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0일 자 경향신문에 "나노 구조물을 이용해 물질 표면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기술 개발"에 대한 내용의 기사가 올라왔다 [1]. 실제로 그들의 연구 성과는 2012년 5월 10일 세계적인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쳐(Nature)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2].

나는 생물학 전공이기 때문에 이 연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며, 그들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균열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에 어떤 유용성이 있는지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가 네이쳐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는 사실이나 이 분야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 그 연구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이 일이 어떤 과학기술적 의미가 있는지는 나의 우둔한 머리로 100% 파악하기는 어려워도 대충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대단한 과학적 업적보다는 이 연구의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그리고 그것은 이 연구가 내포하는 과학적 업적보다도 사실상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연구자가 지녀야 할 "연구 윤리(research ethics, 硏究倫理)"에 관한 문제이다.


네이쳐 표지에 소개된 문제의 논문 [출처: 네이쳐 온라인]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때는 9일경 실험실 동료 선배와 대화 중에서였다. "다음 아고라에 모 대학원생이 자신의 연구가 도둑질당했다며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왔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남의 연구를 도둑질해?"라며 내심 의심을 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배가 가르쳐 준 그 웹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 글을 통해 모 대학원생이 주장하는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모 대학원생의 실험실 동료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작성한 댓글과 답글도 있어 그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3, 4]. 대략적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모 대학원생은 남 교수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자신의 연구주제로 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열심히 일했다. 최초 아이디어 제안자는 남 교수가 분명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와 수고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남 교수는 자신의 이런 공로를 깡그리 무시한 채 공동 저자는 고사하고 저자 목록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확인 결과,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이란 제목의 논문에 명시된 저자는 단 세 명뿐이었으며, 놀랍게도 그들 모두는 이름 있는 대학에서 한 자리 잡고 있는 교수—이화여대 남구현 교수,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 카이스트 고승환 교수—였다 [5].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연구와 관련된 실험을 전부 교수들이 했단 말인가? 연구와 관련된 제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라면 "저 사람들은 대학에서 학생도 가르치며 자기 연구도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수업도 열심히 하고 손에 파이펫(pipette)을 들고 손수 실험에 열심히 참여하는 초능력자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실험을 위주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교수의 역할은 총괄 책임자다. 즉, 자신의 실험실에 많은 박사 후 연구원과 대학생을 거느리고, 이들의 개별 혹은 공동 연구를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조언하면서 연구 방향을 잡아주고,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업 부서의 팀장 혹은 그 이상의 위치에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간혹 교수 중에 자신이 직접 실험하는 사람(즉, 초능력자)도 있다. 어떤 교수는 자신이 직접 수행한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해 제1저자와 교신 저자를 동시에 해먹는 보기 드문 놀라운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수많은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원의 연구를 지도하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단독으로 진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교수는 학기 중에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수업도 진행해야 하며, 학위를 마친 대학원생의 논문도 심사해야 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학술지의 논문 심사와 더불어 원활한 실험실 운영 혹은 연구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연구비 확보를 위해 수많은 보고서와 씨름해야 한다 [6]. 게다가 보직까지 있는 교수라면 실험을 직접 진행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교수 자신이 연구를 직접 진행할 수 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는 일종의 관례(慣例)가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 등의 다른 실험 연구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연구자의 연구 기여도에 대한 인식이며, 이것은 논문에서 저자를 배열하는 순서에 그대로 반영된다.

대부분의 연구는 한 명 혹은 두세 명 이상이 주도해 진행하며, 교수는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외하면 통상 총괄 책임자로 연구에 참여한다. 연구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면 연구 기여도에 따라 authorship을 부여하는데, 연구에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들)에게 제1저자(first author)란 칭호가 주어지며 연구 기여도가 엇비슷할 정도로 큰 사람이 두 명 이상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공동 연구자(co-author)라고 부른다. 그리고 연구에 직접 참여했거나 혹은 직접 관여하지는 않더라도 일의 진행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은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 제4저자 식으로 나열하며, 연구 총괄 책임자 역할을 한 교수는 저자 목록의 맨 마지막에 교신 저자(corresponding author)로 명시된다 [7].

그러므로 예(例)의 모 대학원생 주장이 사실이라면, 네이쳐 표지로 선정된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이란 논문의 제1저자는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제일 높은 사람—자신이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모 대학원생—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제1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린 남구현 교수는 (진정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그의 기여가 핵심적이었다면) 공동 저자나 혹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 머물러 있었다면) 제2저자 이하 또는 교신 저자의 위치에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업계의 상식이 이런데도, 남구현 교수는 자신을 제1저자 및 교신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카이스트 고승환 교수는 남 교수와 함께 공동 교신 저자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모 대학원생이 소속해 있는 연구실의 책임 연구자인 박일흥 교수는 제2저자로 올라와 있다 [8]. 게다가 이 연구에서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되는 모 대학원생의 이름—그리고 모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연구에 참여해 실체적인 기여를 했을 각 실험실에 소속된 다른 대학원생(들)의 이름—은 기껏해야 감사의 표시를 알리는 "Acknowledgement" 에 조그맣게 올라와 있을 뿐이다. 그것도 전체 이름이 아닌 "J.-A. Jeon"이란 약어로 말이다 [5].

남구현 교수도 "석사과정 때부터 생각해온 아이디어들을 구현한 것인데 박일흥 교수가 무리한 요구를 해와 받아들이지 않았다"라며 나름 항변을 한다 [1]. 그러나 자신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해서 그 연구를 당당하게 100%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아이디어만 제시했거나, 연구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기여도가 작다면 제1저자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 아닐까? 그리고 모 대학원생이 연구에 직접 참여해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실험실 동료들도 증언하는 바인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것은 무조건 내 업적이야"라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바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3, 4]

물론, 연구에서 "처음”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일종의 우선권을 인정한다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켜져 온) 무언(無言)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최초로 아이디어를 낸 것과 실제로 그 일 대한 기여도는 분명 구분되어야 하며 각각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업계 상식이 이러한데도, 같은 팀에서 동료 연구자의 노고는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이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타인의 연구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설령 자신이 거기에 기여한 바가 있다손 치더라도) 도둑질하는 행위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화를 하나 들어보겠다. 바로 제자의 업적을 도둑질해 자신의 일인 것처럼 포장해 노벨상을 탄 어느 훌륭하신 분의 이야기다. 1960년대에 펄서(pulsar)라는 맥동(脈動)하는 전파 항성이 발견되었다. 이 천체는 매우 빠르고 규칙적인 전파를 방출했으며, 이 발견은 일약 학계의 대관심을 끌었다. 왜냐하면, 천문학자들은 펄사가 오랫동안 가설로 남아 있던 항성 진화의 흔적인 중성자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은 펄서 발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공로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 연구 책임자였던 앤터니 휴이시(Antony Hewish)에게 수여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둡고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펄서를 발견하고 열정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노벨상을 수상한 휴이시가 아니라 그의 제자인 조셀린 벨(Jocelyn Bell)이라는 젊은 여자 대학원생이란 사실이다 [9]. 실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만행위(欺瞞行爲)가 아닐 수 없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앤터니 휴이시와 그의 스승에게 뒷통수를 얻어 맞은 조셀린 벨. 당시의 모습.

[사진 출처: 순서대로 Science Photo Library, Women in Science]



연구자라면 누구나 최초의 발견을 하고 싶어하고 동료들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최고의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은 연구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도 연구자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보상심리로 작용한다. 물론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연구의 원동력이 된 사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뛰어난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 남의 노고를 무시하고 가로채는 도둑질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연구자의 상식일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상식이다. 오로지 제대로 된 연구 윤리 위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남기는 자만이 역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로 계기로 국내 연구 윤리—특히 연구 기여와 관련된 부분—가 제대로 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며, 모 대학원생에게 이번 일로 큰 불이익이 돌아가질 않길 바란다.


참고문헌


[1] 30대 과학자 논문 네이처 표지에 실렸다. 경향신문. 2012년 5월 10일. [링크]
[2] 네이쳐 온라인판의 Vol. 485, No. 7397 상단에 나와 있는 About the cover를 참조하라 [링크]
[3] 대학원생은 노예인가?? 교수가 연구결과 독식, 네이처 발표. 다음 아고라. 2012년 5월 8일. [링크]
[4] 같은 연구실 학생입니다. 다음 아고라. 2012년 5월 8일. [링크]
[5] Nam KH, Park IH, and Ko SW. 2012. 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 Nature. 485: 221-224. [링크]
[6] 말은 이렇게 썼지만, 한국에서 연구비 획득을 위한 연구 보고서는 대부분 대학원생이 작성한다. 하지만 원래는 교수 혹은 박사 후 연구원이 하는 일이다.
[7] 트위터 아이디 @ensual 님과 @sioum 님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주셨다. "수학계에서도 학술지에 투고하고 수정하는 것을 담당하는 교신 저자 개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자의 배열은 연구에 대한 기여도가 아닌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며 모든 저자는 논문에 동등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본다."
[8]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번 논문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박일흥 교수는 최근 남 교수에게 자신을 교신 저자로 넣고 남 교수의 이름은 저자 목록에서 빼야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박 교수는 남 교수를 교신저자로 등록한 네이쳐에도 항의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링크]
[9]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윌리엄 브로드, 니콜라스 웨이드 저/김동광 옮김. 미래인. 2008년.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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