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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0 불확실성 그리고 만델브로트 혹은 자본주의

자유 글로벌 시장경제에서 금융이 무너질 확률은 매우 과소평가되고 있다. 은행 손실은 한없이 악화될 수 있다. 은행 자체가 파산하는 것은 약과이다. 다른 은행에 대한 부채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손실은 한 금융기관에서 다른 금융기관으로 퍼질 것이다. 규제 당국이 가장 상태가 나쁜 금융기관 주위에 방화벽을 쳐야만 위기가 더 이상 학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은 연달아 발생하는 법이라서 한 번은 위기를 넘기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위기는 넘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 대부분의 경제이론가들은 잘못하고 있다. 경제 모델들이 실패해도 버리는 법이 별로 없다. 대신 틀린 경제 모델들을 '고친다'. 즉, 수정하고 한정시키고 상세화하고 확장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나쁜 씨앗에서 자라 튼튼하지 않은 나무를 풀, 못, 나사, 지지대 등으로 서서히 키워낸다. 기존 경제학은 금융시스템이 선형으로 움직이고 지속적이며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며, 세계의 은행들이 많이 사용하는 리스크 모델에는 이런 잘못된 가정이 반영되어 있다.
― <자본주의 4.0>, 239쪽


만델브로트(Benoit Mandelbrot)와 허드슨(Richard Hudson)이 <프랙털 이론과 금융시장(The (Mis)behavior of Market: A Fractal View of Risk, Ruin and Reward)>에서 언급한 내용을 칼레츠키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했다.

여기서 만델브로트는 금융 위기에 대한 예를 들고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몇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본다. "기존의 경제 모델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현실은 경제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반증함에도, 경제학자들은 억지로 현상을 경제 모델에 맞추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합리적인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한다는 순환오류에 빠져 있다. 세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제 모델도 타당하지 않으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똑같은 말을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확실성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친 자본주의적이든 반 자본주의적이든 누구나가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단지 둘 사이의 차이는 친 자본주의 이론가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반 자본주의적인 이론가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필연적 모순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보는 비관론적인 경향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다 큰 차이가 있다) .

자본가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경제 이론가는 자본주의가 가장 최선이며, 가장 민주적이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도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의 심연에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최상이다'라는 명제가 무의식에 각인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외 것은 최선도 아니고, 비민주적이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스템에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자본가와 자본주의 이론가도 수두룩하니 말이다. 이런 냉소적 시선에 대해 뭐라 하지 말라. 그냥 잡설은 잡설로 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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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