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2.28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1


오늘 뜻하지 않게 동문 두 명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 명은 92학번 선배로 미국 텍사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97학번 후배로 학부를 졸업한 후 가톨릭 의대로 편입했었다. 그렇게 한 몇 년을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오늘 다른 후배한테서 선배는 며칠전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했고, 후배는 폐암으로 작년에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92학번 선배는 나보다도 덩치도 좋고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에서는] 평소 운동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아는데, 뇌출혈 때문에 죽었다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폐암으로 죽은 후배 녀석은 담배도 안 피우고 제 건강을 끔찍이 챙기던 아이였는데,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떠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무엇일까? 무엇으로 이 기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질병 그리고 죽음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그들, 나와 찬란한 20대를 함께 했던 그 사람들이 병마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났다니 마음이 정말 착잡했다. 그리곤 나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내 건강은?"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데." 그들의 불행한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우울해졌다.


사실 나는 최근의 급격히 안 좋아진 건강 때문에 술도 거의 안 마시고 담배도 끊으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지난번 회식 때 [너무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정말(!) 많이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시는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담배도 완전 골초 수준에서 하루에 5개비 미만까지 줄여놓은 상태였다. 금연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서도 의지가 약한 나로서는 한심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 까지라도 줄였으니 대단한 일이다. 어쨌거나,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역류성 식도염으로 비롯된 가슴 통증의 악화를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서 그렇다.


몇 년 전, 강렬한 가슴 통증 때문에 "나도 혹시 폐 질환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어서, 말도 안 되는 온갖 상상을 머릿속에 가득 담은 채 병원에 내원한 적이 있었는데, "당신의 폐는 건강하다"란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있었다.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은 역류성 식도염의 대표적 증상 가운데 하나다.] 사실, 지금도 평상시에는 숨쉬기가 무척 힘든데, 운동이나 달리기할 때는 신기하게도 호흡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고 가슴도 전혀 아프지 않다. 덕분에, 운동하는 데 별 무리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운동하고 나서는 여기저기 관절이 쑤신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어쨌거나 이런 문제 때문에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던 와중에, 두 동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나니 "그것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란 불안감이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20대, 아니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이란 두 글자는 나에게 무척 생소했다. 솔직히, "죽음"은 천수를 누리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살만큼은 산 이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이도 있었지만, 내겐 이것이 "죽음"의 일반적인 느낌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음에도, 그들 대부분이 사고나 노환으로 죽었기 때문에 "죽음"은 나에게 당면한 운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혹, 저 멀리 어딘가에서 "아무개가 어떤 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 죽었어"란 소식이 들려와도 그건 나와 상관없었다. 하지만 두 동문의 뜻하지 않은 부고로 상황은 달라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사고로 죽은 사람도 아니었으며,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건강했고, 각각 40대 초반과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병으로 죽다니!


이제 내 나이 30대 후반. 이미 40을 훌쩍 넘긴 선배도 계시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긴 하지만, 개인의 성공보다도 명예보다도 사실은 건강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류승환 감독의 영화인 <짝패>의 대사 하나가 오늘따라 유달리 내 마음속에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놈이 이기는 거야!"


그때는 저 대사가 그냥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게 현실일지도 모르겠다!"라고 느낀다. 진실로, 오래 살아야, 그리고 건강해야 내가 하는 "과학"도 "연구"도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내 주변 사람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특히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몸을 돌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내 연구가 아무리 값지고 멋진 일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도 다 부질없는 인생이다. 오히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연구라 할지라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천수를 누리며 오랫동안 연구하다 보면 적어도 스스로 대견하지 않을까?


아무리 몸을 아끼고, 다듬어도 죽음을 피하기란 어렵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 번 되뇌어본다.


자신의 몸 상태를 돌아보며,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삽시다! 내일의 인생은, 정말로 모르는 겁니다!






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