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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16 <자본> 번역 비교 및 비판 - '독일어 초판 서문'에 대한 부분
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43~49쪽에 해당한다.
 



제1판 서문 [1.1]

여기에 제1권으로 출간되는 이 저작은 내가 1859년에 출간한 『경제학 비판(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의 속편에 해당한다. [1.2] 전편과 이 속편 사이에 오랜 공백이 있었던 까닭은 몇 년 동안 계속된 병으로 내가 작업을 중간에 여러 번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1.1.
1867년 출간된 자본론 제1권 독일어판에 대한 「서문(Preface to the First German Edition)」이다.
1.2.
'경제학 비판'이라고 번역한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는 '정치경제학 비판'이 옳은 번역이라고 본다. 실제로 SS와 BF에서는 『A Contribution to the Criticism of Political Economy』라고 번역했다. 정의상 정치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경제학과 법학 그리고 정치학에 기원을 둔 학제적인 연구 분야'를 지칭하며, 정치 기관과 정치 환경이 시장 행동 양태에 끼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 교수가 '정치경제학'을 '경제학'이라고 번역한 것은 번역상의 편리함이라기보다는 『자본론』을 오로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국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비평에 대에 대해 EM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번역사를 참조하면 … 경제학이 맞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학의 원어가 political economy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오히려 [경제학=주류], [정치경제학=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라는 게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편의 내용은 이 책의 제1장에 요약되어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앞뒤 저작들 사이의 맥락을 완전하게 이어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서술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는 전편에서 단지 암시하는 데 그쳤던 많은 부분을 이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했으며, 반대로 전편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던 것을 이 속편에서는 단지 암시하는 정도만으로 그치기도 하였다. [2.1] 물론 가치이론과 화폐이론의 역사를 다룬 절은 이 속편에서 완전히 생략하였다. 그렇지만 전편을 읽어본 독자는 제1장의 각주에서 이들 이론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1.
(SS)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st,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BF)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 many points only hinted at in the earlier book are here worked out more fully, while, conversely, points worked out fully there are only touched upon in this volume.
(DK)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 sind viele früher nur angedeuteten Punkte hier weiter entwickelt, während umgekehrt dort ausführlich Entwickeltes hier nur angedeutet wird.
'Soweit es der Sachverhalt irgendwie erlaubte'를 강 교수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로, SS와 BF는 'As far as circumstances in any way permit'으로 번역했다. 의미상 큰 차이는 없겠지만, 독일어 원본을 따른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허락하는 한'이 적당해 보인다.

어떤 학문에서든 언제나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3.1] 그래서 이 책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의 분석을 다루는 절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나는 가치실체(Wertsubstanz)와 가치크기(Wertgröße)는 되도록 평이하게 분석하였다. 1) [3.2] 가치형태는 화폐형태(Geldform)를 완성된 모습으로 가지며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3.3]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Menschengeist)은 2천 년 이상이 지나도록 이것을 해명하는 데 실패하였다. [3.4]

3.1.
(SS) Every beginning is difficult, hold in all sciences.
(BF) Beginnings are always difficult in all sciences.
(DK) Aller Anfang ist schwer, gilt in jeder Wissenschaft.
'Wissenschaft'는 일반적으로 'science(과학)'와 'scholarship(학문)'을 뜻한다. SS와 BF에서는 'Wissenschaft'를 전부 'scienc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이에 해당하는 말을 거의 모두 '학문'으로 번역했으며, 일부에서만 '과학'으로 번역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scientific'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적인' 혹은 '과학의'란 말로 번역했다.) 현대 독일어에서는 '자연과학'을 뜻하는 말로 'Naturalwissenschaft'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현대 독일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강 교수가 'Wissenschaft'를 '학문'으로 번역한 것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언어 사용의 시대적 혹은 역사적 맥락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과학이 학문의 영역에서 독립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특히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 과학은 개별적 학문으로서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더불어 마르크스는 자신의 자본에 대한 분석 및 연구는 일반적인 속류 경제학자의 연구와는 다르게 객관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자본론』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에 빗대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Wissenschaft'는 '학문'이 아닌 '과학'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science'란 단어가 '과학'뿐만 아니라 '학문'이라는 포괄적 의미 또한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술과 서신(書信) 여러 곳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연구를 자연과학 연구에 빗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가 제안한 것과 같이 '학문'보다는 '과학'이라고 번역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2.
(SS) That which concerns more especially the analysis of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I have, as much as it was possible, popularised.
(BF) I have popularized the passages concerning the substance of value and the magnitude of value as much as possible.
(DK) Was nun näher die Analyse der Wertsubstanz und der Wertgröße betrifft, so habe ich sie möglichst popularisiert.
DK의 'möglichst'는 'as possible'을 뜻하는 부사로, SS와 BF에서는 각각 'as much as it was possible'과 'as much as possible'이다. 강 교수는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으로 번역했는데, DK에는 이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3.3.
(SS)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elementary and simple.
(BF) The value-form, whose fully developed shape is the money-form, is very simple and slight in content.
(DK)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강 교수가 번역한 '완성된'은 영어판에서는 'developed(발전된)'로 번역되어 있다. 사실 '완성'과 '발전'은 둘 다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완성'은 '더는 변화가 불가능함'을 뜻하는 반면에 '발전'은 '앞으로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가치형태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단 화폐형태로 나타나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분명히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 교수의 번역은 좀 이상하다. 더불어 "아무 내용이 없고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란 번역도 영어판 번역과는 다르다. 영어판 번역은 "매우 단순한 형태이고 내용도 빈약하다"이다. '아예 없는 것'과 '빈약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sunanugi님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MEW판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Die Wertform, deren fertige Gestalt die Geldform, ist sehr inhaltslos und einfach." (MEW 참조). 일단 평범하게 독해를 하면 "가치형태는, 그것의 다 된 모습이 화폐형태인데, 아주 내용이 없고 단순하다."이다. 독일어 형용사 'fertig'는 '완성된'이라고 번역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서구어끼리의 일차적 의미 연관 상 영어 ready에 해당한다. "밥이/준비가 다 되었다/끝났다" 할 때의 그런 느낌이다. 한국어의 '완성된'에 해당하는 독일어 형용사나 과거분사는 'fertig' 말고 많이 있다. 예컨대, 'vollendet' 등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내 기준으로는 오히려 간결하게 옮기지 못한 게 문제인 것 같다.
3.4.
영어판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DK도 확인해본 결과 두 단락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 교수가 번역과정에서 임의로 한 단락을 두 단락으로 분리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보다 훨씬 더 내용이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다른 가치형태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적어도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4.1] 왜 그럴까? 그것은 완성된 신체를 연구하는 것이 그 신체의 세포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적 형태에 대한 분석에서는 현미경이나 화학적인 시약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4.2] 거기에서는 이런 것들 대신에 추상화할 수 있는 힘(Abstraktionskraft)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그 경제적인 세포형태에 해당한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들 형태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사소한 것만 문제 삼는 듯이 보일 것이다. 실제로 거기에서는 매우 사소한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적인 해부에서 매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4.3]

4.1.
(SS)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for more than 2,000 years sought in vain to get to the bottom of it all, whilst on the other hand, to the successful analysis of much more composite and complex forms,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BF) Nevertheless, the human mind has sought in vain for more than 2,000 years to get to the bottom of it, whil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t least an approximation to a successful analysis of forms which are much richer in content and more complex.
(DK) Dennoch hat der Menschengeist sie seit mehr als 2.000 Jahren vergeblich zu ergründen gesucht, während andrerseits die Analyse viel inhaltsvollerer und komplizierterer Formen wenigstens annähernd gelang.
바로 앞 단락의 마지막 문장과 이 단락의 첫 문장은 DK에서는 하나로 연결된 문장이다. 강 교수는 하나의 문장을 번역의 편의를 위해 두 문장으로 나누었고, 그것도 모자라 개별 단락으로 나눠버렸다.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번역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랬겠지만, 이런 식의 자의적 구성 변경은 저자(마르크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왜곡 혹은 희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할 때는 반드시 하나의 문장은 하나로, 하나의 단락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하나의 단락으로 번역해야 한다.
영어판을 기준으로 다시 번역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정신은 2000년 이상 동안 그 모든 것(혹은 그것)의 진상을 밝히려고 헛되이 노력해 왔지만, 매우 혼합되고 복잡한 형태(혹은 내용상으로 풍부하고 훨씬 더 복잡한 것)에 대한 성공적인 분석에는 최소한 접근해왔다."
4.2.
영어판에서는 '화학적 시약들'을 'chemical reagents'라고 번역했다. 우리말로도 '화학 약품' 내지 '화학 시약'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4.3.
(SS)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they are of the same order as those dealt with in microscopic anatomy.
(BF) To the superficial observer, the analysis of these forms seems to turn upon minutiae. It does in fact deal with minutiae, but so similarly does microscopic anatomy.
(DK) Es handelt sich dabei in der Tat um Spitzfindigkeiten, aber nur so, wie es sich in der mikrologischen Anatomie darum handelt.
DK의 'Spitzfindingkeiten'을 SS와 BF에서는 'minutiae'로 번역했는데, 강 교수는 '사소한' 혹은 '사소한 것'으로 번역했다. 물론 'minutiae'가 '사소한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상세한 것'이란 뜻도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서문과 그의 다른 서신(書信)에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내용을 자주 언급했는데, 『자본』의 「독일어 초판 서문」에서도 현미경을 통한 세포 관찰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 단락을 전부 읽어봤을 때, 'minutiae'는 의미상 '상세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마지막 문장의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가 그것을 반증하는데, 우리가 미시적인 해부의 방법론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자 할 때, 그것은 사소한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것을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미시적인 해부(microscopic anatomy)'도 잘못 번역되었다. EM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자본 혹은 상품 연구를 '현미경을 이용한 세포 연구'에 비유한 마르크스의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microscopic anatomy'는 ‘미시적 해부’가 아니라 '현미경 해부학' 혹은 '미세해부학(微細解剖學)'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 참고로, 미세해부학은 오늘날의 조직학(histology)이며 일반적 의미의 해부학은 육안 해부학(gross anatomy)이라고 한다. 마르크스가 오늘날 『자본론』을 집필했다면 microscopic anatomy보다는 histology를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다. 현대에는 전자현미경이 있으니 electron microscopy를 대신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더불어 sunanugi님께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주셨다.
영어 'minutiae'에 해당하는 독일어본의 단어는 'Spitzfindigkeiten'이다. 'Spitzfindigkeiten'는 복수이고 단수가 'Spitzfindigkeit'인데, 오늘날 영어로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본 결과 'subtlety'라고 나온다. 에디숑 소시알판의 불어본에서도 영어 'subtlety'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subtilité'로 되어 있다. 형태론상 명사 'Spitzfindigkeit'는 형용사 'spitzfindig'에서 파생된 추상명사인데, 그 의미의 성분은 "Spitz(뾰족한 끝) + find(동사 finden의 어간; '찾다'의 뜻) + ig(형용사 만드는 어미)"이다. 그러니까 'spitzfindig'란 단어는 그 일차적 의미가 '디테일한 것들 찾아내는'이란 뜻인데, 용법은 부정적인 의미로 쓸 수도 있고, 긍정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문맥상 판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사학적으로 'Spitzfindigkeit'는 (DK에서) 다음 문장의 'Schwerverständlichkeit(이해하기 어려움)'이란 단어와 미묘하게 상응하고 있는데, BF 번역은, 엥겔스의 권위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어휘 선택 등에 있어서 너무 자주 SS를 그냥 따른다는 게 일반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가치형태에 관한 절을 제외하고는 이 책이 어렵다는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고 또 그럼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자 하는 그런 독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연과정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그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와 가장 덜 교란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관찰하며 또한 그것이 순수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도록 보장된 조건에서 그것에 대한 실험을 실시한다. [6.1] 내가 이 책에서 연구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과 그 양식에 상응하는 생산관계(Producktionsverhältnisse) 그리고 교환관계(Verkehrsverhältnisse)이다. 그것들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장소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이론적 논의에서 주로 영국의 사례들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독일의 독자들이 영국의 산업노동자와 농업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바리새인처럼 경멸을 보내거나 독일에서는 사태가 그렇게 악화되어 있지 않다고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만 한다. [6.2]  "바로 당신 자신에 관한 이야기요(De te fabula narratur)!" [6.3]

6.1.
(SS)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physical phenomena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typical form and most free from disturbing influence,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that assure the occurrence of the phenomenon in its normality.
(BF) The physicist either observes natural processes where they occur in their most significant form, and are least affected by disturbing influences, or, wherever possible, he makes experiments under conditions which ensure that the process will occur in its pure state.
(DK) Der Physiker beobachtet Naturprozesse entweder dort, wo sie in der prägnantesten Form und von störenden Einflüssen mindest getrübt erscheinen, oder, wo möglich, macht er Experimente unter Bedingungen, welche den reinen Vorgang des Prozesses sichern.
SS, BF와 강 교수의 번역은 간결하지도 않을뿐더러 완전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번역했다. "물리학자는 매우 간결하고 교란받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거나, 가능하다면 그러한 현상이 순수하게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에서 실험한다."
6.2.
(SS)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labourers, or in optimist fashion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BF) If, however, the German reader pharisaically shrugs his shoulders at the condition of the English industrial and agricultural workers, or optimistically comforts himself with the thought that in Germany things are not nearly so bad,
(DK) Sollte jedoch der deutsche Laser pharisäisch die Achseln zucken über die Zustände der englischen Industrie- und Ackerbauarbeiter oder sich optimistisch dabei beruhigen, daß in Deutschland die Sachen noch lange nicht so schlimm stehn,
SS, BF 그리고 DK 어디에서도 독일 독자가 영국 노동자를 비난하거나 경멸한다는 표현은 없다. SS와 BF는 'shrugs his shoulders at' 그리고 DK는 'die Achseln zucken über'라는 '어깨를 으쓱한다'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깨를 으쓱할 때는 잘 모르거나 혹은 젠체할 때다. 하지만 타인을 비난할 때 어깨를 으쓱하지는 않는다. SS, BF 그리고 DK의 이 문장은, 마르크스가 영국의 상황을 잘 모르는 독일 독자와 설령 알고 있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일 독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므로 강 교수의 번역은 "당시 독일인이 영국 노동자를 우습게 봤다"라는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만일 독일 독자가 영국의 산업 노동자와 농업 노동자에 대해 (동정하거나 혹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바리새인처럼 어깨를 으쓱하거나, 혹은 독일의 상황은 당분간 나쁘지 않다며 낙관적으로 안심한다면,"
6.3.
B.C. 65~8년 사이에 활동했던 로마 출신의 시인 호라티우스(영어로는 Horace, 라틴어로는 Horatius)의 작품에서 인용했다. (Satires, Bk I, Satire 1).

본질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적 생산의 자연법칙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적대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법칙 그 자체, 즉 철칙(鐵則)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 관철되어나가는 경향, 바로 그것이다. [7.1] 산업적인 선진국은 산업적인 후진국에게 언젠가 그들이 도달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7.1.
(SS)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orking with iron necessity towards inevitable results.
(BF) It is a question of these laws themselves, of these tendencies winning their way through and working themselves out with iron necessity.
(DK) Es handelt sich um diese Gesetze selbst, um diese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 und sich durchsetzenden Tendenzen.
DK의 'mit eherner Notwendigkeit wirkenden'을 SS는 working with iron necessity'로 BF는 'working out with iron necessity'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철칙처럼 필연적으로 작용하면서'라고 번역했는데, 이런 식의 독일어(혹은 영어 표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용례(用例)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쳐두기로 하자. 우리나라(독일-옮긴이)에서 완전한 형태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 즉 예를 들어 제대로 된 공장의 경우 그 상황은 영국보다 훨씬 더 열악하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공장법(the Factory Acts)이라는 균형추(均衡錘)가 없기 때문이다. [8.1]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우리는, 나머지 서유럽 대륙 전체와 꼭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이 빚어내는 고통은 물론 그 발전이 더딘 데에서 비롯되는 고통까지도 함께 겪고 있다. 근대적인 해악들과 함께 많은 전통적인 해악들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데, 이런 전통적인 해악들은 낡은 생산양식의 잔재로부터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더구나 이런 낡은 생산양식에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정치적 관계들까지도 함께 붙어 있다. [8.2] 우리는 살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죽은 것으로부터도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사로잡도다(Le mort saisit le vif)!"

8.1.
(SS) But apart from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is fully naturalised among the German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 the condition of things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wanting.
(BF) But in any case, and apart from all this, where capitalist production has made itself fully at home amongst us, for instance in the factories properly so called, the situation is much worse than in England, because the counterpoise of the Factory Acts is absent.
(DK) Aber abgesehn hiervon. Wo die kapitalistische Produktion völlig bei uns eingebürgert ist, z.B. in den eigentlichen Fabriken, sind die Zustände viel schlechter als in England, weil das Gegengewicht der Fabrikgesetze fehlt.
DK, SS 그리고 강 교수의 번역에서 두 문장으로 되어 있는 표현을 BF에서는 한 문장으로 나타냈다. 문장을 합쳐서 자연스럽게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제쳐놓기로 하자.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자리 잡은 곳, 즉 실제 공장에서 상황은 영국보다 나쁜데, 왜냐하면 공장법이라는 균형추가 없기 때문이다."
8.2.
(SS) Alongside the modern evils,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oppress u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ntiquat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inevitable train of social and political anachronisms.
(BF) Alongside the modern evils, we are oppressed by a whole series of inherited evils, arising from the passive survival of archaic and outmoded modes of production, with their accompanying train of anachronistic social and political relations.
(DK) Neben den modernen Notständen drückt uns eine ganze Reihe vererbter Notstände, entspringend aus der Fortvegetation altertümlicher, überlebter Produktionsweisen, mit ihrem Gefolg von zeitwidrigen gesellschaftlichen und politischen Verhältnissen.
DK의 'Fortvegetation'을 SS와 BF는 'passive survival'로 번역했다, 강 교수는 '잔재'로 번역했다. 'Fort'는 '성(혹은 성채, castle)'이란 뜻이고 'vegetation'은 '숲'이란 뜻인데, 둘을 합치면 '숲의 성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으로만 보면 '(수동적) 잔재(혹은 생존)' 등의 해석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사전을 찾아봐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영국의 사회통계와 비교해볼 때, 독일과 나머지 서유럽 대륙의 사회통계는 매우 빈약하다. 그렇지만 이들 빈약한 통계도 마치 베일 속에 감추어진 메두사(Medusa)의 머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의 암시는 충분히 제공해주고 있다. [9.1] 만약 우리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 사태의 진실을 조사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이런 조사를 수행하는 데서 필요한 인력, 즉 영국의 공장감독관, 또는 '공중위생' 상태를 보고하는 전문의사들 그리고 부녀자·아동에 대한 착취상태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전문위원들처럼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9.2] 페르세우스(Perseus)는 괴물을 잡기 위해서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모자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는 괴물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서 그 모자로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9.1.
(SS)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 head behind it.
(BF) But they raise the veil just enough to let us catch a glimpse of the Medusa’s head behind it.
(DK) Dennoch lüftet sie den Schleier grade genug, um hinter demselben ein Medusenhaupt ahnen zu lassen.
마르크스는 바로 앞 문장에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조사한 내용을 담은) 통계의 빈약한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서는 빈약한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처참한 현실을 알 수 있다고 긍정하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하면 우리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SS와 BF는 DK의 'Dennoch'를 'But'으로 번역했는데, 'Dennoch'는 'nevertheless'를 뜻한다. 그러므로 문맥의 흐름을 통해 파악해본다면, 영어 번역은 접속사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Nevertheless'를 사용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에도 알맞아 보인다.
9.2.
(SS) We should be appalled at the state of things at home,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appointed periodically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as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the English factory-inspectors, her medical reporter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housing and food.
(BF) We should be appalled at our own circumstances if, as in England, our governments and parliaments periodically appointed commissions of inquiry into economic conditions; if these commissions were armed with the same plenary powers to get at the truth; if it were possible to find for this purpose men as competent, as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 as are England’s factory inspectors, her medical reports on public health, her commissioners of inquiry into the exploitation of women and children, into conditions of housing and nourishment, and so on.
(DK) Wir würden vor unsren eignen Zuständen erschrecken, wenn unsre Regierungen und Parlamente, wie in England, periodische Untersuchungskommissionen über die ökonomischen Verhältnisse bestallten, wenn diese Kommissionen mit derselben Machtvollkommenheit, wie in England, zur Erforschung der Wahrheit ausgerüstet würden, wenn es gelänge, zu diesem Behuf ebenso sachverständige,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 zu finden, wie die Fabrikinspektoren Englands sind,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 über "Public Health" (Öffentliche Gesundheit), seine Untersuchungskommissäre über die Exploitation der Weiber und Kinder, über Wohnungs- und Nahrungszustände usw.
DK의 'seine ärztlichen Berichterstatter'를 BF는 'her medical reports'라고 번역했는데, SS처럼 'reporters'로 표현하는 게 타당하다. 강 교수의 '전문의사'란 번역도 너무 앞서나갔다. (물론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의료(혹은 보건의료) 보고자'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다.
DK의 'unparteiische und rücksichtslose Männer'를 SS와 BF는 '(men) free from partisanship and respect of persons'로, 강 교수는 '비당파적이면서 또한 엄정하기도 한 그런 사람들'로 번역했다. 'partisanship'은 '당파성'이란 뜻이고 'respect of persons'는 '특별 대우' 혹은 '편파적인 대우'란 뜻인데, 영어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DK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동떨어진 느낌이다. 대신 각각 'impartial'과 'ruthless'로 번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그리고 DK의 'erschrecken'을 강 교수는 '깜짝 놀라다'라고 번역했는데, 'erschrecken'은 'frighten'을 뜻하므로, '깜짝 놀라 무서워하다(혹은 두려워하다)'로 번역해야 한다.
수정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의 정부와 의회가 영국에서처럼 정기적으로 경제사정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립하고, 이 위원회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및 의회와) 동일한 전권을 갖추고 있으며, 영국의 공장감독관, '공중위생'에 대한 의료 보고자, 여성과 아동에 대한 착취와 주거 및 영양 상태 등을 조사하는 위원처럼 공명정대하고 엄정하며 이 목적에 걸맞은 능력 있는 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혹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섬뜩해할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이 유럽의 중간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듯이 19세기 미국의 내전(the American Civil War, 한국에서 남북전쟁이라고 일컫는 전쟁을 가리킨다. 정확한 용어로는 미국내전이다-옮긴이)은 유럽의 노동자 계급에게 경종을 울렸다. 영국에서 변혁과정이 계속 진행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10.1]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그것은 분명히 유럽 대륙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그러한 변혁과정은 영국에서보다 더 야만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고 더 인간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는 각 나라들에서 노동자 계급 자신의 발전 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10.2]

10.1.
(SS) In England the process of social disintegration is palpable.
(BF) In England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is palpably evident.
(DK) In England ist der Umwälzungsprozeß mit Händen greifbar.
취향의 차이겠지만 '불을 보듯 뻔한'보다는 '명백한'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강 교수의 표현도 괜찮다.
10.2.
SS, BF 그리고 DK에서는 이 단락과 다음 단락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강 교수에서는 번역본에서는 두 단락이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다른 더욱 숭고한 동기가 아니더라도 바로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법적인 장애요인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11.1]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꽤 많은 부분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장입법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그것의 성과에 대한 서술에 할애하였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또 그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설사 자신의 운동에 대한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도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혀내는 데 있다—그 사회는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생략하고 건너뛸 수는 없으며 또한 그것을 법령으로 제거할 수도 없다. 단지 그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산고(産苦)를 단축하고 완화하는 것뿐이다. [11.2]

11.1.
(SS) Apart from higher motives, therefore, their own most important interests dictate to the classes that are for the nonce the ruling ones, the removal of all legally removable hindrances to the fre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BF) Apart from any higher motives, then, the most basic interests of the present ruling classes dictate to them that they clear out of the way all the legally removable obstacles to the development of the working class.
(DK) Von höheren Motiven abgesehn, gebietet also den jetzt herrschenden Klassen ihr eigenstes Interesse die Wegräumung aller gesetzlich kontrollierbaren Hindernisse, welche die Entwicklung der Arbeiterklasse hemmen.
DK의 'kontrollierbaren'은 'controlled(관리할 수 있는)'란 뜻인데, SS와 BF는 'removable'로 번역했고, 강 교수는 아예 번역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포함해서 직역하여 재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숭고한 동기와는 별개로 오늘날 지배 계급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그들(지배 계급)에게 노동 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적으로 제거 가능한 모든 요소를 완전히 없애도록 강제한다."
11.2.
(SS) And even when a society has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 of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lay bare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clear by bold leaps, nor remove by legal enactments, the obstacles offered by the successive phases of its normal development.
(BF) Even when a society has begun to track down the natural laws of its movement — and it is the ultimate aim of this work to reveal the economic law of motion of modern society — it can neither leap over the natural phases of its development nor remove them by decree.
(DK) Auch wenn eine Gesellschaft dem Naturgesetz ihrer Bewegung auf die Spur gekommen ist - und es ist der letzte Endzweck dieses Werks, das ökonomische Bewegungsgesetz der modernen Gesellschaft zu enthüllen -, kann sie naturgemäße Entwicklungsphasen weder überspringen noch wegdekretieren.
DK의 'auf die Spur gekommen ist'를 강 교수의 '발견했다 하더라도'로, SS는 'got upon the right track for the discovery'로 BF에서는 'has begun to track down'으로 번역했다.

만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자본가와 토지소유자를 결코 장밋빛으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문제로 삼는 것은 단지 그들이 갖가지 경제적 범주들의 인격체라는 점에서만, 즉 특정한 계급관계와 계급이해의 담당자라는 점에서만 그러하다. [12.1]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경제적 사회구성체(ökonomischen Gesellschaftsformation)의 발전을 하나의 자연사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각 개인은 그들이 설사 주관적으로는(subjektiv)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는(sozial) 사회적 관계의 피조물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들 개인의 책임은 적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12.1.
(SS) But here individuals are dealt with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embodiment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class-interests.
(BF) But individuals are dealt with here only in so far as they are the personifications of economic categories, the bearers of particular class-relations and interests.
(DK) Aber es handelt sich hier um die Personen nur, soweit sie die Personifikation ökonomischer Kategorien sind, Träger von bestimmten Klassenverhältnissen und Interessen.
DK의 'Personen'을 SS와 BF에서는 'personification'으로, 'Träger'는 SS와 BF에서는 각각 'embodiments'와 ‘bearer’로 번역했다. 'Träger'의 경우에는 '담당자'라는 말보다는 철학용어인 '담지자(擔持者)'가 문맥상 낫다고 본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 적들은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만나게 되는 그런 적들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그것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인간의 가슴에 가장 격렬하고 가장 편협하며 가장 악의에 찬 감정, 즉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을 싸움터로 불러냄으로써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가로막는다. [13.1] 예를 들어 영국 국교회(English Established Church)는 자신들의 신앙 39개조 가운데 38개조에 대한 공격을 용인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의 화폐 수입 39분의 1(1/39)에 대한 공격은 용인하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무신론까지도 전통적 소유관계에 대한 비판에 비하면 차라리 더 가벼운 죄에 해당한다. [13.2]

13.1.
(SS)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s it deals with, summons as foes into the field of battle the most violent, mean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BF) The peculiar nature of the material it deals with summons into the fray on the opposing side the most violent, sordid and malignant passions of the human breast, 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
(DK) Die eigentümliche Natur des Stoffes, den sie behandelt, ruft wider sie die heftigsten, kleinlichsten und gehässigsten Leidenschaften der menschlichen Brust, die Furien des Privatinteresses, auf den Kampfplatz.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정치 경제학)이 다루는 소재의 독특한 성격은 인간 가슴의 가장 난폭하고 비열하며 악의로 가득한 감정인 사적 이해라는 복수의 여신(the Furies of private interest)을 반대편 전장으로 소환한다." 번역의 용이함을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강 교수는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막는다'란 말을 덧붙였다.
13.2.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는 단락을 나눠버렸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예를 들어 우리는 몇 주일 전에 발표된 청서(淸書) 『산업문제와 노동조합에 관한 재외사절 통신문집(Correspondence with Her Majesty’s Missions Abroad, regarding Industrial Questions and Trades’ Unions)』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통신문들에서 영국 국왕의 재외사절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도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가 노동 간의 기존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며, 이런 경향은 이제 불가피하다는 점을 숨김없이 얘기하고 있다. [14.1] 동시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미국의 부통령 웨이드(Wade)는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부터 자본관계와 토지 소유관계의 변화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천명하였다. [14.2]

14.1.
(SS)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there declare in so many words that in Germany, in France, to be brief, in all the civilis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BF) There the representatives of the English Crown in foreign countries declare in plain language in that in Germany, in France, in short in all the civilized states of the European Continent, a radical change in the existing relation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as evident and inevitable as in England.
(DK) Die auswärtigen Vertreter der englischen Krone sprechen es hier mit dürren Worten aus, daß in Deutschland, Frankreich, kurz allen Kulturstaaten des europäischen Kontinents, eine Umwandlung der bestehenden Verhältnisse von Kapital und Arbeit ebenso fühlbar und ebenso unvermeidlich ist als in England.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 왕조의 재외사절들은 독일과 프랑스, 즉 유럽 대륙의 모든 문명국가에서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 간의 기존 관계의 근본적 변화(radical change)가 명백하고(evident) 피할 수 없음을(inevitable) 노골적으로(in so many words 혹은 in plain language) 단언(혹은 얘기)한다."
14.2.
SS, BF 그리고 DK에서 한 단락으로 연결된 문장을, 강 교수는 여기에서도 임의로 단락을 나눴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징후이며 자포(紫袍: 군주의 의복-옮긴이)나 흑의(黑衣: 승려의 법의-옮긴이)로는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징후들이 당장 내일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현재의 사회가 완전히 응고되어버린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점을 지배계급 내에서조차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5.1]

15.1.
(SS) They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a foreboding is dawn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is constantly changing.
(BF) They do show that, within the ruling classes themselves, the foreboding is emerging that the present society is no solid crystal, but an organism capable of change, and constantly engaged in a process of change.
(DK) Sie zeigen, wie selbst in den herrschenden Klassen die Ahnung aufdämmert, daß die jetzige Gesellschaft kein fester Kristall, sondern ein umwandlungsfähiger und beständig im Prozeß der Umwandlung begriffener Organismus ist.
영어 번역을 기준으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들은 현재 사회가 응고된 결정체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는 것(영어 번역에서는 유기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전조(foreboding)가 지배 계급 내에서조차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 저작의 제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Zirkulationsprozeß des Kapitals, 제2책)과 총과정의 형태(Gestaltungen des Gesammtprozesses, 제3책)를 그리고 마지막 제3권(제4책)은 학설사(Geschichte der Theorie)를 다루게 될 것이다.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떤 의견도 나는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적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것이 갖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피렌체인(단테-옮긴이)의 좌우명이 내 대답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이다.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Segui il tuo corso, e lascia dir le genti)

1867년 7월 25일, 런던
카를 마르크스




<주석>

1) 내가 보기에 이것은 라살레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자신의 책에서 슐체-델리치(Schultze-Delitzsch)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 주제(가치실체와 가치크기-옮긴이)를 다른 내 글의 "핵심적인 진수"를 설명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거기에는 그가 나를 아주 잘못 이해한 부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라살레는 경제문제를 다룬 그의 모든 이론적인 저작에서, 즉 예를 들어 자본의 역사적 성격이나 생산양식 및 생산관계 사이의 관련을 다룬 등등의 글 속에서 내 저작 가운데 상당 부분을, 심지어는 내가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들까지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빌려 쓰면서 아무런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가 선전 목적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그가 수행한 작업들의 자세한 내용이나 그것들이 사용된 방식들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N1.1]

N1.1.
(SS) This is the more necessary, as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subject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e.g., those on the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xion between the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c., &c., eve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here, of course, not speaking of his detailed working 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ith which I have nothing to do.
(BF) This is more necessary, in that even the section of Ferdinand Lassalle’s work against Schulze-Delitzsch in which he professes to give 'the intellectual quintessence' of my explanations on these matters, contains important mistakes. If Ferdinand Lassalle has borrowed almost literally from my writings, and without any acknowledgement, all the general theoretical propositions in his economic works, for example those on historical character of capital, on the connection between the relations of production and the mode of production, etc., etc., even down to the terminology created by me, this may perhaps be due to purposes of propaganda. I am of course not speaking here of his detailed working-out and application of these propositions, which I have nothing to do with.
(DK) Es schien dies um so nötiger, als selbst der Abschnitt von F. Lassalles Schrift gegen Schulze-Delitzsch, worin er "die geistige Quintessenz" meiner Entwicklung über jene Themata zu geben erklärt, bedeutende Mißverständnisse enthält. En passant. Wenn F. Lassalle die sämtlichen allgemeinen theoretischen Sätze seiner ökonomischen Arbeiten, z.B. über den historischen Charakter des Kapitals, über den Zusammenhang zwischen Produktionsverhältnissen und Produktionsweise usw. usw. fast wörtlich, bis auf die von mir geschaffene Terminologie hinab, aus meinen Schriften entlehnt hat, und zwar ohne Quellenangabe, so war dies Verfahren wohl durch Propagandarücksichten bestimmt. Ich spreche natürlich nicht von seinen Detailausführungen und Nutzanwendungen, mit denen ich nichts zu tun habe.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이 주제들에 대한 내 설명의 지적 전형(intellectual quintessence)을 슐체-델리치에 대해 반론을 편 부분에 담았다고 고백한 책에 중요한 실수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필요하다. 만일 페르디난드 라살레가 사전 동의도 없이 그의 경제학적 연구에 담겨 있는 모든 일반 이론적 서술들(propositions)을 사전 동의도 없이 나의 저작에서, 예를 들자면 자본의 역사적 성경, 생산과 생산양식의 관계 사이의 연결에 관한 것 등등, 내가 만들어낸 용어까지 포함하여 문헌적으로 빌렸다면, 아마도 선전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이들 서술에 대한 그의 세부적인 작업이나 적용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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