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Das Kapital』독일어판을 한국어로 번역한 강 교수(이하 강 교수)의 『자본』과 두 가지 영어 번역판인 Sonnenschein판(이하 SS)과 Penguin Classics의 Ben Fowkes 번역판(자본론 1에 해당, 이하 BF), 그리고 David Fernbach 번역판(자본론 2 및 3에 해당, 이하 DF2DF3로 각각 표기)을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MIA(Marxists Internet Archive)에 있는 독일어 원본(이하 DK)을 참조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내용은 『자본I-1』 76~84쪽에 해당한다.



제4판에 부쳐

제4판에서 나는 주석과 본문을 되도록이면 최종적으로 확정하고자 하였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는 간단히 얘기해두고자 한다.



프랑스어판과 마르크스의 자필 지시서를 다시 한 번 더 비교해본 다음 나는 프랑스어판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독일어 원본에 보충하였다. 그렇게 보충된 부분은 80쪽(제3판, 88쪽), 458~460쪽(제3판, 509쪽~510쪽), 547~551쪽(제3판, 600쪽), 591~593쪽(제3판, 644쪽), 596쪽(제3판, 648쪽)의 주 79 등이다. 8) 마찬가지로 나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의 예를 따라 광산노동자에 대한 기다란 주석을 본문에 삽입하였다(제4판, 461~467쪽). 9) 그 밖의 사소한 수정들은 순전히 기술적인 것들이다.



그 밖에 나는 몇 군데 해설 내용을 담은 보주(補註)를 삽입했는데, 이것은 특히 역사적 조건의 변화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그렇게 하였다. 이들 보주에는 모두 * 표시를 하고 내 이름의 첫 글자나 "D.H."를 적어 넣었다. 10)



그 사이에 출간된 영어판 때문에 많은 인용문을 완전히 새롭게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 영어판을 위해서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너(Eleanor)는 모든 인용문을 원문과 대조하는 수고를 해주었고, 그 덕분에 영어판에서는 전체 인용문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원전에서 인용한 부분이 독일어로부터 재번역되지 않고 영어 원문 그 자체가 실리게 되었다. [4.1] 그래서 제4판에서는 이들 영어 원문을 대조하는 것이 내게 큰일이었다. 그 결과 갖가지 사소한 오류들이 발견되었다. 페이지에 대한 지시가 틀린 것은, 일부는 노트에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 적은 것이고, 일부는 판이 세 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식 때문이었다. 인용부호나 생략부호가 틀린 것도 있었는데 이는 발췌 노트에서 인용한 양이 많을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오류들이다. 여기저기에서 적절하지 못한 번역용어들도 발견되었다. 1843~45년 파리 시절의 낡은 노트에서 인용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마르크스가 아직 영어를 몰라서 영국 경제학자들의 책을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읽었기 때문에 이중번역 과정에서 발음에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 경우가 있었고—예를 들어 스튜어트(Steuart)·유어(Ure) 등과 같이—이런 부분들은 이제 영어 원문을 직접 이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이와 마찬가지의 사소하게 부정확하거나 소홀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제 이 제4판을 예전 판들과 비교해보면 이런 힘든 교열과정이 있었음에도 그것 때문에 이 책의 내용 가운데에 변화된 것이 있었다고는 전혀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단 하나,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에게서 인용한 부분(제4판, 562쪽, 주 47) 11) 만은 그 원본을 찾아낼 수 없었다. 아마도 마르크스가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썼던 것 같다. [4.2] 그 밖의 모든 인용문은 완전한 증거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거나 아니면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확한 현실을 통해서 자신의 증거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4.3]

4.1.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강 교수는 마르크스의 막내딸 Eleanor Marx를 '엘리너 마르크스'라 부르고 있다. 영어식으로는 그런 식으로 호명하겠지만, 독일어 방식으로 부른다면 '엘레아노르' 혹은 ;엘레아노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역시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냥 강 교수가 독일어 원문에 충실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한 번 짚어본 것이다.
4.2.
마르크스는 이 책의 제목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니다. 페이지를 잘못 기재한 것이다. 37쪽 대신 36쪽이라고 기재했음을 나중에 알아냈다. 물론 강 교수는 독일어원본만(!) 번역했다고 했으므로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4.3.
(SS) All the other quotations retain their cogency in full, or have enhanced it due to their present exact form.
(BF) All the other quotations retain their cogency in full, or have had their cogency enhanced by being put into their present exact form.
(DK) Alle andern behalten ihre volle Beweiskraft oder verstärken sie in der jetzigen exakten Form.
DK를 참조하면 "그 밖의 모든 인용문들은 설득력(혹은 타당성)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거나 혹은 (현실을 반영하는?) 현재의 정확한 형태에서 (자신의) 설득력을 강화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데, 강 교수 번역과 비슷한가? 잘 모르겠다. DK의 'in der jetzigen exakten Form'에 대해서 SS는 'due to their present exact form', BF는 'by being put into their present exact form', 그리고 강 교수는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확한 현실을 통해서'라는 다른 번역을 내놓았다. 솔직히 누가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오래된 한 옛날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가 알기로는 마르크스의 인용문이 올바른 것인지 의심을 받은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그런데 이 의심이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떠돌아다니고 있어서 나는 여기에서 그것을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가 없다.



1872년 3월 7일 베를린에서 발간되는 독일 공장주협회 기관지 『콘코르디아』(Concordia)에 「카를 마르크스는 어떤 방식으로 인용하는가」라는 익명의 글 한 편이 실렸다. 이 글은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을 모두 써가면서 1863년 4월 16일 글래드스턴(Gladstone)의 예산연설(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을 가리킨다-옮긴이]의 창립선언문12)에도 인용되어 있으며, 『자본』 제1권 제4판, 617쪽과 제3판, 670~671쪽13)에 실려 있다)에 대한 인용이 날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용문 속에 나오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이런 부와 권력의 증가는 …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해당되고 있다"는 말은 핸서드(Hansard)의 (반[半]공식적인) 속기록에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7.1] "이 문장은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거기에는 그것과 정반대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굵은 글씨로) "마르크스는 이 문장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위조하여 덧붙인 것이다!"

7.1.
(SS) It was here asserted, with an effervescence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that the quotation from Gladstone’s Budget Speech of April 16, 1863 (in the Inaugural Add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 1864, and repeated in "Capital," Vol. I, p. 617, 4th edition; p. 671, 3rd edition) [present edition, p. 610], had been falsified; that not a single word of the sentence: "this intoxicating augmentation of wealth and power ... is ... entirely confined to classes of property" was to be found in the (semi-official) stenographic report in Hansard.
(BF) It was asserted there, with an excessive display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that the quotation from Gladstone’s Budget Speech of 16 April 1863 (in the Inaugural Address of 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 1864, and repeated in Capital, Vol. 1, pp. 805-6) had been falsified; that not a single word of the sentence: 'this intoxicating augmentation of wealth and power … is … entirely confined to classes of property' was to be found in the (semi-official) stenographic report in Hansard.
(DK) Hier wurde mit überreichlichem Aufwand von sittlicher Entrüstung und von unparlamentarischen Ausdrücken behauptet, das Zitat aus Gladstones Budgetrede vom 16. April 1863 (in der Inauguraladresse der Internationalen Arbeiterassoziation von 1864 und wiederholt im "Kapital", I, S. 617, vierter Aufl., Seite 670-671, dritte Aufl. ) sei gefälscht. Der Satz: "Diese berauschende Vermehrung von Reichtum und Macht ... ist ganz und gar auf die besitzenden Klassen beschränkt", stehe mit keinem Wort im (quasioffiziellen) stenographischen Bericht von Hansard.
SS와 BF는 DK의 두 문장을 (형식적으로는) 한 문장으로 연결했다. DK의 'mit überreichlichem Aufwand von sittlicher Entrüstung und von unparlamentarischen Ausdrücken'라는 표현을 SS는 'with an effervescence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BF는 'with an excessive display of moral indignation and unparliamentary language' 그리고 강 교수는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을 모두 써가면서'라고 번역했다. 아무리 해도 강 교수 같은 번역은 안 나오는데, 잘 모르겠다. 굳이 번역하면 '도덕적 분개와 비공식적인 언어의 과도한 표현'인데, 이걸 '온갖 상스러운 욕과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이 글이 실린 『콘코르디아』 해당 호를 그 해 5월에 받아본 마르크스는 6월 1일 『폴크스슈타트』(Volksstaat)를 통해서 익명의 필자에게 답변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인용한 잡지가 어떤 것이었는 것이 기억해내지 못해서 단지 똑같은 인용문이 실린 다른 두 개의 영국 서적을 명시한 다음 다시 『타임스』(Times)의 보도를 인용하였다. 그 보도에 따르면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의 부에 관한 문제의 진상이다. 나 개인으로서는 이런 현기증이 날 정도의 엄청난 부와 권력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만일 그것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유복한 계급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우려와 아픔을 안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아무것도 알려지고 있지 않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했던 부와 권력의 증가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두 정확한 보고에 근거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글래드스턴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그에게 고통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또한 그것은 바로 사실이기도 하다고, 즉 이 현기증을 일으키는 엄청난 권력과 부의 증가가 전적으로 유산계급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반공식적인 핸서드의 속기록과 관련하여 마르크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중에 다시 정정된 속기록판을 통해서 글래드스턴은 약삭빠르게도 영국 재무장관의 입에서 나온 얘기로는 위험한 부분을 삭제해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영국 의회의 오래된 전통에 따른 것으로, 베벨과 논쟁하던 라스커가 지어낸 날조와는 전혀 내용이 다른 것이다."



익명의 인물은 더욱 격분하였다. 『콘코르디아』 7월 4일 치의 답변에서 그는 2차 자료에 대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소극적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암시적인 얘기를 늘어놓았다. 즉 의회연설은 속기록에 따라 인용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과 『타임스』의 보도(여기에 '허위로 덧붙인'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와 핸서드의 속기록(여기에는 그 덧붙인 문장이 없다)은 '실질적으로 완전히 일치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타임스』의 보도 내용 안에는 '창립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그 악명 높은 구절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인물은 그 『타임스』의 보도가 자신이 얘기한 그 '정반대'의 내용과 함께 바로 그 ‘악명 높은 구절’도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 이 익명의 인물은 자신이 암초에 걸렸으며 단지 새로운 구실 거리를 통해서만 자신이 구출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막 보여준 바와 같이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가득 찬 그의 논문에 온갖 쓰레기 같은 험담, 예를 들어 '악의'(mala fides), '파렴치함', '허위진술', '그 거짓 인용', '뻔뻔스러운 거짓말', '완전히 날조된 인용', '이 날조', '뻔한 비열함' 등과 같은 단어들을 채워 넣었다. 또한, 그는 쟁점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음 논문에서 글래드스턴이 말한 내용들이 우리('거짓말쟁이'가 아닌 익명의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논의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런 엉뚱한 견해가 마치 이 문제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가 말한 다음 논문은 『콘코르디아』 7월 11일 치에 실려 있다.



마르크스는 여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8월 7일 치 『폴크스슈타트』를 통해 답변을 했는데 이번에는 문제가 된 부분과 관련된 1863년 4월 17일 자 『모닝 스타』(Morning Star)와 『모닝 애드버타이저』(Morning Advertiser)의 보도를 소개하였다. 두 신문 모두에 따르면 글래드스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되어 있다. 즉 그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이 부와 권력의 증가가 만일 실질적으로 유복한 계급(classes in easy circumstances)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생각될 경우 이것을 우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데, 그럼에도 이러한 부의 증가 현상은 사실상 유산계급에만 한정되어 나타나고 있다(entirely confined to classes possessed of property)고 그는 말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두 신문의 보도도 바로 그 ‘허위로 덧붙여졌다’는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여기에 마르크스는 『타임스』와 핸서드 속기록의 본문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고 있다. 즉 다음 날 아침에 발간된 별개의 세 신문에 똑같이 실린 보도 내용을 통해서 실제로 얘기되었다고 확인된 문장이 잘 알려진 '관례'에 따라 교열을 받은 핸서드의 속기록에서는 빠져 있으며,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글래드스턴이 그 부분을 '나중에 슬쩍 훔쳐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 익명의 인물과 더 이상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익명의 인물도 그것으로 만족한 듯 보였고, 마르크스도 최소한 그 뒤로는 『콘코르디아』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았다.



이것으로 사건은 끝나고 묻혀버린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뒤에도 한 두 번 케임브리지 대학(the University of Cambridge)과 교류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마르크스가 『자본』 속에서 저질렀다는 범죄, 즉 집필과 관련된 그 엄청난 범죄에 대한 은밀한 소문이 들려오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보아도 그 이상 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지 여덟 달 뒤인 1883년 11월 29일 자 『타임스』에 케임브리지(Cambridge)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로부터 배달된 편지가 한 통 실렸다. 발신자는 세들리 테일러(Sedly Taylor)로 되어 있었는데, 극히 온건한 협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던 이 인간이 뜻밖에도 이 편지에서 케임브리지의 풍문은 물론 『콘코르디아』의 익명의 인물에 대해서도 그 내막을 우리에게 드디어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매우 특이하게 생각되는 것은 … 창립선언문 속에 글래드스턴의 연설을 그대로 옮겨 넣은 그 나쁜 짓을 폭로한 것이 … 브렌타노(Brentano) 교수(당시에는 브레슬라우[Breslau]에 있었고 지금은 스트라스부르[Strassburg]에 있다)였다는 것이다. 그 인용문을 변호하려고 했던 … 카를 마르크스는 브렌타노의 능숙한 공격에 몰려 곧바로 궁지에 빠지게 되자 교활하게도 글래드스턴이 1863년 4월 7일 자 『타임스』에 보도된 자신의 연설 내용 가운데 영국 재무장관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발언 부분은 핸서드의 속기록이 발간되기 전에 서둘러 삭제해버렸다고 주장하였다. 브렌타노가 두 원문을 꼼꼼하게 대조함으로써 마르크스가 교활한 발췌를 통해 바꿔치기해버린 글래드스턴 인용문의 의미가 이들 『타임스』와 핸서드의 속기록 모두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자 마르크스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진상이었다! 그리고 브렌타노가 『콘코르디아』를 통해서 벌린 이 익명의 싸움은 케임브리지 생산협동조합의 환상에 찬란하게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 독일 공장주협회의 성 게오르크(Sankt Georg: 용을 퇴치한 전설로 유명한 기독교의 성자-옮긴이)는 '능숙한 공격'으로 이처럼 칼을 휘둘렀고, 지옥의 용 마르크스는 '곧바로 궁지'에 빠져 그의 발아래에서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이 무용담은 우리의 성 게오르크가 저지른 술책을 은폐하는 구실을 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이미 '덧붙인 거짓말'이나 '날조'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활하게 발췌된 인용'이 문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전체적인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렸으며 왜 그것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성 게오르크와 그의 케임브리지 앞잡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16.1]

16.1.
(SS) The whole issue was shifted, and St. George and his Cambridge squire very well knew why.
(BF) The whole issue was shifted, and St. George and his Cambridge shield-bearer were very well aware why they had done this.
(DK) Die ganze Frage war verschoben, und Sankt Georg und sein Cambridger Schildknappe wußten sehr genau weshalb.
DK의 'Schildknappe'는 영어로 'squire', 한국어로는 '기사(騎士)의 종자(從者)'를 뜻한다. 강 교수는 '앞잡이'로 번역했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타임스』가 게재를 거절했기 때문에 1884년 2월 월간지 『투데이』(To-Day)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밝혔다. 엘리너는 여기에서 원래 문제가 된 단 하나의 쟁점, 즉 마르크스가 그 문장을 '허위로 덧붙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대하여 세들리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마르크스와 브렌타노 사이의 논쟁에서 "어떤 문장이 글래드스턴의 연설에 실제로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내가 보기에 "그 인용문이 글래드스턴이 말하려고 했던 의미를 그대로 살리려고 했느냐 아니면 그것을 왜곡하려 했느냐의 문제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 다음 그는 『타임스』의 보도가 "사실상 말의 내용에서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수긍하였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내용을 정확하게, 즉 글래드스턴이 말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인 의미로 이해한다면 바로 그것이 글래드스턴이 정말로 말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투데이』, 1884년 3월). 여기에서 가장 우스운 것은 이 케임브리지의 소인배가 연설문의 인용을 이제는, 익명의 브렌타노가 '관례'라고 존중했던 핸서드 속기록이 아니라 똑같은 브렌타노가 '틀림없이 잘못 씌어졌다'고 지적했던 바로 그 『타임스』의 보도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물론 문제가 된 그 문장이 빠져 있는 것은 바로 핸서드 속기록인데 말이다!



엘리너 마르크스는 이 주장을 『투데이』 같은 호 안에서 간단하게 무력화시켰다. 먼저 테일러가 1872년의 논쟁을 모두 읽었을 경우 그는 사실을 '허위로' '덧붙였을'뿐만 아니라 '삭제해' 버리기까지 한 셈이다. 그렇지 않고 그가 이 논쟁을 읽지 않았다면 그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확실한 것은 마르크스가 '허위로 덧붙였다'고 주장한 브렌타노의 고발에 대해서 그가 단 한 순간도 지지를 보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그는 이제 마르크스가 무엇을 덧붙인 것이 아니라 중요한 구절을 하나 숨겨버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은 창립선언문의 5쪽에 이른바 '허위로 덧붙여졌다'고 언급되는 바로 그 구절 몇 줄 앞에 인용되어 있다. 또한, 글래드스턴의 연설에서 드러나는 모순에 관해서 말한다면, 『자본』 618쪽(제3판, 672쪽)의 주 105 15) 에서 '1863년과 1864년 글래드스턴의 예산연설에서 계속 드러나는 모순들'에 대해서 얘기한 사람은 바로 마르크스가 아닌가! 마르크스는 단지 이들 모순을 세들리 테일러처럼 자유주의적인 태평스러움으로 해소해버리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엘리너 마르크스가 밝힌 답변의 결론을 요약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반대로 마르크스는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조금도 무엇을 허위로 덧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글래드스턴의 연설 가운데 분명하게 얘기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핸서드 속기록에서 누락되어버린 어떤 구절을 망각되지 않도록 되살려놓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세들리 테일러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20년 동안 이 두 큰 나라에 걸쳐서 교수 일당이 벌여온 음모가 거둔 전체적인 성과는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해서 그 정직성을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는 것과 그 이후로 세들리 테일러는 브렌타노의 논쟁적 저작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또한 브렌타노는 핸서드 속기록의 완전무결성에 대한 교황적 권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1890년 6월 25일, 런던
프리드리히 엥겔스


<주석>
 

8) 이 책의 130, 517~519, 610~613, 655~657, 660쪽을 볼 것.
9) 이 책의 519~525쪽을 볼 것.
10) 이 책에서는 { }로 묶고 '엥겔스'(원문에는 F.E.로 되어 있다-옮긴이)라고 표기하였다.
11) 이 책의 625쪽을 볼 것.
12) MEW판 16권, 3~13권을 볼 것.
13) 이 책의 680/681쪽을 볼 것.
14) 이 책의 682쪽을 볼 것.




Posted by met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