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불안증(Mathematics anxiety 또는 Mathematical anxiety)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솔직히 필자도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된 연구가 꽤 있는 것을 보니, 이 증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항목이 있다 [1]. (위키피디아는 정말 최고다!) 각설하고, 우리는 불안증(不安症)이나 혐오증(嫌惡症)을 정신적 부수 현상(psychological epiphenomena)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필자도 이러한 거부 반응은 순전히 정신적 문제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무시무시한 악몽 같은 수학 앞에 마주했을 때, 이들의 뇌가 이 상황을 누군가에게 맞거나 불에 데거나 하는 물리적 고통의 순간으로 인식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라는 반응은 일단 접어두자.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출처: MATH ANXIETY CARTOONS]



미국 시카고 대학 심리학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한 뇌주사(腦走査, brain scan) 기법으로 중증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이 자신이 조만간 수학 시험을 볼 예정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제로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뇌의 어떤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했다 [2]. 그 결과, 꽤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뇌 영역 가운데 통증 등의 육체적 위해(危害)나 위협을 감지한다고 알려진 뇌섬엽(posterior insula)이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주로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불안증 환자의 뇌는 예정된 수학 시험을 기다리는 과정이 물리적 고통과 다름없다고 인지하는 듯하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뇌섬엽 활성화는 오직 수학 문제를 풀기 전까지만 유지되며 막상 수학 문제를 푸는 순간이 되면 이 부분은 비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동일 피험자에게 낱말 맞히기 문제 등을 풀게 했을 때에는 뇌섬엽의 활성화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에게 (특히 이들의 뇌에) 고통으로 인식되는 것은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수학 시험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즉, 그 순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뇌는 고통을 겪으며, 그러한 생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 이들의 정신은 수학 문제 풀이 과정을 고통으로 여길지 몰라도 뇌의 통증 인지 영역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인지부조화(인지부조화)와 맞먹지 않는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수학 불안증을 겪는 사람 대부분이 수학과 관련된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수학이나 산수를 사용해야만 하는 분야를 꺼리는 성향이 강함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이것은 바로 우리에게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어떤 것을 피하려는 일종의 방어 메커니즘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불안증이나 공포증―예를 들면, 물 공포증, 거미 공포증, 대인 공포증 등등―은 어떤 뇌 활동 양상을 나타낼까? 비록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르지만, 그것을 회피하려는 행동의 전반적 양상이 비슷함을 고려할 때 이들도 수학 불안증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원인은 다르지만 과정과 결과는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얼마 전 필자는 수학을 기피하는 생물학자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3].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수학만 보면 움츠러드는 우리 생물학자 대부분도 수학적 분석 기법으로 연구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수학 불안증 환자와 비슷한 뇌 활동 양상을 보일까? 혹시 우리가 수학적 기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임에도 그것을 기피하거나 수식이 가득한 논문만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이유도 사실은 우리 생물학자의 뇌가 수학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통”으로 인식하기 때문 아닐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데에 필자는 500원을 걸겠다. 물론, 농담이다.


[사족 #1] 난 왜 자꾸 이런 게 재미있을까? 아마도 이번 생은 망한 모양이다.
[사족 #2] PLOS ONE은 세상 모든 연구자의 성지이자 자애로운 포용자(包容者)인 모양이다. 별의별 논문이 다 게재되니 말이다.
[사족 #3] PLOS ONE이여, 영원하여라!


참고 문헌
[1] Mathematical anxiety. Wikipedia. [링크]
[2] Lyons IM, and Beilock SL. 2012. When Math Hurts: Math Anxiety Predicts Pain Network Activation in Anticipation of Doing Math. PLOS ONE. 7: e48076. [링크]

[3] 「생물학자 그리고 수학. 그 넘사벽에 관하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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