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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7 고대 로마 시대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생명 발생에 관한 담론(談論)은 17세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미묘한 변화가 일부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설명에 첨삭(添削)하거나 가벼운 반론(反論)을 제기하는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인도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관찰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자세로 임했던 똑똑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자연발생설”을 받아들였으니, 고대 그리스와 비교했을 때 철학적으로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한 고대 로마인도 별수 없었을 게다. 물론, 당시 고대 로마인 중에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문헌을 토대로 판단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 글에서는 위키피디아(Wikipedia) “자연발생(spontaneous generation, 自然發生)”에서 다루고 있는 고대 로마 제국 시기 문헌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통념(通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



 

그림 1. (왼쪽) 비트루비우스가 자신의 책 『건축론』을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주제로 1864년에 제작한 삽화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390년경에 양피지(羊皮紙)로 제작된 『건축론』의 필사본(筆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건축가이며 기술자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 BC 80?~ BC 15?)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그의 역작인 『건축론(de Architectura)』은 고대 로마 시대 이전까지 있었던 다양한 건축 기법을 총망라했다고 알려졌다 [17] [그림 1, 왼쪽]. 생명체 발생 이론의 변천사를 다루는 글에서 건축학의 고전을 다루는 게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의 제6권 제4장 제1절에는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 [그림 1, 오른쪽]. 원래대로라면 독자의 수고를 덜기 위해 영어 원문을 번역하는 게 글쓴이의 도리(?)지만, 번역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영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도 재미로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번역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필자의 실력 또한 변변치 않으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참고로 이 글에서 인용한 고대 로마 시대 작품은 인터넷상에 그 전문(全文)이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I shall now describe how the different sorts of buildings are placed as regards their aspects. Winter triclinia (주: 고대 로마의 3면에 눕는 안락의자가 붙은 식탁이 있는 식당) and baths are to face the winter west, because the afternoon light is wanted in them; and not less so because the setting sun casts its rays upon them, and but its heat warms the aspect towards the evening hours. Bed chambers (주: 로마의 주택의 침실) and libraries should be towards the east, for their purposes require the morning light: in libraries the books are in this aspect preserved from decay;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에서 굵은 글씨체로 표시한 “Bed chambers …… preserved from decay”에 해당하는 부분을 보자. 여기에서 비트루비우스는 책의 부패(腐敗) 방지를 위해 “침실과 도서관은 아침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창문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지어야 한다”고 기술(記述)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햇볕이 잘 들어오는 건물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잘 자라지 않는다. 햇볕 이외에 건물의 환기 여부도 미생물의 증식을 사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건물 내부의 눅눅함을 지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건물 내부로 햇볕이 얼마나 잘 들어오느냐”일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사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게다가, 당시 문서 대부분이 파피루스(papyrus)나 양피지(羊皮紙) 등과 같은 썩기 쉬운 재질(才質)로 만들어졌음을 고려한다면 도서관 건립 시 이런 점이 매우 중요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those that are towards the south and west are injured by the worm and by the damp, which the moist winds generate and nourish, and spreading the damp, make the books mouldy.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남쪽과 서쪽을 향하는 건물은 습한 바람이 생성하는 벌레와 그것이 불어넣는 눅눅함(damp)으로 손상된다”고 서술한 점에서 이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습한 바람의 건물 내 유입으로 말미암은 습도 상승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 바람이 “벌레를 생성한다”는 생각은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당연하게 여긴 고대인의 전형적 발상이다. 게다가, 이 바람은 “벌레를 생성케 하는 방식”과 같은 방법으로 책에 곰팡이가 피게 한다(make the books mouldy). 이러한 사고방식을 고대 그리스 철학에 비추어 살펴보자. 내 해석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무조건 멍청하고 무지한 내 책임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사물이 물, 불, 바람(공기), 흙(대지)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고대 로마인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 천구(天球)의 움직임을 설명할 목적으로 아이테르(aither)를 추가하기도 했지만, 생명체의 발생은 오로지 4원소만으로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발생론(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제3권 제11편에 나와 있는 내용 일부를 살펴보자 [3].


 Animals and plants come into being in earth and in liquid because there is water in earth, and air in water, and in all air is vital heat so that in a sense all things are full of soul. Therefore living things form quickly whenever this air and vital heat are enclosed in anything. When they are so enclosed, the corporeal liquids being heated, there arises as it were a frothy bubble. …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따르면 동물과 식물은 흙(땅)과 액체(아마도 물)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흙에 물이 있고, 물에는 공기가 있으며, 공기에는 생체열(vital heat, 生體熱)이 있으므로, 모든 사물은 영혼(즉, 프네우마[pneuma])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공기’는 모든 기체를 포괄하는 단어이므로 바람은 공기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따르면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실체는 상반된 성질을 가진 4원소―흙은 냉기(冷氣)와 건조(乾燥), 물은 냉기와 습기(濕氣), 공기는 열(熱)과 습기, 불은 열과 건조―의 조합으로 형성된다 [4]. 따라서 비트루비우스가 언급한 “습한 바람”, 즉 “습한 공기” 안에는 생체열이 있으므로, 고대인의 관점에서 곰팡이 같은 생명체는 최적의 조건만 주어진다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철학적 관점은 철학 그 자체로는 의미 있다 할지라도 과학적으로는 황당무계하다. 하지만 비트루비우스를 비롯한 고대 로마인이 알고 있는 상식은 오늘날 우리와 같지 않다. 그러니, “습한 바람이 자연적으로 벌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의 기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어



  

그림 2. 여러 가지 종류의 장어. (왼쪽) 곰치(moray eel, 곰치). 곰치도 장어의 한 종류다. (가운데) 아메리카 장어의 치어(稚魚). (오른쪽) 정원 뱀장어 [출처: 위키피디아].


고대 로마의 유명한 박물학자를 살피기 전에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훑어보자. 나의 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에서도 소개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 특히 해양동물에 관한 관찰 기록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순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몇몇 하등동물과 일부 동물에 대해서는 이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런데 그의 이런 이중적 태도가 나타난 데에는 이들 동물에 대한 어떤 선입견과 아무리 꼼꼼하게 살폈다 하더라도 있을 수밖에 없는 관찰의 미진(未盡)함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있지만, 이 글에서 다룰 주인공은 바로 장어(eel)이다 [그림 2].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나와 있는 장어에 관한 설명을 살펴보자 [5].


All male fishes are supplied with milt, excepting the eel: with the eel, the male is devoid of milt, and the female of spawn. The mullet goes up from the sea to marshes and rivers; the eels, on the contrary, make their way down from the marshes and rivers to the sea.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수컷 물고기에 어백(milt, 魚白), 다시 말하면 정액(精液)이 있다면서, 장어만은 예외라고 말한다. 그의 관점에서 수컷 장어는 정액이 없으며, 암컷 장어는 알을 낳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장어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신의 장난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땅에서 불쑥 솟아나는 길”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에서 사는 장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무리 봐도 이해하긴 어렵고,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한 채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철학적 입장을 고려했을 때에도 갑자기 신을 우뚝 세우는 건 이치에도 맞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장어가 땅에서 솟아나길 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6편 일부를 살펴보자 [6].


There is no doubt, then, that they proceed neither from pairing nor from an egg. Some writers, however, are of opinion that they generate their kind, because in some eels little worms are found, from which they suppose that eels are derived. But this opinion is not founded on fact. Eels are derived from the so-called 'earth's guts' that grow spontaneously in mud and in humid ground; in fact, eels have at times been seen to emerge out of such earthworms, and on other occasions have been rendered visible when the earthworms were laid open by either scraping or cutting.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장어 탄생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적 발생으로 장어의 발생 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좀 엉뚱하긴 하지만, 우리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에서 해답을 찾았다. 위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장어가 진흙이나 축축한 땅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지구의 내장(earth’s guts)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내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곧바로 지렁이(earthworm)가 언급되는 걸로 봐선 “지구의 내장”이 지렁이 같은 환형동물(環形動物)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처럼 생긴 어떤 동물에서 나타난다고 봤으며, 간혹 잘린 나뭇가지(cutting: ‘cut’의 원래 의미는 ‘자르다’이지만 ‘cutting’에는 ‘나뭇가지’란 뜻도 있다)나 어떤 물체의 부스러기(scraping: ‘scrape’은 ‘긁다’란 뜻으로 사용되지만 ‘scraping’에는 ‘부스러기’란 뜻도 있다) 등으로 땅을 파서 지렁이를 땅 바깥으로 드러내면 장어의 모습이 보였다는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증언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목격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봤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가 지렁이 같은 동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을까?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어린 장어나 장어의 치어(稚魚)는 매우 가는 모양새 때문에 지렁이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면 “아, 저건 지렁이야!”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어린 장어가 지렁이와 혼동될 정도로 그렇게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가? 어린 장어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필자로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둘째, 장어는 바다나 강의 얕은 물가에 있는 모래 더미나 진흙 속 또는 바위틈에서 주로 서식한다 [18]. 지렁이는 어떨까? 지렁이의 서식지는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주로 습기가 충분한 토양에서 산다고 알려졌다 [19]. 따라서 모양도 길쭉하니 얼추 비슷한 서로 다른 두 동물이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장어는 지렁이에서 비롯한다”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문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다.


장어의 발생에 관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잘못된 설명을 내놓은 아리스토텔레스라 할지라도, 장어의 독특한 습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동물의 역사(Historia Animalium)』 제6권 제14편에 “숭어(mullet)는 바다에서 습지(marsh, 濕地)와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장어는 습지와 강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란 문구가 있는 걸로 봐선, 그는 장어의 이동 습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5].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장어의 회귀성(回歸性)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장어에겐 담수(淡水)에서 자라 적도 근처의 심해(深海)에서 산란하고, 부화한 치어가 담수로 다시 돌아와 산란기 전까지 생활하는 습성이 있다 [18]. 따라서 이런 장어의 신비로운 특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대로 된 장어의 생활사를 관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장어의 발생에 관해 엉뚱한 해석을 내리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대(大) 플리니우스 그리고 장어



 

그림 3. (왼쪽) 대(大) 플리니우스. 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에 제작된 플리니우스의 초상화도 실제 그의 모습은 아니며 누군가가 상상으로 그린 결과물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1669년에 제작된 『박물지』 제1권의 사본(寫本) [출처: 위키피디아]



조카인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이킬리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AD 61~AD 112)와 구별하기 위해 훗날 대(大) 플리니우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 AD 23~AD 79)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궁금한 게 많았던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의 명문가였던 플리니우스 씨족에서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학구적인 사람으로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다고 알려졌다. 다만, 철학적인 소양은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런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치 않으니, 신경 쓰지 말자.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된 부분이니까 말이다. 여담이지만, 대 플리니우스는 서기 79년경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Pompeii)를 하루 만에 멸망의 길로 인도한 베수비오(Vesuvio) 화산 폭발 당시 미세노(Miseno) 함대 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7]. 매우 근면했다고 알려진 그답게 (그리고 로마 제국을 위해 봉사한다는 투철한 시민 정신으로 무장한 채) 그는 화산 폭발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폼페이 시민의 탈출을 열심히 돕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구조 작업 중에 화산이 뿜어낸 유독 가스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다 [7]. 또 하나 여담이지만, 당시 황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황제 티투스(Titus Flavius Caesar Vespasianus Augustus, AD 39~AD 81)도 이 엄청난 재앙적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재위 2년 만에 과로로 죽었다. 그의 동생인 다음 황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Caesar Domitianus Augustus, AD 51~AD 96)가 독살로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은 불가능하다 [8].


플리니우스는 매우 박식하고 지식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대중적 백과사전을 집필하고자 하는 욕구도 매우 강했다. 그 결과가 바로 우주론, 천문학, 지리학, 인류학, 생물학, 식물학, 광물학 등 다룰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다룬 (아마도 유럽 최초의 대중적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자연사(Historia Naturalis)』라고 할 수 있다 [9].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몇몇 주제는 적어도 당대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관점에서도 상식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의 책에 나와 있는 우주론과 천문학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그 어떤 수학자나 철학자에게 자문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적 견해와도 매우 동떨어졌다. 게다가, 이 책은 플리니우스의 염원대로 “대중적이며 종합적인 대백과사전”을 지향(指向)했기 때문에 다루고 있는 주제는 매우 넓었지만, 내용의 깊이 또한 매우 가볍고 피상적이었다 [10].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매우 많은 것을 다루었고 훗날 중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지만, 나의 관심사인 “생명 발생 이론의 변천사”에 관한 조사를 전개하는 데도 중요하다. 특히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플리니우스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장어의 생활사를 서술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덕후에겐 덕후의 즐거움이란 게 있지 않은가? 나에게 즐거운 덕질을 안겨준 대 플리니우스에게 진심으로 경의(敬意)를 표한다. 이제 플리니우스의 시점에서 장어를 바라볼 차례인데, 『박물지』 제9권 『어류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제74장 「어류의 발생(The Generation of Fishes)」을 살펴보자 [11].


Eels, again, rub themselves against rocks, upon which, the particles which they thus scrape from off their bodies come to life, such being their only means of reproduction.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위 인용문과는 별개로, 같은 책 제38장에 나와 있는 장어의 생활사에 관한 묘사는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과 크게 다르진 않다 [12]. 하지만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장어는 지렁이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한 사실을 떠올렸을 때, “장어는 자신의 몸을 바위에 문질러 장어가 될 입자를 몸에서 떼어낸다”는 플리니우스의 설명은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와는 구별되는 독창성이 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의 이런 해석은 근거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13]. 아리스토텔레스도 당대의 상황적 한계로 많은 그가 관찰한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있었지만, 플리니우스는 그것과 더불어 해석에서도 좀 뜬금없는 부분이 있다. 지금처럼 “장어의 발생”에 관한 설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어에 관한 두 박물학자의 생각을 비교하는 일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마무리를 짓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플리니우스는 장어의 발생에 관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과연 알고 있었을까?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필자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몇 가지 가정은 해볼 수 있다. 고대 로마인은 그리스 철학이 유약(幼弱)하고 퇴폐적이라고 생각했다 [20]. (물론,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등감 또한 상당했다.) 따라서 전형적인 로마 지식인 플리니우스가 직접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가 『자연사』를 집필할 때, 수많은 조수를 동원해 당시 존재했던 엄청난 양의 문헌을 조사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직접 섭렵하진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는 그의 조수가 정리해놓은 내용을 살펴봤을 가능성도 있다 [9]. 따라서 플리니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장어의 발생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플리니우스 그리고 자연발생


장어를 포함한 일부 사례를 제외한다면 플리니우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생명체의 자연적 발생을 믿고 있다. 『자연사』에서 장어의 발생을 설명하는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홍합, 가리비, 굴에 관한 그의 의견을 살펴보자 [11].


Mussels, also, and scallops are produced in the sand by 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 Those which have a harder shell, such as the murex and the purple, are formed from a viscous fluid like saliva, just as gnats are produced from liquids turned sour, and the fish called the apua, "from the foam of the sea when warm, after the fall of a shower. …… Those fish, again, which are covered with a stony coat, such as the oyster, are produced from mud in a putrid state, or else from the foam that has collected around ships which have been lying for a long time in the same position, about posts driven into the earth, and more especially around logs of wood. It has been discovered, of late years, in the oyster—Beds, that the animal discharges an impregnating liquid, which has the appearance of milk.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그림 4. (왼쪽) 홍합(mussel, 紅蛤) [출처: 위키피디아]. (가운데) 가리비(scallop) [출처: 위키피디아]. (오른쪽) 굴(oyster) [출처: 위키피디아]. 진지하게 말하는데, 필자는 이 사진을 보고 “소주 한잔하면 정말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플리니우스는 홍합(mussel, 紅蛤)과 가리비(scallop)처럼 딱딱한 껍질을 가진 해양생물은 자연의 자발적 작용(the spontaneous operations of nature)으로 모래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림 4]. 그리고 굴(oyster)은 부패한 진흙이나 한 지역에 오랫동안 정박해 있는 배(주: 이런 배는 주로 난파선이다)와 (아마도 부두 선착장을 지지하기 위해 바닷속에 박아 둔) 통나무 주변으로 모여든 거품에서 굴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인가! 플리니우스는 이 모습을 보고 이런 곳에서 굴과 같은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플리니우스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부패한 진흙, 난파선, 그리고 바닷속에 오랫동안 잠겨 있는 통나무가 바로 굴과 같은 어패류가 산란하며 군집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플리니우스가 장어를 비롯한 몇몇 동물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주장을 펼쳤지만, 이 단락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자연발생을 지지하는 견해에 서 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당연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멸치 그리고 아테나이우스의 멸치


나우크라티스(Naucratis)의 아테나이우스(Athenaeus)는 서기 2~3세기 사이 고대 로마 제정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 출신의 수사학자이자 문법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에 관해 자세히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저작 가운데 『데이프노소피스타이(Deipnosophistae)』라는 작품, 우리말로 풀어쓰면 “식탁 대화의 명인(名人)”이나 “식탁 대화의 철학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책은 꽤 유명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거나 알려진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필자도 이 책의 이름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접한 터라 실상 아는 것도 별로 없다. 그래도 소개까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어쨌든, 이 책은 철학자 사이의 잡담이라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와 관련된 다양한 화제―주로 식사와 관련된 것이지만, 음악, 미술, 노래, 오락, 창녀, 사치와 관련된 내용도 다룬다―를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작품 안에서 무려 거의 8백 명의 작가와 2천5백 가지의 작품이 이 책에서 언급되었다고 알려졌다 [14]. 이 가운데 여러 가지 물고기와 관련된 잡담을 주고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15].


But of the anchovies (주: 멸치류 물고기) there are many kinds, and the one which is called aphritis is not produced from roe, as Aristotle says, but from a foam which floats upon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which collects in quantities when there have been heavy rains.



그림 5. 혹시라도 멸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넣은 …… [출처: 위키피디아]



이 부분에서 화자(話者)는 “다양한 종류의 멸치류 물고기 가운데 아프라이티스(aphritis: 필자도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라 불리는 멸치류 물고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처럼 알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대신 수면을 떠다니며 폭우가 내릴 때 다량으로 모이는 거품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한다 [그림 5]. 식탁에서 일어난 대화 형식을 빌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멸치가 거품에서 태어나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다. 혹시 다른 부분에 이것과 관련된 언급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장에서만큼은 그 어떤 근거도 나와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로 멸치의 발생을 어떤 식으로 설명했을까? 동물의 역사 제6권 제15편을 살펴보자 [16].


The ordinary fry(주: 치어[稚魚]) is the normal issue of parent fishes: the so-called gudgeon-fry of small insignificant gudgeon-like fish that burrow under the ground. From the Phaleric fry comes the membras, from the membras the trichis, from the trichis the trichias, and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to wit from that found in the harbour of Athens, comes what is called the encrasicholus, or anchovy. There is another fry, derived from the maenis and the mullet. (굵은 글씨체는 필자가 임의로 표시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저런 치어가 이런저런 물고기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하는데, 마지막 부분인 “from one particular sort of fry, …… the encrasicholus, or anchovy”에서 멸치류 물고기는 아테네 항에서 발견되는 특정 종류의 치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보기엔 물고기에서 물고기가 발생하는 게 거품에서 멸치가 발생하는 자연발생적 관점보다 훨씬 이치에 맞지만,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찰에도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적어도 자신이 직접 확인한 부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객관적으로 진술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묘사가 오늘날의 과학에 잘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아테나이우스 책의 화자보다 말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고대 로마인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을 살펴봤다. 본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이 가졌던 생명 발생에 관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나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음번에는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의 생명체 발생에 관한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Spontaneous generation. Wikipedia. [링크]
[2] 『de Architectura (On Architecture)』 Book VI, Chapter 4, Section 1. Marcus Vitruvius Pollio / translated by Joseph Gwilt. [링크]
[3] 『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On the Generation of Animals)』 Book III, Part 11. Aristoteles / translated by Arthur Platt. [링크]
[4] 『그리스 과학 사상사(Early Greek Science: Thales to Aristotle)』 죠프리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지음 /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년. 150쪽.
[5]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VI. Part 14. Aristoteles / translated by D'Arcy Wentworth Thompson. [링크]
[6] Ibid. Book IV, Part 16. [링크]
[7] Gaius Plinius Secundus. Wikipedia. [링크]
[8] Titus. Wikipedia. [링크]
[9] 『서양과학의 기원들: 철학∙종교∙제도적 맥락에서 본 유럽의 과학전통, BC 600~AD 1450(The Beginnings of Western Science: The European Scientific Tradition in Philosophical, Religious, and Institutional Context, Prehistory to A.D. 1450)』 데이비드 린드버그(David C. Lindberg) 지음 / 이종흡 옮김. 나남. 2009년. 238~240쪽.
[10] 같은 책. 241~242쪽.
[11] 『Historia Naturalis (Natural History)』. Book IX, 『The Natural History of Fishes』. Chapter 74, 「The Generation of Fishes」. Gaius Plinius Secundus / translated by John Bostock and Henry Thomas Riley. [링크]
[12] Ibid. Chapter 38, 「The Generation of Fishes」. [링크]
[13] Ibid. Chapter 74. See Note 20. [링크]
[14] Athenaeus. Wikipedia. [링크]
[15] 『Deipnosophistae』 Volume I, Book VII. Athenaeus of Naucratis / translated by Henry G. Bohn. p. 447. [링크]
[16] 『Historia Animalium (The History of Animals)』 Book 6, Part 15. [링크]
[17] Marcus Vitruvius Pollio. Wikipedia. [링크]
[18] Eel. Wikipedia. [링크]
[19] Earthworm. Wikipedia. [링크]
[20] 『서양철학사(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버트랜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375~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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