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1년 즈음 안철수 교수(이하 안 교수)와 박경철 씨는 여러 곳에서 청춘콘서트를 진행했다. 콘서트의 주 대상은 한국사회의 청년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연령층이 이 시대의 귀감(龜鑑)인 안 교수에게 지혜(智慧)와 조언(助言)을 얻기 위해 참석했다. 본인이 서식(?)하고 있는 포항공대에서도 2011년 4월 26일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안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는데, 강연에 참석한 지인(知人)의 말을 빌리자면 “기업가 정신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었고, 주로 안 교수 자신이 겪어온 의사로서의 인생,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와 안철수 연구소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얻은 CEO로서의 경험, 그리고 KAIST 등지에서 얻은 교육자로서의 느낌 혹은 배운 점 등을 자신만의 진솔(眞率)한 방식으로 풀어나갔다”라고 한다. 물론 이것은 지인의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듣고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안 교수는 청춘콘서트 및 이와 유사한 형태의 다양한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대한 멘토(mentor)”라는 칭호(稱號)에 걸맞은 교양과 친근함이 가득한 화법(話法)으로 많은 사람에게 주옥(珠玉)같은 화두를 던졌다.

그런데, 최근 안 교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다. 그 중 일부는 그의 반대파가 안 교수의 명성(名聲)에 흠집내려는 의도가 있지만, 어떤 것은 그의 최근 발언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것도 있는고, 이것과는 별개로 안 교수 자신의 처신(處身) 혹은 안이한 대응(對應)이 원인이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본격적으로 파헤쳐보자.

때는 2011년. 장소는 가톨릭 상지대학교. 이곳에서 안 교수는 (분위기는 시골의사이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모든 쁘띠 부르주아[petit bourgeois]의 로망인) 주식박사(株式博士) 박경철 씨와 함께 <세계적인 석학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하는 청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콘서트를 개최했다 [1] [2].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별로 관심 없다. 그렇지만 그 강연에서 유달리 나의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안 교수와 박경철 씨 바로 뒤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문구(文句)로 강연의 제목이기도 한 “세계적인 석학 안철수 교수”라는 표현이다 [그림 1]. 안 교수에게 ‘세계적인 석학’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온당한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그림 1. 가톨릭 상지대에서 열린 안 교수와 박경철 씨의 대담. [사진출처: 하리와 솔뫼 블로그]



여기서 ‘석학’의 뜻을 살펴보자. 석학(碩學)은 "학식이 높고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3]. 그러니까 ‘석학’ 정도의 직함(職銜)은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담았고 일련의 연구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만한 두드러진 업적을 이룩한 ‘위대한 학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학문적 명예(名譽)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 회사 혹은 관공서 등 공식적 기관에 단순히 적(籍)을 뒀다고 해서, 혹은 아무리 세상에 이로운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석학’이란 칭호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폄하(貶下)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분야에서 나름의 명예로운 호칭이 존재할 것이다) 남들(특히 동종학문 종사자)이 인정할만한 학문적인 업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뛰어나고 현명한 자라 할지라도 ‘석학’이란 칭호를 거머쥘 수 없다. ‘세계적인’과 같은 수식어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의 동료 학자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역시 ‘세계적인 석학’이란 명예로운 직함은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를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부르지만, 단순히 그가 사회적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혹은 여러 분야에서 주옥같은 책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리 부르진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석학’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언어학(言語學, philology)에서 학문적으로 지대한 공헌(貢獻)을 했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의 언어학 연구는 많은 동료학자에게 수없이 인용된다 [4].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며,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이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김수행 선생은 박영호, 정운영 교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1세대로 한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이 설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왕성한 연구 및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5]. 최장집 선생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진보적 정치학자인 최장집 선생은 의회주의 정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고 그의 학문적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최근에는 막스 베버(Marx Weber)를 연구하는 왕성함을 보이고 있다 [6]. 마지막으로 김빛내리 교수의 예를 살펴보자. 그도 앞의 두 노(老)학자와 마찬가지로 micoRNA라는 생물학의 한 분과(分科)에서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냈으며, 최근에는 그의 연구성과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석학’이라는 칭호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학문적 업적을 세우고 있다 [7]. 이처럼 ‘석학’으로 인정받는 인물은 한결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학문의 진보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림 2].


그림 2. 석학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엄 촘스키, 김수행 선생, 김빛내리 교수, 최장집 선생. 이와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서울대, 경향신문]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안 교수에게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칭호는 과연 온당한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안 교수가 과연 자신의 분야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 확인해본다면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안 교수의 학문적 업적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안 교수가 참여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논문은 단 세 편뿐인 것으로 알려졌다(안 교수를 흠집 내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는 수꼴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89]. 물론 “학문적인 공헌이 있어야만 꼭 세계적인 석학이란 칭호가 붙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박할 수도 있다 [10]. “안 교수 덕분에 한국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발전이 있었는데 세계적인 석학이란 칭호를 붙이는 것이 뭐가 문제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안 교수가 설립한 안철수 연구소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연구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것도 최근에는 말이 많다 [11]. 조금 더 비약해서 예를 든다면 안 교수를 존경하는 어떤 인물은 이런 식으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수 같은 존경 받는 사람이 무려 서울대에서 교수도 재직 중인데, 그런 훌륭한 사람을 석학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굴 석학이라 불러야 하느냐?” 물론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진짜 존재한다면 이건 완전한 억지 그 자체다.

그러나 애석한 일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학문적 성과 없이 단지 명망(名望)이 있거나, 많은 이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또는 사회적 공헌이 크다 해서 특정인에게 ‘석학’이란 칭호를 아무렇지 않게 붙이진 않는다. 안 교수가 한국에서 초창기 백신 프로그램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안 교수에게 ‘석학’이란 칭호를 붙이게 할만한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억지로 갖다 붙인다면 우리는 빌 게이츠(Bill Gates)나 스티브 잡스(Steve Jobs) 같은 사람에게도 마땅히 ‘석학’이란 칭호를 붙여야 하며, 심지어는 이건희 같은 악덕 자본가에게도 ‘석학’이란 칭호를 붙여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희를 언급한 것은 개그나 다름없다. 아니면 악몽이거나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 강연에서는 안 교수에게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칭호를 붙였을까? 그리고 안 교수는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명예’를 과감히 거절하지 않았을까? 우선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대단한 직함이 안 교수 본인의 의사(意思)와는 상관없이 주최 측이 더 많은 청중(聽衆)을 끌어들이려는 방편으로 안 교수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안 교수 본인도 “좋은 게 좋은 거다”라든지 혹은 “마음에 안 들지만 주최 측의 체면을 구기는 짓은 할 수 없다”란 생각으로 잠자코 입 다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부적절한 직함의 사용이 상지대에서만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라고 해도 부적절한 직함의 사용은 결국 청중을 기만하는 행위이며, 궁극적으로는 사기행위(詐欺行爲)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안 교수 본인이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면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기만(欺瞞)은 한사코 막았어야 했다 [12]. 그리고 이런 일이 이번 한 번뿐만은 아니었다. 2010년 3월 16일 오후 3시 조선대학교 자연과학대학 4층에서 열린 청춘콘서트를 포함한 몇 차례의 강연에서도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13] [그림 3].



그림 3. 조선대에서 개최된 안 교수와 박경철 씨의 대담 중 한 장면. [사진 출처: 서울포스트]



더 큰 문제는 안 교수에 대한 이런 기만에 대해 소위 진보언론이라 일컫는 쪽에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 사실상 무관심이나 외면에 가깝다. 오로지 안 교수의 명성(名聲)을 흠집 내기에 바쁜 극우보수(내지 수꼴)만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진실로 이런 일이 잘못된 판단과 근거 없는 맹목적 믿음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면 누군가 (특히 진보진영에서) 나서서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현실에서 안 교수의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기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수꼴 뿐이다. 욕을 먹는 것이 두려운 것인가? 아니면 안철수라는 보수층에 대한 강력한 대항마(對抗馬)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안 교수에게 어떤 판타지를 품고 있는 것인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내가 지금 상황에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논란의 중심에서 적극 해명해야 할 당사자(즉 안 교수)는 함구(緘口)하고 있을 뿐이고 [15], 친 안 교수 성향을 보이는 진보언론은 이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진보매체라는 곳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란 손발이 오그라드는 직함을 아무렇지 않게 안 교수에게 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안 교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나를 이런 식으로 비난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이런 수꼴이나 하는 패악질을 소위 좌파라는 당신이 왜 들쑤셔서 분란(紛亂)을 일으키느냐” 혹은 “이런 식의 당치도 않은 흠집 내기는 안 교수의 명성과 도덕성을 깎아내리는 행동이며, 종국엔 수꼴 좋은 일만 해주는 격이다. 그러니 좋은 말할 때 그만둬라”라는 파쇼적 발언으로 나에게 협박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 마치 팔이 안으로 굽듯이 우리 편 일이라면 그릇된 진영논리(陣營論理)는 당장은 훈훈한 미담(美談)인 양 인구에 회자(膾炙)하겠지만, 혹은 그런 식으로 논의를 회피하거나 그냥 모른 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언젠간 피할 수 없는 반작용으로 우리(혹은 안 교수에게 열광하는 진영)에게 돌아올 것이다. 

어쨌거나 2012년 들어서 안 교수와 관련된 촌극(寸劇)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지만, 안 교수에게서 어떠한 해명도 나오지 않는 지금 강용석을 비롯한 소아병적인 수꼴의 난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 교수 본인이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 진정한 양심인 혹은 지식인으로 자신을 내세우고 싶다면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명예스러운 직함의 분별없는 사용이라는,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것에서조차도 상식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석학’이란 소리 한 번 듣기 위해 돈도 안 되는 보잘것없는 연구에 자신의 일생을 갖다 바치는 한국의 수많은 '연구 덕후'를 위해서라도 그런 어처구니 없는 행동은 가급적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내 이야기는 절대로 전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걱정(?)에 내 마음은 공허함만 가득하다.

추신 #1: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도 쓸데없는 일에 피 같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아, 안철수.
추신 #2:
앞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진보진영은 자기편 일이라고 숨기거나 외면하지 말고 제발 비판할 것은 비판해라. 내가 언급한 이런 일이 가당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것이 하나 둘 쌓이다보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추신 #3:
글 말미에 '연구 덕후'에 관해 언급했는데, 연구 덕후들은 돈도 안 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는 안 교수가 거의 거저 먹기식으로 획득한 "세계적인 석학"이란 명예를 획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안철수 그가 정말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식으로 저 대단한 직함을 순전히 날로 먹는다면 한국의 연구 덕후들은 정말로 절망과 상실감에 슬퍼할지도 모른다. (농담이다).
추신 #4:
이런 글을 썼다고 나를 수구꼴통으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 것 같기에 노파심에서 한 마디 하겠다. 나는 정치적으로 좌파, 즉 사회주의자다. 물론 이렇게 내 정체성을 밝힌다고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_-;;).



참고
[1] 세계적인 석학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하는 청년의 미래 특별대담. 하리와 솔뫼 블로그. [링크]
[2] 강용석, '찰스의 거짓말' 시리즈로 안철수 '공격'. 머니투데이. [링크] : 머니투데이에서 송고하고 야후코리아(Yahoo! Korea)에 올라온 이 기사는 요새 (조소적 의미에서) 개그맨보다도 더 웃긴 이제는 끈이 떨어지다 못해 더는 정치적으로도 재기 불가능한 강용석의 안 교수 씹기를 다루고 있다. 아무리 개연성 있는 이야기도 개망나니가 설치면 건설적인 비판이 될 수도 있는 이슈도 온갖 악의(惡意)가 넘쳐나는 시기 어린 질투(嫉妬)로 변하고 만다.
[3] ‘석학’을 영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a man of great learning”, “an erudite scholar”, 혹은 “a great scholar” 석학이 누구에게 주어지는 칭호인지 감이 오는가?
[4] 노엄 촘스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링크] : 영어가 좀 된다면 위키피디아 영어판도 좋다. [링크]
[5] 김수행.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링크] 김수행 선생의 <자본론>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마르크스 저술의 번역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내는 몇 안 되는 노(老)학자이다.
[6] 최장집.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링크]
[7] 김빛내리 교수 초청 제 62회 한림석학강연 개최. 한림원. [링크] 김빛내리 교수의 연구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당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링크]
[8] 확인한 바로는 안 교수가 참여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1> Kim KH, Ahn CS, Kim WG. Relationship of Plasma Potassium and Hydrogen Ion Concentrations in Acidosis-Induced Hyperkalemia and Hyperkalemia-induced Acidosis. The Seoul Journal of Medicine, Vol 34 No 2, June 1993. <2> Han J, Leem C, Ahn C, So I, Kim E, Ho W, Earm YE. Effect of Cyclic GMP on the Calcium Current in Rabbit Ventricular Myocytes. The Korean Journal of Physiology, Vol 27 No 2, Dec 1993. <3> 안철수.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 Journal of the Korean Medical Association (대한의학협회지), Vol 36 No 12, Dec 1993.” 이 정보는 불행히도 강용석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링크]
[9] 안 교수가 재직 중인 디지털융합정보학과의 홈페이지를 살펴봐도 안 교수의 연구업적을 가늠할 수 있는 논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게재되어 있지 않고, 오직 그가 저술한 책에 대한 정보만 가득할 뿐이다. [링크]
[10]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학문적 업적이 있어야만 꼭 교수가 되고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도 할 수 있다. 나도 꼭 학문적 업적이 있어야지만 교수가 되고 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학문 외적인 부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분명 존재하며 그런 면이 대학교육에 반영되었을 때 또 다른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내가 논의하고 있는 부분은 그것이 아니다. 이 글은 “안철수 개인이 교수가 되는 것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 아닌, 그에게는 과분한 칭호를 아무런 맥락 없이 갖다 붙이는 행위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11] 세계 백신업계의 2류, 안철수 연구소의 현주소. SkepticalLeft. [링크] : 개인적으로 스렙에서 논의되는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사실이든 혹은 거짓이든 간에) 이런 논의와 의혹에 대해 소위 진보언론이란 곳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듯하다. 아마 안철수 개인에 대한 무한한 믿음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이외에 다른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요새 안철수를 띄우는 것을 보면 막연히 ‘황우석’이 떠오를 뿐이다. 이 기사는 <미디어 워치>같은 황색언론에서도 다루어졌는데, <미디어 워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변희재가 발행인으로 등록된 언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12] 안철수, 공익 앞장서는 상식·참여·실천주의자. 파이낸셜 뉴스. [링크] : 잘 알려있듯이 안 교수는 여러 매체 및 강연을 통해서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눠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13] 세계적인 석학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의 리더십 대담. [링크]
[14] 몇 번을 검색해봤지만, 진보매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하지 않는다. 사실 진보매체에서 나오는 안 교수에 대한 평은 ‘호평(好評)’ 일색이다. 혹시라도 안 교수를 비판한 진보매체 혹은 기사가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시길 바란다.
[15] 애석하게도 이런 논란에 대해 안 교수는 아직도 잠잠하다. 언제 해명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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