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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북극곰의 털

2012. 11. 7. 14:48 from 과학 관련



실험실 동료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누군가가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어서 모든 빛을 완전히 반사할 텐데,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지?”란 의견을 내놓았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래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물체가 반사한 가시광선(可視光線)이 우리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최종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며, 이런 점에서는 색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나의 어쭙잖은 과학 상식으로 봤을 때, 전반사(total reflection, 全反射)하는 물체는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을 반사하므로 우리 눈엔 그것이 흰색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귀요미 포텐 터지는 북극곰의 털이 흰색인 이유는 북극곰의 몸체가 모든 파장의 가시광선(可視光線)을 반사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꽤 그럴싸하다 [그림 1, 왼쪽].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아니다. 북극곰의 털은 흰색이 아니며, 단지 우리의 시각적 착각이 북극곰을 흰색으로 보이게 할 뿐이다.



  

그림 1. (왼쪽)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이지만 정말로 무섭고 사나운 맹수인 북극곰. (가운데) 북극곰의 보호 털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 [출처: Daily Mail] (오른쪽) 북극곰의 보호 털을 측면에서 확대한 전자현미경 사진. [출처: Alaska Fur ID Project]



북극곰 털을 한 올 한 올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극곰의 털이 투명할 정도로 무색에 가깝단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2, 왼쪽]. 그렇다고 곰 털이 투명한 창문 유리처럼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단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의 털은 다른 동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극곰의 털에는 우리 몸의 손톱이나 발톱과 마찬가지로 색소체(色素體)도 없다. 더욱 재미있는 건 북극곰의 피부색이다. 북극곰은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피부색도 하얗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북극곰의 피부색은 검다 [그림 2, 오른쪽]. 그렇다면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는 털과 검은 피부를 가진 북극곰은 당연히 검게 보여야 하는데, 왜 우리 눈에는 하얗게 보이는 걸까?



 

그림 2. (왼쪽) 북극곰의 보호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 흰색이 아니라 투명할 정도로 색이 없다. (오른쪽) 북극곰의 피부색. 의외로 북극곰의 피부는 검다. [출처: Marine Science]



북극곰의 피부는 10 cm 정도 두께의 지방층, 그 위를 덮는 가죽 그리고 무성한 털로 구성되어 있어 혹독하리만치 추운 기후에서도 너끈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 북극곰의 털은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안쪽에 있는 잔털(underfur)이며, 나머지는 바깥쪽에서 몸 전체를 뒤덮고 있는 5~15 cm 길이의 보호 털(guard hair)이다. 잔털과 보호 털 모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색이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독 보호 털 만은 속이 텅 빈 상태다 [그림 1, 가운데와 오른쪽]. 그런데 이런 무색의 보호 털도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투명하게 보이지만, 높은 밀도로 빽빽이 밀집해 있으면 빛을 전체적으로 산란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북극곰이 태양빛을 전혀 흡수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 눈으로 유입되는 빛을 산란시킬 뿐이다. 특히, 보호 털의 텅 빈 내부는 태양빛이 피부로 잘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있지만, 빛 자체를 산란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3. 녹색 곰 [출처: FeedAgg.com]



여기에 북극곰의 털이 투명하다는 또 한 가지 증거가 있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은 색이 녹조류(綠藻類) 때문에 가끔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 3]. 초록색 북극곰이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사육장 연못에서 자생하는 녹조류 더미가 북극곰의 털이나 피부에 달라붙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실은 전혀 달랐다. 놀랍게도 북극곰의 텅 빈 보호 털 안에서 녹조류가 자라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북극곰의 털 색이 흰색이 아니라 초록색을 띠게 되었다. 아마도 부러진 보호 털의 빈 공간 안으로 우연히 녹조류가 끼어든 게 주 원인이겠지만, 어쨌든 이 사실은 북극곰의 털이 녹조류의 초록색을 그대로 투과해 보여줄 정도로 투명함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놀랍고도 신기한 북극곰이다.


참고 문헌

[1] Polar bear. Wikipedia. [링크]
[2] Everyday Mysteries. The Library of Congress. [링크]
[3] Answers [링크]
[4] Lewin RA, and Robinson PT. 1979. The greening of polar bears in zoos. Nature. 278: 445-447.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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