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란 책은 진화의 원동력에 대한 재미있고 유의미한 가설을 소개한다. 특히 린 마굴리스는 미생물 간의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가 진화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책 전반을 통해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핵(nucleus)과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그리고 식물의 경우에는 엽록체(chloroplast)—등 진핵세포(eukaryotic cell, 眞核細胞) 안에 존재하는 세포 소기관(organelle, 小器官)은 원핵세포(prokaryotic cell, 原核細胞)인 원시 박테리아(primitive bacteria) 간의 공생(symbiosis, 共生)을 통해 형성됐다는 내부공생설(endosymbiotic theory, 內部共生說)을 소개하고 있다.

선구자들

   
순서대로 쉼퍼, 메레쉬코프스키, 리스 (사진출처: 구글)

내부공생설은 마굴리스의 저술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이 가설이 마굴리스에서 처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즉, 마굴리스 이전에도 몇몇 과학자가 여러 가지 생물학적 관찰을 통해 세포 내 소기관이 원핵세포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1893년 독일의 식물학자(botanist)이자 식물 지리학자(phytogeographer)인 안드레아스 쉼퍼(Andreas Franz Wilhelm Schimper, 1856-1901)는 식물세포 속을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으로 관찰했을 때 광합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원시식물(primitive plants), 남조류(cyanophyceae, 藍藻類), 남조식물문(cyanophytes, 藍藻植物門) 혹은 청녹조류(blue-green algae)로도 불린다―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엽록체의 박테리아 기원설을 제안했다 [1]. 1905년 러시아의 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쉬코브스키(Konstantin Mereschkowsky, 1855-1921)는 식물세포의 엽록체가 핵과는 독립적으로 분열(division)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한 진핵세포의 소기관이 원시 박테리아에서 온 것임을 주장했다 [2]. 생물학자 한스 리스(Hans Ris, 1914-2004)는 1962년 광학현미경보다는 세포의 구조를 더욱 자세히 조사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 분석(electron microscopic analysis)을 통해 녹조류(green algae, 綠藻類)의 일종인 Chlamydomonas의 엽록체 구조가 (쉼퍼가 발견한 것과 동일하게) 시아노박테리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Paramecium aurelia이라 불리는 원생생물(protist, 原生生物)의 일종인 짚신벌레의 세포질에 kappa 인자라 불리는 박테리아가―최근에는 Caedibacter로 명명되었다―공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3]. 이러한 발견이 한결같이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핵세포가 어느 날 이 세상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원시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즉, 원시 박테리아들의 합작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핵세포 소기관의 원시 박테리아 기원설을 지지하는 ‘화학적, 구조적, 계통학적’인 관찰 증거는 계속 축적하고 있었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해줄 실험적 증거—내부공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위적 실험의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수백 년, 수천만 년 혹은 수십억 년을 거쳐 서서히 일어나는 진화의 대장정을 실험실에서 짧은 시간 동안에 인위적으로 재현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진화의 전 과정을 끊임없이 목격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100년이다. 물론 우리에게 100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45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에 있어서 100년은 촌각(寸刻)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진화의 과정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연은 가끔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때로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의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위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연이 갖다 준 단서


전광우 박사 (사진출처: 테네시 대학)

전광우(Jeon, Kwang W.)는 원생동물(protozoa, 原生動物)의 위족(pseudopod, 僞足) 형성과 운동성 및 생물학적 기능 등을 연구하던 사람으로서 이를 위해 수년간 다양한 지역에서 채집한 아메바(amoebae)를 배양했다. 그는 새로운 아메바를 얻으면 빈 배양 용기에 담아 다른 종류의 아메바가 담긴 배양 용기와 함께 보관했는데, 어느 날 심각한 질병이—그는 아메바의 질병 원인이 뭔지 몰랐던 것 같다—아메바 사이에 퍼지는 것을 관찰했다. 건강하던 아메바가 구슬 같은 둥근 형태로 변했으며 먹지도 번식하지도 않았다. 극히 일부의 아메바는 성장을 계속하면서 분열할 수 있었지만, 감염되기 전에는 격일에 한 번이었던 것이 감염 후에는 5일에 한 번으로 크게 늦춰졌다 [2].

 
다양한 종류의 아메바 (사진출처: 구글)

보통의 실험 생물학자라면 이럴 때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배양된 세포를 사용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다른 세포에 대한 이차 감염을 사전에 차단키 위해 감염된 세포를 바로 폐기하고, 감염원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감염된 세포를 키우던 배양실도 대거 소독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오염된 세포를 탓하며, 다음에는 세포가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며 스스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광우는 달랐다. 그는 아메바의 감염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놀라운 발견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는 광학현미경을 사용해 죽거나 혹은 죽어가는 아메바를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세포 속에 무수히 많은 점이 퍼져 있는 것을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작은 점의 정체는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였고 적게는 약 6만에서 많게는 15만 개에 달하는 수가 아메바 안에 존재했다. 그동안 아메바의 먹이라고 생각한 미세한 박테리아가 병의 원인이었으며 아메바 대부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대 모양의 박테리아가 모든 아메바를 죽이진 않았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일부는—이유는 알 수 없지만—분명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물론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는 매우 연약했으며 온도 및 먹이 등의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했다. 아메바는 될 수 있으면 살리고 박테리아만 죽일 요량이었는지, 박테리아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아메바에게는 (상대적으로) 해가 없는 항생제를 처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원래대로라면 항생제는 박테리아만을 선택적으로 죽여야 하지만,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까지도 대부분 죽였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아메바 내부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아메바의 생존은 (항생제 처리의 예에서 보듯) 전적으로 박테리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2, 4].

적대적인 둘에서 새로운 하나로의 가능성

박테리아에 의한 아메바의 감염 사건 이후 5년 동안 전광우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계속 배양했고 감염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며 정상적인 주기로 분열할 수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를 얻는 데 성공했다 [2, 5]. 그렇다고 아메바가 박테리아를 죽인 것은 아니다. 박테리아는 아메바 속에서 분명히 살아 있었고 마치 아메바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으며 그 안에는 감염 초창기와 비슷한 숫자에 해당하는 개체가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든 생명체는 외부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 기작(defense mechanism)을 가지고 있다. 아메바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박테리아가 아메바 내부로 침입했을 때에도 분명히 아메바의 방어 기작은 생존을 위해 작용했을 것이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힘에 부친 아메바가 자신의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방법대로 자살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초기에 감염된 아메바 다수가 대부분 죽었을 수도 있다. 물론 앞의 설명과는 별개로 박테리아의 파괴적인 공격이 아메바의 생명활동을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교란시켜 아메바의 대량학살을 불러왔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최초 감염의 일차적 결과는 아메바의 죽음이었고, 아메바는 괴멸상태가 되었다. 그런데도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는 절멸이라는 비운의 상황 속에서 박테리아를 몸 안에 품은 채 꿋꿋이 살아남았다. 아메바의 저항이 살의로 가득 찬 박테리아의 치명적인 공격을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다. 혹은 아메바의 절멸로 더이상 자신의 삶을 유지할 터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박테리아로 하여금 아메바의 생존을 선택하도록 종용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두 인간적인 설명이다. 자연의 법칙에 인간의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자연의 법칙에는 그에 걸맞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자연선택은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낸 목적론적 사고와는 관계없이, 아메바에게든 혹은 박테리아에게든 그 어느 것도 거부할 수 없는 공평한 잣대—살아남을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개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영속성을 쟁취할 자격이 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생명의 패러다임 — 유전자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 중 일부가 박테리아 의존성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을 밝히는 것은 아메바와 박테리아라는 두 생명체의 관계변화—숙주(host, 宿主)와 감염원(pathogen, 感染源)이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어떻게 (상호협력적으로 보이는) 공생관계로 전환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접적으로 아메바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실험적 방법을 통해 이를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적 능력이 있다. 객관적 관찰을 통해 얻은 사실에 근거한 추론은 우리가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다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약간의 지식이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gene)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형(genotype)의 조합을 통해 표현형(phenotype)을 발현함으로써 독립적인 개체를 이루게끔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생명체에 내재된 모든 유전자의 일차적 정보는 DNA에 저장되어 있고, DNA로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자의 근원적 담지자(擔持者)는 세포라는 생명 단위체다. 세포는 필요한 순간마다 전사(transcription, 傳寫)라는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DNA에서 RNA를 만들어내고 만들어진 RNA(특히 mRNA)는 핵에서 세포질로 전달되어 리보솜(ribosome)이라 불리는 거대한 단백질 중합체와 만나게 된다. 리보솜은 RNA의 긴 염기서열에 기록된 정보를 3개의 핵산으로 구성된 코돈(codon)을 나열을 바탕으로 유전자 정보를 번역(translation, 飜譯)해서 아미노산 중합체(polypeptide)를 합성하고, 아미노산 중합체는 자신 안에 내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3차원적 구조를 이루어 단백질이라 불리는 생명현상의 기본 기능 단위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생존이라는 보편적 목적을 위해 각자에게 부여된 특수한 기능을 통해 고유의 구실을 한다. 따라서 세포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인 유전자(들)의 변화(혹은 돌연변이)는 대부분 치명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영향이 미비하거나 없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유전자 서열의 차이는 같은 종이라도 개체 간 표현형이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엄격한 선택압을 부여하는 급격한 환경 변화는 어떤 유전자(들)의 표현형이 바뀐 환경에 적합한지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아메바와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유전자가 생명 현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이상, 이들 개체도 자연선택을 따를 수 밖에 없다. 박테리아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에 감염하려 들 것이고, 아메바는 생존을 위해 아메바의 침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똑같은 방어 기작을 가지고 박테리아의 침입에 대항한다 할지라도 유전적 차이에 의해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아메바는 박테리아의 침입에 굴복해 자신의 유기물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줄 것이다.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박테리아는 아메바가 제아무리 격렬하게 저항하더라도 무리 없이 아메바 내부를 점령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어떤 박테리아는 자신의 유전자 표현하는 공격력이 아메바에 침입하기에는 미약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어떤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유전자 변이, 자연 선택, 그리고 적응

박테리아에 감염되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아메바는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것이고 아메바를 죽이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감염성 박테리아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전적 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추론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전까지는 상상 속에 머문다. 그렇다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가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한 진정한 이유일까?

전광우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미세수술(微細手術, micrurgy)이라는 실험방법으로 한 번도 감염성 박테리아에 노출된 적이 없었던 아메바(D)와 박테리아에 감염된 상태로도 왕성한 활동을 유지하는 아메바(xD)의 핵을 상호치환해서 공생이라는 결과의 원인이 핵에 있는지 아니면 세포질에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5, 6].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DNxDC)는 대조군—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합친 아메바(DNDC)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핵과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xDC)—과 비교했을 때 성장과 분열 주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감염된 아메바의 핵을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질과 융합한 경우(xDNxDC)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메바의 삶은 변함이 없었고 박테리아도 새로운 핵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염된 아메바의 핵과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을 융합한 아메바(xDNDC)는 분열을 통한 증식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살지도 못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은 감염된 아메바의 핵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었고, 감염된 아메바의 핵은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의 세포질에서 원하는 것을 얹을 수 없었다. 박테리아 감염 때문에 발생한 변화는 아메바의 핵에서 일어났다.

전광우는 또 하나의 실험을 계획했는데,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 혹은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을 미세주사(microinjection, 微細注射)라는 실험방법으로 이용해 실험적으로 조작한 아메바의 세포질에 주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감염되지 않은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지만, 감염된 아메바에서 추출한 세포질 성분은 xDNDC 에게 원래의 삶을 부여했다. 원인은 아메바의 세포질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였고, 박테리아는 감염된 아메바의 세포가 원하는 그 무엇—박테리아 유전자의 산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메바의 세포질 추출물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적이 없는 아메바에 주입했을 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포질 추출물 안에는 엄청난 수의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최초에는 분명히 엄청난 파괴력의 감염성을 가진, 아메바 다수를 전멸의 위기까지 몰고 간 바로 그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감염 증상을 유발하지 않았다. 공생관계는 아메바에게만 변화를 준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는 공생관계를 통해 자신의 공격성을 상실했다.

최초에 박테리아는 아메바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모든 감염성 박테리아가 아메바에게 똑 같은 수준의 끔찍함을 선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박테리아는 다른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아서 아메바를 죽음의 문턱까지는 끌고 가더라도 죽음의 문턱을 넘길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감염 전에는 박테리아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다 할지라도, 아메바에 침입한 이후 아메바의 세포질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박테리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유전적 변이는 특정 유전자(들)의 발현을 억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해당 유전자(들)을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 집단에서 배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박테리아의 유전적 변이는 아메바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메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메바의 유전적 변이 정도는 어떤 식으로는 박테리아의 공격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원인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상호 유전적 변이의 결과는 아메바가 박테리아에게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몸을 박테리아에게 내어주는 것과 박테리아는 공격을 멈추고 그 대신 아메바가 원하는 무엇인가는 대신 이루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적대적 관계는 다소 비가역적인 것처럼 보이는—그러나 실제로 비가역적인지는 알 수 없는—호혜적 관계로 개선되었다.

박테리아성 아메바의 출현

클로람페니콜(chloramphenicol)이라는 항생제는 박테리아의 리보솜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해 박테리아의 단백질 합성을 막는 항생제다 [7].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을 박테리아에 감염된 아메바에 처리하면 박테리아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아메바의 미토콘드리아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미토콘드리아 안에는 박테리아와 유사한 미토콘드리아 고유의 리보솜이 있어 에너지 생성에 필요한 여러 가지 단백질을 미토콘드리아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따라서, 클로람페니콜은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있는 리보솜에 결합해 미토콘드리아의 단백질 합성에 영향을 줘 ATP라는 생체 에너지 생산을 막을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아메바를 죽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클로람페니콜은 박테리아에 더욱 치명적이다. 클로람페니콜이 박테리아에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메바가 받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전광우는 클로람페니콜이라는 항생제를 박테리아에 감염되었지만 건강하게 사는 아메바에 처리해봤다 [8].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박테리아에 감염된 건강한 아메바는 클로람페니콜을 처리했을 때 급격하게 죽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소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아메바 내에서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의 죽음 때문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최초의 적대적 관계는 공생 관계를 통해 이젠 하나의 개체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아메바의 삶은 곧 박테리아의 삶과 밀접해지고 있으며, 박테리아에게 재앙은 곧 아메바에게도 재앙이다. 박테리아의 삶도 곧 아메바와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질적인 두 개체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완전히 하나의 개체로 합쳐질 수 있는 공생진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공생의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길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예는 서로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생물체와 공동생활을 하는 생물체 그리고 서로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된 생물체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단지 정도의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35억 년 혹은 그 이상 진화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찰나에 불과한 불과 5-10년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치명적인 병원균이 세포에 꼭 필요한 소기관으로 변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전광우의 발견과 실험은 진화라는 것이 단순히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이 지구 상에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진화의 요인이 되는 유전적 돌연변이는 단순히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을 통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감염과 공생이라는 개체 간의 유리되지 않은 상호과정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격렬함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Mereschkowsky's Tree of Life. Scientific American. 2001
[2]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저 / 홍욱희 역 / 범문사 / 1987년 8월 31일) 123-126쪽
[3] Magulis, L. (2005). Hans Ris (1914-2004). Genophore, chromosomes and the bacterial origin of chloroplasts. Int Microbiol 8(2): 145-148
[4] Jeon, K. W., and Lorch, I. J. (1967). Unusual intra-cellular bacterial infection in large, free-living amoebae. Exp Cell Res 48(1): 236-240
[5] Jeon, K. W. (1972). Development of cellular dependence on infective organisms: micrurgical studies in amoebas. Science 176(39):1122-1123
[6] Jeon, K. W., and Jeon, M. S. (1976). Endosymbiosis in amoebae: recently established endosymbionts have become required cytoplasmic components. J Cell Physiol 89(2):337-344
[7] Wikipedia: Chloramphenicol
[8] Jeon, K. W., and Hah, J. C. (1977). Effect of chloramphenicol on bacterial endosymbiotes in a strain of Amoeba proteus. J Protozool 24(2):289-293








Posted by metas :
지금으로부터 약 150억 년 전, 빅뱅이라 불리는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원자가 생성되었고 물질 형성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약 45억 6700만 년 전 우주 역사의 어느 한순간에 원시 태양계가 생성되었고 지구란 별도 태양계의 한 일원으로 그 형태를 드러냈다.

생명체는 약 36억 년 전 원시 지구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태고대(the Archean Era, 太古代)의 지구 내부는 고열과 방사능으로 뒤끓고 있었으며, 지각(地殼)의 열린 틈으로는 끊임없이 용암을 방출했다. 끊임없는 지각활동은 막대한 양의 수증기를 지표 외부로 방출했으며, 지구 표면은 수증기가 가득한 대기로 가득 차게 되었다. 지표면이 점점 식어갈 무렵, 대기 중에 응결된 수증기는 물방울을 이루어 오랫동안 지표면을 향해 비를 뿌렸고, 그 결과 마그마와 암석으로 가득 찬 지표면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바다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바다 밑바닥에서는 지각의 틈새를 통해 마그마가 끊임없이 분출되었고 중금속과 황 화합물로 가득한 유독 가스를 품은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떻게 원시 지구에서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었으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명 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기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생명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지 대략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바로 심해 생태계의 모습을 보면 된다.

심해(深海, ocean depth) 깊은 곳에는 빛이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해수면(water layer) 등에서 서식하는 조류(alga, 藻類)나 육상 식물 등과 같이 광합성(photosynthesis, 光合成)을 통해 탄소화합물(carbohydrate, 炭素化合物)을 생성하는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다. 그런데 탄소화합물은 생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영양분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산소를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심해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


사진 출처: Wikipedia

여기서 잠시 열수분출공(hydrothermal vent, 熱水噴出孔)에 대해 알아보자. 해저 지각의 틈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은 뜨거운 마그마와 만나 데워지고 주변 암석에 들어 있던 구리, 철, 아연, 금, 은 등과 같은 금속성분을 함유한 채 지각의 틈 사이로 다시 솟아나온다. 이때 솟아나온 열수(熱水)는 최고 350ºC 정도로 뜨거워진 상태에서 해저부(海底部)에 흐르는 보통 0ºC에 가까운 차가운 물과 만나 급격히 식게 되고 열수 안에 포함되어 있던 금속성분은 지각 틈의 주변에 침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다 보면 굴뚝처럼 생긴 지형물이 서서히 생성되는데, 이것을 열수분출공이라 한다.

해저분출공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깊은 바다 속에서 생물이 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왜냐하면, 생태계(生態系, ecosystem)는 스스로 영양분 합성이 가능한 자가영양생물(autotroph)이 있어야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상과 해양에서는 광자가영양생물(photoautotroph)인 식물과 조류가 빛 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과정을 통해 탄소화합물 등의 영양분을 생성하여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심해저(深海底), 특히 열수분출공 주변은 영양분도 없을뿐더러 황 화합물 및 중금속 같은 독성 무기물질이 가득하고 게다가 엄청 뜨겁기까지 하다. 생명체가 생존하기에는 최악의 환경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심해저의 열수분출공 주변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 어떤 생태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고 있다. 대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가 바닷물에 녹아 해류의 흐름으로 대양저(ocean floor, 大洋底) 끝자락까지 전해지는 것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유기물 중심의 영양분이 희소한 것처럼 보이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의 일종인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합성(chemosynthesis, chemosynthesis, 化學合成) 반응 과정을 통해 태양 에너지(sunlight energy) 대신 황화수소(hydrogen sulfide)를 산화(oxidation)해서 나오는 화학 에너지(chemical energy)를 이용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탄수화물 등의 탄소화합물로 전환한다. 황화수소가 다량 함유된 열수를 뿜어내는 열수분출공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화학자가생명체(chemoautotroph)의 역할을 함으로써 심해저 생태계에 일차적인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다. 열수방출구 주변 지역에서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식물이 하는 역할을 대신 함으로써 영양분을 제공해야 하는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심해저 생명체가 황화수소 박테리아의 부산물을 이용할까?


사진 출처: Wikipedia

거대 서관충(giant tube worm, 학명: Rifia pachytila)은 환형동물문(phylumAnnelida, 環形動物門)에 속하는 서관충(tube worm, 棲管蟲)의 일종으로 조간대(intertidal zone, 潮間帶)와 원양생태계(pelagic zones, 遠洋生態系)에서 주로 발견된다. black smokers라 불리는 태평양 일대 대양저의 열수분출공 근처에서 살고 상당한 고농도의 황화수소에도 견딜 수 있으며, 최대 2.4 m까지 자랄 수 있다. 그런데 거대 서관충은 대형 동물에서 흔히 보이는 소화기관이 없다. 이 때문에, 거대 서관충은 다른 동물처럼 포식행위(eating, 捕食行爲)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것 외엔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형 동물 중,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하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상식적인 방법으로 거대 서관충이 영양분을 확보할 방법은 없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십 억년 진행된 진화의 놀라운 광경은 개체의 생존―엄밀히 말하면 유전자의 생존―에 있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제 우리는 경이로운 진화의 과정을 볼 것이다. 바로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사이의 공생관계(symbiotic relationship 혹은 symbiosis, 共生關係)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서관충 몸 안―특히, 영양체부(trophosome, 營養體部)라 불리는 기관―에서 살아간다. 거대 서관충은 특화된 플룸 구조(vascularized red plume)을 산소, 황화수소 그리고 이산화탄소 등의 무기물을 흡수하여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사는 영양체부로 보낸다. 그리고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이렇게 얻은 무기물을 화학합성 반응을 통해 유기물로 전환한다. 박테리아가 합성한 유기물은 다시 거대 서관충이 사용한다.

이런 관계를 놓고, 몇몇 사람은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안에서 기생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대개 기생(parasitism, 寄生)이라고 하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에서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하고는 한다. 특히, 박테리아와 대형 동물 간의 관계라면 이런 식의 일방적 상호관계를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일방적 기생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다.

거대 서관충은 황화수소 박테리아를 통해 영양분을 얻는다. 그렇다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거대 서관충 몸 안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생물학적 이점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황화수소 화학합성 과정에서 몇 가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해양 생물은 호흡을 위해 산소를 이용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육상 동물과 마찬가지다. 해양 생물이 이용하는 산소는 대기 중의 산소가 바닷물에 용해된 것일 수도 있고, 바닷속 조류의 광합성 작용으로 생성된 산소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생성된 산소는 해류의 흐름을 타고 심연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헨리의 법칙(Henry's law)에 따르면 기체의 용해도는 기체의 부분압력에 비례한다. 즉,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의 용해도는 증가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심해 위쪽의 용존 산소량보다 높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은 상대적으로 낮다. 심해저에는 빛이 안 들어오므로 녹조류가 살지 못하므로 광합성을 통한 직접적 산소공급이 불가능하며, 깊이에 따른 해류속도의 차이는 용존 산소량의 불균형을 가져올 것이다. 게다가, 심해저에서 발생하는 부패 등의 화학반응은 심해저의 용존 산소량을 상대적으로 더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화학합성 반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용 가능한 산소량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거대 서관충의 플럼 구조틀 통한 산소 흡입은 황화수소 박테리아 주변의 용존 산소농도를 높임으로써 화학합성 반응을 원활히 해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 서관충 몸 밖에서 서식하고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서관충 몸 안에서 서식하는 것은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 같은 화학합성 반응에 필요한 다른 무기물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는 이점이 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황화수소 박테리아는 산소 대신 질소 화합물―질산염 화합물(nitrate) 혹은 아질산염 화합물(nitrite)―을 이용해 화학합성 반응을 할 수 있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위치에 따라 약 68~78%를 차지하는 원소로서 단백질 등과 같은 유기물질의 주요 구성요소이기도 하다. 해수에서 질소는 주로 화합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산소보다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질소 화합물을 화학합성 반응에 사용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다. 또한, 질소 화합물을 사용한 화학합성 반응의 부산물(by-product)인 암모늄 이온(ammonium ion)은 거대 서관충이 흡수하여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합성하는 데 사용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거대 서관충은 생명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질소 화합물의 농도를 체외 농도와 비교했을 때 체내에 100배 이상 농축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종(異種) 간의 공생을 통한 상호작용이 진화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공생진화(symbiotic evolution, 共生進化)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해저부 열수분출공에서 서식하는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 간의 공생관계에 대해 살펴봤다. 수십억 년 전 원시 지구의 혹독한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의 삶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지적 수준으로 가늠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공생관계의 예에서 보여주듯이, 생명체는 다양한 환경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생존을 위해 변화해 왔고 그러한 변화는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종의 적응이라는 사실이다. 마그마가 지각의 틈 사이로 솟아나오고 유독 물질이 섞인 수증기가 뿜어나오는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어떤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와의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협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협력관계를 구사했다는 것은 생명체의 표현형을 결정하는 수많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중 공생관계를 선택하게 한 유전적 변이(들)의 결과가 원시 지구의 환경이라는 자연선택의 요구조건에 적합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공생관계가 생존에 필요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연선택이라는 다양한 진화 가능성 조건에서 어떤 돌연변이(들)로 인해 나타난 개체의 표현형은 공생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의 생활방식이 생존에 적합했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공생이 아니라 기생 혹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어떤 돌연변이는 비슷한 공생적 관계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거대 서관충과 황화수소 박테리아가 보여주는 공생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거나 혹은 상상도 하지 못할 다른 방식의 공생관계에 적합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예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화라는 것은 임의의 개체를 구성 있는 유전자 간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와의 상호 경쟁 혹은 협력체계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Posted by metas :
미국의 생물학자로 메사추세츠 앰허스트대학교의 교수이다. 세포생물학과 미생물 진화에 대한 연구, 지구 시스템 과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국의 지구생물학과 화학진화에 관한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NASA의 지구생물학에 관한 실험들을 지도하고 있다. 공생진화론과 같은 충격적인 가설로 생물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연구로 19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제학술 강연, 100종이 넘는 논문과 더불어 1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영국의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공헌한 바가 크다.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함께 책들을 펴냈으며, 《진핵세포로의 진화》《공생과 세포진화》등의 저술이 있다. ― 출처: 알라딘
 

      
      

이 아줌마의 책을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순서대로 「마이크로코스모스」, 「공생자 행성」, 「생명이란 무엇인가?」, 「섹스란 무엇인가?」. 다행이도 학교 도서관에 위의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 것 같다. 돈 없는 사람은 자고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어야 한다.




 
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