한 북극곰의 털 (5)
  2. 2012.11.02 수학 불안증과 고통의 상관 관계 (6)
  3. 2012.11.02 하나의 개체 그리고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4. 2012.11.02 사랑은 떠나가도 허피스는 남는다
  5. 2012.11.02 수면 주기 그리고 알츠하이머병
  6. 2012.10.11 생물학자 그리고 수학. 그 넘사벽에 관하여. (2)
  7. 2012.09.18 다세포의 출현, 실험적으로 재현하다 (2)
  8. 2012.09.16 지구 온난화는 장기적으로 생물 다양성을 늘린다 (1)
  9. 2012.09.14 공룡의 진실 ― 항온 동물인가 변온 동물인가?
  10. 2012.09.11 DNA, RNA, TNA 그리고 생명의 탄생
  11. 2012.09.04 진딧물도 광합성을 할지 모른다?
  12. 2012.09.04 고양이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논문을 왜곡하는 한겨레 과학 기사
  13. 2012.06.26 시조새 논란에 대한 소고(小考) (2)
  14. 2012.05.10 짓밟힌 연구 윤리: 네이쳐 표지 논문의 사례에서 드러난 어두운 이면(裏面) (44)
  15. 2012.05.09 [논문 번역 #1] 인간 프리온 병에 대한 연구 동향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4)
  16. 2012.05.08 [논문 번역 #1] 인간 프리온 병에 대한 연구 동향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3)
  17. 2012.05.07 [논문 번역 #1] 인간 프리온 병에 대한 연구 동향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2)
  18. 2012.05.02 [논문 번역 #1] 인간 프리온 병에 대한 연구 동향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1) (1)
  19. 2011.10.17 [스크랩] '털납작벌레(Trichoplax adhaerens)'에 대해
  20. 2011.10.13 삶과 죽음 — 배타적 관계에서 공생 관계로 (3)
  21. 2011.10.07 공생진화론 -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의 공생관계



실험실 동료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누군가가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어서 모든 빛을 완전히 반사할 텐데,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지?”란 의견을 내놓았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래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물체가 반사한 가시광선(可視光線)이 우리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최종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며, 이런 점에서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의 어쭙잖은 과학 상식으로 봤을 때, 전반사(total reflection, 全反射)하는 물체는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을 반사하므로 우리 눈엔 그것이 흰색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귀요미 포텐 터지는 북극곰의 털이 흰색인 이유는 북극곰의 몸체가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可視光線)을 반사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꽤 그럴싸하다 [그림 1, 왼쪽].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아니다.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시각적 착각이 북극곰을 흰색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림 1. (왼쪽)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이지만 정말로 무섭고 사나운 맹수인 북극곰. (가운데) 북극곰의 보호 털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출처: Daily Mail] (오른쪽) 북극곰의 보호 털을 측면에서 확대한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 Alaska Fur ID Project]



북극곰 털을 한 올 한 올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극곰의 털이 투명할 정도로 무색에 가깝단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2, 왼쪽]. 그렇다고 곰 털이 투명한 창문 유리처럼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단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의 털은 다른 동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극곰의 털에는 우리 몸의 손톱이나 발톱과 마찬가지로 색소체(色素體)도 없다. 더욱 재미있는 건 북극곰의 피부색이다. 북극곰은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피부색도 하얗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북극곰의 피부색은 검다 [그림 2, 오른쪽]. 그렇다면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는 털과 검은 피부를 가진 북극곰은 당연히 검게 보여야 하는데, 왜 우리 눈에는 하얗게 보이는 걸까?



 

그림 2. (왼쪽) 북극곰의 보호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 흰색이 아니라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다. (오른쪽) 북극곰의 피부색. 의외로 북극곰의 피부는 검다. [출처: Marine Science]



북극곰의 피부는 10 cm 정도 두께의 지방층, 그 위를 덮는 가죽 그리고 무성한 털로 구성되어 있어 혹독하리만치 추운 기후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북극곰의 털은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안쪽에 있는 잔털(underfur)이며, 나머지는 바깥쪽에서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5~15 cm 길이의 보호 털(guard hair)이다. 잔털과 보호 털 모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색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독 보호 털 만은 속이 텅 빈 상태다 [그림 1, 가운데와 오른쪽]. 그런데 이런 무색의 보호 털도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높은 밀도로 빽빽이 밀집해 있으면 빛을 전체적으로 산란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북극곰이 태양빛을 전혀 흡수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으로 유입되는 빛을 산란시킬 뿐이다. 특히, 보호 털의 텅 빈 내부는 태양빛이 피부로 잘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있지만, 빛 자체를 산란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3. 녹색 곰 [출처: FeedAgg.com]



여기에 북극곰의 털이 투명하다는 또 한 가지 증거가 있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은 색이 녹조류(綠藻類) 때문에 가끔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 3]. 초록색 북극곰이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사육장 연못에서 자생하는 녹조류 더미가 북극곰의 털이나 피부에 달라붙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 놀랍게도 북극곰의 텅 빈 보호 털 안에서 녹조류가 자라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의 털 색이 흰색이 아니라 초록색을 띠게 되었다. 아마도 부러진 보호 털의 빈 공간 안으로 우연히 녹조류가 끼어든 게 주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은 북극곰의 털이 녹조류의 초록색을 그대로 투과해 보여줄 정도로 투명함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놀랍고도 신기한 북극곰이다.


참고 문헌

[1] Polar bear. Wikipedia. [링크]
[2] Everyday Mysteries. The Library of Congress. [링크]
[3] Answers [링크]
[4] Lewin RA, and Robinson PT. 1979. The greening of polar bears in zoos. Nature. 278: 445-447.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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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불안증(Mathematics anxiety 또는 Mathematical anxiety)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솔직히 필자도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된 연구가 꽤 있는 것을 보니, 이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항목이 있다 [1]. (위키피디아는 정말 최고다!) 각설하고, 우리는 불안증(不安症)이나 혐오증(嫌惡症)을 정신적 부수 현상(psychological epiphenomena)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필자도 이러한 거부 반응은 순전히 정신적 문제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무시무시한 악몽 같은 수학 앞에 마주했을 때, 이들의 뇌가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맞거나 불에 데거나 하는 물리적 고통의 순간으로 인식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는 반응은 일단 접어두자.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출처: MATH ANXIETY CARTOONS]



미국 시카고 대학 심리학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한 뇌주사(腦走査, brain scan) 기법으로 중증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이 자신이 조만간 수학 시험을 볼 예정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제로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했다 [2]. 그 결과, 꽤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뇌 영역 가운데 통증 등의 육체적 위해(危害)나 위협을 감지한다고 알려진 뇌섬엽(posterior insula)이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주로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불안증 환자의 뇌는 예정된 수학 시험을 기다리는 과정이 물리적 고통과 다름없다고 인지하는 듯하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뇌섬엽 활성화는 오직 수학 문제를 풀기 전까지만 유지되며 막상 수학 문제를 푸는 순간이 되면 이 부분은 비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동일 피험자에게 낱말 맞히기 문제 등을 풀게 했을 때에는 뇌섬엽의 활성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에게 (특히 이들의 뇌에) 고통으로 인식되는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수학 시험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즉,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뇌는 고통을 겪으며, 그러한 생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 이들의 정신은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고통으로 여길지 몰라도 뇌의 통증 인지 영역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인지부조화(인지부조화)와 맞먹지 않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 대부분이 수학과 관련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수학이나 산수를 사용해야만 하는 분야를 꺼리는 성향이 강함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어떤 것을 피하려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불안증이나 공포증―예를 들면, 물 공포증, 거미 공포증, 대인 공포증 등등―은 어떤 뇌 활동 양상을 나타낼까? 비록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르지만, 그것을 회피하려는 행동의 전반적 양상이 비슷함을 고려할 때 이들도 수학 불안증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다르지만 과정과 결과는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얼마 전 필자는 수학을 기피하는 생물학자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3].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수학만 보면 움츠러드는 우리 생물학자 대부분도 수학적 분석 기법으로 연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수학 불안증 환자와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일까? 혹시 우리가 수학적 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임에도 그것을 기피하거나 수식이 가득한 논문만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이유도 사실은 우리 생물학자의 뇌가 수학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통”으로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데에 필자는 500원을 걸겠다. 물론, 농담이다.


[사족 #1] 난 왜 자꾸 이런 게 재미있을까? 아마도 이번 생은 망한 모양이다.
[사족 #2] PLOS ONE은 세상 모든 연구자의 성지이자 자애로운 포용자(包容者)인 모양이다. 별의별 논문이 다 게재되니 말이다.
[사족 #3] PLOS ONE이여, 영원하여라!


참고 문헌
[1] Mathematical anxiety. Wikipedia. [링크]
[2] Lyons IM, and Beilock SL. 2012. When Math Hurts: Math Anxiety Predicts Pain Network Activation in Anticipation of Doing Math. PLOS ONE. 7: e48076. [링크]

[3] 「생물학자 그리고 수학. 그 넘사벽에 관하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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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생식(sex reproduction)으로 번식하는 생명체의 핵 DNA(nuclear DNA) 가운데 절반은 부계 쪽에서 나머지 절반은 모계 쪽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은 모직 모계 계통을 통해서만 자손에게 전달되는데, 이것을 좀 유식하게 표현하면 모계 유전(maternal inheritance)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가장 오래된 최근 공통 조상으로 유전자 흔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고 가정했을 때, 핵 DNA를 길라잡이로 사용한다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경로를 거쳐야만 우리의 공통 조상에 도달할 수 있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브"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다. 단, 오해는 마시라. 비교를 위해 단순히 "쉽다" 또는 "어렵다"란 표현을 썼지만, 원래 이런 역주행은 매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런데 핵 DNA는 부모 양쪽에서 정확히 절반씩 물려받으면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왜 모계 계통으로만 자손으로 전해질까? 진화적으로 왜 그리되었는지 본인도 아는 바가 없으므로 뭐라고 답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그 이유는 꽤 명확하다. 왜냐하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fertilization)이 일어나면서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정자의 구성 물질은 DNA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즉, (정자의 핵 DNA에 결합한 히스톤 단백질 등을 제외한) 정자 단백질 대부분과 정자의 미토콘드리아 등은 난자 안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정말로 만약에" 정자의 미토콘드리아가 난자 안으로 들어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 수정란은 여느 개체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자랄까? 아니면 제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까?


최근 『Cell』에 「Heteroplasmy of Mouse mtDNA Is Genetically Unstable and Results in Altered Behavior and Cognition」란 제목으로 하나의 실험용 쥐 개체 안에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존재할 때, 다시 말하면 쥐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이형질성(heteroplasmy) 상태에 있을 때, 이 생명체 안에서 생물학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조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어떻게 이런 쥐를 만들었는지에 관한 세부적 실험 기법이야 나도 잘 모르므로, 그 부분을 확인하고 싶다면 논문을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면서 결과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명확하다. "정상적인 쥐와 비교했을 때, 이형질성 실험 쥐는 생체의 신진대사 과정뿐만 아니라 쥐의 행동이나 기억 등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아래 그림 참조]." 즉,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조합은 유전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출처: Cell]



쥐를 이용한 이 연구는 다세포성 생명체의 이형질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만일 효모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성 진핵세포나 히드라, 말미잘 같은 다세포성 무척추동물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말미잘 같은 다세포성 무척추동물은 필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지만,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진핵세포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세포 안에 존재하더라도 별 탈 없는 건 아닐까? 과거에 이런 연구가 실제로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뒤져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면 이런 생명체가 이형질성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을 때 생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확인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Sharpley MS, et al. 2012. Heteroplasmy of Mouse mtDNA Is Genetically Unstable and Results in Altered Behavior and Cognition. Cell. 151: 333-343.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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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나도 허피스는 영원하리라!"


허피스 바이러스(Herpesvirus)는 한 번 감염되면 죽을 때까지 몸 안에서 계속 생존하는 감염체로, 숙주의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잠복기(latent phage)에서 벗어난다. 이때 허피스는 여타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자기증식을 시작하면서 그 여파로 숙주의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데, 보통은 입술 등 감염 부위에 발진이 일어나고 심한 경우에는 극심한 두통도 선사하는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다.


그런데 허피스 바이러스가 잠복기에서 벗어나 어떻게 활성화 상태로 진입하는지 그 메커니즘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제시하는 허피스의 "잠복기-활성기" 전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2].


(1) 어떤 미생물이 숙주 몸 안에 침투할 때, 이 미생물을 막기 위해 면역 체계가 가동한다.
(2) 이 과정에서 허피스 바이러스에 대한 memory T cell의 수가 줄어든다. 즉, 허피스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
(3) 이때를 틈타 허피스 바이러스는 잠복기에서 벗어나 자기증식을 시작한다.
(4) 그리고 감염자는 발진이나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5) 외부 감염원 제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숙주는 허피스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체계를 다시 작동한다.
(6) 그리고 허피스 바이러스는 잠복기에 접어들며 다음 기회를 노린다.


"잠복기-활성기" 전환 과정이 오로지 미생물 등의 새로운 외부 감염으로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생물학적 과정이 적어도 허피스 바이러스의 생활 주기에 영향을 준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사랑은 저 멀리 떠나가도 아픈 추억은 죽을 때까지 몸에 각인되니, 이런 의미에서 허피스 바이러스는 진정한 생물학적 기회주의자임이 분명하다. 아니, 진정한 사랑의 아픔(?)이라고 해야 적당한 표현일까?


[티스토리 에디션에 표시된 사진 출처: Natalie Dee archives]


참고 문헌
[1] Campbell J, et al. 2012. Transient CD8-memory contraction: a potential contributor to latent cytomegalovirus reactivation. J Leuk Bio. in press. [링크]
[2] 「How and Why Herpes Viruses Reactivate to Cause Disease」. ScienceDaily. 31 Oct 2012.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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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과 정우성이 출연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수애와 김래원이 열연한 『천일의 약속』,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히구치 카나코(樋口可南子)와 와나나베 켄(渡邊謙)이 나왔다는 『내일의 기억(明日の記憶)』,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Ryan Gosling)과 레이첼 맥아담스(Rachel McAdams)이 분한 주인공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트북(The Notebook)』.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이다. 관람자의 눈물샘을 자극할 목적으로 이 병을 모티브로 사용했겠지만, 실제로도 이 병은 환자 본인은 물론 주변인도 꽤 힘들게 한다고 알려졌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출처: DAUM 영화], 『천일의 약속』 [출처: DAUM 영화], 『내일의 기억(明日の記憶)』 [출처: DAUM 영화], 『노트북(The Notebook)』 [출처: DAUM 영화]



알츠하이머병은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腦疾患)이자 노년에 주로 나타나는 치매(dementia, 癡簞)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노화(老化) 과정에서 뇌 조직에 문제가 발생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1]. 주요 병리학적 특징으로는 뇌 조직의 전반적 위축(萎縮), 뇌실(腦室)의 확장, 신경 섬유의 다발성 병변(多發性病變), 초로성 반점(初老性半點) 등을 들 수 있으며, 임상적으로는 기억, 판단, 그리고 언어 능력과 같은 지적 기능이 점진적으로 감퇴하여 일상생활 능력이 저하되고 인격과 행동 양상의 퇴행을 보이는 등 기억과 정서 측면에서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 이 병의 발병 원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밝혀졌지만, 명확한 치료법은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


그런데 최근에 불안정 수면 양상(disturbed sleeping pattern)이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徵候)일 수 있다는 보고가 미국 루이지애나(Louisiana)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개최된 신경과학 연례 학회(the Annual Meeting of the Society for Neuroscience)에서 발표되었다 [2].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환자는 일반적으로 발병 초기에 수면 각성 주기(sleep-wake cycle, 睡眠覺醒週期)에 변화가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 변화가 알츠하이머병과 어떤 연관―원인이냐 결과냐? 원인이라면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등등―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는 듯하다. 캐나다(Canada) 핼리팩스(Halifax)에 있는 댈하우지 대학(Dalhousie University)의 신경심리학 연구팀은 이러한 수면 교란(sleep disruption, 睡眠攪亂)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진짜 관련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50세 이상의 1만 4천6백 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수면 상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매우 흥미로운 양상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수면 장애를 호소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이러한 증상이 있은 지 2년 이내에 알츠하이머 환자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특히, 수면 장애가 심할수록 알츠하이머병의 증상도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Futurity]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연구팀의 의견을 따른다면 이러한 교란된 수면 양상은 알츠하이머병의 두드러진 병리학적 증상인 신경 세포 주변의 아밀로이드-베타(amyloid-ß) 단백질의 축적으로 나타나는 비수용성 플라크(insoluble plaque)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했기 때문에 단순히 불규칙한 수면 주기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가능성도 분명 배제할 수 없는데,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과학자, 특히 미주리(Missouri) 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 의과 대학 소속 신경학자인 데이비드 홀츠만(David Holtzman)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비정상적 수면 양상이 알츠하이머 병의 진행 속도를 가속할 가능성도 있다. 즉, 알츠하이머병으로 이러한 수면 주기가 나타남은 분명하지만, 이것 때문에 오히려 병의 진행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노년에 비정상적인 수면 주기가 발생하는 경우, 알츠하이머병과의 관련성이 높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수면 주기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꼭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노년에 자신의 수면 주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반드시 병원에 들러 전문의와 상담하기 바란다.


참고 문헌
[1] Alzheimer's disease. Wikipedia. [링크]
[2] Cossins D. 19 Oct 2012. Restless Nights Predict Alzheimer's? The Scientist.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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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과학자가 수학을 잘하거나 수학에 매우 친숙하리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절반은 진실이지만 절반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연구는 수학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간단한 사칙연산이나 간단한 통계 분석 정도의 수학적 기법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문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생물학이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본인으로서도 수학적 문제에 다다르면 꽤 곤혹스럽다. 심지어 본인은 부업으로 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음에도 수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자주 망설이는 편이다. 설령, 그것이 간단한 통계처리일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나 같은 곤혹스러움을 겪는 생물학자가 많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자와 수학적 수식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 연구가 「지나친 수식(數式) 사용은 생물학자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로막는다(Heavy use of equations impedes communication among biologists)」란 제목으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렸기 때문이다 [1].



[출처: MicrobeWorld]


연구팀은 생물학자가 수학과 얼마나 안 친한지 알아보려고 생태학(ecology, 生態學)과 진화생물학(evolutionary biology, 進化生物學) 관련 논문의 인용 빈도를 조사했다. 그런데 왜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을 골랐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생태학과 진화생물학만큼 수식 사용 빈도에 있어서 극과 극을 달리는 분야도 없다. 어떤 논문은 수식에서 시작해 수식으로 끝나지만, 어떤 논문은 수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생명과학 관련 논문이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논문 제목처럼 생물학자 다수는 수학과 안 친한 걸로 나타났다. 특히, 생물학자의 수학에 대한 거부감(?)은 생물학자의 논문에서 인용한 다른 논문의 성격에서 잘 드러나는데, 수식을 많이 사용한 논문일수록 수식을 별로 사용하지 않은 전형적인 생명과학 논문에서는 인용 빈도가 낮은 게 특징이다. 즉, 나처럼 수학과 친하지 않은 생명과학 연구자가 작성한 논문은 수식으로 넘쳐나는 논문을 잘 인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수식이 가득 담긴 논문은 이론적 성격이 강한 논문, 예를 들어 어떤 신진대사 과정을 수학적으로 모델링 하거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유동물의 신체 크기 변화를 수학적 모델로 구현한 이론적 성격이 강한 논문은 마찬가지로 이론 생물학의 성격이 강한 다른 논문에서 인용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끼리끼리 노는 것인가? 정말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내용임에도 수식으로 가득한 논문을 인용하지 않는 걸까? 왜냐하면, 그런 논문은 기본적으로 읽기가 싫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논문 초록에 나와 있는 핵심적인 요약문을 제외하면, 본문에 나와 있는 설명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해봐라. 이해하기도 어려운 수식이 가득한 연구 논문의 부담스러움을 말이다. 물론, 생물학자가 이런 논문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라면, 즉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용하고 숙지해야 할 논문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읽어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러분의 예상대로 매우 힘들고 험난하다. 마치 사막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랄까?


진실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생물학자가 수학을 싫어하는 것―간혹 생물학자에게 히스테리를 일으키거나 기억 속에 트라우마(trauma)로 각인되는―은 진리인 모양이다. 오죽하면 찰스 다윈도 수학을 싫어했다는 소기가 나왔을까? (참고로, 그의 아들인 레너드 다윈은 유명한 수학자였다.) 수학과 담을 쌓은 생물학자. 정말 이러면 안 될 일이지만, 더불어 수학적 문제 해결이 과학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수학이 어려워 수식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나 같은 생물학자의 고충은 정말 슬픈 현실이다.


오! 신이시여! 왜 우리 생물학자에게 수학적 능력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문제를 진화적으로 해결하란 말입니까? 오! 정녕 슬픈 현실이로다! 우리 생물학자 다수에게 수학적 능력을 주지 않은 당신의 그 오만함과 실수를 끝까지 규탄하리라!


참고 문헌
[1] Fawcett TW, and Higginson AD. 2012. Heavy use of equations impedes communication among biologists. Proc Natl Acad Sci USA. 109: 11735-11739.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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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막을 가진 유기 생명체는 약 34억 년 전 고시생대(Paleoarchean, 古始生代)에 단세포성(unicellularity, 單細胞性) 형태로 처음 출현했다 [1] [그림 1, 위쪽]. 그러나 늦어도 약 21억 년 전 고원생대(Paleoproterozoic, 古原生代) 리야시아기(Rhyacian) 때 다세포성(multicellularity, 多細胞性)이라는 새로운 진화적 경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 1, 아래쪽] [2]. 어떻게 보면 독립생활을 영위하던 단일 세포가 다세포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개체가 하나의 닫힌 울타리 안에서 유기적 연합을 구축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포 다수가 하나의 덩어리(cluster)를 이루면서 새로운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나타났고 생물학적 복잡성(biological complexity, 生物學的複雜性) 또한 커져 갔다. 이 때문에, 새로운 생명 형태에 주어진 자연 선택이라는 엄격한 규범은 세포 사이의 치밀하고 끈끈한 “상호 협력”을 요구했다. 다시 말하자면, 독립생활을 영위했던 단일 세포는 다세포 생명체의 구성 세포가 되는 대신에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으며, 심한 경우엔 자신의 소멸로 그 대의(大義)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림 1. (위쪽)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스트렐리 풀(Strelley Pool) 지층의 암석에서 발견된 산소 대신에 황을 물질대사(metabolism, 物質代謝) 과정에 사용한 원시 세포의 흔적 [1] [출처: Nature Geoscience]. (아래쪽) 아프리카 가봉에서 발견된 다세포 생명체 화석. 산소 호흡을 했다고 추측되는 평균 수 센티미터에서 최대 12 센티미터 크기의 평면형 다세포 생명체가 암석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2] [출처: Nature].



단일 세포 형태에서 다세포 형태로


단일 세포 형태에서 다세포 생명체로의 진화를 (그리고 왜 다세포 생명체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 든 예처럼 고대 다세포 생명체의 흔적이 간혹 발견되긴 하지만 [그림 1, 아래쪽], 그것이 최초 형성 과정을 반영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화석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결과적으로, 초기 다세포 생명체의 생리학적∙생태학적 특징과 그 진화 과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결정적 증거는 전무(全無)한 실정이다.


다세포 생명체는 많은 세포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단세포-다세포 전환 과정의 첫 단계는 독립적으로 있기보다는 한 덩어리로 있으려는 유전적 경향을 지닌 세포의 첫 출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세포의 집결체인 바이오필름(biofilm) 같은 형태인지 아니면 모세포(mother cell, 母細胞)의 세포 분열로 형성된 딸세포(daughter cell, -細胞)가 분열 후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한 데 뭉쳐서 나타났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물학적 상식을 기반으로 각각의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는 있다.


우선,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출현하자마자 다세포 덩어리 사이에서의 선택(selection among multicelled clusters)이 본질적으로 덩어리 내 단일 세포 사이의 선택(selection among single cells within clusters)보다 우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당초 유전적으로 다른 독립생활 세포의 응집(aggregation, 凝集)은 내부적으로 어떤 생물학적 불화(不和)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형성조차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유기체 덩어리 하나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다세포 생명체의 특성상 유전적으로 불균일한 유기체 덩어리는 적응과 경쟁에서 불리했으리라. 따라서 유전적으로 다른 단일 세포가 하나의 집단을 형성해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세포 생명체 출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전적 동일성을 확보 방법에 어떤 것이 있을까? 최선은 모세포에서 딸세포가 세포 분열을 한 다음 분리되지 않은 채 뭉치는 것, 즉 분열 후 유착(post-division adhesion, 分裂後癒着)이다. 이 방법이라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가 하나의 다세포 생명체를 이룰 수 있으며, “유전적으로 우리는 하나다”란 확고한 동족 의식(同族意識) 또한 공유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같은 세포라도 한 데 뭉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독립생활 세포는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혼자서 한다. 번식조차도 자신의 일부를 (다소 정교한 방법으로) 떼어내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단일 세포가 한 덩어리로 모이면 영양분과 같은 자원 분배와 번식 문제 같은 생물학적 이해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탈, 즉 오늘날의 암과 같은 이단(異端)이 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일탈을 막는  것은 다세포 생명체가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며, 결과적으로도 다세포 생명체는 그러한 일탈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실일까? 단지 우리의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닐까?


이 같은 설명은 논리적으로 개연성은 있지만, 과학 대부분이 그렇듯 어떤 식으로든 증명되지 않으면 단순한 허구(虛構)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우리의 논리적 상상에서 비롯된 가설이 실험적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과거에 전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유기체 덩어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생태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실제 과정 자체를 재현하기 위한 시도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2012년에 「다세포성의 실험적 진화(Experimental evolution of multicellularity)」란 제목으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된 논문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이 논문을 「Ratcliff, et al.」이라 부르겠다) [3].


문제 해결은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다


가설을 증명하려면 정교하게 고안된 실험을 준비해야 한다.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인(variable, 變因)을 통제해야 하며, 대조군(control group, 對照群)과 실험군(experimental group, 實驗群)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적절한 통계 분석법으로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어떻게 증명하느냐” 이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 현상 가운데 진화만큼 증명하기 어려운 것도 흔치 않다. 왜냐하면, 인간 수명은 고작 80~100년이지만, 진화 대부분―바이러스와 미생물의 단기적 진화는 예외로 하자―은 적어도 몇천몇만 년이 지나야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억 년의 세월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단세포-다세포 진화를 실험적으로 재현(再現)하려는 시도는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일 지경이다. 그럼에도, 어떤 때에는 정말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Ratcliff, et al.」도 그런 연구 가운데 하나다 [3, 4].


실험 연구자의 눈에 이들의 방법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실제 진화가 일어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연구팀이 선택한 생명체는 흔하디흔한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 또는 Baker’s yeast, 酵母)였다. 자연 상태의 효모는 단세포로 존재한다. 영양분이 매우 부족할 때 군집을 이루기도 하지만,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 미련 없이 서로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실험이 그렇지만, 이들의 실험도 지루하고 단순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실험 기구도 원심분리기(centrifuge, 遠心分離機), 세포 배양기(incubator, 細胞培養機) 그리고 현미경이 전부였다. 약간의 화학 약품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그 어떤 첨단 연구 기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의 실험 과정을 살펴보자.


(1) 효모를 세포 배양액(media, 培養液)이 담긴 플라스크(flask)에 주입해 세포 배양기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길어봐야 반나절 정도) 키운다. (2) 세포 분열로 수가 늘어난 효모가 담긴 플라스크를 꺼내 약 45분간 그대로 놔둔다 (또는 원심분리기로 아주 잠시 돌린다). (3) 바닥에 가라앉은 소량의 배양액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이 소량의 배양액 안에 연구팀이 원하는 다세포성 효모가 존재한다). (4) 바닥에 남아 있는 소량의 배양액을 새로운 배양액이 담긴 플라스크에 주입해 세포 배양기 안에서 일정 시간 동안 키운다. (5) (2)~(4)의 과정을 최대 60번 반복한다.


지루하고 단순한 실험이지만,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바닥에 가라앉은 상대적으로 무거운 효모를 골라내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다세포성 진화를 촉진하는 일종의 “자연 선택”으로 가정했는데, 실제 진화 과정에서 이런 식의 자연 선택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다세포성 생명체 진화의 실질적 원인이라고 보기도 무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구팀이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더라도) 다세포성 진화를 위해 어떤 “선택압(selection pressure, 選擇壓)”을 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선택압”으로 어떤 진화적 변화, 특히 다세포성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선택압”이 주어졌더라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도 있다.


단세포, 다세포가 되다



 

그림 2. (왼쪽) 「Ratcliff, et al.」에서 찾아낸 새로운 형태의 효모 생명체. 맨 윗줄 왼쪽 그림(Ancestor라고 표기)은 자연 상태의 효모이며, 나머지는 실험적 선택으로 나타난 눈송이 효모 덩어리(Snowflake-like yeast cellular cluster)이다. (오른쪽)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자연 상태의 효모와 눈송이 효모 덩어리의 반응. 왼쪽 두 사진은 자연 상태의 효모이며 오른쪽 두 사진은 눈송이 효모 덩어리이다. 윗줄은 영양 상태가 좋을 때이며, 아랫줄은 영양 상태가 안 좋을 때이다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세포 형태의 효모가 지루한 실험적 선택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관찰된 적 없는 “전체적으로 둥글고 눈송이 같은” 효모 덩어리로 진화했다 (앞으로 이 생명체를 “눈송이 효모 덩어리”라고 부르겠다 [3] [그림 1, 왼쪽]. 그리고 그 효모 덩어리의 크기는 배양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눈송이 효모 덩어리가 생존에 있어서 단세포 형태의 효모보다 딱히 불리하지도 않았다. 즉, 자연 상태의 효모만큼 이 새로운 생명체도 영양 상태의 좋고 나쁨과 관련 없이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눈송이 효모 덩어리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최초의 효모에서 세포 분열로 생성된 딸세포가 모세포에서 분리되지 않은 채로 분열을 반복하면서 눈송이 덩어리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다세포 생명체 기원의 가설 가운데 하나인 분열 후 유착 과정이 실제 다세포 생명체 출현에 중요했음을 암시한다. 더불어, 이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자연 상태의 효모에서 흔히 관찰되는 가느다란 실 모양의 유사 균사 형태(pseudohyphal form, 類似菌絲形態)와도 확연히 달랐다 [3] [그림 2, 오른쪽]. 물론, 주변 영양분이 부족하면 눈송이 효모 덩어리를 이루는 구성 세포의 모양도 어느 정도 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세포성을 해치진 않았다. 이들에게 한 번 동지는 영원한 동지였다.



그림 3. (위쪽) 눈송이 효모 덩어리의 시간에 따른 분열 과정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새로운 형태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번식 방식도 달랐다. 자연 상태의 효모는 이분법으로 번식한다. 하지만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제아무리 커 봤자 부모의 절반도 안 되는 전구 과립체(progranule, 前驅顆粒體) 형태를 자손으로 낳을 뿐이었다 [3] [그림 3].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간 전구 과립체는 부모 개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계속 성장했다. 그리고 이 전구 과립체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자기 부모처럼 전구 과립체 형태의 자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과정과 많이 닮았다. 바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세포 생명체가 겪는 유아기(juvenile phase, 幼兒期)와 성년기(adult phase, 成年期)라는 세대에 따른 주기적 순환이다.


세포, 분업을 시작하다


단세포가 다세포성을 띄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세포 덩어리 그 자체로만 존재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가 존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물학적 복잡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거대 생명체가 오늘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은 최초 다세포성 생명체에 어떤 기능적 변화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물학적 복잡성이 나타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세포의 분업(division of labor, 分業)이다. 더불어 세포 분업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생물학적 과정인 세포 분화(cellular differentiation, 細胞分化)도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세포 분화로 단순한 유기체 덩어리는 몸의 부위에 따라 고유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외형적으로는 다세포성을 나타내는 「Ratcliff, et al.」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실질적으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분업 체계 또는 이러한 분업 체계를 가능케 하는 세포 분화 과정을 획득했을까?


세포 분화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세포 소멸(apoptosis, 細胞消滅)이라는 세포 자살 메커니즘이다. 분화 과정에는 다양한 세포가 참여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분화 과정 초기에 필요할 수도 있고, 일부는 나중에 필요할 수 있으며, 일부는 전 과정 통틀어 참여할 수도 있다. 어떤 세포는 임무가 끝나면 올바른 분화를 위해 바로 사라져야 하지만, 어떤 것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다. 개중에 어떤 세포는 분열 과정 중에 손상을 입어 폐기처분 해야 한다. 이때 폐기처분 해야 하는 세포 가운데 상당수는 세포 소멸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분해된다. 따라서 분화 과정 중에 세포 소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개체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그만큼 세포 소멸은 다세포 생명체에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세포 사멸이 일어나는 부분이 노란색 또는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곳은 대부분 과립 전구체가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갈 부분이다 [3]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물론, 이러한 세포 소멸 메커니즘이 꼭 다세포 생명체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자연 상태의 효모에게도 세포 소멸은 일어난다 [5]. 그러나 자연 세포 상태의 효모에서 발생하는 세포 소멸의 최종 결과가 주로 자신에게 국한된다면, 다세포 생명체에서의 세포 소멸은 자신이 아닌 다세포 생명체의 존속을 위한 자기희생의 결정체(結晶體)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세포 사멸은 다세포 생명체 일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연속적인 배양 과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진화한 눈송이 효모 덩어리에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의 소화 기관 또는 신경계 같은 어떤 특별한 생물학적 분화가 일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우리의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구조적으로 너무 단순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생명체는 분명히 자연 상태의 효모와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번식 방법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특히, 모체에서 전구 과립체가 분리될 때, 두 개체의 접지 부분에서만 세포 소멸 과정이 매우 특이적으로 발생한다 [3] [그림 4]. 다시 말하면, 다세포 생명체가 자손을 번식하는 과정에서 일부 세포가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다세포 생명체에서 흔히 나타나는 생물학적 분업은 시험관 안에서 이루어진 인위적인 진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으며, 「Ratcliff, et al.」의 실험에서 진화한 눈송이 효모 덩어리는 진정 원시적 다세포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맺음말


지금까지 웬만해서는 관찰도 재현도 어려운 진화의 과정, 특히 다세포 생명체의 출현에 관한 실험적 재구성에 관한 연구를 소개했다. 이 실험이 실제 진화 과정에서 일어났을 다세포 생명체의 기원을 반영한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적어도 어떤 “선택압”이 단세포 생명체에 주어졌을 때, 그 단세포 생명체가 독립생활이라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다세포성”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번에 다세포성 진화의 실험적 재구성이 가능함을 확인한 상황에서 필자의 기대는 커져만 갔다. 앞으로 어떤 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구성할 수 있을까? DNA/RNA 고분자 생명체의 출현, 세포의 출현, 아니면 이것보다도 더 어려운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진화의 과정들?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참고 문헌
[1] Wacey D, et al. 2011. Microfossils of sulphur-metabolizing cells in 3.4-billion-year-old rocks of Western Australia. Nat Geosci. 4: 698-702. [링크]
[2] El Albani A, et al. 2010. Large colonial organisms with coordinated growth in oxygenated environments 2.1 Gyr ago. Nature. 466: 100-104. [링크]
[3] Ratcliff WC, et al. 2012. Experimental evolution of multicellularity. Proc Natl Acad Sci USA. 109: 1595-1600. [링크]
[4] Dybas C, and Rinard P. January 16, 2012. Biologists Replicate Key Evolutionary Step in Life on Earth.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링크] : 이 기사는 꼭 한 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본문에 잠깐 언급했지만, 과학적 아이디어는 농담 따먹기 식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가 튀어나올 수 있다.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실험만 밤새 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아이디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적 해결의 실마리는 언제나 끊임없는 생각과 동료 과학자와의 논의 가운데 나올 가능성이 크다.
[5] Madeo F, et al. 2004. Apoptosis in yeast. Curr opin Microbiol. 7: 655-660.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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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赤道)를 기준으로 지구 온도는 극지방으로 올라갈수록 낮아진다. 마찬가지로, 생물 다양성(biodiversity, 生物多樣性)도 이와 비슷하게 위도(latitude, 緯度)가 높아질수록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온도와 생물 다양성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뜻한다. 즉,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일수록 종의 다양성은 증가하고 낮을수록 감소함을 말한다 [1]. 그렇다면 지구 역사를 통틀어 온도와 생물 다양성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그림 1. 시간에 따른 지구 온도의 상대적 변화. 그래프 위쪽의 약어(略語)는 각각의 지질학적 시간대를 나타낸다. [고생대] Cm(캄브리아기), O(오르도비스기), S(실루리안기), D(데본기), C(석탄기), P(페름기); [중생대] Tr(트라이아스기), J(쥐라기), K(백악기); [신생대] Pal(팔레오세), Eo(시신세), Ol(점신세), Pliocene(선신세), Pleistocene(홍적세), Holocene(완선세). 고생대 캄브리아기부터 신생대 홍적세 초기까지의 시간은 백만 년 단위로 표시했으며, 신생대 홍적세 중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시간은 천 년 단위로 나타냈다. 고생대와 중생대 사이에 있었던 빙하기(glacial period, 氷河期)는 파란색 박스로 표시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구 온도는 약 5억 4천2백만 년 전 고생대(Paleozoic, 古生代) 캄브리아기(Cambrian)부터 (사실은 그 지구가 형성되고 난 뒤부터 계속) 전체적으로 낮아지다가 약 1만 년 전 신생대(Cenozoic, 新生代) 완신세(Holocene, 完新世)에 접어들면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림 1]. 더불어, 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와 실루라인기(Silurian) 사이, 고생대 석탄기(Carboniferous)와 페름기(Permian) 사이 그리고 신생대(Cenozoic, 新生代) 점신세(Oligocene, 漸新世) 사이에 매우 광범위한 빙하기(glacial period, 氷河期)가 적어도 크게 세 차례 있었고, 중생대(Mesozoic, 中生代) 쥐라기(Jurassic)와 백악기(Cretaceous) 사이에 빙하기는 아니어도 빙하기에 버금갈 정도로 전반적인 온도의 저하가 있었으며, 신생대 선신세(Pliocene, 鮮新世)와 홍적세(Pleistocene, 洪積世) 사이에도 빙하기와 간빙기 (interglacial period, 間氷期)가 주기적으로 번갈아 나타나는 기후의 격변(激變)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랜 시간에 걸친 지구 온도의 급격한 저하는 생물 종의 전체적인 감소를 뜻하는 대멸종(mass extinction, 大滅種)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림 2. 지질학적 시간과 위도에 따른 해양 무척추동물의 다양성 추이(推移). 검은색 선은 열대 지역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tropics로 표기) 변화를 뜻하며, 회색 선(summed로 표기)은 전(全) 지구적인 생물 다양성의 변화를 나타낸다 [4] [출처: Paleobiology].



하지만 이러한 대멸종의 시기가 있었음에도 생물 다양성, 특히 해양 무척추동물(marine invertebrate, 海洋無脊椎動物)의 생물 다양성은 과거 고생대 캄브리아기부터 신생대 완신세 (Holocene, 完新世)인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2, 3, 4] [그림 2]. 이것은 생명체 멸종이 거의 배제된 상태에서 새로운 종의 지속적 출현으로 나타난 양상(樣相)이라기보다는, 급격한 환경적 변화로 기존에 존재하던 생물 종의 멸종 비율(extinction rate, 滅種比率)이 높아짐과 동시에 새로운 종의 출현 비율(origination rate, 出現比率)도 동반 상승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3]. 특히, 화석 자료 등에서도 대멸종 이후에 (실제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든) 새로운 종의 출현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음을 뜻하는 증거가 잘 드러난다 [3].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해양 무척추동물의 전체적인 생물 다양성은 전반에 걸쳐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열대에서 서식하는 해양 무척추동물의 다양성은 큰 변화가 없다고 나타난다 [그림 2, 검은색 선과 회색 선 비교]. 특히 2008년도에 보고된 지구 온도 변화와 해양 무척추동물의 종 다양성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한 논문에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5].



그림 3. 지질학적 시간대와 온도 변화에 따른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의 변화. 검은색 원과 점선은 온도의 변화를 뜻하며, 흰색 원과 실선은 종 다양성을 의미하고, 이중 원은 대멸종이 있었던 시기를 나타낸다. 시간 단위는 백만 년이다 [5] [출처: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2008년에 「화석 기록에 나타난 전 세계적인 온도와 생물 다양성 그리고 종 출현과 멸종 사이의 장기적 연관성(A long-term association between global temperature and biodiversity, origination and extinction in the fossil record)」이란 제목으로 피터 메이휴(Peter J. Mayhew) 박사 연구팀이 『왕립 학회 회보(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온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크기에 역(逆)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 즉, 온도(특히 바닷물 온도)가 높았던 시기에는 종의 수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는 반면에 온도가 낮아지면 종의 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5] [그림 3]. 더불어, 온도가 높은 시기에는 종의 출현 비율과 멸종 비율이 동시에 높게 나타나는데 [5], 이러한 현상은 빙하기처럼 온도가 급감(急減)하는 지질학적 시기에 많은 멸종이 있었다는 지구 진화 역사의 전반적 경향성과 생물 다양성은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다는 일반적인 현상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온도 변화가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온도 변화가 생물 다양성에 중요하지만, 그러한 결론을 과학적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생물학적 그리고 비생물학적 변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물학적 변수로는 종 사이의 생존 경쟁(competition, 競爭)과 포식자-피포식자 사이의 상대적인 개체 수 변화를 들 수 있으며, 비생물학적 변수로는 기후 변화와 더불어 해수면 높이(sea level, 海水面)의 변화, 해수로 유입되는 영양분의 양과 이로 인한 외부 화학 조성의 변화, 지각 변동, 화산 활동, 그리고 운석의 충돌 등을 들 수 있다 [1]. 따라서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단순히 지질학적 시간에 따른 온도 변화만으로 생물 다양성의 변화 추이를 파악하려는 것은 실제 온도 변화가 줄 수 있는 어떤 어떤 영향에 대해 잘못된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온도와 생물 다양성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negative correlation, 陰-相關關係)가 있음을 주장한 2008년도 메이휴 박사 연구팀의 결과는 “전 지역에 걸쳐 발견된 해양 무척추동물이 시간에 따른 생물 다양성 변동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도출되었다 [1, 5]. 하지만 화석은 기본적으로 퇴적층(堆積層)에서 형성되므로, 퇴적암(堆積岩)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일수록 화석 발견 가능성은 타 지역보다 매우 높으며, 결과적으로 지역에 따른 화석 분포에 과도한 편향이 나타날 수 있다 [1]. 다시 말해, 어떤 지역의 생물 다양성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화석 형성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 화석을 중심으로 한 생물 다양성 평가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적도를 중심으로 위도가 커질수록 온도가 높아짐을 상기(想起)한다면 각 지역에서 발굴된 화석에서 드러나는 동물상(fauna, 動物相)은 곧 온도에 다른 생물 다양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많은 화석이 발굴된다면 실제와는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다.


2012년에 「생물 다양성은 오랜 시간 동안 온도를 뒤쫓는다(Biodiversity tracks temperature over time)」이란 제목으로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한 메이휴 박사 연구팀의 분석 결과는 자신들이 2008년도에 내놓았던 결론을 뒤집고 있다 [1]. 특히, 이번 연구는 과거의 불완전한 분석법과 편향적인 자료 대신에 좀 더 개선된 분석법과 자료를 이용해 온도 변화의 해양 무척추동물 생물 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했는데, 결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림 4. 온도 변화와 해양 무척추동물 다양성 사이의 상관관계. 검은색 원과 실선은 온도 변화를 뜻하고, 흰색 원과 점선은 생물 다양성을 나타내며, 회색 원은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 [1]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08년도 분석 결과인 그림 3과 2012년도 분석 결과인 그림 3의 “온도 변화에 따른 생물 다양성의 변화 추이”를 비교해보자. 2008년도 분석 결과가 이들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면 [5] [그림 3], 2012년도 분석 결과에서는 온도와 해양 무척추동물 생물 다양성 사이에 확실한 양의 상관관계(positive correlation, 陽-相關關係)가 나타난다 [1] [그림 4]. 이것은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 생물 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통설(通說)과 분명히 일치한다. 더불어 이들 연구팀은 온도가 낮아지면 곧바로 종의 멸종 비율이 높아지고 뒤이어 새로운 종의 출현 비율이 높아지는 양상을 확인했다 [1].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기온(氣溫)과 수온(水溫) 상승으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인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地球溫暖化) 현상과 같은 지구 온도의 점차적인 상승은 단기적으로 생물 다양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적어도,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은 그런 식의 경향성을 보이며, 이를 확대 해석하면 대부분의 생명체에서도 마찬가지 경향성이 드러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도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더불어) 인간에 의해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해마다 많은 수의 생물 종을 멸종의 길로 이끌고 있으며, 그 결과 지구에 존재하는 다세포 생물 종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요약하면, 지구 온도의 상승은 현존하는 종의 멸종 비율을 가속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지구 온도의 상승은 종의 멸종 비율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의 출현 빈도 또한 높일 수 있다. 적어도 메이휴 박사 연구팀의 2012년도 연구 결과에서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물 다양성 변화는 그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다른 종류의 생물 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구 역사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지구 온도의 상승은 궁극적으로 생물 종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결국 이러한 과정이 대진화(macroevolution, 大進化)라고 일컫는 장시간에 걸친 생물학적 도약을 딛게 하는 원동력임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온도 변화와 생물 종 다양성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논문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전 지구적 온난화 현상은 분명히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연구를 통해 주목해야 할 점은 지구 온난화가 지구 역사의 한 축인 생명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의 역사에 종지부(終止符)를 찍을 정도로 파괴적이지는 않으며 오늘날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생물 종 다양성의 감소도 지구 역사에서 늘 있었던 과정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장과는 별개로 우리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는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매우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과거 수많은 생명체가 겪어야만 했던 절멸(絶滅)의 길로 우리 자신을 인도할 수 있음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참고 문헌
[1] Mayhew PJ, et al. 2012. Biodiversity tracks temperature over time. Proc Natl Acad Sci USA. 10.1073/pnas.1200844109. [링크] : 현재 이 논문은 정식으로 출판되기 전에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되었다.
[2] Alroy J, et al. 2008. Phanerozoic trends in the global diversity of marine invertebrates. Science. 321:97–100. [링크]
[3] Alroy J. 2008. Dynamics of origination and extinction in the marine fossil record. Proc Natl Acad Sci USA. 105: 11536–11542. [링크]
[4] Alroy J. 2010. Geographical, environmental and intrinsic biotic controls on Phanerozoic marine diversification. Palaeontology. 53: 1211–1235. [링크]
[5] Mayhew PJ, et al. 2008. A long-term association between global temperature and biodiversity, origination and extinction in the fossil record. Proc Biol Sci. 275:47–53. [링크]


이 연구를 소개한 다른 글
[1] Mole BH. September 5, 2012. Warming Drives Biodiversity? : Global climate change may have long-term benefits for the world’s marine flora and fauna. The Scientist. [링크]
[2] Science News. September 3, 2012. Research reveals contrasting consequences of a warmer Earth. ScienceDaily.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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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공룡을 냉혈 동물(cold-blooded animal, 冷血動物) 또는 변온 동물(ectotherm, 變溫動物)로 알고 있다 [그림 1]. 그런데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가 「계절에 따른 뼈 성장과 항온 동물의 생리 기능이 공룡의 생리 기능을 밝히다(Seasonal bone growth and physiology in endotherms shed light on dinosaur physiology)」라는 제목으로 『네이쳐(Nature)』에 발표되었다(앞으로 이 논문을 「Köhler, et al.」이라 부르겠다) [1].



그림 1. 다양한 조각류(ornithopod, 鳥脚類) 공룡과 헤테로돈토사우루스류(heterodontosaurid). 맨 왼쪽이 캄프토사우르스(Camptosaurus), 왼쪽이 이구아노돈(Iguanodon), 가운데 뒤쪽이 샨퉁고사우르스(Shantungosaurus), 가운데 앞쪽이 드라이오사우루스(Dryosaurus), 오른쪽이 코리토사우루스(Corythosaurus), 맨 오른쪽 작은 개체가 헤테로돈토사우루스(Heterodontosaurus), 맨 오른쪽 큰 개체가 테논토사우루스(Tenontosaurus) [출처: 위키피디아].



공룡 뼈에는 근모 조직(fibromellar tissue, 根毛組織)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근모 조직은 빨리 성장하는 포유동물의 뼈에서 흔히 발견된다. 따라서 고생물학자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는 공룡이 오늘날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체내 신진대사 활동이 계절과 관계없이 활발히 일어나는 항온 동물(endotherm, 恒溫動物) 또는 온혈 동물(warm-blooded animal, 溫血動物)이었으리라 생각했다 [2]. 하지만 1980년대에 공룡 뼈에서 성장지연선(line of arrested growth 또는 LAG, 成長遲延線)이라는 해부학적 특징이 발견되었다 [1] [그림 2].



  

그림 2. (왼쪽, 가운데) 공룡 화석 뼈에서 나타나는 지연성장선 [출처: Nano Patents and Innovations, Monash University]. (오른쪽) 도마뱀의 한 종류인 Chalcides chalcides의 대퇴부 뼈 단면 [4] [출처: Zoologischer Anzeiger]. 화살표는 전부 성장지연선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성장지연선 또는 LAG이란 무엇인가? 재미있게도 이것은 변온 동물로 잘 알려진 현존하는 파충류(raptile, 爬蟲類)와 양서류(amphibia, 兩棲類)의 뼈 단면에서 자주 나타나는 해부학적 특징으로, 주변에서 에너지를 흡수해 체온을 유지하는 변온 동물이 온도의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성장을 멈췄다가 다시 성장할 때 생성되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나이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성장 속도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포유류와 같은 항온 동물 대부분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성장지연선이 뼈에 생성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해부학적 특징이 멸종한 공룡 뼈에도 있음이 밝혀졌다. 그 결과, 공룡이 항온 동물이냐 냉온 동물이냐는 진실 게임은 지난 30년 동안 논쟁의 한 가운데 서게 되었다 [2].


그런데 「Köhler, et al.」에서는 성장지연선이 변온 동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서 서식하는 포유동물인 40종 115마리에 해당하는 반추 동물(ruminant animal, 反芻動物)의 대퇴골(femur, 大腿骨)에도 존재함을 발견했다 [그림 3] [1]. 즉, 성장지연선이 변온 동물만의 독특한 해부학적 특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해졌다. 덧붙여, 성장을 빨리 하느냐 늦게 하느냐는 성장지연선의 형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3,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의 화살표 비교]. 결과적으로, 공룡 뼈에 존재하는 성장지연선을 근거로 “공룡은 변온 동물이다”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림 3. (왼쪽) 지연된 성장을 보이는 반추 동물의 뼈 단면. (오른쪽) 빠르게 성장하는 반추 동물의 뼈 단면. 화살표는 성장지연선을 가리킨다 [1] [출처: Nature].



그렇다고 「Köhler, et al.」의 연구가 “공룡은 온혈 동물이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연구에서 강조하는 바는 성장지연선이 “더이상 변온 동물의 특징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연구팀은 멸종한 공룡이 정말 변온 동물인지는 앞으로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밝혀져야 할 일이며, “성장지연선”과 같은 단편적인 근거만으로 쉽게 단정 짓는 오류는 가급적 피해야 함을 주장한다. 어쨌든, 「Köhler, et al.」의 연구 결과는 기존에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던 성장지연선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이 때문에 야기된 “공룡은 진실로 변온 동물이다”라는 오해를 일소(一掃)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본다.


참고 문헌
[1] Köhler M, et al. 2012. Seasonal bone growth and physiology in endotherms shed light on dinosaur physiology. Nature. 487: 358-361. [링크]
[2] Dunning H. June 27, 2012. Dinos Not Necessarily Cold-Blooded: The leading argument for dinosaurs being cold-blooded is overturned as a nearly identical bone structure is found in mammals. The Scientist. [링크]
[3] 「공룡은 온혈동물이었을지도」. 2012년 06월 29일(금). 『사이언스 타임스』. [링크] : 본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연합뉴스』를 참조한 이 기사는 기본적인 수치부터 잘못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사 본문 가운데 “…연구진은 양이나 소처럼 온혈 포유류에 속하는 야생 반추동물 100여 종의 다리 뼈…”란 구절이 있는데, 연구진이 사용한 반추 동물 종의 수는 필자가 언급했듯이 40종이고, 사용한 동물 수가 약 100여 마리(정확히는 115마리)다.
[4] Guarino FM. 2010. Structure of the femora and autotomous (postpygal) caudal vertebrae in the three-toed skink Chalcides chalcides (Reptilia: Squamata: Scincidae) and its applicability for age and growth rate determination. Zoologischer Anzeiger. 248: 273-283.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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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는 예외 없이 DNA(deoxyribonucleic acid)와 RNA(ribonucleic acid)를 유전 물질(genetic material, 遺傳物質)로 사용한다. 특히, 바이러스를 제외한 대부분 생명체는 DNA를 유전 정보 저장에 사용되며, 그 안에 담긴 유전 정보를 RNA 형태—특히 전령 RNA(messenger RNA 또는 mRNA, 傳令-)—로 복사해 단백질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이 RNA 안에 내재된 기능 전부는 아니다. 유전 정보 물질인 RNA는 상황에 따라 라이보자임(ribozyme)이라는 일종의 효소(enzyme, 酵素)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세포 내 거대 단백질 합성 공장인 리보좀(ribosome) 복합체(complex, 複合體)의 핵심 구성 분자인 rRNA(ribosomal RNA 또는 rRNA)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RNA는 그 자체로 유전 물질이며 효소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RNA 세상 상상도. 구글링(googling)을 하다가 발견했다. 원시 지구 지표면에서는 끊임없이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원시 바다에서는 초기 생명체가 RNA 형태로 물리화학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효소 반응과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초기 생명체에는 미세한 변화가 끊임없이 누적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출처: NASA].



앞에서 언급한 RNA의 특징을 바탕으로 “초기 생명체는 RNA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진화가 거듭되면서 생물학적 기능에 일종의 분업화가 발생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RNA 세상 가설(RNA world hypothesis)”이 제안되었고 오늘날에도 이 가설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림 1] [1].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왜 RNA를 초기 생명체의 형태로 주목했을까?


생명 현상은 유전자의 연속적 흐름으로 부모의 형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손에게 어떤 식으로든 전해짐을 뜻한다. 물론 부모 형질(또는 유전 정보)이 자손에게 그대로 또는 변형되어 전달되거나 완전히 단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수준에서 유전 정보의 흐름에는 방향이 있으며, 오늘날 생명체는 그 수단으로 DNA와 RNA를 사용한다. 더불어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외부에서 영양분을 흡수 또는 섭취하며 체내에서 다양한 유기 물질을 합성한다. 특히, 이러한 유기 물질 합성에 관여하는 물질을 우리는 효소라고 부르며, 효소 대부분은 사실상 단백질이다. 효소를 통해서만,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질을 분해하거나 합성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생명체는 “RNA 세상”의 존재 가능성을 방증(傍證)할만한 증거 또는 흔적—생명체가 사용하는 주요 에너지 형태인 ATP(adenosine triphosphate), 단백질 효소의 다양한 조효소(coenzyme, 助酵素),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효소로 기능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이보자임—을 갖고 있다.




그림 2. TNA 구조 [출처: Nature Chemistry].



최근에 RNA 세상 가설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연구가 「Darwinian evolution of an alternative genetic system provides support for TNA as an RNA progenitor」이란 제목으로 『네이쳐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란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2]. 이 연구에서는 RNA와 DNA보다 구조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생물•화학적으로 RNA와 유사한 (3’,2’)-α-L-throse nucleic acid 또는 TNA라 부르는 물질에 초점을 맞췄다 [그림 2]. 특히, 연구팀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관심을 둔 것은 "TNA라는 물질이 진화적으로 RNA를 대체할 수 있는가?" 또는 "TNA가 RNA가 출현하기 이전의 유전 물질일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TNA는 구조적으로 RNA와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데, 일반적으로 RNA는 리보스 당(ribose sugar, -糖)을 뼈대(backbone)로 갖지만, TNA는 트레오스(threose)란 물질을 뼈대로 삼는다 [그림 2]. 이 때문에 TNA가 RNA보다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며 상대적으로 더 안정하다. 게다가 TNA는 RNA를 대신해 유전 물질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실제로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로 사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라이보자임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논문의 핵심인데, 연구팀은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TNA와 같은 물질이 RNA 이전에 초기 생명체가 주로 사용했던 유전 물질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만일, RNA보다 구조적으로 단순하며 RNA 같은 양면성(兩面性) 물질이 자연 상태에 존재한다면 생명의 기원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증거로 이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 가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TNA가 유전 물질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라이보자임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해서 TNA가 초기 생명체의 유전 물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2, 3]. 왜냐하면, 원시 지구는 오늘날보다도 더 (어떻게 보면 꽤 난잡한 상태로) 다양한 물질이 혼재(婚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생각한다), TNA가 유전 물질로서 독보적인 위상(位相)을 구축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TNA와 구조적 또는 기능적으로 유사한 다른 물질이 TNA와 비슷하거나 높은 빈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로, 오늘날 알려진 어떤 생명체도 TNA 또는 이와 유사한 물질을 생명 현상에 사용하지 않는다 [3]. 만약 초기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 등으로 사용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오늘날 생명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과거 초기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셋째로, 원시 지구에 TNA가 실제로 존재했냐는 것이다 [2, 3]. 현재까지 TNA가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오히려 TNA는 실험실에서만 합성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 원시 지구에서는 유전 물질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사족이지만, 국내 일급 과학 전문 언론(솔직히 비꼬는 거다)인 『사이언스 타임즈(The Science Times)』는 TNA가 과거에 실제로 존재한 물질인 것처럼 기술해놨다 [4]. 관련 기사를 쓴 객원 기자라는 사람이 이 논문을 제대로 읽었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금까지 초기 생명체 진화에 관한 최신 연구를 아주 간략하게 살펴봤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TNA는 구조적으로 단순한 유사(類似) RNA 물질이며 유전 물질과 효소 기능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RNA가 생명 현상의 주류가 되기 전에 사용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은 진화적으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증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현실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상황적 증거도 없으므로, 이 주장이 (비록 좋은 논문에 게재되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생명의 기원을 “RNA 세상” 이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는 진정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RNA world hypothesis. Wikipedia. [링크]
[2] Yu H, et al. 2012. Darwinian evolution of an alternative genetic system provides support for TNA as an RNA progenitor. Nat Chem. 4: 183-187. [링크]
[3] Marshall. 08 January 2012. Before DNA, before RNA: Life in the hodge-podge world. New Scientist. [링크]
[4] 김형근. 2012년 3월 13일. 「“RNA 형성 전에 TNA가 있었다” 생명체 기원, 생각보다 단순할 수도」. 사이언스타임즈.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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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평화롭게 수액을 빨아 먹고 있는 진딧물 [출처: 위키피디아].



몇몇 생명체는 광합성(photosynthesis, 光合成)을 할 수 있는 미생물 또는 식물과 공생 관계(symbiosis, 共生關係)로 묶여 있다. 어떻게 보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양분을 스스로 합성할 수 있는 식물과 같은 독립 영양 생물(autotroph, 獨立營養生物)과 다른 생명체를 통해 영양분을 획득해 생체 에너지를 합성할 수 있는 종속 영양 생물(heterotroph, 合成從屬營養體)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모든 생명체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생명체와 일종의 공생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그러한 철학적 사유를 배제한 채 과학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시야를 매우 좁게 한정한다면 공생 관계에 놓여 있는 생명체는 일부로 국한할 수 있다.


여느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겠지만, 이들 공생 생명체가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는 독립 영양 생명체와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사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바로 생 화합물 또는 에너지의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선데, 종속 영양 생명체인 이들 더부살이도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해 낼 그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식물도 조류(algae, 藻類)도 미생물도 아닌 임의의 다세포 생명체가 빛 에너지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바로 사용 가능한 생체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면 믿을 텐가?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지만,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리 상식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매직쇼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놀라운 깜짝쇼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진딧물(aphid, 학명: Acyrthosiphon pisum)이다 [그림 참조].


일반적으로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라는 색소는 물속에서 사는 조류(algae, 藻類)와 몇몇 미생물 그리고 곰팡이류에 흔히 존재하는 물질로 보통 노란색에서 주황색을 띠는데, 특정 단백질이 이 물질에 결합하면 녹색 또는 갈색으로 색깔이 변한다. 특히 카로티노이드는 광합성 과정에서 엽록소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유입되는 빛 에너지를 포획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로 그 카로티노이드가 진딧물 몸 안에 꽤 많이 존재한다. 그것도 외부에서 무엇인가를 섭취했기 때문에 카로티노이드가 몸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진딧물 몸 안에 카로티노이드를 생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진딧물은 현재까지 알려진 곤충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카로티노이드를 합성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니스 대학(the University of the Nice)의 마리아 카포빌라(Maria Capovilla) 박사 연구팀은 카로티노이드를 합성할 수 있는 진딧물에 빛을 쪼였을 때 주요 생체 에너지인 ATP (adenosine triphosphate) 합성이 증가하지만, 카로티노이드가 없는 돌연변이 진딧물은 빛을 아무리 쪼여도 ATP 합성이 증가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카포빌라 박사 연구팀은 진딧물에 광합성 작용과 비슷한 어떤 메커니즘이 있으리라 추론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진딧물에 유사 광합성 과정이 있는 게 아니라, 대신 빛의 유입으로 생체 내 ATP 합성이 활성화되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유사 광합성 과정이든 아니든 흥미로운 것은 빛 에너지가 동물(여기서는 진딧물이라는 곤충이지만)의 생체 에너지 합성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인데, 이들 진딧물은 어떻게 해서 카로티노이드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획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자연 선택과 진화의 흐름을 거쳐서 마치 광합성 과정과 유사한 생체 메커니즘을 구축하게 되었을까? 자연은 정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파노라마를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아직 이 논문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분야도 연구해보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자연은 언제나 연구할 가치가 크다.


참고 문헌


[1] Valmalette JC, et al. 2012. Light-induced electron transfer and ATP synthesis in a carotene synthesizing insect. Sci Rep. 2: 579. [링크]
[2] Aphids may be first photosynthesising animal. New Scientist.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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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27일 『한겨레』 온라인판에 「고양이판 ‘연가시’…감염 여성 자살기도 1.8배 높아」란 제목으로 정말 황당한 과학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1]. 솔직히 이 기사를 보고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왜냐하면, 기사에서 인용한 논문의 연구 목적과 결론이 저 멍청한 한겨레 과학 기사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당연히 기사에서 인용한 논문 가운데 하나를 읽었기 때문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한겨레 과학 기사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다른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니 핵심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미국 메릴랜드약대의 테어도어 포스톨라치 교수는 최근 의학전문 학술지 <일반정신의학회보>에 고양이를 키우는 여성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높다고 밝혔다. ......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자살을 기도한 경우가 1.8배 높았고, 자살을 생각한 경우도 2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인 자살 위험도는 1.54배 높았다. 미국 미시간대 약대의 레나 브룬딘 교수도 <임상정신의학> 8월호에서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할 가능성이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고했다. [1]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했다]


위에서 인용한 단락 다음에 톡소포자충(toxoplasma, toxo胞子蟲; 학명은 Toxoplasma gondii 또는 T. gondii)의 다양한 감염 경로와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인 톡소포자충 감염자 수를 설명하면서, 갑자기 숙주를 조종하는 바이러스 이야기를 늘어놓는 의도를 (또는 그런 전개 방식을 취한 이유를)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1], 그건 그것대로 넘어간다고 치자. 어차피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글의 전개 방식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판 ‘연가시’”라는 제목 일부와 “고양이를 키우는 여성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1.5배 높다”란 문장이다. 왜 이게 문제냐 하면, “고양이를 자살의 원인 제공원”으로 몰고 가면서 객관적 근거라고 인용한 두 논문, 즉 미국 메릴랜드 약대(University of Maryland, School of Medicine)의 테어도어 포스톨라치(Teodor T. Postolache) 교수 연구팀과 미국 미시간 주립대 약대(Michigan State University, College of Human Medicine)의 레나 브룬딘(Lena Brundin) 교수 연구팀이 독립적으로 진행한 두 연구 결과가 사실 “고양이와 자살”의 연관성을 살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구한 것은 단지 “톡소포자충 감염과 자살의 연관성”일 뿐이다 [2, 3, 4, 5].


우선 포스톨라치 교수 연구팀이 밝힌 연구 목적부터 살펴보자. 연구 목적은 논문 초록에 명시되어 있다 [2].


To examine whether T gondii–infected mothers have an increased risk of self-directed violence, violent suicide attempts, and suicide and whether the risk depends on the level of T gondii IgG antibodies.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엄마에게서 자기를 향한 폭력(self-directed violence), 폭력적인 자살 시도(violent suicide attempts) 그리고 자살 위험이 증가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위험이 톡소포자충에 대한 IgG 항체 양(量)에 의존적인지를 조사하는 것임.


브룬딘 교수 연구팀의 연구 목적도 살펴보자. 마찬가지로 논문 초록에 명시되어 있다 [3].


The primary aim was to relate Toxoplasma gondii seropositivity and serointensity to scores on the self-rated Suicide Assessment Scale (SUAS-S). Another aim was to reevaluate the previously reported positive association between T gondii serointensity and a history of nonfatal suicidal self-directed violence.
일차적인 목표는 톡소포자충의 혈청 반응 양성(seropositivity)과 혈청 내부 존재량(serointensity)을 자가 자살 평가 척도(self-rated Suicide Assessment Scale, SUAS-S) 작성과 연계하는 것이다. 또 다른 목적은 톡소포자충의 혈청 내부 존재량과 비치명적 자살 충동성 자기 폭력(nonfatal suicidal self-directed violence)에 대한 전력(history, 前歷) 사이의 이전에 보고된 결정적인 연관성을 재평가하는 것이다.


두 논문의 연구 목적 어디에도 “고양이”에 관한 언급은 없다. 단지 본문에서 톡소포자충을 설명할 때 “잘 알려진 숙주”로 잠깐 나올 뿐이다. 다시 포스톨라치 교수 연구팀의 논문을 살펴보자 [2].


Felids have been identified as definitive hosts of T gondii, with the parasite multiplying sexually in the cats’ gut and spreading oocysts. Humans are infected by ingestion of oocysts spread from feces of infected cats (eg, contaminated sandbox and ingestion of unwashed vegetables), eating undercooked meat infested with T gondii cysts, using knives used to cut infested meat to further cut vegetables, and, occasionally, drinking water from a contaminated water source.
고양이과 동물(Felids)은 톡소포자충의 확실한 숙주(definitive host)로 확인되었으며, 고양이의 장(gut, 臟)에서 유성 생식으로 증식하고 접합자낭(oocyst, 接合子囊)으로 퍼진다. 인간은 감염된 고양이의 접합자낭을 삼키거나 (예를 들어, 오염된 모래 상자에서 놀거나 씻지 않은 채소를 삼키는 것) 섭취하거나, 톡소포자충 접합자낭에 감염된 덜 익힌 고기를 먹거나, 감염된 고기를 자를 때 사용한 칼로 채소를 잘랐거나, 때때로는 오염된 물을 마심으로써 감염된다.


포스톨라치 교수 연구팀 논문의 후반부에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2].


A study among pregnant women in Norway found an increased risk of recent maternal T gondii infection associated with consumption of raw or undercooked meat, incompletely washed fruits and vegetables, cleaning the cat litter box, and washing the kitchen knives infrequently after preparation of raw meat, prior to handling another food item.
노르웨이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날고기나 덜 익힌 고기 섭취, 완전히 씻지 않은 과일과 채소의 섭취, 고양이 용변통 청소, 날고기를 손질한 뒤에 잘 씻지 않은 부엌 칼로 다른 음식을 손질하기 등과 관련된 어머니를 통한 태아의 톡소포자충 감염 위험이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브룬딘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 두 편에서도 마찬가지로 톡소포자충 감염 경로에 대한 간단한 언급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고양이 때문에 톡소포자충 감염이 증가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하진 않는다 [4, 5]. 다시 말하면, 위 두 논문이 다루는 내용은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그렇다면 두 연구팀이 표본을 선정하고 분석할 때, 고양이와의 접촉 여부를 고려했는가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들 연구팀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적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만 조사했을 뿐, 이들이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지(또는 키운 적이 있는지), 고양이와 어느 정도 접촉했는지 등과 같은 사항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2, 3]. 그러니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연구는 고양이와 전혀 상관없단 소리가 되겠다. 사실이 이런데도 이근영 선임 기자는 두 연구팀의 결론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톡소포자충 감염으로 인한 자살 증가 가능성”을 애꿎은 고양이한테 뒤집어씌우고 있다.


더 웃긴 게 뭔 줄 아는가? 지난 5월 21일 한겨레 신문 온라인에 올라온 「고양이가 태아 유산 유발? 애호가들 ‘부글부글‘」이란 기사에서는 “톡소포자충 감염과 고양이 사이의 과도한 연관 짓기”에 대해 비판을 가한 적이 있으면서도 [6], 8월 27일 기사에서는 마치 일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를 자살 증가 원인” 가운데 하나로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고양이”를 바라보는 과학적 시선에 일관성이 없다는 건 한겨레 신문 데스크에 어떤 문제가 있거나, 기자들 사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소속 기자가 자기 신문에 올라오는 기사를 확인 안 한다는 뜻이 되겠다. 이것도 아니라면 기자가 고양이에 대해 “개인적 원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겠지만, 이건 또 지나친 비약일께다.


매번 느끼지만, 과학 기자들은 기사 쓸 때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가 제대로 된 조언을 받길 바란다. 조언만 제대로 받아도 기사가 뻘소리 탑재할 빈도수는 많이 줄어든다. 그리고 어떤 논문을 근거로 기사 쓸 때도 논문을 제대로 읽고 글쓰길 바란다. 솔직히 기사를 읽다 보면 글의 내용과 수준에 의구심이 들 때가 많은데, 대부분이 기자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논문을 읽다가 모르면 포기하지 말고 전문가한테 문의하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한다. 그게 기사를 읽는 독자에 대한 예의 아닐까? 앞으로 불쌍한 “고양이”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지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참고 문헌

[1] 이근영. 2012년 8월 27일. 「고양이판 ‘연가시’…감염 여성 자살기도 1.8배 높아」. 한겨레 신문 온라인. [링크]
[2] Petersen MG, et al. 2012. Toxoplasma gondii Infection and Self-directed Violence in Mothers Toxoplasma Gondii and Self-directed Violence. Arch Gen Psychiatry. 10.1001/archgenpsychiatry.2012.668. [Epub ahead of print] [링크] : 한겨레 기사에서 언급하고 인용한 “미국 메릴랜드약대의 테어도어 포스톨라치 교수” 연구팀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공공에 무료로 공개되지 않으므로,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이 논문은 읽을 수 없다. 대신 논문 초록만 열람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는 어떤 경로로 이 논문을 직접 입수해서 논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Zhang Y, et al. 2012. Toxoplasma gondii Immunoglobulin G Antibodies and Nonfatal Suicidal Self-Directed Violence. J Clin Psychiatry. 73: 1069-1076. [링크] : 한겨레 기사에서 언급하고 인용한 “미국 미시간대 약대의 레나 브룬딘 교수” 연구팀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이 논문도 공공에 무료로 공개되지 않으므로, 오직 논문 초록만 열람 가능하다. 애석하게도 이 논문의 본문은 확인할 수 없었다.
[4] Paddock C. 2012. Common Parasite Linked To Suicide Risk. Medical News Today. [링크] : 레나 브룬딘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소개한 온라인 기사다.
[5] Cody J. 2012. Common parasite may trigger suicide attempts. Michigan State University News. [링크] 위의 것과 마찬가지로 레나 브룬딘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소개한 미시간 주립 대학의 소식지다.
[6] 김양중. 2012년 5월 21일. 「고양이가 태아 유산 유발? 애호가들 ‘부글부글‘」. 한겨레 신문 온라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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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옹호단체로 알려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일명 교진추)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며 과학 교과서에 기재된 시조새와 말의 진화 관련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청원서를 2011년 12월과 2012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이 전에 사전 물밑 작업의 일환으로 “교과서진화론개정연구소”라는 교진추 산하 단체를 통해 『교과서 속 진화론 바로잡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교육과학기술부에게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냄으로써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 집단, 즉 교진추에게 오랜 숙원이었던 “진화론을 격파하고 창조론을 가르침으로써 과학을 통해 주 여호와의 영광을 증거하기”는 마침내 그 첫 단추 끼우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주 여호와의 은혜로우심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네이쳐(Nature)란 저 위대하신 과학 잡지께서 「한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굴복하다(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란 매우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국을 공개적으로 디스했기 때문이다 [1, 2]. 하지만 교진추의 이러한 시도는 한국 과학기술인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3]. 그 결과, 지난 2012년 6월 2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전문성을 갖춘 과학자 단체를 통해 과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을 수렴해 시조새 및 말의 진화 등과 관련한 내용의 과학 교과서 삭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과학기술한림원”을 전문협의기구로 지정해 관련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4].


이런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못해 현실감 제로인 게으른 정부 관련 부처(특히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 사회에서 과학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별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 한국 주요 과학단체(의 회원이라기보다는 이 단체에서 힘 좀 쓰신다는 지체 높은 어르신들)의 멍청함, 그리고 창조신화라는 허황된 판타지를 멀쩡한 과학 안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흔히 창조론 또는 지적설계론이라 불리는 의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 또는 사이비과학(似而非科學)의 한 종류와 이들의 몸통인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난 오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5].


상황이 이쯤 되면 한국 개신교의 전반적인 파워 또는 세력이 꽤 강한 듯한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때문에 한국에서 시조새 논란이 유달리 더 불거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한국 종교 가운데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2005년 기준으로 한국 종교 인구 통계를 조사한 결과, 개신교 18.3%, 천주교 10.9%, 불교 22.8% 그리고 무교는 46.5%로 나타났는데,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도 한국 기독교 인구는 29.2%로 낮은 편이다 [6]. 따라서 합계 30%도 안 되는 기독교인이―그것도 그들 전부가 진화론에 대해 같은 견해를 보이지 않으며 이들 가운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하나님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지금과 같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불어, 개신교 근본주의자의 정부에 대한 입김이 이례적으로 강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도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전부터도 개신교 근본주의는 끈질기게 교과서 문제를 물고 늘어졌으며 언제나 정부의 고집불통 때문에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일이 이례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MB정부 일부 고위 관료의 종교 편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상황파악을 잘 못 하는 담당 관료의 안일함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한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한 종교의 편만 드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개신교 편향성을 아주 일부라도 드러낸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종교인 가운데 22.8%를 차지하는 불교계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촌극이 있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한국인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 정도에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진화론에 대한 시각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에 대한 거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설문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2008년 EBS에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탄생 200주년 그리고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출판 150주년을 기념해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이때 제작진은 코리아리서치라는 설문조사기관을 통해 한국의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화론의 신뢰 정도>를 조사했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7]. 우선 전체 응답자 중 62.2%가 “진화론을 믿는다” 그리고 30.6%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며, 이 가운데 8.9%는 “진화론을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11%는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해 진화론을 믿고 있어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매우 적은 비율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에 대해 알아봤을 때 “과학적으로 불충분하다”가 41.3%, “종교적 신념과 맞지 않다”가 39.2%로 비슷한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진화론과 관련된 용어 다섯 가지 용어(종의 기원, 돌연변이, 이기적 유전자, 성선택, 자연선택)에 대한 인지도를 확인했을 때, ‘돌연변이’에 대한 인지도는 90.6%로 가장 높았으며, 다윈의 유명한 저작 이름인 ‘종의 기원’은 58.3%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 ‘성선택’, ‘자연선택’ 등에 대한 인지도는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 설문 조사가 매우 지엽적이고 표본크기가 작으며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결과라서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유의미한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결과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진화론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낮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조사 대상 중 약 90%가 안다고 대답한 ‘돌연변이’는 진화론만의 용어도 아니다. 더불어 ‘종의 기원’이란 책의 이름은 이미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성선택’과 특히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에 대한 인지도가 진화론 찬성자와 반대자를 포함해 50%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은 한국 과학 교육 시스템에서 진화론 교육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가늠케 한다. (방송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생명의 기원과 관련한 학교의 교육 방향>이라는 설문 조사도 있었던 모양인데, “현행대로 진화론만 가르쳐야 한다”가 겨우 24.7%, “진화론과 창조론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가 62.7%라는 매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가 모 블로그에 적혀 있기도 하다 [8, 9]).


어쨌든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진화론 반대든 찬성이든 진화론을 잘 모른다는 측면에서는 서로 비등해 보인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학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실제로 "과학"을 과학 그 자체가 아닌 대학 입학시험에서 고득점을 취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한국의 전역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위 현상, 즉 엄연히 고등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침에도 진화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진화론 및 진화 관련 개념이나 지식은 점수를 따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학생과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 다수가 진화론 전반 또는 진화론 개념이나 가설 등이 입시에 중요치 않다고 인식하면, 그것이 정규 교과 과정에 실려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넘어갈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특히 생물 교사)가 진화 이론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비단 진화론, 더 나아가 생물 교과 과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학교육 전반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처한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기괴한 과학교육 시스템 전반을 수정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교육 시스템 전반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따위 괴물 같은 입시체계는 다 사라져 버려야 해!"가 아마도 정답일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게 될 리는 절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회 시스템과 맞물려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 본인도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만약 나 정도 수준에서 그게 가능했다면,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내 수준에 걸맞게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남들도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평범함 그 자체다. 그리고 매우 지엽적이다.  따라서 순전히 교과서 제작 문제로 한정해 몇 가지 사항을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전부는 아니더라도 과학자 다수가 교과서 집필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시조새 논란이라는 촌극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문제의 발단은 과학 교과서가 과학이론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에 있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과학 동향을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연구자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공통된 의견을 묻고 반영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가이드라인 하나 제시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제작의 핵심적인 주체인 정부도 과학계의 의견과 최신 연구 동향을 공교육 교과 과정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하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끊임없이 관련 학계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는 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된 과학 관련 단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시조새 논란에서 보듯이 교진추는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 단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과학 연구자 다수가 인정하는 과학이 아닌, 말 그대로 사이비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서 개정이나 오류를 수정하는 등의 과학교육과 관련한 중차대한 문제는 오로지 공신력 있는 과학 단체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 과학교사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학생과 직접 대면해 과학을 가르치는 이들 교사가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과학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과학 교과서 내용이 아무리 좋아봤자 그 내용이 학생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조새 논란과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매우 지엽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리 신선하지도 않은 해석과 방안을 뻔뻔스럽게 내놓았다. 비록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방안이라고 해봤자 고작 교과서 문제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교육에서 과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교과서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해야 할 것이며, 오로지 과학교육을 대학 입시시험에서 고득점을 취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하는 근시안적인 인식을 버리고 말 그대로 과학을 과학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하는 본질적인 인식 자체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Park SM. 2012.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Nature 486: doi:10.1038/486014a [링크]
[2] 오철우. 2012년 6월. [수첩] 시조새 논란, ‘과학 대 종교’ 구도로 무얼 얻을까? 한겨례 [링크]
[3]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과학 교과서 시조새 관련 논란 설문조사 결과. [링크]
[4] 김규태. 2012년 6월. 시조새-말 진화과정, 교과서 삭제 요청 반영되지 안될 듯. 동아 사이언스. [링크]
[5] 내가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라고 한정 지어 언급한 이유는 이들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독교의 독특한 유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그것이 종교든 종교가 아니든 근본주의자는 정말 쓸데없는 일 가지고 죽어라 덤벼든다. 따라서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의 근본주의자는 인간 역사의 양아치라 할 수 있다.

[6] 2005년 기준 대한민국 종교인구 통계 [링크]
[7] EBS <다큐프라임>. 2009년 2월. "한국인 30%, 진화론 안 믿는다" - 다큐프라임 설문조사 [링크]
[8] 진화론에 대한 국가별 신뢰도 (2006). [링크]
[9] Unfinished business. Charles Darwin’s ideas have spread widely, but his revolution is not yet complete. 2009. The Economist [링크] : 한국과 비슷하게 개신교 근본주의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은 (걍 미국형 개신교 근본주의라고 하자) 우리보다도 더 낮은 비율로 진화론 찬성을, 우리보다도 더 높은 진화론 반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창조론”은 절대로 과학이 아니라며 공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미국형 개신교 근본주의 단체가 진화론 이외의 것—그렇다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인가?—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서 진화론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다. 달라진다고 해서 “진화론”을 못 가르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이것에 대한 최근 진행 상황은 필자가 게으른 관계로 아직 확인을 안 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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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0일 자 경향신문에 "나노 구조물을 이용해 물질 표면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기술 개발"에 대한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1]. 실제로 그들의 연구 성과는 2012년 5월 10일 세계적인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쳐(Nature)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2].

나는 생물학 전공이기 때문에 이 연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며, 그들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균열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에 어떤 유용성이 있는지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가 네이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는 사실이나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그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이 일이 어떤 과학기술적 의미가 있는지는 나의 우둔한 머리로 100% 파악하기는 어려워도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대단한 과학적 업적보다는 이 연구의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그리고 그것은 이 연구가 내포하는 과학적 업적보다도 사실상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연구자가 지녀야 할 "연구 윤리(research ethics, 硏究倫理)"에 관한 문제이다.


네이쳐 표지에 소개된 문제의 논문 [출처: 네이쳐 온라인]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때는 9일경 실험실 동료 선배와 대화 중에서였다. "다음 아고라에 모 대학원생이 자신의 연구가 도둑질당했다며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왔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연구를 도둑질해?"라며 내심 의심을 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배가 가르쳐 준 그 웹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 글을 통해 모 대학원생이 주장하는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모 대학원생의 실험실 동료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작성한 댓글과 답글도 있어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3, 4].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모 대학원생은 남 교수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주제로 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열심히 일했다. 최초 아이디어 제안자는 남 교수가 분명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와 수고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남 교수는 자신의 이런 공로를 깡그리 무시한 채 공동 저자는 고사하고 저자 목록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확인 결과,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이란 제목의 논문에 명시된 저자는 단 세 명뿐이었으며,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이름 있는 대학에서 한 자리 잡고 있는 교수—이화여대 남구현 교수,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 카이스트 고승환 교수—였다 [5].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연구와 관련된 실험을 전부 교수들이 했단 말인가? 연구와 관련된 제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라면 "저 사람들은 대학에서 학생도 가르치며 자기 연구도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수업도 열심히 하고 손에 파이펫(pipette)을 들고 손수 실험에 열심히 참여하는 초능력자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실험을 위주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교수의 역할은 총괄 책임자다. 즉, 자신의 실험실에 많은 박사 후 연구원과 대학생을 거느리고, 이들의 개별 혹은 공동 연구를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조언하면서 연구 방향을 잡아주고,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업 부서의 팀장 혹은 그 이상의 위치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간혹 교수 중에 자신이 직접 실험하는 사람(즉, 초능력자)도 있다. 어떤 교수는 자신이 직접 수행한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해 제1저자와 교신 저자를 동시에 해먹는 보기 드문 놀라운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수많은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원의 연구를 지도하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단독으로 진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교수는 학기 중에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수업도 진행해야 하며, 학위를 마친 대학원생의 논문도 심사해야 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학술지의 논문 심사와 더불어 원활한 실험실 운영 혹은 연구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연구비 확보를 위해 수많은 보고서와 씨름해야 한다 [6]. 게다가 보직까지 있는 교수라면 실험을 직접 진행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교수 자신이 연구를 직접 진행할 수 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는 일종의 관례(慣例)가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 등의 다른 실험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연구자의 연구 기여도에 대한 인식이며, 이것은 논문에서 저자를 배열하는 순서에 그대로 반영된다.

대부분의 연구는 한 명 혹은 두세 명 이상이 주도해 진행하며, 교수는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면 통상 총괄 책임자로 연구에 참여한다. 연구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 연구 기여도에 따라 authorship을 부여하는데, 연구에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들)에게 제1저자(first author)란 칭호가 주어지며 연구 기여도가 엇비슷할 정도로 큰 사람이 두 명 이상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공동 연구자(co-author)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구에 직접 참여했거나 혹은 직접 관여하지는 않더라도 일의 진행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은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 제4저자 식으로 나열하며, 연구 총괄 책임자 역할을 한 교수는 저자 목록의 맨 마지막에 교신 저자(corresponding author)로 명시된다 [7].

그러므로 예(例)의 모 대학원생 주장이 사실이라면, 네이쳐 표지로 선정된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이란 논문의 제1저자는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제일 높은 사람—자신이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모 대학원생—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제1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린 남구현 교수는 (진정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그의 기여가 핵심적이었다면) 공동 저자나 혹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제2저자 이하 또는 교신 저자의 위치에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업계의 상식이 이런데도, 남구현 교수는 자신을 제1저자 및 교신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카이스트 고승환 교수는 남 교수와 함께 공동 교신 저자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모 대학원생이 소속해 있는 연구실의 책임 연구자인 박일흥 교수는 제2저자로 올라와 있다 [8]. 게다가 이 연구에서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되는 모 대학원생의 이름—그리고 모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연구에 참여해 실체적인 기여를 했을 각 실험실에 소속된 다른 대학원생(들)의 이름—은 기껏해야 감사의 표시를 알리는 "Acknowledgement" 에 조그맣게 올라와 있을 뿐이다. 그것도 전체 이름이 아닌 "J.-A. Jeon"이란 약어로 말이다 [5].

남구현 교수도 "석사과정 때부터 생각해온 아이디어들을 구현한 것인데 박일흥 교수가 무리한 요구를 해와 받아들이지 않았다"라며 나름 항변을 한다 [1]. 그러나 자신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해서 그 연구를 당당하게 100%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아이디어만 제시했거나, 연구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기여도가 작다면 제1저자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 아닐까? 그리고 모 대학원생이 연구에 직접 참여해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실험실 동료들도 증언하는 바인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것은 무조건 내 업적이야"라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바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3, 4]

물론, 연구에서 "처음”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우선권을 인정한다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켜져 온) 무언(無言)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초로 아이디어를 낸 것과 실제로 그 일 대한 기여도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며 각각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업계 상식이 이러한데도, 같은 팀에서 동료 연구자의 노고는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이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타인의 연구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설령 자신이 거기에 기여한 바가 있다손 치더라도) 도둑질하는 행위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화를 하나 들어보겠다. 바로 제자의 업적을 도둑질해 자신의 일인 것처럼 포장해 노벨상을 탄 어느 훌륭하신 분의 이야기다. 1960년대에 펄서(pulsar)라는 맥동(脈動)하는 전파 항성이 발견되었다. 이 천체는 매우 빠르고 규칙적인 전파를 방출했으며, 이 발견은 일약 학계의 대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천문학자들은 펄사가 오랫동안 가설로 남아 있던 항성 진화의 흔적인 중성자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은 펄서 발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공로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 연구 책임자였던 앤터니 휴이시(Antony Hewish)에게 수여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둡고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펄서를 발견하고 열정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노벨상을 수상한 휴이시가 아니라 그의 제자인 조셀린 벨(Jocelyn Bell)이라는 젊은 여자 대학원생이란 사실이다 [9]. 실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만행위(欺瞞行爲)가 아닐 수 없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앤터니 휴이시와 그의 스승에게 뒷통수를 얻어 맞은 조셀린 벨. 당시의 모습.

[사진 출처: 순서대로 Science Photo Library, Women in Science]



연구자라면 누구나 최초의 발견을 하고 싶어하고 동료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최고의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은 연구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도 연구자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보상심리로 작용한다. 물론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연구의 원동력이 된 사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뛰어난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 남의 노고를 무시하고 가로채는 도둑질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연구자의 상식일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상식이다. 오로지 제대로 된 연구 윤리 위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남기는 자만이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로 계기로 국내 연구 윤리—특히 연구 기여와 관련된 부분—가 제대로 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모 대학원생에게 이번 일로 큰 불이익이 돌아가질 않길 바란다.


참고문헌


[1] 30대 과학자 논문 네이처 표지에 실렸다. 경향신문. 2012년 5월 10일. [링크]
[2] 네이쳐 온라인판의 Vol. 485, No. 7397 상단에 나와 있는 About the cover를 참조하라 [링크]
[3] 대학원생은 노예인가?? 교수가 연구결과 독식, 네이처 발표. 다음 아고라. 2012년 5월 8일. [링크]
[4] 같은 연구실 학생입니다. 다음 아고라. 2012년 5월 8일. [링크]
[5] Nam KH, Park IH, and Ko SW. 2012.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 Nature. 485: 221-224. [링크]
[6] 말은 이렇게 썼지만, 한국에서 연구비 획득을 위한 연구 보고서는 대부분 대학원생이 작성한다. 하지만 원래는 교수 혹은 박사 후 연구원이 하는 일이다.
[7] 트위터 아이디 @ensual 님과 @sioum 님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셨다. "수학계에서도 학술지에 투고하고 수정하는 것을 담당하는 교신 저자 개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자의 배열은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아닌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며 모든 저자는 논문에 동등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본다."
[8]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번 논문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박일흥 교수는 최근 남 교수에게 자신을 교신 저자로 넣고 남 교수의 이름은 저자 목록에서 빼야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박 교수는 남 교수를 교신저자로 등록한 네이쳐에도 항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링크]
[9]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윌리엄 브로드, 니콜라스 웨이드 저/김동광 옮김. 미래인. 2008년.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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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소개

이 글은 2007년 『Biochimica et Biophysica Acta』라는 학술저널(research journal)에 게재된 인간 프리온 병(human prion disease)에 관한 소개 논문(review article)이다. 논문의 제목은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이며, 저자는 영국 University of College London의 Jonathan Wadsworth와 John Collinge이다. 의학과 생물학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많아서, 각 용어는 "괄호 ()" 안에 영어와 한자로 같이 표기했다. 본문 안에 [숫자]로 표시한 부분은 논문 원본에 기재된 참고문헌 번호이며, <숫자>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따로 주석처리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인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원 논문 <Wadsworth JDF, and Collinge J. 2007.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Biochim Biophys Acta 1772: 598-609>을 참조했음을 명시하기 바란다. [링크] 그리고 내 번역이 도움되었다면 "나의 번역이 도움되었음"을 표현해주는 것도 고맙긴 하겠다. 참고로 번역 #1[링크], 번역 #2[링크], 번역 #3[링크]도 있으니, 순서대로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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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간 프리온 병의 말단 조직 발병(peripheral pathogenesis)

뇌 내 PrPSc 연구와 더불어 말단 조직(peripheral tissues, 末端組織)에 대한 감염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들 연구에서 vCJD의 발병(pathogenesis, 發病)은 다른 CJD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vCJD 환자의 림프세망 조직(lymphoreticular tissues, -細網組織)에서는 PrPSc가 기꺼이 확인되지만, 일반적인 CJD나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는 그렇지 않다 [84, 108, 137-142]. 시체에서 추출한 뇌하수체 호르몬(pituitary hormone, 腦下垂體-)을 사용해 나타나는 iCJD [138] 또는 쿠루에서 [우리의 보고하지 않은 결과(our unpublished data)] 편도선에 프리온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vCJD의 특이적인 발병이 감염의 말단 경로(peripheral routes of infection)보다는 프리온 계통의 효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림프 소절(lymphoid follicles, -小節)의 밀도(density, 密度)에 따라서 vCJD 말단 조직의 PrPSc 농도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뇌를 기준으로 상대적인 비교를 했을 때 편도선(tonsil, 扁桃腺)에서 PrPSc 농도는 뇌에 존재하는 양의 10%이고 [84, 138] 직장(rectum, 直腸)에서는 0.002% 정도 존재한다 [84]. 제4t형이라 불리는 특이한 형태의 PrPSc는 사망 전(ante-mortem) 그리고 사망 후(post-mortem) vCJD 환자의 편도선에서 모두 나타나고 [84, 138] (그림 1), 여기에는 수혈로 이차 감염된 vCJD 사례도 포함된다 [87]. 편도선에 존재하는 제4t형 PrPSc는 vCJD에서 나타나는 제4형 글리코형(glycoform) PrPSc의 비율에서 차이가 나는데 [84, 138], 이것은 PrP 당화(glycosylation, 糖化)에 대한 조직 및 계통 특이적 효과(tissue- and strain-specific effect)의 중첩(superimposition, 重疊)이 있음을 암시한다 [80, 138]. 림프세망 조직 감염은 신경 침투(neuroinvasion, 神經浸透)보다 시간상으로 먼저 발생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vCJD가 진행하기 전의 환자에서 적출해 보관한 외과 수술 표본(surgical samples)에서도 확인되었기 때문에 [81, 143], 편도선 생검(tonsil biopsy, 扁桃腺生檢)으로 초기 임상 단계 혹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확진(firm diagnosis, 確診)이 가능하다 [4]. 초기 진단은 추가 검사(further investigation, 追加檢査)를 필요 없게 하는데, 여기에는 뇌 생검(brain biopsy, 腦生檢)이 있으며, [아마도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잠재적인 처치 조건(treatable conditions, 處置條件)을 배제하는 데 필요하고, 광범위한 중추 신경계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개입하는 것이 목적인 잠재적인 처치법(treatment)과 임상 시험(clinical trials)의 출현으로 그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4]. 지금까지 편도선 생검은 임상에서 vCJD를 진단할 때 100% 감도(sensitivity, 感度)와 특이성(specificity, 特異性)를 보였다 [84, 94, 137, 138] [그리고 우리의 보고하지 않은 결과(and our unpublished data)].

vCJD가 말단 조직에서 특이적으로 발병한다는 사실은 대중 일반의 vCJD 감염을 조사하는 것이 목적인 유병률 탐색(prevalence screening, 有病率探索)의 근거가 됐다. 수술 과정 중에 익명의 환자에서 얻은 림프세망 조직을 사용한 프리온 탐색(screening)이 두 번 시행되었다 [81, 82]. 편도선이 충수(appendix, 蟲垂)보다 vCJD를 진단하는데 더 나은 것으로 보이지만 [144], 12,000개라는 상당히 많은 충수 표본을 대상으로 한 후향 탐색(retrospective screening, 後向探索)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는 표본(specimens)이 세 개가 보고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81]. 2,000개의 편도선 표본을 이용한 시험적인 규모의 전향 연구(prospective study, 前向硏究)에서는, 이 방법이 실제로 매우 높은 감도를 보임에도, 프리온에 대해 어떠한 양성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82]. 그러나 이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하더라도 상당한 지역 감염(community infection)이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연구에서 사용한 표본 크기(sample size)가 상대적으로 작았으며, 인구통계적이며 연령과 관련한 요소(demographic and age-related factors)가 진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장기간 지속되는 잠복기 중에는 프리온 감염 여부를 확인 못 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82]. 따라서 영국에서 vCJD 프리온 감염의 유병률(prevalence, 有病率)을 파악하기 위해 질병 관련 PrP를 찾아내기 위한 100,000여 개의 편도선 표본을 탐색할 목적으로 국가적인 대규모 연구(national large scale study)가 지금 영국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

8. vCJD 프리온의 이차 전염

vCJD 특이한 발병과 더불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상적 증상이 없는 BSE 프리온 감염이 잠재적으로 매우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는 사실은 혈액 제제(blood products, 血液製劑)와 오염된 수술 및 의료 도구를 통해 vCJD 프리온이 의원성으로 전염될 수 있다는 중차대한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80, 84, 142, 145].

실제로 수혈과 연관된 vCJD 프리온 감염의 세 가지 사례가 프리온에 노출되었다고 알려진 개체의 매우 작은 코호트(cohort)에서 이미 보고되었다 [85-87]. 프리온은 전형적인 살균 과정(conventional sterilization procedures)에서도 살아남으며, 프리온으로 오염된 외과용 스테인리스 수술 도구를 멸균(滅菌) 후 쥐에 이식했을 때, 눈에 띌 만한 효율로 쥐가 프리온에 감염되었다 [146, 147].

사전 예방적 위험 감소 수단(precautionary rick reduction measures)이 혈액과 혈액 제제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 [85, 148]. 그러나 오염된 외과 수술 도구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vCJD 의원성 전염(iatrogenic transmission)에 대한 우려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vCJD가 쥐에 대한 감염할 때, 낮은 규정 농도(titer, 規定濃度) 수준의 전염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심각하게 낮추는 감염 장벽(transmission barrier, 感染障壁)이 관계되어 있다 [77-79, 149]. vCJD 프리온 분석을 위해 사용할 감염 장벽이 없는 모델(transmission barrier-free model) 개발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 예측 모델(risk assessment models) 구축을 위해서 PrPSc에 대한 높은 감도의 면역 측정법(immunodetection, 免疫測定法)을 이용해 혈액과 같은 말단 조직(peripheral tissue)에 존재하는 PrPSc 양에 대한 상한선(upper limit, 粳隔線)을 결정한다 [84, 141, 142]. vCJD에서 고농도의 PrPSc는 대부분 중추 신경계(central nerve system, 中樞神經系)과 림프세망 조직에서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과적으로 중요한 조직 상당수가 뇌보다 10,000-100,000배 낮은 수준의 PrPSc 양을 보이지만 [84], vCJD 직장(rectum, 直腸)에서 프리온 전염성을 확인하는 연구 결과는, 비록 PrPSc를 거의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vCJD에서 나타나는 실험적으로 [확인한] 설치류 프리온 계통(experimental rodent prion strain)과 매우 유사한 PrPSc/프리온 전염성 비율(PrPSc/prion infectivity ratios)과 일치한다 [145]. 이러한 발견은 vCJD 프리온 이차 전염을 줄이려는 위험 감소 전략(risk reduction strategies)을 결정하는 PrPSc 분석의 가치(value)를 강하게 지지할 뿐만 아니라, vCJD의 의원성 전염이 오염된 내시경(endoscopes, 內視鏡), 생검용 겸자(biopsy forceps, 生檢用鉗子) 또는 외과 수술 도구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142, 145, 147, 150, 151].

vCJD 유행의 궁극적인 규모(eventual size)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하는 연구는 매우 다양하지만, vCJD의 현재 사례를 근거로 한 최근의 몇몇 평가에서 전체적인 유행(total epidemic)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152]. 그러나 핵심적인 불확실성(key uncertainties), 특히 잠복기 주요 유전적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 [54, 55].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모델로는 감염 개체 수를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쿠루의 평균 잠복기는 대략 12년인 것으로 측정되었으며 [75], 인간의 시체에서 추출한 뇌하수체 호르몬 사용으로 발생한 iCJD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잠복기를 보인다 [70]. 그러나 쿠루의 최대 잠복기는 50년을 넘을 수 있다 [75]. 소와 인간 사이의 BSE 전염 장벽(transmission barrier)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직접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와 쥐 사이의 BSE 전염 장벽은 비교 종말점 적정법(comparative endpoint titration, 比較終末點滴定法) 검사 덕분에 실험적으로 잘 밝혀졌다. BSE 프리온은 경구 복용(oral dosing, 經口服用) 등으로 쉽게 실험 쥐에 전염된다 [153]. C57B1/6라는 실험 쥐를 이용해 확인한 쥐의 LD50(50% 사망률[mortality, 死亡率]을 보이는 치사량[lethal dose, 치사량])은 소보다 약 500배 높다 [154]. 그리고 평균 잠복기도 세 배에서 네 배 증가한다. 인간 BSE 감염에서도 30년 혹은 그 이상의 평균 잠복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인간 수명(typical human lifespan)에 근접하는 (또는 그것을 능가할지도 모르는) 상당히 긴 잠복기가 이 경우에 나타날 수도 있다 [75]. 그러나 (인간 대 인간 전염이 원인인) vCJD 이차 전염의 평균 잠복기는 BSE 프리온에 노출되었 때 나타나는 vCJD 일차 전염보다 상당히 짧을 것으로 예상했다. vCJD 이차 전염의 첫 임상 사례에서 나타난 잠복기는 6-6.5년이었는데 [85, 87], 이것은 경구 경로(oral route, 經口經路)를 통한 감염이 유전성 경로(parental routes)보다 전형적으로 더 긴 잠복기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vCJD의 일차 전염으로 나타나는 가장 짧은 잠복기도 (이차 전염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길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어린 환자의 사례를 근거로 vCJD 일차 전염의 최단 잠복기(the shortest incubation periods)를 사전 평가(preliminary estimate, 事前評價)했을 때 대략 12개월이었으며, 이는 vCJD 이차 전염의 최단 잠복기를 외삽(extrapolation, 外揷)해서 얻은 결과와 일치한다 [75].

VV와 MV 같은 PRNP 유전자 코돈 129번 유전형(PRNP codon 129 genotypes)을 가진 개체 또한 BSE 프리온에 의한 일차 전염 또는 vCJD에 의한 이차 전염 후에 상당히 긴 평균 잠복기를 보이는 병이 진행하는지는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다. PRNP 129MV 유전형의 피를 수혈한 사람의 림프세망 조직에 프리온이 감염되었음을 생검으로 확인했다는 보고가 있으나, 그는 파열된 복부 대동맥류(ruptured aortic aneurysm, -腹部大動脈類)로 죽었으며 신경 장애를 겪었는지에 대한 알려진 증거는 없다. 그리고 뇌에서 vCJD가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병적 특징(pathological features)도 없었다 [86]. 이 개체가 죽지 않고 오래 살았다면 임상적으로 프리온 병이 진행되었을지 그리고 vCJD의 표현형이 나타났을지도 분명치 않다. 프리온 감염의 잠복(subclinical, 潛伏) 혹은 보균(carrier, 保菌) 상태가 동물 모델에서 확인되었는데 [134, 155], 이것은 인간 프리온 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 이식 쥐에 BSE 또는 vCJD를 접종하는 실험으로 밝혀졌다 [79, 131, 132, 136]. 이렇게 '인간화(humanized)'된 유전자 이식 쥐를 이용해 프리온에 대한 감수성을 모델링해서 얻은 결과에서 뜻하는 바는, 그런 유전형[MV 또는 VV]을 가진 개체도 프리온에 감염되기 쉽지만 다른 프리온 계통 형태(different prion strain types)를 선택하고 증식하기 때문에 vCJD와는 다른 질병 표현형이 진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131, 132]. PRNP 129MV 유전형의 피로 수혈받은 환자의 뇌에서 PrPSc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프리온의 분자 계통 타이핑(molecular strain typing) 적용을 어렵게 한다. 비록 이런 사례를 나타내는 환자의 비장(spleen, 脾臟)에 존재하는 PrPSc가 vCJD에서 보이는 사례와 닮았다고 하지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분자 계통 타이핑 시험을 어렵게 하는 포스포텅스틱산 침전법(phosphotungstic acid precipitation, -沈澱法)이란 검사가 필요하다 [84]. 덧붙여, 인간 PrP 129V를 발현하는 유전자 이식 쥐에 vCJD를 접종했을 때에는 나타나지만 아직 인간에서 그 사례가 알려지지 않은 제5형 PrPSc에는 비슷한 글리코형(glycoform) 프로필이 존재한다 [77, 131, 132]. 이 환자에서는 vCJD를 일으키는 프리온과 다른 프리온 계통이 증식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Peden과 그의 동료들이 비장과 자궁 림프절(cervical lymph node, 子宮-)에서 비정상 PrP가 검출되었다 할지라도 이 환자의 편도선, 충수, 혹은 대장(large intestine, 大腸)에 있는 림프 소절에서는 PrPSc를 찾아낼 수가 없었음을 보고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vCJD에 걸린 임상 사례에서 편도선 감염은 변함없이 나타났지만, Peden과 그의 동료들은 이런 사례가 (vCJD 일차 전염으로 추정되는 BSE에 대한 노출 경로가 경구가 아니라 정맥주사인) 감염 경로와 관련된 특징적인 발병을 나타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인간 대 인간) 이차 전염에는 종간 장벽이 없다는 사실이 질병 표현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PRNP codon 129MM 유전자형의 피를 수혈한 최근 사례 대부분에서 편도선을 검사했을 때 제4t형 PrPSc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은 [87], MV 유전형의 피를 수혈한 사람의 편도선에서 PrPSc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수혈자의) PRNP 유전형과 아마도 특정 프리온 계통을 선택한 영향으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게 했다. 이러한 발견은 BSE 프리온이 음식에 과도하게 노출된 영국과 다른 나라 내에서 지속적인 감시(continued surveillance)와 모든 형태의 인간 프리온 병에 대한 검사(investigation)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림 1. 인간 프리온 병에서 프리온 단백질과 관련된 질병의 특징. (A) 뇌에 제1-4형 PrPSc를 나타내거나 편도선 생검에서 제4t형 PrPSc를 보이는 조직을 proteinase K[단백질 분해 효소의 한 종류]로 처리한 균질 현탁액(homogenate, 均質懸濁液)을 3F4라는 단일 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y)를 사용해 면역블롯검사(immunoblot)를 한 결과. sCJD와 iCJD와 같은 일반적인 CJD 환자의 뇌에서는 제1-3형의 PrPSc를 보이나, vCJD에 걸린 환자의 뇌와 편도선에서는 제4형과 제4t형 PrPSc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B, C) sCJD 혹은 vCJD 환자의 뇌는 ICSM35라는 항(抗) PrP 단일 클론 항체(anti-PrP monoclonal antibody)을 사용해 면역조직학검사를 했을 때, 비정상적인 PrP 면역반응(immonureactivity)이 나타난다. sCJD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PrP 침전(deposition, 沈澱)은 대부분 방산 형태(放散形態)의 시냅스 모양과 같은 염색(diffuse, synapse staining) 패턴을 공통적으로 보이지만, vCJD 환자의 뇌에서는 링 모양의 해면체 공포(spongiform vacuole)로 둘러쌓인 둥근 아밀로이드 코어(amyloid cores)로 구성된 붉은 PrP 반점이 나타난다. 그림 B와 C에서 스케일 바(scale bar)는 50 μm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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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소개

이 글은 2007년 『Biochimica et Biophysica Acta』라는 학술저널(research journal)에 게재된 인간 프리온 병(human prion disease)에 관한 소개 논문(review article)이다. 논문의 제목은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이며, 저자는 영국 University of College London의 Jonathan Wadsworth와 John Collinge이다. 의학과 생물학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많아서, 각 용어는 "괄호 ()" 안에 영어와 한자로 같이 표기했다. 본문 안에 [숫자]로 표시한 부분은 논문 원본에 기재된 참고문헌 번호이며, <숫자>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따로 주석처리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인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원 논문 <Wadsworth JDF, and Collinge J. 2007.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Biochim Biophys Acta 1772: 598-609>을 참조했음을 명시하기 바란다. [링크] 그리고 내 번역이 도움되었다면 "나의 번역이 도움되었음"을 표현해주는 것도 고맙긴 하겠다. 참고로, 번역 #1[링크], 번역 #2[링크], 번역 #4[링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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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 프리온 병의 표현형 다양성(phenotypic variability)에 대한 분자 근거(molecular basis)

인간 프리온 병에서 관찰되는 임상적인 이종성(heterogeneity, 異種性)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의 프리온 분리주(isolates, 分離株) 또는 종류(strain, 種類)가 같은 숙주에서 전파 가능하며 특유의 임상적·병리학적 특징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수년간 분명해졌다 [2, 101, 102]. 그러므로 sCJD와 다른 종류의 프리온 병에서 보이는 임상병리학적 이종성(clinicophathological heterogeneity, 臨床病理學的異種性)에 대한 비율(proportion, 比率)은 개별적인 인간 프리온 변종의 증식과 관계있을 것이다. 프리온 증식(propagation of prion)에 대한 단백질 유일 모델(protein-only model)의 체계(framework) 내에서, 각각의 임상적·신경병리학적 표현형은 서로 다른 물리화학적 특성(divergent physicolchemical properties)을 가진 각각의 PrPSc 이소형(isoform)의 증식으로 결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1, 2, 9-11, 103, 104]. 게다가 숙주의 유전체(host genome)도 각각의 비정상적인 PrP 이소형(isoform) 증식에 관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79, 105, 106].

지금까지 우리는, 제한적인 proteinase K 분해법(proteinase K digestion)으로 처리한 뇌의 균질 현탁액(homogenate, 均質懸濁液)을 사용한 면역블롯검사(immunoblot)에서 구별 가능한, 산발성 그리고 후천성 프리온 병과 연관된 4가지 형태의 인간 PrPSc를 확인했다 [10, 12, 15] (그림 1). 제1-3형 PrPSc(PrPSc types 1-3)는 일반적인 CJD 환자(sCJD 혹은 iCJD)의 뇌에서 주로 나타나지만, 제4형 PrPSc는 vCJD 환자의 뇌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난다 [10, 12, 15]. 초기에 일반적인 CJD 환자에서 보이는 PrPSc 형태를 분류할 때 단지 제1형과 제2형 PrPSc라는 두 가지 밴드 패턴(banding patterns)만 묘사했는데 [11], Gambetti와 그의 동료들이 보고한 제1형 패턴은 우리가 발견한 것과 같으며 Gambetti의 제2형 패턴은 우리가 찾아낸 (proteinase K digestion으로 생성된) 제3형의 조각 크기와 같다 [13, 107] <1, 2>. 제4형 PrPSc는 주로 이당화(di-glycosylated, 二糖化)된 글리코형(glycoform, -型)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CJD에서 나타나는 PrPSc 타입과 (proteinase K digestion 방법으로 조각내지 않아도) 쉽게 구분되지만, 제4형 PrPSc는—비록 제4형 PrPSc를 제2b형으로 인식하는 대안적 분류법(alternative classification)에서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107]—다른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조각 크기를 보인다 [15].

산발성 그리고 후천성 프리온 병과 연관된 인간 PrPSc 형태를 확인(identification)하는 것과 더불어, 분자 계통 타이핑(molecular strain typing) 기법으로 유전성 인간 프리온 병에서 나타나는 표현형 이종성(phenotypic heterogeneity)에 대한 통찰(insight, 洞察)을 얻을 수 있다 [53, 108] <3>. 인간 프리온의 계통 다양성(human prion strain diversity)은 PrPSc 형태(conformation, 形態)와 당화(glycosylation, 糖化)의 다양성(variance, 多樣性)으로 발생한다는 현재 증거와 동일하게, 점(點) 돌연변이(point mutation)가 원인인 유전성 프리온 병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proteinase K digestion법으로 생성된) PrPSc 조각의 글리코형(glycoform) 비율은 전형적인 CJD와 vCJD에서 나타나는 것과 다르다 [108-112] <4>. 같은 PRNP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individuals, 個體)라도 (proteinase K digestion법으로 분석했을 때) 다른 크기의 조각을 보이는 PrPSc를 증식할 수 있다 [108, 109, 113]. 그러나 명백히, 21-30 kDa 분자량 범위에서 PrPSc를 검출하는 것이 (형태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일관된 특징(consistent feature)은 결코 아니다 <5>. 대신 몇몇 사례, 특히 아밀로이드 반점(amyloid plaque)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라면 7-15 kDa 범위에서 단백질 분해효소에 저항성을 가진 작은 조각(smaller protease-resistant fragments)이 나타난다 [53, 108-110, 113, 114]. 야생형(wild type, 野生型) PrP가 병적인 이소형(pathological isoform)으로 증식하는 것 또한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 표현형 다양성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23, 115-117]. 이러한 총체적인 자료를 놓고 판단했을 때 PrPSc 이소형은 독특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지닌 채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 생성될 것이며, 이것은 proteinase K digestion법에 대한 감도(sensitivity, 感度)를 통해 반영되거나 또는 산발성·후천성 프리온 병에서 증식하는 PrPSc 형태와는 매우 다른 PrPSc/prion 전염성(infectivity, 傳染性) 비율로 (그 특성이) 반영될 것이다. 예를 들어, P102L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는 서로 다른 물리화학적 특성을 지니며 단백질 분해효소 저항성이 있는 PrP의 세 가지 이소형이 증식할 수 있다. PrP 102L에서 얻은 개별적인 비정상 이형태체(conformers, 異形態體) 두 가지는 (proteinase K digestion법으로 분석했을 때) 21-30 kDa 혹은 약 8 kDa 크기에서 단백질 분해효소 저항성을 나타내는 조각이 나타나지만 [23, 108-110, 118], 야생형 PrP의 비정상적 이형태체에서는 대략 21-30 kDa에 해당하는 조각(proteolytic fragments)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23]. PrP 102L과 야생형 PrP에서 (proteinase K digestin법으로) 생성된 약 21-30 kDa 크기의 조각 중에 글리코형(glycoform)이 차지하는 비율은 둘 사이에 차이가 별로 없지만, sCJD와 후천성 CJD 환자에 있는 야생형 PrP를 proteinase K digestion법으로 분석해서 얻은 조각의 크기와 비교했을 때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난다 [23]. 잠재적인 신경 독성(neurotoxicity, 神經毒性) 및 양적인 차이와 더불어, 이들 개별적인 질병 관련 PrP 종(species, 種)에 대한 신경병리학적 타겟팅(neuropathological targeting)의 차이를 통해 P102L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 어떻게 다양한 표현형 발생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분자 메커니즘(molecular mechanism)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모든 유전성 프리온 병이 같은 메커니즘으로 발병하지 않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PRNP A117V 돌연변이는 PrPSc를 만들지 않고도 신경 질환(neurological disease, 神經疾患)을 일으킬 것으로 여겨지는 막 단백질 형태(transmembrane forms)의 PrP(PrPctm)를 생성한다 [58]. 모든 유전성 프리온 병이 접종으로 전염될 수 있는지도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인간 PrPSc 형태에 대한 통합된 국제적 분류법(unifie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과 명명법(nomenclature, 命名法)을 만들려는 노력은 sCJD에서 나타나는 일부 PrPSc 아형(subtype, 阿型)의 아미노 말단 형태(N-terminal conformation)가 시험관에서 금속 이온 점유(metal-ion occupancy) [12, 15] 혹은 용매(solvent, 溶媒)의 pH 때문에 [119-121] 변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해졌다. 게다가, 같은 뇌 안에 서로 다른 PrPSc 형태가 공존(co-existence, 共存)한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13, 15, 21, 23, 108-110, 122-127]. pH 단독으로도 sCJD에서 나타나는 PrPSc의 아미노 말단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 최근에 제안되었지만 [120, 121], 이런 해석은 다른 연구에서 지지받지 못했으며 [12, 17, 124], 대신 pH 7.4로 엄격히 조절된 실험 조건에서 구리(copper) 혹은 아연(zinc) 이온이 존재할 때에만 특정 PrPSc 구조가 나타났다 [12]. 방법론적 차이(methodological differences), 명명법, 그리고 PrPSc에 있는 상대적으로 미묘한 생화학적 차이(relatively subtle biochemical difference)에 대해 의견의 일치가 있지 않았지만, 인간 프리온 병에서 나타나는 표현형 다양성은 개별적인 물리화학적 특성이 있는 질병 관련 PrP 이소형(disease-related PrP isoform)과 상당 부분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프리온 연구자 사이에서 의견이 매우 일치한다 [9, 18, 124, 127, 128]. 중요한 것은, 단백질 분해효소에 민감한 PrP의 병적 이소형(pathological isoform)이 동물과 인간 프리온 병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명백해지고 있으므로 [18, 104, 129, 130] 단백질 분해효소 검사법(protease digestion)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진단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형태 의존적 면역분석법(conformation-dependent immunoassay)은 최근에 인간 프리온 병에서 매우 높은 진단 민감도(diagnostic sensitivity, 診斷敏感度)를 보였음이 보고되었다 [18, 104].

PrP의 대체 구조(alternative conformations, 代替構造) 혹은 집합 상태(assembly states, 集合狀態)로 인간 프리온 병에서 나타나는 임상병리학적 이형성(heterogeneity)에 대한 분자 기질(molecular substrates, 分子基質)을 파악할 수 있다는 가설(hypothesis)은 (그리고 이것이 다른 형태의 인간 프리온 계통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은) 유전자 이식 쥐(transgenic mice)를 이용한 전염 실험(transmission experiments)으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129번 위치가 발린(V) 또는 메티오닌(M)으로 되어 있는 인간 PrP 단백질을 발현하는 유전자 이식 쥐를 사용한 (전염) 실험에서, 이러한 다형성이 인간 PrP 이형태체(conformers, 異形態體)의 증식 및 이와 연관된 신경병리증 패턴(pattern of neuropathology)의 발생 모두에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10, 77, 79, 131, 132]. 생물리학적 측정(biophysical measurements)에 따르면, 프리온 계통 선택(protein strain selection)에 대해 129번에 위치한 아미노산의 종류[M 혹은 V]가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이유는 PrPSc 또는 그것의 전구체(precursor, 前驅體) 구조(conformation) 혹은 그러한 구조를 형성하는 속도(kinetics, 速度)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PrPC의 구조 형성(folding, 構造形成), 역학(dynamics, 力學) 혹은 안정성(stability, 安定性)에는 측정 가능한 수준에서 아무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133]. 이들 연구 결과는 프리온 전염 장벽에 대한 구조 선택 모델(a conformational selection model of prion transmission barriers)과 일치하며 [2, 80, 131, 134] (이 모델은 최근에 효모의 프리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재현되었다 [135]), 프리온 계통 다양성은 PrP의 구조(conformation)와 당화(glycosylation)의 조합에 따라 나타난다고 주장함으로써 프리온 감염에 대한 단백질 유일 모델을 뒷받침하고 있다 [2]. 이러한 발견 속에서 우리는 사람에서 프리온 병 감수성(prion disease susceptibility)과 표현형(phenotype)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주요 유전자좌(locus, 遺傳子座)로서 PRNP 유전자 129번 코돈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분자 근거(molecular basis)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유전자 이식 쥐를 이용한 모델링 연구(transgenic modeling studies)에서 vCJD/BSE 프리온 계통에 노출된 결과로 생성될 수 있는 V129와 M129라는 인간 PrP에 대해 공통적으로 선호되는 PrPSc 구조가 없음을 알았다 [131]. 접종물(inoculum, 接種物)의 종류와 숙주(host, 宿主)의 PrP에 나타나는 129번 코돈(codon)의 유전자형(genotype, 遺傳子型)에 따라 BSE에서 유래된 프리온(BSE-derived prions)의 일차 전염 또는 이차 전염(primary or secondary transmission)은 네 가지 다른 프리온 질병 표현형(disease phenotype)이 나타날 수 있다. 인간 PrP M129에 대해 동형 접합자인 유전자 이식 쥐(transgenic mice)에서는 각각 sCJD 또는 vCJD와 일치하며 신경병리증(neuropathologies, 神經病理症)을 보이는 제2형 혹은 제4형 PrPSc가 증식하지만, PrP V129에 대해 동형 접합자인 유전자 이식 쥐에서는 다른 패턴의 신경병리증이 나타나는 제5형 PrPSc가 증식하거나 또는 PrPSc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임상적인 프리온 병(clinical prion disease in the absence of detectable PrPSc)이 발생한다 [77, 131]. 접종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질병 표현형이 인간의 PrP 129MV를 발현하는 이형 접합성 유전자 이식 쥐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132]. 그러나 제4형 PrPSc의 증식은 붉은 PrP 반점(florid PrP plaques)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에, PrP 129MV 유전형에서는 표현형 가운데 어떤 것도 vCJD에서 나타나는 신경병리학적 표현형(neuropathological phenotype)을 닮지 않았다 [132]. 신뢰할만한 분자 및 병리학적 재현(recapitulation, 再現)이 가능한 동물 모델(animal model)에서조차도 외삽(extrapolation, 外揷)할 때 주의를 기울어야 하지만 [79, 131] (그림 2), Manson과 그의 동료들의 발견과 매우 비슷한 우리의 연구 결과에서 일차 인간 BSE 프리온 감염(primary human BSE infection)과 의원성 경로(iatrogenic routes)를 통한 vCJD 프리온 이차 감염(secondary infection)은 단일 질병 표현형(single disease phenotype)에 한정(限定)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36]. PrPSc 형태에 따른 모든 인간 프리온 병 사례를 계층화(stratification, 階層化)한다면 BSE 노출 패턴(BSE exposure patterns) 또는 vCJD 프리온의 의원성 출처(iatrogenic sources)와 관계된 특정 PrPSc 아종(subtypes, 亞種)의 상대적인 빈도 변화를 재빨리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2, 79, 131, 132].



그림 1. 인간 프리온 병에서 프리온 단백질과 관련된 질병의 특징. (A) 뇌에 제1-4형 PrPSc를 나타내거나 편도선 생검에서 제4t형 PrPSc를 보이는 조직을 proteinase K[단백질 분해 효소의 한 종류]로 처리한 균질 현탁액(homogenate, 均質懸濁液)을 3F4라는 단일 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y)를 사용해 면역블롯검사(immunoblot)를 한 결과. sCJD와 iCJD와 같은 일반적인 CJD 환자의 뇌에서는 제1-3형의 PrPSc를 보이나, vCJD에 걸린 환자의 뇌와 편도선에서는 제4형과 제4t형 PrPSc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B, C) sCJD 혹은 vCJD 환자의 뇌는 ICSM35라는 항(抗) PrP 단일 클론 항체(anti-PrP monoclonal antibody)을 사용해 면역조직학검사를 했을 때, 비정상적인 PrP 면역반응(immonureactivity)이 나타난다. sCJD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PrP 침전(deposition, 沈澱)은 대부분 방산 형태(放散形態)의 시냅스 모양과 같은 염색(diffuse, synapse staining) 패턴을 공통적으로 보이지만, vCJD 환자의 뇌에서는 링 모양의 해면체 공포(spongiform vacuole)로 둘러쌓인 둥근 아밀로이드 코어(amyloid cores)로 구성된 붉은 PrP 반점이 나타난다. 그림 B와 C에서 스케일 바(scale bar)는 50 μm를 가리킨다.

그림 2. 유전자 이식 쥐에서 vCJD의 분자 그리고 신경병리학적 표현형의 재현(recapitulation). vCJD 프리온이 Tg(HuPrP129M+/+ Prnp0/0)-35라는 유전자 이식 쥐[Tg35라 명명]에 일차 감염해서 제4형 PrPSc가 증식했고 vCJD의 신경병리학적 특징(hallmark)인 붉은 PrP 반점(florid PrP plaques)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vCJD 프리온이 Tg(HuPrP129V+/+ Prnp0/0)-152라는 유전자 이식 쥐[Tg152라 명명]에 일차 감염했을 때는 제5형 PrPSc와 Tg152 쥐에서 이차 감염이 일어난 후에도 지속하는 개별적인 신경병리학적 패턴이 나타났다. 그러나 Tg35 쥐에서 이차 감염이 발생하면 제4형 또는 제2형 PrPSc가 증식하며 각각 vCJD 또는 sCJD에서 나타나는 것과 동일한 신경병리증(neorupathologies)이 나타난다. (A) vCJD와 sCJD(PRNP 129 MM 유전자형) 또는 유전자 이식 쥐에서 얻은 뇌의 균질 현탁액(homogenate, 均質懸濁液) proteinase K로 처리한 다음에 3F4라는 항(抗) PrP 단일 클론 항체(anti-PrP monoclonal antibody)로 면역블롯 검사(immunoblot)를 한 대표 결과. 뇌 표본 이름은 각 레인(lane) 위에 표시되어 있고, PrPSc 종류는 각 레인 아래에 기재(記載)되어 있다. (B) PrP가 양성으로 나타나는 반점(PrP-positive plaques)을 포함해 비정상적인 PrP 면역 반응성(immunoreactivity)을 보이는 유전자 이식 쥐의 뇌를 3F4라는 항(抗) PrP 단일 클론 항체(anti-PrP monoclonal antibody)로 면역조직화학 분석(immunohistochemical analysis)을 한 대표 결과. 스케일 바(scale bar)는 100 μm를 가리킨다. 아래 그림은 비정상적인 PrP 침전(deposition, 沈澱)의 지역적 분포(regional distribution)을 나타낸다. 초록색 상자 모양은 모식도 위에 나와 있는 PrP가 염색된 부위를 찍은 사진의 뇌 내 위치를 가리킨다.

<역자참조 >

<1> proteinase K digestion: proteinase K는 단백질 분해 효소의 일종으로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에서 지방족 아미노산(aliphatic amino acid, 脂肪族-)[이소류신(isoleucine), 류신(leucine), 발린(valine), 알라닌(alanine), 프롤린(proline), 그리고 메티오닌(methionine)]의 카르복실 말단(carboxyl terminus)과 방향족 아미노산(aromatic amino acid, 芳香族-)[페닐알라닌(phenylalanine), 트립토판(tryptophan), 히스티딘(histidine), 그리고 타이로신(tyrosine)]의 아미노 말단(amino terminus) 사이를 자른다. 그러므로 PRNP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면 이 유전자에서 발현되는 PrPSc는 구조적으로 다른 형태를 보일 것이며, PrPC 단백질을 proteinase K로 처리한 대조군(control)과 비교했을 때 다른 형태의 잘린 조각 패턴을 보일 것이다.
<2> immunoblot: Western blot이라고도 한다. 다음 블로그를 참조하시오. [링크]
<3> 분자 계통 타이핑(molecular strain typing):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그리고 생화학적 기법을 통해 종의 계통을 분석해 확인하는 방법을 통상 일컫는다.
<4> 생물학에서 conformation은 구조 혹은 형태라는 뜻으로 동시에 번역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번역에서도 두 가지 표현을 상황에 따라 달리 번역했다.
<5> 돌턴(Dalton, 약자로 Da)은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 기상학자며 근대 화학사에서 원자설을 처음 제안한 존 돌턴(John Dalton, FRS, 1766년 9월 6일~1844년 7월 27일)의 이름에서 따온 상대적인 분자량(molecular weight, 分子量) 단위이다. 1 kDa은 1000 Da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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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소개

이 글은 2007년 『Biochimica et Biophysica Acta』라는 학술저널(research journal)에 게재된 인간 프리온 병(human prion disease)에 관한 소개 논문(review article)이다. 논문의 제목은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이며, 저자는 영국 University of College London의 Jonathan Wadsworth와 John Collinge이다. 의학과 생물학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많아서, 각 용어는 "괄호 ()" 안에 영어와 한자로 같이 표기했다. 본문 안에 [숫자]로 표시한 부분은 논문 원본에 기재된 참고문헌 번호이며, <숫자>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따로 주석처리한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인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원 논문 <Wadsworth JDF, and Collinge J. 2007.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Biochim Biophys Acta 1772: 598-609>을 참조했음을 명시하기 바란다. [링크] 그리고 내 번역이 도움되었다면 "나의 번역이 도움되었음"을 표현해주는 것도 고맙긴 하겠다. 참고로, 번역 #1[링크], 번역 #3[링크], 번역 #4[링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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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전성 프리온 병(Inherited prion disease 혹은 familial CJD, fCJD)

대략 15%에 달하는 인간 프리온 병은 PRNP 유전자의 상염색체 우성 병원성 돌연변이(autosomal dominant pathogenic mutation, 常染色體優性病原性突然變異)와 연관이 있다 [14, 22, 52-54]. PRNP 유전자에서 발생하는 병원성 돌연변이가 어떻게 프리온 병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대부분 돌연변이는 PrPC가 PrPSc로 전이하는 경향성을 크게 해 프리온 단백질의 열역학적 안정성(thermodynamic stability, 熱力學的安定性)을 떨어뜨려 병을 일으킬 것으로 생각하는데, 돌연변이 발생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55, 56]. 실험적으로 조작해 만든 프리온 유전자 돌연변이(experimentally manipulated mutations of the prion gene)는, 검출할 수 있을만한 양의 단백질 분해효소에 저항성을 보이는 PrP 단백질(protease-resistant PrP)을 만들지 않음에도, 자발적인 신경변성(spontaneous neurodegeneration, 自發的神經變性)을 일으킬 수 있다 [57, 58]. 이러한 발견은 모든 fCJD가 같은 메커니즘으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으며, 이런 점에서 모든 fCJD가 접종으로 전염 가능한지는 현재 알려지지 않았다 [52].

30개 이상의 상염색체 우성 병원성 PRNP 돌연변이(autosomal dominant pathogenic PRNP mutations)가 보고되었다 [2, 3, 53, 54]. 적절한 임상 환경(clinical setting)에서 병원성 PRNP 돌연변이 확인(identification)은 유전성 프리온 병 진단과 돌연변이에 따른 질병의 하위분류(subclassification, 下位分類), 그리고 가족력이 있는 집단(affected families)을 대상으로 하는 증상 전 유전자 검사(presymptomatic genetic testing)에 유용하다 [4, 52, 54, 59]. 전통적으로, 유전성 프리온 병은 발현되는 임상 증후군(presenting clinical syndromes)에 따라 GSS, CJD 또는 FFI의 세 가지 하위분류(subdivision, 下位分類)로 나뉜다. 게르스트만-슈트로이슬러-샤인커 병(Gerstmann–Straüssler–Scheinker, GSS) 환자에서는 일반적인 CJD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전형적으로 더 긴 임상 경로를 거치며 나중에 발생하는 치매와, 추체로 특징(pyramidal features, 錐體路特徵)를 동반한 만성적인 소뇌실조(cerebellar ataxia, 小腦失調)가 나타난다 [52].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atal familial insomnia, FFI)는 진행성 불치성 불면증(progressive untreatable insomnia), 자율신경 기능장애(dysautonomia, 自律神經機能障礙)와 치매, 선택적 시상변성(selective thalamic degeneration, 選擇的視床變性)의 특징이 나타나며, PRNP 유전자의 178번 codon에서 일어나는 미스센스 돌연변이(missense mutation)와 공통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만, PRNP 유전자에 어떠한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은 산발적 FFI(sporadic FFI)의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다 [61, 62]. 신기하게도, 몇몇 가족은 CJD나 GSS 표현형에도 일치하지 않는 사례뿐만 아니라 유사 CJD/GSS 사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표현형 다양성(phenotypic variability, 表現型多樣性)을 보이기도 한다 [19, 53, 54, 63-66]. (fCJD에서는) 진행성 치매, 소뇌실조(cerebellar ataxia, 小腦失調), 추체로 징후(pyramidal signs, 錐體路徵候), 무도병(chorea, 舞蹈病), 간대성 근경련증(myoclonus, 間代性筋痙攣症), 추체외로 특징(extrapyramidal features, 錐體外路特徵), 가성구징후(pseudobulbar signs, 假性驅徵候), 발작(seizures, 發作) 그리고 근위축증적 특징(amyotrophic features) 등이 다양한 조합으로 나타난다. 이런 비전형적인 프리온 병은, 비록 PrP 면역조직학검사에서 보통 양성으로 판명되더라도, 해면상뇌병증(spongiform encephalopathy, 海綿狀腦病症)에 대한 전형적인 조직학적 특징(classical histological features)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64]. 다른 종류의 돌연변이를 가진 개인 사이에 중복되어 나타나는 표현형의 존재(the existence of phenotypic overlap)와, 심지어는 PRNP 유전자에 같은 돌연변이를 가지는 가족 구성원에서도 그러한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것은, 유전성 프리온 병의 정확한 분류는 순전히 돌연변이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19, 67]. 유전성 프리온 병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표현형 다양성과 이 병에서 잘 나타나는 알츠하이머 병(Alzheimer’s disease) 같은 잘 알려진 다른 형태의 신경변성 조건(neurodegenerative conditions)을 흉내 내는 특징(ability to mimic) 때문에, PRNP 분석은 진단 미확정의 발광 장애(dementing disorder, 發狂障碍) 혹은 운동실조 장애(ataxic disorder, 運動失調障碍) 증상을 보이는 모든 환자에게 고려되어야 한다 [19, 63, 64, 68].

5. 후천성 프리온 병(Acquired prion disease)

인간 프리온 병이 전염성 질환이기는 하지만, 후천성 프리온 병은 최근까지도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편이다.

5.1. 의원성 CJD(iatrogenic CJD, iCJD)

의료 처치과정(medical procedure) 중에 발생하는 의원성 CJD(iatrogenic CJD, 醫原性-)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은 경질막 조직편(dura matter graft, 硬質膜組織片) 이식(implantation, 移植)과 인간 사체(human cadavers, 人間死體)의 뇌하수체(pituitary glands, 腦下垂體)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으로 환자에게 처치(treatment, 處置)했을 때이다 [69. 70] <1>. 그리고 앞의 두 가지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각막이식(corneal transplantation, 角膜移植), 오염된 EEG 전극(electrode, 電極)의 이식(implantation), 오염된 기구(instruments)나 장치(apparatus)를 사용한 외과수술(surgical operations)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69, 70] <2>. iCJD에서 나타나는 임상증상은 병의 원인, 특히 인간 프리온에 노출된 경로(the route of exposure to human prions)와 관련 있다 [52, 70, 71]. 말초 부위에 감염된 경우(peripheral routes of infection)는 전형적으로 오랜 잠복기를 보이며, 보통 치매보다는 근위축증(amyotrophy, 筋萎縮症)이 임상적 특징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사 쿠루증후군(kuru-like syndrome) 증상이 나타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질막 조직편 이식수술로 인간 프리온에 노출된 환자는, 프리온 감염이 뇌에서 아주 가까운 지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전형적으로 sCJD와 유사한 임상증상을 보이지만 [72], 예외적인 사례로 보고되어 있다 [73].

5.2. 쿠루(Kuru)

가장 잘 알려진 후천성 인간 프리온 병의 예인 쿠루(Kuru)는 파푸아 뉴기니(Papua New Guinea) 동부 고지대(Eastern Highlands)에 사는 포레 어족(Fore linguistic group, -語族)에서 행해진 식인행위(cannibalism, 食人行爲)로 전염되어 나타났다 [28, 52, 74, 75]. 쿠루의 두드러진 임상증상은 진행성 소뇌실조(progressive cerebellar ataxia, 進行性小腦失調)며, sCJD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치매는 매우 늦게 나타나거나 혹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전구 증상(prodome, 前驅症狀)과 세 가지 임상 단계(clinical stages, 臨床段階)로 보행 단계(ambulatory stag, 步行段階), 상좌 단계(sedentary stage, 常座段階) 그리고 3차 단계(tertiary stage, 3次段階)가 알려졌다 [52, 74, 75] <3>. 잘 알려진 대로, 쿠루는 사람이 인간 프리온에 감염되었을 때 잠복기가 50년 이상 지속할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75]. PRNP 코돈 129 유전자형(PRNP codon 129 genotype)는 쿠루의 잠복기와 감수성(susceptibility, 感受性)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쿠루 유행(kuru epidemic)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생존자는 이 대립유전자에 대해 이형 접합자(heterozygote, 異型接合子)였음이 밝혀졌다 [27, 28, 75]. 코돈 129번에 대한 이형 접합자에 대한 분명한 생존 이득(survival adavantage, 生存利益)이 포레족(Fore族)에 작용한 선택압(selection pressure, 選擇壓)이라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한다 [28, 25] <4>. 그러나 전 세계적인 단상형 다형성(haplotype diversity, 單相型多形性) 분석연구와 PRNP 유전자의 코딩/논코딩 대립유전자 빈도(allele frequency of coding and non-coding polymorphisms of PRNP) 조사 결과를 보면, [이형 접합자 이익(heterozygote advantage)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변이(variation, 變異)가 있는] 이 유전자좌(locus, 遺傳子座)에 작용하는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 均衡選擇)이 진화적으로 매우 오래되었고 지리적으로 광범위함을 뜻하고 있다 [28] <5>. 균형 선택에 대한 증거는 단지 인간 유전자 몇 개에서만 나타난다. 다섯 대륙에 나타나는 식인행위에 대한 생화학적·물리학적 증거로 판단했을 때, 식인행위는 선사 시대(human prehistory, 先史時代)에 프리온 병을 유행시켰고, 그 결과로 PRNP 유전자에 대해 균형 선택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한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28].

5.3. 변형 CJD(variant CJD, vCJD)

1995년 이후 영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인간 프리온 병인 변형 CJD(variant CJD, vCJD)가 출현했고 [76] 이것의 원인이 소에서 소해면상뇌병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줄여서 BSE, -海綿狀腦病症)을 일으키는 프리온과 같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진 결과 [10, 77-79], BSE 유행이 영국과 다른 나라의 공중 보건(public health)에 개별적인 그리고 아마도 심각한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며 전세계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4, 80]. 종간 장벽(species barrier, 種間障壁)을 뛰어넘는 프리온 병에 나타나는 극단적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다양한 잠복기가 뜻하는 바는 이 병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 몇 년 뒤에야 프리온 병이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75, 80-83]. 그 사이에,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 병을 몸 안에서 키우고 있고, 수혈(blood transfusion, 輸血), 혈액 제제(blood products, 血液製劑), 조직 혹은 장기 이식, 그리고 다른 형태의 의원성 경로(iatrogenic routes, 醫原性經路)를 통해 프리온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켰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우리는 직면했다 [80, 84-87].

지금까지, 인간에서 BSE 감염으로 나타난 임상증상은 PRNP 코돈 129번이 메티오닌으로 되어 있는 동형 접합자(homozygote, 同型接合子)에서 발생한 vCJD에서만 확인됐다. vCJD의 신경병리학적 특징은 일반적인 CJD(sCJD와 iCJD)에서 보이는 증상과는 사뭇 다른데, 붉은 PrP 반점(florid PrP plaque)의 다량 존재와 [76, 88] 뇌 내 제4형 PrPSc(type 4 PrPSc) 증식이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0, 15] (그림 1). vCJD의 초기 임상증상은 일반적인 CJD보다는 쿠루와 매우 닮았으며 행동장애와 정신과적 장애(behavioral and psychiatric disturbances), 말초 감각 장애(peripheral sensory disturbance) 그리고 소뇌실조(cerebellar ataxia, 小腦失調)가 나타난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초기 정신과적 특징은 우울증(depression), 위축증(withdrawal), 불안증(anxiety), 불면증(insomnia), 그리고 [주변환경에 대한] 무관심함[혹은 무반응](apathy, 無關心)이다. 드물게 신경학적 증상(neurological symptoms)이 정신과적 증상에 선행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초기에 공통적으로 발현되는 신경학적 특징에 대해 보고된 바는 없지만, 지각이상(paresthesia, 知覺異常) 그리고/혹은 수족 통증(pain in the limbs, 手足痛症)이 절반에 가까운 사례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상당 비율의 환자는 증상이 시작된 후 4개월 이내에 기억력 감퇴(poor memory), 통증, 감각계 관련 증상(sensory symptoms), 걸음걸이 부동성(unsteadiness of gait, -不動性) 그리고 구음장애(dysarthria, 構音障碍)와 같은 신경학적 증상을 호소한다. 방향감각상실(disorientation, 方向感覺喪失), 환각(hallucination, 幻覺), 편집증적 사고(paranoid ideation, 偏執症的思考), 작화증(confabulation, 作話症), 약화된 자립자행(impaired self-care, -自立自行) 그리고 가장 공통적인 신경학적 특징[소뇌 징후(cerebellar signs, 小腦徵候), 무도병(chorea, 舞蹈病) 그리고 시각계 관련 증상(visual symptoms)]이 병이 진행하면서 늦게 나타난다 [89]. 병의 지속기는 평균 환자 생존기간이 약 14개월로 [36], 일반적인 CJD가 약 5개월인 것과 비교했을 때 [21], 비교적 길다. 더욱이, 일반적인 CJD가 중위 연령 68세에 주로 사망하는 만발성 질환(late onset disease, 晩發性疾患)인 반면에 [21], vCJD가 발병하는 중위 연령은 26세이다 [36, 89]. EEG 검사에서 전체적인 둔화하는 패턴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인 CJD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주기적 변화(characteristic periodic changes)는 관찰되지 않으므로, EEG는 vCJD를 진단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CSF 14-3-3 단백질 존재여부(存在與否)도 vCJD 진단에 도움이 안 되는데, 보통은 음성(negative)으로 나타난다 [90]. vCJD가 상당히 진행된 사례에서 가장 유용한 비침습성 조사(non-invasive investigation, 非侵襲性調査)는 자기공명 뇌영상(magnetic resonance neuroimaging 혹은 MR neuroimaging, 磁氣共鳴腦映像)으로 특히 액체감약 반전회복(fluid attenuated inversion recovery, FLAIR) 시퀀스(sequence)이다 [91]. 시상베개(pulvinar 혹은 posterior thalamus, 視床-)에서 좌우대칭 신호(bilaternal signal) 증가가 T2 강조영상(T2-weighted images)에서 나타남이 초기 사례에서 보고됐다 [92]. 다른 형태의 인간 프리온 병에 걸린 환자를 대조군(control, 對照群)해 36개의 조직학적으로 확인된 vCJD 사례를 자기공명 뇌영상으로 분석한 후향평가(retrospective review, 後向評價)에서, 시상베개 징후(pulvinar signs, 視床--徵候)가 vCJD가 상당히 진행한 사례에서 자주 나타난다고 보고됐다 [93]. 그러나 병에 걸린 지 평균 15개월이 된 환자를 대상으로 (이 전에) 평균 10.5개월째 되는 시점에서 자기공영 뇌영상 검사를 했을 때, 시상하부 징후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조직학적으로 확인된 vCJD 환자 사례도 이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하지만) 특징적인 자기공명 뇌영상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vCJD로 진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편도선 생검(tonsil biopsy, 扁桃腺生檢)으로 vCJD라 진단된 27가지 사례를 포함한 일련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 81% 감도(sensitivity, 感度)와 94% 특이성(specificity, 特異性)으로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보고됐다 [94]. 이들 연구가 나타내는 것처럼, 시상베개 징후가 vCJD에 반드시 특이적인 것은 아니며, 이러한 MRI 형태는 sCJD와 [95] 신생물 딸림증후군적 대내변연계 뇌염(paraneoplastic limbic encephalitis)를 [96] 포함한 드문 사례에서도 보고되어 있다 [97-100].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정 조직(firm tissue, 固定組織)에 근거한 vCJD 진단은 PrPSc의 특징적인 아형(sub-type, 阿型)을 검사하기 위해 환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 편도선 생검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글 참조).




그림 1. 그림 1. 인간 프리온 병에서 프리온 단백질과 관련된 질병의 특징. (A) 뇌에 제1-4형 PrPSc를 나타내거나 편도선 생검에서 제4t형 PrPSc를 보이는 조직을 proteinase K[단백질 분해 효소의 한 종류]로 처리한 균질 현탁액(homogenate, 均質懸濁液)을 3F4라는 단일 클론 항체(monoclonal antibody)를 사용해 면역블롯검사(immunoblot)를 한 결과. sCJD와 iCJD와 같은 일반적인 CJD 환자의 뇌에서는 제1-3형의 PrPSc를 보이나, vCJD에 걸린 환자의 뇌와 편도선에서는 제4형과 제4t형 PrPSc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B, C) sCJD 혹은 vCJD 환자의 뇌는 ICSM35라는 항(抗) PrP 단일 클론 항체(anti-PrP monoclonal antibody)을 사용해 면역조직학검사를 했을 때, 비정상적인 PrP 면역반응(immonureactivity)이 나타난다. sCJD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PrP 침전(deposition, 沈澱)은 대부분 방산 형태(放散形態)의 시냅스 모양과 같은 염색(diffuse, synapse staining) 패턴을 공통적으로 보이지만, vCJD 환자의 뇌에서는 링 모양의 해면체 공포(spongiform vacuole)로 둘러쌓인 둥근 아밀로이드 코어(amyloid cores)로 구성된 붉은 PrP 반점이 나타난다. 그림 B와 C에서 스케일 바(scale bar)는 50 μm를 가리킨다.

<역자참조 >

<1> implantation과 transplantation는 통상 이식(移植)이라는 한국어로 번역하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즉, implantation은 "a surgical procedure that places something in the human body"이고 transplantation은 "an operation moving an organ from one organism (the donor) to another (the recipient)"인데, 전자기계 장치 혹은 보철 등을 몸에 이식하는 것이라면, 후자생체조직을 몸에 이식하는 것을 뜻한다.
<2> apparatus와 instrument도 한국어로 번역할 때 통상 비슷한 단어—기구 혹은 기계—로 번역하는데, 엄밀히 풀이하자면 apparatus는 "equipment designed to serve a specific function"으로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장비 일반을 가리키는 반면에, instrument는 "a device that requires skill for proper use"로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도구를 뜻한다.
<3> "sedentary stage"는 한국어로 특별히 번역된 적이 없이, 내가 임의로 상좌 단계(常座段階)라 표현했다. 참고로 sedentary는 "앉아서 하는, 앉아 있는, 앉은 자세의"를 뜻한다.
<4>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물론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부분은 특히 더 하다. "The clear survival advantage for codon 129 heterozygotes provides a powerful basis for selection pressure in the Fore."
<5> 이 부분도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However, an analysis of worldwide haplotype diversity and allele frequence of coding and non-coding polymorphisms of PRNP suggests that balancing selection at this locus (in which there is more variation than expected because of heterozygote advantage) is much older and more geographically wide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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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는 말

이 글은 2007년 『Biochimica et Biophysica Acta』라는 학술저널(research journal)에 게재된 인간 프리온 병(human prion disease)에 관한 소개 논문(review article)이다. 논문의 제목은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이며, 저자는 영국 University of College London의 Jonathan Wadsworth와 John Collinge이다. 글이 좀 긴 관계로 한번에 모든 번역 내용을 올리지 않고, 시간이 나는 대로 몇 차례 나눠서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의학과 생물학과 관련된 전문 용어가 많아서, 각 용어는 "괄호 ()" 안에 영어와 한자로 같이 표기했다. 본문 안에 [숫자]로 표시한 부분은 논문 원본에 기재된 참고문헌 번호이며, <숫자>로 표시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번역하면서 추가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따로 주석처리한 것이다(물론 지금은 번역하느라 바빠서 하나도 없다. 나중에 주석을 달 예정이다. 나중에 ... 나중에 ... 나중에 ...). 혹시라도 이 글을 인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원 논문 <Wadsworth JDF, and Collinge J. 2007. Update on human prion disease. Biochim Biophys Acta 1772: 598-609>을 참조했음을 명시하기 바란다. [링크] 그리고 내 번역이 도움되었다면 "나의 번역이 도움되었음"을 표현해주는 것도 고맙긴 하겠다. 난 개인적으로 연구저작물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누가 저작권 가지고 딴지를 건다면 ... 저작권은 ... 저작권은 ... 저작권은 .... 저작권은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겠다.

어쨌든, 나는 생물학(그것도 바이러스학) 전공이기는 하지만, 프리온[영어권에서는 프라이언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은데, '프라이언'인지 '프라이온'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난 미국인이 아니니까]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래서 광우병과 관련된 의학적·생물학적 지식을 습득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작업을 계획했고, 나 혼자만 알기엔 좀 아쉬운 감이 있어서 내가 번역한 논문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하기로 했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많으므로 번역에 미흡한 점이 많겠지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앞으로 이 논문은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특히 용어와 관련된 부분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앞으로 주석을 계속 덧붙일 예정이다. 참고로, 번역 #2[링크], 번역 #3[링크], 번역 #4[링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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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Introduction)

프리온 병(prion disease)은 치명적인 불치성 신경변성질환(incurable neurodegenerative disease, 不治性神經變性疾患)으로 인간에게 발병하는 것으로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Creutzfeldt–Jakob disease, CJD), 게르스트만-슈트로이슬러-샤인커 병(Gerstmann–Straüssler–Scheinker disease, GSS),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atal familial insomnia, FFI), 변형 CJD(variant CJD, vCJD), 쿠루(Kuru) 등이 있다 [1, 2]. 이 질병의 주요 특징(central feature)은 체내에서 인코딩(encoding)하는 세포 단백질인 PrPC가 비정상적인 이소형(isoform)인 PrPSc로 번역 후 전환(post-translational conversion)하는 것이다 [1, 2] 이러한 전이(transition, 轉移)는 분자 수준에서 나타나는 공유결합 수정(covalent modification)보다는 단지 형태 변화(conformational modification)로 나타나며, 그 결과로 PrPC에 단백질 효소 분해(proteolytic degradation)에 대한 부분적인 저항성(resistance, 抵抗性)과 세제 불용성(detergent insolubility, 洗劑不溶性)이 나타난다. 인간 프리온 병은 (1) 생식세포 수준에서 프리온 유전자(PRNP)에 돌연변이(mutation, 突然變異)가 발생해 후대에 유전되어(inherited) 나타나거나, (2) 프리온에 감염된 조직이 접종(inoculation, 接種)이나 음식물 섭취(dietary exposure)를 통한 감염(infection, 感染), (3) PrPSc를 만드는 보기 드물게 산발적인 사건 때문에 발병한다 [2, 3, 4]. 유일하지는 않지만, 비정상적인 PrP 이소형이 전염성 감염 인자(transmissible infectious agent) 혹은 프리온의 주요 성분(principal components)임을 지지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 [1, 2, 5, 6]. 뇌에 PrPSc 축적을 수반하는 신경변성의 메커니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지만 [7], 단백질 분해효소 복합체(proteasome)의 기능 저해에 관여하는 세포 자살 메커니즘(apoptotic mechanism)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많은 증거가 있다. [8] 프리온의 종류(strain, 種類)와 분리주(isolates, 分離株)가 많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프리온 증식(prion propagation)에 대한 단백질 유일 모델(protein-only model)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떻게 단백질 유일 감염 인자(protein-only infectious agent)가 사람에게 개별적인 질병 표현형(disease phenotype, 疾病表現型)을 나타낼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프리온 계통 다양성(prion strain diversity)은 PrP 자체 내에서 인코딩되며, 인간 프리온의 표현형 다양성(phenotypic diversity, 表現型多樣性)은 비정상적인 PrP 이소형의 물리화학적 성질(physicochemical property)을 달리하는 것과 관계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실험적 증거가 현재 많이 제시되고 있다 [9-18].

2. 인간 프리온 병의 병인(etiology, 病因)과 임상적인 특징(clinical features)

인간 프리온 병은 발병원인에 따라 (1) 유전성(inherited), (2) 산발성(sporadic), (3) 후천성(acquired)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2]. 뚜렷한 병인(distinct etiologies)을 보이는 인간 프리온 병은 개별적 질병단위(disease entities, 疾病單位)라기보다, 지금은 임상병리학적 증후군(clinico-pathological syndromes, 臨床病理學的症候群)으로 나타나는 넓은 범위의 임상증상(clinical presentations 혹은 clinical symptoms)과 연관해 있다 [3, 4, 19].

3. 산발성 CJD(sporadic CJD, sCJD)

인간 프리온 병으로 보고된 사례(case, 事例) 가운데 약 85% 정도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CJD이며,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백만 명당 1-2명꼴로 남녀 동등한 빈도로 발생한다 [20, 21]. sCJD 발병 원인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체세포 내 PRNP 유전자 돌연변이(somatic PRNP mutation)로 인한 발병과 [20, 22, 23] 매우 드문 확률적 사건(rare stochastic event)으로 PrPC가 자발적으로 PrPSc로 전환해서 발병한다는 가설이 제안되었다 [22]. PrP 단백질의 129번 위치에서 나타나는 다형성(polymorphism, 多形性)[여기에 메티오닌(methionine, 약어로 M)이나 발린(valine, 약어로 V)이라는 아미노산이 위치한다]은 프리온 병에 대한 감수성(susceptibility, 感受性)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21, 24-28]. 약 38%의 유럽인이 메티오닌 대립 형질(allele, 對立形質)에 대해 동형 접합자(homozygote, 同型接合子)며[MM형이라고 부른다], 11%가 발린에 대한 동형 접합자[VV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머지 51%가 이형 접합자(heterozygote, 異型接合子)다. PRNP 유전자 129번 코돈(codon)의 동형 접합성(homozygosity, 同型接合性)은 sCJD와 후천성 CJD로 발병할 가능성을 높인다. [21, 24-28] 대부분의 sCJD는 이러한 다형성에 대해 동형 접합성을 보이는 사람에게 발생한다. 이런 감수성 인자(susceptibility factor, 感受性仁慈)는 후천성 CJD와도 관계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연구된 임상 사례에서 vCJD는 PRNP 유전자의 129번 코돈에서 메티오닌에 대한 동형 접합성[즉, MM형]이었다. 또한, PRNP 유전자 감수성 단상형(PRNP susceptibility haplotype, -感受性單相型)이 확인되었는데, 이것은 PRNP 유전자좌(locus, 遺傳子座) 혹은 그 주변에 sCJD에 대한 또 다른 유전적 감수성(genetic susceptibility)이 있음을 뜻한다 [29, 30].

전형적인 sCJD(classical sCJD)는 간대성 근경련증(myoclonus, 間代性筋痙攣症)을 동반한 급진행형 다초점성 치매(rapidly progressive multifocal dementia, 急進行形多焦點性癡呆) 증상을 보인다. 보통 45-75세 연령대에서 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86세의 중위연령(median age, 中位年齡)에서 사망한다 [21]. 발병 몇 주 후에 무운동 함구증(akinetic mutism, 無運動緘口症)으로 발전하며 5개월의 중위 지속기간(median disease duration, 中位持續期間)을 거친다 [21]. 사례의 대략 3분의 1에서 나타나는 전구증상적 특징(prodromal features, 前驅症狀的特徵)으로 피로(fatigue), 불면증(insomnia), 우울(depression), 체중감소(weight loss), 두통(headaches), 전신권태(general malaise), 불분명한 통증지각(ill-defiend pain sensations, -痛症知覺) 등이 나타난다. 의식저하(mental deterioration, 意識低下) 및 간대성 근경련증과 함께 추체외로 징후(extrapyramidal signs, 錐體外路徵候), 소뇌실조(cerebellar ataxia, 小腦失調), 추체로 징후(pyramidal signs, 錐體路徵候), 피질맹(cortical blindness, 皮質盲)과 같은 부수적인 신경학적 특징(neurological features)도 자주 나타난다. CJD에만 특이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14-3-3 단백질, 신경에만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에놀라제(neuronal-specific enolase, NSE), 그리고 S-100이 뇌척수액(cerebrospinal fluid, 腦脊髓液)에 많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적절한 임상 상황(clinical context)에서는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1, 31-36]. 심전도(electroencephalogram, EEG, 心電圖) 검사를 통해서도 진단에 도움이 될 만한 특징적인 유사주기성의 가파른 파동 활동(pseudoperiodic sharp wave activity)이 측정될 수 있지만, 전체 임상 사례의 약 60%에서만 나타난다 [21].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확산강조 자기공명영상(diffusion-weighted magnetic resonance imaging, diffusion-weighted MRI)에서 측정한 피질 신호 변화(cortical signal changes)는 CJD 진단에 매우 도움이 된다 [37-42]. CJD에 대한 신경병리학적 확인(neuropathological confirmation)은 해면체 변화(spongiform change, 海綿體變化), 신경손실(neuronal loss, 神經損失), 그리고 별아교세포증(astrocytosis, -牙細胞症) 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PrP 아밀로이드 반점(amyloid plaques, - 斑點)은 보통 CJD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43], 면역조직화학법을 이용한 PrP 검사(PrP immunohistochemistry) 결과는 거의 항상 양성(positive, 陽性)으로 나온다 [43-45].

sCJD의 비정형적 형태(atypical forms, 非定型的形態)는 잘 알려졌다. CJD 사례의 10%가 2년 이상 지속하는 장기간 임상 경로(prolonged clinical course)을 보인다 [46]. CJD 사례의 약 10%에서 인지장애(cognitive impairment, 認知障碍)보다는 소뇌실조(cerebellar ataxia, 小腦失調)가 나타나는데, 이런 경우는 운동실조성 CJD(ataxic CJD)라고 부른다 [47]. CJD의 하이덴하인 변종(Heidenhain’s variant of CJD)은 후두엽(occipital lobes, 後頭葉)의 중증병발(severe involvement, 重症竝發)을 동반한 피질맹(cortical blindness, 皮質盲)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일본에서 주로 임상 사례가 보고된 CJD의 범뇌염형(panencephalopathic type, 汎腦炎形)은 회백질(gray matter, 灰白質)의 해면체 공포형성(spongiform vacuolation, 海綿體空胞形成)을 동반한 대뇌백질(cerebral white matter, 大腦白質)의 광범위한 변성(extensive degeneration)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47-49]. CJD의 근위축성 변종(amyotrophic variants, 筋萎縮性變種)은 발병 초기에 중증 근육쇠약(muscle wasting, 筋肉衰弱)이 나타난다고 보고되었다. 그러나 근위축증(amyotrophy, 筋萎縮症)을 동반한 치매(dementia, 癡呆) 사례 대부분은 실험적으로 전염되지 않았으며, CJD와 관련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50,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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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던 중 털납작벌레라는 흥미로운 동물을 발견했다. 진성후생동물의 초기형태에 속하는 다세포 동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오직 이 동물 문(phylum)에는 털납작벌레가 유일하다.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만, 근래에 털납작벌레가 속하는 판형동물문에 속하는 다른 동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이 동물이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진위는 의심스럽다. 이 동물이 특징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1) 초기시냅스 형태로 보이는 세포들이 보임. (2)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동시에 할 수 있지만, 유성생식이라고 해서 엄밀하게 성이 구분된 것은 아님. 일종의 처녀생식에 가까운 형태임. (3) 세포 재생능력이 월등함. 재생수준은 플라나라를 능가하는 것으로 보임. (4) 털납작벌레는 조직(organ)이라는 것이 없는데, 그럼에도 원시적인 형태의 상피모양세포(epithelioid) 등이 있음. 등등 이라고나 할까?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관련 내용이 있지만, 몇 군데 오류가 보이고 내용도 불충분하다. 그래서 번역을 하려고 했는데, 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특히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전문 용어의 한글화인데, 보통 영어로만 쓰다가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한국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겠더라. 그리고 표준화의 문제. 한 가지 용어에 대해서도 한국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그러니 번역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사실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 몇몇 용어는 본문에 한글로 표시했다 (나도 계통 분류학쪽 용어는 그렇게 익숙치가 않다). 내용은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위키피디아 내용을 스크랩한 수준이니 내용의 진위에 대해서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시길. 이것은 그냥 참고 내용일 뿐이니까.

출처: Wikipedia

Trichoplax adhaerens(털납작벌레 혹은 트리코플랙스) is the only extant representative(현존하는 유일한 전형) of phylum Placozoa(판형동물문[板形動物門]), which is a basal group(기저군[基底群]) of multicellular animals(metazoan 혹은 후생동물[後生動物]). Trichoplax are very flat creatures around a millimeter in diameter, lacking any organs or internal structures. They have three cellular layers: the top epitheloid layer(상피모양층[上皮模樣層]) is made of ciliated(섬모[纖毛]가 있는) "cover cells" flattened toward the outside of the organism, and the bottom layer(기저층[基底層]) is made up of cylinder cells which possess cilia used in locomotion and gland cells(분비세포[分泌細胞]) which lack cilia [1]. Between these layers is the fiber syncytium(합포체 섬유[合胞體 纖維]), a liquid-filled cavity(강[腔]) strutted(지지되는, 받쳐지는) open by star-like fibers.
Trichoplax feed by absorbing food particles—mainly microbes—with their underside. They generally reproduce asexually(무성생식[無性生殖]하다), by dividing(이분법[二分法]) or budding(출아법[出芽法]), but can also reproduce sexually(유성생식[有性生殖]하다). Though Trichoplax has a small genome in comparison to other animals, nearly 87% of its 11,514 predicted protein-coding genes are identifiably similar to known genes in other animals.
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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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p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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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heli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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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ber syncyt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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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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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nship with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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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bution and habi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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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ing and symbio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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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o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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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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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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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e as a model org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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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atics(분류학[分類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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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란 책은 진화의 원동력에 대한 재미있고 유의미한 가설을 소개한다. 특히 린 마굴리스는 미생물 간의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가 진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책 전반을 통해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핵(nucleus)과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그리고 식물의 경우에는 엽록체(chloroplast)—등 진핵세포(eukaryotic cell, 眞核細胞) 안에 존재하는 세포 소기관(organelle, 小器官)은 원핵세포(prokaryotic cell, 原核細胞)인 원시 박테리아(primitive bacteria) 간의 공생(symbiosis, 共生)을 통해 형성됐다는 내부공생설(endosymbiotic theory, 內部共生說)을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들

   
순서대로 쉼퍼, 메레쉬코프스키, 리스 (사진출처: 구글)

내부공생설은 마굴리스의 저술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이 가설이 마굴리스에서 처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즉, 마굴리스 이전에도 몇몇 과학자가 여러 가지 생물학적 관찰을 통해 세포 내 소기관이 원핵세포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1893년 독일의 식물학자(botanist)이자 식물 지리학자(phytogeographer)인 안드레아스 쉼퍼(Andreas Franz Wilhelm Schimper, 1856-1901)는 식물세포 속을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으로 관찰했을 때 광합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원시식물(primitive plants), 남조류(cyanophyceae, 藍藻類), 남조식물문(cyanophytes, 藍藻植物門) 혹은 청녹조류(blue-green algae)로도 불린다―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엽록체의 박테리아 기원설을 제안했다 [1]. 1905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쉬코브스키(Konstantin Mereschkowsky, 1855-1921)는 식물세포의 엽록체가 핵과는 독립적으로 분열(division)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한 진핵세포의 소기관이 원시 박테리아에서 온 것임을 주장했다 [2]. 생물학자 한스 리스(Hans Ris, 1914-2004)는 1962년 광학현미경보다는 세포의 구조를 더욱 자세히 조사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 분석(electron microscopic analysis)을 통해 녹조류(green algae, 綠藻類)의 일종인 Chlamydomonas의 엽록체 구조가 (쉼퍼가 발견한 것과 동일하게) 시아노박테리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Paramecium aurelia이라 불리는 원생생물(protist, 原生生物)의 일종인 짚신벌레의 세포질에 kappa 인자라 불리는 박테리아가―최근에는 Caedibacter로 명명되었다―공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3]. 이러한 발견이 한결같이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핵세포가 어느 날 이 세상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원시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즉, 원시 박테리아들의 합작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핵세포 소기관의 원시 박테리아 기원설을 지지하는 ‘화학적, 구조적, 계통학적’인 관찰 증거는 계속 축적하고 있었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해줄 실험적 증거—내부공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위적 실험의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수백 년, 수천만 년 혹은 수십억 년을 거쳐 서서히 일어나는 진화의 대장정을 실험실에서 짧은 시간 동안에 인위적으로 재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진화의 전 과정을 끊임없이 목격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100년이다. 물론 우리에게 100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45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에 있어서 100년은 촌각(寸刻)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진화의 과정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연은 가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때로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위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연이 갖다 준 단서


전광우 박사 (사진출처: 테네시 대학)

전광우(Jeon, Kwang W.)는 원생동물(protozoa, 原生動物)의 위족(pseudopod, 僞足) 형성과 운동성 및 생물학적 기능 등을 연구하던 사람으로서 이를 위해 수년간 다양한 지역에서 채집한 아메바(amoebae)를 배양했다. 그는 새로운 아메바를 얻으면 빈 배양 용기에 담아 다른 종류의 아메바가 담긴 배양 용기와 함께 보관했는데, 어느 날 심각한 질병이—그는 아메바의 질병 원인이 뭔지 몰랐던 것 같다—아메바 사이에 퍼지는 것을 관찰했다. 건강하던 아메바가 구슬 같은 둥근 형태로 변했으며 먹지도 번식하지도 않았다. 극히 일부의 아메바는 성장을 계속하면서 분열할 수 있었지만, 감염되기 전에는 격일에 한 번이었던 것이 감염 후에는 5일에 한 번으로 크게 늦춰졌다 [2].

 
다양한 종류의 아메바 (사진출처: 구글)

보통의 실험 생물학자라면 이럴 때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배양된 세포를 사용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다른 세포에 대한 이차 감염을 사전에 차단키 위해 감염된 세포를 바로 폐기하고, 감염원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감염된 세포를 키우던 배양실도 대거 소독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오염된 세포를 탓하며, 다음에는 세포가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스스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광우는 달랐다. 그는 아메바의 감염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놀라운 발견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는 광학현미경을 사용해 죽거나 혹은 죽어가는 아메바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세포 속에 무수히 많은 점이 퍼져 있는 것을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작은 점의 정체는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였고 적게는 약 6만에서 많게는 15만 개에 달하는 수가 아메바 안에 존재했다. 그동안 아메바의 먹이라고 생각한 미세한 박테리아가 병의 원인이었으며 아메바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가 모든 아메바를 죽이진 않았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일부는—이유는 알 수 없지만—분명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물론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는 매우 연약했으며 온도 및 먹이 등의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아메바는 될 수 있으면 살리고 박테리아만 죽일 요량이었는지, 박테리아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아메바에게는 (상대적으로) 해가 없는 항생제를 처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원래대로라면 항생제는 박테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죽여야 하지만,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까지도 대부분 죽였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아메바 내부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아메바의 생존은 (항생제 처리의 예에서 보듯) 전적으로 박테리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2, 4].

적대적인 둘에서 새로운 하나로의 가능성

박테리아에 의한 아메바의 감염 사건 이후 5년 동안 전광우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계속 배양했고 감염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며 정상적인 주기로 분열할 수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얻는 데 성공했다 [2, 5]. 그렇다고 아메바가 박테리아를 죽인 것은 아니다. 박테리아는 아메바 속에서 분명히 살아 있었고 마치 아메바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으며 그 안에는 감염 초창기와 비슷한 숫자에 해당하는 개체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든 생명체는 외부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 기작(defense mechanism)을 가지고 있다. 아메바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박테리아가 아메바 내부로 침입했을 때에도 분명히 아메바의 방어 기작은 생존을 위해 작용했을 것이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힘에 부친 아메바가 자신의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방법대로 자살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에 감염된 아메바 다수가 대부분 죽었을 수도 있다. 물론 앞의 설명과는 별개로 박테리아의 파괴적인 공격이 아메바의 생명활동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교란시켜 아메바의 대량학살을 불러왔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최초 감염의 일차적 결과는 아메바의 죽음이었고, 아메바는 괴멸상태가 되었다. 그런데도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는 절멸이라는 비운의 상황 속에서 박테리아를 몸 안에 품은 채 꿋꿋이 살아남았다. 아메바의 저항이 살의로 가득 찬 박테리아의 치명적인 공격을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다. 혹은 아메바의 절멸로 더이상 자신의 삶을 유지할 터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박테리아로 하여금 아메바의 생존을 선택하도록 종용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두 인간적인 설명이다. 자연의 법칙에 인간의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자연의 법칙에는 그에 걸맞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자연선택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목적론적 사고와는 관계없이, 아메바에게든 혹은 박테리아에게든 그 어느 것도 거부할 수 없는 공평한 잣대—살아남을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개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영속성을 쟁취할 자격이 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생명의 패러다임 — 유전자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가 박테리아 의존성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메바와 박테리아라는 두 생명체의 관계변화—숙주(host, 宿主)와 감염원(pathogen, 感染源)이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어떻게 (상호협력적으로 보이는) 공생관계로 전환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접적으로 아메바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실험적 방법을 통해 이를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적 능력이 있다. 객관적 관찰을 통해 얻은 사실에 근거한 추론은 우리가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약간의 지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gene)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형(genotype)의 조합을 통해 표현형(phenotype)을 발현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를 이루게끔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생명체에 내재된 모든 유전자의 일차적 정보는 DNA에 저장되어 있고, DNA로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자의 근원적 담지자(擔持者)는 세포라는 생명 단위체다. 세포는 필요한 순간마다 전사(transcription, 傳寫)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DNA에서 RNA를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RNA(특히 mRNA)는 핵에서 세포질로 전달되어 리보솜(ribosome)이라 불리는 거대한 단백질 중합체와 만나게 된다. 리보솜은 RNA의 긴 염기서열에 기록된 정보를 3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코돈(codon)을 나열을 바탕으로 유전자 정보를 번역(translation, 飜譯)해서 아미노산 중합체(polypeptide)를 합성하고, 아미노산 중합체는 자신 안에 내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3차원적 구조를 이루어 단백질이라 불리는 생명현상의 기본 기능 단위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생존이라는 보편적 목적을 위해 각자에게 부여된 특수한 기능을 통해 고유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세포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인 유전자(들)의 변화(혹은 돌연변이)는 대부분 치명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영향이 미비하거나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유전자 서열의 차이는 같은 종이라도 개체 간 표현형이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엄격한 선택압을 부여하는 급격한 환경 변화는 어떤 유전자(들)의 표현형이 바뀐 환경에 적합한지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아메바와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생명 현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상, 이들 개체도 자연선택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박테리아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에 감염하려 들 것이고, 아메바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의 침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똑같은 방어 기작을 가지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대항한다 할지라도 유전적 차이에 의해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굴복해 자신의 유기물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줄 것이다.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박테리아는 아메바가 제아무리 격렬하게 저항하더라도 무리 없이 아메바 내부를 점령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어떤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자 표현하는 공격력이 아메바에 침입하기에는 미약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전자 변이, 자연 선택, 그리고 적응

박테리아에 감염되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아메바는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것이고 아메바를 죽이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감염성 박테리아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추론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상상 속에 머문다. 그렇다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가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한 진정한 이유일까?

전광우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미세수술(微細手術, micrurgy)이라는 실험방법으로 한 번도 감염성 박테리아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아메바(D)와 박테리아에 감염된 상태로도 왕성한 활동을 유지하는 아메바(xD)의 핵을 상호치환해서 공생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핵에 있는지 아니면 세포질에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5, 6].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DNxDC)는 대조군—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합친 아메바(DNDC)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xDC)—과 비교했을 때 성장과 분열 주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감염된 아메바의 핵을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과 융합한 경우(xDNxDC)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메바의 삶은 변함이 없었고 박테리아도 새로운 핵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염된 아메바의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DC)는 분열을 통한 증식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살지도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은 감염된 아메바의 핵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었고, 감염된 아메바의 핵은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에서 원하는 것을 얹을 수 없었다. 박테리아 감염 때문에 발생한 변화는 아메바의 핵에서 일어났다.

전광우는 또 하나의 실험을 계획했는데,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을 미세주사(microinjection, 微細注射)라는 실험방법으로 이용해 실험적으로 조작한 아메바의 세포질에 주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지만,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 에게 원래의 삶을 부여했다. 원인은 아메바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였고, 박테리아는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가 원하는 그 무엇—박테리아 유전자의 산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메바의 세포질 추출물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적이 없는 아메바에 주입했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포질 추출물 안에는 엄청난 수의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최초에는 분명히 엄청난 파괴력의 감염성을 가진, 아메바 다수를 전멸의 위기까지 몰고 간 바로 그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감염 증상을 유발하지 않았다. 공생관계는 아메바에게만 변화를 준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는 공생관계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상실했다.

최초에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모든 감염성 박테리아가 아메바에게 똑 같은 수준의 끔찍함을 선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박테리아는 다른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아서 아메바를 죽음의 문턱까지는 끌고 가더라도 죽음의 문턱을 넘길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감염 전에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다 할지라도, 아메바에 침입한 이후 아메바의 세포질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박테리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유전적 변이는 특정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당 유전자(들)을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 집단에서 배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는 아메바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메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메바의 유전적 변이 정도는 어떤 식으로는 박테리아의 공격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상호 유전적 변이의 결과는 아메바가 박테리아에게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몸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주는 것과 박테리아는 공격을 멈추고 그 대신 아메바가 원하는 무엇인가는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적대적 관계는 다소 비가역적인 것처럼 보이는—그러나 실제로 비가역적인지는 알 수 없는—호혜적 관계로 개선되었다.

박테리아성 아메바의 출현

클로람페니콜(chloramphenicol)이라는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리보솜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해 박테리아의 단백질 합성을 막는 항생제다 [7].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에 처리하면 박테리아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아메바의 미토콘드리아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안에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미토콘드리아 고유의 리보솜이 있어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여러 가지 단백질을 미토콘드리아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은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있는 리보솜에 결합해 미토콘드리아의 단백질 합성에 영향을 줘 ATP라는 생체 에너지 생산을 막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아메바를 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클로람페니콜은 박테리아에 더욱 치명적이다. 클로람페니콜이 박테리아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메바가 받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전광우는 클로람페니콜이라는 항생제를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사는 아메바에 처리해봤다 [8].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건강한 아메바는 클로람페니콜을 처리했을 때 급격하게 죽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소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아메바 내에서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최초의 적대적 관계는 공생 관계를 통해 이젠 하나의 개체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아메바의 삶은 곧 박테리아의 삶과 밀접해지고 있으며, 박테리아에게 재앙은 곧 아메바에게도 재앙이다. 박테리아의 삶도 곧 아메바와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두 개체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완전히 하나의 개체로 합쳐질 수 있는 공생진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공생의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길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예는 서로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생물체와 공동생활을 하는 생물체 그리고 서로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된 생물체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단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35억 년 혹은 그 이상 진화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찰나에 불과한 불과 5-10년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치명적인 병원균이 세포에 꼭 필요한 소기관으로 변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전광우의 발견과 실험은 진화라는 것이 단순히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이 지구 상에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진화의 요인이 되는 유전적 돌연변이는 단순히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을 통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감염과 공생이라는 개체 간의 유리되지 않은 상호과정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격렬함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Mereschkowsky's Tree of Life. Scientific American. 2001
[2]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저 / 홍욱희 역 / 범문사 / 1987년 8월 31일) 123-126쪽
[3] Magulis, L. (2005). Hans Ris (1914-2004). Genophore, chromosomes and the bacterial origin of chloroplasts. Int Microbiol 8(2): 145-148
[4] Jeon, K. W., and Lorch, I. J. (1967). Unusual intra-cellular bacterial infection in large, free-living amoebae. Exp Cell Res 48(1): 236-240
[5] Jeon, K. W. (1972). Development of cellular dependence on infective organisms: micrurgical studies in amoebas. Science 176(39):1122-1123
[6] Jeon, K. W., and Jeon, M. S. (1976). Endosymbiosis in amoebae: recently established endosymbionts have become required cytoplasmic components. J Cell Physiol 89(2):337-344
[7] Wikipedia: Chloramphenicol
[8] Jeon, K. W., and Hah, J. C. (1977). Effect of chloramphenicol on bacterial endosymbiotes in a strain of Amoeba proteus. J Protozool 24(2):28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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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50억 년 전, 빅뱅이라 불리는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원자가 생성되었고 물질 형성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약 45억 6700만 년 전 우주 역사의 어느 한순간에 원시 태양계가 생성되었고 지구란 별도 태양계의 한 일원으로 그 형태를 드러냈다.

생명체는 약 36억 년 전 원시 지구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태고대(the Archean Era, 太古代)의 지구 내부는 고열과 방사능으로 뒤끓고 있었으며, 지각(地殼)의 열린 틈으로는 끊임없이 용암을 방출했다. 끊임없는 지각활동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지표 외부로 방출했으며, 지구 표면은 수증기가 가득한 대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지표면이 점점 식어갈 무렵, 대기 중에 응결된 수증기는 물방울을 이루어 오랫동안 지표면을 향해 비를 뿌렸고, 그 결과 마그마와 암석으로 가득 찬 지표면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바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 밑바닥에서는 지각의 틈새를 통해 마그마가 끊임없이 분출되었고 중금속과 황 화합물로 가득한 유독 가스를 품은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떻게 원시 지구에서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었으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생명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지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바로 심해 생태계의 모습을 보면 된다.

심해(深海, ocean depth) 깊은 곳에는 빛이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해수면(water layer) 등에서 서식하는 조류(alga, 藻類)나 육상 식물 등과 같이 광합성(photosynthesis, 光合成)을 통해 탄소화합물(carbohydrate, 炭素化合物)을 생성하는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다. 그런데 탄소화합물은 생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영양분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산소를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심해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사진 출처: Wikipedia

여기서 잠시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 熱水噴出孔)에 대해 알아보자. 해저 지각의 틈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은 뜨거운 마그마와 만나 데워지고 주변 암석에 들어 있던 구리, 철, 아연, 금, 은 등과 같은 금속성분을 함유한 채 지각의 틈 사이로 다시 솟아나온다. 이때 솟아나온 열수(熱水)는 최고 350ºC 정도로 뜨거워진 상태에서 해저부(海底部)에 흐르는 보통 0ºC에 가까운 차가운 물과 만나 급격히 식게 되고 열수 안에 포함되어 있던 금속성분은 지각 틈의 주변에 침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면 굴뚝처럼 생긴 지형물이 서서히 생성되는데, 이것을 열수분출공이라 한다.

해저분출공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깊은 바다 속에서 생물이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왜냐하면, 생태계(生態系, ecosystem)는 스스로 영양분 합성이 가능한 자가영양생물(autotroph)이 있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상과 해양에서는 광자가영양생물(photoautotroph)인 식물과 조류가 빛 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과정을 통해 탄소화합물 등의 영양분을 생성하여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심해저(深海底), 특히 열수분출공 주변은 영양분도 없을뿐더러 황 화합물 및 중금속 같은 독성 무기물질이 가득하고 게다가 엄청 뜨겁기까지 하다. 생명체가 생존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심해저의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 어떤 생태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고 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가 바닷물에 녹아 해류의 흐름으로 대양저(ocean floor, 大洋底) 끝자락까지 전해지는 것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유기물 중심의 영양분이 희소한 것처럼 보이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의 일종인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합성(chemosynthesis, chemosynthesis, 化學合成) 반응 과정을 통해 태양 에너지(sunlight energy) 대신 황화수소(hydrogen sulfide)를 산화(oxidation)해서 나오는 화학 에너지(chemical energy)를 이용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 등의 탄소화합물로 전환한다. 황화수소가 다량 함유된 열수를 뿜어내는 열수분출공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자가생명체(chemoautotroph)의 역할을 함으로써 심해저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 열수방출구 주변 지역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식물이 하는 역할을 대신 함으로써 영양분을 제공해야 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심해저 생명체가 황화수소 박테리아의 부산물을 이용할까?


사진 출처: Wikipedia

거대 서관충(giant tube worm, 학명: Rifia pachytila)은 환형동물문(phylumAnnelida, 環形動物門)에 속하는 서관충(tube worm, 棲管蟲)의 일종으로 조간대(intertidal zone, 潮間帶)와 원양생태계(pelagic zones, 遠洋生態系)에서 주로 발견된다. black smokers라 불리는 태평양 일대 대양저의 열수분출공 근처에서 살고 상당한 고농도의 황화수소에도 견딜 수 있으며, 최대 2.4 m까지 자랄 수 있다. 그런데 거대 서관충은 대형 동물에서 흔히 보이는 소화기관이 없다. 이 때문에, 거대 서관충은 다른 동물처럼 포식행위(eating, 捕食行爲)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것 외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형 동물 중,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하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상식적인 방법으로 거대 서관충이 영양분을 확보할 방법은 없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십 억년 진행된 진화의 놀라운 광경은 개체의 생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생존―에 있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는 경이로운 진화의 과정을 볼 것이다. 바로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사이의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 혹은 symbiosis, 共生關係)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서관충 몸 안―특히, 영양체부(trophosome, 營養體部)라 불리는 기관―에서 살아간다. 거대 서관충은 특화된 플룸 구조(vascularized red plume)을 산소, 황화수소 그리고 이산화탄소 등의 무기물을 흡수하여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사는 영양체부로 보낸다. 그리고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이렇게 얻은 무기물을 화학합성 반응을 통해 유기물로 전환한다. 박테리아가 합성한 유기물은 다시 거대 서관충이 사용한다.

이런 관계를 놓고, 몇몇 사람은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안에서 기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대개 기생(parasitism, 寄生)이라고 하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에서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하고는 한다. 특히, 박테리아와 대형 동물 간의 관계라면 이런 식의 일방적 상호관계를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일방적 기생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다.

거대 서관충은 황화수소 박테리아를 통해 영양분을 얻는다. 그렇다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몸 안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생물학적 이점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황화수소 화학합성 과정에서 몇 가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생물은 호흡을 위해 산소를 이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다. 해양 생물이 이용하는 산소는 대기 중의 산소가 바닷물에 용해된 것일 수도 있고, 바닷속 조류의 광합성 작용으로 생성된 산소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생성된 산소는 해류의 흐름을 타고 심연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헨리의 법칙(Henry's law)에 따르면 기체의 용해도는 기체의 부분압력에 비례한다. 즉,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의 용해도는 증가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심해 위쪽의 용존 산소량보다 높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상대적으로 낮다. 심해저에는 빛이 안 들어오므로 녹조류가 살지 못하므로 광합성을 통한 직접적 산소공급이 불가능하며, 깊이에 따른 해류속도의 차이는 용존 산소량의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심해저에서 발생하는 부패 등의 화학반응은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을 상대적으로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화학합성 반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용 가능한 산소량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거대 서관충의 플럼 구조틀 통한 산소 흡입은 황화수소 박테리아 주변의 용존 산소농도를 높임으로써 화학합성 반응을 원활히 해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 서관충 몸 밖에서 서식하고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서관충 몸 안에서 서식하는 것은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 같은 화학합성 반응에 필요한 다른 무기물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산소 대신 질소 화합물―질산염 화합물(nitrate) 혹은 아질산염 화합물(nitrite)―을 이용해 화학합성 반응을 할 수 있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위치에 따라 약 68~78%를 차지하는 원소로서 단백질 등과 같은 유기물질의 주요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해수에서 질소는 주로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산소보다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질소 화합물을 화학합성 반응에 사용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질소 화합물을 사용한 화학합성 반응의 부산물(by-product)인 암모늄 이온(ammonium ion)은 거대 서관충이 흡수하여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합성하는 데 사용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거대 서관충은 생명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질소 화합물의 농도를 체외 농도와 비교했을 때 체내에 100배 이상 농축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종(異種) 간의 공생을 통한 상호작용이 진화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저부 열수분출공에서 서식하는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간의 공생관계에 대해 살펴봤다. 수십억 년 전 원시 지구의 혹독한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의 삶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지적 수준으로 가늠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공생관계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생명체는 다양한 환경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존을 위해 변화해 왔고 그러한 변화는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종의 적응이라는 사실이다. 마그마가 지각의 틈 사이로 솟아나오고 유독 물질이 섞인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어떤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와의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협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협력관계를 구사했다는 것은 생명체의 표현형을 결정하는 수많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중 공생관계를 선택하게 한 유전적 변이(들)의 결과가 원시 지구의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의 요구조건에 적합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공생관계가 생존에 필요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연선택이라는 다양한 진화 가능성 조건에서 어떤 돌연변이(들)로 인해 나타난 개체의 표현형은 공생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생활방식이 생존에 적합했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공생이 아니라 기생 혹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어떤 돌연변이는 비슷한 공생적 관계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보여주는 공생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혹은 상상도 하지 못할 다른 방식의 공생관계에 적합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화라는 것은 임의의 개체를 구성 있는 유전자 간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와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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