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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03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대략적 유추 정도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이나 고대 현생 인류 유적에서 매장(埋葬)이나 샤머니즘(shamanism)적 풍습이 자주 관찰된다. 매장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며 “샤머니즘”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경외(敬畏)가 있었단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라면 막연할지라도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물음” 정도는 품고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지만, 근거는 없다. 물론 누군가 이런 부분에 관해 연구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하지만 고대 여러 종교의 창세신화(創世神話)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내용으로 미루어본다면 세상의 시작이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선사 시대부터 누적된 인간 사고의 산물(産物)이라 결론지어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종교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재미없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신이 모든 것을 이룩해 놓았으니 인간이 할 일이라곤 고작 “신에게 여쭙는 것”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 선에서 끝난다면 정말로 싱거울뿐더러 정말로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면 그 신은 과연 누가 창조했느냐는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그렇다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신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오로지 자연법칙으로 설명하는 것뿐인데, 시쳇말로 이것을 과학적 추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과거에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티끌 축에도 못 끼겠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추론이 있었을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실, 이런 추론의 주목적은 “세상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며 “생명의 기원” 또는 “생명의 발생”은 솔직히 말해 덤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관점에서 본다면 대부분이 유치함 그 자체이지만, 그래도 이들 대부분이 전능하신 신의 힘을 빌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1) ―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7세기 무렵 밀레투스(Miletus) 출신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B.C. 546?)는 “물이 만물의 근본 물질”이라고 주장한 탈레스(Thales, ?~?)의 제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스승과는 달리,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제일 실체(primary substance, 第一實體)에서 비롯되었지만 물은 아니며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실체도 아니며, 제일 실체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나이를 먹지도 늙지도 않은 채 여러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고 주장했다 [A1]. 그는 독특하게도 “여러 세계”를 제시하는데, 이것은 마치 현대 물리학 이론 가운데 하나인 다우주 이론(multi-universe theory, 多宇宙理論)을 연상케 한다. 물론, 그가 언급한 “여러 세계”가 그가 알고 있는 곳 이외의 지구 위 다른 세상인지, 다른 우주의 다른 세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여러 세계”를 주장한 고대 철학자가 아낙시만드로스가 유일한지도 잘 모른다. 어쨌든, 나는 철학 전공도 아니며, 철학에 대해서는 전병(煎餠)이나 마찬가지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신도 놀라울 지경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정의(正義)가 제일 실체라고 주장하면서, “사물이 정해진 대로 다시 한 번 발생한 근원으로 돌아가는 까닭은 사물이 시간 순서에 따라 부정의(不正義)를 서로 상쇄하거나 서로 충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A1]. 그가 언급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철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지만―많은 철학자가 이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이미 알려진 다른 실체이자 요소인 불, 물, 흙, 공기 등의 요소가 서로 대립하면서 존재하는 가운데 아낙시만드로스의 “정의”는 이들을 중재하는 “중립자”의 역할에 서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그는 세계가 종교 일반에서 주장하는 대로 신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영원한 운동 속에서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A2]. “대립과 투쟁” 그리고 “생성과 소멸”. 언뜻 “진화”가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아낙시만드로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사고는 이러한 “진화적 관점”이 어느 정도 투영(投影)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태양의 영향을 받은 습지에서 생명체가 처음 발생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습기가 태양의 열기로 증발하듯이 생명체 또한 습한 요소에서 발생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A2, B1]. 태양으로 상징되는 불과 습지로 대변되는 물과 흙의 만남이 어떻게 해서 생명체를 빚어냈는지에 관한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본래부터 존재했던 실체인 물, 불, 흙이 한데 어우러져 “대립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체가 “땅”에서 생성되었다는 설명은 “신이 모든 것을 이루셨다”는 전지전능보다는 그나마 합리적 모양새를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아낙시만드로스만의 독창적인 생각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건만 맞으면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 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적 시각은 당대에는 일종의 상식이었으며, 이것은 19세기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B1, 1]. 따라서 “신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꽤 흥미롭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물고기 같은 생명체에서 인간이 비롯했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을 낳은 후보 물고기로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를 지목했다 [B1, 2]. 고대 창세신화를 비롯해 아주 먼 과거에는 “물”과 생명의 탄생을 자주 연관 지었으니 “인간이 물고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많고 많은 물고기 가운데 하필이면 활상어를 지목했을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료가 분명치 않지만 몇몇 사람은 아낙시만드로스가 해양 생물에 관해 어느 정도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A2, B1]. 특히,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46?~120?)의 『도덕론(Moralia)』 제8권에 포함된 「식탁 대화집(Table-talk)」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인간은 상어의 일종인 활상어(아마도 시베리아 철갑상어라 추정됨)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도 아낙시만드로스는 활상어를 포함한 일부 상어의 새끼가 인간처럼 탯줄을 통해 태반상 조직 또는 유사 태반 조직(pseudo-placental tissue)에 연결되어 어미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모양이다 [B1].


바로 여기에 아낙시만드로스 주장의 핵심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보기에 인간은 출생 후 자립하기 전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아야 한다. 물론, 다른 생명체도 성체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양육 기간을 비교한다면 인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짧다.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는 “오랜 양육 기간”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고 판단했다 [A2, B2]. 따라서 모든 생명체가 습기 또는 물을 머금은 습지에서 기원했다고 가정했을 때, 평소에도 하나의 완전한 독립체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란 존재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생명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런데 족보(族譜)도 없는 물고기가 인간을 보살폈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의 논리로 판단했을 때 유사 태반을 가진 활상어가 인간이 하나의 독립적인 종(species, 種)으로 설 수 있게 한 가장 그럴싸한 생명체다. 이것이 바로 아낙시만드로스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무맹랑한 얘기지만 말이다.


밀레투스 학파 (2) ― 아낙시메네스


밀레투스 출신 또 다른 철학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B.C. 528?)도 생명의 기원에 관한 자신만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와는 다르게, 제일 실체는 공기(air, 空氣)이며, “영혼은 공기이고 불은 희박해진 공기”이며, 공기가 응축하면 처음에 물이 되고, 더욱 응축하면 흙이 되며, 마지막에는 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A3].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탈레스는 제일 실체가 물이며 아낙시만드로스는 제일 실체가 “정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는 그의 선배 철학자와는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게다가 “공기”의 양적 차이가 물질 간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단정하는데, 실제로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최대 장점은 세상 만물의 차이를 오로지 공기의 응축(凝縮) 정도에 따른 양적 차이로 설명하는 데 있다 [A3]. 공기의 양적 차이는 물질의 차이를 규정하며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물질은 소멸하여 공기로 환원되며, 공기가 다시 응축하면 새로운 물질을 형성한다. 바로 이것이 아낙시메네스 철학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졌을까? 앞에서 아낙시메네스는 “영혼은 공기다”라고 주장했으며, 여기에 “공기로 이루어진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도 숨과 공기가 전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란 말도 덧붙였다 [A3, C1]. 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단순히 “공기의 응축”으로만 설명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공기의 응축을 통한 물질의 변화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에는 미더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낙시메네스는 여기에 흙과 물의 혼합물인 원시 육상 점액(primordial terrestrial sli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적용했으며, 이로도 모자랐는지 원시 육상 점액이 “태양의 열기”와 결합해야만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그럼에도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이 아낙시만드로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며, 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과학적 추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유치한 것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피타고라스와 크세노파네스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B.C. 500?)가 세상의 기원이나 생명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뒀다는 문헌적 기록을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들은 자연의 탐구보다는 사물의 원리에 대해 주로 관심을 쏟았던 모양이다 [B3]. 실제로 피타고라스학파는 종교적 신념과 실천으로 결속된 신비주의 집단에 가까웠다. 아니, 말 그대로 오르페우스교적 교리를 따르는 신비주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영혼의 불멸(不滅)과 윤회(輪廻)를 믿었으며 특정 음식에 대한 금식 등과 같은 금기 사항을 실천하는 데 주력했으며, 최초의 근원을 질료적 실체에서 찾은 밀레투스 학파와 달리 그들은 모든 사물의 원리를 수(number, 數)에서 찾으려고 했다 [B3].


이와는 달리, 피타고라스학파의 열렬한 비판자인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B.C. 560?~B.C. 478?)는 만물이 흙과 물로 만들어졌으며 [A4], 인간의 출현 시기는 흙의 유동 단계와 땅의 형성 사이의 전이 기간(transitional period, 轉移期間) 사이라고 주장했다 [3]. 하지만 그 역시도 태양의 영향 아래에서 어떤 조건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식물과 동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자연 발생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A4, 3].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B.C. 430?)는 그는 고대부터 막연히 인식되었던 만물의 구성 실체인 흙, 공기, 불, 물의 개념을 확립한 철학자이다 [A5]. 또한, 그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한 사람으로서 과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물잔에 줄을 달아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원심력을 입증하는 한 가지 사례를 발견했으며, 식물에도 암수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5]. 이런 면에서 엠페도클레스는 철학자라기보다는 오늘날의 과학자에 가깝다. 게다가, 그는 생명체의 자연 발생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자연 발생설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진화론과 비슷한 내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자체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3].


우선 그의 철학적 면모를 한 번 들여다보자.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4원소라고 부르는) 흙, 공기, 불, 물의 각 원소는 영원히 지속하지만 각기 다른 비율로 혼합해 만물을 구성하며, 그 결과로 우리가 세계에서 두루 목격하는 변화하는 복합적 실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 원소의 상호작용에 결합을 상징하는 “사랑”과 분리를 나타내는 “다툼”이 관여하여 “우연과 필연”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 [A6]. 여기서 “우연과 필연”에 주목하자. 이것은 그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시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엠페도클레스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견해는 오늘날 진화론과 일정 부분 공유하는 점이 있다. 특히, 적자생존과 끊임없는 변화는 두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엠페도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이 세상에 무수한 종의 생명체가 온갖 형태로 널리 퍼져 있었다. 목 없는 머리, 어깨 없는 팔, 이마 없는 눈, 서로 떨어진 팔과 다리 등등. 서로 합쳐지길 바라는 이런 기괴한 생명체는 우연히 만날 때마다 서로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셀 수 없이 많은 손을 가진 생명체, 황소의 얼굴과 인간의 몸을 가진 생명체, 남성과 여성이 결합되었으나 불임인 자웅동체(雌雄同體)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가 과거 어느 순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A6, C2]. 이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적 조합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성공적이지 못한 형태는 번식에 실패해 결국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이었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 500?~B.C. 428?)는 아낙시메네스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아낙사고라스는 공기에는 식물의 씨앗이, 에테르(ether)에는 동물의 씨앗이 존재했다는 정도다 [3]. 더불어, 아낙사고라스에게 있어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은 정신(nous)으로, 오로지 정신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생명체가 된다. 따라서 정신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간과 동물은 아무 차이가 없으며, 이들을 구분 짓는 요인은 그들의 신체적 차이일 뿐이다 [A7].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제시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몇 가지 이론을 살펴봤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A1]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63~64쪽.
[A2] 같은 책. 65쪽.
[A3] 같은 책. 66쪽.
[A4] 같은 책. 81쪽.
[A5] 같은 책. 100~101쪽.
[A6] 같은 책. 102쪽.
[A7] 같은 책. 111~112쪽.
[B1] 『그리스 과학사상사: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36쪽.
[B2] 같은 책. 37쪽.
[B3] 같은 책. 45~46쪽.
[C1] 『왜 하필이면 그리스에서 과학이 탄생했을까(Eureka! The Birth of Science)』 앤드류 그레고리(Andrew Gregory) 지음 / 김상락 옮김. 몸과마음. 2003년. 135~136쪽.
[C2] 같은 책. 135~136쪽.
[1] “spontaneous generation”을 한국어로는 비슷한 뜻으로 해석되는 “abiogenesis”와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전자는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오늘날에는 폐기된 이론이지만, 후자는 “오늘날 생명체가 있기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생명체의 우연한 출현이 있었다”는 현대 생물학 이론이다.
[2] Anaximander. Wikipedia. [링크]
[3]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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