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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6 황금 거위, 과학, 경제성 그리고 한국의 과학 1



과학자의 연구는 일반인이 봤을 때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개미, 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모양, 초파리의 섹스, 화석, 원숭이에게 셈법을 가르치기, 별의 탄생 등등. 경제적 가치를 최고의 미덕이라 믿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 창출” 및 “효용성”과는 거리가 먼 과학자의 덕질은 한량(閑良)의 유희(遊戱)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식으로 연구에 투입되는 그 돈이 실제로는 나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대부분 사람은 분노로 피가 거꾸로 치솟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연구가 정말로 쓸모없을까?


쓸모없는 과학 쓸모있는 과학


역사적으로 봤을 때 오늘날 인간 사회의 변혁과 과학기술 혁신 대부분은 ‘멍청하거나 쓸모없는’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그런 ‘무의미한’ 연구 대부분은 많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 거둬들인 세금으로 진행되는 ‘공적 연구(公的硏究)’였다. 사실, 단기간에 사적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 ‘쓸데’없는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하기란 어렵다. 즉, 신약 및 신기술 개발처럼 어떤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면 대부분의 기초 과학 연구는 기업에게 관심조차 받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이 그토록 원하는 고부가가치 창출도 기초 과학의 발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더불어, 과학사를 통틀어 어떤 특수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염두에 둔 연구가 ‘과학과 사회의 진보’를 이끈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있다손 치더라도 첫 단추는 ‘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으며, 그러한 연구 대부분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물론, 과학혁명의 시기라 일컫는 17~19세기 상황은 오늘날과는 좀 다르다. 훗날 프랑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던 프랑스 왕립 과학 아카데미(l'Académie royale des sciences)는 예외로 하더라도 당대(當代)의 과학 연구는 주로 부유한 자산가의 후원을 받거나 부유한 과학자(또는 자연철학자)가 자신의 사비를 털어 진행되었다. 어떤 식으로 연구비를 충당하든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사회∙경제적 이익을 바라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바라는 게 있었다면, 그것은 지적 욕구의 충족이나 사회적 명성의 획득이 전부였다. 물론 훗날 럼포드 백작(Count Rumford)이라 불린 벤저민 톰프슨 경(Sir Benjamin Thompson, 1753~1814)과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1].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오해 ― 프록스마이어와 황금 양모 상


실상(實相)이 이런데도 많은 이들은 과학 발전의 역사적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쓸데없는’ 기초 과학 연구가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며 말 그대로 ‘까기에’ 바빴으며, 지금도 바쁘다. 그리고 이것은 개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과학이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서 드러나는 전형적 양상이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사례가 있다. 윌리엄 프록스마이어(William Proxmire) 민주당 상원 의원은 “황금 양모 상(Golden Fleece Award, 黃金羊毛賞)을 제정해 1975~1987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미국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은 쓸모없는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또는 과학자 집단)에게 조롱과 비아냥의 의미로 이 상을 수여해왔다 [2, 3]. 말이 ‘상(賞)’이지 이것은 과학에 일방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것은 그의 조롱 대상 가운데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그램(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또는 SETI)을 진행한 미 항공 우주국(the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또는 NASA)과 인간관계에 관한 연구에 재정적 지원을 한 미국 국가 과학 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또는 NSF)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2]. 비록 프록스마이어 의원 본인은 미국 국민의 세금이 유용한 곳에 쓰이도록 하겠다는 숭고한 대의를 갖고 시작했겠지만, 이 같은 기초 과학 연구를 향한 적대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2].


과학, 스스로를 변호하다 ― 황금 거위 상


최근에 프록스마이어의 악의적인 ‘황금 양모 상’과 그 적자(嫡子)를 조롱함과 동시에 그동안 과학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내려는 의미 있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황금 거위 상(Golden Goose Award)’이다 [4, 5].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고전 동화에서 따온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상의 목적은 “일반인이 보기에 효용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이상한 과학 연구가 훗날 과학기술의 진보와 사회 변혁을 이끈 다양한 사례를 조명(照明)함으로써 기초 과학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의 대의”를 확보하는 것이다 [4]. 실제로 이 상은 지난 60여 년 동안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연구 가운데 과학 및 사회적으로 중요한 발견과 진보를 이끈 경우에만 수상 자격을 주며, 매년 미국 과학 진흥회(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와 미국 대학 협회(the Association of American Universities)를 포함한 미국 내 다양한 과학∙대학 단체가 협의하여 수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4].


그러한 심사 과정을 거쳐 올해에는 (당시엔 말도 안 되는) 방사선 파장 증폭 연구로 레이저 기술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자 찰스 타운스(Charles Townes)와, (의학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열대 산호초의 해부학 구조 연구로 뼈 이식 등의 의학 분야 발전에 결정적 이바지를 한 유진 화이트(Eugene White), 로드니 화이트(Rodney White), 델라 로이(Della Roy) 그리고 고인(故人)이 된 존 웨버(Jon Weber), 그리고 (당시에는 파급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조차 못했던) 해파리의 신경계 연구 과정에서 녹색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또는 GFP)을 발견하고 이를 생명 과학 연구에 적용한 오사무 시노무라(Osamu Shinomura), 마틴 찰피(Martin Chalfie)와 로져 치엔(Roger Tsien) 등 총 8명이 영광스러운 “황금 거위 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4, 5]. 이 가운데 레이저 기술과 GFP 연구는 1964년과 2008년에 각각 노벨상을 받았다 [4, 5].


한국 과학의 고민


미국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과학에 요구하는 사명감은 매우 크다. 정치인,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대한민국의 과학적 위상(位相)을 국제적으로 드높여야 한다”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은 자원이 없으니까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해 국가의 부(富)를 창출함으로써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70~80년대의 낡은 슬로건을 대의(大義)로 외치면서 한국 과학에 “경제적 가치” 창출을 강요한다. 그러나 모든 과학 연구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경제적 이익이라는 자본주의적 미덕(美德)이 과학을 이끄는 원동력도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과학과 사회의 진보는 이익 창출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기초 과학 연구가 보장될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 아래에서 기업이 좋아하는 ‘이윤 창출’의 기회도 많아질 수 있다. 즉,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에서 얻는 게 많듯이 연구 다양성이 풍부해야 ‘똥’이든 ‘된장’이든 건질 것도 많아진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과학에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닥치고’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그 결과, 한국의 과학은 생태계 자체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진정으로 한국의 과학 현실은 참담하다. 박정희 개발 독재 때부터 시작한 “엘리트 중심의 연구”와 “세계 최초∙최고”라는 헛된 수사(修辭)는 “황우석 사태”라는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했고, 과학 강국을 건설하겠다는 불굴의 일념(一念)은 이들을 흡수할 사회적 인프라는 고려하지 않은 채 과학기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동반 양산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연출했다. 더불어, 정치인은 앞뒤 생각 없이 선거에서 승리할 목적으로 실현 가능성도 불확실한 단기적 공약만 연신 남발한다. 그리고 정부가 계획한 연구 지원의 수혜자는 연구비 경쟁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과학자로 국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과학자는 안정적 연구비 확보를 위해 정부가 원하는 분야의 연구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한국의 기초 과학은 고사(枯死) 직전이다.


맺음말


도대체, 한국의 과학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별거 없다. 당장 돈이 안 되는 기초 과학 연구일지라도, 정말 쓸모없는 ‘잉여로움’ 가득한 연구일지라도 학문적 타당성만 명확하다면 정부는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연구자가 자기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과학자보다는 신진 과학자에게 다 많은 재정적∙환경적 지원을 함으로써 기초 과학 연구의 풀(pool)을 확충해야 한다. 더불어 앞으로 과학을 이끌어나갈 미래의 예비 과학자에게 한국 사회에서도 안정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과학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연구 다양성이 보장되어야만, 이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과학을 통한 가치 창출”의 기회도 폭넓게 확보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별생각 없이 씨앗을 뿌리고 키운 쭉정이가 내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한국 과학이 발전하려면 당장의 이익을 좇는 필부(匹夫)의 편협함이 아니라 100년 200년 또는 그 이상을 내다보는 현자(賢者)의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참고 문헌
[1] Benjamin Thompson. Wikipedia. [링크]
[2] Golden Fleece Award. Wikipedia. [링크]
[3] Golden Fleece. Wikipedia. [링크] : “황금 양모(Golden Fleece, 黃金羊毛)“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 말로 “희생을 통해 신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제물”을 뜻한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프록스마이어 의원이 이 말을 썼는지 잘 모르겠지만, 맥락으로 판단했을 때 “과학자의 쓸모없는 호기심을 위해 희생된 정부의 세금”을 빗대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4] The Golden Goose Award [링크]
[5] Boyle A. 13 Sep 2012. Science oddities win Golden Goose. NBC New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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