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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3 내 마음대로 정리하기 - 근대 과학과 과학철학


요새 과학철학에 부쩍 관심이 생겨 책 하나 붙들고 열공(이라 쓰고 건성으로 읽는)하고 있다. 박영태 외 18인이 지은 『과학철학—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창비)이라는 책인데, 나 같은 초심자한테는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나를 완전 초심자라고는 부를 수 없지만, 과학철학과 관련된 대부분 이론은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근본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초심자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근본도 없는 내가 공부한답시고 발췌한 것이다. (타이핑은 내가 했으니 100% 내가 안 썼다고 할 수도 없군.) 다만 책의 내용에 근본도 없는 내 생각을 100% 내 마음대로 덧붙여 썼으니 혹시라도 이 글에서 도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포기하시라. (그렇다면 글은 도대체 왜 쓴 거냐.)


철학자가 이르기를 과학철학은 과학의 메타이론이라고 한다. 여기서 메타이론은 “어떤 이론의 구조나 그 이론 속의 용어 및 개념 따위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이론”을 가리킨다. 내가 알고 쓴 것은 아니고, 위대하고 똑똑하신 네이버 백과사전께서 그리 말씀하셨다. 그러니 그렇다고 하자. 어쨌든, 메타이론인 과학철학은, 철학 일반이 이성의 토대와 원리를 분석하는 것처럼 또는 사회과학이 사회 전반을 분석하고 그 원리를 연구하는 것처럼, 과학의 토대와 원리를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반성(反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에 규범과 방향을 제시하고 과학을 선도하기도 한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호서대 디지털문화예술학부 교수인 김국태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과학철학이 과학에 “규범과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데, “과학을 선도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떤 측면에서 과학을 선도한다는 것인가? 혹시 베이컨, 데카르트 등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나 방법론을 말하는 것인가?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나오겠지. 안 나오면 이 책을 불태워 버리겠다. 어쨌든 과학철학자 가라사대, “근대 과학철학은 고대 및 중세 과학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근대 과학에 대한 반성 작업으로 출발했다”.


근대 과학은 16-18세기 무렵에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광범위한 지적 전환기 시기에서 시작했다. 사실 과학혁명이란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근대사 교수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그의 저서 『근대 과학의 탄생(The Origins of Modern Science)』(1946)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비 서양권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대 과학의 보편성에 주목해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과학혁명은 산업혁명을 본떠서 만든 신조어(?)지만, 학문적 용어로 사용될 만큼 엄밀한 내용과 정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는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라 보지만) 과학혁명이란 용어에 학문적 의미가 있으려면 근대 과학 성립에 대한 요소 분석이 필요한데, 이런 측면에서 과학혁명에 넓은 의미의 일반명사로서 학문적 보편성을 부여한 사람은 단연 토마스 쿤(Thomas Kuh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1962)에서 과학혁명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패러다임의 전환 시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라고 규정하는데, 하도 오래전에 읽은 거라 기억도 안 난다. 조만간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나겠지?


다시 본 내용으로 돌아와서! 과학혁명이라고 해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나 1차 세계대전 후 발생한 독일 혁명처럼 (설령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급격한 시대적 대전환 또는 대격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혁명인 줄도 몰랐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세상 좋아졌구나” 정도? 산업혁명이야 그 자체로 생산력 향상과 시장 확대라는 실체적 현상이 수반되어 “세상 좋아졌다”란 인식도 들게 하지만, 과학혁명(혹은 과학 발전)은 기껏해야 당대 지식인 사이에서나 의미 있는 것이었다. 굳이 역사학자가 이 시기를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마치 석기시대 농업혁명과 근대 산업혁명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래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뜻하지만, 솔직히 이 시기에 어떤 급격한 단절이 있었냐 하고 반문한다면 그런 것도 아니다. 뭐 이런 쓸데 없이 물고 늘어지기는 그만 하고 과학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자. 나도 밑천이 자꾸 떨어져 간다.


아무튼, 소위 과학혁명이라 불리는 이 시기에 몇 가지 엄청난(?) 지적 대전환이 일어났는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이 자연철학자가 그 찬란한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전부 우주론/천체이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이들로부터 시작되고 체계화된 근대 과학은 고대 및 중세 과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설명 및 설득력으로 새로운 지식을 만인에게 제공했으며, 과학(혹은 자연철학)이 과거 풀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해결했다. 물론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자기 인생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으니, 세상만사 온갖 흑역사의 아픔이라. 비꼬자고 이런 말 하는 것은 아니다. 후다닥.


프랑스 과학사가 꼬이레(A. Koyré, 1892-1964)란 인간은 근대 과학의 발생과 부흥의 역사성공한 수학적 법칙의 누적으로 본 반면, 자연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과학 발전에 무용지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잠시 꼬이레가 주장하는 과학혁명의 시기가 언제인지 살펴보자. 꼬이레는 종교 전쟁 기간이었던 1541-1648년 사이에 일어난 과학계의 급격한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당시 종교 전쟁은 영국-스페인 전쟁(1588), 독일 30년 전쟁(1618-1648), 프랑스 위그노 전쟁(1562-1598), 네덜란드 독립 전쟁 등을 들 수 있는데, 광범위한 종교 전쟁이 끝난 1964년은 갈릴레오가 죽은 지 6년이 되었고, 데카르트가 사망하기 2년 전이었으며, 당시 뉴턴은 6살이었다. 꼬이레는 그가 과학혁명이라고 설정한 시기 중에서 1543년과 1687년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시기라 평했는데, 왜냐하면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베실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가 출판되었고, 1687년에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꼬아레는 지식의 누적(특히 수학적 지식의 누적)이 근대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근대 과학이 과거에 비해 지식의 양적 증가가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의 누적이라는 양적 기준만으로 근대 과학을 평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지식은 필연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한 지식이 누적된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혹은 학문) 발전의 실체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근대 과학 진정한 의미는 지식의 양이나 우수한 설명 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을 가능케 한 새로운 사고방식에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과학(또는 학문)은 자연과 진리에 대한 일정한 관념과 방법적 규범을 토대로 하며, 나아가 사회규범, 정치상황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요인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과학의 토대와 배경을 이루는 조건을 쿤은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이론에 의하면 새로운 과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토대로 성립하며 새로운 과학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패러다임의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서로 다른 시기에 관측한 여러 가지 현상도 해석 방식이나 관점, 즉 패러다임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데, 코페르니쿠스 이전과 이후의 천체 이론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근대 과학은 자연과 진리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의 혁신이라는 과정을 통해 생성 및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무엇을 고대 및 중세 과학과 차별되는 근대 과학만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계적 자연관, 철저한 경험적 방법, 수학적 서술 등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자연을 마치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된 시계처럼 일정한 원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작동되는 자동 기계로 보는 “기계적 자연관”이다. 이런 해석 방식은 고대 그리스에서 플라톤주의자와 원자론자에 의해 먼저 전승되었다. 그러다가 16-17세기 중세를 지배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 토대를 둔 중세 과학이 그 신뢰를 상실해가면서 과학자 사이에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받아들인 자연철학자는 세계를 기계적 세계(Machina Mundi)로 봤으며, 아직 신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신이 창조한 완벽한 세상을 기계에 빗대어 설명하려 한) 기계적 세계를 창조한 절대자를 수학자, 기하학자 또는 건축가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과학자가 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진다. 바로 자연에 담긴 어떤 수학적 원리(그것이 기하학이든 대수든 상관없이)를 찾아내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을 어떤 실체적 원리에 따라 운행되거나 특정한 정신적 가치나 목적을 지향하는 유기체적 존재로 여겼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해놓은 방법적 지침에 따라 자연 현상을 실체적 원리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을 과학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유일신 하나님이 지배하는 중세에서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관의 권위가 위협받기 시작한 이후, 자연 탐구 기준과 대상은 바뀌었다. (물론 코페르니쿠스 이론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천체가 하루아침에 기각된 것은 아니었는데,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발상의 전환이란 측면에서는 참신했지만, 오히려 천체 현상 자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수백 년간 보완되고 지속한 권위 있는 이론보다 나은 점은 별로 없었다.) 자연철학자가 탐구해야 할 대상은 어떤 정신적 가치나 신이 정해놓은 목적이 아니라 바로 자연에 산재하는 어떤 물리적 대상(즉 정량 가능한 시간, 공간, 속도, 질량 등) 바로 그 자체였다.


데카르트에 와서 기계론적 자연관은 절정에 달한다. 특히 그의 우주론은 새로운 기계론적 사고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우주에서 물질세계의 모든 현상은 무한동질적으로 펼쳐지는 시공간에서 오직 충돌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물질 입자와 그것의 이합집산 결과로만 설명되며 이것은 생명체에도 그대도 적용된다. 그의 우주(또는 자연)에서 세상 만물은 오로지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그 메커니즘에 대해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부품 또는 기계와 같다. 결과적으로 그의 우주에서는 중세 과학자가 생각했던 (혹은 믿었던) 어떤 관념적 원리나 가치 또는 특권적 지위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데익스테르하위스(E. J. Dijksterhuis)는 근대 과학의 여정을 ‘세계상의 기계화’(Die Mechanisierung des Weltbildes)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세계상의 기계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 현상에 대한 수학적 응용, 즉 단순히 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어떤 의미를 함축하며, 기존 연구 지침이나 방법적 관습, 즉 기존 패러다임을 폐기하는 지적 전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당대 자연철학자의 새로운 과학적 연구 방법은 자연에 관한 어떤 실체적 특성이나 원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며, 경험과 실험에 의한 사실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 철저히 검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뉴턴은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을 그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해 소개하는데, 자연과학이 더는 실체적 특성이나 본질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존하지 않고, 경험적 사실과 그것을 서술하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을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 판단했을 때 근대 과학혁명은 결과적으로 성공 그 자체였으며, 새로운 과학 방식과 이론적 결과는 이루 다른 모든 과학분야의 혁신모델로 인식되었다(라고 과학철학자가 주장한다). 더불어 새로운 과학의 사고방식은 자연과학 일반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합리적 사고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근대 과학철학은 새로운 과학에 대한 이해와 정당화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신화적 사고로부터 논리적 사고로 변화한 인간의 사유 방식과 세계관에 대한 응답이었다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로크, 흄, 버클리, 칸트 등의 근대 철학은 바로 변화된 지적 환경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정당성을 확인하는 메타과학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사고 방법과 성과는 철학적 탐구의 핵심 대상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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