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마르크스 『Das Kapital Band I』을 읽던 중,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Moment"란 단어를 발견해,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이 "계기"가 아니라 고전역학의 "모멘트"가 아닐까라는 을 한 번 풀었다 [링크]. 그런데 EM님께서 이 부분이 헤겔 철학의 "계기(Moment)"와 관련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조언을 해주셔서 한 번 찾아보았다. 본문의 굵은 글씨와 따옴표는 내가 임의로 표시한 것이다.


계기(契機)[Moment]

어떤 것이 그것의 대립자와 통일되어 이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때 그것은 이 통일 내지 관계의 "계기"라고 말해진다. 이와 같은 관계 안에 있는 것은 대립자로 이행하고 그로부터 자기로 귀환하는 반성의 구조를 지니는 것이자 반성된 것(ein Reflektierts)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의해 그것은 또한 지양된 것으로 된다. 그것은 그 직접성을 폐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전면적으로 부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레에서는 무게라는 실재적인 면과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내지 선분이라는 관념적인 면이 결합되어 일정한 작용이 생겨나지만, 각자의 크기는 달라도 양자의 곱과 같다면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보적인 동시에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바, 지레를 성립시키는 계기라 불리는 것이다[『논리의 학』 5. 114].

― 야마구치 마사히로(山口祐弘)

『헤겔 사전』 도서출판 b. 20쪽.


직업병이라서일까? 지레에 비유해 '계기'란 헤겔 철학 용어를 설명하는 마지막 문단이 유달리 내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은 "힘의 모멘트"(the moment of force) 아니던가! 결국 내가 이해한 방향은 헤겔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으니, 어떤 것으로 번역해도 궁극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럴수가!! 역시 사람은 공부해야 한다 (먼산).


그런데 생각보다 "moment" 혹은 "momentum"의 개념 형성은 고대 그리스를 시작으로 해서 꽤 오랫동안 여러 논쟁을 거치면서 이루어져왔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지성사(history of thoughts)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흔히 과학혁명의 시기라 불리우는 17세기 무렵―16세기 무렵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우주론의 대전환을 제1차 혁명이라고 한다면 뉴턴에 의해 고전역학의 기틀이 완성된 이 시기, 즉 17세기를 제2차 과학혁명이 일어난 때라고 할 수 있다―이지만 [링크], 이 말의 어원은 대략 14세기 중엽부터이다 [링크]. 이런 과학사적 언어학적 흐름도 있거니와, 헤겔 본인도 뉴튼의 고전 역학을 꽤나 비판적으로 수용(?)했으니까 헤겔이 그의 철학에서 "Moment"란 용어를 쓰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당대 과학과 철학에 관련된 흑역사를 들춰보면 더 재미난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흑역사가 원래 재미있지. 암. 뉴턴의 흑역사, 누턴의 흑역사 ... 헤겔의 흑역사 ... 헤겔의 흑역사 ....


헤겔 사전에 나와 있는 뉴턴편을 한 번 살펴보자.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굵은 글씨체는 내가 임의로 한 것이다.


뉴턴 시대의 영국에서는 실험과학이 '뉴턴 역학'이라고도 불렸다. 특히 헤겔은 영국 경험론의 실험주의에서 기계론적인 사상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로크 그리고 뉴턴 등의 '실험과학' 학풍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다.
헤겔 자연철학은 절대관념론의 형이상학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뉴턴이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에 대한 '일반적 주해'에 덧붙인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 ..."는 주장과 형이상학적인 것은 물리학 안에서 어떠한 장소도 지니지 않는다는 선언은 헤겔 철학체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헤겔은 확실히 물리학에서의 지각과 경험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경험적 물리학이 자연의 범주들과 법칙에 따라서 사유한다는 정당한 권리까지는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의 일이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그 범주들과 법칙들을 다만 사유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반성개념의 이의성(die Amphibolie der Reflexionsbegriffe)을 논하고, 그러한 개념의 맞짝들로서 동일과 차이 및 일치와 반대 등의 대립을 들었다. 헤겔은 더 나아가 본지의 개념들을 모두 반성개념으로 간주하고 두 개념이 서로 다른 규정을 반조(반성)하는 관계에 있을 때 그 개념들을 반성규정들(Reflexionsbestimmungen) 또는 반성개념들(Reflexionsbegriffe)이라고 불렀다. 헤겔은 물리학(역학)이 그 개념들을 단초의 근거로 드러내기 전에 그 개념들을 드러내기에 이르는 반성과 추론이야말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뉴턴 물리학의 공적을 반성개념으로서의 힘들(인력·척력·구심력·원심력 등)에서 인정한다. "뉴턴은 현상들의 법칙 대신에 힘들의 법칙을 세운 점에서 과학을 반성의 입장으로 나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찬양되는 것이다(파올루치[Henry Paulucci]).

― 혼다 슈로(本多修郞)

『헤겔 사전』 도서출판 b. 76쪽.



뉴턴 본인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는 꽤나 신중하고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간혹 과학사를 읽다보면 뉴턴은 꽤나 음흉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물론 그의 편집증적이며 신비주의적인 면도 요즘 들어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이래나 저래나 반대자와 추종자가 극단적으로 많았다그렇게나 음흉(?!)하면서 말을 아끼는 뉴턴도 자신의 이론에 대해서는 한치 오차―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았는데, 그런 측면에서 경험적으로 얻게 되는 모든 현상의 아름다운 결론(혹은 방정식)에 "관념"이 끼어드는 것이 뉴튼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또 다른 글로 쓰기로 하고, 오늘 공부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이래나 저래나 EM님의 매우 유익한 코멘트 덕분에 공부할 꺼리가 또 생겼다. EM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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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형태, 계기 그리고 Moment  (0) 2012.05.24
Posted by metas :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의 분석은 처음부터 어려움이 따른다.

여기서 우리가 예를 든 두 종류의 상품인 아마포와 웃옷은 명백히 서로 다른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포는 웃옷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웃옷은 이 가치표현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전자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 후자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포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표시되고 있다. 즉 그것은 상대적 가치형태(relative Werform)로 존재한다. 웃옷은 등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등가형태(等價形態, Äquivalentform)로 존재한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의존해 있으면서 서로를 제약하는 불가분의 두 계기(Momente)이지만 동시에 동일한 가치표현의 상호배타적이고 대립적인 극단, 즉 가치표현의 양극이다. 이 양극은 가치표현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 두 개의 다른 상품으로 늘 나누어진다.


『자본 I-1』(도서출판 길), 104~105쪽.


모든 가치 형태의 비밀은 이 단순한 가치형태 속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이 가치형태 분석이 우리의 중요한 난관이다.

종류가 다른 두 상품 A와 B(우리의 예에서는 아마포와 저고리)는 여기서 분명히 두 개의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아마포는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로 표현하며, 저고리는 이러한 가치표현의 재료가 된다. 제1상품은 능동적 역할을 하며, 제2상품은 수동적 역할을 한다. 제1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표현한다. 바꾸어 말해, 그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로 있다. 제2상품은 등가(물)(: equivalent)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그 상품은 등가형태로 있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제약하는 불가분의 계기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호 배제하는 또는 상호 대립하는 극단들[즉, 가치표현의 두 극]이다. 이 두 극은 가치표현에 의해 상호관련맺는 상이한 상품들이 맡는다.

『자본론 I-상』(비봉 출판사), 61쪽.


Das Geheimnis aller Wertform steckt in dieser einfachen Wertform. Ihre Analyse bietet daher die eigentliche Schwierigkeit.

Es spielen hier zwei verschiedenartige Waren A und B, in unsrem Beispiel Leinwand und Rock, offenbar zwei verschiedene Rollen. Die Leinwand drückt ihren Wert aus im Rock, der Rock dient zum Material dieses Wertausdrucks. Die erste Ware spielt eine aktive, die zweite eine passive Rolle. Der Wert der ersten Ware ist als relativer Wert dargestellt, oder sie befindet sich in relativer Wertform. Die zweite Ware funktioniert als Äquivalent oder befindet sich in Äquivalentform.

Relative Wertform und Äquivalentform sind zueinander gehörige, sich wechselseitig bedingende, unzertrennliche Momente, aber zugleich einander ausschließende oder entgegengesetzte Extreme, d.h. Pole desselben Wertausdrucks; sie verteilen sich stets auf die verschiedenen Waren, die der Wertausdruck aufeinander bezieht.

『Das Kapital. Band I』 in Marxists Internet Archive (MIA) [링크]


The whole mystery of the form of value lies hidden in this simple form. Our real difficulty, therefore, is to analyse it.

Here two different kinds of commodities (in our example the linen and the coat) evidently play two different parts. The linen expresses its value in the coat; the coat serves as the material in which that value is expressed. The first commodity plays an active role, the second a passive one. The value of the first commodity is represented as relative value, in other words the commodity is in the relative form of value. The second commodity fulfils the function of equivalent, in other words it is in the equivalent form.

The relative form of value and the equivalent form are two inseparable moments, which belong to and mutually condition each other; but the same time, they are mutually exclusive or opposed extremes, i.e. poles of the expression of value. They are always divided up between the different commodities brought into relation with each other by that expression.

『Capital Volume I』 (Penguin Classics), pp. 139~140.


The whole mystery of the form of value lies hidden in this elementary form. Its analysis, therefore, is our real difficulty.

Here two different kinds of commodities (in our example the linen and the coat), evidently play two different parts. The linen expresses its value in the coat; the coat serves as the material in which that value is expressed. The former plays an active, the latter a passive, part. The value of the linen is represented as relative value, or appears in relative form. The coat officiates as equivalent, or appears in equivalent form.

The relative form and the equivalent form are two intimately connected, mutually dependent and inseparable elements of the expression of value; but, at the same time, are mutually exclusive, antagonistic extremes – i.e., poles of the same expression. They are allotted respectively to the two different commodities brought into relation by that expression.

『Capital Volume I』 in MIA [링크]


자본론 독일어본과 영어 번역본 두 가지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 두 가지를 비교 및 공부하던 중에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바로 독일어 'Moment'에 대한 번역의 차이다. 길판과 비봉판은 이것을 '계기'로 번역했지만, 펭귄판은 독일어본과 동일하게 'moments'로, 조넨샤인판(『Capital Volume I』 in MIA)에서는 "elements of the expression of value", 즉 "가치표현의 원소"로 길게 풀어서 번역했다. 그렇다면 누구의 번역이 맞을까?

우선 우리의 관심사인 'Moment'가 놓여 있는 독일어 문장을 한 번 살펴보자. [길판 혹은 비봉판 둘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쓰면 좋을 것 같지만 둘 다 번역에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독일어를 다시 번역했다. 번역에 사용한 문장은 위 인용문 가운데 『Das Kapital. Band I』에 있는 굵은 글씨체로 표시된 부분이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필요로 하고 상호 의존적인 불가분의 Moment지만, 또한 상호 배타적이며 또는 배제하는 극단, 즉 동일한 가치표현의 극으로, 그것은 항상 가치표현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다른 상품으로 퍼져나간다." (Relative Wertform und Äquivalentform sind zueinander gehörige, sich wechselseitig bedingende, unzertrennliche Momente, aber zugleich einander ausschließende oder entgegengesetzte Extreme, d.h. Pole desselben Wertausdrucks; sie verteilen sich stets auf die verschiedenen Waren, die der Wertausdruck aufeinander bezieht.) [길판의 "서로 제약하는"이란 풀이는 오역인데, 과거분사형 'bedingende'의 원형인 'bedingen'은 영어로 'to necessiate', 'to cause', 또는 'to presuppose'를 뜻하기 때문이다.]

독일어 'Moment'는 영어 'moment'와 동일한 뜻이며, 한국어로는 '순간', '한때', '시기/기회', '중요성', '계기(契機)', '(통계에서)적률(積率)', '(역학에서)모멘트' 등의 다양한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길판과 비봉판에서 독일어 'Moment'를 번역할 때 선택한 '계기(契機) '란 단어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바뀌게 되는 원인이나 기회'를 뜻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독일어 원전에서 'Moment'가 '계기'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면,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호 의존적이며 떼어낼 수 없는 원인이자 기회이며 동시에 상호 배타적이며 또는 배제하는 가치표현으로 맺어진 극이다."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데, 그것이 서로에게 원인이자 기회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럽다. 사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상품 사이의 가치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등식의 항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학에서 등식이라는 것은 종속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등호(=)를 기준으로 서로의 위치를 바꿔도 항상 변함이 없는 대등한 입장을 나타낸다. 더불어 이러한 등호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한 항[즉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은 항상 등치되어야만 하는 필연적 존재가 된다. 따라서 앞에서 보인 것처럼 'Moment'를 '계기'로 번역해서는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의 대등한 관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Moment'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르크스는 과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특히 과학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과 열정은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에 자주 묘사되었으며, 실제로 마르크스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신을 살펴보면 당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대해 그가 상당한 식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말년에 그의 가치론을 수식으로 일반화해 나타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수학 연구에도 몰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러한 마르크스의 지적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고 난 후에야 우리는 'Moment'가 나타내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문제의 독일어 문장으로 돌아가자. 이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동등한 조건에서) 서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상호의존적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그 어떤 것"이며, 동시에 "상호 배타적이며 배제하는 극단(Extreme)이자 극(Pole)"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가치표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상호 의존성과 배타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양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Moment'의 성격이 규정되는데, 'Moment'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 중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바로 물리학(혹은 고전역학)이다.

'모멘트(moment)'는 물리학(혹은 고전역학)에서 "어떤 종류의 물리적 효과가 하나의 물리량뿐만 아니라 그 물리량의 분포상태에 따라서 정해질 때에 정의되는 양" 또는 "회전운동에서 물체를 회전시키는 힘의 크기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양" 등을 설명하기 위해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나는 전공이 생물학이라 물리를 잘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 내에서 '모멘트'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예를 들어 실로 연결된 동일한 질량의 두 물체 A와 B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양 극에 있는 두 물체는 같은 방향으로, 즉 북쪽이면 북쪽으로 남쪽이면 남쪽으로 움직여보자. 만약 A와 B가 동일한 힘으로 움직인다면 두 물체는 저항력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둘 중 어느 하나가 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일정 지점까지는 직선운동을 나타내겠지만, 그 이후에는 원운동을 하면서 임의의 방향으로 두 물체 A와 B는 한 덩어리가 되어 직선운동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두 물체 A와 B의 질량의 차이, 그리고 최초 운동 방향의 차이 등여러 가지 변인에 따라 하나로 연결된 두 물체 A와 B는 다양한 운동 양상을 보일 수 있는데, 이러한 운동이 가지는 상대적 운동 총량을 모멘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두 물체 A와 B가 어떻게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가 이다. 만일 두 물체가 실 등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두 물체의 운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의존성도 없을뿐더러 배타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실로 연결된 두 물체는 서로의 운동 방향 혹은 운동성이 상호 영향을 받으며 운동 방향이 정반대인 경우에는 배타적이기까지 하며, 어떤 상황에서는 힘의 합력이 제로가 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두 물체 A와 B 사이에는 상대성이 존재하며, 이러한 상대성은 두 물체를 연결하는 실을 통해 표현된다.

상대적인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용가치가 상대적인 가치형태가 된다면, 그 사용가치는 자신을 등가형태로 놓을 수 없고 대신 그 위치에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가 놓여져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이러한 가치관계는 서로에게 거울과 같은 가치표현을 통해 매개된다. 이렇게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실에 묶인 채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는 두 물체 A와 B의 움직임처럼, 가치표현이라 불리는 실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상대적인 효과, 즉 모멘트를 유발하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Moment'를 이 부분에 도입한 것이 아닐까? 물리학에 대한 아주 짧은 식견으로 'Moment'에 대해 설명해봤는데, 이게 실제로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내가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그의 과학에 대한 사랑을 찾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 같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장담이나 확신은 못하지만 말이다.


PS. 혹시라도 이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모멘트 일반에 대한 나의 이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내게 정확하고 올바른 개념을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









Posted by metas :
요새 졸업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바쁘다. 문제는 연구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나질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일수록 연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을 읽고자 하는 욕구만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다 (아, 연구할 시간도 빠듯한데 일에 매진하지 않고 엉뚱한 것(?)에만 전념하고 있으니, 이번 생은 망한 것임이 틀림없다).

큰마음 먹고 책 세 권을 모 온라인 서점에서 샀다. 그것도(!) 3개월 무이자 할부로 말이다 (돈 없다고 투덜대면서 돈 안 되는 데에는 펑펑 잘만 쓰지요). 내 전공―분자세포생물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가운데에 마르크스주의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만큼 마르크스의 사상을 향유하는 것과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정치·사회의 현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꿈은 (아랫글에서 언급한 데이비드 하비의 예처럼) 생물학―특히 진화생물학―과 마르크스주의를 접목해 두 이론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냉철한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인데 그리될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니 이번 생은 정말 망한 것 같다.

구매한 책은 다음과 같다. 성공회대 석좌교수인 김수행 선생과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자 경원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인 김진엽 씨가 공동번역한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금융자본론(Das Finanzkapital)>,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가끔 실없는 소리도 마구마구 늘어놓으시는) 강신준 선생이 번역한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맑스 「자본」 강의(A Companion to Marx's Capital)> 그리고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이자 부소장인 조현연 씨가 저술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공부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나처럼) 마르크스주의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bourgeois society)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르크스가 살았던 1800년대 중반과 후반은 산업 자본주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던 시기로 애덤 스미스(Adam Smith)로 시작해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hardo)에서 정점에 다다른 고전파 자본주의 경제학이 시대의 주류를 차지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듯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인'의 상호작용과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경제사회에서 산업과 사회 전체의 부는 놀라우리만치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의 부가 증가하면 할수록 무산자의 수는 그에 비례해 늘고 있었다. 결국, 증가한 사회의 부는 개인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일부 계층―즉 부르주아 계급―으로만 집중하고 있었다.

인류역사의 흐름 속에서 '필연적 실체'로 자리매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봉건사회의 귀족을 대신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했고, 부르주아는 자본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속박했다. '자본을 연구하자'. 마르크스의 이러한 신념은 유물론(materialism),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하부구조(substructure), 계급이론(class theory)과 계급투쟁(class struggle)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으로, 이를 위해 그는 최초에는 자본(capital), 토지재산(landed property), 임금노동(wage-labor), 국가(the State), 대외거래(foreign transactions),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라는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여섯 권의 책을 모두 쓸 시간을 갖지 못해 자본·토지재산·임금노동에 관한 연구 중 자본의 '일반적 성격'에 관한 부분을 <자본론> 세 권에 남겼다. 그 <자본론> 세 권 중에서도 마르크스가 직접 저술한 것은 제1권이고 나머지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남긴 자료를 토대로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마르크스가 죽은 뒤 정리해 발간한 것이다. 이것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엥겔스도 곧 죽음을 맞이했고, 제4권은 훗날 '마르크스주의 교황(좀 네거티브한 의미가 담겨 있다)'이라 일컬어졌던 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가 <잉여가치학설사(Theories of surplus-value)>란 제목으로 따로 정리해 출판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구조(structure)와 동학(dynamics)을 '이상적 평균(ideal average)'에서 해명하기 위해 자본, 임금노동 그리고 토지재산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거대한 세 계급이 자본가 계급, 노동자 계급 그리고 토지소유자 계급이라는 것에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형태의 자본(예: 독점자본)이나 임금노동자 계급의 투쟁(예: 노동조합) 그리고 자본주의적 토지소유 이외의 역사적 형태(예: 소농)에 관해서는 깊이 서술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론>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속성을 자세히 분석한 순수 연구 학술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이런 목적으로 저술했다고 해서 그의 투쟁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투쟁은 그의 다른 저술(예를 들어, <공산당 선언>, <고타강령 초안 비판>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다만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학자적 면모가 유달리 두드러진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쉬운 점이라면 마르크스가 생전에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인데―물론 현재 마르크스-엥겔스의 메모 등을 포함한 모든 문헌을 총정리해 재평가하는 MEGA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니 마르크스가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연구했는지는 훗날 밝혀지리라―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완수하지 못한 부분―국가와 세계경제―을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연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서평대로 이 책이 <자본론> 제4권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특히 <자본론> 제4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이미 카우츠키가 마르크스의 연구를 정리해서 출판했으니―굳이 <자본론> 제4권이라는 별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힐퍼딩의 이론은 레닌(Vladimir Lenin)이 '제국주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하니, 그의 <제국주의(Imperialism)>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읽어야 할 책이 자꾸만 늘어나니 너무 슬프다).

  

데이비드 하비는 지리학자로서 마르크스의 자본 비판을 도시로 확장시킨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구소련과 중국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사실 이들 사회주의 국가가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일단은 유사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자―를 참조하며 사상을 공부했던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지리학적 사유 속에서 마르크스의 분석을 재평가한 학자라고 한다(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소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데이비드 하비 : 공간의 정치경제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지리학자라는 이력이 매우 흥미로운데―따지고 보면 힐퍼딩도 소아과 의사였음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했으니, 원래 이 바닥이 이런가 보다―그가 1970년대 초부터 시작해서 약 40여 년간 공부해온 <자본론> 강독과 2007년도부터 시작한 강의 녹취록(데이비드 하비의 인터넷 웹 사이트 http://www.davidharvey.org에서 강의을 볼 수 있다)을 바탕으로 <맑스 자본 강의>라는 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세간의 평이 좋기도 하고(적어도 데이비드 하비 본인에 대한 평은 꽤 우호적인 것 같다), 그동안 공부한 마크그스주의를 정리할 겸해서 한 번 읽어보고자 마음먹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세 권 중 오직 제1권에 해당하는 내용만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뭐 문제 될 것은 없다. <자본론> 제1권만이라도 다시 읽어보는 게 다행이지. 여담이지만 <자본론>은 정말 어렵다. 어렵다는 게 말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읽을 때는 '아하, 그렇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뒤돌아서면 '어, 그러니까 그게 뭐였지?' 때문에 어렵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내가 멍청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책 중의 하나인)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는 그토록 출간되길 기다렸음에도 막상 책이 출간된 2009년에는 읽어볼 생각도 안 하다가, 인제야 읽고자 마음먹은 책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런 책은 인생에서도 그리고 정치적 입장에서도 제일 힘든 시기에만 꼭 생각난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아니, 필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
이 책은 진보 정당 운동의 역사적 궤적을 통해 한국 현대 정치를 조망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현대 정치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이 추구해 온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들은 어떤 이념과 가치 체계를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그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은 어떠했고 그에 대해 대중은 어떤 판단과 선택을 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한국 진보 정당 운동이 왜 실패했는지를 말 그대로 개인적 차원에서 조망하고 싶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역사적 기간은 해방 이후부터 시작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사태까지지만, 그때의 문제의식이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과거 '진보 정당 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본원적 문제―운동권 혹은 좌파 운동 내부의 이데올로기 부재와 사회주의 운동의 실종, 그리고 대중 일반과의 유리―를 아직도 끌어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내가 가진 지극히 개인적 판단이지만,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진보 정당 운동의 문제점이라는 것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통합연대가 삼당합당(과거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삼당합당을 빗대어 비꼬는 이들도 있다)을 결정하기로 한만큼 이들이 세운 정당이 과연 진보 정당의 길을 갈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첨병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더불어 홍세화 선생을 새로운 대표로 맞이한 진보신당의 앞날도 더 두고 볼 일이고. 물론 현실이 암울한 만큼 다가올 미래도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절실히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를 읽는다는 건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연구는 연구고 정치는 정치니 어서 빨리 읽어보자.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책을 읽자, 책을!







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