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stone tool, 石器)와 같은 정교한 도구 제작과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은 초기 호미니드(Hominid) 진화와 고유한 문화 발전에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양상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속(genus, 屬)과 같은 멸종한 호미니드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호모 아파렌시스(Homo aparensis),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하이델베르크인(Homo heidelbergensis), 네안데르탈인(Neandertal 또는 Homo neanderthalensis), 데니소바인(Denisovan) 그리고 고대 호모 사피엔스(archaic Homo sapiens) 등과 같은 고대 인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 불리는 현생 인류의 탄생에서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진화사(進化史)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호미니드 역사에 있어서 도구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직립 보행(bipedalism, 直立步行)으로 해방된 두 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점점 커지는 뇌 용적량도 역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동반 상승효과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림 1. (왼쪽) 이집트 독수리(Neophron vulture 또는 Egyptian Vulture) [출처: 위키피디아], (가운데) 느시아 제비류 가운데 Cariama cristata라는 학명의 동물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흰목꼬리감기원숭이(capuchin monkey) [출처: 위키피디아].



도구 사용이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중요했음은 분명하지만, 도구 사용이 꼭 호미니드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 독수리(Neophron vulture 또는 Egyptian Vulture)는 타조 알 같은 크기가 매우 큰 알(egg)을 깨기 위해 (보통 둥근 모양의) 조약돌을 부리에 물고 알에 톡톡 내리치는 과정을 알이 깨질 때까지 반복한다 [5] [그림 1, 왼쪽].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에서 서식하는 검은 다리 세리에마(Red-legged Seriama, 학명: Chunga burmeistrei) 새 같은 느시아 제비(Cariama)류는 먹이인 뱀, 도마뱀, 개구리, 새, 곤충 등을 잡아다 통째로 삼키기 쉽게 하려고 바위에다가 계속 내리친다 [6] [그림 1, 가운데].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전역에 분포하는 흰목꼬리감기원숭이와 같은 세부스 속 (genus Cebus) 원숭이는 먹이인 견과류(堅果類)나 게(crabs) 그리고 조개류 등의 단단한 껍질을 깰 때 돌을 사용한다 [7] [그림 1, 오른쪽]. 이러한 사례 외에도 많은 생명체가 먹이를 잡아먹거나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주변에 있는 물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 그러므로 단순히 도구만 사용하는 것이라면 호미니드와 다른 생명체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무방하다. 그러나 도구의 다양성과 복잡성 그리고 상황에 적합한 새로운 도구를 제작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창조성 등을 고려한다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명체도 호미니드를 따라올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림 2. (왼쪽) 침팬지(chimpanzee, 학명: Pan troglodytes)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보노보 원숭이(bonobo, 학명: Pan paniscus)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현생 인류와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연관계에 있는 자매군(sister group, 姉妹群)이며 판 속(genus Pan)에 속하는 유인원(類人猿)인 침팬지(chimpanzee, 학명: Pan troglodytes)와 보노보 원숭이(bonobo, 학명: Pan paniscus)는 어떨까? [그림 2] 약 6백50만 년 전에 현생 인류와의 공통 조상(common ancestor, 共通祖上)에서 분지(divergence, 分枝)한 침팬지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먼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Côte d´Ivoire)에 위치한 고대 침팬지의 유적에서 4천3백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했음을 뜻한다 [8, 9]. 실제로 침팬지는 흰개미를 잡아먹을 때 커다란 막대기를 사용해 땅을 판 다음 작은 막대기로 흰개미를 사냥한다고 알려졌으며, 최근에 아프리카 세네갈(Senegal)에서 서식하는 침팬지가 이빨로 날카롭게 다듬은 창으로 부시베이비(bushbaby)라는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9]. 약 2백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에서 분지한 보노보 원숭이도 감자나 고구마 동과 같은 영양 줄기 식물을 파먹을 때 나뭇가지를 사용하며, 견과류 같은 단단한 먹이를 부술 때도 돌 위에 견과류를 올려놓고 다른 돌로 내리치기도 한다 [1]. 도구 사용의 다양성과 복잡성 측면에서 이들 두 영장류(靈長類)가 앞에서 언급한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두 영장류가 고대 호미니드의 다른 점은 바로 창조적으로 도구를 제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적어도 그런 모습은 지금까지 관찰된 적이 없다.



 

그림 3. (왼쪽) 보노보 원숭이 칸지(Kanzi)가 석기를 제작하는 모습. (오른쪽) 고대 인류가 사용한 구석기 유물. 올도완 시대의 것이다 [4] [출처: Annual Reviews of Anthropology].



구석기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palaeolithic archaeologist)와 인지 심리학자(cognitive psychologist)로 구성된 협동 연구팀은 칸지(Kanzi)란 이름의 12살 된 수컷 보노보 원숭이에게 석기 제작법과 사용법을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간 가르쳤다 [3]. 이 연구의 주요 목적은 칸지가 돌을 깨는 방법과 칸지가 만든 석기의 형태를 조사 및 연구하는 것이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칸지의 석기 제작 능력은 점점 나아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칸지가 만든 석기에 고대 호미니드의 석기 유물과 같은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3]. 하지만 이후에도 연구는 계속되었고 보노보 원숭이 칸지는 계속해서 석기 제작을 연마(硏磨)했다. 이 당시 판-바니샤(Pan-Banisha)라는 암컷 침팬지도 같이 교육받았고 칸지와 함께 이번 실험에 참여했으며 그 결과도 같은 논문에 언급되었지만, 필자의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2012년 현재, 30살이 된 칸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 사이에 석기 제작법만 배운 게 아니라 언어 교육도 같이 받았다 (인지 심리학자가 참여한 연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 보자. 1999년 당시 칸지는 밧줄에 매달리거나, 상자에 또는 가죽 안에 담긴 먹이를 획득하기 위해 자신이 배운 석기 제작법으로 도구를 제작했다 [1, 3]. 그런데 칸지가 해결한 문제와 같은 상황은 칸지가 포획되기 전에 살았던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연구팀은 될 수 있으면 칸지가 과거 살았던 서식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통나무 상자 안에 먹이를 넣어 쉽게 열지 못하도록 닫아놓거나 다양한 상태의 흙더미 아래에 먹이를 숨겼다. 물론, 연구팀은 먹이를 숨기기 전에 그곳에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안에서 먹이를 빼내라든지 하는 그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다만 칸지가 하는 행동을 관찰할 뿐이었다 [1].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칸지는 연구팀이 숨겨 놓은 먹이를 빼내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통나무 안에 숨겨진 먹이를 빼내려는 과정에서 칸지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 (1) 통나무를 커다란 돌멩이로 내리쳤다. (2) 통나무를 시멘트 바닥 또는 바위 위에다 내리쳤다. (3) 막대기를 통나무 상자 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4) 석기를 제작해 그것으로 드릴처럼 구멍을 뚫거나(drilling), 송곳처럼 찍어 내리거나(wedging), 깎아 내리거나(chopping), 긁거나(scraping), 자르는(cutting) 모습을 보였다. 최후에는 (5) 온 힘을 다해 헐거워진 통나무 상자를 열어 먹이를 꺼냈다 [1]. 통나무 상자 안에서 먹이 꺼내기 실험을 24번 반복하면서 칸지의 문제 해결 능력은 점점 나아졌다. 그 과정 중에 칸지는 무려 156개에 달하는 여러 가지 석기 도구를 제작했는데, 그 가운데 60여 개에 해당하는 것이 어떤 특정 목적(예를 들면, 구멍 뚫기, 긁기, 틈 사이로 집어넣기, 자르기 등)에 사용한 석기 도구였다 [1].



그림 4. 보노보 원숭이 칸지가 통나무 상자를 열기 위해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석기 도구. 1~4는 통나무에 구멍을 낼 때 칸지가 제작하고 사용한 석기 도구이며 5는 통나무 상자를 긁을 때 사용한 석기 도구이다 [1]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



땅을 파서 먹이를 찾는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나타났다. 칸지는 토양 상태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를 달리했다. 부드러운 모래에 먹이가 숨겨져 있을 때에는 그냥 손으로 먹이를 파냈지만, 진흙 안에 숨겨져 있을 때에는 나뭇가지로 흙을 파냈으며, 딱딱한 토양 안에 있을 때에는 (실험이 반복되면서) 상황에 맞는 석기를 제작해 땅을 파 먹이를 찾아냈다 [1].


이 연구 결과가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필자는 앞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생명체는 지금까지 호미니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침팬지와 보노보 원숭이 같은 영장류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제작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관찰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비록 훈련받긴 하지만) 보노보 원숭이 칸지도 어떤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에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석기 도구를 제작하는 능력이 있음을 분명히 보였다. 진실로 칸지가 제작한 석기 도구는 지금까지 영장류 사회에서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 과정이었다 [1].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로 칸지가 통나무 상자를 열기 위해 석기로 나무에 낸 생채기 양상이 지금까지 보고된 고대 인간 속이 만들어낸 그것과 매우 유사하단 사실이다 [1]. 고대 호미니드가 자신의 석기 도구로 낸 흔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에티오피아(Ethiopia) 보우리(Bouri)에서 발굴된 약 2백50만 년 된 소뼈에 새겨진 흔적으로, 고대 호미니드가 뼈 안에 든 골수(marrow, 骨髓) 성분을 먹거나 뼈에서 살을 발라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했음을 뜻하며 [1, 10],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칸지가 도구를 사용해 통나무 상자 안에 있는 먹이를 빼낼 때랑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그림 5]. 그리고 칸지가 제작한 석기 도구들은 전반적으로 2백60만~1백70만 년 전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구석기 시대 올도완(Oldowan) 문화에 속하는 석기 양상과 유사하다 [1, 11] [그림 3, 오른쪽; 그림 4]. 칸지가 제작한 석기와 올도완 문화의 것으로 고대 호미니드가 사용한 석기 유물의 모양을 비교해보자.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연구팀은 이런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판 속 영장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호모 하빌리스와 비슷한 구부러진 손가락을 갖고 있고 올도완 석기를 제작한 존재라고 알려진 호모 플로렌시엔시스(Homo floresiensis)와 유사한 손목뼈와 두개골 용적을 나타낸다고 했을 때, 칸지가 통나무 상자에 낸 생채기 흔적과 2백50만 년 전 고대 인류가 석기로 낸 흔적 사이의 유사성은 의미 있다. 따라서 우리 연구팀은 판 속 영장류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낸 흔적이 뼛조각 유물에 나타난 초기 생채기 흔적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제안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얻은 연구 결과는 판 속 영장류와 인간 속 영장류의 최근 공통 조상에도 우리 실험에서 관찰된 것과 같은 도구 사용의 발달 과정이 있었으리라 제안한다.” [1, 12]



 

그림 5. (왼쪽) 보노보 원숭이 칸지가 자신이 제작한 석기 도구로 통나무 상자에 낸 생채기 패턴 [1] [출처: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 (오른쪽) 에티오피아 올두완에서 발굴한 소뼈 유물 사진. 그림 아래의 확대한 사진에서 석기 등으로 자국 낸 흔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10] [출처: Science].



물론 연구팀이 내린 “판 속 영장류와 인간 속 영장류의 최근 공통 조상에도 … 도구 사용 발달 과정이 있으리라”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생명체 진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收斂進化)의 예처럼 판 속 영장류의 도구 사용과 인간 속 호미니드의 도구 사용은 두 속의 최근 공통 조상에는 없었지만, 두 속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를 진행한 협동 연구팀의 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하며 몇 가지 새로운 화두(話頭)를 던진다. 첫째, 보노보 원숭이 칸지는 자신이 창조적으로 습득한 석기 제작법을 자기 동료—그것이 같은 연구소에서 어느 정도 교육받은 보노보 원숭이든 전혀 교육받지 않은 동족이든 상관없이—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가? 둘째, 칸지가 자손을 낳는다면 자손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줄 수 있는가? 이 두 가지는 문화 전수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번쯤 품을 수 있는 생각으로, 몇백만 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대 호미니드가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켜 온 실재적 과정이며, (어찌 보면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습성은 오늘날 현생 인류에서도 명백히 (그리고 더욱 정교하게) 드러난다. 어쨌든,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어떻게 보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불행히도 우리가 그런 모습을 바로 목격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몇 년에서 몇십 년 또는 몇백 몇천 년 이상을 요구하는 오랜 과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 인간도 바로 그런 식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으니까 말이다.


참고 문헌
[1] Roffman I, et al. 2012. Stone tool production and utilization by bonobo-chimpanzees (Pan paniscus). Proc Natl Acad Sci USA. 109: 14500-14503. [링크] : 필자가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논문이다. 조만간 공공에 무료로 공개되니 관심 있는 사람은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2] Tool use by animals. Wikipedia. [링크]
[3] Schick K, et al. 1999. Continuing investigations into the stone tool-making and tool-using capabilities of a bonobo (Pan paniscus). J Archaeol Sci. 26:821–832. [링크]
[4] Toth N, et al. 2009. The Oldowan: The tool making of early hominins and chimpanzees compared. Annu Rev Anthropol. 38:289–305. [링크] : 초기 호미니드와 침팬지 사이의 도구 제작에 관한 소개 글로 읽어보면 좋다.
[5] Egyptian Vulture. Wikipedia. [링크]
[6] Seriemas. Birds and Beyond. [링크]
[7] Capuchin monkey. Wikipedia. [링크]
[8] Mercader J, et al. 2007. 4,300-Year-old chimpanzee sites and the origins of percussive stone technology. Proc Natl Acad Sci USA. 104: 3043-3048. [링크]
[9] Chimpanzee. Wikipedia. [링크]
[10] de Heinzelin J, et al. 1999. Environment and behavior of 2.5-million-year-old Bouri hominids. Science. 284:625–629. [링크]
[11] Oldowan. Wikipedia. [링크]
[12] “Given that Pan has curved finger phalanges similar to those of australopithecines/Homo habilis and wrist bones and cranial capacity similar to those of Homo floresiensis, makers of Oldowan stone tools, the similarity between the wear patterns observed on KZ’s logs and those seen in early Homo artifacts from 2.5 mya is significant. Our experiments thus suggest that the wear patterns resulting from the various tool uses by Pan can be used to help decipher the earliest wear patterns preserved on bones. Therefore, our results reinforce the evidence for early Homo traits in Pan, and suggest that the potential for the development of the observed tool use existed in the last common ancestor of Pan and Homo.” [1]에서 참조한 논문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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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이보다 흥분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장 가고 싶은 때가 언제야?” 누가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겠다. “인류의 조상이 처음 출현했던 그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싶어.”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를 속박(束縛)하는 물리 법칙 때문에 정방향(正方向)의 시간 여행은 그럭저럭 할 수 있어도, 역방향(逆方向)의 시간 여행은 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불행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물러설 수밖에 없나?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물리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수단은 없어도, 과거가 어땠는지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는 최소한의 힌트 정도는 다행히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존재한다. 다만 너무 적을뿐더러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과거의 흔적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조상과 관련한 것이라면 (적어도 내게는) 경이로움과 흥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인류의 흔적은 때때로 신화와 미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의 과학자 집단—예를 들면, 고인류학자 그리고 고유전학자—에게는 베일에 싸인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과학자 또는 인류학자가 인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기껏해야 고대 인류의 화석과 그들이 남긴 도구 또는 유적이 전부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체의 극히 일부밖에 안 되는 파편이라면 상황은 매우 힘들어진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分子生物學)이 있다. 특히, 임의의 DNA 조각을 다른 DNA 조각에 집어넣을 수 있는 클로닝(cloning) 기법의 개발, DNA 염기 서열의 특정 부분을 인식해 그 부분만 자를 수 있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 制限酵素)의 발견, 특정 DNA 염기 서열을 증폭(增幅)해 배가(倍加)할 수 있는 중합 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또는 PCR, 重合酵素連鎖反應)의 발견 등 생물학사에 기록된 놀라운 혁신 덕분에 과거에는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던 고대 인류의 수수께끼 같은 서사시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와 같은 첨단 하드웨어의 발달은 과거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강력한 주술과 지팡이를 가진 시간 여행을 하는 과학자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1.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들 — 고대 인류의 유전체를 연구하는 과학자 집단



 

그림 1. (왼쪽)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박사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산하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 연구실 건물 전경(全景)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라이프치히(Leibzig)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에는 스반테 파보(Svante Pääbo) 박사가 이끄는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 進化人類學) 연구팀이 있다 [1]. 이곳에서는 인간,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DNA 염기 서열을 고대 인류의 유전자 정보와 비교함으로써 인류의 기원과 이동의 궤적 등을 밝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과정의 하나로 이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Neandertal Genome Project)라는 이름의 연구를 국제적 협업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2] [그림 1].


2012년 8월 이 연구팀은 「고대 데니소바인 개체에서 얻은 광범위한 유전체 염기 서열(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이란 제목으로 멸종한 고대 인류 가운데 하나인 데니소바인(Denisovan, -人) 유전체 정보 연구 결과를 『Science』에 발표했다 [3, 4, 5]. 사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고대 인류의 유전체 정보에 관한 연구를 보고한 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전에도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人) 유전체 분석 결과를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적이 있으며 [6, 7],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데니소바인 유전체 분석 결과도 2010년에 한 차례 발표한 적이 있다 [8]. 따라서 단순히 고대 인류의 유전체를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이 연구는 과거 연구와 비교했을 때 그리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기술적 측면과 그 분석 내용에서 고대 DNA(ancient DNA, 古代-) 연구에 획기적인 지평(地平)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2. 고대 DNA 연구의 어려움 (1) —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분자생물학의 발전이 고대 인류 연구 발전에 도움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 앞에는 새로운 (간혹 이전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가 도사린다 [9].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는다. (포식자한테 잡아 먹인 게 아니라면) 수명이 다한 생명체는 어떤 경로로든 썩기 마련이다. 여기서 “썩는다는 것”, 즉 부패(腐敗)는 유기 물질이 분해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부패를 흔히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으로 생각하지만, DNA와 RNA 등의 핵산(nucleic acids, 核酸)도 알고 보면 유기 물질이다. 따라서 부패 과정이 진행할 때에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와 RNA 같은 핵산도 같이 분해된다. 이때, DNA 분해 과정을 담당하는 것은 핵산 가수 분해 효소(nuclease, 核酸加水分解酵素)라고 불리는 단백질 고분자다.


그런데 사체(死體) 또는 그 주변 환경이 급격히 건조해지거나, 온도가 낮아진다든지, 또는 염분 농도가 매우 짙어지는 상황이 때때로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핵산 가수 분해 효소가 파괴되거나 이 효소의 핵산 분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9]. 결과적으로 DNA가 분해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대 DNA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운빨(?)은 없다. 하지만 고대 DNA를 연구하는 사람에겐 이것보다도 더 큰 행운이 필요하다. (사실 모든 연구자에겐 엄청난 행운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운빨도 실력이라는 소리가 있을까?) 바로 물리화학적 반응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DNA의 자발적 분해와 복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염기 서열의 치환(substitution, 置換) 때문이다 [9] [그림 2].



그림 2. 이중 나선 형태의 DNA 가운데 한 가닥을 모식화한 그림. DNA 구성 요소인 아데닌(adenine 또는 A), 티민(thymine 또는 T), 시토신(cytosine 또는 C) 그리고 구아닌(guanine 또는 G)을 DNA 한 가닥에 묘사했다. 효소가 관여하지 않는(non-enzymatic) 자연적 손상(damage, 損傷)이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화살표로 표시했다. 초록색 화살표는 가수 분해(hydrolysis, 加水分解)가 일어나는 부분이며, 빨간색 화살표는 탈 퓨린화(depurination, 脫-化)가 발생하는 지점이고, 파란색 화살표는 산화(oxidation, 酸化)가 일어나는 곳이다 [9] [출처: Nature Review Genetics].



예를 들면, DNA를 구성하는 질산 염기(nitrous base)와 당-인산 뼈대(sugar-phosphate backbone)가 자연 방사선(background radiation, 自然放射線)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거나 이곳에서 산화(oxidation, 酸化)가 발생하면 DNA 자체에 어떤 변화—예를 들면, 원래의 염기가 다른 염기로 변하거나 DNA가 잘리는 것—를 수반(首班)할 수 있다 [그림 2]. 탈 아미노화(deamination, 脫-化), 탈 퓨린화(depurination, 脫-化), 그리고 가수 분해(hydrolysis, 加水分解) 등과 같은 작용도 DNA 분자 자체의 안정성을 낮추므로, 외부로 노출된 DNA가 분해될 수도 있다 [그림 2]. 지금부터 아주 잠깐만 (사실은 좀 길다) 이런 현상이 고대 DNA 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3. 고대 DNA 연구의 어려움 (2) — 시간 여행을 가로 막는 것


고대 DNA 염기 서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DNA 라이브러리(DNA library) 제작이다. DNA 라이브러리란 어떤 생명체의 유전체 정보를 클로닝 기법 등으로 DNA 절편(fragment, 切片) 형태로 조각내어 모아 놓은 일종의 거대 유전자 묶음이다 [10]. 유전체 염기 서열 분석 전에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유전체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길기 때문이며 (만약 상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분석할 때마다 생명체 안에서 DNA를 매번 추출하는 일도 매우 번거롭다. 따라서 유전체 정보를 라이브러리로 구축해 놓으면 보관과 합성이 매우 용이(容易)하다. 물론,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분석하고자 하는 DNA 양이 충분하면 라이브러리를 만들지 않고도 곧바로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고대 DNA 연구에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화석 또는 사체에서 일차적으로 추출한 DNA 양이 바로 분석하기에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대 DNA 염기 서열 분석의 성공과 정확도를 위해 고품질의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림 3. 중합 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또는 PCR, 重合酵素連鎖反應)에 관한 모식도. (A) 증폭하고자 하는 주형(template, 鑄型) DNA를 약 95°C로 가열해 상보적(complementary, 相補的)으로 결합한 이중 가닥 DNA(double-stranded DNA)를 단일 가닥 DNA(single-stranded DNA)로 분리한다. (B) 분리된 단일 가닥 DNA를 55°C로 냉각해 특정 염기 서열과 상보적 결합할 수 있는 프라이머(primer)와 결합시킨다. (C) 표본을 75°C로 가열해 DNA 중합 효소(DNA polymerase, -重合酵素)가 프라이머와 상보적으로 결합한 단일 가닥 DNA에 붙어 상보적인 긴 가닥을 합성할 수 있도록 한다. (A)~(C)까지 일련의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원하는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출처: Ocean Explorer].



염기 서열 분석을 위한 DNA 라이브러리를 (특히 고대 DNA) 구축할 때 PCR 기법을 주로 이용한다. 이때 주형(template, 鑄型) DNA로 상보적으로 결합한 두 가닥 형태의 DNA를 주로 사용한다 [그림 3]. 원하는 DNA만 선택적으로 증폭할 수 있는 PCR 반응에서 DNA 중합 효소(DNA polymerase, -重合酵素)는 이론적으로 주형 DNA와 똑같은 염기 서열을 가진 복제 DNA를 합성한다. 따라서 그림 3에 묘사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특정 염기 서열을 가진 DNA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주형 DNA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DNA를 증폭할 수 없거나 잘못된 염기 서열을 가진 복제 DNA만 잔뜩 늘어날 수 있다. 특히, 고대 DNA로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예를 들어, 화석에서 추출한 고대 DNA의 시토신과 티민 상당수는 외부에 노출되었을 때 산화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므로 이런 DNA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PCR 반응을 할 때 원하는 DNA를 합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9]. 그리고 DNA가 외부에 오래 노출되었을 때 흔히 나타나는 시토신 염기의 탈 아미노화로 (원래 생명체의 염기 서열이 아닌) 잘못된 서열을 가진 DNA가 과도하게 증폭될 수도 있다 [9].


외부 DNA 오염으로 잘못된 DNA 라이브러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9]. 외부로 노출된 DNA는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분해된다. 따라서 오래된 화석일수록 그 안에 존재하는 DNA 양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유입된 미생물의 DNA 또한 상대적으로도 화석에 많이 잔존한다. (실제로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DNA의 90% 이상은 미생물의 DNA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석 발굴자 또는 연구자의 상피세포나 머리카락 등을 통해 유입된 외부 DNA로 화석이 오염된다면 고대 인류의 유전체 연구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지 못하면, 신뢰할만한 고대 DNA 라이브러리를 얻지 못할뿐더러 말 그대로 돈 날리고 시간 날리는 불쌍한 꼴이 되고 만다. 실제로 파보 박사 연구팀이 2006년에 발표한 첫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는 외부 DNA(특히 현생 인류의 DNA)로 오염된 DNA 라이브러리를 사용한 덕분에 시쳇말로 “폭풍 까임”을 당하기도 했다 [6, 11]. 물론 4년 뒤인 2010년에 문제의 소지를 거의 배제한 상태에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초안”을 발표했지만 [7], 결과적으로 고대 DNA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4. 기술의 혁신 — 장애물을 뛰어 넘기 시작하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2012년도에 발표한 논문(앞으로 이 논문을 “「Meyer, et al.」”이라고 부르겠다)의 중요성 가운데 하나는 앞에서 설명한 고대 DNA 연구의 문제점, 특히 라이브러리 제작의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3, 4, 5]. 필자는 앞에서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이중 가닥 DNA를 주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고대 DNA를 주형으로 사용해 통상적인 방법으로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에 어려움이 있음을 곧바로 설명했다. 「Meyer, et al.」이 발표되기 전 파보 박사 연구팀에서 발표한 고대 인류 유전체 연구는 모두 통상적인 방법으로 제작한 라이브러리를 사용했다 [6, 7, 8] [그림 4, A와 B를 참고할 것]. 그런데 「Meyer, et al.」에서는 이중 가닥 DNA를 단일 가닥 DNA로 전환해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방법을 사용해 고대 인류 유전체를 분석했다 [3] [그림 4, C를 참조할 것].



그림 4. 고대 DNA 라이브러리 제작 과정에 관한 모식도. (A) 454 라이프 사이언스(454 Life Science)에서 고안한 제작법. 고대 DNA 조각(회색으로 표시됨)에서 단일 가닥으로 존재하는 부분을 복구 효소(repair enzyme, 復舊酵素)를 이용해 이중 가닥으로 만들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어댑터 DNA(adaptor DNA, 파란색과 빨간색)를 DNA 양쪽 끝에 연결한다. PCR 반응에서 오직 서로 다른 두 개의 어댑터 DNA를 가진 고대 DNA만 증폭될 수 있다. (B) 일루미나(Illumina) 고안한 제작법. 결손 부분을 보충하는 방식은 454 라이프 사이언스의 것과 같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 DNA의 3’ 양 끝에 아데닌을 붙여 오버행(overhang)을 만들고, 여기에 3’ 끝에 티민이 오버행 형태로 연결된 어댑터 DNA가 상보적으로 결합해 그림과 같은 형태가 만들어진다. (C) 「Meyer, et al.」에서 사용한 제작법. 주형 DNA에 열을 가해 이중 가닥을 단일 가닥으로 분리한 다음에 바이오틴(biotin)이 결합한 어댑터 DNA를 단일 가닥 DNA 끝에 연결한다. 이 DNA 복합체를 바이오틴과 강하게 결합하는 스트렙타비딘(Streptavidin) 단백질이 붙어 있는 젤(gel)에 연결해 PCR 반응으로 증폭해 DNA를 증폭한다 [3] [출처: Science].



「Meyer, et al.」에서 사용한 라이브러리 제작법의 최대 강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 발생하는 고대 DNA 염기 서열 변화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중 가닥 DNA를 주형으로 사용하는 기존 라이브러리 제작법은 어느 한 가닥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배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 과정에서 그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단일 가닥 DNA를 주형으로 사용하는 라이브러리 제작은 (돌연변이가 발생한 단일 가닥 DNA도 증폭하지만)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가닥도 분석 가능한 정도의 양으로 증폭해 기존 방법보다 더 많은 풀(pool)을 확보할 수 있었다 [3].


그뿐만이 아니다. 전반적인 수율(yield, 收率)에서도 기존 방법과 비교했을 때 괄목(刮目)할만한 향상이 보였다 [3]. 유전체 염기 서열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accuracy, 正確度)다. 정확도가 어느 수준 이상 확보되어야만 신뢰도 또한 높아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유전체 A에 해당하는 표본을 단지 한 개 갖고 있을 때보다 두 개 또는 그 이상 갖고 있을 때 라이브러리 제작과 염기 서열 분석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실험적 오차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실제로 2010년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와 같은 해 발표된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에서 사용한 라이브러리 안에는 복제 DNA가 각각 평균 1.3개와 1.9개였지만, 「Meyer, et al.」에서 사용한 단일 가닥 라이브러리는 이전보다 양적으로 6~22배 증가한 복제자를 확보했다 [3, 5]. 따라서 파보 박사 연구팀은 「Meyer, et al.」에서 예상되는 데니소바인 유전체 가운데 99.99%에 해당하는 염기 서열을 높은 정확도와 신뢰도로 분석할 수 있었다 [3].


5. 데니소바인은 누구인가? — 현생 인류도 아닌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존재


샛길로 많이 빠진 것 같다. 글 쓰는 나도 정말 힘들다. 뻘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Meyer, et al.」의 내용을 살피기로 하자. 그런데 중요한 것을 하나 빼먹었다. 바로 데니소바인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데니소바인은 일반인에게 매우 생소하다. 심지어 나 같은 D급 아마추어 고인류학도에게도 데니소바인은 정말 생소하다. 물론 나는 아마추어에 심지어 D급이니 몰라도 죄가 되진 않는다. 하하하.



 

그림 5. (왼쪽)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발굴된 데니소바인의 어금니 뼈 [8] [출처: Fox News]. (오른쪽) 데니소바 동굴의 위치 [출처: BBC News].



데니소바인은 인간 속(genus, 屬)에 속하는 구석기 시대의 멸종한 고대 인류로 러시아 고고학 연구팀이 2008년에 시베리아 남쪽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에 위치한 데니소바 동굴(Denisova Cave)에서 처음 발굴했다 [12]. 당시 발굴된 잔해는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손가락 뼛조각과 어금니 두 개 그리고 팔찌 형태의 유물이 전부였는데, 탄소 동위원소 연도 측정 결과 약 3~5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분자생물학이 없었다면 이 소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어떤 연구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 화석 주인의 나이는 (비록 전체 몸 가운데 일부일지라도) 화석 형태로 어림잡아 가늠할 수 있지만, 성별 파악은 순전히 염기 서열을 분석해서 알아낸 것으로 알고 있다. — 하지만 운 좋게도 유골 일부가 발견된 시기는 고대 DNA 연구가 활발한 때였다.


행운이 여기에서 멈출 리가 없다. 이런 것을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인지 몰라도, 데니소바 동굴의 자연환경은 DNA가 보존되기 좋은 최적 조건—이곳의 연간 평균 온도는 약 0°C이다—이었다 [12]. 주저할 것도 없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어린 소녀의 손가락 뼛조각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했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현생 인류는 약 1백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분지(divergence, 分枝)했으며 (참고로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약 46만 6천 년 전에 분지했다), (2)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과는 별개의 종(species, 種)으로 아프리카 바깥 지역으로 처음 퍼져 나간 고대 인류가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지만, (3)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과 고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는 유전적으로 다른 고대 인류에서 진화했다고 추측된다 [13] [그림 6].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계통 분석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1)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 이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참조하라.]



그림 6. (왼쪽)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 54명과 신생대 홍적세에 살았던 고대 현생 인류,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계통 분석 결과. 계통 분석에서 침팬지와 보노보 원숭이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외군(out-group, 外群)으로 사용했다. (오른쪽) 계통 분석에 사용한 미토콘드리아 DNA의 출신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 왼쪽 그림의 계통 분석도에 나와 있는 숫자가 오른쪽 지도에 그대로 표시되어 있다 [13] [출처: Nature].



그리고 같은 해에 발표된 파보 박사 연구팀의 논문에서는 소녀의 손가락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로 데니소바인 유전체를 분석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어떻게 보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와 상충(相衝)하는 결과가 나왔다 [8]. (1) 미토콘드리아 DNA를 사용한 계통 분석 결과와 달리 유전체 비교•분석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보다 더 가까운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는 약 80만 4천 년 전에 분지했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 64만 년 전에 분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 그렇지만 미토콘드리아 분석 결과와 마찬가지로 데니소바 소녀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3)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인, 서아시아인 그리고 중앙아시아인 전체 유전체 가운데 1~4%에 해당하는 유전적 기여(genetic contribution)를 한 것과 달리, 데니소바인은 오세아니아와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멜라네시아인(Melanesian) 계통 현생 인류의 유전체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유전적 기여를 했다. (4)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손가락 뼛조각과 어금니 뼈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했을 때, 화석의 주인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 같은 개체군에 속하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며, 둘 사이의 생존 시기는 약 7천5백 년 정도 차이가 난다 [8].


뭔가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가? 잘 안 그려져도 상관없다. 내가 설명할 테니 말이다. 명확한 것부터 짚어 보자. 우선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와 별개의 종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진화적 관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진화적으로 가깝다고 말하지만, 유전체 분석에서는 오히려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과 진화적으로 가깝다고 속삭인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에 대해 파보 박사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1)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아주 오래전(1백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과 고대 현생 인류에서 분지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안에 존재하던 고대 조상의 흔적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2) 이들 고대 인류가 서로 배타적이지만 않다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고대 인류가 데니소바인 집단에 흘러들어 자신의 유전자를 집단 안에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이 자주 일어나다 보면 데니소바인 집단과 네안데르탈인 집단 사이에 (적어도 유전체에서는) 차이가 줄어들 수 있으므로 유전체를 비교했을 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진화적으로 더 가깝게 나타날 수 있다. (3) 우연히도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고대 조상 형태로 회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8].


이와 대조적으로 좀 더 분명해진 것도 있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분석에서도 나타났듯이 데니소바인 유전체 분석에서도 고대 현생 인류가 과거 어느 시점에 (적지만 어느 정도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와 이종 교배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리적 분포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나타나는 고대 인류의 흔적으로 확실히 뒷받침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적 추론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데니소바 동굴에서 손가락 뼛조각의 주인과 비슷한 연대에 살았으리라 추정되는 고대 인류의 발가락뼈도 발견되었는데,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으로 이 발가락뼈 주인은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13]. 자세한 사항은 「Meyer, et al.」처럼 유전체를 분석해야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거의 진실 앞에 한 걸음 더 전진했다.


6. 데니소바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다


기술적 진보는 불확실한 어떤 존재에서 “불확실함”을 덜어낼 좋은 수단을 제공한다. 「Meyer, et al.」의 연구는 데니소바인이란 존재에 도사리고 있는 “불확실함”을 덜어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 발표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는 고대 DNA 연구라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둠을 걷어낼 차례다. 「Meyer, et al.」은 2010년도 연구에서 드러난 자료의 불완전함과 해석의 모호함, 그리고 이 때문에 제기된 몇 가지 반론을 일소(一掃)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림 7.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를 비교한 계통 분석도. 아프리카 계통인 산인(San), 므부티인(Mbuti), 요루바인(Yoruba), 마뎅카인(Mandenka) 그리고 딩카인(Dinka)은 파란색 글자; 유럽 계통인 사르데냐인(Sardinian)과 프랑스인(French)은 주황색 글자; 초록색은 아시아 계통인 한인(Han) 그리고 다이인(Dai)과 남아메리카 계통인 카리티아나인(Karitiana)은 초록색 글자; 멜라네시아 계통인 파푸아인(Papua)은 붉은색 글자로 표기했다. 데니소바인은 맨 아래쪽에 검은색 글자로 표시했다. 노란색 선은 데니소바인에서 파푸아인으로 유전자 확산(gene flow)이 있었음을 뜻하며, 선 위 숫자는 유전자 기여 정도를 나타낸다. 각 인종의 지리적 분포는 그림 8을 참조하라 [3] [출처: Science].



「Meyer, et al.」은 새롭게 분석한 데니소바인 유전체를 각 인종을 대표하는 11명의 현생 인류—아프리카 계통인 산인(San), 므부티인(Mbuti), 만뎅카인(Mandenka), 요루바인(Yoruba), 딩카인(Dinka); 유럽 계통인 사르데냐인(Sardinian)과 프랑스인(French); 아시아 계통인 한인(Han), 다이인(Dai); 멜라네시아 계통인 파푸아인(Papua); 남아메리카 계통인 카리티아나인(Karitiana)—의 유전체와 염기서열을 비교했다 [그림 7, 그림 8]. 이때 인간-침팬지의 DNA 염기 서열 분지 시점을 약 6백5십만 년 전이라고 가정했을 때,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가 분지한 시점은 약 80만 년 전으로 파보 박사 연구팀의 2010년도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편이다 [3, 8]. 그런데 여기서 산출해 낸 결과는 각 개체의 DNA 염기 서열이 처음으로 분지한 시점으로, 각 개체가 속하는 집단이 최초로 분지한 시점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Meyer, et al.」은 네안데르탈인 등과 같은 고대 인류와 그 어떤 유전적 혼합이 없었으리라 생각되는 오늘날 서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체를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비교해 데니소바 개체군과 고대 현생 인류 개체군이 분지한 시점을 조사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 집단과 고대 현생 인류 집단은 대략 17만~70만 년 전 사이에 처음 분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3]. 그런데 오차 범위가 너무 넓다. 무려 50만 년이라니 너무 심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지 인간의 염기 서열 돌연변이율이 정확히 측정되지 않았고 (사실 측정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지금도 논쟁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냥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Meyer, et al.」은 데니소바인, 침팬지 그리고 현생 인류 사이의 염기 서열 차이도 조사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데니소바인-침팬지의 염기 서열 차이가 현생 인류-침팬지 사이 염기 서열 차이보다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Meyer, et al.」은 이것을 근거로 데니소바 소녀가 살았던 시기를 유전자 연도 측정법(genetic dating, 遺傳子年度測定法)으로 확인한 결과, 소녀가 생존했던 시기는 7만 4천~8만 2천 년 전 사이로 밝혀졌다 [3].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에서는 이 소녀의 생존 시기가 약 3만~5만 년 전 사이였던 것으로 나왔는데 [12], 유전자 연도 측정법은 무려 약 2만 년 정도 앞선 시기에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나는 D급 과학도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대신 이런 식으로는 대충 설명할 수 있어 보인다. 동위원소 연도 측정법으로 화석 주인이 살았던 시기는 일반적으로 화석이 출토된 지층의 퇴적층(정말 오래된 화석은 변성암) 안에 들어 있는 특정 동위원소의 비율을 계산해 반감기(half-life, 半減期)를 역으로 환산해서 도출(導出)한다. 데니소바인 소녀가 살았던 시기를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확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때 연도 측정 조사 대상은 같은 지층에서 출토된 유물이었다 [12]. 이와는 달리, 「Meyer, et al.」은 침팬지, 데니소바인, 현생 인류 사이에서 염기 서열 치환(substitution, 置換)이 일어난 횟수를 계산한 다음, 침팬지-현생 인류 사이의 분지 시점이 약 6백50만 년일 때를 기준으로 염기 한 개가 치환될 때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계산해서, 이것을 바탕으로 데니소바인 소녀의 생존 시기를 결정했다 [3]. 무엇이 더 정확하고 신뢰할만한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Meyer, et al.」은 자신들이 연도 측정할 때 사용한 방법이 (할 수만 있다면) 좋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하면서) 출처가 다양한 오차가 이러한 (연도) 측정에 영향 줄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현생 인류에게 발생했을 것으로 추론되는 치환된 염기의 수가 데니소바인 뼈에서 측정된 것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양까지 다양하다”란 변명(?)으로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어갔을 뿐이다 [3, 18].


7. 고대 인류의 흔적이 우리 안에 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두 편에 걸친 2010년도 논문에서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자 안에 고대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7, 8]. 그러나 당시 분석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2010년도 논문에서 사용한 분석 모델에서는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있는 네안데르탈인(또는 데니소바인) 흔적이 고대 현생 인류와의 유전적 혼합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 오래전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던 다른 유전적 집단의 고대 현생 인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 실제로 일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고대 인류가 아프리카 외부로 퍼져 나가기 전에 크게 두 부류의 유전적 다양성을 나타내는 고대 인류 집단이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두 집단 가운데 하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고대 DNA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채 동아프리카를 떠나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먼 훗날 네안데르탈인 또는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했고, 또 다른 집단은 조상은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 더 오래 머물면서 조상이 과거 갖고 있던 고대 DNA의 특징을 소실한 채 오늘날 사하라 사막 아래쪽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기원이 되었다 [5]. 뭔가 그럴싸해 보인다. 이런 식의 시나리오는 왜 유럽인, 중앙아시아인, 서아시아인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왜 멜라네시아 인 등의 유전자 안에는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며, 오늘날 아프리카인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개연성 있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eyer, et al.」에서는 그런 시나리오 자체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고대 현생 인류가 적어도 두 번 정도 고대 인류와 유전적 혼합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3, 5].


게다가, 파보 박사 연구팀에서는 오늘날 유럽인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고대 DNA라는 과거 유물을 받은 시점이 약 8만 6천~3만 7천 년 사이임을 산출해 냈다 [5]. 그런데 고대 현생 인류가 자신이 살던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시기가 약 12만 5천~6만 년 전 사이이고,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아프리카 바깥으로 퍼져 나간 시기가 약 1백8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직계 조상이라고 알려진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 보통 하이델베르크인이라 불린다)가 유럽으로 진출한 시기가 약 60만 년 전임을 감안(勘案)하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 사이에 발생한 유전자 혼합이 최근에 일어났음을 뜻한다 [19]. 더불어, 앞의 반박 시나리오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특히, 유럽인과 멜라네시아인)가 공통으로 갖는 고대 유전자의 흔적이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들이 진화한 시기가 다르고 오늘날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이 아프리카 중부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서 나타났음을 고려한다면 마찬가지로 그러한 시나리오는 애당초 불가능해 보인다.



그림 8. 동남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 거주하는 오늘날 현생 인류의 유전체 안에 존재하는 데니소바인 유전자 흔적 정도. 그림에 알파벳 대문자로 표기된 약자는 인종(race, 人種)을 뜻한다. 각각의 원에서 검은색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데니소바인과 유전적 혼합이 많음을 뜻한다 [14] [출처: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



파보 박사 연구팀의 2010년도 데니소바 유전체 연구에서는 멜라네시아 계통 현생 인류 유전체의 약 4~6%가 데니소바인 유전체에서 유래했다고 나타났는데, 「Meyer, et al.」에서는 그 주장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실제로 「Meyer, et al.」의 분석에 따르면 멜라네시아인 계통인 파푸아인의 유전자 가운데 약 6% 정도가 데니소바인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3] [그림 7, 노란색 선].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대로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 현생 인류 가운데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이주한 사람이 과거 어느 시점에 데니소바인과 유전적 혼합을 거쳤음을 강하게 방증(傍證)하고 있다 [8, 14] [그림 8]. 그리고 과거 일부 연구자가 주장한 한인(Han, 그림 8에서는 HA로 표기)과 다이인(Dai, 그림 8에서는 DA로 표기)의 데니소바인과의 유전적 혼합 가능성에 대해서도, 「Meyer, et al.」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 15]. 어쨌거나 그림 8을 보면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일부 지역에 국한해 나타남을 확실히 알 수 있다.


「Meyer, et al.」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유럽인보다는 동남아시아 계통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 DNA의 특징을 더 많이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3, 5]. 이것이 사실이라면 네안데르탈인이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진출해 그곳에 유입한 고대 현생 인류와 서로 이종교배를 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사실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지금까지 유럽과 서아시아 인근에서만 발굴되었고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네안데르탈인에서 현생 인류도 독립적으로 두 번 유전자 유입이 있었을 가능성과 (2) 유럽에서 살고 있는 고대 현생 인류의 유전자 안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유입된 후에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흔적이 희석되어 결과적으로 동남아시아인이 유럽인보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흔적을 더 많이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3].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다.


「Meyer, et al.」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만한 만한 결과가 있다. 파푸아인을 대상으로 한 비교 유전체 연구 결과에서 데니소바인 유전자 흔적이 성염색체(특히, X 염색체)보다는 상염색체(autosomal chromosome, 常染色體)에서 더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3]. 이러한 패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1) 데니소바인 남성이 고대 현생 인류 여성과 이종교배를 했거나 (2) 데니소바인의 X 염색체와 현생인류의 X 염색체 사이 조합이 유전적으로 부적합해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3, 5]. 특히 (2) 번 가설은 XX라는 성염색체 조합을 갖는 여성 잡종이 XY라는 성염색체 조합을 갖는 남성 잡종보다는 결과적으로 생존에 부적합했을 것이란 추측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쨌든, 성염색체보다 상염색체에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 사이의 조합도 전반적으로는 (어떤 환경적/사회적 조건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어도) 생존에 불리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8.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


품질(?)이 좋으면 이전에 할 수 없던 것도 간혹가다가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Meyer, et al.」에서 분석한 데니소바인 유전체는 예상되는 유전체 크기의 99.99%에 해당하는 양이다 [3].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 말한다면 나도 할 말 없다. 내가 한 연구도 아니니. 이처럼 고품질의 DNA 정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데니소바인의 여러 측면을 (비록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의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genetic diversity, 遺傳的多樣性)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런 연구를 하려면 다양한 개체를 대상으로 포괄적으로 수행해야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정체를 드러낸 데니소바인은 겨우 둘(손가락 뼛조각의 주인과 어금니 뼈의 주인)일뿐더러 유전체 분석에 사용한 표본은 오직 손가락 뼛조각뿐이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명의 데니소바인에 관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는 일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염색체는 항상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쌍으로 묶을 수 있는 염색체를 상동 염색체(homologous chromosome, 相同染色體)라 부른다. 상동 염색체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한테서 받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어머니한테서 받는 게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런 예외를 벗어나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농담이다). 따라서 상동 염색체 사이의 염기 서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면, 비록 하나의 개체에서 뽑은 유전체라 하더라도 유전적 다양성이 어떻게 되는지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 데니소바인의 이형 접합체 빈도(heterozygocity, 異型接合體頻度)는 약 0.022%로 나타났다 [3]. 이것을 오늘날 현생 인류의 이형 접합체 빈도와 비교해보자. 아프리카인은 약 20%, 유럽인/아시아인은 약 26~33%, 남아메리카의 카리티아나인은 약 36%다. 결과로만 놓고 본다면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이 오늘날 현생 인류보다도 확연히 낮다. 파보 박사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데니소바인 소녀가 단순히 근친 교배(近親交配)로 태어난 개체이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낮게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그들은 (이 소녀가 속한) 데니소바인 집단의 크기가 이 시기에 상당히 작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으리라 추정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생 인류는 이 시기, 즉 12만 5천~25만 년 사이에 집단 크기가 두 배로 커졌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인하기 위해 끌어들인 데니소바인은 단 한 명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데니소바인 화석을 발굴해 같은 방식으로 연구한다면 이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9. 데니소바인의 유전적 특징


완전한 데니소바인 화석이 없으므로(있어도 손가락 뼛조각 일부와 어금니 뼈 두 개가 전부다) [12], 현실적으로 데니소바인의 외형적 특징을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인간이 할 수 없는 게 아직 많다고는 하더라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데니소바인에 관한 그 어떤 해부학적 근거(예를 들어, 어느 정도 완전한 모습을 갖춘 두개골 화석 등)가 거의 없더라 하더라도, 유전학적 정보 분석을 통해 적어도 데니소바인의 모습 정도는, 백 퍼센트 확신은 못해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연구도 있다 [16]. 2012년 「유전체 자료를 통해 인간 피부색 표현형을 예측하기: 네안데르탈인에서 제임스 왓슨까지(Predicting Homo Pigmentation Phenotype Through Genomic Data: From Neanderthal to James Watson)」란 제목으로 『미국 인간 생물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인간의 피부색을 포함한 표현형(phenotype, 表現型) 다수가 몇 가지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해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에 착안해, 인종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표현형(특히 피부색과 관련된 것)과 유전체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연구팀은 주근깨 존재 여부, 피부 색, 머리카락 색, 그리고 눈동자 색을 각각 91%, 64%, 44% 그리고 36%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균 59% 정도에 해당하는 예측률이다) [16].



 

그림 9. (왼쪽) 데니소바인의 모습을 복원한 결과. 「Meyer, et al.」 결과가 발표되기 전 누군가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설명한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가? (오른쪽) 오늘날 멜라네시아인의 모습. 왼쪽 사진의 데니소바인과 비슷해 보이는가? [출처: Ancient & Lost Civilizations]



그렇다면 우리의 데니소바인 소녀는 어떤 모습일까? 「Meyer, et al.」은 앞에서 소개한 색소 분포 예측에 관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데니소바인의 모습을 추측해봤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데니소바인 소녀는 피부가 검은 편이고, 은은한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렸으며, 갈색 눈으로 사물을 응시(凝視)했지만, 피부에 주근깨는 없었다 [3] [그림 9]. 물론 「Meyer, et al.」은 (아무리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를 뒀다 하더라도)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바로 데니소바인 얼굴에 주근깨는 없다는 것 말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유전체를 기반으로 한 색소 분포 예측 방법은 무려 91%라는 놀라운 확률로 주근깨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어쨌든 이것도 좀 더 완전한 데니소바인 화석이 발굴되면 확실히 밝혀질 일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데니소바인의 핵형(karyotype, 核型)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적으로 매우 가깝다고는 하지만,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침팬지는 24쌍의 염색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진화사적 이유는 바로 침팬지와 현생 인류의 공통 조상이 가지고 있던 말단 동원체형 염색체(acrocentric chromosome, 末端動原體型 染色體) 두 개가 하나로 연결되어 중부 동원체형 염색체(metacentric chromosome, 末端動原體型)인 (인간으로 치면) 2번 염색체(chromosome 2)가 되었기 때문이다 [17]. 핵형이 완전히 다르면 사실상 이종 교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고대 현생 인류 사이에 잡종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핵형이 동일하지 않았겠느냐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그런데 실제로 데니소바인의 핵형은 오늘날 현생 인류와 같은 23쌍이다 [3]. 네안데르탈인은 이제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없어 확인할 수 없지만, 데니소바인 유전체 결과를 근거로 했을 때 마찬가지로 23쌍의 염색체를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좀 더 앞으로 나가보자. 우리 인간 속의 핵형은 언제부터 23쌍이 되었을까? 침팬지와 분지된 후일까? 아니면 인간 속이 처음 출현했을 때일까? 아니면 호모 에렉투스가 출현했던 시점일까? 답은 여러분이 찾길 바란다.


10. 현생 인류와 고대 인류의 결정적 차이


좋은 자료가 있으면 좋다. 이런 당연한 말을 나는 계속 반복하고 있다. 거의 완전한 형태의 데니소바인 유전체는 오늘날 현생 인류와 고대 인류 사이의 차이점, 특히 유전적 차이로 나타날 수 있는 외형적 차이와 생리학적 차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Meyer, et al.」에서는 오늘날 현생 인류를 과거 조상보다 더욱 파생된 형태로 놓고 데니소바인을 과거 공통 조상 형태와 비슷한 형태로 놓고 둘 사이에 염기 서열 치환(substitution, 置換)이 어느 정도 일어났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인간 종 사이의 염기 서열 치환은 전부 118,812개 발생했으며, 9,444개의 유전자 삽입(gene insertion, 遺傳子揷入)과 유전자 삭제(gene deletion, 遺傳子削除)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3]. 일반적으로 한 두 개 정도의 미약한 염기 서열 변화는 거의 영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정말로 치명적인 사례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변화가 계속 누적된다고 하자. 초기 한두 개 정도의 염기 서열 변화는 당장에 아무 영향도 없다 할지라도, 그런 변화가 열 개, 백 개, 천 개, 그리고 수십만 개 누적된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게다가 유전자 일부분이 완전히 삭제되거나 새로 유입된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수천수만 년 동안 누적된 변화는 궁극적으로 생물학적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 인자(因子)인 단백질의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심지어 이들이 생명체 안에서 발현되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데니소바인 등의 고대 인류에서 현대 인류로 인간이 진화를 거듭했을 때, 우리 유전자 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파보 박사 연구팀은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 뇌의 기능과 신경계 발달에 관련된 여덟 가지 유전자인 NOVA1, SLITRK1, KATNA1, LUZP1, ARHGAP32, ADSL, HTR2B, CBTNAP2의 염기 서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3]. 그 가운데 SLITRK1KATNA1은 신경 세포의 축삭돌기(axon, 軸索突起)와 수상돌기(dendrite, 樹狀突起) 성장에 관여하는 유전자며, ARHGAP32HTR2B는 시냅스 전달(synaptic transmission, -傳達)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자폐증(autism, 自閉症)과 관련된 유전자인 ADSLCBTNAP2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점인데, 특히 CNTNAP2 유전자는 언어 장애와 관련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유전자로 언어와 대화 기능의 발달 및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 ~可塑性)의 중요한 발달 조절 인자로 알려진 FOXP2 유전자의 조절을 받는다고 연구 및 보고된 적이 있다 [3].


더불어 「Meyer, et al.」에서는 오늘날 인간의 질병과 명확히 연관된 34개의 유전자에서도 데니소바인 유전체와 비교했을 때 어떤 유의미한 유전적 변화가 있었음을 관찰했다. 파보 박사 연구팀이 관심을 둔 34개 유전자 가운데 HPS5, GGCX, ERCC5, ZMPSTE24라는 네 가지 유전자는 피부 관련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로 알려졌으며, RP1L1, GGCX, FRMD7, ABCA4, VCAN, CRYBB3란 여섯 가지 유전자는 눈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3].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데니소바인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전적 차이가 생리학적으로 어떤 차이를 나타내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 정도는 유추할 수 있으리라 본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가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유전자의 변화는 오늘날 현생 인류에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생리학적 특성을 부여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변화된 특성은 자연 선택으로 더 공고히 되는 쪽으로 진화가 확고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닐까?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이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Meyer, et al.」에서는 EVC2라는 유전자의 변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뒀다. 왜냐하면, EVC2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엘리스-반 크레벨트 증후군(Ellis-van Creveld syndrome)이라는 유전 질환이 발병하기 때문이다. 이 병은 발달 과정에서 치아가 우상치(taurodontism)라고 하는 황소의 것과 같은 형태를 띠면서 구강 내부가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치근(dental root, 歯根)이 하나로 합쳐지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3, 20]. 물론 이 유전자에 이상이 발생하면 구강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발달 과정에 이상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파보 박사 연구팀이 이 유전자의 염기 서열 차이에 관심을 둔 이유는 엘리스-반 크레펠트 증후군에 걸린 환자의 구강 형태가 네안데르탈인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하기 나타내기 때문이다 [3]. (내가 보기엔 별로 비슷해 보이지 않는데, 잘 모르겠다.) 물론 데니소바인의 어금니는 전체적으로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지만, 치근이 두 개이므로 앞의 유전 질환에서 나타나는 병리학적 증상과는 차이가 있다 [그림 5, 왼쪽]. 하지만 엘리스-반 크레벨트 증후군의 증상 일부와 네안데르탈인 및 데니소바인의 어금니 뼈 구조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고대 인류가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했을 때, EVC2 유전자를 포함한 다양한 유전자의 변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날 인간의 치아 구조와 같은 형태를 띠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데니소바인과 현생 인류 사이의 유전적 차이에 대해 살펴봤다. 이러한 사실은 데니소바인과 같은 고대 인류 부류가 오늘날 현생 인류로 진화하면서 형태학적 기능적 변화를 줄 수 있는 많은 유전적 변이를 겪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언어 기능 및 지적 능력과 관련도 부분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이 고대 현생 인류보다 지적인 면에서 떨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은 오늘날 인류의 가까운 조상보다 더 뛰어난 점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11. 맺음말 — 아프리카 기원설 vs. 다지역 기원설


지금까지 매우 길고 지루한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다. 여기까지 온 여러분께 박수를 보낸다. 재미없는 내용을 더럽게 재미없게 써서 정말 죄송하다 ㅠㅠ. 현생 인류의 기원에 관한 두 이론인 아프리카 기원설과 다지역 기원설 가운데 대세는 솔직히 말해서 “아프리카 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관한 글은 내 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1)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프로젝트 이전의 상황에 대한 고찰」을 참조하라].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은 “아프리카 단일 기원설”에서 “단일”이란 말을 빼야 할 시점이 되었단 사실이다. 최근 보고되고 있는 고대 인류 유전체 분석과 이를 바탕으로 한 비교 유전체학 연구는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기원이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출현한 고대 호모 사피엔스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함께 강조하는데, 바로 이들 고대 현생 인류가 이미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하고 있었던 다른 인간 종과 유전적 혼합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후로도 아프리카 출신의 고대 현생 인류를 중심으로 한 오늘날 인간의 진화의 흐름이라는 큰 줄기 자체가 변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다른 인간 종의 유전자가 이러한 진화 과정에 유입했는지는 차후 연구 결과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바야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고대 인류의 흔적이며, 그들의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Department of Evolutionary Genetics. 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링크] : 독일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 진화 인류학 실험실 홈페이지다.
[2] Neandertal Genome Project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사업을 소개한 웹사이트다. EMBL 사이트와 연계해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염기 서열을 공공에 공개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써도 좋다.
[3] Meyer M, et al. 2012. A High-Coverage Genome Sequence from an Archaic Denisovan Individual. Science. Published online 30 August 2012 [DOI:10.1126/science.1224344] : 현재 이 논문은 공식적으로 출판된 상태는 아니며, 현재 Sciencexpres라는 곳에 초안 형태로 올라와 있다. 링크와 논문 참조에 관련된 정보는 해당 논문이 정식으로 출판될 때 수정하도록 하겠다. [링크]
[4] Ancient genome reveals its secrets. Biology News Net. August 30, 2012. [링크]
[5] Gibbons A. 2012. A Crystal-Clear View of an Extinct Girl's Genome. Science. 337: 1028-1029. [링크]
[6] Green RE, et al. 2006. Analysis of one million base pairs of Neanderthal DNA. Nature. 444: 330-336.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염기를 분석한 첫 논문이지만, 본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폭품 까임"을 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과학이란 원래 이런 식으로 자주 까이면서 발전한다. 까이다보면 언젠가 문제점을 해결하기 마련이니까.
[7] Green RE, et al. 2010. A draft sequence of the Neandertal genome. Science. 328: 710-722. [링크] : "폭풍 까임"을 당하고 난 다음 발표안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초안이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다. 현재 네안데르탈인 유전체는 단일 가닥 DNA 라이브러리를 제작해 새롭게 분석할 계획이란 소식이 있다.
[8] Reich D, et al. 2010. Genetic history of an archaic hominin group from Denisova Cave in Siberia. Nature. 468: 1053-1060. [링크] : 처음 발표된 데니소바인 유전체 관련 연구다.
[9] Hofreiter M, et al. 2001. Ancient DNA. Nat Rev Genet. 2: 353-359. [링크] : 고대 DNA 연구 관련 소개 글이다. 추가적으로 이것을 읽으면 더 좋다. Pääbo S, et al. 2004. Genetic analyses from ancient DNA. Annu Rev Genet. 38: 645-679. [링크]
[10] Library in biology. Wikipedia. [링크]
[11] Hofreiter M. Drafting human ancestry: what does the Neanderthal genome tell us about hominid evolution? Commentary on Green et al. (2010). Hum Biol. 83: 1-11. [링크] :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 전반을 알고 싶다면 이 논문을 추천한다.
[12] Denisova hominin. Wikipedia. [링크]
[13] Krause J, et al. 2010. The complete mitochondrial DNA genome of an unknown hominin from southern Siberia. Nature. 464: 894-897. [링크] : 데니소바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연구한 논문이다. 여러 모로 데니소바인 유전체 연구와 상충되는 점이 있다.
[14] Reich D, et al. 2011. Denisova admixture and the first modern human dispersals into Southeast Asia and Oceania. Am J Hum Genet. 89: 516-528. [링크]
[15] Skoglund P, and Jakobsson M. 2011. Archaic human ancestry in Eash Asia. Proc Natl Acad Sci USA. 108: 18301-18306. [링크]
[16] Cerqueria CC, et al. 2012. Predicting homo pigmentation phenotype through genomic data: From neanderthal to James Watson. Am J Hum Biol. 24: 705-709. [링크] : 본문과 상관없이 이 글 자체는 꽤 흥미롭다. 유전자만 가지고도 생면부지(生面不知)인 사람을 그 외모까지 알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7] IJdo JW, et al. 1991. Origin of human chromosome 2: an ancestral telomere-telomere fusion. Proc Natl Acad Sci USA. 88: 9051-9055. [링크]
[18] 「Meyer, et al.」에 기술된 원 문장은 다음과 같다. “However, we caution that multiple sources of error may affect this estimate. For example, the numbers of substitutions inferred to have occurred to the present-day human sequences vary by up to one-fifth of the reduction estimated for the Denisovan bone.”

[19] Early human migrations. Wikipedia. [링크]
[20] Ellis–van Creveld syndrome. Wikipedia. [링크] : 원래 본문에 이 병의 증상에 관한 그림을 넣으려 했지만 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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