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처음 발견됐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은 무려 농경이 정착되기 전에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그 정체가 밝혀진 후에 많은 고고학자를 소위 멘붕(?)으로 이끌었는데, 이 유적의 존재는 이제껏 알려진 역사적 흐름의 궤에 맞지 않았다. 심지어, 외계 생명체의 증거라는 뻘소리까지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래도 과학은 오로지 객관적이며 반증 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추론으로 뒷받침되는 것이니, 그에 걸맞게 이 유적의 존재를 설명하는 논문이 하나 나왔다. 이 번역문은 해당 논문을 소개하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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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Carved human skulls found in ancient stone temple


홈이 파인 두개골이 고대 석전(石殿)에서 발견되다


By Andrew Curry Jun. 28, 2017, 2:00 PM


고고학자들이 터키 남동부의 12,000년 된 석전(石殿; 돌로 만들어진 신전)에서 놀랄만한 발견을 했다. 수만 점의 동물 뼈와 사람의 머리를 쥔 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은 조각상 사이에서, 피부가 벗겨진 채 앞에서 뒤로 깊게 일직선으로 홈이 파인 사람의 두개골 유해를 밝혀냈다.


그 조각물(彫刻物)은 그 지역의 고고학 기록에서 두개골 장식이 있었다는 최초의 증거다. “이건 완전히 새로운 거라서 근거로 삼을 모델이 없어요”라고 이 일에 참여하지 않은 워싱턴(Washington)주 왈라 왈라(Walla Walla)시에 소재한 위트만 대학(Whitman College)의 고고학자인 개리 롤프선(Gary Rollefson)이 말했다. 조각물의 목적은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고대 종교 관례의 한 부분이지 않았을까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의 목을) 참수한 후에 의례적 재사용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로 알려진 이 유적은 문명의 기원에 대한 고고학자의 사고방식을 바꾼 지 오래다. 시리아 국경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주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이 유적은 원형의 돌무더기로 둘러싸였으며 많은 경우에 양각(陽刻, 또는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T자형의 높은 기둥이 있는 많은 수의 울타리를 뽐내고 있다. 그러한 (건축) 구조는 농경 또는 심지어 도자기가 출현하기도 전의 시기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특별하다. 한때 연구자들은 농경이 초기 (인간) 사회에 식량 공급을 보증하고 난 후에야 복잡한 종교와 사회가 출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경이 출현했던 시기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그 반대였다: 어떤 의식(儀式)을 위해 모이는 그 유적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수렵·채집인이 작물 길들이기를 시작했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이 유적의 발굴이 시작되었을 때, 고고학자들은 사람의 매장지(埋葬地)를 발견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수만 개의 동물 뼈만 발견되었다. 그 안에 700여 조각의 사람 뼈가 그 사이에 돌과 자갈이 듬성듬성 채워진 틈 사이를 통해 흩뿌려져 섞여 있었다. “ “사람 뼛조각이 구조물 주변 도처 모든 지역에 흩어져 있었어요”라고 베를린(Berlin)에 있는 독일 고고학 연구소(the German Archaeological Institute)의 인류학자이자 팀 구성원인 율리아 그레스키(Julia Gresky)가 말했다. “각 사람에게 맞는 뼛조각을 한데 모을 수 없었죠.”



홈이 파인 두개골 가운데 하나. [출처] 독일 고고학 연구소



지금까지 분석이 이루어진 사람 뼛조각 가운데 절반 이상이 두개골에서 나왔다. 오늘 자 에 발표된 논문에서 그레스키와 그녀의 동료들은 세 개의 커다란 두개골 조각에 관해 설명했는데, 각각 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뼈에 새겨진 절단 흔적은 누군가가 살가죽을 벗긴 다음에 앞에서 뒤로 일직선으로 깊게 파인 홈을 뼈에 새겼음을 뜻한다. 비록 반파되긴 했지만, 뼈 하나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조각물에 깊게 잘린 흔적이 많았는데, 누군가가 고의로 그랬다는 게 분명해요”라고 그레스키는 말했다.


또한, 사라지거나 참수된 머리가 그 유적의 석화(石畵; 돌에 새긴 그림)에 나와 있다. 일부 석상의 머리가 고의로 제거되거나 제작이 중단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은 “선물 전달자(Gift-bearer)”라고 명명한 조각상 하나가 사람의 머리를 쥔 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터키 주변 지역인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최초의 사례가 발견되었지만, 두개골에 대한 관심은 오랜 전통의 일부였다. 예를 들어, 훨씬 더 남쪽에 있는 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괴베클리 테베의 유적이 있었던 시기 이전, 동시기, 그리고 그 이후 동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몸에서 두개골을 잘라낸 다음, 매장을 위한 특정 은신처 또는 선반에 따로 놔뒀다. 몇몇은 석고 반죽으로 장식됐다. 하지만 괴베틀리 테페에서 일어난 일은 다르다. “뼛조각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건 정말 독특해요. 홈이 파였거나 구멍이 났던 두개골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요”라고 롤프선이 말했다.


그리고 비록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조류, 육식동물류, 그리고 곤충류 등을 자세히 묘사한 많은 조각품과 돌에 새겨진 양각이 이들의 손재주와 예술가적 기교를 뽐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두개골의 흔적은 다른 형태의 조잡한 조각물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깊이 절개되었지만, 그리 썩 잘 된 건 아니죠. 누군가 자르고 싶었지만, 뭔가 장식을 위한 건 아니었어요“라고 그레스키가 말했다. “다른 식으로 흔적 내려고, 장식품을 박으려고, 또는 그 두개골을 어딘가에 걸어 두려고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 지역에서 발견되는 다른 유물로, 목이 잘린 인간 석상과 (좌측) 양손에 사람 머리를 쥔 선물 전달자가 나와 있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 조각물은 두개골에 외부자(outlier)라고 흔적을 남긴 것처럼 보이는데,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수십 개의 다른 두개골 조각에는 홈을 새기거나 잘라낸 징후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두개골의 본래 소유자가 죽은 후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들의 두개골이 지목되었음을 암시한다. “정말 특별해요, 이들 세 명은 말이죠”라고 그레스키가 말했다. 그 두개골은 조상 숭배의 일부로써 또는 사망한 적의 유해를 과시하기 위한 트로피로써 전시되었을 수 있다.



UC 버클리(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고고학 연구기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있는 미쉘 보노고프스키(Michelle Bonogofsky)는 저자들이 자신들의 발견에 대한 해석을 너무 많이 끌고 갔다고 주장한다. 그 두개골이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증거가 충분치 않고, 결코 그럴 수도 없을 것이라면서, 그녀는 “기록을 남기기 이전에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서, 알 수가 없어요. 그 흔적이 의도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어요.”

고고학자들은 그러한 관례가 그곳에서 있었던 의식의 일상적인 부분이었는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두개골 파편이 발견되길 바라고 있다. 그동안, 홈이 새겨진 두개골은 그 유적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훨씬 더 깊어지게 한다. “우리는 표본이 더 늘어나길 계속 바라지만, 괴베틀리 테페와 함께 출토되는 모든 것이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것을 파괴하고 있어요”라고 롤프선은 말했다. “이런 걸 찾아내는 건 좋지만, 그걸 이해하는 게 역시 좋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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