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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4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



자연발생론(spontaneous generation theory, 自然發生論)은 어떤 생명체가 같은 종(species, 種)의 생명체가 아니라 비(非)생명체에서 자연적으로 출현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 수 있다. “벼룩(flea)은 먼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구더기(maggot)는 썩은 고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것과 유사한 이론으로 이형 발생론(heterogenesis, xenogenesis 또는 unequivocal generation, 異形發生論)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생명체가 전혀 다른 생명체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촌충(tapeworm, 寸衷)은 돼지나 인간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발생론이 생명체의 비생명체 기원 가능성을 주장하고, 이형 발생론은 어떤 생명체에서 전혀 다른 생명체의 발생이 가능함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두 이론은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지만, 두 주장 모두 오늘날 유전 법칙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형 발생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내놓은 예는 오늘날 기생-숙주 관계(parasite-host relation, 寄生宿主關係)의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부분은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생각」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19세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자연발생론의 이론적 토대를 완성한 사람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그의 생물학은 그의 선배 철학자의 이론과 고대부터 전해진 신화를 규합하고 확장한 작업이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 연구는 무려 2천 년 동안이나 전 유럽을 지배한 사고방식이었다 [1]. 마치, 천문학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있었다면 생물학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이 있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하지만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이론은 점차 의심받기 시작했으며, 19세기 들어서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1859년 출간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과 1861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생명의 자연발생을 부정하는 유명한 실험으로 말미암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은 극히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과학 체계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1, 2].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아리스토텔레스 [출처: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생물학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생명체, 특히 동물, 그 가운데에서도 해양 동물 연구에 많은 힘을 쏟아 부었다. 그의 이런 노력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동물 연구를 포함한 생명체 관련 저작은 현존하는 그의 저작 가운데 무려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 어떤 동기로, 생명체 연구에 관심을 뒀는지 불분명하다. 그의 부친이 내과 의사였기 때문에 그가 생물 연구에 관심을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4], 결정적 동기는 아마도 자신의 철학을 뒷받침할만한 실체적 근거를 찾으려는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형상(形相)과 목적인(目的因)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예증할 어떤 증거나 뒷받침을 생명체와 그것의 일부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특히, 『동물 부분론(On the Part of Animals)』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물과 인간은 본질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인체 구조에 관한 지식 확장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자연이 우연한 산물이라는 관념을 물리칠 좋은 기회다” [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자연과학의 목적과 정당성은 어떤 현상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으며, 자연에 의한 것이든 기술(技術)에 의한 것이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설명을 위해 네 가지 요인―(a) 사물의 질료(質料), (b) 사물의 형상(形相), (c) 사물의 운동인(運動因) 또는 작용인(作用因), 그리고 사물의 목적인(目的因)―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5]. 탁자를 예로 들어보자. 테이블은 나무와 같은 그 무언가(즉, 질료)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탁자는 특정 형태(즉, 형상)을 띠고 있다. 더불어, 탁자는 목수와 같은 기술자(즉, 운동인)가 만든다. 마지막으로, 목수가 탁자를 만들 때에는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든다(목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철학적 원리를 적용했다. 인간의 생식 작용(生植作用)을 예로 들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의 질료가 어머니로부터 제공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인간 종(species, 種)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게 하는 특성이다. 운동인은 아버지로부터 주어지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의 목적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이성적 직립 동물”이 되기 위한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완전한 성인(成人)이 되는 것이다 [5]. 이것은 단지 인간의 생식작용에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탄생하거나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1) 어떤 것으로 구성되고, (2) 어떤 것의 작용 때문에 만들어지며, (3) 반드시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어떤 유기체를 구성하는 것은 질료이며, 만드는 것은 형상과 운동인(또는 작용인)이며, 구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그 생명체의 성장이 추구하는 목적인이다 [6].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생명체는 형상과 질료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질료는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기관이며 형상은 모든 기관을 통일된 유기적 전체로 엮어주는 원리이다. 이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영혼(pneuma, 靈魂)이며 이것은 섭생, 번식, 성장, 감각 작용, 운동 등과 같은 생명체의 기본 특징을 결정하는 제일 원인이라고 믿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어떤 종류의 영혼을 갖느냐에 따라 생명체의 기능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는 위계질서(位階秩序)로 배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은 섭생의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며 번식할 수 있으며, 동물은 감각의 영혼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감지하고 움직일 수 있다 [6].


인간은 여기에 이성이라는 영혼이 하나 더 추가된다. 즉, 식물이 가진 섭생의 영혼과 동물이 가진 감각의 영혼과 더불어 인간은 신이 가진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더욱 높은 수준의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영혼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생명체와 달리 상위 계층에 설 수 있게 되었다 [6, 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대로 유기 물질의 현신(現身)인 영혼이 한낱 형상에 불과하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죽어 그 육신이 해체되면 영혼도 마찬가지로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6].


이런 상황에서 영혼을 자손에게 전하는 방법은 생명 발생에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손은 부모 신체 전부에서 비롯된다”는 판게네시스(pangenesis) 이론을 비판하면서 영혼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원리를 설명했다 [8]. 그는 암수 양성의 존재가 (작용인과 결합한) 형상과 (형상인이 작용하는 대상인) 질료 사이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는데,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은 암컷이 월경할 때 발생하는 혈액으로 질료를 공급한다. 여기에 수컷의 정자가 자신의 형상을 월경의 혈액에 새기는 운동인으로 생명체가 탄생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자 안에 질료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6, 9].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발생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인식은 자연발생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생명 발생에 대한 인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생명체의 등급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형상과 질료 그리고 운동인으로 영혼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등동물은 다른 방식의 발생 과정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적 생물 연구 결정체인 『동물의 역사(The History of Animals)』의 제5권 1편에 나와 있는 다음 문구를 살펴보자 [1]. 아래 인용문은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는 것으로 번역은 필자가 임의로 한 것이다.


이제 식물과 동물의 공통적인 한 가지 속성이 있다. 몇몇 식물은 씨앗에서 발생하지만, 다른 식물은 씨앗과 비슷한 몇 가지 기본 원리(elemental principle)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후자 가운데 몇몇은 흙에서 양분을 얻지만, 다른 것은 식물학에 관한 나의 논문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다른 식물 안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동물에서도 몇몇 동물은 종류에 따라 부모에서 태어나지만, 몇몇은 동족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자연 발생의 사례 가운데 몇몇은 수많은 곤충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부패한 흙이나 식물성 물질에서 기인하지만, 다른 것은 동물의 몸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Now there is one property that animals are found to have in common with plants. For some plants are generated from the seed of plants, whilst other plants are self-generated through the formation of some elemental principle similar to a seed; and of these latter plants some derive their nutriment from the ground, whilst others grow inside other plants, as is mentioned, by the way, in my treatise on Botany. So with animals, some spring from parent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whilst others grow spontaneously and not from kindred stock; and of these instances of spontaneous generation some come from putrefying earth or vegetable matter, as is the case with a number of insects, while others are spontaneously generated in the inside of animals out of the secretions of their several organs.
― 톰프슨(D'Arcy Wentworth Thompson)의 번역의 1910년도 번역 [1]. (강조는 필자가 임의로 처리한 것임).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곤충과 같은 하등동물은 흙이나 부패한 물질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그의 책에서 언급했다는 점이다.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은 부모의 질료와 형상 그리고 운동인으로 비롯된 씨앗을 통한 영혼의 흐름으로 생명이 탄생한다고 봤지만, 곤충 등의 하등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인식한 점에서 매우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하등동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유가 “공기 안에 담긴 생체열(vital heat, 또는 호흡열)이 흙과 같은 어떤 질료 안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 그렇다면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전히 그의 관점에서)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의 발생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조사 방법과 관찰 대상의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체 연구를 위해 스스로 관찰을 많이 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소아시아 연안 레스보스(Lesbos) 섬에서 지냈을 때에는 해양동물을 주로 관찰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자료 수집 과정에서 제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탐험가, 농부, 어부의 보고 및 풍문에도 의존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는 연구를 위해 선배 철학자의 저술과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여러 가지 구전(口傳)도 많이 참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4, 10].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용한 자료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자신이 관찰한 사물이나 내용조차도 회의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알려졌다 [10].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회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도 알려졌다 [10]. 게다가 그의 관찰 대상이 주로 해양생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곤충과 같은 매우 작은 생명체를 신경 쓰기엔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평소 품고 있는 어떤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르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런 점에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관찰한 대상 이외에 그가 소홀히 했던 다른 생명체에 대해서는 당대의 상식에 비추었을 때,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생각은 한 편으로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우리는 『동물의 발생론(On the Generation of Animals)』에서 그의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진딧물은 식물에 맺힌 이슬에서 발생하며, 파리는 썩은 고기에서 발생하고, 쥐는 더러운 건초 더미에서 발생하며, 악어는 호수 밑바닥의 썩은 통나무에서 발생한다” [1].


이런 식으로, 그가 자세히 관찰한 것과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을 포함한 존재 이외의 다른 생명체에 대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자연발생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업적과 함께 한동안 (적어도 그의 생명체 연구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 없이 전해지면서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창조 교리와 맞물려) 무려 2천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유럽 전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맺음말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생각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발생에 관한 이론이 어떤 식으로 변천해 나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Abiogenesis. Wikipedia. [링크]
[3]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60쪽.
[4]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115~116쪽.
[5] 『그리스 과학 사상사』 148쪽.
[6]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8~119쪽.
[7] 『그리스 과학 사상사』 168쪽.
[8] 같은 책. 165쪽.
[9] 같은 책. 166쪽.
[10]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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