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몬산토(Monsanto)의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에 대한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 변형 작물(Genetically modified crop) 옥수수를 실험용 쥐에게 먹였을 때, 이들에서 유방암 등의 발병률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논란이 되었으며, 이 연구는 유전자 변형 작물에 호의적인 일부 과학자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1, 2, 3, 4]. 그리고 2012년 11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모든 제품에 유전자 변형 작물 사용 여부를 의무적으로 명시하는 법안(Proposition 37)에 관한 투표가 실행될 예정이며 [5], 최근에는 미국 과학진흥협회(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AAS)가 이 법안이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5, 6]. 이처럼 유전자 변형 생명체에 관한 논란은 점점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 양상 또한 매우 격해지고 있다.



유전자 변형 콩을 키우는 농장 [출처: Daily Mail Online]



필자는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과학적 문제 제기는 어떤 식으로든 타당하다고 믿으며,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일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한 비판, 방어 그리고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옹호도 과학적 방식으로만 철저하게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두 진영의 인식에 있는데, 한쪽은 철저하게 은닉하거나 외면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두 진영 모두 유전자 변형 작물의 과학성만 주구장창 바라볼 뿐이지 되려 문제의 본질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유전자 변형 작물을 연구하는 과학자 가운데 상당수는 유전자 작물 연구의 최대 지원자인 다국적 농업 기업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밥줄에 날 선 비판을 섣불리 갖다 대기 어렵다. 반대 진영 또한 이들 작물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길만이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의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것만이 이 세상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 듯 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과학 자체에는 선악(善惡)이 없다. 문제는 그 과학에 올라탄 존재인 인간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어떤 의도로 과학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과학의 유용성 여부는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으며,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과학자 다수는 어떤 주제를 연구할 때 순수한 의미에서든 속물적 계기든 어떤 의도를 가슴 속에 품으며, 이것은 비단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전형적 행동 방식이다. 하지만 무엇을 보고 싶으냐에 따라서 그것이 유익하든 유해하든 상관없이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매우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의 유용성/유해성이라는 과학 논쟁은 두 진영 사이의 대립에 숨겨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의도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끝없는 소모적 논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과 동시에 본질을 더욱 은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이끌 것이며, 말 그대로 “죄 없는 허수아비를 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찬성자나 반대자 모두 과학을 중심에 놓고 자신의 당위성이 제일이라며 서로 설전(舌戰)을 주고받기에 바쁘다. 예를 들어, 다국적 농작물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찬성 측에서는 유전자 변형 작물이 다가올 전지구적 식량 위기 해결과 기근에 시달리는 저개발 지역 주민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 진영에서는 이 작물이 인류의 건강과 지구 환경을 해치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믿음이 팽배하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다. 그렇다고 백 퍼센트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득(得)이 있으면 실(失)이 있기 마련. 유전자 변형 작물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 그것은 바로 20세기 이후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이다. 우리는 이윤 추구를 최고의 미덕(美德)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초기 산업 자본주의 시대와 비교하면 그래도 나아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악행이나 편법도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되는 것은 과거와 다를 바 없으며 어떻게 보면 더욱 정교해졌다고 할 수 있다. 몬산토 같은 다국적 거대 농작물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들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단지, 이들은 자신의 이윤에 대한 무한한 갈망(渴望)을 “과학”이라는 울타리 뒤에 숨긴 채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당연한 듯이 “인류의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범지구적 인류애”라는 눈물 나는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치장되어 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일은 이윤 추구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은 인류를 위한 것이다!”


과학은 “악”이 아니다. 단지 사용하는 자가 그 운명을 결정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과학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바로 다국적 기업의 손에 넘어간 유전자 변형 작물 연구를 다시 우리에게 돌리는 일이다.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섣부른 공포심을 조장하거나 말도 안 되는 헛된 꿈만 가득한 과장과 숨김없이 유전자 변형 작물에 관한 과학적 진실을 대중 일반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이 유기체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이점이 있고 어떤 위해(危害)가 있으며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국적 기업에 대한 연구 의존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공적 자금으로 이들의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이래야만 하고 싶은 말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법이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어렵다면 과학자 스스로 최소한 자신의 양심을 걸고 스스로 문제를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야 한다. 이런 행동을 위한 결단이 어렵다는 것쯤은 잘 안다. 과학자도 사람인데 특별히 다를 게 뭐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일은 우리 과학자 말고는 제대로 할 사람이 없다. 솔직히 과학에 무지한 열정적 활동가, 정치가, 관료, 기자, 자본가 아니면 이런저런 필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단언컨대, 과학자 이외엔 아무도 없다.


참고 문헌

[1] Séralini GE, et al. 2012. Long term toxicity of a Roundup herbicide and a Roundup-tolerant genetically modified maize. Food Chem Toxicol. 50: 4221-4231. [링크]
[2] MacKenzie D. 19 Sep 2012. Study linking GM crops and cancer questioned. New Scientist. [링크]
[3] 이성규. 2012년 10월 9일. 「GM 작물 안전성, 다시 도마 위에….」 사이언스타임즈. [링크]
[4] 「유전자 변형 작물이 정말로 암을 유발하는가? ― 세랄리니 박사 연구팀의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 [링크]
[5] Grant B. 30 Oct 2012. AAAS: Don't Label GM Foods. The Scientist. [링크]
[6] AAAS. 20 Oct 2012. Statement by the AAAS Board of Directors On Labeling of Genetically Modified Foods.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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