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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1 DNA, RNA, TNA 그리고 생명의 탄생



생명체는 예외 없이 DNA(deoxyribonucleic acid)와 RNA(ribonucleic acid)를 유전 물질(genetic material, 遺傳物質)로 사용한다. 특히, 바이러스를 제외한 대부분 생명체는 DNA를 유전 정보 저장에 사용되며, 그 안에 담긴 유전 정보를 RNA 형태—특히 전령 RNA(messenger RNA 또는 mRNA, 傳令-)—로 복사해 단백질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이 RNA 안에 내재된 기능 전부는 아니다. 유전 정보 물질인 RNA는 상황에 따라 라이보자임(ribozyme)이라는 일종의 효소(enzyme, 酵素)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세포 내 거대 단백질 합성 공장인 리보좀(ribosome) 복합체(complex, 複合體)의 핵심 구성 분자인 rRNA(ribosomal RNA 또는 rRNA)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RNA는 그 자체로 유전 물질이며 효소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RNA 세상 상상도. 구글링(googling)을 하다가 발견했다. 원시 지구 지표면에서는 끊임없이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원시 바다에서는 초기 생명체가 RNA 형태로 물리화학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효소 반응과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초기 생명체에는 미세한 변화가 끊임없이 누적되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출처: NASA].



앞에서 언급한 RNA의 특징을 바탕으로 “초기 생명체는 RNA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진화가 거듭되면서 생물학적 기능에 일종의 분업화가 발생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RNA 세상 가설(RNA world hypothesis)”이 제안되었고 오늘날에도 이 가설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림 1] [1].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왜 RNA를 초기 생명체의 형태로 주목했을까?


생명 현상은 유전자의 연속적 흐름으로 부모의 형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손에게 어떤 식으로든 전해짐을 뜻한다. 물론 부모 형질(또는 유전 정보)이 자손에게 그대로 또는 변형되어 전달되거나 완전히 단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수준에서 유전 정보의 흐름에는 방향이 있으며, 오늘날 생명체는 그 수단으로 DNA와 RNA를 사용한다. 더불어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외부에서 영양분을 흡수 또는 섭취하며 체내에서 다양한 유기 물질을 합성한다. 특히, 이러한 유기 물질 합성에 관여하는 물질을 우리는 효소라고 부르며, 효소 대부분은 사실상 단백질이다. 효소를 통해서만,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질을 분해하거나 합성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 생명체는 “RNA 세상”의 존재 가능성을 방증(傍證)할만한 증거 또는 흔적—생명체가 사용하는 주요 에너지 형태인 ATP(adenosine triphosphate), 단백질 효소의 다양한 조효소(coenzyme, 助酵素),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효소로 기능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이보자임—을 갖고 있다.




그림 2. TNA 구조 [출처: Nature Chemistry].



최근에 RNA 세상 가설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연구가 「Darwinian evolution of an alternative genetic system provides support for TNA as an RNA progenitor」이란 제목으로 『네이쳐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란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2]. 이 연구에서는 RNA와 DNA보다 구조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생물•화학적으로 RNA와 유사한 (3’,2’)-α-L-throse nucleic acid 또는 TNA라 부르는 물질에 초점을 맞췄다 [그림 2]. 특히, 연구팀이 (실제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관심을 둔 것은 "TNA라는 물질이 진화적으로 RNA를 대체할 수 있는가?" 또는 "TNA가 RNA가 출현하기 이전의 유전 물질일 가능성이 있는가?"이다.


TNA는 구조적으로 RNA와 유사하면서도 상당히 다른데, 일반적으로 RNA는 리보스 당(ribose sugar, -糖)을 뼈대(backbone)로 갖지만, TNA는 트레오스(threose)란 물질을 뼈대로 삼는다 [그림 2]. 이 때문에 TNA가 RNA보다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며 상대적으로 더 안정하다. 게다가 TNA는 RNA를 대신해 유전 물질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실제로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로 사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라이보자임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논문의 핵심인데, 연구팀은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TNA와 같은 물질이 RNA 이전에 초기 생명체가 주로 사용했던 유전 물질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만일, RNA보다 구조적으로 단순하며 RNA 같은 양면성(兩面性) 물질이 자연 상태에 존재한다면 생명의 기원을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증거로 이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 가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TNA가 유전 물질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라이보자임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해서 TNA가 초기 생명체의 유전 물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2, 3]. 왜냐하면, 원시 지구는 오늘날보다도 더 (어떻게 보면 꽤 난잡한 상태로) 다양한 물질이 혼재(婚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가 그렇게 생각한다), TNA가 유전 물질로서 독보적인 위상(位相)을 구축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TNA와 구조적 또는 기능적으로 유사한 다른 물질이 TNA와 비슷하거나 높은 빈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둘째로, 오늘날 알려진 어떤 생명체도 TNA 또는 이와 유사한 물질을 생명 현상에 사용하지 않는다 [3]. 만약 초기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 등으로 사용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오늘날 생명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과거 초기 생명체가 TNA를 유전 물질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셋째로, 원시 지구에 TNA가 실제로 존재했냐는 것이다 [2, 3]. 현재까지 TNA가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오히려 TNA는 실험실에서만 합성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 원시 지구에서는 유전 물질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사족이지만, 국내 일급 과학 전문 언론(솔직히 비꼬는 거다)인 『사이언스 타임즈(The Science Times)』는 TNA가 과거에 실제로 존재한 물질인 것처럼 기술해놨다 [4]. 관련 기사를 쓴 객원 기자라는 사람이 이 논문을 제대로 읽었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금까지 초기 생명체 진화에 관한 최신 연구를 아주 간략하게 살펴봤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TNA는 구조적으로 단순한 유사(類似) RNA 물질이며 유전 물질과 효소 기능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RNA가 생명 현상의 주류가 되기 전에 사용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은 진화적으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증명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현실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상황적 증거도 없으므로, 이 주장이 (비록 좋은 논문에 게재되었다 하더라도) 받아들여지기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생명의 기원을 “RNA 세상” 이전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는 진정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1] RNA world hypothesis. Wikipedia. [링크]
[2] Yu H, et al. 2012. Darwinian evolution of an alternative genetic system provides support for TNA as an RNA progenitor. Nat Chem. 4: 183-187. [링크]
[3] Marshall. 08 January 2012. Before DNA, before RNA: Life in the hodge-podge world. New Scientist. [링크]
[4] 김형근. 2012년 3월 13일. 「“RNA 형성 전에 TNA가 있었다” 생명체 기원, 생각보다 단순할 수도」. 사이언스타임즈. [링크]






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