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지난 9월 4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 송파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진보대통합 안'을 논의하기 위한 '진보신당 3차 임시 당 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대의원을 포함한 당원 동지들이 송파구민회관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정족수가 채워지자 안건에 대한 발언과 토의가 활발히 오고 갔다. 분위기는 매우 격앙됐다. 통합 지지와 반대를 오고 가는 토론은 시간이 갈수록 격해졌다. '진보대통합'이라는 화두로 시작해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이어져 온 우리끼리의 대립은 곧 종지부를 찍을 듯 보였지만, 당의 앞날을 결정하기 위해 열린 '임시 당 대회'의 최종 결론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당 대회 진행과정을 지켜보던 많은 당원 동지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표결의 순간을 만감이 교차한 가운데 진지한 눈빛으로 유심히 지켜봤다.

결과는 '진보대통합'에 대한 안건의 전면 부결이었다. 원안인 <5·31 연석회의 최종 합의문>과 <8·28 (잠정)합의문>이라는 두 개의 '진보대통합 안' 모두 모두 재석 410명 중 3분의 2인 274명을 넘기지 못한 222명에 그쳐 부결됐다. 이에 앞서 국민참여당의 합류를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문구가 포함된 <수정동의안>도 재석 408명 중 찬성 231명으로 부결됐다. '진보대통합'은 진보신당에서 시작되어 진보신당에 의해 부결됐다.

애당초 패권주의와 종북주의에 반대해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해 만든 진보신당이었다. 민주노동당에서 시작된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자 정당을 기반으로 이전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진보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설립한 진보신당이었다. 그럼에도, 2008년 창당 후 3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단지 지방 선거에서 연속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 분당의 원인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나 다름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과의 재통합'은 진보신당 당원 대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진보신당이 왜 민주노동당에서 분리해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당내 명망가와 일부 활동가들의 일방적인 통합 강행은 당 운영의 민주주의에 반하는 패권주의적 발상이었다.


사진 출처: 뉴시스

당 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된 이후, 진보신당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이미 곪을 대로 곪은 통합파와 독자파 간의 첨예한 대립은 통합파의 대거 탈당이라는 예견된 파국을 낳았다. '통합연대'의 주축인 노회찬과 심상정 전 상임고문의 탈당을 시작으로 통합파 동지들의 탈당은 본격화되었고, 조승수 전 대표를 포함한 전국 시도당 위원장의 동반 탈당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최고조에 달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통합파 동지들이 대거 탈당하더라도, 남아 있는 독자파 동지들이라도 힘을 한데 모아 위기를 헤쳐나간다면 현재 위기 상황은 어떻게든 극복하겠지만, 조승수 전 대표가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김은주 부대표가 권한대행직을 맡으면서 진보신당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출처: 참세상

강경 독자파인 김은주 권한대행의 독단적이며 비민주적인 당 운영―특히 당직자를 포함한 비대위 위원을 자기 쪽 사람으로 채우려는 독선적인 행태―은 통합파 동지뿐만 아니라 독자파 동지들에게도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중앙당의 밀어붙이기식 통합 방식에서 보인 비민주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방식을 김은주 권한대행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그것도 진보신당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때문에 강상구 전 대변인을 포함한 다수의 진보신당 동지들은 김 권한대행의 즉각 사퇴 및 조속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촉구한 바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혜경 전 민주노동당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가 구성되었으며, 김은주 권한대행은 새로운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만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어제(10월 26일) 홍세화 선생이 진보신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홍세화 선생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당 대표 출마의 변>이라는 한 편의 장문으로 진보신당 당 게시판에 남겼다.


사진 출처: 한겨레

홍세화 선생은 1979년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때문에 공안 당국의 수배를 받았고 프랑스로 망명해 20여 년간을 객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오다가 2002년 한국으로 귀국한 바 있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온갖 고초를 겪은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남민전 사건'이 공안 당국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최근에 밝혀져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탄압받은 29명이 2006년 3월, 전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일도 있었다.

홍세화 선생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진보신당 내 동지들―독자파든 통합파든―의 의견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홍세화 선생의 당 대표 취임은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과 그동안 불거진 상호 불신을 불식하는 데도 어느 정도 일조할 듯 하다. 그럼에도, 이것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솔직히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에 새로이 취임한다 해도 그에게 진보신당을 위한 명확한 비전―민주노동당과 차별되는 대중적인 좌파정당으로서 생존을 모색할 방안―이 없다면 그의 당 대표 취임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고, 우리가 우려했듯이 진보신당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홍세화 선생에게는 진보신당의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는가?

"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홍세화 선생의 말마따나 그동안 우리는 '진보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론―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에만 매달렸을 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잊고 지냈다. 내부에서 우리끼리 투쟁하느라 모든 힘을 소진해버리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는다고 상황이 달라지는가?

오직 '우리만 음미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어봤자 대중 일반이 알아주지 않는 한 아무 소용없다. 우리가 언제 우리의 대의명분을 제대로 알린 적이 있는지 반문해보자. 내 기억엔 없다. 내가 기억하는 진보신당의 모습은 '대의명분'만 있고, 노선 투쟁만 죽어라 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정당이다. 상황이 이러니 진보신당의 지지율 하락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중권에게 '좌파 동아리'란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 없다.

"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 우리 당의 능력 있는 젊은 일꾼들과 함께 지역별로 또는 과제별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루속히 조직화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생존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갈 것입니다. …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바뀌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 당 속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진보정치를 다짐하며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왔지만,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작 선거 몇 번 한 것이 전부다. 따지고 보면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것도 당연하다. 민주노동당 혹은 진보신당에 몸담은 당원이거나 혹은 정치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민중 대부분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진보신당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한 정당'인지도 잘 모르는데 누가 지지의 손길을 보내겠는가? 그나마 노회찬, 심상정 그리고 조승수 같은 명망가가 있었으니 대중에게 어필이라도 했지, 이마저도 없었으면 대중 일반에게 진보신당은 사실상 '듣보잡'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대중 일반의 선택은 당연히 인지도가 있는 민주노동당이다. 단순히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는 굳이 정당을 설립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진보신당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꾸준한 정치적 활동이다. 지역사회에도 알려지지 않은 신생 정당을 대중 일반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거란 순진한 착각은 버려야 한다. 더불어 주류 정당이 만들어내는 사회적·정치적인 이슈만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서 선점해야 한다. 사회적 이슈 앞에 언제나 진보신당이 앞장서야지만, 대중은 '진보신당' 이름 넉 자라도 기억해준다. 이런 노력은 전무한 채로, 우리의 "정체성"만 맨날 찾다가 맞이하는 것은 오로지 '진보신당의 예정된 멸망'뿐이다.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 출마의 변>이라는 아주 감동적인 글로 자신의 소회를 밝히긴 했지만,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벅찬 감동이 아니라, 냉철한 자기성찰과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위한 전략과 전술이다. 눈물로 뒤범벅된 벅찬 감동은 진보신당이 살아남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내가 정말로 홍세화 선생의 글에서 아쉬운 점은 정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냉철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한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반성문이 아니라 진보신당을 살릴 수 있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판단이다.

물론 홍세화 선생이 당 대표로 취임한 뒤에 진보신당의 생존을 위한 계책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출마의 변'은 그냥 '출마의 변'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홍세화 선생이 새로운 당 대표가 된다면 다 죽어가는 진보신당은 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잘 모르겠다"이다. 아직도, 진보신당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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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
 -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

홍세화(서울마포당협 당원)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 있었던 땅에 다시 돌아온 뒤로, 저는 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 뿌려진 진보정당의 씨가 마침내 개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벅찬 감회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망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쓴 글을 읽거나 저를 알고 지내온 사람이라면 제가 버릇처럼 되뇌던 말 하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의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는 것, 이것이 귀국 이후 10년 동안 제가 품어온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제가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이를 두고 가당찮은 나르시시즘이라 이름 붙일지 모르지만, 제 꿈은 ‘사병’으로 남는 것이었습니다. 장교는 나이를 먹으면서 진급합니다. 사병은 나이를 먹어봤자 사병으로 남습니다. 실제 전투는 주로 사병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병으로 남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어!’ “평당원 홍세화!”― 이처럼 자랑스런 호명이 없을 것이고, 이 이름을 남기고 사라지고 싶다는 것! 지독히도 척박한 이 땅에서 힘겨운 진보정당의 발걸음 앞에 놓이는 작은 거름이 되는 것, 그 긴 행렬의 끄트머리를 지키며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우다 사라지는 것, 이것은 단지 소망을 넘어 제 삶의 원칙이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둑이 흔들리고 금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보신당>의 벽에 균열이 생기고, 당의 보루라 믿어왔던 원칙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는 것을 목격하면서 저와 같은 평당원들의 꿈들 역시 황망한 처지에 놓였을 것을 생각하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힘겨웠습니다. 그냥 달아나버리고 싶을 때는 마포강변을 걸었습니다. 나의 빈 주먹질을 묵묵히 지켜보던 쎄느강처럼, 과거 홍수가 나면 주변을 초토화시키곤 했던 그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 말입니다.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무너져가는 둑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언제나처럼, 대답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믿음이 살아나는 당을 위해 이 무대에 오르겠습니다

저는 이제 허공을 향해 퍼부었던 탄식과 누군가를 향한 원망을 모두 접습니다. 주저와 망설임 끝에 저는 오는 11월 진보신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로 하였습니다. ‘보다 나은 삶’과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정치는 존재하며, 그러므로 ‘정치는 고귀한 것’이라 주장해왔지만 결코 저 자신이 오르고 싶지는 않았던 무대, 그 무대에 오르며 당원 동지 여러분께 제 두려운 결심을 알리고, 숱한 번민과 그동안 느꼈던 마음의 고통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진보신당의 미래에 대한 저의 희망을 간략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3년 전 ‘새로운 진보’의 깃발을 내걸고 창당된 뒤, 우리 당은 새로운 진보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모든 노력들이 헛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오늘 <진보신당>의 초라한 모습 앞에서 자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관성과 관습을 넘어선 우리의 새로움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입니까? 새로움은 어디서 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까? 진보정치의 새로움은 잠자는 권리와 저항의식을 일깨워 불의한 세상의 질서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고 그 최전선에서 눈 부릅뜨고 미래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정작 우리는 어디에서 나태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진보신당>의 위기가 통합이냐 독자생존이냐를 결정하는 데 실패한 것에서 온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오늘 진보정치의 위기는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데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이 자가당착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상황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당 바깥의 대중은 진보신당의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게 되었고 우리 당의 당원들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불신과 반목은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 피어나는 가시꽃입니다. 하나의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지리멸렬을 지속하다 자멸의 시간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 황량한 가시밭을 다시 일구어 ‘빵과 장미’를 가져오는 당의 새로운 시작을 피와 땀을 흘려 만들어낼 것인가? 만일 우리가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또한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직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티끌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위해 저는 이제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 위로 오릅니다.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되새깁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동지 여러분과 제가 떠올려야 할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진보신당>에 남으려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왜 다른 이가 내던지고 간 이 막막한 짐을 계속 지려 하는 것입니까? 그 까닭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아니면 어떤 정당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군부 독재가 종말을 고한 뒤에 민중은 지금 자본의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전 세계에서 요동치는 반反금융자본 투쟁 하나만을 보아도 충분한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35미터 상공의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찬바람을 맞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만 보아도 명확해지는 사실 아닙니까? 우리가 만일 <진보신당>의 당원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양심적인 시민일 뿐이라면 우리는 이 땅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약자들의 투쟁의 뒷자리에 서있어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것만으로는 당과 당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신당>은 자본의 거대한 힘과 싸울 뿐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너머의 내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자본권력에 맞서 싸워야 할 진보세력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포기하고 급속히 ‘우경화’되는 사태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 남아 있어야 할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말이 아니라 먼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당의 정체성은 어떤 경우에도 선언이 아니라 실천적 활동 속에서 실현됩니다. 비정규직 없는 평등국가, 핵과 자연 수탈이 없는 생태국가, 전쟁 없는 평화국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연대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입니다. <진보신당>은 싸우는 시늉만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민생은 ‘투어’로 자족해도 좋을 만큼 여유롭지도 녹록치도 않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저는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싸우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 진보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거대 지배 권력과 싸우고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 그리하여 약자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은 <진보신당>밖에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이 공허한 논쟁으로 분열되고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을 올바르게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여기가 로두스Rhodus다. 여기서 뛰어보라!” 만일 우리에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힘이 남아 있다면 다친 무릎을 일으켜 세워 있는 힘을 다해 절벽과 절벽 사이를 다시 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당의 능력 있는 젊은 일꾼들과 함께 지역별로 또는 과제별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것을 하루속히 조직화하는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치공학적인 생존전략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갈 것입니다.

하지만 일에만 몰두하여 ‘지혜’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열악할수록 지혜는 선택과 집중 속에서 잘 발휘될 것입니다. <진보신당>처럼 단 하나의 의석도 없는 작은 정당일수록 한국 사회에 새롭고 핵심적인 의제를 던지면서 진보정치를 주체적으로 견인해야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의 가장 큰 자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도자를 추종하는 당원이 아니라 이 시대의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따지는 지혜로운 당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들이 무엇인지 상당 부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노동자 경영권을 요구해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하며, 상비군 폐지를 공론화시켜 병영국가의 성벽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서울대는 없애고, 대학은 평준화하며, 각종 국가고시는 지역별로 할당하라고 요구함으로써 학벌사회를 전복시켜야 합니다. 지배 담론에 길들여져 허락된 것만 말하는 진보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도 바뀌어야 합니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 당 속에서 가장 먼저 실현되고 증명되어야 합니다. 우리 당의 문화가 평등하고 민주적이며 호혜적이지 않다면, 보수정당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비난하는 극우 사익추구집단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작은 차이로 끝없이 반목을 거듭한다면, 누구에게 참된 만남과 고양高揚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이 결심을 하고자 했을 때 저를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극구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한 말 중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선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를 아직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셨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상처가 두려워 평당원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였던가요,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말했던 이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만신창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척박한 땅에 참된 진보정당의 뿌리를 내리는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얻은, 그것 아니었다면 쎄느강변에서 소멸했을 허명에 값하는 의미로서 이미 충분합니다. 동지 여러분이 <진보신당>의 당원임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을 반드시 오게 하기 위해 오늘과 내일 받을 상처 때문에 뒷걸음질 치지 않겠습니다. <진보신당>은 지나간 역사와 희생당한 투사들에게 빚지고 있는 정당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듯이, 제게도 제가 부재한 땅에서 어둠과 싸우다 앞서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습니다. 이제 저는 <진보신당>의 새출발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으로 이 빚들을 갚으려고 합니다. 부디 저를 딛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인사글의 제목은 체코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치가인 바츨라프 하벨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바츨라프 하벨

일단 내가 시작해야 하리, 해보아야 하리.
여기서 지금,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어디서라면
일이 더 쉬웠을 거라고
자신에게 핑계 대지 않으면서,
장황한 연설이나
과장된 몸짓 없이,
다만 보다 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루어 살고자 한다면.
시작하자마자
나는 홀연히 알게 되리
놀랍게도
내가 유일한 사람도
첫 사람도
혹은 가장 중요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떠난 사람 가운데에서
모두가 정말로 길을 잃을지 아닐지는
전적으로
내가 길을 잃을지 아닐지에 달렸다는 것을.

2011년 10월 26일 홍세화 드림

출처: 진보신당 당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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