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라는 과학철학자가 저술한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Nonsense on Slits: How to Tell Science from Bunk)』이란 책을 발견했다. 책일 빌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도서 대여가 돈 드는 일도 아니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대출 신청을 했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곧바로 접하지 않은 이유는 이 책을 “그저 흔하디흔한 과학철학서”나 “시중에 많이 나도는 사이비 과학 폭로서”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판단이 근거라곤 전혀 없는 개인적 편견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정말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출처: 알라딘]



이 책은 연성 과학(soft science, 軟性科學)과 경성 과학(hard science, 硬性科學)의 특징을 살피면서 카를 포퍼(Karl Popper)라는 고집스러운 과학철학자 할아범이 오래전에 제기한 과학의 경계 문제(the Problem of demarcation, 境界問題)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늘날 과학으로 인정되거나 스스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다양한 과학에 관해 고찰하면서, 이들을 진짜 과학(real science), 거의 과학(almost science) 그리고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으로 분류했다. 영광스런 무대 위에 오른 후보는 다음과 같다.


(1) 철학보다 더욱 철학적이 되어버린 현대 물리학의 다채로운 우주론(cosmology, 宇宙論), (2) 진화생물학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진정한 과학인지는 진실로 의심되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 進化心理學), (3) 한때 미국을 풍미했던 외계 지적 생명체에 관한 대대적 탐사 프로젝트인 세티(SETI,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4) 진정한 과학인 진화생물학과 사이비과학의 전형(典型)인 너무나도 끈질기고 병적으로 집요한 창조론(creationism, 創造論)과 그 적자(嫡子)인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知的設計論), (5) 과학이 아니라고 오래전에 판명되었지만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성술(astrology, 占星術) 등등. 진화심리학에 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저자는 진화심리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인간을 다루지 않는) 사회생물학은 엄연한 (거의) 과학이라고 판단한다.


저자는 언론에 의해 조장되거나 왜곡된 과거와 오늘날 과학의 현주소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피면서, 비과학적 주제가 언론을 통해서 어떻게 과학적으로 포장되는지,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해서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처럼 인식되어버리는지, 그리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과학을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더불어, 저자는 유명한 과학자나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리고 과거와 오늘날의 지식인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씽크 탱크(Think Tank)가 불리는 집단의 사례를 분석해 이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는지 보였다.


과학 진영과 비과학 진영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이 책에서 다루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지적 사기(intellectual impostures, 知的詐欺)라 불리는 물리학자 앨런 소칼(Alan Sokal)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된 과학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과학을 오해하는지 설명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파울 파이어벤트(Paul Feyerabend)라는 괴팍하면서도 걸출한 철학자의 과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오해의 실체를 파헤쳤다. 이와 함께, 저자는 과학을 교조적 선언으로 받드는 과학주의(scientism, 科學主義)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피글리우치는 과학이 발전하는 원리에 관해서도 고찰했다. 실제로, 그는 책에서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유명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일이 과학 발전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물리학에서는 그런 측면이 있지만, 생물학 같은 분야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실로, 이 책은 정말 잘 쓰인 책이다. 과학철학자이면서도 식물학과 유전학을 전공한 저자의 경험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 책의 내용은 실험 생물학을 전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크게 와 닿는다. 덧붙여, 이 책은 그 어떤 대중적 과학철학/과학사회학 도서보다도 재미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숨넘어갈 정도로 낄낄거리며 웃은 적도 있다. 그만큼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촌철살인(寸鐵殺人) 그 이상의 의미와 유머로 가득하다. 과학이 무엇인가, 과학철학이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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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옹호단체로 알려진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일명 교진추)는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며 과학 교과서에 기재된 시조새와 말의 진화 관련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청원서를 2011년 12월과 2012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이 전에 사전 물밑 작업의 일환으로 “교과서진화론개정연구소”라는 교진추 산하 단체를 통해 『교과서 속 진화론 바로잡기』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교육과학기술부에게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냄으로써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 집단, 즉 교진추에게 오랜 숙원이었던 “진화론을 격파하고 창조론을 가르침으로써 과학을 통해 주 여호와의 영광을 증거하기”는 마침내 그 첫 단추 끼우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주 여호와의 은혜로우심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네이쳐(Nature)란 저 위대하신 과학 잡지께서 「한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굴복하다(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란 매우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국을 공개적으로 디스했기 때문이다 [1, 2]. 하지만 교진추의 이러한 시도는 한국 과학기술인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3]. 그 결과, 지난 2012년 6월 24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전문성을 갖춘 과학자 단체를 통해 과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을 수렴해 시조새 및 말의 진화 등과 관련한 내용의 과학 교과서 삭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면서,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과학기술한림원”을 전문협의기구로 지정해 관련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4].


이런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못해 현실감 제로인 게으른 정부 관련 부처(특히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 사회에서 과학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별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 한국 주요 과학단체(의 회원이라기보다는 이 단체에서 힘 좀 쓰신다는 지체 높은 어르신들)의 멍청함, 그리고 창조신화라는 허황된 판타지를 멀쩡한 과학 안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흔히 창조론 또는 지적설계론이라 불리는 의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 또는 사이비과학(似而非科學)의 한 종류와 이들의 몸통인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난 오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5].


상황이 이쯤 되면 한국 개신교의 전반적인 파워 또는 세력이 꽤 강한 듯한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때문에 한국에서 시조새 논란이 유달리 더 불거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한국 종교 가운데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2005년 기준으로 한국 종교 인구 통계를 조사한 결과, 개신교 18.3%, 천주교 10.9%, 불교 22.8% 그리고 무교는 46.5%로 나타났는데,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도 한국 기독교 인구는 29.2%로 낮은 편이다 [6]. 따라서 합계 30%도 안 되는 기독교인이―그것도 그들 전부가 진화론에 대해 같은 견해를 보이지 않으며 이들 가운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는데―하나님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지금과 같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불어, 개신교 근본주의자의 정부에 대한 입김이 이례적으로 강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도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전부터도 개신교 근본주의는 끈질기게 교과서 문제를 물고 늘어졌으며 언제나 정부의 고집불통 때문에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일이 이례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MB정부 일부 고위 관료의 종교 편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상황파악을 잘 못 하는 담당 관료의 안일함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한국은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한 종교의 편만 드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가 개신교 편향성을 아주 일부라도 드러낸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종교인 가운데 22.8%를 차지하는 불교계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촌극이 있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한국인의 진화론에 대한 이해 정도에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진화론에 대한 시각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에 대한 거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설문조사 결과가 하나 있다. 2008년 EBS에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탄생 200주년 그리고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출판 150주년을 기념해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이때 제작진은 코리아리서치라는 설문조사기관을 통해 한국의 19세 이상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화론의 신뢰 정도>를 조사했으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7]. 우선 전체 응답자 중 62.2%가 “진화론을 믿는다” 그리고 30.6%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며, 이 가운데 8.9%는 “진화론을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11%는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해 진화론을 믿고 있어도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매우 적은 비율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그 이유에 대해 알아봤을 때 “과학적으로 불충분하다”가 41.3%, “종교적 신념과 맞지 않다”가 39.2%로 비슷한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진화론과 관련된 용어 다섯 가지 용어(종의 기원, 돌연변이, 이기적 유전자, 성선택, 자연선택)에 대한 인지도를 확인했을 때, ‘돌연변이’에 대한 인지도는 90.6%로 가장 높았으며, 다윈의 유명한 저작 이름인 ‘종의 기원’은 58.3%로 두 번째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 ‘성선택’, ‘자연선택’ 등에 대한 인지도는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이 설문 조사가 매우 지엽적이고 표본크기가 작으며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결과라서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유의미한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결과가 지금도 유효하다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진화론에 대한 이해도는 상당히 낮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조사 대상 중 약 90%가 안다고 대답한 ‘돌연변이’는 진화론만의 용어도 아니다. 더불어 ‘종의 기원’이란 책의 이름은 이미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성선택’과 특히 다윈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에 대한 인지도가 진화론 찬성자와 반대자를 포함해 50%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은 한국 과학 교육 시스템에서 진화론 교육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루어졌는지를 가늠케 한다. (방송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생명의 기원과 관련한 학교의 교육 방향>이라는 설문 조사도 있었던 모양인데, “현행대로 진화론만 가르쳐야 한다”가 겨우 24.7%, “진화론과 창조론을 모두 가르쳐야 한다”가 62.7%라는 매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는 얘기가 모 블로그에 적혀 있기도 하다 [8, 9]).


어쨌든 앞에서 언급한 대로 진화론 반대든 찬성이든 진화론을 잘 모른다는 측면에서는 서로 비등해 보인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과학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실제로 "과학"을 과학 그 자체가 아닌 대학 입학시험에서 고득점을 취득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한국의 전역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위 현상, 즉 엄연히 고등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침에도 진화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진화론 및 진화 관련 개념이나 지식은 점수를 따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학생과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 다수가 진화론 전반 또는 진화론 개념이나 가설 등이 입시에 중요치 않다고 인식하면, 그것이 정규 교과 과정에 실려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넘어갈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특히 생물 교사)가 진화 이론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비단 진화론, 더 나아가 생물 교과 과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학교육 전반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처한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기괴한 과학교육 시스템 전반을 수정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공교육 시스템 전반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따위 괴물 같은 입시체계는 다 사라져 버려야 해!"가 아마도 정답일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게 될 리는 절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회 시스템과 맞물려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자 본인도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만약 나 정도 수준에서 그게 가능했다면,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내 수준에 걸맞게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남들도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평범함 그 자체다. 그리고 매우 지엽적이다.  따라서 순전히 교과서 제작 문제로 한정해 몇 가지 사항을 고찰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전부는 아니더라도 과학자 다수가 교과서 집필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시조새 논란이라는 촌극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문제의 발단은 과학 교과서가 과학이론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에 있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과학 동향을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연구자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공통된 의견을 묻고 반영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가이드라인 하나 제시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 제작의 핵심적인 주체인 정부도 과학계의 의견과 최신 연구 동향을 공교육 교과 과정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하며 게으름 피우지 않고 끊임없이 관련 학계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논의는 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된 과학 관련 단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시조새 논란에서 보듯이 교진추는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 단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과학 연구자 다수가 인정하는 과학이 아닌, 말 그대로 사이비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서 개정이나 오류를 수정하는 등의 과학교육과 관련한 중차대한 문제는 오로지 공신력 있는 과학 단체의 논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 과학교사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학생과 직접 대면해 과학을 가르치는 이들 교사가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과학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과학 교과서 내용이 아무리 좋아봤자 그 내용이 학생에게 제대로 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조새 논란과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매우 지엽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리 신선하지도 않은 해석과 방안을 뻔뻔스럽게 내놓았다. 비록 바로 위에서 언급한 방안이라고 해봤자 고작 교과서 문제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교육에서 과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교과서 문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 즉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해야 할 것이며, 오로지 과학교육을 대학 입시시험에서 고득점을 취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하는 근시안적인 인식을 버리고 말 그대로 과학을 과학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하는 본질적인 인식 자체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Park SM. 2012.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 Nature 486: doi:10.1038/486014a [링크]
[2] 오철우. 2012년 6월. [수첩] 시조새 논란, ‘과학 대 종교’ 구도로 무얼 얻을까? 한겨례 [링크]
[3]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과학 교과서 시조새 관련 논란 설문조사 결과. [링크]
[4] 김규태. 2012년 6월. 시조새-말 진화과정, 교과서 삭제 요청 반영되지 안될 듯. 동아 사이언스. [링크]
[5] 내가 “한국형 개신교 근본주의”라고 한정 지어 언급한 이유는 이들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독교의 독특한 유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그것이 종교든 종교가 아니든 근본주의자는 정말 쓸데없는 일 가지고 죽어라 덤벼든다. 따라서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의 근본주의자는 인간 역사의 양아치라 할 수 있다.

[6] 2005년 기준 대한민국 종교인구 통계 [링크]
[7] EBS <다큐프라임>. 2009년 2월. "한국인 30%, 진화론 안 믿는다" - 다큐프라임 설문조사 [링크]
[8] 진화론에 대한 국가별 신뢰도 (2006). [링크]
[9] Unfinished business. Charles Darwin’s ideas have spread widely, but his revolution is not yet complete. 2009. The Economist [링크] : 한국과 비슷하게 개신교 근본주의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미국은 (걍 미국형 개신교 근본주의라고 하자) 우리보다도 더 낮은 비율로 진화론 찬성을, 우리보다도 더 높은 진화론 반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창조론”은 절대로 과학이 아니라며 공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미국형 개신교 근본주의 단체가 진화론 이외의 것—그렇다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인가?—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서 진화론의 운명은 달라질 수도 있다. 달라진다고 해서 “진화론”을 못 가르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 일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이것에 대한 최근 진행 상황은 필자가 게으른 관계로 아직 확인을 안 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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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창세기?

2012. 1. 15. 14:31 from 잡글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쓴 『왜 다윈이 중요한가』(Why Darwin Matters)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다. 마이클 셔머, 그는 누구인가? 내가 일일이 찾아서 쓰긴 귀찮고 하니 알라딘의 작가소개를 인용하기로 하자.

리처드 도킨스, 故 스티븐 제이 굴드 등과 함께 과학의 최전선에서 사이비 과학, 창조론, 미신에 맞서 싸워온 인물이다. 1954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페퍼다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실험심리학 석사, 클레어몬트대학원대학교에서 과학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20년 동안 교수로 있으면서 옥시덴탈대학,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글렌데일대학에서 심리학과 진화론, 과학사를 강의했다.
1992년 과학저널 『스켑틱(Skeptic)』을 창간해 현재까지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1997년 과학주의 운동의 본거지로 회의론자 학회(Skeptics Society)를 설립해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사이언티픽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고정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클레어몬트대학원대학교 경제학 부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모든 사물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회의론을 전파하고자 강연 및 저술, 대중 매체 활동을 벌이면서, 대중을 현혹하는 심령술사와 창조론자, 사이비 역사학자와 컬트 집단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과학과 이성, 나아가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정면으로 맞서며 대중을 선도해온 과학계의 전사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故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를 일컬어 “이성의 힘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는 행동가이자, 대중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저술활동도 활발히 하는 그는 이미 여러 권의 저작을 선보였는데, ‘믿음의 3부작’이라 불리는 대표작 가운데 ‘사이비 과학과 미신, 그 밖에 우리를 미혹케 하는 것들’에 관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Why People Believe Weird Things)》를 필두로, ‘종교의 기원과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를 주제로 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 믿는가(How We Believe)》, ‘도덕성의 진화적 기원’을 다룬 《선악의 과학(The Science of Good and Evil)》이 있으며, 이 외에도 ‘어떻게 마음이 작동하고 우리의 사고가 오류를 범하는지’ 파헤친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과학과 사이비 과학 사이의 애매모호한 공간’을 말하는 《과학의 변경 지대(The Borderlands of Science)》, ‘찰스 다윈과 자연선택 이론을 공동으로 발견한 앨프레드 월리스’의 평전 《다윈의 그늘에서(In Darwin's Shadow)》,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제시한 《왜 다윈이 중요한가(Why Darwin Matters)》 등이 있다.


『왜 다윈의 중요한가』란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은 서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그들은 왜 과학이 아닌가? 그렇다면 종교는 진화론과 양립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 어투로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면서 마지막에 그는 "성경의 창세기를 현대 과학의 언어로 재해석해 쓴다면 이런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글을 마쳤다. 그 글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번역판이 재미있으니 원문으로 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태초에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정오에 하느님께서 양자 거품의 요동으로부터 빅뱅을 창조하셨으며, 우주 인플레이션과 팽창하는 우주가 뒤를 이었다. 깊은 위에는 어둠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쿼크들을 창조하셨고, 쿼크들로 수소 원자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수소 원자들이 융합하여 헬륨 원자가 되라고, 융합 과정에서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라고 명령하셨다. 빛을 내는 그것을 태양이라 부르셨고, 그 과정을 행융합이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는 빛을 흐뭇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이제 당신쎄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지구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저녁이 가고 아침이 되어 첫째 날이 지나갔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융합으로 빛을 내는 것들이 하늘에 많이 있으라 하셨다. 융합으로 빛을 내는 것들 중 일부를 무리지어 은하계라고 부르셨는데, 지구에서 보기에 이 은하계들이 수백만 광년, 심지어 수십억 광년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이냐면, 기원전 4004년에 일어난 첫 창조보다 은하계들이 먼저 창조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혼란스러워서, 하느님께서는 힘 잃은 빛을 창조하셨다. 그렇게 해서 창조 이야기는 보존되었다. 그리고 적색 거성, 백색 왜성, 퀘이사, 펄사, 초신성, 웜홀, 심지어 아무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진기하고 다채로운 것들을 많이 창조하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에도 구속될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에서 정보가 탈출할 수 있는 호킹 복사를 창조하셨다. 이것을 만드시느라 하느님께서는 힘 잃은 빛보다 더 녹초가 되셨다. 이렇게 저녁이 가고 아침이 되어 둘째 날이 지나갔다. … (후략)


이후에도 셋째 날에서 일곱 째 날까지 현대 과학의 언어로 창세기에서 지구 탄생에 대한 그 순간을 재해석했는데, 정말 재미있다. 직접 책을 읽어보시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시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원문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이클 셔머가 도킨스나 굴드 만큼이나 글을 상당히 잘 쓴다는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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